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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항복의사는 8월 10일 경에 이미 세계 만방이 들으라고 단파로 내보냈다. 이날 오키나와의 미군도 그 소식을 듣고 환호했을 정도니까. 이 사실은 주한미군사 첫 부분에 나온다. 번역이 되어 있지 않아 보기는 좀 어렵겠지만."
일본 정부의 포츠담 선언 수락을 통한 종전 결정이 8월 10일 새벽 0400에 내려진 건 맞습니다. 스위스 및 스웨덴 외교 라인을 통해서 미국, 영국, 중국, 소련 등에 전달이 됐지요. 그와 별개로 일본 주재 소련대사가 선전포고를 전달하러 도고 시게노리 외상을 찾아왔을 때도 그 이야기를 했고, 10일 밤에는 NHK와 도메이 통신을 통한 전파 발송으로도 그 이야기가 나갔습니다. 10일 밤, 외무차관의 요청에 의한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그날 포츠담 선언 수락 결정을 하고 단파 방송을 했다는 건 한국어로 된 역사책에도 다 나오는 이야긴데...번역되지 않았다는 말을 뭐하러 굳이 강조하는지 원. 이게 그렇게 비밀스런 자료일까요? 아, 오키나와의 미군이 환호했다는 이야기 정도는 그 "번역되지 않은" 책에만 나오는 묘사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여간 이에 대한 연합국 측의 답신은 11일에 있었습니다. 정식 문서의 접수는 13일에 이루어졌지만, 12일에는 일본 정부가 이미 수락 결정을 내리고 있었죠. 문제는 이날까지도 군부를 중심으로 한 매파는 무조건 항복에 반대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군부가 10일의 선언에 동의했던 건 연합군의 최종적인 조건 제시를 보려는 의도였던 거죠. 연합군의 무조건 항복 요구를 확인한 군 수뇌부는 "국체호지"라는 최소한의 조건부 항복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더 싸워야 한다고 버텼고, 이 문제로 인한 양측의 싸움은 14일 낮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날 열린 최후의 어전회의에서 포츠담 선언의 수락과 무조건 항복이 최종적으로 결정이 됩니다. 이날까지, 일본"군"은 항복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자, 10일의 일본 방송에 미군 병사들이 환호했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것이 전쟁이 사실상 끝났다는 증거는 되지 않습니다. 연합군은 13일에 "일본이 협상하는 척 지연 전술을 쓰고 있다"며 비난하는 방송을 내보냈고 실제 전투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B29 무리는 13일 밤에도 폭탄을 퍼부었고 일본군의 가미가제도 계속 출격하고 있었죠. 일본군 항공대에 출격 금지 명령이 내려진 것은 14일부터의 일입니다. 15일에도 꽤 출격이 있었지만 뭐 그야 자살적인 발악인 셈이니 중요하지 않고. 그렇다면 과연 이 결정으로 관동군을 비롯한 전 일본군의 저항 의지가 사라지게 되었을까요. "8월 10일 이후 각 부대에 항복 명령이 전달되기 시작했고, 일부 광신도들이 명령 수령을 거부했지만 대부분의 일본 관동군 고위 지휘관들이 전쟁이 벌어졌을 때 열심히 싸우려고 했을 리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일본군 부대들은 그냥 후퇴하다가 항복소식을 들었다." 자 여러분, 군부의 동의를 받아 일본이 최종적으로 항복 결정을 내린 것은 14일입니다. 그 이전까지 항복은 결정되지 않았어요. 아 물론 "어차피 진 전쟁"이니까 항전을 포기하고 도망간 대가리들이 있긴 했죠. 부하고 민간인이고 다 버리고 지 가족들만 챙긴 군민 대가리들이 말입니다. 그런데 있잖습니까. 그 사실을 과연 전 일본군이 알고 있었을까요? 관동군 고위 지휘관들이 일제히 도망친 거야 거짓이 아니죠. 이미 몇 분이 올려 주셨듯 대가리들은 지들 가족만 데리고 도망쳤고 밑엣놈들도 사정을 아는 놈들은 민간인을 버리고 지들 가족만 데리고 튀었습니다. 그러면서 전선에 있는 전방부대는 그대로 두고 도망갔죠. 하지만 이 시점에서도 정식 명령 계통을 통해 대본영의 항복 지시가 내려온 게 아닙니다. 이미 말했지만 정식 항복 명령은 14일에야 내려갔고 현지에서 집행된 것은 통신이나 항복 교섭 등의 문제로 인해 대개 그보다도 며칠씩 흐른 뒤의 일이었습니다. 일본군의 중하급 지휘관들은 항복 지시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소련군이 밀려오고 상부와의 통신이 끊기자 각자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선택지는 전사, 항복, 자살, 도주의 네 가지 뿐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전사를 선택한 자들은 소련군과 싸웠고 그 결과가 9만에 달하는 양측의 사상자입니다. 소련군은 무주공산을 달리기만 한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그분 주장으로 "일본 측 관측에 따르면 소련에게는 이틀 분 이상의 연료가 없었다"는 것도 있었죠 아마? 정말 그랬다면 뭔 재주로 9월까지 그 거리를 달렸는지 원. 그리고 항복이 정말로 최종적으로 결정된 뒤라고 싸우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제가 며칠 전 간단히 언급했던 점수도 공방전의 사례가 있겠네요. 쿠릴 열도의 최북단인 점수도(슈무슈)를 지키던 일본 수비대는 전쟁 끝났으니 집에 가자고 장비 파기하고, 본토로 도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련군이 쳐들어오자 소련군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로 끌려가기 싫었던 이들은 항전합니다. 그 결과 이 코딱지만한 섬에서만 3천 명에 달하는 소련군 사상자가 났다고 알려져 있죠-_-; 아마 이것도 그분께서는 "명령 수령을 거부한 일부 광신도"의 범주에 넣으실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어떤 자가 열흘 사이에 양군 12만이 증발했다고 하는데, 어디서 이런 숫자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전쟁이 시작되서 항복선언 나온지 하루 정도인데, 핵이라도 썼다는 얘기인가?" 라는 말에 이르러서는 웃을 수밖에 없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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