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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짧은 단상.

요즘 이마무라씨 덕분인지, 한일관계에 대한 포스팅이 도리어 늘었습니다. 이마무라씨 말마따나 논란거리에 불을 지피는 일이긴 한데, 이 복잡하고도 골치아픈 문제에 대해서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보니 의견을 묻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기가 조금 힘드네요.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결과는 어쩔 수 없었다 치고, 그것이 차라리 대놓고 노골적인 침략과 분쟁의 결과였다면 어땠을까요.

아시겠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일본의 명분은 줄곧 "이웃 국가인 조선의 안정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일본이 나서는 것이라는 논리였습니다. "조선의 자주독립을 지켜주기 위하여" 청나라와 싸워 쫓아내었고 "서양 세력의 침략으로부터 동양을 지키기 위해" 러시아와도 싸웠다는 것이었거든요. 실제로 그러한 명분을 믿은 한국인들도 많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의 경우에도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지지하며 일본의 승리를 기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는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일본에 의한 한국 병합, 즉 경술국치로 이어지게 됩니다. 단순화시켜서 비유를 해 보자면 어려운 사정을 도와주러 온 친구인 척 하더니 어느새 안방을 차고 앉아 나를 노예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배신감이 느껴지지 않는게 이상한 일 아닐까요. 노예 상태에서 풀려난 뒤에도 잊을 수 없는 일이고요.

만약, 일본이 이런 식의 "배신"이 아니라 대놓고 "정복"을 했으면 그에 대한 반감과 복수심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차라리 친구인 척 하던 자에게 배신당했다는 감정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랬으면 차라리 앙금이 더 적지 않았을까요.

여기서 한국을 대할 때 중국과 일본의 차이도 나타납니다. 과거 역사적 관계를 보면 한국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중국의 영향 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에는 일관된 특징 하나가 있었죠. 중국의 각 왕조는 조공책봉체제로 천하를 관리했고, 이에 따라 주변국이 중국에 대해 허리를 숙이고 소국으로서의 위치에 어긋나지 않으면 침공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고구려가 수당과의 전쟁으로 멸망한 것은 까놓고 말해서 중국에 복종하기를 거부한 탓이며, 백제는 고구려 공략의 배후 안정을 위해 덤으로 멸망당한 셈입니다. 백제가 망해야 신라가 당나라 고구려 공략군의 배후지원을 해 줄수 있었으니까요.

그 이외에 거란의 요나라나 몽골의 침공은 한국을 정복하기보다는 고려 왕조를 중국대륙의 한족 왕조를 중심으로 한 책봉체제에서 벗어나게 하여 자신들의 책봉체제에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컸습니다. 고려가 치열하게 저항한 덕이기는 하지만 몽골조차 항복한 고려에 대해서 일부 내정에 대한 간섭은 있었어도 몽골제국에 완전히 통합시킨 직할령으로 만들지는 않았고, 몽골도 하지 못한 조선 국왕의 직접 항복을 받은 청나라조차 조선의 국토는 한 조각도 빼앗지 않았습니다. 즉, 허리를 숙이고 정치적인 제스츄어와 어느 정도의 조공을 바치면 내정의 자유와 국가의 독립성은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 역시 북방민족으로 정복왕조였던 여진의 금나라는 고려가 사대를 수락하자 아예 침공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때는 어땠을까요. 신공황후의 삼한 정벌 따위는 확실한 진실을 알 수 없으니 미지수라 하더라도 두 시기가 남습니다. 임진왜란(분로쿠, 게이조의 역) - 일본분이 오니 이런 것도 일본 용어를 쓸 수 있으면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_-;;; - 당시 일본의 의도는 대놓고 한반도의 "정복"이었습니다. 일제시대 역시 처음부터 일본의 내부적인 주류 의견은 조선 정복, 정한론이었습니다. 일부 권력과 무관한 재야인사나 일선에서 한국인을 대하는 실무자들 중에는 한국을 일본과 같은 정도로 발전시켜 함께 동양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형제관계를 진지하게 꿈꾸는 사람도 물론 있었겠습니다만, 그것이 주류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일본은 한국의 친구인 척 하다가 상전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제2차 한국 침략, 즉 19세기 말부터의 침략도 임진왜란처럼 아예 대놓고 공격한 거였다면 도리어 반감이 적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개화기 한국 지식인들의 인식을 바탕으로 합니다. 당시 민중들 사이에는 임진왜란의 고통이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일본은 당연한 일이고 외국이라면 모조리, 가장 가까운 국가인 중국조차 모조리 싫어하는 배외감정이 만연하고 있었던 것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지식인들 사이에는 달랐습니다. 지식인들은 서양을 본떠 "개혁을 실시하여 근대화를 이루어낸" 일본에 대하여 찬탄과 동경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매우 많았고, 이들은 과거 3백년 전 한국을 일본이 침략했던 일은 기꺼이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결정적으로 배신감을 느끼고 반일로 돌아서게 한 것은 1905년, 1907년, 1910년으로 연이어 이어지는 조약을 통해 한국의 국권이 모조리 일본의 손에 들어가는 꼴을 본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차라리 일본이 처음부터 친구라고 자칭하지 않고 대놓고 한국을 침략했다면 분노와 복수심은 있었을지언정 이와 같은 배신감은 없었겠죠.


...다소 두서없는 글이 되었습니다만 어째 의사가 잘 전달이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by 슈타인호프 | 2013/10/18 09:27 | 한국현대(~20XX) | 트랙백 | 덧글(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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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일화 at 2013/10/18 09:56
말씀하신 논리에 전적으로 찬성입니다.
침략당한 경우에도 감정이 좋지야 않았겠지만, 실력으로 진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자성론도 상당한 목소리를 가졌겠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10/18 10:25
예, 저도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것과 비슷한 실력양성론의 목소리가 있었으니까요.
Commented by 앨런비 at 2013/10/18 11:57
그 일본의 주류는 조선정복이 아닙니다;; 중립국화나 영향권 하가 더 맞다고 봐야죠; 을사조약이 사실상 일본이 계획하에 있었던 최대선에 가깝고. 그것이 1905~1910년 어어어어어...어? 하다가 한일합방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과 일본의 관계는 인도 베트남 아프리카 등 보다는 아일랜드 알자스 로렌 폴란드 등과 비교하는 것이 좋을겁니다. 전통적으로 잘 알았고. 서로 멸시 혹은 동등하게 인식했던 대상이 지배-피지배로 바뀐 것이니까요. 그 외 식민지 상황 또한 그러하고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10/18 12:13
사이고 다카모리 이래 정한론파가 다수 아니었나요?; 물론 죄다 지금 당장 조선을 침공하자는 건 아니었지만요.

서남전쟁으로 사이고파가 퇴장한 뒤에는 일본 정부가 다소 온건한 태도를 취했지만 그전처럼 급하게 당장 정한에 나서자는 게 아니라는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공부를 더 해야겠군요.
Commented by 앨런비 at 2013/10/18 13:03
야마가타 아리토모부터 그 유명한 주권선 이익선에서 조선을 이익선으로 놨죠. 그 이익선이라는 것도 청일정쟁 전까지는 독립국 유지가 중요하다고 봤으며, 주된 목적은 러시아 견제입니다. 러일전쟁에서 과정이야 어이했든 일본이 승리하긴 했고, 조선의 상황이나 일본의 상황이나 꼬여서 맥시멈 통감부에서 스톱할려던 것이 한일합방으로 바뀐 것이죠.

정한론파는 세이난 전쟁으로 날라갔고. 사이고 다카모리도 정한론이 맞냐에 이견은 존재합니다. 조선에 사신으로 가겠다는 것이 말 그대로 그냥 내가 그쪽에서 요구하는 전통식으로 사신 가 보까? 이런 의미가 아니냐는 것이죠. 정설이라고 단정은 뭣하지만 무시하기만은 뭐한 이론입니다. 어차피 세이난 전쟁의 문제가 있습니다만.

일본은 당시 조선을 통치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긴 알았고, 조선도 친러파가 활개치지 않고, 친미-친일-친영이 치우치지 않게 꾸준히 갔으면 러시아 견제용으로 지원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았고요-_-;;

...뭐 전 그래도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것이 조선에게 더 좋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힙니다만, 의외로 일본은 조선을 꼭 식민지로 만들 생각이 적었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10/18 16:35
아아 그렇군요;; 역시 공부를 더 해야겠습니다. 계속 오시는 분들께 의존할 게 아니라 저 스스로 알 수 있도록요.
Commented by ㅇㅇ at 2013/10/18 17:37
그런식으로 따지보고 보면 태평양 전쟁역시 일본이 미국과 처음부터 맞짱뜨자고 계획해서 된건 아니었죠.

한일합방-중일전쟁-태평양전쟁까지 이어지는 걸 보면 통제가 안되서 일이 저질러지는 것을 관리하거나 통제할 생각은 안하고 그냥 그렇게 흘러가도록 방치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즉 엄격한 국가 전략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안에서 칼같은 관리와 통제대신에 그냥 흘러가는 듯이 일이 진행되죠
Commented at 2013/10/18 18:41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10/18 19:03
비공개//당시 책봉체제하의 조선으로서는 그 국서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아예 다른 세상인 유럽의 황제라면 모를까 동아시아 안에서 청나라 황제 이외의 황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죠. 더우기 조선의 군주가 청나라 황제보다 한 단계 낮은 "왕"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 일본의 군주를 청나라와 동격의 "황제"라고 인정해 버리면 조선은 자동적으로 일본보다 격이 낮은 국가가 되어 버리게 됩니다.

도쿠가와 당시의 일본은 동아시아 조공책봉체제에 아예 포함이 되어 있지 않았고, 서양과의 교류를 통해 근대 외교에 대해 알고 있었던 만큼 독일 황제나 러시아 황제가 네덜란드 국왕이나 영국 국왕에 비해 격이 높은 것이 아니듯 청나라의 황제도 조선의 국왕이나 일본의 황제와 다를 것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조선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고, 당연히 메이지 신정부의 외교 공문을 선뜻 접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10/18 19:05
ㅇㅇ//그런 면에서 일본 역시 근대화를 제대로 밟지 못한 후진 제국주의 국가였던 셈입니다.
Commented at 2013/10/18 19:11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10/18 19:23
비공개//모든 사람이나 단체가 실리만을 축으로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실리만을 따졌다면 구스노기 마사시게도 그렇게 죽지 않았을 것이고,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도 그런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았겠지요.
물론 조선의 명분을 중시하는 외교는 중세적인 것이고, 근대 외교 환경에 제때 적응하지 못한 것이 맞습니다. 전세계가 실리적인 면만 따지고 돌아간다면 분쟁도 싸움도 많이 줄어들겠습니다만, 그렇게는 되지 않지요.
Commented at 2013/10/18 19:33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10/18 21:08
정치니까요. 일본 정부 역시 명분을 아주 버리지는 않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 정부 역시 완벽하게 실리에 따라 움직인다면 지금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겁니다.

결국 이건 어느 쪽이 먼저 접느냐 하는 상황의 일종의 치킨 게임이 되어버린 상황입니다.
Commented by ㄱㄱ at 2013/10/18 13:15
중국에 대항할 일본과의 우호 내지 동맹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아 그거 구한말 시절에 했던 이야기의 반복이네.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
라는 반응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음
Commented by 동글동글 바다코끼리 at 2013/10/18 19:03
구 한말의 틀림은, 일본에 쭉 붙어 있으면 좋았는데도, 대청에 붙거나, 러시아에 무심결에 り, 일본에 도착하거나, 유럽을 의지하거나고, 비틀비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한국은 중국과 일미의 사이에 비틀비틀 하고 있다. 전혀 학습하고 있지 않다.
Commented by 로리 at 2013/10/18 13:30
생각해보면 한국 운동권의 반미의식도 5.18 에서 미국의 태도로 이루어진 배신감이러고 생각하면 그럴지도 모루겠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10/18 16:32
ㄱㄱ//역사적인 불신은 해결이 매우 힘들죠;;

로리//저도 그게 크다고 들었습니다.
Commented by ㅇㅇ at 2013/10/18 17:29
그런데 이마무라씨가 누군가요
Commented by 동글동글 바다코끼리 at 2013/10/18 19:01
私です。
Commented at 2013/10/18 17:3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3/10/18 19:10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킹오파 at 2013/10/18 17:33
다 필요없고 역사적인 관계고 뭐고 그런거 보다(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일 수는 없으니까..) 중국에 대항하여 한일 우호 내지 동맹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과연 한국의 국익에 맞다면 그 쪽이 주장하지 않아도 한국이 들것입니다.

문제는 한일 우호의 이득이 중국에 대항하는 손해를 벌충하느냐? 에 초첨을 맞춰야죠.

과거사는 그냥 구실에 불과할뿐...
Commented by 에이브군 at 2013/10/18 17:43
그게 안될 가능성이 무지 무지 높아요...
Commented by muhyang at 2013/10/18 17:56
일본은 그 자체로 스스로를 과거사에서 해방시키지 못하고 있고, 이게 다시 대외적인 충돌로 이어지니까요. 이거 오래 걸릴겁니다.
Commented at 2013/10/18 18:02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muhyang at 2013/10/18 18:38
별로 아닌 것 같네요. 밖에서 봐서는.
Commented at 2013/10/18 18:42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muhyang at 2013/10/18 18:51
착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 한국이 과거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하고 있지 않고
- 일본이 구애받는 과거사는 한국 외에도 얼마든지 있어요. 일차적으로는 1930년대 이후의 전쟁이고.

솔직히 몇번 이야기하고 있는데, 당신 남의 글 똑바로 안읽고 반박이랍시고 하는 거 작작 해두기 바래요.
아무래도 당신 한국어 실력으로는 곤란할 듯.
Commented at 2013/10/18 19:01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muhyang at 2013/10/18 19:24
영토 문제 이야기 아니라니깐. 계속 쿠소레스 써제끼면 당신 본인 문제라고 간주하겠습니다?
덧붙여, 이마무라씨같은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조금만 불평을 들어도 곧 '일본은 희생양' 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곧 일본이 과거지향에서 못 벗어나는 방증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일본어야 잘 쓰고 사니까 걱정 말아요. 나야 일본어라도 상관없지만 그럼 갤러리 (=주로 한국인) 가 못보는 게 문제라서.
Commented by 동글동글 바다코끼리 at 2013/10/18 19:31
일본이 피해자따위,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데 ···.
Commented by muhyang at 2013/10/18 19:36
이번에도 번역이 이상한 듯해서 분명히 해 두지만, 그쪽의 19:01 리플 문장 돌려주는 걸로 알아 두세요.
이하는 할 말 있으면 제 쪽으로 오기 바랍니다.

슈타인호프님/
이마무라씨하고 괜시리 격해진 모습을 슈타인호프님 쪽에 뱉어 놓아서 죄송합니다. 여기서는 이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Commented at 2013/10/18 19:41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10/18 21:05
아닙니다. 제가 쓴 글로 인해서 유쾌하지 못한 일을 겪으시게 되어 제가 미안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10/18 19:13
킹오파//저 역시 중국의 가치보다는 미국의 가치에 공감합니다. 때문에 미국의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의 연합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만, 현재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 힘들겠다고 생각합니다.

muhyang//상호관계에서 어느 일방이 괜찮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요.
Commented at 2013/10/18 19:17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10/18 19:28
"꼬라지"가 씨가 쓰는 번역기로는 "흉한 모습"으로 번역되나 보군요-_-;;

제가 사용한 "돌아가는 꼬라지"라는 표현은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현재 진행되어가는 상황"의 의미입니다.
Commented at 2013/10/18 19:31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10/18 21:03
어느 한편이 상대방의 언어에 완벽히 능통하지 않은 이상 언어는 언제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한국어와 일본어는 유사성이 많아서 번역기의 사용이 용이한 편이죠.
Commented by muhyang at 2013/10/18 22:58
무라야마 담화 이후 일본과 주변국의 과거사 분쟁이 나는 것이 대체로 일본 고위인사의 자극적 언행에서 비롯되는 것이 많고, 다시 한단계 들어가면 일본 보수층의 중일전쟁 및 태평양전쟁 재평가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난징대학살이나 강제징용 부정, 야스쿠니 참배 등으로 이어지지만 기본적으로 일본 입장에서는 국내 문제인 거죠. 국내 문제가 아닌 걸 국내 문제로 착각하는 거지만요. (가령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그나마 낫지만 환빠라든가 ;;;)

저는 이런 언동이 아니면 지금 한일간의 시점은 20년은 전진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at 2013/10/18 19:2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3/10/18 19:30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킹오파 at 2013/10/18 22:47
솔찍히 이마무라의 주장이 뭔지는 관심이 없어 잘 모르겠으나 그는 한국이 일본 보다 중국 중시의 구조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거 같고...
근데 어차피 일본도 한국 보다 중국을 더 중시하는데 왜 그게 불만 사항인거지?
어차피 일본도 중국을 한국보다 훨씬 더 중시하잖아...? 둘다 쌤쌤인데 왜 그렇게 불만을 가질 상황인가요?

누군가를 중시하는건 국익에 누가 더 큰 영향을 주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건데 왜 그리 불만을 가지는지?

그냥 한국에 그걸 바라지 말고 그냥 지금처럼 일본은 미국에 all-in을 하는게 훨씬 더 낫다. 일본 입장에서도 시간 낭비 없고 깔끔한데...

말하자면 한-미-일 동맹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미-일 동맹을 지금보다 공고히 다지는게 일본에게는 더 이득이다....
어차피 일본을 지켜줄수 있고 일본에 필수적인건 한-일 동맹이 아니다.... 중요한것은 미-일 동맹이잖아.

당신의 주장은 한국은 언제든 중국의 영향권에 복속될 수 있다고 보는거 같은데(하긴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게 문제..;;;) 왜 그런 나라와 동맹을 하려 하는가?
언제 중국의 일원 or 중국 영향권에 될 나라와 무슨 동맹을 맺는다고 경제적 관계만 취하면 되지...
언제고 적국의 편이 될 위험성이 있는 나라와 동맹을 맺는게 이상한 거지.. 안 그래요?

내가 해줄 말은 한-일 동맹은 무리이다. 하지만 한-일 경제 교류나 그런건 가능하다... 이거임..

참고로 내가 일본인이라면 한-일 동맹의 가능성을 없다고 보고 한-미-일 동맹보다는 당연히 미-일 동맹에 all-in을 하라고 할것이다.
일단 역사적인건 둘째치고 한국은 일본이 원하는 역할을 할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Commented by ㅇㅇ at 2013/10/19 01:44
그걸 일본이 몰라서 안하는건 아니죠.문제는 미국이 자꾸 한국하고 협력하라고 일본의 옆구리를 찌른단 말입니다.그러니 일단 행동으로 보여줘야하는거죠.

Commented by JOSH at 2013/10/19 03:16
종종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기 논리 중심적인 일본인입니다.. -,-;
한국에서는 기독교 원리주의자 와 비슷하지요.

'왜 이 좋고 당연한 신의 구원을 거부하는거지?
너희는 교화되어야 하고 신에게 복종해야해.'
Commented by 킹오파 at 2013/10/19 12:08
oo// 미국이 부추긴다면 싫어도 제스처를 취해야 하니 일본 입장에서는 곤욕이고 그렇다면 이마무라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사실 한-일 동맹은 현실적으로 무리인데 미국이 강제를 한다면 이마무라 역시 싫증이 날수 밖에 없겠죠.
Commented by KittyHawk at 2013/10/19 23:20
그냥 미국이 한일에 대해 개별 동맹을 맺는 선에서 만족하고 그때그때 유기적 협조를 하는 정도로 하면 될 텐데 굳이 억지로 한일에 손을 잡으라고 할 필요는 있을까 싶더군요.
Commented by 서아무개 at 2013/10/20 13:58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김옥균과 일본의 사카모토 료마가 만났으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하는 망상도 해봅니다.
Commented by 갈천 at 2013/11/28 08:52
복거일 선생은 국제질서측면에서 일본의 조선침략 근본적인 뿌리는 청나라 이홍장의 전략적 판단미스 때문이라고 합니다.(기억이 아물하네..복선생이었는지 아닌지)

일본이 류규를 병합한데에 충격을 받아서, 청나라 이홍장은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조공국이던 조선과 베트남을 서구세계의 종속국처럼 강압적으로 지배했습니다.

원래 동아시아에서 천자가 다스리는 중국과 제후국인 조공국 외교관계는 서구세계의 종주국과 종속국처럼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중국이 제후국을 움직이는 힘은 무력이 아닌 유교의 도덕적 명분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때 중국은 이미 서구문명 앞에서 수차례 무릎을 꿇었습니다. 1,2차 아편전쟁...태평천국의 난...중국이 중심이 되는 세계는 이제 다시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상처입은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원세개를 앞세워 조선을 무력으로 강점하고 지배했습니다. 그건 도덕적 명분을 중심으로 작동되던 중국과 조공국,제후국 종래의 전통적인 동아시아 국제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청나라가 조선을 지배하려는 판단이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조선뿐 아니라 중국 자신도 더 깊은 패배와 고통의 긴수렁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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