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으로 족한 것을 비난하지 말자.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언, 15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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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방씨 일가는 왜 서울이 처음 함락될 때 피난을 가지 않았는가.
조선일보 호외 논란과 관련하여 당시 언론 상황 몇 가지 간단히.에 이어서.


이번 소동으로 모르던 분들도 다 아시게 되셨겠지만 조선일보 사주 방일영 이하 방씨 일가는 서울이 처음 인민군에게 함락될 때 피난을 가지 않고 있다가 방응모가 인민군에게 납북되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피난에 필요한 돈과 영향력도 있고, 정보 입수도 빨랐을 신문사 사장이 왜 피난을 안 갔단 말이냐...라는 이야기가 이글루에서도 나왔지요.

저도 그게 궁금하여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먼저 실마리는 미디어오늘의 원 기사가 되었지요. 미디어오늘 기사에서는 방응모가 피난을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서술한 여러 문헌이 언급됩니다.


<신문 그 이상의 미디어, 조선일보>(조선일보 90년시사편찬실, 2010)에는 “6월 26일 조선일보 안에 지하조직으로 있던 좌익세력들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회사 분위기도 급변했다. 신문사에 들어서는 사장 방응모에게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때도 모르고 나타나느냐’고 막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적혀있다. 조선일보 내에 북한지지 세력이 존재했다고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태평로일가>(조선일보사, 1983)에 따르면 방일영은 방응모와 함께 6월 26일 조선일보사를 찾아갔을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세상이 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까지도, 조부를 가까이 모셨던 총무부장 김석택이나, 또 신문사에 꽤 오래 근무했고 가깝다고 생각해 왔던 사람들이 이미 지하조직을 구성해 놓고 있었던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만저만 상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방일영과 조선일보>(방일영문화재단, 1999)에서 전택보씨는 “방응모씨가 피난을 가지 않은 것은 전체 상황을 잘못 판단한 원인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자기가 은혜를 베푼 사람들을 지나치게 믿었기 때문이다. 방응모씨는 조선일보를 경영하면서 서중회라는 장학회를 조직하여 성적이 우수하지만 가정이 빈곤해 고생하는 학생 60여명을 도왔는데,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좌익이 되었고 월북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고 밝혔다.

<계초 방응모>(방일영 문화재단, 1996)의 저자 이동욱은 방응모가 피난을 떠나지 않은 것을 두고 “그(방응모)는 자신이 키우다시피 한 계초장학회 학생들의 일부가 공산당에 가입하고 있었다는 점에 너무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이 같은 서술을 종합하면 조선일보 6월 28일자 호외는 조선일보 일부 기자들이 제작에 참여해 제작됐고, 평소 이들의 성향을 용인해 왔던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는 이들을 믿고 피난 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남아있다 납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중에서 마침 두 번째, 방일영 씨 화갑기념문집인 <태평로 일가>의 내용을 마침 직접 확인할 수 있었기에 더 서술된 내용이 없나 찾아보니.....


방일영 씨의 회고에 따르면, 조부인 방응모 씨가 피난을 가지 않았던 까닭은 엉뚱하게도 유재흥 장군과의 인연이 일부 이유가 되었다고 합니다. 유재흥 장군 집이 방응모 씨의 앞집에 있었는데, 유재흥 장군이 "정말 상황이 나빠지면 미리 연락을 드리겠다"고 하는 바람에 방응모 씨등 방씨 일가는 유재흥 장군의 연락이 없어서 아직은 괜찮은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상황이 예상한 것보다 엄청나게 나빠지는 바람에 유재흥 장군은 방씨 집안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가족한테도 연락 하나 못 넣고 군대랑 같이 한강 건너간 거였고 말이죠.
그리고 서울이 함락된 후에 남쪽은 몰라도 시외의 방일영 씨 자택(의정부였다고 합니다)으로도 빠져나가지 않은 것은 방응모 씨가 심한 신경통으로 몸이 좋지 않은 데다 공산당에게 잡혀갈 만한 "죄"가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던 탓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도와준 좌익 학생들이나 자사의 좌익 직원들과의 인연 같은 것에 기대를 걸었다는 언급은 적어도 제가 읽어본 부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일단 이 책은 방일영 씨 자신이 회고한 바를 바탕으로 했으니 신뢰성이 확실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이 부분은 말 그대로 개인사인지라 일단 다르게 볼 필요는 없지 싶습니다. 계기가 되었던 호외의 문제는 여기서도 답이 없는 것이 26일에 방응모, 방일영 두 사람이 회사에 나갔다가 몇몇 직원들에게 비난을 받았다는 위 미디어오늘 기사에 언급된 이상의 내용이 없습니다. <태평로 일가>에 따르면 크게 상심한 두 사람은 곧바로 회사를 나왔고 방일영 씨는 조부를 신당동 자택으로 모셔다 드린 뒤 자기는 곧바로 의정부 집으로 가서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고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두 사람은 회사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호외에 대해서도 물론이고 그 이후의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어요.

자, 그럼 "좌파가 장악한 신문사"에서 어떻게 북진을 외치는 신문이 27일까지 인쇄가 되었냐....고 의문을 표하시는 분들께 답을 드려야 할 텐데, 그 답은 사실 별로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건 27일 저녁까지 서울에서 총을 쥐고 있었던 건 인민군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이었다는 사실로 간단히 설명이 되는 문제거든요. 사무실 내에서 인민군의 남진을 환영하는 것은 좋습니다만, 정부가 요구하는 "국군이 북진한다"는 기사를 실은 신문이 나가지 않으면 당장에 누가 총을 들고 사무실로 뛰어들어와 신문을 그따위로 발행한 놈을 찾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좌파 기자라고 해도 우파, 또는 중립적인 기자들이 국방부 지시에 따라 북진 뉴스를 열심히 내고 있는 걸 굳이 방해할 필요는 없는 거지요. 앞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서울신문의 좌익 공원들도, 자사 간부를 감금하여 도피를 막을 궁리를 하면서도 국방부가 찍으라고 하는 삐라는 10만부나 찍어서 내놓지 않았냐 말입니다.



뭔가 글 하나 쓸 때마다 집에 책이 좀 더 있었으면 싶어지는데...정말 이 욕심을 풀려면 집에 도서관을 차려야 하나 싶어지네요.--;;




by 슈타인호프 | 2015/03/07 10:49 | 한국현대(~20XX) | 트랙백 | 핑백(1)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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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거침없는 무애자 : 조선일보 호외 at 2015/03/08 18:23

... 만약 또 북괴가 쳐 내려온다면 나는 예비검속을 열렬히 지지할 것이다. 조선일보의 6월 28일자 기사 by 아텐보로 이번 조선일보 논란 by 이준님 조선일보 방씨 일가는 왜 서울이 처음 함락될 때 피난을 가지 않았는가. by 슈타인호프 ... more

Commented by kjashd at 2015/03/07 11:18
님 포스팅 내용이 딱 천안함 음모론 보는거 같네요. 오컴의 면도날을 적용하는 대신, 어거지로 같다붙여야되니 중언부언 말이 늘어나죠.

이런 사람이 지금껏 천안함 음모론을 까고 있었으니 원....
Commented by kjashd at 2015/03/07 11:20
"종북조선이 북한에 알아서 긴게 음모론이라고, 니말대로면 그럼 프락치가 윤전기 돌려서 찍어냈다는게 정론이겠다?

그럼 니식대로면 이번 미대사 테러사건은 우파 스파이가 몰래 위장해서 좌빨일척 벌인 일이겠네? 아 천안함 사건도 있었지. 그것도 다 북한이 한짓이 아니라 미제 스파이나 박근혜가 벌인 자작극이겠네?

어디서 많~이본 레파토리 아닌가? 왜이리 종북 조선을 옹호하나 했더니만 지령받고 온 진짜 종북종자였구만.

이야, 뭐뭍은게 나무란다더니만 음므론으로 웃길줄이야."

출처는 http://news2580.egloos.com/5801298 이곳임. 딱 이말이 해주고 싶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5/03/07 12:11
마음대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생각은 자유죠.
Commented by 이야 at 2015/03/07 14:38
할말없으니 쿨한척 '마음대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생각은 자유죠' 같은 소리나 남기고 있네.

남들 소설쓰는건 그렇게 음모론이고 뭐고 처참하게 까대디만 지가 소설쓰는건 무슨 직관으로 사실을 파악한 정론이라는냥 뻔뻔스럽네. 논리 구조가 지가 신나게 깐거하고 똑같은 주제에 뭐가 다르다고 이러고 있는지.

그냥 처음 비판처럼 단정하긴 어렵다 정도면 무리없이 될것을 지가 알아서 음모론 써주고 있다.
Commented by 이야 at 2015/03/07 15:02
yangsp3.egloos.com/5868645

처음 이글루스에서 소설쓴 한명은 잘 마무리 됬는데 반대 내용 소설을 쓴 이 블로그 주인장은 어떨라나 몰라. 자기는 뭔가 다르다고 착각하는꼴을 보니 별로 기대는 안든다만은.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5/03/07 22:40
보는 분들이 판단하실 일입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던과객 at 2015/03/07 12:10
저 때의 경험으로 조선일보가 종북, 좌익이라면 부들부들 떨게 됬군요.
참, 도움을 받았으면 그래도 도움이 됬어야 하는데 뒤통수를 저렇게 맞았으니.......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5/03/07 12:13
저런 일 없었어도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자면 우익의 기치를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물론 사장 개인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치긴 했을 겁니다만. 그리고 일제 때부터 대부호에다가 조선일보라는 큰 신문을 가진 사람은 신세를 진 몇 사람이 어떻게 덮어주기에는 존재감이 너무 커요. 실제로 "신세진 학생들"이 어떻게 옹호해 줄 생각을 했다고 해도, 도망쳐서 숨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집에 떡 버티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었을 공산도 있습니다.
Commented by muhyang at 2015/03/07 14:34
뭐 어디까지나 회고록의 몇 줄과 호외 하드카피 정도밖에 실마리가 없는 상황이라...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5/03/07 22:41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한데 저한테는 없어서 말입니다.
Commented at 2015/03/07 16: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5/03/07 22:41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아텐보로 at 2015/03/08 14:16
주변사람들을 믿었지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해서 저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고 해야되겠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5/03/09 05:06
자료가 부족하여 뭐라고 단언하기는 좀 힘듭니다^^;;
Commented by 비도승우 at 2015/04/06 21:45
공산주의자는 역시 신뢰할수없는족속인게 드러난 하나의사례군요. 고 리콴유조차 공산주의자와의 대결에서는 죽느냐 죽이느냐 둘중하나밖에는 없다고 말했을정도이니. 저당시 많은사람들이 일제36년도 별일없었는데 나는 잘못한것도없고 같은동족인데 무슨일있겠냐 하고 피난안갔다가 살아남은대다수가 1.4후퇴때는 모두서울을떠나죠. 어떤족속들인지 제대로 겪어본셈이니..
Commented by 궁금 at 2015/06/22 09:26
저런 엄청난 기사를 쓰고도 서울이 수복되고 나서 살아남은 조선일보의 행적이 의문이네요... 또 한가지. 다른 신문사에도 좌익이 있었을텐데 말입니다.왜 다른 신문사 호외는 없었을까요. ...논리적인척 주관적인글 잘 봤습니다 답변 없어도 됩니다만 자료없다고 얼버무리시진 않았으면 합니다..얍삽해 보이니깐요
Commented by 뒷북 at 2015/11/21 06:06
'미디어오늘'의 기사보다는 이 해석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네요. 힘도 없는 학생들을 믿었다기보다는, 뭔가 있을 것 같은 장군을 믿었기때문에 피난을 가지 않았다고 보는게 더 그럴듯합니다. 그 많은 재산을 두고, "진짜 위기"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도망을 간다는게 쉽지 않겠죠. 재산을 왜 다 빼앗기지 않았는지도 궁금하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5/11/23 07:54
감사합니다. 재산이야 뭐, 부동산은 북한군이 들고 갈 수도 없으니 수복한 뒤에 도로 찾으면 그만이죠. 가진 동산은 그냥 적절히 잘 숨기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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