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으로 족한 것을 비난하지 말자.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언, 15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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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8일, 점수도 공방전에서 11전차연대의 분투
이번 포스팅은 2차대전 태평양전선 최북단에서 있었던 최후의 본격 지상전에 관한 짧은 이야기입니다. 사실 만주나 사할린에서는 시무슈 섬보다 더 뒤까지 전투가 계속됐지만, 그쪽은 사실상 소련군의 소탕전이라 시무슈 섬과는 그 양상이 많이 달랐습니다. 여기서는 전차까지 동원한 말 그대로의 격전이, 그것도 일본에 우세하게 벌어졌었거든요^^


순서는 좀 어긋나지만, 상륙에 투입된 소련군 전력은 아래와 같습니다.

육군 : 총 8,363명.
캄챠카 방위구(사령관:그네치코 소장)
제101저격 사단(사단장:P.I.지야코프 소장)
제198저격 연대
제5독립 저격대대
제7독립 저격대대 외

해군
페트로파블로프스크해군 기지(사령관:D.G.포노마료프 해군 대령)
경비함 2척, 기뢰 부설함 1척, 소해정 4척, 수송함 14척, 상륙용 소형선 16척 등 합계 54척
해군보병 1개 대대
비행연대 1개

공군
제128혼성 비행 사단


이 상태에서, 8월 18일에 소련군이 상륙하게 됩니다.

3. 11전차연대는 어떤 부대?



4. 소련군의 공격 조짐
사실 점수도에 대한 공격은 8월 15일 밤부터 그 조짐이 보입니다. 전쟁은 그날 정오에 이미 끝난 상태였지만 이날 저녁 점수도는 <국적 불명의 적기>에게 공습을 받았지요. 하지만 뭐, 그게 어느 나라 비행기인지는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다음날 하루는 조용했지만 또 하루가 지난 17일에는 아침부터 소련기가 나타납니다. 소련해군 비행연대 소속의 항공기 3기가 오전 6시 반부터 점수도에 대한 정찰 및 폭격을 전개하지요. 이날 낮에는 공군 비행 사단 소속기가 군사목표에 대한 연속적인 폭격을 가했고요. 그 외에 캄차카 반도 최남단인 로파트카 곶(점수도까지의 거리, 15km)에 전개한 소련군 야포로부터의 포격도 있었습니다. 점수도를 직접 공략할 상륙선단은 이미 새벽 5시에 정박지를 떠나 무선을 봉쇄한 채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지요.

한편 일본군 쪽에서는 이런 사태 전개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제 전쟁을 그만두자"는 8월 15일의 옥음 방송에 이어, 홋카이도의 제5방면군 사령부로부터도 "18일 16시 부로 정전할 것이므로, 이쪽으로부터 군사를 파견할 것" "그 이전에 적이 공격해 올 경우 자위를 위한 전투는 금지하지 않음"이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거든요. 17일까지는 예하 전 부대에 명령의 전파가 완료되었고 일본군 스스로의 손으로 무장해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전차는 탄약과 비포를 제거하고 화학무기는 바다에 던져버리는 식이었지요. 화학무기의 처리는 17일까지 모두 완료되었습니다(이게 완료되지 않았다면....하고 생각하니 후덜덜이군요;;).

여기서 아마 이상하게 생각하실 분들이 좀 계실 것 같네요.

"천황이 15일에 항복 방송을 했는데 왜 18일 이후에 전투를 중단하라는 거지? 15일 12시 이후로는 미군에 대한 출격은 중지되지 않았나?"

분명히 미군에 대한 공격은 15일 12시부로 금지되었습니다(이후 몇 번의 특공이 있었다고 하나, 이는 분명한 명령위반입니다). 하지만 제5방면군의 소련군에 대한 전투는18일 16시까지 승인되었는데, 여기에는 북부 전선을 담당한 제5방면군만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제5방면군의 관할지역(쿠릴, 홋카이도, 사할린) 중 사할린에서는 15일 시점에서 이미 소련군과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거든요(조선과 만주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여기는 관동군 관할). 한참 전투를 하다가 갑자기 멈춘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게 되지 않을 것이므로, 이 지역에서 소련군과의 교섭에는 여유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보아서 18일 16시까지는 정전을 유예하고(하지만 예정과는 달리 남사할린의 전투가 정식으로 종결된 것은 8월 25일로, 실제 전투는 8월 21일까지는 거의 끝나고 잔존 일본군 병력은 22일에서 23일에 걸쳐 대부분 항복), "그 시간(18일 16시) 이후 병기 인도를 교섭하라"는 명령을 주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기간 내에 소련군이 진공할 경우에는 "자위를 위한" 전투를 허용한다고 했고요. 하지만 이것 역시 항복을 전제로 한 것으로, 소련군이 항복교섭을 인정하지 않고 발포해올 경우에 대한 시한부 조치였습니다. 이런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점수도에서도 교전이 벌어졌던 거죠. "18일 16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입니다.

17일에는 캄차카 연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소련 측의 빈번한 선박 이동이 일본측에게도 감지되었습니다만, 일본군은 이미 전쟁은 끝났으니 지금 소련이 침공하지는 않을 거라고 보고 큰 의구심은 품지 않았습니다. 다만 캄차카 바로 맞은편의 다케다(竹田) 연안 거점에 배치한 독립보병 282대대 예하의 1개 중대에게 경계를 명한 정도였지요. 이 보병 중대는 소대별로 분산되어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었고(위 배치도 참조) 총계 대대포 3문, 속사포 3문, 야포 2문, 박격포 4문(대대포/야포/속사포는 각 소대진지에 분산, 박격포만 후방에서 통합운용)의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5. 소련군의 상륙
그런데 일본측의 예상을 뒤엎고 8월18일 오전 2시 32분(일본 시간), 소련군의 상륙 선견대인 해병대대가 점수도 해안에 상륙한 겁니다. 다케다 바닷가를 방위하는 독립 보병 제282대대는 즉시 반격에 나섰고, 소련군도 함포 사격과 함께 캄차카로부터의 지원 포격을 개시했는데 어느 쪽이 먼저 포격을 시작했는지는 일소 양측이 모두 자신들의 선제사격을 주장하고 있어서(...) 확실하지 않다는군요. 하여간 소련군 선견대는 경미한 손해로 상륙에 성공, 새벽 3시 경에는 부대를 정비하고 내륙으로의 진공을 시작합니다. 이들은 일본군 연안 진지는 소탕하지 않고 후속부대에게 맡겨두었지요.

3시 30분 경에는 소련군 상륙부대의 주력 제1제단(제138저격 연대를 기간으로 구성)이 선견대의 뒤를 따라 상륙을 개시했습니다. 이때는 최초 상륙시 저항하던 수비대뿐 아니라 상륙지점을 감제하고 있던 일본군 해안포대도 전투에 가담해서 격렬한 포격을 가했고(일본측 기록 13척 격침, 소련측 주장으로는 지휘관이 탑승한 함정을 포함하여 상륙정 2척이 대파된 데다 다수가 손상을 입음), 이로 인한 병력은 물론 장비 손실도 상당했습니다. 일본측은 항공대도 출격시켰지만 전과는 없었고(소련측 주장), 도리어 대공포화에 함상공격기 1기만 상실했습니다. 솔직히 전과가 없는 게 당연한 게, 아무리 낮이 긴 8월이라지만 새벽 3시 반에 파일럿이 제대로 표적을 볼 수나 있었을지 의문이군요(...). 참고로, 일본측 자료는 이때 해안포대의 활약으로 물에 빠진 소련군만 3천 명에 달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1제대의 상륙이 완료된 것은 7시경이었지만 이들은 전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양륙된 중화기가 45mm 대전차포 4문 뿐이었고, 지휘부는 상륙정과 같이 가라앉아 버렸거든요. 공격작전에서 보병을 지원할 전차도 전혀 없었는데, 일본측 자료에서는 전차를 싣고 오던 양륙정이 포격에 격침됐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소련측 자료에는 아예 전차가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아, 어느 쪽이 사실일까요~?^^

소련군 상륙 2제대(제373저격연대를 기간으로 구성)는 1제대의 상륙이 완료된 7시 경에 상륙을 시작하여 10시경에 마무리를 했습니다. 사방이 밝은 대낮인데도 어둠 속에서 상륙한 1제대만큼 시간이 오래 걸린 건 역시 일본군 해안포대의 포격때문이었죠. 소련군도 함포사격으로 일본군을 제압하려고 노력은 해 봤지만, 화력이 부족했습니다. 소련 해군은 미 해군이 아니었거든요(먼산).

후속 상륙 본대가 곤란을 겪고 있는 동안 소련군 선발대는 일본군의 치열한 저항을 물리치고 사령산(四嶺山)까지 도달하고 있었습니다. 이 산을 둘러싸고 양군의 격전이 벌어졌지만 양측 다 항공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죠. 일본은 비행기가 없었고, 소련은 비행기는 있었지만 악천후 탓에 비행기를 띄우는 것이 곤란했습니다. 결국 처음에는 양측 다 보병만 동원했지만 일본측이 먼저 전차를 투입합니다. 바로 유명한 11전차연대였죠.



6. 11전차연대의 활약

다시 한 번 게시. 이 지도에서 1로 표시된 장소가 사령산, 2로 표기된 곳이 소련군이 상륙한 다케다 해안, 3이 11연대의 목표지점이었던 국단(뭐라고 읽지?;;)입니다.


애초에 일본측은 점수도에 상륙해 온 적을 국적 불명으로 보고하고 있었습니다만, 결국 소련군이라고 확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소련군 상륙의 보고를 받은 제5방면군 사령관 히구치 중장은 제91사단에 대해서 "단호한 반격으로 소련군을 격멸할 것!"이라는 지령을 하달한 바, 사단장 堤不 중장은 사격 가능한 포병에게 상륙지점에의 사격을 명하는 것과 동시에 이케다 중령의 전차 제11연대에 대해서도 사단 공병대의 일부와 함께 国端 방면으로 진출해 적을 격멸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동시에 점수도 주둔 제73여단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예하 부대의 병력을 집결해 전력으로 반격할 것을, 황연도의 제74여단에는 선박 공병의 주정을 이용해 점수도로 이동할 것을 명합니다. 이 명령을 받은 제11전차연대는 즉시 출격하고, 제73여단에서도 누마지리에 배치되고 있던 독립 보병 제283대대(대대장 : 타케시타 소좌)를 소련군의 동익에 보내고 그 외의 예하 부대를 国端 곶으로 전진시키려고 했습니다.

한편 전차 제11연대는, 18일 오전5시 반 무렵부터 연대장차를 선두로 해서 사령산의 소련군에 돌격을 실시, 중화기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소련 보병들을 격파하고 봉우리 북쪽 경사면의 소련군도 후퇴시킵니다. 소련군은 그나마 보유한 대전차화기(45mm 대전차포 4문, 대전차총 약 100정)을 집결시켜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다수의 일본 전차를 차례로 격파했지만, 사령산 남동부에 위치한 일본군 고사포의 포격을 받은 데다 구원을 위해 달려온 독립보병 제283대대가 잔존 전차를 선두에 참전하면서 다수의 시체를 유기한 채 결국 원상륙지인 타케다 방면으로 철수했습니다. 이 돌격에서 11전차연대는 27량의 전차를 상실했고, 이케다 연대장 이하 다수의 장교를 포함해 96명의 전사자를 냈습니다.


그런데 이 11전차연대의 출동이...말 그대로 "닥치고 돌격"이었습니다(...) 왜냐고요? 일본군 전차 주제에 중대 별로 분산되어 있는 전 병력을 집결시키지도 않고(위 지도 참조), 보병 지원도 기다리지 않고, 제압포격도 없이 순 전차만 가지고 소련군 진지에 돌격해 들어갔거든요. 게다가, 연대장은 선두 전차에 탄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포탑 위로 상체를 내민 채 일장기를 휘두르며

적진으로 돌입했습니다.(....)

사실 11전차연대는 전날까지만 해도 전차에서 통신기 및 연료/탄약을 제거하고, 차체를 매몰하고 탄약을 소각하는 등 무장해제 작업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참에 갑자기 소련군이 쳐들어오자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옥쇄하자!"고 보병지원이고 병력집중이고 없이 뛰쳐나갔던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연대장이 최선두 전차에 타고, 그것도 포탑 위로 상체를 내밀고서 일장기를 휘두르면서 돌진하는 미친 짓을 하지는 않았겠죠.

만일 연대장이 진지하게 "섬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면, 자신이 선두에 서서 돌진하는 것보다는 연대를 집결시키고 지원보병을 기다려서 합동으로 돌입해야 했습니다. 자살돌격이나 마찬가지인 짓을 했다는 것부터가 화려하게 지겠다는 의도가 컸다고 봐야죠. 일부 일본측 자료에서는 그런 연대장의 행동을 "이미 끝난 전쟁, 나는 죽겠지만 너희는 굳이 죽을 필요 없다"는 생각에 자기 나름대로는 부하들을 살리려는 의미에서 선두에 선 거라고 보더군요. 연대장이 "출동!"하고 나서 뒷전에 앉아 있으면 눈치보느라 전원이 돌격해야 하겠지만, 선두에 나가서 죽어버리면 망설이던 부하들은 그냥 돌격 안 하면 되니까 말입니다. 이것도 나름 부하들에 대한 애정?


하여간....그 후 일본측의 독립보병 제283대대는 잔존 전차의 지원을 받으면서 국단기(상륙지점의 견제가 가능)를 향해 전진, 소련군이 이미 점령하고 있던 방비의 요소를 탈환했습니다. 소련군이 이 곳을 재탈취하기 위한 공격을 개시하면서 격전이 벌어졌지만, 283대대는 대대장이 중상을 입고 부관 이하 50여명의 전사자를 내면서도 진지를 확보하여 73여단의 주력이 사령산 남측에 집결하도록 원호하는 것에 성공합니다(공세를 자기가 다 끌여들었다는 이야기). 이때 캄차카의 소련군 130mm야포 4문이 포격을 가해 왔으나 사령산에 있던 일본군 150mm포 1문이 대포병사격을 실시, 제압했다고도 하네요. 역시 대구경 파워랄까요.

18일 오후에는, 283대대가 고수한 국단기의 거점과 사령산 동남방에 전개한 11전차연대와 보병 제73여단 주력, 그 후방 및 좌익에 전개한 74여단의 일부 병력이 전투태세를 갖춤으로서 상륙지 주변의 소련군을 섬멸할 준비가 갖춰집니다. 하지만 이날 낮에 제5방면군 사령부로부터 이미 연락이 와 있었지요. 그 내용은 "공세를 중단하고, 적이 공격해 올 경우 자위를 위한 것 이상의 군사행동을 하지 말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본군은 이에 따라 18일 16시부로 적극적인 군사행동을 중단했지만 파라무시르 섬으로부터의 74여단의 이동배치 및 소련군에 대한 경계는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소련측은 일본측의 조치에 상관없이 계속 공격을 가해 일본군의 증원을 방해하고 교두보를 확대하고자 했지요. 하지만 파라무시르 섬으로부터의 선박 수송을 저지하려던 공습은 별 효과를 얻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갔고, 파라무시르의 74여단은 18일 밤까지 이동을 완료했습니다. 교두보 확대를 위한 공세는 효과가 좀 있어서 캄차카의 소련 육군 및 함대의 포격지원을 받은 상륙부대는 교두보 넓이를 폭 4Km, 깊이 56Km까지 넓혔습니다만 사실 이는 소련군이 잘 싸워서라기보다는 일본군이 스스로 철퇴한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반격의 중지와 항복이 결정된 것을 알고 있는 일본군으로서는 굳이 소련군을 저지하기 위해 싸울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해안포대는 소련군의 증원을 저지하기 위한 포격을 계속했고,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일본측 주장에 따르면 이 포대의 사격으로 가라앉은 상륙정이 13척이나 되는 데다가 여기 탑승하고 있다가 물에 빠진 인원은 3천여 명에 달합니다(소련측 주장은 2척 대파, 다수 파손). 실제로도 다음날인 19일에 이 포대가 정전 명령을 받아 침묵하고서야 소련군은 중포나 차량 등의 중장비를 양륙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소련군이 점수도 공략에 전차 등의 중장비를 동원하지 못한 것은 곧바로 소련군의 공격력 부족으로 이어졌습니다. 일본군의 역습에 대한 방어전을 펼 때는 일본군 전차의 워낙 후덜덜한 방어력으로 인해 큰 문제가 없었지만, 요새화된 진지에 대한 공격은 다소 난감했죠. 덕분에 일본군은 기습을 받았으면서도 정식으로 정전교섭이 성립한 8월 22일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그다지 밀리지 않고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만주의 관동군(을 빙자한 쓰레기집단)이 풍지박산으로 돌파당한 것에 비하면 비록 며칠 안 걸린 싸움이긴 해도 점수도 수비군은 큰 손실 없이 비교적 유효하게 싸운 셈이지요.
양측의 상호 사상자 수는 소련군 자료에 의하면 일본군이 1000여 명, 소련군이 1567명이지만 일본측 참전자 일부는 일본군 600여 명, 소련군 3000여 명이라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해안포대가 소련군 상륙정을 실제로 몇 척이나 잡았느냐에 따라 어느 쪽 수치가 맞는지 판명날 듯 하네요.

일본군이 이렇게 선전할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 많은 수의 장병들이 중국전선이나 과달카날에서 살아돌아온 고참병이라 병사들의 전투경험이 풍부했다.
- 전쟁 초기부터 단 한 번도 전투를 하지 않은 곳이라 식량, 탄약의 비축이 충분했다.
- 공격측인 소련군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 소련군이 상륙할 수 있는 모래 사장이 좁은 다케다 바닷가 밖에 없어 좁은 모래 사장에서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가 있었다.
- 기후가 불량하여 소련군의 효과적인 항공 지원이 불가능했다.
- 상륙하기 전에 강력한 함포 사격이나 폭격이 없었기 때문에 수비군의 진지가 충분히 파괴되지 않았다.


등의 요인이 있었지만, 역시 가장 큰 요인은 소련군의 공격력 부족에 있었다고 보아야겠지요. 한편 일본군 측에서는 하려고만 하면 전투 자체야 얼마든 더 지속할 수 있었지만, 이미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항복 명령을 무시하고 더 싸워서 병사들을 죽일 생각은 일본군 지휘관들도 없었습니다. 다만 어차피 할 항복이고 무장해제인데 정식 교섭도 없이 성급하게 밀고들어온 소련군에 대한 적개심과, 싸워보지도 않고 무기를 내주기 싫다는 자존심이 합쳐진 결과가 이 12시간의 전투(일본군의 본격적인 반격이 03시 30분부터이므로)였죠.

점수도 수비군이 파라무시르에 주둔한 사단 본대의 지원을 받아 응전한 것도 이런 기분에 따른 것이었지만 이미 종전에 간한 지령은 하달되어 있었고 이들이 "전투를 할 수 있는" 기한은 그날 하루, 그것도 16시까지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점수도 수비군은 자신들의 저항을 그날 16시까지는 종결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덕택에 소련군 후속부대에 대한 장기적인 저항 가능성 따위를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돌격할 수 있었습니다. 소련군 후속부대가 오건말건 "오늘 오후 4시"가 지나면 자기들이 총을 버리고 항복할 예정이라는 점에는 아무 변동이 없었거든요(웃음). 이후 양군 사이에서는 가벼운 충돌이 몇 번 계속됩니다만, 결국 점수도를 수비하던 일본군은 8월 22일부로 소련군에게 정식으로 항복합니다. 무장해제는 소련군에 의해 23일자로 완료되었고, 일본군의 생존자 대부분은 시베리아로 끌려갔습니다. 점수도와 파라무시르 주둔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소련군은 북부 쿠릴 열도의 나머지 섬들에 주둔한 일본군으로부터의 항복을 받는 작업에 나서 31일까지 완료했고, 이 과정에서 일체의 저항은 없었습니다. 남부 쿠릴에 있는 섬들은 사할린을 점령한 부대가 항복을 받았지요. 지금도 러시아와 일본 간의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북방 4도(에토로후, 시코탄, 구나시리, 하보마이)"의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물론 이 방면에서도 저항은 없었습니다.

그때 그분은 "일본이 계속 항전 의지를 가지고 쿠릴 열도에 계속 원군이랑 물자 투입하면" 버틸 수 있느니 어쩌구 하는 삽소리를 하셨는데, 문제는 그게 가능할 수가 없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일단, 그 질은 차치하고라도 일본은 본토에 병력과 장비를 집중하기는 했습니다. 그건 분명히 사실 맞아요. 병력은 정규군(....꼴에?-_-)만 쳐도 235만에다가 나름 그럭저럭(?) 쓸만한 병기(3식 이후의 중전차라든가)도 본토에 집중시켰고, 항공기도 제법 모아놓은 게 있기는 했죠. 이 1만기 가까운 본토결전용 항공기는 나중에 다 용광로로 갔지만....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군의 상륙에 중점을 두어 대비한 배치였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되죠-_-;;
일본 정부는 거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소련이 적어도 1946년(일소중립조약 기한)까지는 쳐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믿었고, 미군이 설마 알류샨 열도를 거쳐 쳐들어올 가능성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므로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치시마 및 홋카이도 주둔병력은 일부 주요 섬에 배치된 수비대를 제외하고 주력을 빼내 본토 방어를 강화했습니다. 그나마 홋카이도 주둔 5개 사단도 죄다 섬 남해안에 배치되어 있었고요. 그럼 이 병력 다시 북쪽으로 돌리면 된다고요? 님하......뭘로요?-_-;;

대전 전 일본 수송의 주력은 연안해운이었습니다. 섬나라인데다가 원체 길쭉하게 생긴 땅이라 육상교통이 그다지 활성화가 안 됐죠. 문제는 미 해군의 활동과 공군의 기뢰투하 때문에 거의 모든 항구가 폐쇄되기 직전이었고 선박보유량도 심각하게 줄어들어 있었다는 겁니다. 비록 미군이 8월 15일부터 공격을 중단하기는 했지만, 이미 깔아둔 기뢰만 가지고도 항구 봉쇄하고도 남습니다.게다가 연합군 상륙 거부를 위해 일본군 스스로가 깔아둔 기뢰도 걸림돌이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철도수송이 있긴 하지만 폭격 때문에 여기저기 끊어져 있었으니 별 도움이 안 돼요. 게다가 동맹군인 소련군에 대해 일본군이 현지에서의 자위전투 정도가 아니라 본토에서 수송선으로 병력을 실어나를 정도의 저항을 시도한다면 당연히 미국이 개입합니다.

그때 그분이 더 하신 이야기가..."반공무드로 인해 미국이 일본군에 연료를 공급"한다는 둥 어이없는 이야기도 하셨었는데, 냉전의 가능성 운운하는 것도 몇 년 지난 뒤 이야기지 1945년에 벌써 미국이 반공정권 지원으로 돌아서지는 않았거든요. 차라리 영국이 지원하면 했지......아마, 일본이 트루먼 독트린이 나온 1947년까지 계속 소련군과 싸우고 있다면 미국의 지원도 가능할 겁니다. 소련과 미국의 사이가 언제부터 제대로 틀어지기 시작했는지, 베를린 봉쇄가 언제 시작됐는지만 제대로 알아도 베를린 봉쇄를 거론하면서 "베를린 봉쇄를 뚫은 미국이 왜 일본을 안 돕느냐"같은 이야기 못 했을 걸요.

하여튼 뭐, 정리하자면 일본군은 나름대로 마지막으로 벌인 전투를 "멋지게" 끝냈다는 이야기.


참고 :
전투전사(하) - 방어, 육상자위대 후지편수회, 능성출판사, 1977
위키피디아(일) - 占守島の戦い

===============

이건 무려 2008년 9월 21일자 임시저장. 저게 시리즈로 더 나가려다가 말았던 걸로 기억은 하는데....완성본인지 미완성본인지도 기억이 안 나네요. 흐으. 마무리를 보면 일단 마무리지 싶긴 한데...

by 슈타인호프 | 2014/05/16 11:10 | 세계현대(~20XX)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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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4/05/16 11: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메데 at 2014/05/16 20:20
하이고 맙소사, 미국이 일본 지원이라니 이런 미친(...)

대체 누가 무슨 저런 개소리를 한단 말입니까. FDR이나 트루먼이 화형이라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일본은 확실히 조질텐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4/05/17 06:30
비공개//아 그런 거였습니까? 그런;;

메데//옛날 디씨 2대갤에서 아주 활발하게 활동하는 "난늘궁금해", 일명 난Q라는 양반의 주장이었지요...^^
Commented by ㅇㅇ at 2014/05/19 03:38
전투전사. 아버님이 참모과정 이수하시면서 보시던 서적중에 하나로 기억되는데요. 집에 가면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Commented by PKKA at 2015/03/08 22:39
좀 늦게 보고 댓글을 씁니다만 아무레도 소련측 자료를 통한 더 많은 보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http://www.kuriles-history.ru/up/lib/Soviet%20operational%20and%20tactical%20combat%20in%20Manchuria.%201945.%20August%20Storm.%20David%20Glantz.pdf

글랜츠의 이 책의 제10장에서 쿠릴 열도 상륙을 기술하고 있는데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부분을 번역해 보겠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5/03/09 05:07
상호 교차검증이야 필수지만 제게 소련측 자료가 없었던 관계로 말입니다.

번역문 올라오기를 즐겁게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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