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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수류탄으로 전차 6대를 잡은 어느 용자.(추가부분 필독)

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 변규영(卞圭暎, 1924~1988) 예비역 중령. 전쟁기념관 소장 초상화.
(사진출처 : http://ki.warmemo.co.kr:8101/warmemoimage/625HM00055/0055.JPG)



한국전쟁의 호쾌한 무용담 하나.

인민군의 9월 대공세가 시작된 9월 초 낙동강 전선, 그동안 들어온 미군의 지원으로 상황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국군의 입장에서 인민군의 전차는 상당한 위협이었습니다. 특히 야간에는 항공지원이 곤란하기 때문에 상대하기 더 힘들었죠. 그런데 영천전선에서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집니다.

9월 4일 새벽, 6사단 19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장 변규영 소위는 새벽 1시에 보병의 엄호도 받지 않고 헤드라이트를 켠 채 신령고갯길을 올라오는 10여 대의 전차를 보고 벌벌 떠는 소대원들을 보자 화가 치밀었습니다. 군수처 근무라 이제까지 전차를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이제까지 사단이 전차 때문에 치른 곤욕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판이었으니까요. 변 소위는 군수처 상사로 있다가 8월 30일자로 현지임관, 소위를 달고 소대장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분노와 함께 호승심이 솟아난 변 소위는 내가 전차를 한번 잡아보겠다고 부하인 일등중사 둘(졸병들은 아무래도 겁을 먹어서인 듯)을 거느리고 매복을 나갔습니다. "전차에는 나 혼자 기어오를 테니 너희는 내게 수류탄을 공급해라. 혹시 내가 죽거든 결혼한지 6개월 된 내 마누라에게 제삿날이나 알려다오."라고 당부하고 말이죠. 그리고 카빈과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숨어 있는 세 사람 앞에 인민군 전차가 마침내 나타나기는 했습니다.


무려 14대.


당시 변 소위가 준비한 무기는 수류탄 뿐이었기 때문에 전차 외부에 던져서는 별 소용이 없고 안에 집어넣어야 제대로 효과가 있었습니다만, 그러려면 일단 전차에 올라탈 필요가 있었죠. 헌데 움직이는 전차에 올라탄다는 건 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대수가 14대 씩이나 되니...


이렇게 구경만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선두 전차 앞에서 폭탄이 터졌습니다!!


혹시 지뢰로 생각하실 분이 많지 싶은데 이건 대전차지뢰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걸 가리켜 도로대화구(道路大火口, Road Crater)라고 하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폭약으로 도로에 구덩이를 파서 적의 차량이 통과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때는 주변에 지뢰를 깔아서 도로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게 통상적인데, 이때는 길이 워낙 외길이라 별도의 처치는 없었던 듯 합니다.

공병대가 이걸 설치해 둔 덕분에 5미터 직경의 구덩이가 파지고 선두 전차가 처박히면서 전차대의 전진은 멈췄습니다. 그리고 이때 갑자기...


도로대화구에서 300m 떨어진 다리가 8번째 전차가 건너는 중에 폭파됐습니다!!!


공병대가 다리에 폭약을 설치해 둔 게 터진 거죠. 당연히 8번 전차는 강물 속으로 첨벙.


결국 상황은 이렇게 되었고......



2번부터 7번까지 6대의 전차는 그대로 갇혔고,
나머지 9번부터 14번까지 여섯 대의 전차는 그대로 반전, 뺑소니를 쳤습니다


꼼짝 못하게 된 북한군 전차들을 보고 오호라 싶어진 세 특공대원은 일단 앞에 있는 전차 한 대(정확히 어느 차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구덩이에 처박힌 전차의 승무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의 승무원들이 기어나오는 것을 카빈으로 사살했습니다. 그리고 변 소위는 다음 전차에 올라타서는 뚜껑(...)을 두들기면서 외쳤죠.

"야, 빨리 문 열어!"

..........인민군들이 어떻게 했게요?

"옙, 열겠습니다."

자, 그럼 변 소위가 그 뒤에 한 일은?

"그래, 옛다 수류탄이다."


이후 반복



마지막 한 대에서는 전차병들이 눈치를 채고 안에서 기관총을 쏘면서 저항했는데, 일단 피했다가 다시 올라가서 "니들만 남았는데, 항복하지?" 하고 권유했더니 장교 하나와 사병 4며잉 손을 들고 나왔다고 합니다. 이때쯤 날이 밝았는데, 고개를 들어 보니 사단장 김종오 대령, 연대장 김익렬 중령, 미군 고문관 등등이 고개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더랍니다. 이로써 공병대가 설치한 폭탄에 잡힌 두 대 말고도 혼자 손으로 전차 5대를 파괴하고 1대를 생포하는 대전과를 올린 변규영 소위는 소위 임관 1주일만에 중위로 특진하고 금성을지무공훈장(수여는 1950.12.30), 상금 50만 환을 받았습니다.


적 전차를 잡은 공으로 수여받은 훈장을 패용한 변규영 예비역 중령
(사진출처 : 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news/20010904/4-8-2.jpg)



하지만 변 소위는 이어진 영천전투에서 적 포탄에 오른쪽 다리를 잃고 말았으며, 치료 후에도 계속 군에 복무하다가 경남지구 병사구사령부 병무과 병무과장 보좌관을 끝으로 1959년 4월 30일자로 예비역에 편입되었습니다. 26세 연하인 막내여동생(변 소위는 장남)의 회고에 의하면, 큰오빠는 늘 전쟁의 악몽으로 식은땀에 흠뻑 젖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나라를 구한 전쟁영웅이자 이달의 호국인물(2001년 9월)로 뽑히기도 한 오빠를 이해하고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어릴 때는 알고 싶지도 않고 싫기만 했다...고 하네요(태백산맥 번역자 "전쟁영웅 오빠와 화해하고 싶다", 데일리NK).

더불어서 여동생의 다른 인터뷰(“‘태백산맥’ 보고 프랑스 지성인들이 부끄러워했다”, 통일뉴스...아놔, 내가 여기를 내용 때문에 링크할 날이 오는구나-_-;;;)에서 본 건데, 당시 영천전투에서 인민군 공세의 한 축을 담당했던 북한군 15사단장 박성철 소장(훗날 북한 부수상)이 바로 변 소위의 이모부였다고 합니다;;; 친이모인지 사촌이모인지 그냥 이모뻘이라는건지는 모르겠는데...다행히 15사단의 목표는 국군 6사단이 아닌 8사단이었고 6사단은 북한군 8사단과 싸웠으니 가족간에 얽히지 않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9월 4일자로 박성철 소장은 해임되었고 말이죠.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한 가지 유념하실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제가 옮긴 이 이야기가 전적으로 변규영 소위 당사자의 회고를 그대로 옮긴 거라는 점입니다. 현재 인터넷에 돌고 있는 변규영 소위의 무용담은 대개가 6.25전쟁기념사업회 측의 기록 내용(변규영 중령)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호국용사 100선>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요.

제가 옮긴 변규영 중령 본인의 회고와 전쟁기념사업회(이하 기사회)의 기록( = 호국용사 100선)에서는 여러 군데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1. 출동 계기 : 변 중령 본인은 스스로의 의지로 출동했다고 하나, 기사회 기록은 사단장의 전차 공격 명령을 받은 연대장이 대대장에게 명령했고 대대장은 예하 장교들을 집결시켜 자원자를 선발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중 1중대 3소대장(소대 번호도 달라요) 변 소위가 자원했다는 거죠.

* 윤민혁님이 리플로 달아주셨는데, 인터넷에 공개된 육군 공간사에서는 대전차 특공 지시가 사단장이 아닌 대대장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2. 전차 대수 : 변 소위는 무작정 기다리다가 14대의 전차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사회 기록은 사단장 김종오 대령이 "8대의 적 전차를 파괴하라"는 명확한 명령을 내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3. 특공대 구성 : 변 소위는 임의로 소대원 두 명을 선발했다고 했으나, 기사회 기록은 "중대에서 5명"을 선발했다고 합니다. 또한 무장에 있어서도 변 소위는 카빈총과 수류탄만 이야기했는데, 기사회 기록은 각자 소지한 수류탄 2발과 폭약(성능 및 형태가 구체적이지 않음) 2발, 소총 한 자루 이외에 3.5인치 수퍼 바주카가 1문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4. 작전 전개 : 변 소위는 도로대화구와 다리 폭파로 인한 틈을 이용했다고 회고했으나 기사회 기록은 전혀 다릅니다. 이에 따르면 변 소위의 지휘를 받은 바주카포가 15m 거리에서 1번 전차의 궤도를 날렸고, 계속해 바주카포 사격을 가하게 하는 한편 수류탄과 전차를 버리려다 깔려 죽은 적의 군복을 찢어 불을 붙여 집어넣는 등의 활약으로 2대를 불태우고 6대는 내부를 파괴했다고 나옵니다. 그중 1대는 당황해서 방향을 마구 돌리다가 실수로 전복되는 것으로 나오며, 이 전차가 수류탄도 아닌 "불붙은 군복을 집어넣어" 제압한 전차입니다. 기사회 쪽 기록에서는 도로대화구도 다리 폭파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포로가 5명이라는 건 양자가 같아요.

이쯤 되면 전혀 다른 2개의 이야기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사람 이름이랑 잡은 전차 대수(그나마 잡은 방법은 또 다릅니다), 포로 수효를 제외하면 일치되는 게 없어요. 세월이 흐르면서 기억은 왜곡될 수도 있고 사람 입을 거치다 보면 이야기는 와전될 수 있으며 누군가가 부풀릴 수도 있고 사건을 본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기록될 수도 있긴 하지만, 이건 해도 좀 너무한 지경이죠.국방부 공식 한국전쟁 사이트에는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모르겠는데, 전 거기서 깔라는 거 다 깔았어도 접속이 안 되니-_-;;

제가 가진 자료 중에는 어느 쪽 이야기가 진짜 더 사실에 가까운지 더 이상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으므로 두 손 들었습니다만, 일단은 본인의 회고 쪽에 한 표 던집니다. 공식 기록이랑 약간 다른 정도면 이 어른이 자기 공을 좀 부풀리셨군, 하겠는데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요. 이쯤 되면 사건에 직접 참가한 당사자의 증언이 그나마 가장 믿을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더 알고 계시는 분들이 보충해주시는 부분이 있다면 감사히 보겠습니다.


참고자료 :

민족의 증언 vol.2, 중앙일보사, 1983
호국용사 100선, 이원복, 명성출판사, 1976


*(2010.7.7, 00:45) 앞에서 보셨듯이 현재 포스팅의 본문은 전적으로 변규영 소위 "본인의 회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현재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전쟁사와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100% 그대로 신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아래쪽에 있는 채승병님의 리플을 꼭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자료조사에 있어서 멍청하게 군 탓에 있는 자료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여 독자분들께 혼선을 초래한 점에 대하여 양해를 구합니다 ㅠㅠ


by 슈타인호프 | 2010/07/06 15:07 | 한국현대(~20XX) | 트랙백(1) | 핑백(2) | 덧글(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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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잡글 모음소 at 2010/07/06 18:12

제목 : 신녕지구 대전차공격에 대한 기록들......
혼자 수류탄으로 전차 6대를 잡은 어느 용자. ..............를 본 L님하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_-;; 일단 한국전쟁사 CD에 인용되어 있는 육군본부의 전장사례연구 1집(1983)에 나와 있는 기록(슈타인호프님 기록에서 윤민혁님 리플에 링크된 글)는 기사회 쪽의 글에 좀 더 가깝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적을 찾아낸 경과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nbsp......more

Linked at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는 둥지.. at 2010/12/27 17:22

... 힌 부위는 왜 부서지지 않고 남았는가.(일부 추가)가장 많이 추천 받은 글 혼자 수류탄으로 전차 6대를 잡은 어느 용자.(추가부분 필독)가장 대화가 활발했던 글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천안함 "의혹의 근거 ... more

Linked at 슈타인호프의 함께 꿈꾸는 둥지.. at 2013/01/23 08:32

... 례로 거론되는 국군 6사단의 말고개 특공(여기서는 T-34가 아니라 SU-76이었다고 하지만)에서도 북한군 보병이 없었죠. 그 외에 제가 예전에 포스팅했던 이 사건에서도 한국군이 적 전차에 육박했을 때 북한군 보병의 전차 엄호는 없었습니다. 즉, 한미 연합군의 대전차 특공 때 "빗발처럼 쏟아지는 총알 사이를 뚫 ... more

Commented by Cicero at 2010/07/06 15:15
앞뒤로 고립된 상태에서 열라고 해서 열다니...게다가 1대 남을때까지 그지경으로 당한걸 보면 전차안에 무전기 없었던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드는 군요.;;;;
Commented by sinis at 2010/07/06 15:16
저 역시 본인의 회고쪽이 더 현실성 있다고 봅니다.
기사회의 기록은 무슨 람보급 활약인데 비해, 변규영 중령의 회고록 쪽이 더 현실적인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대도서관 at 2010/07/06 15:20
흠...저게 사실이라면 좀 많이 무섭군요...
Commented by Montcalm at 2010/07/06 15:21
어느쪽이던 용자는 용자군요 .. 덜덜덜
Commented by 피그말리온 at 2010/07/06 15:21
게임 같네요....덜덜
Commented by 네리아리 at 2010/07/06 15:21
오오 위대한 수류탄 오오
Commented by ArchDuke at 2010/07/06 15:22
근대 전쟁사도 썰이 다르니;;;
멋지네요 ㅋ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0/07/06 15:25
탱크헌터계열 특수유닛으로 설정해도 될 것 같군요.
Commented by 제노테시어 at 2010/07/06 15:30
이거, 비슷한 내용의 반공동화를 어릴적에 본 기억이 나는군요. 거기서는 주인공이 최명수 소대장이었던가.(...)
Commented by 크핫군 at 2010/07/06 15:31
전차병:아...안돼!!!!

보병:돼!!!
Commented by Ciel at 2010/07/06 15:33
보통은 본인이 부풀리는데,
본인의 증언은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점, 14대라는 댓수에 본인이 겁에 질린 면이 없지 않던걸 인정한점, 적 전차의 도주를 내버려둔 점 등이 그럴싸한 반면,
기사회는 보급이 쉽지 않았을 슈퍼 바주카를 부대가 장비한 점, 지원동기가 한결같이 군인 정신에 기반한점이 걸리지만, 본인 증언의 경우는 공병대의 공작이 뜬금없다는 느낌인데, 이와 관련한 어떠한 증언도 저기에는 없으니..

일단 객관적인 기준으로는 북한군 전차 부대의 편제가 8대와 14대중 어디가 더 그럴싸한지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Commented by Allenait at 2010/07/06 15:36
..어쨌든 간에 이건 정말 무용담 수준이로군요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0/07/06 15:42
도로 대화구 라던지 다리 폭파 같은, 공병대에 상당 부분 공을 돌리는 점을 보면 본인 증언 쪽을 더 신뢰해도 되지 않을까요? 자기자랑이라면 공병대의 공을 어떻게든 숨겼겠지 말입니다....
Commented by 아빠늑대 at 2010/07/06 16:04
의문인건... "전차 '8대'를 파괴해라" 라고 숫자까지 지정해서 명령을 내리는 경우가 있던가요? 장비는 모르겠는데 어찌될지 모르는 현장 상황에서 숫자지정한 파괴 명령이라니... 음...
Commented by maxi at 2010/07/06 16:16
...도로대화구랑 다리폭파를 무슨 매복작전식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하면 좀 간지지만) 보통 적이 오기 전에 "설치" 하는 장애물이 도로대화구와 교량폭파죠.
Commented by 치이링 at 2010/07/06 16:20
흠, 그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요...
Commented by leiness at 2010/07/06 16:22
어쩌면 사단장의 명령으로 나간게 공병대고 저분은 명령없이 단독으로 나섰다가 공병대의 폭파 후 전차를 제압하게 된 건데 위에서 내려다 본 지휘관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공병대나 저분이나 다 같이 사단장 명령으로 나간 부대 같아 보여서 본인 증언과 전사가 다르게 된 것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6 16:24
Cicero//걔들도 당황한 거죠. 갑자기 앞뒤에서 폭음이 울리고 길이 끊기니...

sinis//제가 보기에도 일단은 그렇습니다.

대도서관//ㄷㄷㄷ;;;

Montcalm//용자십니다 정말.

피그말리온//게임이라도 어려울걸요.

네리아리//전방 수류탄~~!!

ArchDuke//일단은 본인 증언에.....

MessageOnly//아무리 멈춰선 전차라고 해도 대단한 배짱입니다.

제노테시어//어째 저도 들은 듯한 이름(...)

크핫군//펑!!!

Ciel//공병대야 따로 활동하니 변 소위 본인은 몰랐겠지 않습니까. 그리고 전차 편제는 소모가 심하다 보니 좀 대중이 없을 걸요. 14대가 당시 인민군 대대 정수일 건데, 남하중 소모되어 수가 줄었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Allenait//무용담이죠.

네비아찌//아마도요.

아빠늑대//사단 정찰대나 공군 정찰기가 "전차 8대가 있더라"고 보고했을 가능성도 있죠.

maxi//우연히 맞아떨어졌을 뿐이라고 봅니다. 공병대도 저런 기습을 의도하고 설치한 건 아니겠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6 16:24
치이링//대단하지 말입니다.

leiness//그렇게 보기에도 이야기가 너무 안 맞습니다.
Commented by 윤민혁 at 2010/07/06 16:31
해당 전투의 공간사 기록입니다.

http://www.army.mil.kr/history/과목개요/a1/43.htm


그리고 공병대와 사단 본대, 각급 연대 간의 연락이 불충분했던 거야 한국전 당시, 특히 초기작전부터 지연전 기간까지 한국군의 고질적 문제였으니 - 그 바람에 죽은 연대장, 대대장도 제법 있지요 - , 이런저런 문제를 고려하면 두 개 이상의 부대가 갑작스런 적 전차와의 접적 상황에 동시다발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입니다. 공간사를 보면 대전차 특공을 시도한 건 사단장의 지시에 의해 실시됐다는 전쟁기념사업회의 발표와는 달리 대대 내에서 있었던 일이니까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6 16:35
그 공간사 기록이 제 컴퓨터에서 접속이 안 됩니다. 깔라는 거 다 깔고 별짓을 다 해도 안 되더군요. 그래서 한 1년 이상 전부터 공간사 접속을 못 하고 있습니다-_-;;
Commented by 愛天 at 2010/07/06 17:00
위의 공간사 기록 혹시 익스플로러에서 UTF8관련 체크를 해제하고 다시 접속해 보시는게 어떨런지요.
Firefox에서 안 열려서 익스플로러로 링크를 여니 보이는군요.
Commented by 윤민혁 at 2010/07/06 17:17
어라... 저도 육대 전사 페이지에서 직접 갈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따로 따놓은 링크로는 못 들어가는군요. -_-;
Commented by 愛天 at 2010/07/06 17:33
링크 복사가 좀 이상하게 되는군요. 위 링크를 그대로 익스플로러 주소창에서 쳐서 들어가면 잘 됩니다.
Commented by 타누키 at 2010/07/06 16:34
이게 성공하다니 대단하군요. ㅎㅎ
그나저나 26세 차이라면 세대차이가 엄청 날테니 그럴만도 하겠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6 16:36
26살 차이면 오빠가 아니라 아빠라고 해도 좋을 나이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소드피시 at 2010/07/06 16:37
두 개의 서로다른 얘기를 불리한 쪽으로만 접합해도 이 정도면 전설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네요.
Commented by virustotal at 2010/07/06 16:39
앙 제대기념으로 한대만 가져가도 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8대니 아님 안에 다 비워낸 포탄 하나 가져가도 멋은 있겠네

Commented by 하늘늑대 at 2010/07/06 16:46
[ ....].. 어릴 때 반공도서류에서 최명수..라는 분의 이야기가 비슷했던 것 같긴한데. (그분이 훈장이랑 주렁주렁 달고 사진도 나왔던 듯..)
뭐.. 나이들어 생각해보니.. 그냥 후덜덜하네요. 어느쪽 이야기든.. =_=.. (사단장의 명령..이라는 부분이 나중에 사단장도 숟가락 얹기를 한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10/07/06 16:52
보병도 없이 우르르 오다가 문자 그대로 몰살을 당했군요....
Commented by g at 2010/07/06 16:53
이당시 무용담은 대개 비슷비슷하고, 신빙성이 낮다.
Commented by 셀시아 at 2010/07/06 19:42
네 말보다는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Commented by 욕구不Man at 2010/07/06 16:53
아옼 도로대화구!!!!!!!!!!!!! 저 망할 물건때문에 군대에서 고생한걸 생각하면..엉엉;ㅁ; (공병 출신입니다.ㅠ)

근데 이야기의 과정이 어쨌건 결과적으로 전차 6대를 때려잡은건 맞으니, 그것만으로도 용자 인증아닐까요?ㅎㅎㅎㅎㅎ
Commented by g at 2010/07/06 16:53
그래서 군대는 갔다왔냐?

너 면제지
Commented by 無碍子 at 2010/07/06 17:09
헐~~~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10/07/06 17:09
예비군훈련장에서 만나서 험한 꼴 당하기 싫으시면 조용히 사라지시길
Commented by 안경소녀교단 at 2010/07/06 17:15
이상 군대갈 자격도 안되는 비로그인 중고딩의 열폭이었습니다.
Commented by 고양고양이 at 2010/07/06 17:57
비로그인 찌질이의 전형이군요.
계속 이 블로그를 보시던분들이라면 이런말이 나올리가 없는데..ㅋㅋㅋㅋ
Commented by Zannah at 2010/07/06 23:43
오늘따라 저 이름 쓰는 비로긴이 인기글들 순회하고 다니는군요.
Commented by 누군가의친구 at 2010/07/06 16:54
무서운 기록이군요. ㄷㄷㄷ...

그러저나 6사단이라니, 6사단이 한국전에서 세운 전과는 참으로 대단하다 할수 밖에요.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10/07/06 16:59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ㄷㄷ 그나저나 앞쪽에서 전차가 구덩이 쳐박혔을때, 뒷차(?)들은 그저 당황만 하고 있었나보군요;;;
Commented by dhunter at 2010/07/06 17:04
대전차노크술...;
Commented by CAL50 at 2010/07/06 17:05
....어느 쪽 기록이 맞든 간에 '용자' 칭호가 아깝지 않은 분이시군요.
Commented by 海凡申九™ at 2010/07/06 17:06
다리 한 쪽 날리고 적의 공세 막은 용자신 듯 ㄷㄷ
Commented by 대한민국 친위대 at 2010/07/06 17:09
심일 소령님이 인민군 자주포 몇대를 직접 파괴, 격파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변규영 중령님의 활약은..............
그저 후덜덜 하군요.
Commented by 싱클레어 at 2010/07/06 17:09
근데 중위로 예편하셨다는데 왜 중령이죠?
Commented by 윤민혁 at 2010/07/06 17:12
중위 시기에 영천 전투로 다리를 잃고서도 후방근무로나마 현역 복무를 계속하시다가 1959년에 중령으로 전역하신 겁니다.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10/07/06 17:10
아마 한국전쟁만큼 육탄대전차술의 대가들이 줄줄이 배출된 전쟁도 없지 않을까 싶군요 -_-;;

그나저나 문열어 스킬은 레알 동란이기 때문에 가능한 듯.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0/07/06 17:12
'문 열어!'

'넵 알겠습니다'


=> .................................................................
Commented by 작은소망의아스카 at 2010/07/06 17:16
얼마전 예비군 갔다가 예비군 중대장님이 말씀하셨던 그분이 글에 나온 분이시군요 .
혼자서 전차 6대 를 잡았다던 ㅇㅅㅇa..

당시 들었을땐 아무리 그래도 6대를 어떻게 잡았지 했는데 말이죠
Commented by SKY樂 at 2010/07/06 17:24
어째서 전차 14대가 보병지원도 없이 외길을 저렇게 소풍나가고있었던걸까 하는 생각밖에 안드네요. 그건 그렇고, 전차 위에 올라간다는게 말이야 쉽지, 저게 기관총까지 장비한 괴물이라는걸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전과죠,
Commented by 윤민혁 at 2010/07/06 17:26
덤. 같은 전투를 다룬 다른 항목에서 6사단 공병대의 전투 참가가 확인됩니다.


9월 1일 03:00경 적 약 1개 중대 병력이 도로의 우측 골짜기에 있는 전답을 통해 곧바로 공격해왔다. 그들은 지뢰가 매설된 도로 만곡부를 피하려는 듯 우회하다가 오히려 U자형으로 설치된 제2지뢰지대 안으로 기어들었다. 첫 번째 지뢰가 터지면서 적이 비명을 지르자 적 공격부대는 공포에 떨며 우왕좌왕하다가 더 많은 인계철선을 건드려 100명 가까운 적병이 불과 5분 동안에 살상되었다.

1일 밤-3일 밤까지 도로 좌측방에 지뢰지대를 5개소 추가로 더 설치했으며 따라서 신령읍에 이르는 주요 접근로는 모두 지뢰로 붕쇄되었다

3일 1중대는 적 전차를 파괴하기 위하여 A, B, C 3개조의 3.5"로케트포조를 편성하였는데 A 및 C 조는 공병으로, B 조는 19연대에서 파견된 보병으로 편성되었다.

밤이되자 중대장은 A 조를 도로 대화구 부근 30m 되는 언덕에 배치하고 B조를 그 북쪽 200m 지점에 배치한 다음 C 조와 공병 1개소대를 인솔하여 화수동의 파괴된 교량 부근으로 진출, 3.5"로케트포를 배치하고 소대 병력으로 교량 북쪽에 급조지뢰를 설치했다.

자정을 조금 지날 무렵 적 전차가 지뢰 제거조를 앞세우고 남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뢰지대를 쉽게 발견하고는 무릎을 꿇더니 지뢰를 끄집어 내어 도로 옆으로 마구 집어 던졌다. 그리고 계속 전진해왔다. 지뢰는 촉발장치가 되어 있지 않아 제거시 폭발하지 않았다.

적의 전차는 한동안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지나갔는데 네 번째 전차가 지나간 다음 한참동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를 이용하여 지뢰가 제거된 지점에 다시 지뢰를 설치하고 모든 지뢰에 촉발장치를 했다.

지뢰 매설부대가 철수한 조금 후 적 전차 1대가 보병도 없이 단독으로 나타나 파괴된 교량 북쪽에 정지하더니 승무원 1명이 전차에서 기어나왔다. 이때 로케트포 C조가 전차 30m까지 접근하여 사격하자 적 전차는 곧 불타기 시작했다. 승무원들이 탈출을 시도했으나 공병들이 모두 사살해버렸다.

도로 대화구 부근에 배치된 A조는 적 보전조가 접근하자 지뢰지대에 진입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전차에 앞서 10여명의 적병이 노면을 더듬으며 내려오더니 지뢰지대에 도달하자 지뢰의 압력판을 잡고 획 잡아 당겼다. 순간 요란한 폭음과 함께 적병들은 모두 살상되었다. 다시 보병들이 서둘러 접근하다가 노견부의 지뢰가 터지면서 수십명이 또 살상되었다.

이 무렵 B조는 적 전차가 네 번째로 지나갈 때 더 많은 전차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다가 놓쳐버리자 신속히 앞으로 이동하여 커브를 돌고 있는 전차 후면을 15m거리에서 사격했다. 적 전차는 엔진부분에 포탄이 명중되자 곧 화염에 싸였다.

도로 대화구 부근에 배치된 A조는 전방에서 폭발소리가 난 다음 적의 선두 전차에 대하여 30m거리에서 사격했다. 적 전차는 포탑에 포탄이 명중되자 내부 폭발을 일으키면서 껑충 뛰더니 100m아래로 굴러 논바닥에 쳐박혔다.

야간에 로케트포는 전차 2대를 더 파괴했는데 1대는 보병조에 의해서 파괴되었고 다른 1대는 보병과 공병이 서로 자기네가 파괴했다고 열띤 실갱이를 벌였다. 당시 전차 1대 파괴에 대해서는 10만원의 상금이 걸려 있었다.

6일 전선 조정을 위해 보병부대가 728고지로 철수하자 적 1개 연대가 의기양양하게 접근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지뢰에 걸려 약 500명이 사살당하고 공격은 실패했다. 이리하여 신령읍은 한동안 공병에 의해서 지켜졌다.
Commented by 사바욘의_단_울휀스 at 2010/07/06 17:26
만약 증언이사실이라면 위에서 공적을 좀 가로 챘군요...
평범한 일이네요.;;;
Commented by 윤민혁 at 2010/07/06 17:29
위의 기록과 변규영 소위 팀의 활약은 같은 9월 3일 일이고, 변규영 소위의 회고에 나온 상황은 사단 공간사에서 변규영 소위 팀의 활약으로 기재한 내용보다는 오히려 이 공병-보병 연계 작전의 것에 더 가깝습니다.

보아하니 둘 중 하나가 진실이 아니라 둘 다 진실이고, "어느 쪽이 진짜 변규영 소위의 활동이냐"가 문제 같습니다.
Commented by 野翁 at 2010/07/06 17:32
'문 열어!'

'넵 알겠습니다'

----->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항복하라,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

6사단 19연대 5중대 2소대의 한 신병이 1950년 9월 11일에 조교동에서 보병의 도움없이 단독 진출하던 북괴 Su-76 자행포를 노획한 일이 생각납니다. 자주포를 잡을 장비도 없는 상태였는데 부대에 갓 전입한 신병이 무댓뽀(!)로 자주포 앞으로 나와서 포위되었으니 순순히 항복하라고 협박하자 자주포에서 인민군5명이 순순히 나와서 오라를 받았다능....
그런데 이 일화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윤민혁 at 2010/07/06 17:39
말씀하신 사건의 회고담 중에는 무지 골때린 얘기도 있습니다. 저 전입 신병이 무댓뽀로 자주포 앞에 나선 게 아니라 배고파서 탈영했다가 길을 잃어서 길에 주저앉아 있는데 차가 오길래 히치하이크하려고 세웠다가 북한군 전차(제가 들은 이야기는 전차입니다. 당시의 한국군이면 충분히 혼동하고도 남죠.)라는 걸 알고 도망갔는데, 북한군은 북한군대로 웬 한국군 한 명이 자기네 차를 떡 세우는 걸 보고 이미 포위당한 줄 알고 차에서 내려서 그 병사에게 항복을 시도했다는 거죠. 그 병사는 병사대로 북한군이 자기 잡으러 쫓아오는 줄 알고 죽어라 도망가고, 북한군은 북한군대로 한국군이 자기들을 엿먹이려고 일부러 뛰게 시키는 줄 알고 전력으로 달렸다나요. 그러다가 탈영병으로 체포되기 전에 일단 소대로 끌고 가려고 필사적으로 쫓아온 소대장이 그걸 잡고 차량까지 노획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당사자들만 알겠죠. (...)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7 01:58
여기 있던 비로그인분 리플은 본문과 상관없는 내용이라 지웠습니다. 죄송하지만 간련된 곳에서 이야기해 주세요.
Commented by 뚱띠이 at 2010/07/06 17:58
어느 쪽이든 용자시네요....

그건 그렇고 6.25는 온갖 기상천외한 기록들이 나오는 전쟁이었군요.
Commented by 동굴아저씨 at 2010/07/06 18:00
어느 시대에나 외계인은 있죠.
...
Commented by 마노 at 2010/07/06 18:00
여하튼 잡기는 잡았나 보군요. 포로까지 확인된다는걸 보니...
Commented by deadline at 2010/07/06 18:14
윤민혁님의 대강의 기록은 다 찾아주셨는데, 정리해서 트랙백 걸었습니다~.
Commented by 존다리안 at 2010/07/06 18:51
Call Of Duty : Korean War를 만든다면 저걸 재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RedPain at 2010/07/06 18:57
전차 14대가 보병도 없이 기동했다니... 흠... 왜 그랬을까요? -_-a
Commented by 동란은.. at 2010/07/06 19:34

'동란'이기 때문에 이런 웃지못할 일들도 있는 거겠군요. 미국 남북전쟁 때도 '동란'이 아니면 벌어질 수 없는 해프닝들이 있던데...

변규영 중령님의 말년 등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전쟁 영웅이라도, 그 뒷일까지 보게되면 그리 유쾌할만한 일은 아닌 듯 합니다.
물론 전쟁 중에 유쾌하다. 라는 말을 쓸 부분이 있기야 하겠습니다만..
Commented by ... at 2010/07/07 18:27
동란은 同亂이 아니라 動亂입니다. 동족끼리의 전쟁이란 뜻은 원래 없습니다.
Commented by 信念의鳥人 at 2010/07/06 20:28
열어라 하시니, 그 위엄에 모두 경탄해 마지않으며 해치를 열었더라...(응?)
Commented by 소드피시 at 2010/07/06 23:57
큭! 격하게 뿜었습니다.
Commented by 후유키 at 2010/07/06 20:40
.........이거 참 ... 이건 뭐 마치 게임의 어떤 상황도 아니고...
아니 게임에서도 힘들긴 하지만 (..)
마치 배틀필드라는 게임을 생각나게 만드는군요 -3-;;; 대단합니다....
Commented by initial D at 2010/07/06 21:12
여기서 중요한건 내용이 아니라

처리하기도 힘든 전차를 그것도 한 대가 아닌 작전 위치로 이동하는 전차 행렬에서

6 ~ 8대를 한 소대도 아닌 겨우 3~5명으로 처리했다는거죠..

(더군다나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 한 부분중 하나인 낙동강 전투지에서 말이죠)

더군다나 대부분 혼자 처리했다고 나오니...

영웅으로는 안 끝나는분이죠..
Commented by 마무리불패신화 at 2010/07/06 21:26
뭐가 진실이든 정말 대단하네요.ㄷㄷㄷㄷㄷ


+그런데 인민군은 왜 열어달라고 했을때 순순히 열어줬을까요??
Commented by 미르 at 2010/07/06 22:00
연다고 아무 의문 없이 여는건 뭐야...;;
여하튼 6대를 파괴했단 건 진짜 영웅이네요.
Commented by 정호찬 at 2010/07/06 22:42
열라고 하니까 연 건 아군으로 착각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어차피 오도가도 못할 상황에서 곱게 항복이나 하자였을지도(하지만 현시창)
Commented by 궁상각치우 at 2010/07/06 22:57
똑똑똑
누구십니까
손님입니다.
들어오세요.
휙-쾅.
죽었니, 살았니
.....(묵묵부답)
Commented by minci at 2010/07/06 23:02
그냥 비슷한 예기가 두 개 있었다...면 좋겠어요.
무용담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Commented by 계원필경 at 2010/07/06 23:26
현실은 소설보다 더 기묘하군요...(알보병이 전차잡기 신공은 거의 기적인데 그걸 6대나 해내다니요 ㄷㄷ;;;)
Commented by 블랑 at 2010/07/06 23:37
전차없이 보병으로 6대라니 이정도면 1계급이아니고 2계급 특진정도는 시켜줘야하는것 아닌가요? 음.. 죽은 사람 규모가 적어서 그랬나.. . 하긴 전쟁중이니 특진도 많았을것같습니다 ㅎㅎ
Commented by highseek at 2010/07/06 23:55
1. 이런 류의 이야기란 "부풀려지"기 마련이라는 점
2. 공식 기록이 회고록 보다 좀더 "부풀려졌"다는 점

이 두가지 점에 의해 회고록 쪽에 한표.
Commented by 채승병 at 2010/07/07 00:06
이 이야기는 워낙 다각도로 윤색되다보니 갖가지 설이 난무하지요. 그래도 왜 1970년 전편위 (구)공간사, 1984년 한국전쟁전투사, 1995년 한국전쟁사, 2008년 (신)공간사의 내용을 언급하지 않으셨는지 의문이군요.

1970년간 (구)공간사, 즉 한국전쟁사 제3권 낙동강방어작전기 p.545~547에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슈타인호프님 글에서 언급한 기념사업회 기록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 호국용사 100선이나 기념사업회 측의 문헌에 나오는 내용 출처는 모두 (구)공간사입니다.

그런데 이 설은 1984년 출간된 한국전쟁전투사 신령-영천전투 편에서 대대적으로 수정됩니다. 이 책 159~165페이지에는 "갑령 고개의 전차 격멸 작전"이란 이름으로 이 대전차특공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선 날짜부터 수정됩니다. 앞선 문헌들이 9월 3~4일에 북한군 전차부대의 공격이 있었다고 하는데 반해, 여기서부터는 9월 2~3일로 적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변규영 소위의 직책을 19연대 1대대 1중대 "3소대장"으로 적고 있습니다.

자세한 경과는 또 이렇습니다: 부상으로 가료하던 허용우 소령이 8월 31일부로 1대대장에 다시 보직되고, 미군의 전방 항공통제반이 또 이날 1대대로 파견됩니다. 허 대대장은 신녕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고갯길인 "갑령" 첫 고갯마루에서 넌덧마을로 이어진 골짜기가 취약 지역이라고 판단하고 방어선을 재편합니다. 이 상황에서 9월 1일 21시경 북한군은 소규모 보전협동부대의 위력수색을 실시하고, 곧 격퇴됩니다. 허 대대장은 이를 대규모 공격의 준비단계로 파악하고 9월 2일 오후에 수색대를 투입합니다. 이 수색대는 넌덧마을 뒷산에서 피난가지 못한 노인들을 만나서 북한군이 야습을 하기 위해 주민들을 내쫓았다는 증언을 듣습니다. 그래서 갑령 일대에 이미 깔아놓은 대전차지뢰지대 부근에 병력을 배치합니다. 이때 변규영 소위가 인솔하는 전차특공대는 갑령 고개 두번째 도로 굴곡지점 서쪽 능선에 매복할 것을 명령받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9월 2일 20시경부터 북한군은 준비포격을 필두로 전차를 진격시킵니다. 그러다 미리 설치한 지뢰지대에 선두 차량이 진입하자 지뢰가 터지면서 이 전차는 길 옆으로 전복됩니다. 이를 필두로 1대대는 예광탄을 발사하고 대대 화력을 이 전차종대에 집중합니다. 앞의 문헌과 달리 예상된 공격이었기에 이에 대해 16포병대대의 TOT 지원사격이 약 20분간 지속되었습니다. 그 후 허 대대장은 사격을 중지시켰으며, 곧이어 변 소위의 전차특공대가 행동을 개시합니다. 이들은 우선 후진 중이던 후미전차에 지급받은 3.5인치 바주카를 집중사격해 이를 정지시킵니다. 총 8대의 전차가 결국 머리와 꼬리가 잘려 언덕길에서 고립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두와 후미가 잘린 전차들을 처리한 방식도 사뭇 다르게 묘사됩니다. 지뢰를 밟아 전복된 선두차량과, 3.5인치 바주카를 얻어맞아 격파된 후미차량 이외에 저항을 시도한 전차는 단 1대였다고 합니다. 나머지 5대는 전차특공대가 접근했을 때 이미 승무원들이 도주한 뒤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포병대대의 지원포격 때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차량을 버린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날이 밝자 대대는 전장을 수습했으며, 잔적을 소탕하기 위해 대대에 파견나온 미군 연락장교를 통해 지원폭격을 요청합니다. 이로 인해 9월 3일 06시경 미 폭격기들은 갑령 북쪽의 적 전차들에 네이팜 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신녕 전투 이후 이 지역에서는 특공으로 파괴된 8대를 포함, 총 21대의 격파된 북한군 전차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 한국전쟁전투사의 기록은 그대로 1995년 출간된 한국전쟁사(3부작), 2008년 출간된 (신)공간사로 이어집니다. (신)공간사 5권 388~390페이지는 바로 이 한국전쟁전투사 기록을 요약하여 소개합니다.

이들 기록에 의하면 대전차특공은 단순한 단독공격도 아니었고, 1대대의 전폭적인 화력지원과 16포병대대의 지원포격이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후미전차가 파괴된 것이 교량을 폭파시켜서도 아니고 3.5인치 바주카에 의한 공격이라고 합니다. 최신 공식간행물에서 이들 기록을 공통적으로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더 신빙성 있는 이야기라고 보입니다.
Commented by 소드피시 at 2010/07/07 00:43
내용만 보면 적절한 정보입수와 수색, 지형을 이용한 매복과 포병지원을 잘 이용한 보병의 모범적인 대전차전 사례네요. 채승병님의 자세한 부연 설명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페리스코프에만 계시는 줄 알았는데 이글루에도 오시네요. ^^
Commented by 절취선 at 2010/07/07 00:31
우와..진짜 멋지네요 글 읽으면서 전율이 확돋네요 ㅠ
Commented by 소드피시 at 2010/07/07 00:37
깜빡하고 있었는데 링크 신고합니다. ^^
Commented by 쿠루니르 at 2010/07/07 00:44
'내가 육이오때 장교로 참전했을때 이야기인데 말이여, 어느 날 갑자기 적 전차 수십대가 오는거 아니여. 긍께, 내가 침착하게 수류탄을 던지니 시방, 뒤에 있던 놈들은 도망가고 앞에 있던 놈들은 몽땅 수류탄에 다 죽었다는거야.'

'에잉~ 뻥이시죠?'

'음메~ 이 잡것이. 참말이랑께?'

말그대로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ㄷㄷ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7 01:10
소드피시//일단 공간사 기록을 확인하고보니 이건 또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virustotal//인테리어로는~~ㅋ

하늘늑대//일단 최명수라는 분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F--;;

행인1//그렇게 된 셈이죠 뭐.

g//쓰리 아웃 체인지~

셀시아, 無碍子, 천지화랑, 안경소녀교단, 고양고양이, Zannah//뭐 무시하세요. 저런 거에 화내시면 수명 준다는 ㅋㅋ

욕구不Man//한 대라도 때려잡으면야 사실 용자입니다 ㅋ

누군가의친구//용자집단 6사단입니다.

들꽃향기//저라면 아마....2호차는 당황해서 멈출 거고, 3호차부터는 앞차가 갑자기 멈추니 일단 급정거하고 나서 무슨 일이냐고 무선기에 대고 고함을 지르고 있지 않았을까요?

dhunter//의외로....;;

CAL50//설사 "뛰어오른" 전차가 한 대 뿐일지라도 용자지 말입니다. 참, 결혼 축하드려요~^^

海凡申九™//아, 다리는 저 다음에 벌어진 전투에서....

대한민국 친위대//대전차 육박공격은 사실 웬만한 배짱 없이는 힘듭니다. 아니면 아예 정신이 나가거나...

싱클레어//중위는 특진해서 특별히 다루는 거고, 1959년까지 계속 복무를 하셨으니까요.

윤민혁//설명 감사~

천지화랑//아니 천지화랑님. 동부전선을 무시하시면 안됩니다. 독소전이야말로 진정 기갑웨이브에 대해 인간의 피로 방어선을 쌓은 곳...-_-;;

한단인//..........

작은소망의아스카//예비군에도 나오는군요.

SKY樂//다른 분들이 확인해주신 자료를 보니 아무래도 실제 상황과 거리가 좀 큰 증언 같습니다. 주의했어야 하는데...

윤민혁//확실히 단독작전이 아니었군요. 역시 당사자 증언은 웬만하면 크게 에누리해서 들었어야 하는 건데;;;;

사바욘의_단_울휀스//일단 지금까지 추가로 확인한 자료로 보면, 본인 증언 쪽이 좀 더 사실과 다르게 된 거 같습니다.

윤민혁//채승병님 리플 쪽이 답이 될 것 같습니다.

野翁//아, 그 에피소드는 저도 봤습니다. 세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윤민혁//저도 일단 그렇게 들은 듯...이 아니고 민혁님한테 들었군요 ㅋ

뚱띠이//어떤 전쟁이든 신기한 일은 터지지 말입니다.

동굴아저씨//절대적으로 동감합니다.

마노//예, 논란이 있긴 해도 잡은 건 맞습니다. 훈장도 받았고 상금도 탔지요.

deadline//잘 읽었습니다. 역시 저보다 대단하시다는...^^

존다리안//미군이 주인공이니 안 나오지 않을까요?

RedPain//추가로 확인된 자료를 보니 보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좀 난감하네요.

동란은..//전쟁에 참여하고, 아무 상처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보이는 상처가 없다면 그게 바로 상처일지도 모르지요.

信念의鳥人//그리고 은혜의 수류탄이...(펑펑)

소드피시//저도 ㅋ

후유키//게임에서도 저렇게 하긴 어렵겠죠.

initial D//근데 이게 공식 역사를 확인하고 보니 혼자가 아니었다는 문제가...;;;

마무리불패신화//자기 편에서 연락이라도 하러 온 줄 알았을 겁니다.

미르//전차가 주는 공포감을 생각하면 한대도 대단한 겁니다.

정호찬//착각에 2534표.

궁상각치우//........내다리 내놔~~!!!

minci//주인공께선 이미 22년 전에...;;

계원필경//드래곤 슬레이어가 정말 어쩌다 나타나는 것과 동일한....

블랑//대신 을지무공훈장이.....

highseek////현재로서는 회고담 쪽이 부풀려진 것으로 보는 쪽에 비중이 큰 듯 합니다.

채승병//아아, 그게 제가 갖고 있는 책만 보다 보니 1984년 한국전쟁전투사와 1995년 한국전쟁사는 소장하지 않은 탓에 확인을 못 했고, (구)공간사와 (신)공간사는 엉뚱한 부분에서 찾아서 그렇습니다. 신령전투 파트에 이 사건이 실린 줄 모르고 영천전투 파트에서만 찾다가 안 나오기에 "소소한 무용담이라 안 실은" 줄 알았죠-_-;;
공간사 내용을 확인한 뒤에 글을 썼으면 회고담 이야기를 한 뒤에 "그런데 공간사에서는 이거랑 다릅니다"로 이야기를 이었을 텐데 엉뚱한 부분을 찾다가 그 이야기를 못 발견한 탓에 회고담만 보고 글을 썼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죠--;; 늘 잘못된 지식을 깨우쳐주시는 점에 감사드립니다^^

소드피시//예, 정말 효과적인 협조작전의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채승병님은 종종 오십니다^^;

절취선//감사합니다. 근데 위의 채승병님 리플도 읽어주세요^^;

소드피시//예 감사합니다^^;

쿠루니르//오오 ㅋㅋㅋㅋ
Commented by at 2010/07/07 02:06
어쨋거나 히어로 ...;;
히어로는 히어로 ....
가장 중요한건 다치지 않고 끝냈다는게 더 놀랍네요!
아웃복서 ;;
Commented by xavier at 2010/07/07 05:22
이제부터 용자라는 거룩한 단어를 쓸때 기준점이 왕창 상향조정되버렸네요. 흠좀무.
Commented by 만슈타인 at 2010/07/07 06:00
헐 이것이야 말로 말로만 듣던 대전차노크술 ㄷㄷㄷ;;;
Commented by 안디슨 at 2010/07/07 07:50
50킬 0뎃
Commented by 윤현철 at 2010/07/07 09:57
본문을 보면서 이상했던 부분이 전차병들이 한국말을 알아듣는 부분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당시 전차병은 몽땅 T-34/85와 함께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고려인(까레이스키, 조선말 일제시대 연해주에 이주한 사람들의 자손)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말은 알아들어도 한국말은 할줄몰라서 인민군내에서도 따로 놀았다는 기록을 여러곳에서 보았는데, (전쟁초반 보전협동이 미흡한 이유중의 하나로 알고있습니다.) 멀쩡하게 알아듣고 전차해치를 열어주었다는게 이상했습니다. 채승병님의 답글이 아무래도 신뢰성이 가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7 10:05
쏭//어쨌거나 장한 전과죠.

xavier//에이 그래도 인간...

만슈타인//아니 일단 채승병님 리플을 꼭 보십시오(...)

안디슨//그런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닌데요...

윤현철//음...근데 전차병 "전원"이 소련 출신은 아니었습니다. 북한 출신으로 소련에 유학가서 전차 조종기술을 배워 온 인원들도 있고, 북한 내에서 소련 고문단이나 소련에서 배워온 사람들에게 다시 배운 자원들도 있었거든요. 전원이 고려인 출신은 아니었던 것으로 압니다.
Commented by Manglobe at 2010/07/07 10:29
"야, 빨리 문 열어!"

"옙, 열겠습니다."

"필요없어!"

이분은 근성의 사나이 입니다?
Commented by 일화 at 2010/07/07 19:25
뭐랄까, 역사의 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찾기 힘든 것인가에 대한 좋은 예가 된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고수님들의 내공은 알면 알 수록 정말 ㅎㄷㄷ 하시다는...
Commented at 2010/07/07 22:1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사스카 at 2010/07/08 22:25
쩌.. 쩐다!!
Commented by 아텐보로 at 2010/07/09 05:41
채승병님의 댓글을 보고 다는건데
2008년 신 공간사의 제목을 좀 알려주실수 있는분이 계신지.....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봤는데 찾지를 못해서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9 09:49
Manglobe//에이 아무 짓도 안 하고 닫지는 않았어요ㅋ

일화//저도 늘 많이 배웁니다^^;

비공개//보병화기의 필수품!!!

사스카//대, 대박이지 않습니까!!!

아텐보로//시중에서 파는 책이 아니라 당연히 안 뜹니다;; 저거 사려면 전쟁기념관 구내서점을 가시거나 아니면 헌책 찾으셔야 해요. 제목은 <6·25 전쟁사 제5집 = 낙동강선 방어전투>입니다.

http://www.imhc.mil.kr/imhcroot/data/pdf_design.jsp

이 시리즈 3권까지는 웹 공개가 되어 있으니 여기 가셔서 그냥 PDF로 보셔도 돼요.
Commented by 오호통재라 at 2010/12/27 01:28
사단장님이 보고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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