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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친위대 복무 경력이 들통난 영감님 하나 추가.
나치 친위부대 출신 94세 노인에 까맣게 속은 미국(조선일보)

친위대 출신으로 과거를 세탁한 사람은 적어도 수만 명 이상일 것이고 그중 미국에 정주한 사람만 수천 명은 될 테니 그 행위 자체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은 없음. 고로 본 포스트에서는 과연 저 마이클 카콕이라는 영감님이 전범으로 간주될 만한 일을 했을까 하는 것.

일단 조선일보 기사 내에서 참고할 수 있는 대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 제2차 대전 당시 나치군 장교이자 우크라이나 방위부대 창립 부대원이었으며 나치 SS부대인 갈리시아부대원으로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복무했다.

- 전문가들은 “카콕 정도의 지위에 있던 사람은 민간인 학살에 개입했다는 증거를 찾는 일이 어렵지 않아 기소가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일단 저 영감님의 확실한 본명 확인. 구글에서 검색한 영문 기사를 보니 "Michael Karkoc"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소속된 부대"우크라이나 방위군"은 영문 표기로는 "Ukrainian Self Defense Legion"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배속된 "갈리시아 부대"는 제 생각으로는 14무장SS척탄병 사단 "갈리치엔"인 것 같네요.


14SS 사단의 정식 마크. 보통은 아래의 흑백 버전을 더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대는 초기에는 SS저격사단이라고 불리다가 루테니안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45년 3월에는 우크라이나 제1사단으로 개칭되었습니다. 구성 병력은 29/30/31SS 척탄병연대, 정찰대대, 돌격포대대, 공병대대, 통신대대, SS경보병대대 등으로 편성되어 있었고 주 전역은 동부전선이었죠.

이 부대는 우크라이나인 중에서도 2차 대전 이전에는 폴란드 영토였던 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 갈리치아 출신자를 주 구성원으로 하여 1943년 4월부터 편성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아리안 인종에 더 가깝다는 이유였고, 슬라브계인 순수 우크라이나인은 받지 말라는 히믈러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인 부대가 편성된다는 것은 우크라이나 독립의 전조라고 보고 이 부대의 편성을 반긴 지원자가 상당히 많았다고 하는군요. 위키에 의하면 모병한 인원이 무려 81,999명....-__

이 숫자가 다 자원했다고 하지만 그 자원의 진실성은 하느님만이 아시겠죠. 자원자 수를 늘이기 위해 신장 제한도 165cm에서 161cm로 완화했다고 하고, 최종적으로 입대한 자원자의 수는 13,000명 정도라고 합니다(일본어 위키는 11,578명). 장교로는 독일인과 네덜란드인, 우크라이나인 등이 있었으며 우크라이나인 장교 중에는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 소속과 폴란드군 예비역 장교 출신지가 섞여 있었다고 하는군요.

1944년 2월부터 작전에 들어간 이 사단은 경험은 부족해도 장비는 좋은 편이었다고 하며, 발터 모델 원수 휘하에서 대빨치산 전투에 종사했습니다. 그리고 이해 여름의 바그라치온 공세를 맞아 박살이 났지요. 철수에 성공한 생존자는 3천 명 가량으로, 이 부대를 재편성한 독일군은 이들을 1944년 9월에 발생한 슬로바키아 반독 봉기 진압에 투입했습니다. 그 뒤에는 1945년 2월부터 3월까지 슬로베니아-오스트리아 국경에서 유고슬라비아 빨치산을 소탕하고 소련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맡았다가 4월에 대규모 병력 보충을 받아 오스트리아로 들어온 소련군과 격전을 벌여 큰 손실을 입습니다. 그리고 5월 10일에 영국군과 미군에게 항복하면서 이들의 전쟁은 끝을 맺지요.

이들에게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항복한 뒤 이탈리아로 이송된 이 사단 병사들이 자유 폴란드군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들을 전쟁 전 폴란드 국민으로 간주한 자유폴란드군 사령관 안데르스 장군은 이들의 소련 송환을 막기 위해 나섰고, 이들이 소련으로 가면 겪게 될 뻔한 운명을 알고 있던 바티칸에서도 송환을 막으려고 나섰습니다. 사단 병력 중 176명은 아예 안데르스의 폴란드 2군단에 "입대"를 했고, 7,100명에 달하는 갈리치엔 사단의 투항병들은 1947년에 영국과 캐나다로 이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명단은 영국 정부에 의해 봉인되었으며 각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의 반공 분위기를 탄 덕이라고 봐야죠.


자, 그러면 오늘의 주제인 전쟁범죄 문제는 어떨까요.


일단 이 부대는 전쟁 중후반기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편성되었으며, 지원자들도 나치즘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독립이라는 대의 때문에 참가한 것이므로 이들에 대한 나치화 시도는 도리어 거부감을 사서 전력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대에 대한 나치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도리어 우크라이나 종교계의 요구로 이들 부대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한 군종 사제까지 배치되었습니다. 또한 토텐코프 부대처럼 수용소 관리를 맡은 것도 아니므로 부대 차원에서 그런 류의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주로 종사한 임무가 후방의 빨치산토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대민학살 등의 의혹은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위키에도 세 건의 학살 사건이 올라와 있어요. 게다가 이 마이클 카콕 영감님은 이 사단의 중대 지휘관이었다고 하는데, 바르샤바 봉기 진압에 투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전투에서 과연 그의 중대원들이 전투원만 상대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위 기사에서 폴란드 정부가 "카콕의 전쟁 범죄 기록을 제공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 사건에 참여했기 때문일 겁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영감님이 1943년의 모병에서 입대한 사람도 아니라는 겁니다. 이 영감님은 그 전에 이미 우크라이나 방위군 소속으로 독일군 편에 선 상태였고, 독일군이 조직한 이런 지역 치안유지 부대들은 독소전 초기 유대인 박해에 아주 적극적으로 참가했습니다. 독일군 부대가 유대인들을 체포해 집결시키면 이 치안부대 대원들이 사살하는 식으로 업무 분장을 이룰 정도였죠. 왜 독일군이 쏘지 않았냐고요?

총살 집행을 맡은 독일군 병사들의 정신이 맛이 가기 시작했거든요-__



바르샤바 봉기 진압 참가에 사단 편성 전 방위군 복무 경력.......저 영감님, 털면 분명히 걸립니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이 부대의 전쟁범죄가 확실히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증거를 지금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증거가 없더라도 저 영감님이 우크라이나 유대인 학살이나 빨치산 소탕 과정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또는 바르샤바 봉기에서의 폴란드 민간인 학살 등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습니다. 앞으로 후속 뉴스가 나올지 한번 기다려 봐야겠네요.




by 슈타인호프 | 2013/06/16 22:30 | 세계현대(~20XX) | 트랙백 | 핑백(1)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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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deokbusin의 잡설 : .. at 2013/06/17 11:31

... http://nestofpnix.egloos.com/4808900조선일보 기사나 슈타인호프님의 관련 포스팅에서 언급이 되지는 않았지만 카자크 인들의 경우 독일군에 소속하여 전투에 종사한 소비에트계 카 ... more

Commented by Ladcin at 2013/06/16 22:37
이제 연방헌법수호청에..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06/16 23:00
독일인도 아니었고 지금 독일에 사는 것도 아니니 독일 법정에 서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일단 독일 정부에서는 기소를 할 수 있을지 조사해 보겠다고는 하지만 뭐 모르죠.
Commented by KittyHawk at 2013/06/17 00:13
2차 대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군요...
Commented by 고르곤 at 2013/06/17 12:23
뭐 일본도 있는걸요.
Commented at 2013/06/17 00: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누군가의친구 at 2013/06/17 00:48
이제 결말을 기다려야겠습니다.
Commented by 역사관심 at 2013/06/17 13:23
Commented by 유휴~~ at 2013/11/06 20:31
절대 대다수의 친위대 출신들은 아무 잘못없는 무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친위대 중에서 히틀러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뭉친 나치 광신도들은
2차대전 초반에만 존재했습니다. 이들이 주로 전쟁 범죄를 많이 저질렀죠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대부분의 초반기 친위대원들은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고 은퇴해서 모두 사라지고
전쟁 후반기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로 교체되었습니다.

또 전쟁 후반기에 친위대 규모를 늘리기 위해 아무나 닥치는대로 친위대원으로 끌어들여서
억지로 친위대로 끌려온 사람이 주로 많았습니다.

문제는 전쟁이 끝나고 아무 잘못없거나 억지로 끌려왔던 후반기 친위대원들이
모두 나치 광신도로 오해받고 초반기 친위대원들이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누명을 쓰게 되지요

그렇게 해서 전쟁이 끝나고도 모두 포로수용소에서 학대로 죽어갑니다.
살아남은 사람도 평생을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숨어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친위대원을 욕하지 맙시다.
Commented by ss돌굑 at 2014/12/16 10:00
그러나 친위대원을 욕하지 맙시다?
"그러나" 가 아니라 "그러므로" 라는 어휘가 들어가야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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