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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대안교과서
2009/05/28   교과서 오류 시리즈 외전 - 어떤 대안교과서 : 이건 언제 그린 지도일까? [21]
2009/05/27   교과서 오류 시리즈 외전 - 어떤 대안교과서 : 서남아시아의 독립연도? [26]
2009/05/27   교과서 오류 시리즈 외전 - 어떤 대안교과서 : 체로키 족 학살? [15]
2009/05/27   교과서 오류 시리즈 외전 - 어떤 대안교과서 : 잘못 들어간 사진 두 개 [16]
2009/05/27   교과서 오류 시리즈 외전 - 어떤 대안교과서 : 쿠바 혁명 [7]
2009/05/27   교과서 오류 시리즈 외전 - 어떤 대안교과서 : 맞긴 맞는데 미묘한 감을 주는 두 장면 [12]
교과서 오류 시리즈 외전 - 어떤 대안교과서 : 이건 언제 그린 지도일까?
어제, 그제 이틀 동안 실컷 파헤친 어느 대안교과서, 2권을 소재로 한 마지막 편입니다. 사실 그책 1권을 안 보고 2권만 본 건데, 1권은 어떨지 보고 싶어지네요. 1권도 2권만큼 포스팅거리가 있을까...?
하여간 내려갑니다.
by 슈타인호프 | 2009/05/28 21:24 | 세계근대(~1900) | 트랙백 | 덧글(21)
교과서 오류 시리즈 외전 - 어떤 대안교과서 : 서남아시아의 독립연도?
이틀 동안 무지하게 울궈먹은-_-;;; 대안교과서에서 찾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문제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봐 두긴 했는데, 작성에 시간이 좀 걸릴 듯.



자, 이 지도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의 붕괴와 함께 찾아온 서남아시아의 독립 러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숫자로 표시된 이 나라들의 "독립 연도"죠. 이하 가나다순으로 간단하게 평하겠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1932 -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는 헤자즈와 나지드, 두 왕국이 1932년에 연합한 것입니다. 근데, 이 두 나라는 1927년에 영국으로부터 이미 독립을 인정받았습니다. 즉, 1932년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독립"이 아니라 "성립"이 이루어진 해입니다.

시리아 1943 - 시리아가 독립을 선언한 것은 1941년, 선거를 통해 정부를 구성한 것은 1943년입니다. 고로 맞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프랑스가 정식으로 시리아를 포기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에 가서입니다.

아프가니스탄 1919 - 그 누구에게도 항복한 적이 없는 나라가 아프가니스탄이죠-_-;; 영국으로부터 외교권을 양도받아 독자적인 활동을 하게 된 것이 1919년인데, 사실 그 전에도 독립국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에티오피아 1936 - 다른 거보다 에티오피아에서 확 어이가 가출했는데, 1936년은 에티오피아가 독립한 해가 아니라 식민지로 전락한 해입니다.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것이 1935년 10월 3일이고, 1936년 5월 7일에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가 망명하고 이틀 뒤 무솔리니가 에티오피아 합병을 선언하면서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의 식민지로 전락합니다. 이 해에 독립이라니 이 무슨-_-

예멘 1918 - 1918년에 독립한 것 맞습니다.

요르단 1946 - 요르단, 원래 이름 트랜스요르단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1946년 맞습니다.

이라크 1942 - 이라크가 독립한 것은 1932년입니다.

이란 1935 - 이란은 정식으로 식민지가 된 적이 없습니다-_-;;; 한때 사실상의 보호령으로 전락하기는 했어도 자체의 주권은 유지하고 있었죠.

이집트 1922 - 이집트가 정식으로 독립한 것은 1922년 맞습니다.

터키 1923 - 터키는 정치체제가 군주국에서 공화국으로 바뀐 겁니다. 독립이라뇨-_-;;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바뀌면 그게 독립일까요? 프랑스 혁명으로 공화정을 수립한 프랑스는 프랑스 왕국으로부터 독립한 걸까요? 1923년은 터키 공화국이 수립된 해입니다.


제일 어이없었던 것이 터키와 에티오피아. 다른 나라들은 걍 그럴 수도 있겠구나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터키와 에티오피아 때문에 확!해서 다른 것들도 긁었습니다. 여러분들 보시기엔?
by 슈타인호프 | 2009/05/27 18:36 | 세계현대(~20XX) | 트랙백 | 덧글(26)
교과서 오류 시리즈 외전 - 어떤 대안교과서 : 체로키 족 학살?


그러고 보니 이거 어째 도배가 되는 듯도.....-_-;;;

어쨌건...위 사진 속의 그림은 1838년, 미국 정부에 의해 행해진 체로키(Cherokee)족의 강제이주를 나타낸 것입니다. "눈물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 고난의 강제이주 과정에서 전체 체로키족 인구 만 7천여 명 중 4천여 명(책에 따라 오차가 좀 크지만)이 죽었습니다. 즉, 그림 위쪽의 본문에 있는 "살아남은 자가 1,200명"이라는 문장도 잘못된 거죠. 그래도 죽은 사람보다는 살아남은 사람이 많았어요-_-

그 사건의 배경과 결과에 대해서는 Cicero님의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시면 될 거예요.

체로키족의 전사추장, 남군의 기병준장, 스탠드 와티(1)
체로키족의 전사추장, 남군의 기병준장, 스탠드 와티(2)

그런데 문제는, 그림에 붙어 있는 설명이 그림과 따로 논다는 점입니다. 그림이 잘 안 보이시는 분들을 위해서 설명문만 옮길게요.

"인디언들의 시체가 갈가리 찢기어져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렇게 끔찍한 광경은 처음 봅니다. 머리 가죽이 벗겨지고 골이 부서졌습니다. 두세 살 난 아이들도 있었지요." "대체 누가 시체의 손발을 잘라 내는 그런 짓을 저질렀단 말입니까?" "미합중국 군대의 병사들입니다" 「샤이엔 족 학살 기록」(1865)


이 설명 속의 학살도 분명히 존재했던 사건입니다. 1864년 11월 29일 새벽, 콜로라도 주 동남부의 샌드 크리크(Sand Creek)에서 정규군과 의용군이 혼성으로 편성된 7백 명의 병사와 4문의 12파운드 곡사포로 이루어진 미군이 무방비 상태의 샤이안 족과 아라파호 족 인디언 부락을 공격했습니다. 두 부락은 백인들과 우호 협정을 맺고 있었으므로 안심하고 있었으며, 거의 모든 남자들이 사냥터에 나가 있었습니다. 그런 판국에 기습을, 그것도 새벽 나절에 당했으니 맞설 수 있을 리가 없었죠.

샤이안 족의 추장이던 검은 주전자(Black kettle)는 자기 천막에 자기와 협상을 했던 미군 지휘관인 그린우드 대령으로부터 우호의 선물로 받은 성조기와 백기를 걸고 자기들은 백인의 친구임을 알리고 군대의 공격을 멈추려고 애썼습니다. 아라파호족도 성조기가 걸려 있는 검은주전자의 마을로 오려고 애썼지만, 아무 소용 없었어요. 들이닥친 병사들은 성조기와 백기 따위는 아랑곳도 하지 않았습니다-_;;
이 사진 설명에 나온 머리가죽 벗기고 손발 자른 것 정도는 약과입니다. 갓난아이를 집어던져 죽이는가 하면 포탄에 맞아 다리를 잃고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여자의 두 팔을 자르른 다음 버려두고 가기도 했고, 남녀 인디언의 성기를 칼로 도려내어 기념품으로 가져갔습니다.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밖에 팽개치기도 했고요.

학살이 끝났을 때, 희생자는 인디언 남자 28명과 아녀자 105명이었습니다. 이래 놓고, 미군 지휘자인 시빙턴 대령은 4백에서 5백의 인디언 전사들을 죽였다고 보고했습니다. 웃기게도 미군 측에도 9명의 사망자와 38명의 부상자가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오인사격으로 인한 희생자였습니다. 인디언의 저항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으니까요.

사실 마을에 있던 인디언의 수는 남자 60여 명을 포함한 600명 정도였습니다. 미군이 제대로 포위하고 공격을 했다면 말 그대로 전멸했겠지만 새벽녘이라 아직 어두웠던 점, 병사들의 군기가 개판이라 제대로 지휘가 되지 않았던 데다가 야간행군을 하면서 퍼마신 술로 고주망태가 되어 있었던 점, 의용병들의 사격솜씨가 형편없었다는 점 등의 요인으로 인해 많은 주민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의용병이라는 인간들은, 정부의 징병 기피를 위해 의용대에 들어간 쓰레기같은 놈들이었거든요. 1864년 당시 워싱턴의 연방정부는 남북전쟁의 병력 소요를 충당하기 위해 징병령을 내린 상태였는데,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이 콜로라도 지역 주민들은 남군과의 치열한 전투에 참가하기 싫어서 만만한 인디언을 상대로 싸움을 벌인 다음, 그 핑계로 남북전쟁에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거든요. 이런 작자들이니 샌드 크리크 학살사건 같은 짓을 벌일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이 책에 나온 설명문에는 왜 학살 기록이 1865년에 작성된 것으로 기록되었을까요?

그건 실제로 "기록이 이루어진" 것은 다음해인 1865년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록은 1865년 3월 14일, 상하 양원 합동조사위원회에서 존 스미드라는 사람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한 것인데, 이 존 스미드가 군인이라고 하긴 합니다만 군인이 맞는지 아니면 인디언들과의 통역을 맡았던 교역상인인데 잘못 적힌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흔한 이름이라-_;;;

뭐 하여간, 결론은 1838년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저런 설명을 넣는 것은 좀 곤란하지 않겠느냐 하는 이야기. 모르는 사람이 대충 보면, 꼭 체로키 족이 추방되는 뒤를 미군이 쫓아가며 학살을 저지른 것 같지 않습니까. 아니면 좀 자세히 보면 눈물의 길을 따라 쫓겨난 인디언이 샤이언 족 같기도 하고, 어쨌든 좀 뜬금없이 느껴지네요. 이것도 설명과 시각자료를 맡추려면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요. 위 사진 같은 경우, 체로키 족의 실제 이주에 대한 표현을 써도 되고요.

정부군 병사들이 사흘에 한 번씩만 매장할 시간을 주었기 때문에 체로키들은 죽은 사람들을 직접 안고 걸었다. 남편이 죽은 아내를, 아들이 죽은 부모를, 어미가 죽은 자식을, 어린 소년이 죽은 여동생을 안고 걸어간 이 길을 사람들은 ‘눈물의 여로’ 라 불렀으나, 체로키들은 결코 울지 않았고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는 일도 없었다. 이렇듯 가난하고 인디언이기 때문에 온갖 멸시와 박해를 받으면서도 체로키족 사람들은 자신들을 멸시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증오하기보다는 한심하게 여기며 더욱 강하게 맞서 나아갔다.(포리스트 카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일부)

이런 것도 좋잖아요?

또한 본문에서는 "동부 해안에서 쫓겨난 인디언들이 또다시 눈물의 길을 따라" 밀려났다고 쓰고 있는데, 체로키 족은 원래 해안지대에 살지 않았습니다. 이만 끝~~!!

설명은 이만하면 충분?


참고자료 :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미국 인디언 멸망사, 디 브라운, 나무심는사람, 2008
세계의 전쟁 vol.08 - 아메리카의 전쟁 : 독립으로부터 초대국으로, 신태영, 도남서진, 1985
by 슈타인호프 | 2009/05/27 17:07 | 세계현대(~20XX) | 트랙백 | 덧글(15)
교과서 오류 시리즈 외전 - 어떤 대안교과서 : 잘못 들어간 사진 두 개
이틀 째 울궈먹고 있는 그 대안교과서.

뭐, 모으자면 포스팅 하나로 길게 죽 밀 수도 있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군요. 뭐 이번 건은 간단하니까....


1. 이 비행기가 1차 대전?

챕터 내용을 소개하는 이 합성이미지 속의 비행기는 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된 단발 전투기입니다. 잘 보면 둘 다 허리께에 철십자가 선명한 독일군 전투기, 메사슈미트 Bf-109에요.
문제는 이 장은 1차 세계대전을 다룬 장이라는 거지만...-_-


2. 핵실험??

위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이 사진을 설명하는 글에서는 핵실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작 사진 속의 물체는 발사실험중인 미사일-_-;;
핵실험하는 버섯구름 사진이 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핵실험 장면이라면서 로케트를 발사하는 장면 사진을 넣었는지 모르겠네요.

아직 몇 개 더 남았으니 후딱 해치워 보겠습니다.
by 슈타인호프 | 2009/05/27 14:43 | 세계현대(~20XX) | 트랙백 | 덧글(16)
교과서 오류 시리즈 외전 - 어떤 대안교과서 : 쿠바 혁명
아까 편에 이어서. 첨에는 그냥 "사실 + 사실 = 오해"라고 생각해서 앞 포스팅의 3번으로 넣으려고 했습니다만 쓰다 보니 작기는 해도 오류도 섞여 있고, 오해의 소지도 좀 있는 것 같아 별도 꼭지로 뺐습니다.



쿠바 혁명에 대한 본문과 사진 설명을 각각 따로 보았을 때는 분명히 맞는 것으로 보이는 내용입니다. 다만 문제는 이런 편집에서는 사진설명이 곧 본문과 같은 시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이죠. 여기서 생길 수 있는 오해를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카스트로 군의 쿠바 상륙은 11월이 아니라 12월 2일입니다. 원래 예정은 11월 30일이었지만(멕시코 출항은 11월 25일) 항해 도중 폭풍을 만나는 바람에 이틀이 늦어졌죠(이건 틀린 부분이군요).
멕시코에서 출발한 82명의 동지들 중 상륙 후 60명이 사살되었으며 10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이때 산속으로 숨은 12명 중에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외에 카스트로의 동생 라울도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라울이 권력을 물려받아도 쿠바인들의 불만이 별로 표출되지 않는 겁니다. 라울 카스트로 역시 혁명의 영웅이거든요.


둘째, 위의 이야기만 보면 카스트로가 말한 "70명"이 상륙 후 죽거나 체포된 70명의 동지를 가리킨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이게 맞다면 본문과 사진 설명은 일치해서 한 가지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되겠지요. 하지만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겠지요?

넵, 맞습니다. 이 70명의 동지는 1955년 12월에 잃은 70명의 동지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왜냐 하면 카스트로의 혁명운동이 이때 시작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카스트로의 혁명운동이 시작된 것은 1953년 7월 26일, 160명의 병력으로 산티아고 근처에 있는 바티스타(풀헨시오 바티스타, 당시 쿠바의 대통령이자 독재자)군의 몬카다 병영을 공격한 때의 일입니다. 실패한 이때의 습격에서 카스트로는 체포되었고, 재판을 받게 됩니다. "역사가 나를 무죄로 풀어줄 것이다"라는 즉홍적인 연설도 이 재판정에서의 자기 변론(카스트로는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이며, 감옥에서 밀반출한 메모를 바탕으로 지하인쇄물로 출판된 것입니다. "생명을 잃은 70명의 동지"는 바로 이 사건에서 죽은 동지들을 가리키는 거죠. 뭐 카스트로 본인의 기록에 의하면 실제 사망자는 61명이라고 하는데, 진짜 사망자 숫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물론 재판정에서 카스트로는 유죄 선고를 받아 15년 형(동생 라울은 13년 형)을 받았고, 1년 8개월 가량 복역하다가 1955년 5월 바티스타가 재선되면서 행한 일반사면의 대상자로 선정, 석방되었습니다. 이후 잠시 합법적인 비폭력운동을 벌이던 카스트로는 별 성과가 없자 멕시코로 망명하여 게릴라 조직을 만든 후 쿠바로 돌아갑니다. 이 책에서는 그 과정이 다 빠져 있어요.


셋째, 카스트로가 상륙한 후에도 12명의 동지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프랑코 파이스(당시 24세)가 이끄는 300명의 혁명군이 11월 30일에 산티아고에 대한 공격을 실시한 후 카스트로와 합류할 예정이었고, 이들은 24시간 동안 산티아고를 장악하는데 실제로 성공했습니다. 다만 카스트로의 상륙이 늦어졌고 지리멸렬했던 탓에 그와 합류하는데 성공한 숫자는 원래의 300명보다 훨씬 적었고, 이후 산속에서 활동하면서 차츰 숫자를 늘려나갑니다. 12명밖에 없었다는 건 좀 어폐가 있죠. 게다가 쿠바에는 카스트로의 일당 말고도 수많은 반바티스타 게릴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카스트로의 게릴라전은 민중을 방패로 한 성격이 컸습니다. 3년간의 게릴라전에서 카스트로군의 수는 가장 많았을 때도 3천 명을 넘지 않았고, 1958년 8월에 1만 2,000명의 바티스타군을 상대로 벌인 최대규모의 전투(당시 카스트로군은 300명)에서도 정부군의 손실은 300명인데 반해 게릴라들의 전사자는 단 40명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정말 한 거 없는 싸움처럼 보이겠지만, 이때 카스트로파가 아닌 반 바티스타 저항분자의 사망자가 1500~2000에 달합니다-_-;; 그리고 바티스타 정권에 최후의 일격이 된 산타클라라(Santa Clara)시의 함락(이 도시의 함락에 충격을 받은 바티스타가 도미니카로 탈출) 당시 전사한 카스트로파 병사는 6명 뿐이었죠.

이만하면 맞는 내용이라고만 보기에는 조금 많이 난감한 게 맞죠?


참고자료 :

리더스 다이제스트 - 20세기 대사건들, 리더스 다이제스트, 동아출판사, 1991
한마음신서 vol.15 - 세계현대사(3), 폴 존슨, 한마음사, 1993

위키피디아(한) - 쿠바 혁명
by 슈타인호프 | 2009/05/27 12:15 | 한국현대(~20XX) | 트랙백 | 덧글(7)
교과서 오류 시리즈 외전 - 어떤 대안교과서 : 맞긴 맞는데 미묘한 감을 주는 두 장면
앞의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그 대안교과서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이 포스팅에 들어가는 세 가지 이야기는 분명히 맞는 사진과 설명입니다. 다만 오해의 여지가 상당히 심하거나 제가 보기에 좀 아쉬운 점이 있는, 그런 사진들일 뿐입니다. 내용이 틀렸다는 점이 아니니 그 점 확실히 하고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려요.

1. 상해 학살

이 사진은 장개석에 의한 상해 학살(1927년 4월 12일), 또는 상해 쿠데타 직후의 것입니다. 사진 설명도 맞아요. 그런데 문제는, 저기 서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장개석 군이 아니고 영국군이라는 거죠. 상해 내의 조계 경계선을 순찰중인 영국군입니다.

이런 걸 모르는 상태에서 사진을 보면 바닥에 쓰러진 사람이 공산당인지 서서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공산당인지 혼동할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드네요. 다른 분들 보시기엔 괜찮은가요?(,,,)


2. 미드웨이 해전

이 배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격침된 배가 맞습니다. 일본군 중순양함 미쿠마(三隈)가 침몰하기 직전의 사진이에요.


원본 사진은 이거.


다만 이 배는 교전중 격침되었다기보다는, 팀킬로 죽은 거에요. 일본군이 함대를 철수시키는 과정에서 미쿠마와 동급함인 모가미(最上)가 충돌해버렸거든요. 미국 잠수함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은 함장이 회피기동을 하다가-_-;;;
결국 두 척 다 손상을 입은 상태에서 후퇴하다가 미군기들이 공습을 가하자 모가미는 만신창이가 되어 후퇴했지만 미쿠마는 침몰합니다.

분명히 맞는 사진인데......미쿠마보다는 일본 항모가 불타는 아래 이미지들 쪽이 낫다고 생각하는 건 제 뇌가 썩었기 때문이겠죠(...)


공습당하는 일본 항모 아카기(赤城)
(사진출처 : http://www.historysaver.com/assets/images/taylor-midway.jpg)




공습당하는 일본 항모 아카기(赤城)(2)
(사진출처 : http://theminiaturespage.com/profiles/pics/2008/336479a.jpg)




불타는 일본함대 최후의 항모, 히류
(사진출처 : http://www.americanheritage.com/assets/images/articles/web/20070604-Midway.jpg)
by 슈타인호프 | 2009/05/27 11:17 | 세계현대(~20XX)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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