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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소전 개전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이 사실은 웬만한 사람 다 아는 상식이었는데... 소련은 일본이 사실상 항복한 다음에 참전했다는 점. 그러니 소련군은 거의 일본군과 전투를 치르지 않고 진격할 수 있었다. 청진 같은 곳에서 소규모 접전이 일어났던 것이 오히려 소련군에도 의외로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이 발언에 대해서는 이미 다룬 바 있으니 패스. "거의 전투를 치르지 않은" 소련군과 일본군이 어찌하여 9만 명에 달하는 전사자를 냈을지 심히 궁금해지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전 전선에 걸쳐 소련군은 무너지는 일본군을 그저 주워담으며 전진했다, 그 말씀인 거죠? 일본군은 소련군이 나타나면 그저 항복을 받아 줍시사고 손을 들고요?



"이 사실만 알고 보면 소련이 서둘러 참전한 이유는 전력에 대한 자신감이나 기습효과 같은 것과 아무 상관없다는 점 알 수 있다. 자기들이 참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이 항복해버리면 미국에게서 보장받기로 한 이권 날라가니까. 미국 측에서도 내심 소련이 참전하기 전에 전쟁이 끝나기 바랐다는 점은 지들 패거리 입에서도 나왔으니..."

여기서 문제의 "이권 보장"을 해준 얄타 회담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봅시다.

소련의 대일전 참전에 대한 보상
- 러일 전쟁으로 일본이 제정 러시아에서 빼앗아간 남부 사할린을 소련에게 넘긴다.
- 일본과 소련 사이의 소유권 논란이 있었고 일본이 차지한 쿠릴 열도를 소련에게 넘긴다.
- 제정 러시아가 가지고 있던 뤼순의 조차권을 소련에게 인정한다.
- 만주 철도에 대한 중국과 소련의 공동 운영을 보장한다.
- 그 대신 소련은 독일이 항복한 90일 이내에 일본에 선전포고한다.


독일이 정식으로 무조건 항복한 것, 영어로 하자면 V-E day는 5월 8일입니다. 하지만 소련에서는 소련 대표가 정식으로 참가한 베를린에서의 항복 조인식이 9일이었기 때문에 5월 9일을 대독 승전 기념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5월 9일부터 90일을 셈해 보면...


5월에 남는 날 : 21일
6월에 남는 날 : 30일
7월에 남는 날 : 31일
8월에 남는 날 : 8일

......네! 8월 8일이 바로 5월 9일에서 정확히 90일이 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 8월 8일이 모스크바 시간이라는 갓을 감안하면 현지 사정에 맞춰 개시 시간을 조금 조정하는 것쯤은 못할 게 없는 일이죠. 방어가 가장 허술하고 적 수비대가 방심하고 있을 자정에 공격을 개시하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그 시점에 하필 비가 온다고요? 그거 더 잘 됐네요.

이쪽 탱크 소리가 비에 묻히잖아요.


어차피 소련 전차병들은 러시아의 라스푸티차를 알고 있습니다. 8월의 만주에 아무리 비가 온다고 해야 해빙기나 가을의 라스푸티차와는 비교도 안 됩니다. 비가 소련군 진격에 치명적인 장애물이 될 일 같은 거는 없었다는 이야기죠. 좀 귀찮기야 했겠습니다만.


그리고 앞 포스팅에서 비공개로 말슴해 주신 분도 계셨지만, 저런 식으로 "숟가락만 얹은 소련"이라는 것도 과거 냉전 시대 교육의 산물입니다. 소련이 한 것도 없이 욕심만 차렸다는 것은 일본 격파에 있어서 적대진영 국가인 소련의 역할을 폄하하기 위해서 "소련은 다 망한 일본군대를 공격하는 시늉만 내고 공으로 이권을 챙겼다"고 한 것이고, 그래서 "한 세대 전까지 웬만한 사람들의 상식"이 된 겁니다. 오늘날은 더 이상 소련도 없고, 러시아는 과거 구소련 같은 적대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대일전에서 소련군의 약할 같은 것을 예전처럼 노골적으로 정부가, 학계가 나서서 폄하하지 않는 겁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과거 정권의 반공적인 교육"이 잘못된 지식을 퍼뜨려서 오늘날의 잘못된 인식이 형성되었다고 설파하시는 분께서 그 전쟁을 일어나게 만든 배경 중 하나인 대전 말 소련의 역할에 대해서는 "과거 정권의 반공적인 교육"과 똑같은 시각을 보여주고 계신다는 사실이요.

자아,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 한번 기다려 보겠습니다. 덕분에 안 하던 2차대전 포스팅이 매일 이어지네요. 내용은 상식 수준이라 별 영양가는 전혀 없습니다만, 그냥 글 쓰는 습관 유지하게 되는 것으로 다행이다 여기고 있습니다. 저기 아저씨 원고는여...? 닥쳐






by 슈타인호프 | 2013/03/19 08:16 | 세계현대(~20XX) | 트랙백 | 핑백(1)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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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유독성푸딩 at 2013/03/19 08:28
소련은 어떻게서든 8월 8일까지는 선전포고를 해야했군요.
혹시 얄타회담 내용 자체는 일본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나요?
만약 알았다면 얘들이 소련에도 대비를 어느 정도 했을...아니, 생각해보니 그럴 여력이나 있었을런지(...)
Commented by 포크의 헉헉 at 2013/03/19 13:27
얄타 회담 자체는 영미소 삼국 고위 지휘관들은 알고 있었지만 내용이 정식으로 공표된 적은 없죠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13/03/19 08:33
신동우 화백의 유명한 한국사 만화 시리즈에서도 해방-한국전쟁 부분에서 그렇게 써놨습니다. 게다가 북한에 진주하는 소련군을 그린 대목은 배경화면부터 어두침침하고 그런데 인천으로 진주하는 미군파트는 톤부터가 밝아!!!!

소련으로 망명한 임은-이 양반 본명은 맨날 까먹어-씨가 쓴 김일성 평전에서 "만주에서 그렇게 싸운 사령관이하 소련군의 공을 깡그리 무시하고 김일성 개인의 공적으로 돌리는 게 가당키나 한가!"하고 일갈하고 있는데 그 대목에서 "아니 소련이 뭐 한게 있다고? 역시 북한 정치가 출신이라 이렇게 썼구만."이라고 그냥 넘어갔는데 나중에 이래저래 공부하고 나니 그게 아니었더만요.
Commented by 이준님 at 2013/03/19 13:51
이상조일겁니다.

덧: 해전사(해방전후사의 인식)에서는 아예 중앙정보부에서 만든 가짜라고 했습니다 ㅠㅠ

임은의 김일성 평전은 거꾸로 "김일성의 독립운동"을 서술한 죄로 중앙정보부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금서로 지정했습니다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13/03/19 15:34
그런데 금서목록에서 꽤나 일찌감치 해금된 거 같던데요. 괴승 전대갈 거사 시절에 이미 책장에 버젓이 꽂혀있었으니...
Commented by 이준님 at 2013/03/19 17:43
일본에서 나왔을때가 박정희때 타이프(!)+ 복사본 해적판으로 돌때가 70년대. 한국에서 나름 번역판이 나온게 83년입니다

그 83년판도 빨간 도장 먹였지요

이걸 제가 어떻게 아냐 하면 83년판 앞에 "기관 명의의 빨간 금서 도장"이 찍힌 판이 모교 도서관에 진열되어 있거든요.

덧: 기관에서 금서 목록 먹였음에도 서점에 돌던게 꽤 많았죠 ㅎㅎㅎ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13/03/19 19:23
집에 있는 게 분명 83년판인데 그딴 거 읍다! 하고 아주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 말임다^^;;;. 다시 후벼봐야겠군요.

Commented by 명림어수 at 2013/03/19 09:12
제가 80년대 받았던 교련교육 에서도
저위에 적으신 것과 같은 내용을 교육받았습니다.
미국이 태평양에서 고생고생하는데,
매정하게도 딱 90일 맞춰서 참전했다고요.
누가 역사상식이 부족한건지...
Commented by 누군가의친구 at 2013/03/19 14:53
방금전 근거라고 든 이완범의 학사논문을 확인하여 대충 읽어봤는데...


"결론: 오히려 이희진 디스."

시간이 나면 자세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유에Yue at 2013/03/19 22:08
아니, 그건 박사논문일텐데요.
Commented by 누군가의친구 at 2013/03/19 23:34
이런 오타냈군요. 학위논문이라고 쓰다가 학사로 오타내버렸습니다.(...) 정확히는 말씀하신데로 박사논문 맞습니다.
Commented by 곰돌군 at 2013/03/19 18:16
반공교육을 부정하겠다고 나선 인간이 반공 교육시절의 상식을 들먹이는 꼴이군요.

어릿광대 같은놈.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03/19 21:01
유독성푸딩//그게 공개됐으면 일본은 뒤집어졌겠죠.

위장효과//사실 그게 한두 해 된 책이 아니니 말입니다.

명림어수//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친구//그게 또 학사논문이었습니까? 어이구야.

곰돌군//어처구니가 없죠.
Commented by 누군가의친구 at 2013/03/19 23:35
위에 적었지만 학위논문이라고 쓰다가 학사로 오타내버렸습니다.(...)
Commented by 녹두 at 2013/03/20 07:54
2차대전을 하나도 모르는 저에게는 좋은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03/21 06:5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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