비판으로 족한 것을 비난하지 말자.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언, 15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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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인민군
2017/06/01   인민군 보급 이야기 2편 [21]
2017/05/30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끊어진 보급 [23]
2009/07/24   21세기 한국군의 포로에 대한 의식 [46]
2009/06/25   어제 했던 국군 부상병 학살사건 포스팅, 내용 일부를 정정합니다. [18]
2009/06/24   사건을 다른 편에서 보았을 때 - 서울대병원 부상병 학살사건 [42]
2008/12/21   전쟁 중의 오인사례(2) - "너 어디 소속이야?" [47]
인민군 보급 이야기 2편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끊어진 보급에 이어서.

이어서 쓰는 글이라 구질구질한 설명은 생략. 일단 해당 12사단의 7월 15일자 전투지령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통신기재가 고장나도 수리를 하지 않는다.
- 상급부대에 전투상황을 보고하지 않는다.
- 화력 엄호도 없이 보병만 들이밀다가 큰 피해를 입었다.
- 군관들이 난폭하게 몰고 다니는 바람에 사이드카가 모조리 고장나버렸다.

가솔린이나 탄약 같은 물자가 제때 분배되지 않고 있다가 역 구내에서 폭격을 맞는 문제는 김일성도 지시문을 내려보낼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헌데 이게 8월이 되면 다른 물자로까지 번지게 됩니다. 바로 식량이죠.


8월 24일, 어떤 연대 정치장교가 사단 정치부사단장에게 보낸 보고서 요약입니다. 사단번호는 미상.

- 식량이 다 떨어져 이제 1일 1식밖에 주지 못하고 있음.
- 민간에서 간신히 보리 약간을 징발했으나 정미를 할 수단이 없어 주민을 동원해 절구로 찧고 있음. 정미량은 소요량의 1/10 정도.
- 비상식량이 10리 후방에 있는데 오지 않고 있음. 아마 기름이 없는 것으로 보임.
- 사단에서 식량을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당장 내일부터 굶게 됨.

뭐 대략 이 상황이었죠. 네임드 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 2사단도 휘발유 5톤만 어떻게 좀 변통해달라고 상급부대에 구걸을 할 정도였고요.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망병이 급증합니다. 인민군 감찰국이 만든 군기 위반 체포자 명부가 있는데, 5월 25일부터 10월 10일까지 약 6백 명이 체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태반이 도망병입니다. 잡힌 사람 숫자만 이만큼....그럼 도대체 전체 탈영병 규모는 얼마일까요?

개중에는 두 번 도망쳐서 두 번 다 잡힌 운 없는 병사도 있었습니다. 첫 탈주는 김일성이 탈주자를 즉시 처단하라고 지시한 뒤였는데도 용서받았지만 두 번째는 처형되었더군요.


일단 이 책에 있는 보급 관련 이야기는 이 정도. 내일은 다른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나 쓰고 인민군 보급 이야기는 쫑내겠습니다.



출처 : 한국전쟁 - 김일성과 스탈린의 음모, 하기와라 료, ㈜한국논단, 1995
by 슈타인호프 | 2017/06/01 07:35 | 한국현대(~20XX) | 트랙백 | 덧글(21)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끊어진 보급

한국전쟁 초기 북한군의 진격에 대해서 낙동강까지는 승승장구하면서 내려갔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실상을 보면 이미 7월 중순부터 전선에서는 부대에 따라 물자가 부족해지기 시작해요.

7월 15일, 인민군 12사단장 최춘국 소장은 보급이 안 되니 탄약을 아끼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예하 연대 중 일부가 "탄약이 없어서" 백병전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렸거든요.

사흘 후에는 사단 참모부에서 무기 수색대를 조직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남한에서 소집한)보충병에게 줄 무기가 없으니 전사자의 총과 탄약, 그간 분실한 무기를 뒤져서 모으라는 거였죠.

하루 더 지난 19일에는 사단장으로부터 주간에는 트럭 운행을 금지한다는 명령이 내립니다. 공습 때문에 줄줄이 박살이 나는데 보충 가능성이 0%였거든요.

이렇게까지 탄약이 부족했던 결정적인 원인은 수송 중의 난맥이었습니다. 분명히 후방에서 12사단에 탄약을 보내긴 했어요. 이것만 제때 도착했어도 탄약이 없어 백병전을 치르는 처지까진 가지 않았을 겁니다. 문제는 이 탄약이 빨리 목적지로 가지 못하고 화차에 실린 채 허송세월하다가 7월 7일에 폭격을 맞아 역 구내에서 모조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물자를 제때 정리해서 목적지로 보내는 것도 다 경험인데 이게 안 되다 보니 보급이 끊긴 거죠. 그저 안습일 뿐.


출처 : 한국전쟁 - 김일성과 스탈린의 음모, 하기와라 료, ㈜한국논단, 1995
by 슈타인호프 | 2017/05/30 05:21 | 한국현대(~20XX) | 트랙백(1) | 덧글(23)
21세기 한국군의 포로에 대한 의식
이것은 나라도 아니다 시리즈-부제 베트남 전쟁의 한국군 포로(부가1)에서 잠깐 리플을 달려다 길어져서 별도 포스팅으로 합니다.

21세기 한국군에서 포로에 대한 의식도 이준님이 포스팅하신 저 시대와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포로가 되는 것은 죄악이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벗어나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한국군이 황군의 후예 소리를 듣는 겁니다. 21세기가 된 지금에도 국군에서는 포로를 죄악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아주 짜증나는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세계적인 남성 솔로가수 및 여성 걸그룹을 히트시키겠다고 동분서주하는 박진영이 만든 "군진수칙"이라는 노래죠-_-
(혹시 들어보고 싶은 분이 계시면 여기로)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군가는 아마도 1999년 가을에 나왔습니다. 박진영이 입대한 것이 저보다 두달 정도 앞이었고 제가 군복무중에, 특히 중대 행정병 하고 있을 때 나왔으니 그 두 때중 하나인 건 분명해요. 대대에서 테이프 두 갠가 세 개 주면서 같이 내린 지시사사항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인기가수 박진영이 만든 <신세대 군가>니까

일과 후 개인정비시간 내내 막사 내에서 틀 것."


저 노래를 하루 4시간 듣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신 분은 위의 링크를 눌러서 5번만 직접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당장 행정반에 있는 덕에 노래를 제일 덜 듣는(행정반에는 스피커가 없음) 제 귀부터도 탈영하고픈 충동을 일으켰을 뿐더러, 제 몸은 줄지어 밀려든 중대 고참들에게 다구리당해 맞아죽을 뻔 했습니다. "저딴 노래로 우리 죽여서 북한 간첩이 경계선 뚫고 청와대 들어가면 책임질래?!?! 엉?!?!"
중대장부터도 그 노래를 싫어했기 때문에 한 1주일 틀고 그만뒀고, 군대에서 나오는 모든 지시사항이 그렇듯이 그쯤 시간이 지나자 그런 지시사항이 있었다는 사실도 모두 흐지부지되어 사라져버렸습니다. 윗선에서야 그 조치에 대해 어떤 보고를 써 올렸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 노래가 상당수 장병들에게 괴로웠던 1차적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노래가 랩인데다 가수가 박진영이었다는 점이 문제였죠. 핑클과 SES, 베이비복스가 내무반을 주름잡고 김현정이나 박지윤이 조금 고개를 내밀던 그 시대에 남자가수, 그것도 박진영 따위 XXXX한 XXX의 노래를 틀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저 노래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지만 전 저 노래 가사도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나는 죽어도 항복하지 않겠고
나는 전력을 다하여 끝까지 싸우겠고
나는 만약에 포로가 되더라도
계속 항거할 것이고
전력을 다하여 탈출하겠다
전우의 탈출을 돕겠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탄약과 식량이 떨어지고 탈출의 전망도 없고 구출의 희망도 없다면 계속 싸우는 게 의미가 있나요? 말 그대로 희생양으로서의 처지 이상을 할 수 없는 상태라면 저항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계속된 저항이라...그럼, 한국군에 잡힌 인민군 포로가 저항하는 것도 당연한 권리로 보고 인정해주는 건가요? 조용히 있다가 살아돌아오기만 해도 행복할 포로들이 저항하다 집단학살이라도 당하면 정부가 되살려 줍니까? 아님 유족연금이라도 빵빵하게 줄 건가요? 안 그럴 거잖아요?

나는 죽어도 아니 죽어도
절대로 적을 돕지 않을 것이고
기밀을 엄수하고 전우를 보호하고
선임자의 명령에 복종하고
후임자를 통솔하겠다
승리로 이끌어가겠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
하지만 내가 만약에 포로가 되더라도
계급 성명 군번을 제외하고
어떠한 진술도 하지 않겠다
절대 항복하지 않겠다


차라리 이 뒷부분의 가사 쪽이 실제로 "포로가 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더 바른 지침입니다. 포로의 지위를 규정한 제네바 조약에서도 포로는 인도적인 처우를 받는 대신 자국에 대한 배신이 되지 않는 선에서 수용자 측에 가능한 협조하고 통제를 따르며 질서를 유지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무기를 버리고 전투를 포기한 자가 행해야 할 당연한 의무입니다. 말로만 항복하고 뒤통수를 치라는 소리가 아니란 거죠. 이는 어느 일방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겁니다.

어쩌면 이런 군가라도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일보 전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군대에서는 포로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정신교육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교육훈련계획표상의 정신교육은 가라로 체크한 후 실제로는 작업출동이나 하기 일쑤였고, 그나마 실시하는 정신교육은 꾸벅꾸벅 조는 병사들을 앞에 놓고 소대장이 "북괴가 얼마나 나쁜 놈들이냐면 말이야..."하고 염불하듯 정신교육 교재를 읽어나가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반공 이외의 교육 따위 거의 하지도 않았죠.

남들과 달리 행정반에 있었던 탓에 캐비넷 속에서 몇 년째인지 모르게 썩어가고 있는 정신교육 교재를 꺼내서 펼쳐본 적도 있었습니다만 제가 넘겨본 페이지 어디에서도 포로가 되었을 때를 대비한 교육 따위는 없었습니다. 죄다 전투사례 아니면 포로 이야기가 나와도 탈출기지, 수용소에서 버티어낸 이야기 따위는 없었죠.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니 이준님 포스팅에서처럼 "우리 국군은 용감해서 월남에서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었다" 운운하고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진공에서 미군이 6만 명의 인민군 포로를 잡아서 후송했을 때 "한국군이었으면 그런 포로가 없었을 것"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왜냐고요? 한국군에서는 인민군 포로가 전향할 의사를 비치면 바로 현지입대시켜 전선에 투입했습니다. 그런데 미군에서는 일단 적군의 군복을 잡고 있다가 잡힌 포로는 전향을 하건말건 몽땅 포로수용소로 보냈거든요. 실제 저 6만 명의 포로들 중 상당수가 "공산주의자를 물리치기 위해 싸우겠으니 무기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미군은 원칙에 어긋나는 "포로의 자군 편입" 같은 짓은 하지 않고 그런 포로들을 한국군에 넘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짓은 한국군과 인민군만 했습니다.

어쨌거나 현재와 같은 마인드로 한국군이 다시 전쟁을 했을 때, 포로는 역시 싸우기 싫어서 항복한 비겁자 취급을 받을 겁니다. 그런지 안 그런지 검증할 기회가 결코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by 슈타인호프 | 2009/07/24 14:12 | 한국현대(~20XX) | 트랙백 | 핑백(1) | 덧글(46)
어제 했던 국군 부상병 학살사건 포스팅, 내용 일부를 정정합니다.
사건을 다른 편에서 보았을 때 - 서울대병원 부상병 학살사건에서 셀프 트랙백.

어제 포스팅에서 저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북한군 쪽이 조금만 생각이 있었다면 서울대병원이나 서대문 적십자병원처럼 어느 정도 이상의 저항으로 교전이 발생한 곳 이외에, 서울 시내에 산재한 개인 병원에서까지 국군 부상병을 뒤져내어 학살할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른 자료를 통해 확인한 바, 적십자병원에서는 서울대병원 같은 교전 또는 즉각적인 부상병 학살이 없었습니다. 국방부 공식 기록에 의하면 28일 오전 10시에 2대의 전차를 앞세운 인민군이 적십자 병원을 점거하였고, 병원 정문에 3명의 입초를 세운 후 인민군 군관이 병실마다 돌면서 국군 부상병의 숫자를 파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아있던 군의관 1명에게 계속 자리를 지키며 부상병을 돌보라고 했고, 병실마다 돌면서 이런 소리를 했다는군요.

"국방군 동무 여러분! 여러분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미 제국주의자의 앞잡이 이승만이며 그는 일본으로 도망갔다. 동무들은 가만히 누워 치료를 받은 다음에는 고향에 돌려 보내겠소. 앞으로 10일이면 부산까지 완전 해방될 것이오."

부상병들이 긴가민가 하면서 떨고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14시가 되자 인민군 부상병들이 병원으로 밀려들어오면서 간호원들로부터 국군 환자들에게 침대를 비우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그 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아냐고요? 부상으로 입원중이던 하사 한 사람(강종철)이 이 시점에서 탈출에 성공했거든요. 강 하사는 침대를 비우라는 요구를 받자 3명의 동료와 함께 각자 수류탄 한 발씩을 가지고 변소에 가는 척 탈출하려고 했고, 이때 담당 간호원에게 발견되어 "우리가 죽는다"는 호소와 함께 병실로 돌려보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2명의 동료와 재차 탈출하여 겨우 성공했다고 하네요. 강 하사의 이야기로는 남아있던 군의관도 어차피 환자들을 지킬 수 없게 되자 탈출하려고 숨어있다가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강 하사는 피난민 사이에 끼어서 한강을 넘었는데, 이때 인민군이 국군 낙오병을 찾기 위해 검사한 것은 이마, 손, 발이었답니다. 이마에는 모자 자국(이건 경찰이 더 해당되겠지만), 손에는 못박힌 흔적(일해서 박힌 못과 총을 다뤄서 생긴 못은 위치가 다릅니다), 발에는 무좀이 있는 자(일반인은 구두를 신을 일이 거의 없던 시대죠)였다고 하네요.

싸그리 전멸당한 서울대병원과 비교해 볼때, 위 기록대로라면 서대문 적십자 병원 접수는 분명히 정상적, 분명히 일단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승리한 편 군대에 의한 부상 포로 접수 및 인도적인 처우의 약속까지는 분명히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어요. 게다가 민간인과 섞이지 않도록 장교(군관)에 의한 현황 파악에 선무작업(?)까지 이루어졌습니다. 역시 인민군이 승리하던 순간이라 마음이 넓은 때였던 덕이겠죠(실제로 개전 1달 정도는 이렇게 인민군의 "마음이 넓은" 분위기가 지속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따라서 어제 포스팅에서 제가 적은 "인민군이 서울에 입성하자마자 시내에 있는 각 병원을 뒤져서 국군 부상병을 샅샅이 찾아내 죽였"다는 서술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제 포스팅에서 완전히 대규모 떡밥질을 해버렸군요.

물론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침대를 비워 포로수용소에라도 몰아넣었는지 대충 치료해서 인민군에 현지 입대시켰는지 구덩이 파고 다 쏴죽여버렸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증인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일부 반공서적의 서술처럼 눈에 띄는 대로 보자마자 다 사살해버린 것은 분명히 아닌 듯 해요. 역시 서울대병원에서는 저항이 심했다는 것에 학살의 결정적 원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1개 소대의 경비병력 이외에도 환자병사들 중에도 상당수가 총을 들고 저항했다고 하니까요.

이 점은 적십자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습니다. 강 하사는 운이 좋아 무기를 쓰지 않고 탈출에 성공했지만, 만일 인민군의 병원 진입 단계에서 저항이 있었다거나 혹은 탈출 시도 과정 등에서 숨기고 있던 총기나 수류탄에 의해 한 발이라도 공격을 받았을 경우 인민군들이 병원 내에 있는 사람들을 싸그리 죽여버리는데 별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어쩌면 강 하사가 탈출한 후 누군가 숨기고 있던 수류탄을 인민군에게 던졌고, 이를 빌미로 남아있던 환자들이 싸그리 총살당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적어도 제가 현재까지 가진 기록만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네요.

어제 자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포스팅을 하여 오류 섞인 떡밥질을 한 것에 대해서 정말 사과드립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또 생기지 않도록 자료 조사에 유의하겠습니다. 하루만에 제 포스팅을 제가 뒤집게 되다니, 무지 쪽팔리군요-_-;;;

참고자료 :

한국전쟁사 vol.2 - 북한 괴뢰군의 남침,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1968
by 슈타인호프 | 2009/06/25 21:48 | 한국현대(~20XX) | 트랙백 | 덧글(18)
사건을 다른 편에서 보았을 때 - 서울대병원 부상병 학살사건
6.25 -1를 잠깐 읽다가. 마침 내일이 25일이기도 하고 해서 하나 씁다.

원 포스팅을 쓴 organizer™님도 언급하셨지만, 한국전쟁 당시 서울이 함락되었을 때 인민군에 의한 국군 부상병 학살이 있었습니다. 우리측 기록에 의하면 이때 학살당한 부상병이 서울대 병원에서만 100여 명(서울대 측이 세운 기념 명판에서는 1천여 명이라고 함),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서 다수가 있었고 그외 시내 일반병원에도 상당수가 있었다고 해요.

당시 서울대병원에는 1개 소대의 경비병력이 있었으나 압도적인 적과의 교전으로 전멸했고, 일부 부상병들도 무기를 들고 저항하다가 전멸했습니다. 또한 생존한 부상병이 학살당한 후 시신이 방치되어 서울 수복 당시에야 비로소 유골이 수습되었다는 증언도 읽은 기억이 있는데 현재로서는 출처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걸 어디서 봤더라-_;;

일반적으로 이 사건에 대한 반응은 세 가지인 듯 합니다.

첫째, 공산당의 비인간성과 잔혹성 강조.
병원에 있는 부상자 및 그 가족, 일반환자와 의료진까지 학살한 북한군의 비인간성에 대한 성토입니다. 이런 시각에 대해 굳이 더 강조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

둘째, 사건 자체에 대한 부인.
이것 역시 어떤 진영에서 나오는지 말할 필요가 없는 시각이겠죠. 잠깐 검색해보니 "인민군은 군기가 엄정했기 때문에 전쟁 기간 내내 단 한 번의 부상병 학살도 하지 않았다"는 소리도 있고 "매국 친일집단의 기록은 신용할 수 없다"는 망발도 있더라고요. 이는 "국민의 군대인 국군은 단 한 명의 민간인도 죽이지 않았다" 내지는 "자유 우방 미군의 민간인 학살이라니 있을 수 없다"와 같은 수준의 헛소리로, 따라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셋째, 물타기.
북한군의 국군 부상병 학살 사건을 거론하는 사람에게 "당시 북한만 학살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한국군과 미군도 학살을 저질렀다. 노근리 민간인 학살이나 보도연맹 학살 등 수십 만의 학살이 한국 정부와 미군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고작 천 명 정도 되는 희생자를 낸 북한군 학살이 그렇게 중요한가?" 라는 식의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이 있더군요. 이 분의 주장대로라면,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수천만의 자국민을 죽게 만든 중국 정부는 일본의 남경대학살에 대해 항의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제암리 학살 사건이나 관동대학살에 대해서 일본을 탓할 수 없겠군요? 상대가 더 큰 죄를 지었다고 당사자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상이 참작될 뿐입니다.


고로, 그 규모의 차이에 대한 이론(異論)은 있을지언정 북한군에 의한 국군 부상병 학살은 실제 존재했던 사건으로 본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그럼 제목에서 쓴 대로, 다른 편에서 이 사건을 다른 쪽에서 한번 보겠습니다.

일단 이런 가정을 해 봅시다. 한국전쟁(또는 6.25사변)이 지킬 건 지키면서 하는 신사적인 전쟁이라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2차 세계대전 서부전선과 같이 제네바 조약이 준수되는 전장의 경우, 일방이 패퇴하여 미처 환자를 후송하지 못한 상태에서 야전병원을 적에게 넘겨주게 될 경우 경비부대는 서슴없이 적에게 손을 들었습니다. 어차피 끝까지 항전한다고 해서 환자들을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도리어 교전중에 환자들에게 위해가 갈 가능성만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승리한 측 역시 부상한 포로들에 대해서 인도적인 처우 및 자기들 부상병과 같은 정도의 치료를 보장(일단은)했습니다. 동부전선처럼 인종말살 전쟁이 벌어지는 전장에서야 치료소 현장에서 드르륵하거나 전차로 깔아버리는 일도 숱했지만, 적어도 룰을 지키는 전장에서는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쪽을 파면 북한측으로서도 변명거리가 있습니다. 경비부대가 투항을 거부하고 항전했으니 전멸시킬 수밖에 없고, 일부 부상병들이 여전히 총기를 소유하고 저항했기 때문에 교전이 벌어져 우발적인 피해가 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일반 환자에게 총질을 한 것도 을 갈아입은 국군이 기습할 가능성에 대비해서라고 우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당시 상황이 투항이라는 것이 허용될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입니다.

일단 한국전쟁은 동족간의 사실상 내전이자 이념전쟁이었습니다. 독소간의 동부전선도 같은 경우지만 이념전쟁에서 이념이 다른 상대는 말살해야 할 대상에 다름아니며, 이는 내전의 경우 더 심각합니다. 스페인 내전에서 벌어진 잔학행위의 사례를 보아도 이 점에서는 첨부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스페인에서도 좌우 양파가 경쟁하듯이 학살 및 잔혹행위를 벌였으니까요. 이는 설혹 부상자라 해도 인도적인 대우를 기대하고 투항할 수 없게 하는 걸림돌이었습니다.

물론 평소의 교육이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설령 패하더라도 칼이 부러지고 화살이 떨어져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을 신성시하고 포로가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동양의 포로에 대한 사상도 영향을 미쳤겠지요.
하지만 생명의 위기를 눈앞에 보게 되면 투항하는 사람은 나오게 마련입니다. 투항을 부끄럽게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인 죄악으로 여기는 일본군조차 미군에 투항하는 병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군 장병들에게 있어서 북한군에 투항한다는 것은 개전 초에도 이미 죽음을 뜻했습니다. 38선에서 북한군에게 생포된 국군 병사나 경찰관들이 어떤 꼴이 되는지 익히 보아왔거든요.
38선을 경비하는 인민군은 남측에서 귀순한 인원에 대해서는 선전효과를 위한 떠들썩한 행사를 벌였지만 남측 군경과의 교전에서 생포한 포로의 경우에는 눈을 파내고 귀를 자르는가 하면 사지를 토막내어 나무에 걸어놓는 따위의 짓도 서슴치 않았고, 이런 소문은 과장이 더해져서 퍼졌습니다.자연스럽게 한국군 장병들은 배신자의 오명을 뒤집어쓰면서 투항해 봤자 죽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렇다 해도 북한군 쪽이 조금만 생각이 있었다면 서울대병원이나 서대문 적십자병원처럼 어느 정도 이상의 저항으로 교전이 발생한 곳 이외에, 서울 시내에 산재한 개인 병원에서까지 국군 부상병을 뒤져내어 학살할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이 점에서는 만약 서울에 입성한 부대가 중공군 출신으로 구성된 5사단이나 6사단이었다면 이런 식의 학살이 자행될 가능성은 확실히 낮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 두 개 사단은 실전경험이 풍부하고 훈련도가 높아 기강이 엄중할 뿐 아니라, 중공군은 국부군 포로를 잡았을 경우에도 일체 가혹행위를 하지 않고 선무하여 자군에 편입시키거나 안되면 그냥 귀가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했거든요.
이에 반해 서울을 점령한 3사단과 4사단은 소련군 출신자가 간부진의 중핵을 이루었는데 소련군의 포로대우는 말할 필요가 없겠고, 병사들은 북한에서 징병된 자들이라 포로에 대한 배려 따위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국군 부상병들의 운명은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봐야겠죠. 고로 만약 방호산의 6사단 같은 부대가 선두로 서울에 입성했다면 부상병 학살 사건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결론과 함께 마무리.


참고자료 :

경찰전사(1945~2003) : 아~살아있다! 대한민국 경찰의 혼, 대한민국참전경찰유공자회, 월간조선, 2003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 제1부 분단의 배경, 박승수, 금강서원
북한 인민군대사, 장준익, 서문당, 1991
육군종합학교, 박경석, 서문당, 1990
한국전쟁사 vol.1 - 해방과 건군(1945~1950.6),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1968


* 이 포스팅 내용에는 작성시 제가 실수로 집어넣은 오류가 있습니다. 그점 보충하기 위하여 아래 트랙백된 포스팅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by 슈타인호프 | 2009/06/24 16:09 | 한국현대(~20XX) | 트랙백(1) | 덧글(42)
전쟁 중의 오인사례(2) - "너 어디 소속이야?"
1. 한국전쟁 당시 대구전선에서 있었다고 하는 일입니다. 어느 안개 낀 날 국군 정찰대가 위장을 위해 인민군 복장을 하고 정찰을 나갔는데,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찬가지로 국군 복장을 한 인민군 정찰대와 조우했습니다. 곧 총격전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양측 병사들 모두 날고 기는 숙련된 베테랑들이었으므로 피차간에 인명피해는 없었고, 애초 임무가 전투도 아니었으므로 이들은 잠깐 총격을 교환한 후 곧 귀대했습니다.

그런데 대장이 생각하기에 아무래도 미심쩍어서 숫자를 세 보니 숫자가 원래보다 하나 많네요? 고참 부사관을 조용히 불러서 귓속말로 의논한 후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확인해 보니 국군 복장을 한 놈(즉, 인민군)이 하나 끼어 있는 겁니다. 안개 속에서 총격전을 벌이다가 방향을 잃는 바람에 국군 정찰대 뒤로 잘못 따라붙었던 거죠.

저놈 잡으라고 소리라도 질렀다간 눈치를 채고 도망치거나 총질을 해서 아군에게 사상자를 낼 것이니 일단 안심을 시켜야 했지요. 그래서 월남자 출신 병사 하나가 조용히 그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동무 안심하라우야. 우리는 진짜 공산군이니끼니."
"아, 물론이지요. 동무."


.........부대까지 간 뒤에 어떻게 됐을지는 알아서들 상상하시길.


2. 해병대가 서울을 탈환하고 북악산 자락을 따라 인민군 패잔병을 추적(당시의 서울은 지금보다 좁았지요)하던 9월 28일 밤이었습니다. 병사들을 잠시 쉬게 했던 한 소대장은 행군을 재개하려는 참에 소대원이 하나 남는 것을 알았습니다. 각 분대장에게 명령하여 인원수를 체크하게 해서 한 명이 남는 걸 확인했지요.

"너 소속이 어디냐."
"3소대입니다. 여기 3소대 아닙니까?"
"멍청한 놈. 여긴 1소대야. 3소대는 저기 뒷쪽에서 오고 있지 않나."
"예, 죄송합니다."


그 "남는 병사"는 소대장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어둠 속을 향해 발길을 내딛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병사 하나가 소대장에게 살짝 귀엣말을 하네요?

"소대장님, 저놈 철모를 안 쓰고 있습니다."

.......뭐시라? 한국군이라면 전투상황에서 철모를 안 쓰고 있을 리가 없습니다(이에 반해 인민군은 철모를 거의 쓰지 않고 전투모를 주로 썼습니다). 게다가, 그러고 보니 옷매무새도 국군 것과 약간 다르네요?

잡고 보니 역시나 인민군 낙오병이었습니다(먼산). 해병대가 북쪽으로 가는 것만 보고 이쪽도 자기네 편인 줄 알고 따라붙었던 거죠. 역시, 이런 상황은 진지전보다는 기동전에서 많은 듯 합니다.
by 슈타인호프 | 2008/12/21 20:13 | 한국현대(~20XX) | 트랙백 | 덧글(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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