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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5   이건 장수의 좌대 밑에 수급이 있는 격이로군요. [42]
이건 장수의 좌대 밑에 수급이 있는 격이로군요.
"진천엔 '적과 동침'하는 항일의거비 있다"


사진 출처는 위 기사


기사에 대한 석줄요약.

1. 저 자리는 원래 의병과 싸우다 전사한 일본 헌병의 순직비가 있던 곳.
2. 그 헌병을 죽인 바로 그 의병장이 돌아가시자 주민들이 의병장을 기리는 비를 순직비 자리에 세움.
3. 좌대의 원 주인인 헌병 순직비는 좌대 밑 땅 위에 세워짐.


이건 확실히 순직비를 부숴버리는 것보다 한층 더한 치욕입니다. 자기를 쓰러뜨린 장본인에게 원래 자기 자리였던 단상을 빼았겼을 뿐 아니라, 자리에서 끌려내려온 후에는 그 밑에 서 있게 되었으니까요. 진천 주민들 센스 굿인데요 ㅎㅎ

하지만 이보다 더 대단해 보이는 건, 1977년까지 저 비를 그대로 두었다는 것. 한봉수 의병장 본인이 무척 장수하셔서 해방 이후 70년대까지 생존하셨음에도 일본 헌병의 순직비가 때려부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는 건 주민들이 의외로 통이 컸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한봉수 의병장 본인이 살아계셨으니까 더더욱 그랬던 게 아닐까 싶기는 해요.

"어르신, 해방도 됐으니 그놈의 비석을 당장..."
"놔둬, 그래도 사람이 죽어서 세운 묘비나 마찬가지인데 부숴서 좋을 거 있나. 그리고 그게 사실 내 공인 트로피잖아."
"......아, 그렇구먼유."

(이 대화는 본인의 창작임)


한봉수 의병장 생전에는 이렇게 유지되다가 돌아가신 뒤에는 자리를 뺐기고 그 밑에 들어감으로써 굴욕↑과 동시에 한봉수 의병장의 위광↑의 역할을 하는 아이템이 되었다...가 아닐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혹시 일본에 시마자키의 후손이 남아있다면(친척은 있겠죠?) 썩 기분이 좋지는 못할 듯 합니다. 하지만 뭐, 일제시대로 인해 생겨난 반일감정을 생각하면 비를 때려부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지-_-;;

그래도 저 비석이 죽은 이를 기리는 순직비니까 살아남았지, "순직비"가 아니라 "승전비"였으면 무사하지 못했을 공산이 높다에 500원(...)

근데 이 기사를 읽고 잠깐 찾아보니 문제가 좀 있습니다. 꼭 기사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걸친 거지만.

1. 한봉수 의병장의 생몰년
기사는 1884~1972로 적고 있고, 엔사이버에서 확인한 생몰년도 1884.4.18~1972.12.25로 기사와 일치합니다. 그런데 한국학 중앙연구원이 운영하는 <한국 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이하 역대인물정보)>에서는 1872~1970으로 제공합니다-_-;;
그리고 또 황당한 것이,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당시의 재판 기록을 보면 분명히 1910년에 "당년 28세"라고 나오거든요. 이거대로 하면 이번에는 1882년생이 됩니다;;; 하지만 같은 해의 다른 기록에 스스로 27세라고 주장한 게 나오며, 이게 한국식 나이라고 생각하면 만 26세로 1884년생이 맞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엔사이버가 더 신빙성이 높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한국학 중앙연구원도 얼마든지 틀릴 수 있고, 그게 문젭니다;;;

2. 시마자키의 계급
기사는 시마자키가 헌병 상등병이라고 하는데, 독립운동사 자료 등을 살펴보면 헌병 중위입니다. 이건 기사 쪽을 지지하는 다른 자료가 없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기사의 오류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독립운동사의 부풀리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현재로서는 검증할 데가 없군요. 사진으로는 구분이 안 되는데 저 순직비에는 계급이 새겨져 있을까요?

3. 3.1운동으로 인한 복역기간
한일합방 이후 석방되어 향토에 머무르던 한봉수 의병장은 자기 고장에서 3.1운동을 주도한 대가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위 기사에서는 1년형이라고 하고, 엔사이버는 2년형이라고 하고, 독립운동사 기록에서는 2년 6개월입니다. 뭐야 이건-_-;;;



그럼 서울에서 체포되기 전까지의 한봉수 의병장의 의병투쟁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적어보면.....

한봉수(韓鳳洙) 의병장은 청주가 고향으로, 본래는 청주진위대의 상등병이었다는 <조선폭도토벌지>의 기록(*)이 있습니다. 기록된 이름을 보면 봉서(鳳瑞)·봉용(鳳用)·봉룡(鳳龍) 봉수(奉洙) 등 다른 이름이 상당히 많은데 이게 의도적으로 사용한 가명인지 아니면 그저 와전이나 오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의병에 가담할 당시에는 주막 주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만약 이쪽이 사실이라면 현역 군인은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될 듯.

1907년 8월에 대한제국군이 해산되자 의병에 뛰어들었고, 30여 명의 부대원을 인솔하면서 충청-경기-강원 인접 지대에서 주로 활동하여 세간에서는 "번개 대장"이라고 명성을 떨쳤습니다. 경북에도 침입한 적이 있다고 하고, 일본군의 <조선폭도토벌지>에서도 이름을 거명할 정도로 활약했으며 군경이 파악한 주무장은 노획한 30식 소총이었던 듯 합니다.
역대인물정보에 의하면 일본측과의 교전에서 33전 1패를 기록했다고 하며, 엔사이버는 33차례의 전투에 걸친 한봉수 의병장의 전과가 110여명 사살, 무기 노획 80여 점, 현금 탈취 77만여 원이라고 하는데 이중 뒤의 둘은 사실일 가능성이 큽니다만 110여 명 사살은 약간 신빙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의병전투 기록에서, 특히 사살전과는 과장되는 사례가 생각보다 잦아서 말이죠-_-;;; 더구나 역대인물정보는 진천 문배리에서 있었던 시마자키 중위 일행 사살(1908.6.10, 기사에 소개된 바로 그 싸움 - 근데 기사에서는 또 장소가 문배리가 아니라 문백면 옥성리입니다;;;)이 한봉수 의병장의 "의병투쟁의 시초"라고 적어놓고 있을 정도라 말입니다. 이건 벌써 의병활동 10달 후의 일인데 말이죠. 뭔가 엄청난 혼선이 있었지 않나 싶어요. 설마 두 명의 시마자키를 죽이지는 않았을 테고, 비슷한 우편행낭 습격 여러 건이 있었는데 그중 사건의 세부가 혼동된 사건이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어쩌면 행정구역명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싶고요.

그리고 세 가지 전과 중 뒤의 둘은 사살보다 신빙성이 높다고 한 건, 대부분의 전투가 일본군 주력과의 충돌을 피하고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우편 행낭이나 우체국 등을 기습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조선폭도토벌지> 역시 한봉수 부대의 활동에 대해 "우편물의 약탈, 자산가의 겁략을 주로" 한다고 적어놓고 있고요.
우체국에는 다액의 현금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의병들은 이를 주로 노렸으며, 이쪽은 아무래도 헌병대 같은 군사시설보다 방어가 허술하기 때문에 큰 피해를 입지 않으면서 전과는 크게 올릴 수 있었습니다. 우체국을 파괴하는 것은 현금과 무기(경비가 아예 없는 건 또 아니니까요)를 얻는 손쉬운 수단임과 동시에 전신기 등을 파괴하여 일본군의 통신을 방해하는 길이기도 했으니 일거삼득이었죠.
또한 노획한 현금은 주민들에게 뿌리기도 하고(한봉수 부대가 시마자키를 사살한 다음 전투에서 뺐은 1만여 원도 몽땅 주민들에게 살포했다고 합니다) 의병의 군자금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 과거 포스팅에서 언급한 적이 있듯이, 무기를 구하려면 돈이 필요했으니까요.

하여간 그런 힘든 투쟁의 한 단면이 저런 방식으로 후대에 남다니, 이것도 어찌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일입니다. 아마 저 순직비를 세운 일본인들은 저렇게 입장이 뒤바뀌는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겠지요.

by 슈타인호프 | 2010/07/15 13:37 | 뉴스비판 | 트랙백 | 덧글(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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