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으로 족한 것을 비난하지 말자.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언, 15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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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한국에 대전차무기를 주지 않았을까.
1948년의 정부수립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에 대해 전차와 항공기 등 중장비를 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했지만 미국 정부는 이런 장비들을 주지 않았습니다. 한국군이 북진할까봐 우려해서기도 하고, 유지할 능력이 없는 한국군에게 중장비를 줘 봐야 결국은 유지부담이 미국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었죠.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라면, 적어도 장비를 넘긴 뒤에는 미국에게 별 수고를 끼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같은 후진국은 장비의 가동을 위한 훈련교관에 유지를 위한 정비요원, 연료 및 부품 공급을 위한 유지비용까지 모든 것이 미국 정부의 부담이 됩니다. 부자 아버지가 생활능력이 없는 백수 아들에게 자가용을 사 준다면, 결국 그 차 유지비는 누가 대게 될까요?

하지만 이런 요인들은 전차나 항공기처럼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비싼 장비들"에는 해당되지만 견인식 대전차포나 휴대용 로켓포(바주카), 대전차지뢰, 대공포 등 크게 비싸지 않은 방어용 장비에까지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정신인 군사지도자라면 대전차지뢰가 공격용 장비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죠? 자, 그럼 전차나 항공기보다 훨씬 싼 이런 장비조차 미국이 제대로 갖춰주지 않은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1. 평화
미국인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4년간의 대전쟁에서 어서 빨리 해방되어 평화와 풍요를 즐기기를 원했습니다. 군대는 축소되었고 군 예산은 줄어들었으며 국민들의 외국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죠. 미국인들은 본래 고립주의 성향이 강한 편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미국이 퍼부은 수억 달러의 원조에도 불구하고 상상의 한계를 넘어가는 부패와 함께 패배한 자유중국의 국민당 정권 및 이로 인한 중국 본토의 공산화는 아시아 제국의 문제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에 대한 불신감을 초래하는데 크게 한 몫 했습니다.


2. 돈
국방예산의 감축은 미군이 직접 쓸 돈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군사원조를 받아야 하는 한국, 대만, 필리핀 등에 제공되는 원조 예산도 의회에 의해 축소되었으며 이중 어느 한 나라 몫을 늘린다면 그만큼 다른 나라에 갈 돈이 줄어들어야 했습니다.


3. 우선순위
썩어날 만큼 많은 돈은 아니라 해도 "1억 달러나 되는 원조를 받았으면 대전차무기를 흘러넘치게" 갖출 수 있었을 것인데, 대전차무기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더군요. 그럼 그 1억 달러가 어떻게 집행되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1948년 8월 24일에 체결된 한미행정협정은 5,600만 달러 상당의 군사원조를 제공할 것을 규정한 바, 이는 5만 명 분의 소총 및 탄약, 2.36인치 로켓포 2천문(1900이라고도 함), 각종 차량 4만대, 경포 및 박격포 다수, 포탄 70만발에 해당했습니다. 이것들은 당시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던 주한미군이 보유한 장비들로서 미군이 철수할 때 현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 뒤로 제공된 원조들도 추가적인 중장비 도입보다는 기존 구형장비의 정비 및 수리부품 도입을 위한 금액에 불과했으며 이는 개전한 때인 1950년까지 마찬가지였습니다. 미 의회는 1950년 회계년도의 군사원조액으로 달랑 1,020만 달러를 지급하겠다고 했고, 한국에 대한 장비 제공에 대해 소극적이던 군사고문단조차 이건 너무 적다면서 "한국군이 최저한의 방위력을 확보하려면 올해 원조가 최소 2천만 달러는 되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원조액수는 겨우 1,097만 달러로 재조정되었을 뿐입니다. 그나마 전쟁 발발 전 집행된 건 통신장비 구입에 사용된 천달러 뿐-_- 그 결과 개전 당시 한국군이 장비한 무기의 15%, 차량의 35%는 가동불능 상태였지요. 더군다나 애초에 우리가 받은 장비는 신품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에서 굴리다 남은 중고였다는 점 역시 잊으면 곤란합니다. 중고품 중 쓸만한 걸 골라 보낸 것도 아니고, 주한미군이 보유하던 장비를 부대 단위로 통채로 인계받았으니 그 중에 폐급이 섞이는 건 당연지사.

게다가 원조는 많은 경우 현물이고, 설사 현금이 배정되더라도 "이건 어디에 쓰라"고 용도가 지정되어 나오는 거지 우리가 전체 총액 내에서 임의로 항목을 정해서 써도 좋다고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니들 필요한 데 맘대로 써도 좋다고 내줬다가는 언놈이 뒷구멍으로 처먹을지 모르거든요. 지금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가 제대로 안 되는 것도 지정한 용도대로 안 쓸까봐 그러는 거잖아요?

자, 그렇다면 이 부족한 예산으로 대전차무기를 장비하려고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간단합니다.

기존 장비의 유지 및 보충에 쓸 돈이 줄어들어 보유량과 가동율이 하락합니다.

대전차무기를 장비하는 대신 소총이나 야포, 수송차량이나 통신장비 같은 "정말 기본적인 장비"를 없애거나 숫자를 줄여야 한다면 쉽게 선택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남아돌아서 상관없는 것도 아니고 지금 가지고 있는 걸로도 부족한데....


4. 정보
하지만 그럼에도 작정만 했다면 예산의 범위 내에서 어느 정도 대전차무기를 장비하는 건 가능은 했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으니, "작정"을 하려면 "계기"가 필요한데, 이 경우 "계기"는 북한군이 전차를 가지고 있으니 그에 대응할 무기가 필요하다판단일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측은 북한이 T-34/85와 같은 강력한 전차를 장비했다는 정보를 믿지 않았다는 겁니다.

미국은 북한이 강력한 소련제 전차를 가지고 있다는 한국측의 주장을 "군사원조를 얻어내기 위한 뻥카"라고 생각했으며, 설사 북한군의 전차 보유가 사실이라고 해도 일본군이 사용하던 구식 전차나 경전차 수준일 것으로 여겼습니다. 왜냐 하면, 산이 많고 도로가 형편없는 한반도의 지형에서는 중전차(medium tank) 정도도 제대로 굴릴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판단은 어느 정도는 분명히 사실이었습니다. 전쟁이 터진 뒤 참전한 미군 전차들이 도로를 벗어나 논바닥에 처박히거나 얼어붙은 길에서 미끄러져 개천에 굴러떨어지는 사고가 한두 건이 아니었으니까요. 북한군 전차 역시 제한된 기동로 탓에 대열 끝의 한두 대만 어떻게 파괴되면 나머지는 꼼짝없이 갇힌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쟁 전에 미국이 한국군에 준 장갑차량은 정찰용인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나, 병력수송용의 M3 화이트 하프트랙 수준이었던 겁니다.

만약 고문단의 예상대로 상대할 북한군의 전차가 일본군 전차 수준이었다면, 미군이 이미 공여한 37/57mm 견인식 대전차포나 2.36인치 바주카로도 떡을 칠 수 있었습니다. 대전차지뢰를 깔 필요도 없고 측면이나 후면을 노릴 필요도 없어요. 대전차포가 아닌 50구경 중기관총으로도 전면을 때려잡을 수 있는 게 일본군 전차입니다. 따라서 군사고문단이 북한군이 보유한 전차가 일본군 수준이라고 판단했다면, 더 이상의 대전차장비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도 비합리적인 논리는 아닙니다. 실제 1950 회계년도 군사원조분에서 군사고문단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언급한 980만 달러분의 원조도 현재 국군이 보유한 것보다 사정거리가 긴 105mm M2 곡사포, 해군용의 3인치 함포, 공군용의 F-51/T-6/C-47 등의 항공기 도입을 위한 것일 뿐 전차나 대전차포 등의 도입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5. 과연 들여올 무기가 존재는 하는가?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한국군에 유효한 대전차무기를 어느 정도 추가로 제공하기로 결심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어느 정도 무기를 줄 수 있을까요? 물론 이미 보유한 것보다 강해야 하고, 공격용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어야 합니다. 그럼 M4나 M26 같은 전차, M18이나 M36과 같은 대전차자주포는 모두 논외입니다. 항공기도 당연히 제외하고 남는 건 결국 견인식 대전차포나 개인용 로켓 무기밖에 없어요. 자, 그럼 후보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당시 미 육군이 보유하고 있던 대전차무기 중 위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T-34/85를 파괴할 수 있는 장비는 하나도 없습니다. 미군이 가진 장비 중 한국군에 주지 않은 것으로 57/75mm의 무반동포가 있었지만 이것들 역시 북한군 전차와의 대전에서 처참하게 참패했죠. 죽미령 전투에서 스미스 대대가 장비하고 있던 대전차화기가 바로 75mm 무반동포와 2.36인치 바주카였습니다. 바로 여기서 "75밀리를 22발이나 쐈는데 안 터진" 북한군 T-34의 신화가 나왔습니다.
(단, 22발을 정말 누가 어디다 쏴서 맞혔는지는 논란의 여지 있음)

아, 물론 미국에게 57mm보다 큰 견인식 대전차포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전쟁 중 미국은 3인치(76.2mm) 고사포 포신을 105mm 야포 포가에 얹은 대전차포를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선 이미 퇴역한 뒤였습니다. 왜냐고요?

1945년 1월에 미군 수뇌부가 모든 대전차포를 자주포로 만들기로 결정했거든요.


게다가 미군은 무전기만 있으면 알보병도 전차를 상대할 수 있습니다. "공군!"을 부르면 되니까 말이죠(먼산).

결론적으로 미국에 "한국에 공여할 수 있는 (T-34/85에 대해서)효과적인 대전차무기"는 대전차지뢰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전차지뢰가 전차에게 줄 수 있는 피해는 궤도와 차륜을 파괴하여 기동력을 상실시키는 게 고작이고, 이건 각오하고 덤비면 57mm급의 대전차포나 2.36인치 바주카, 보병의 육박공격으로도 가능한 성과죠. 이때의 대전차지뢰는 항공폭탄까지 사용하는 요즘 IED와는 달라서, 걸려들더라도 전차 자체를 완전히 날려버리지는 못하는 무기였거든요. 당시 미군의 주력 대전차지뢰였던 M6A1에 든 장약은 TNT 4.45kg에 불과했습니다. 설마 이게 수십 톤 짜리 쇳덩이를 박살낼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분은 없겠죠?
더불어, 전쟁이 터진 후 위력을 발휘한 3.5인치 바주카는 전쟁 발발 시점까지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진지하게 "소련제 중전차(中戰車)를 단발에 박살낼 수 있는" 효과적인 대전차무기를 한국군에게 주고 싶다면, 선택의 여지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독일군으로부터 노획한 PAK40(75mm)이나 판저파우스트, 판저슈레케를 준다면 모를까 그거 외에는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전제를 지키면서 소련군 전차를 제대로 박살낼 수 있는 대전차병기가 존재하지 않아요.
하지만 미국은 노획장비를 그렇게 신경써서 분류 및 관리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줄 바에는 자기 걸 주는 게 낫지 남한테서 뺐은 물건을 다시 쓸 만하게 정비해서 충분한 수량을 갖춰 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것도 총기류도 아니고 대포 같은 복잡한 물건은 어려워요. 탄약에, 부품에...소련이야 동부전선에서 워낙 많이 뺐었으니 똘만이들에게 퍼줄 수 있었지만 말입니다. 소련은 대전중 노획한 독일제 총기류 등등을 북한이나 북베트남에 잔뜩 뿌렸고, 북베트남은 PAK40도 받았을 겁니다 아마.


6. 그럼 준 후에는?
대전차무기를 어떻게든 구해서 줬다고 칩시다. 하지만 제대로 된 훈련 없이는 뭘 줘도 도로아미타불입니다. 실제 전쟁이 터졌을 때 한국군이 연출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57mm 대전차포를 도로 한가운데 방열하고 쏘거나 지뢰를 트럭 뒤로 내던지는(이 포스팅 참조) 따위의 짓을 해서야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리가 없지요. 이동중에 기습이라도 받았다면 도로 한가운데 대전차포를 방열하는 수밖에 없을 수도 있지만, 공격전도 아닌 방어전에서 그런 경우는 일어나기 힘듭니다. 방어전에서 제대로 대전차포를 운용하려면 지형을 이용해서 구축한 진지를 점령하고 가능한한 적 전차의 측면을 노릴 수 있도록 준비하는 훈련이 필요한데, 그런 게 전혀 안 되어 있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더 센 대전차무기를 가진들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요? 더구나, 그 대전차무기가 군대에 있어서 더 기본적으로 필요한 총기, 탄약, 피복, 차량, 통신장비를 희생하고 얻은 거라면?


7. 그러니까...
요약하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 미국은 한국에 관심 자체가 별로 없었으며
- 설마 한국에 전쟁이 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 북한군이 침략 의도를 가지고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불신했지요.

따라서 미국 의회와 정부는 한국군에 전쟁준비를 제대로 갖춰 줄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시아보다는 유럽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죠. 정말로 아시아에 관심이 있었다면, 왜 한국을 방치했으며 대만의 패퇴를 방관했겠습니까? 전쟁을 통해 군수산업을 활성화하기를 원한다면, 한반도보다는 중국대륙에서 싸우는 편이 더 큰 시장(...)을 확보해주지 않나요? 게다가, 국민당은 막강한 차이나 로비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까?

실제 한국전쟁 초기의 전투사례를 보면 강력한 장비가 없어도 병사들의 훈련과 지형에 맞춘 전투준비를 한 부대는 더 효과적으로 전차에 맞설 수 있었습니다. 6사단의 경우 지형을 이용하여 진지를 구축하고, 대전차포를 이용 준비된 진지에서 적 자주포의 축면을 타격함으로서 공격에 성공했습니다. 또한 북한군의 사각을 이용하여 조직적으로 공격을 감행함으로서 육박공격도 성공시켰죠. 영천전투에서는 심지어 소위 한 명이 무려 전차 6대를 혼자 해치우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해당 장병의 기술과 의지, 그리고 주변 여건에 따라서는 수류탄만 가지고도 이런 전과를 올리는 게 가능했어요.

까놓고 말해 국군이 개전 초에 무지막지하게 밀렸던 건 전차 자체가 가진 위력 뿐 아니라 전차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국군 장병들의 공황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북한군 전차가 일본군 전차 수준이라고 생각한 미군 고문관들은 "우리가 준 대전차포면 어떤 전차도 깨부술 수 있다"고 뻥을 쳤고, 독일군과 일본군을 무찌른 세계 최강의 군대인 미군들의 말을 믿고 있던 국군 병사들은 대전차포를 맞고도 멀쩡히 굴러오는 전차 앞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초에 고문관들이 북한군에 소련제 중전차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57mm 대전차포 따위로는 T-34의 정면을 관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가르쳤다면 개전 초기에 국군 장병들이 T-34 쇼크에 빠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참전 초기의 미군도 마찬가지고요.

결국 실전을 치르고 시일이 흐르면서 전차가 무적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히 퍼져나가자 공황도 사라졌고, 전차와 자주포를 구분하여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다만 이때쯤엔 북한군의 전차 자체가 소진되고 이쪽의 지원도 늘어나 훨씬 편하게 전차를 상대할 수 있게 되었죠.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어리석음은 누구나 저지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몇 푼 안 들여서 막을 수 있는 일을 의도적으로 막지 않아서 나중에 큰 비용을 들이게 했으니" 그 놈이 일부러 저지른 거라고 하면, 남대문은 경비를 미리 강화하지 않은 이 정권이 불지른 거고 임진왜란은 수군을 제때 준비하지 않은 선조의 책임이며 9.11 테러는 공항의 보안검색 시스템을 제때 강화하지 않은 부시 행정부 탓입니다. 게다가 히틀러가 조약을 무시하고 라인란트를 점거했을 때 곧바로 라인란트로 진군하여 독일군을 축출하고 히틀러를 실각시키지 않은 프랑스야말로 2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근원이 되는 셈입니다. 같은 논리 아닌가요?(먼산)

짧게 간단하게 쓰려던 글이 항목 아래쪽으로 내려올수록 이상하게 길어졌네요, 괜히 길게 쓰다가 만들어넣은 오류나 없나 모르겠네;; 쩝;; 뭐, 어쨌거나 동일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하기 마련인지라, 남의 의견을 놓고 더 이상 가타부타 할 생각은 없습니다. 본문에서 제시한 타인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설명을 위한 인용이지 해당자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니, 그 점 양지하시기를.

뭐 하여간 잘들 읽으시고 휴일 마무리들 즐겁게들 하시기를 빕니다~~^^/



by 슈타인호프 | 2010/07/04 22:06 | 한국현대(~20XX) | 트랙백 | 핑백(3) | 덧글(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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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대한 소련의 군사원조와 비교하여 수준 이하였던 것에서 입증된다.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저는 작년에 2개의 포스팅을 했던 바 있습니다. 미국은 왜 한국에 대전차무기를 주지 않았을까.(2010-07-04) "가난한 소련"은 "미국과 달리" 자기 돈을 들여 북한에 무기를 주었을까?(2010-07-04) 물론 제 포 ... more

Linked at m1a1carbine's 방치.. at 2011/05/23 13:54

... 제시되어 왔습니다.아래의 포스팅은 저보다 더 확실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http://nestofpnix.egloos.com/4425467</a><a title="미국은 왜 한국에 대전차무기를 주지 않았을까." name="4425467">미국은 왜 한국에 대전차무기를 주지 않았을까. -슈타인호프님-이런 반복적인 상호 도발과 월경 전투행위하에서 ... more

Linked at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는 둥지.. at 2011/05/24 12:01

... . 왜냐고요?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는, 이승만 정권의 북침 방지에도 비중을 둘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저번 포스팅에 링크한 미국은 왜 한국에 대전차무기를 주지 않았을까.에서도 분명히 적었는데, 미국으로서는 공격용으로 쓸 수 있는 장비를 제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전차 운용이 곤란한 한반도의 지형적 문 ... more

Commented at 2010/07/04 22: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4 22:18
예? 이 정도가요?-_?;;;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4 22:22
괜찮으시면 링크 하나만 알려주시렵니까?
Commented by 22nd at 2010/07/04 22:17
M-18 57밀리 RR은 HEAT탄 사용시에는 충분히 T-34/85를 정면에서 상대가 가능하다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문제는 HEAT가 없어서 HE를 T-34에 쐈던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자세한 설명좀 부탁드립니다 ^^

http://gall.dcinside.com/list.php?id=gun&no=15732&page=1&search_pos=-11509&k_type=0100&keyword=57%EB%B0%80%EB%A6%AC&bbs=

디씨링크를 근거랍시고 다는것도 많이 민망하지만, 리플을 다신분이 다신분인지라...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4 22:20
문제는...그게 한국군에 지급이 안 됐을 겁니다. 한국군이 가졌던 57밀리는 견인식 대전차포였던 M1이었으니까요. 57밀리 무반동포는 지급이 안 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Commented by 22nd at 2010/07/04 22:41
국군이 가지고 있던 대전차화기가 57밀리 대전차포와 2.36인치 바주카 뿐이라는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궁금한것은 57밀리 무반동포의 위력이라서 말입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4 23:47
문제중년님 의견이라면 충분히 신용하셔도 됩니다^^;
Commented by Montcalm at 2010/07/04 22:20
뭐 미국이야 .. 소련과의 전면전을 가정했을때 한국을 포기하고 부산항 등 지역에 핵공격으로 항구를 못쓰게 만들어버리자가 작전계획에 연구되고 있었으니뭐 .. 중요성이야 말안해도 ..OTL
Commented by Montcalm at 2010/07/04 22:22
그리고 마지막대목에서 .. 그점에서 본다면 프랑스랑 벨기에에 제동을 걸었던 영국역시 공동 책임을 (퍽)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4 22:23
그런 면에서 맥아더와 트루먼의 결단이 대한민국을 구한 셈이죠.
오오 그런...!!!! 영국도!!
Commented by Montcalm at 2010/07/04 22:27
아무래도 허세 장군님이 크게 일을 안벌이셨으면 .. 진짜 뭔일이 나도 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면에서 은인은 은인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4 22:27
그러게 말입니다.
Commented by Montcalm at 2010/07/04 22:32
그렇기 때문에 .. 결과론으로 보는게 위험한 것이겠죠 .. 그리고 그런식으로 생각하다보면 뻥카를 쳐서 미국에 불신을 심어준 리박사는 혹부리 수령이 파견한 간첩이라는 이상한 논리까지 나올지도 모릅니다 ..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4 23:47
두려워지는군요;;
Commented by 누군가의친구 at 2010/07/04 22:25
포스트 읽고나니 자기책에 만점주면서 남침유도설 진리를 주장하며 정신승리 포스트 올리는 누군가가 생각나는군요. 결과에 끼어맞추는 논리는 지적설계론이나 유사역사학과 다를게 없는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4 22:28
타인의 의견은 타인의 의견. 각자 자기 주관에 따라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별로 개입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그냥 제 이야기를 잠깐 했을 뿐 :)
Commented by Allenait at 2010/07/04 22:31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한국에게 무기 주면 이승만이 그 무기갖고 북한을 쳐들어갈지도 모른다' 하는 이유로 미국에서 무기를 안주려고 했다- 라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Commented by Montcalm at 2010/07/04 22:34
사실 정설로 받아들여지는거 아니었나요 ? .. 돈도없고 무기줘봤자 .. 이북에 쳐들어갈게 뻔하다 .. 이런거보면 정보체계라는것도 아무리 좋은 하드웨어나 시스템을 가져도 운영하는 사람들이 손놓고있으면 OTL
Commented by NoLife at 2010/07/05 18:23
미군정이 세우려 한 한국 지도자의 조건은 1. 반공주의자 2. (미국에)순종적인 인물상이었는데 마땅히 뽑을 인물이 없어서 순종적은 아니지만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이승만을 내세웠었죠.

그리고 이승만 본인은 미국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늘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군사 원조해달라고 해서 미국을 뒷목 부여잡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죠...
Commented by 만슈타인 at 2010/07/04 23:03
결국 종합적 문제이군요. -_-;;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0/07/04 23:15
북한군 전차가 일본군 전차 수준이라고 생각한 미군....이것도 다 일본 때문(?)이군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10/07/04 23:18
사실 미국이 준게 많이 부족하긴 했지만 당시 한국군의 훈련상황(38도선에서의 전투와 후발 빨치산 토벌로 50년에 들어서야 대대급훈련 시작, 어라? 57mm 대전차포는 연대급 화기 아니었나...)으로는 그나마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웠죠.
Commented at 2010/07/04 23:3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정호찬 at 2010/07/04 23:39
그분은 그냥 맹신자니까 뭐......

하지만 돈 좀 들이면 막을 수 있는 걸 안막고 돈 더 써서 전쟁했으니 남침 유도 드립은...... 왜 살까.
Commented by jeltz at 2010/07/04 23:49
글 마지막 부분을 읽으니 아랍 민담이 떠오르네요.

주하란 사람의 집에 어느날 밤 도둑이 들어와 탈탈 털어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와서 주하에게 '문단속을 제대로 안한 탓' 이라는 둥 '니가 그동안 잘못한걸 벌받는 거라는 둥' 한소리씩 했었죠.

이에 주하가 마을 사람에게 답하기를

'그럼 도둑놈은 아무 잘못도 없단 말인가?'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4 23:51
그러게 말이죠. 도둑맞은 당사자의 잘못은 어디까지나 지엽적인 거고, 진짜 나쁜 놈은 도둑인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4 23:50
Allenait//그건 사실일 겁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맞을 걸요.

Montcalm//뻥을 너무 쳐서...;;

만슈타인//결국 한국이 너무 후진국이었다는 결론으로...;;;

MessageOnly//실제, 북한이 매달려서 얻어내지 않았다면 소련이 전차를 주지도 않았을 거니 완전히 불합리한 예측도 아니긴 했습니다-_-;;

행인1//그나마 있는 병력을 훈련시킬 시간도 없었으니....

비공개//아, 中전차입니다. 실제 쓰이는 용어지만 오해의 여지가 쩔긴 하군요-_-;; 본문을 고치는 게 낫겠네요.

정호찬//"할 수 있는 대비"를 안 했다는 점에서 오해를 덮어써도 할 말이 없는 문제인 건 맞는 듯 합니다 ㅋ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10/07/05 00:21
잘 읽었습니다. ^^ 사실 그러고보면 결국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의 인식(북한의 전차에 대한)'으로 모이는 것 같기도 한데, 국군도 상태가 좋은 것은 아니었으니;;
Commented by 미연시의REAL at 2010/07/05 00:32
에효.. 결국 슈타인호프님이 정리해주셨네요.. 지식이 딸리는 제입장에서는 관련 자료도 부족해서 엄두도 내지 못한 포스팅이었는데 말이죠..
Commented by Ruum at 2010/07/05 03:02
내공이 부족한 저도 오죽하였겠습니까.(..)

근데 자료를 내놓아도 그 사람 정신승리하는 것 같습니다요. 관통력에 관련하여 일반적인 수치를 내놓아도 무슨 그게 구라라면서 증거는 하나도 내놓지 않더라는.

그냥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를 외치고 싶었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5 11:16
이론상의 최대 관통력 수치가 실전에서 늘 발휘되는 게 아닌데 말이죠. 포탄의 보관상태도 그렇고 피탄경사각이나 명중각도 같은 걸 다 따져봐야 하는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Ruum at 2010/07/05 13:03
그 사람은 일반 수치를 내놓아도 무조건 "저것들이 교모하게 정보를 조작해서 최소나 유효 수치를 최대로 포장한다능.." 이런 식으로 주장하지 말입니다. --;

분명히 포탄의 보관상태나 기타 등등을 따져서 이야기를 해도 못 알아듣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5 14:47
타인의 근거를 받아들이는 것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이야기니까요.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10/07/05 00:44
저 시절엔 미육군 자체도 엉망이었으니 한국군에게 뭔가 쓸만한걸 주는건 미국 입장에서 낭비가 아닐 수 없었을 겁니다. 한국전쟁 발발당시 미육군의 중형전차(M4A3E8)의 경우 42%가 고장으로 가동불능이었고 이것보다 사정이 더 나빴던 경전차(M24)는 73%가 가동불능이었다고 하죠;;;; 당장 주일미군만 하더라도 전차가 부족해서 사단 당 1개 중대를 굴리는 실정이었는데 미육군이 뭐 별수 있겠습니까.
Commented by 네모선장 at 2010/07/05 01:17
사실 1945-50년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을 보면 한국전쟁이 터지자 마자 참전을 결정한 것 자체가 엄청 신기한 일이긴 합니다. 소(중국)는 그냥 뺏겼으면서 닭다리(한국)는 굳이 먹겠다고 피터지게 싸운 꼴이니 납득이 안 가긴 하지요. 전쟁 전에 한국에 무기를 많이 준 것도 아니고. 중국백서에서 장제스 정권이 부패해서 졌다고 비판했지만, 그 사실 자체는 맞는 말이라 해도 그게 국공내전에 참전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변명은 안 되고요. 이승만 정권이나 고 딘 디엠 정권은 뭐 깨끗했나... (...)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국이 한국전쟁에 그토록 신속하게 참전하기로 한 쪽이 이해가 안 가요. 그래서 남침 유도설도 나오는 듯 하고요. 쩝.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5 01:45
들꽃향기//겹치고 겹친 거라고 봐야죠.

미연시의REAL//뭐 여기도 빠진 이야기 많을 겁니다. 정말 잘 아시는 분은 밑에...

길 잃은 어린양//그러게 말입니다;;; 처음 리플도 봤는데, 하지가 그래도 신경을 써 줬더군요.

네모선장//이것까지 놔두면 안되겠다...의 분수령이었겠죠. 한국 이후에는 이 나라 저 나라 다 손댄 거 보면 말입니다.
Commented by SKY樂 at 2010/07/05 01:46
1950년 상황을 유추해보자면, 이 시기에 미국의 대외전략의 중심은 슈타인호프님 말씀처럼 '유럽' 정확히 말하면 '독일'이었죠. 간단히 말하면 '침략'은 동쪽이 아니라 서쪽에서 일어날 것이다..라고 예측하고 전략을 기획했는데, 갑자기 동쪽에서 전쟁이 나버렸으니... 그래서 부랴부랴 참전결정을 내리고 '공산혁명'을 두려워하는 대다수 국가들이 여기에 동참한 것...아마 1950년 상황이 이렇지 않았나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Ruum at 2010/07/05 02:58
설마설마 했는데 T-34/85에 대한 보유 여부조차도 제대로 몰랐었단 말입니까.(....)
근래에 준동하는 '남침유도설'의 신봉자의 주장에 달린 전제 중 하나가 바로 '미쿸은 T-34/85가 북한에 배치된 것을 알고 있었다!'였는데 말이죠. 스스로가 어설프게 접근하면서 타인에게는 반박을 하려면 논문을 쓰라니 뭐라니 하면서 잘난 척을 하던데, 이 글을 보고 반응이 몹시 궁금합니다.

그리고 예전에 천안함 모 괴소문처럼 어떤 분의 고의적인 침몰 음모였다면 이제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푸른 지붕의 주인님은 그야말로 세계대통령 '친구'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과 같이, '남침유도설'의 신봉자인 그 사람의 주장은 결국에는 '미국은 킹왕짱이라서 전쟁을 준비하고 유도했다.'라는데.... 그 미군 상황이 안드로메다였다는 사실은 그냥 무시하시더군요. 예시로 한국전 초기에 북한군 무시하고 채피 경전차 집어넣었다가 피 보고 나와서 부랴부랴 퍼싱 집어넣은 것을 알려줬더니, 바로 Q의 정신승리가 등장하지 말입니다. --;

Commented by 윤현철 at 2010/07/05 10:14
"길잃은 어린양"님 블로그에도 북한군의 전차보유사실에 대하여 미군이 오판한 내용이 나옵니다.
미군의 경우에는 북한이 보유중이라는 전차에 대하여 없다고 믿고 있더라도 일본군 中전차 '치하'라고 판단합니다. 이유는 중국의 국공내전당시 일본군이 사용하던 각종 무기들을 국민당과 공산당이 서로 노획하여 피터지게 싸운일 때문입니다. 당시 일본군 전차중에는 나중에 중국공산당으로 부터 공신호(功臣號)라고 불리는 놈까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공산당에서 북한에 무기지원을 한다면 치하라고 판단하는것도 나름 합리적입니다. 그리고 본문에도 나오지만 한반도 지형에서는 15톤전차인 치하라면 모를까, T-34/85는 운용하기 힘든것으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P.S 그리고 스미스대대의 참극에서 T-34전차 이야기는 아무리봐도 이상하다고 생각됩니다. 전차후면에서 대전차무기를 날려도 터지지 않았다는 증언에는 너무 이상하더군요.
Commented by Ruum at 2010/07/05 13:01
헛, 저도 그 생각을 했었습니다;
공산당 쪽에서 전차부대가 일본군 전차를 다수 노획해서 사용하던 사진을 얼마 전에 본적이 있었습니다.
Commented at 2010/07/05 03: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Red-Wolf at 2010/07/05 10:36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결론은 한국에 대한 인식부족이 가장 큰 패착요인이라는 거군요 그런데 아직도 남침유도설 그 낡아빠진떡밥을 주장하는 인간들이 있다는게 놀랍군요
Commented by 대사 at 2010/07/05 10:45
역시 6.25전쟁 당시 T-34 전차가 대단한 쇼크를 준 물건인 건 틀림없는 것 같네요..
Commented by 캐안습 at 2010/07/05 10:53
북베트남에 공여된 PAK40이 하노이시내에서 퍼레이드하는 장면이 있지요. 만일 미군이나 남베트남군이 경계선을 넘어서 북진하고 그들의 패튼을 PAK40이 방어하는 장면이 나왔다면 대전 이후에 나온 패튼이 독일군 전차로 출연하는 유럽전선 영화의 실사화가...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5 11:22
SKY樂//아마 대충 그런 상황이었을 겁니다.

Ruum//뭐 예상하신대로의 결과인 듯.

윤현철//75MM 무반동포가 후면을 제대로 때렸다면 안 터진 게 이상하죠. 하다 못해 한 발만 캐터필러를 맞췄더라도 일단 멈출 텐데...아마 미군도 당황해서 어디에 어떻게 쐈는지 모른다는 얘기일 겁니다. 하지만 일단 몇 발인지는 몰라도 "맞았는데 안 터졌"다는 건 분명하고, 국군이 들고 쐈더라도 별 차이는 없었을 듯 합니다.

크세노폰//이래저래 갖가지 요인이 겹친 거죠 뭐. 역사에서 단일요인으로 결정된 사건 따위는 없지 않겠습니까.

Red-Wolf//본문에도 적었지만, 동일 사실에 대한 해석은 각자 나름이니까요. 며칠 전 최저임금 논쟁 때도 같은 액수를 놓고 충분하다 부족하다 하면서 싸우는 거 보셨잖습니까.

대사//그거야 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캐안습//음, 제가 잘못 본 게 아니었군요. 저도 같은 사진을 봤는데, 다시 찾으려니 어디 있는지 기억이 안 나서 본문에는 좀 막연하게 썼습니다.
Commented by 윤민혁 at 2010/07/05 13:05
각종 대전차화기에 의한 T-34/85 격파 가능성 문제라면 일단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데...

1. 대전차고폭탄은 착탄시 입사각에 의한 탄도 변화가 없으므로, 도탄이 없는 대신 입사 방향에 따라서는 관통하고도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2. 대전차고폭탄은 관통시 탄자 자체가 대형 파편이 되고 관통하면서 대량의 파편을 비산시키는 철갑탄과 달리, 메탈제트를 중심으로 해서 매우 좁은 범위에만 피해를 입힌다.
3. T-34 계열 전차는 크리스티 현수장치 특유의 구조 때문에 차체 측면 전체가 일종의 중공장갑 구조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관통시 파편이 비산되는 단계와 승무원실 및 탄약적재구획이 완전 격리되어 있고, 메탈제트의 관통력 역시 그 중공장갑 거리만큼 상쇄된다.


이 문제들을 확실하게 커버하면서 T-34/85를 파괴하거나 최소한 내부에 피해라도 입히려면, 일단 2.36인치나 75mm, 57mm 무반동총 모두 명중시켜야 하는 지점이 극도로 제한됩니다. T-34의 포탑과 차체가 모두 12시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포탑에 한해서 2~4시, 6시, 8~10시 방향으로 수직 입사각은 거의 0도로 입사하거나, 차체는 5~7시 방향에 한해서(즉, 후방 타격으로 국한) 가능한 한 수직 입사각이 -10도 이상(이래야 장갑판에 대해 30도 각도 정도로 입사하게 됩니다.)이어야 하죠. 이 경우에도 관통 후 메탈제트의 잔여 운동에너지가 차내에 확실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특히 후방에서 사격하게 되면 메탈제트는 간신히 트랜스미션 커버에나 도달할 수 있으며, 트랜스미션 자체에 타격을 줄 수 있을지 여부는 불분명합니다.


여기에 한국군의 테스트 결과지만, 궤도에 대한 대전차고폭탄의 위력은 생각보다 부족합니다. 비록 M48의 더블핀 더블블록 궤도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90mm 무반동총과 RPG-7(중국제)이 명중했음에도 기동에 영향을 줄 만한 심각한 타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게 2005년에 있었던 우리 군의 테스트 결과죠. 둘 다 60년대의 무기로, 대전차고폭탄의 위력이 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 시절의 것과 격이 다른 무기체계인데도 저런 결과가 나왔으니, 한국전 당시 무기체계들에 의한 궤도 타격은 한두 발로는 생각보다 타격을 주기 어렵다는 결론이 됩니다. 차라리 57mm 대전차포의 철갑탄이라면 1발로 궤도에 확실한 타격을 줄 수 있겠습니다만... (T-34/85의 측면장갑 역시 포탑을 제외하면 57mm 대전차포의 철갑탄 쪽이 더 유리합니다. 그나마 45도라는 입사각 때문에 도탄이 발생할 확률 쪽이 더 높고, 그나마 명중률이 나오는 APCBC로는 위력도 부족하기 쉽습니다.)


하여튼 이 문제 때문에라도, T-34에게 스미스 대대가 쏘아댄 대전차 로켓 22발 중 상당수는 명중했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75mm나 57mm 무반동총으로 정면에서 명중탄을 맞고도 꿈쩍도 하지 않은 것도 이상할 건 별로 없고요. 여기에 스미스 중령은 1960년대의 회고에서 2.36인치 로켓포탄의 열화 가능성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고, 이것 역시 충분히 고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Commented by Ruum at 2010/07/05 13:11
오오.. 윤민혁님이시다!

그런데 질문이 있는데요, 그 2.36인치 로켓포로 티거를 격파한 사례가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진짜인건가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5 14:57
윤민혁//앗, 상세 설명 감사합니다. 어떤 전차든 차체 표면에서 내부 구동부 부품까지 거리가 또 있다는 걸 깜빡했군요. 메탈제트가 철갑탄처럼 깊숙이 뚫고 들어가는게 아닌데 이런이런 F--
하여간 당시에 실전배치된 미제 대전차화기로 T34/85에 타격을 주기 힘들다는 사실은 분명한데 말입니다.

Ruum//바주카가 티거 잡은 건 사실입니다. 티거는 측면장갑이 피탄경사 없이 수직이라서 좀 취약했고...그리고 위키에 나온 사례인데, 럭키 샷으로 운전병의 관측창을 명중시켜 잡은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Commented by Ruum at 2010/07/05 15:36
그런데 지금 남침유도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윤민혁님이 3년 전 논쟁에서 발리고 결국에 2.36인치 로켓포는 무능하다고 인정했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헌데 라주바예프 보고서는 뭔가요? 그 사람이 꺼내들기 전부터 들어본거 같은데...;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5 15:43
2.36인치는 T-34/85 격파에 무능한 거 맞습니다. 주저앉히려면 정말 엄청난 배짱과 숙련된 기술, 표적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니까요. 게다가 가능하면 "탄막"을 형성할 필요가...-_-;;

라주바예프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 주재 소련 대사이자 군사고문단장입니다.

Commented by Ruum at 2010/07/05 16:40
2.36인치의 무력한 모습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_-;
갑자기 언급이 되서 깜짝 놀랐거든요.

아무래도 문제의 인간이랑 놀아나다보니까 아무래도 제 생각까지 꼬이는 것 같습니다. ==;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5 18:39
뭐 본인이 그렇게 믿겠다는데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Commented by 윤민혁 at 2010/07/05 19:58
일단 2.36인치에 의한 T-34/85 파괴사례는 "아예 없다"고만 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일단 3년 전 논쟁 때도 최소한 돈좌 사례는 꽤 있다고 언급해 두었고, 이것들 대부분이 회수되어 단기 수리를 거쳐 전열에 복귀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일시적인 효과까지는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서 거둘 수 있었다는 정도랄까. 누구와 논쟁하시는지는 몰라도 일단 완전히 무능하지는 않으나 매우 까다롭고, 탄막으로 쏘아대다시피 해서 승무원의 사기를 꺾거나 아니면 재수 좋게 궤도를 끊어 기동불능을 만드는 게 한계라고 봐야죠. 그런데 그때 제가 옹호했던 건 2.36인치가 아니라 57mm 견인식 대전차포였을 텐데... 그때 처음부터 2.36인치가 T-34 격파를 달성하기는 어렵고 고작해야 제한적인 손상을 입히는 것이 한계다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제가 발렸다고 할 싸움은 아니었을 겁니다. 2.36인치에 의한 적 전차 저지 보고 몇 개를 격파 보고로 간주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문제였다고 기억하거든요. 저도 격파 보고로 간주한 건 아니고, 아마 회수 후 재투입이 되었느냐 아니냐의 문제였을 겁니다. 디씨인사이드에서 있었던 비슷한 토론하고 혼동이 와서 좀 헛갈립니다만...


그리고 최초 질문인 바주카의 티거에 대한 유효성 문제. 2.36인치 M1바주카로 티거를 실전에서 격파한 것으로 "주장"하는 사례가 시칠리아에서 있긴 합니다만(호프님이 언급하신 사례), 정작 당시 현장에 있었던 티거 부대의 차량 손실 보고가 없습니다. 비슷한 시기 동부전선에서 흔히 있었던 일과 마찬가지로 4호 전차를 티거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제법 된다고 봐야죠. 그 이외의 사례 역시 미군 보병이 티거와 조우할 일 자체가 거의 없었고(상대적으로 쾨니히스티거와 접촉할 일은 더 많았습니다.), 대부분은 판터 또는 4호전차를 티거로 착각한 것들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판터에 대해서조차도 바주카는 위력이 충분치 않아서, 분명히 노획차량에 대한 실험에서는 충분한 내부살상력을 보인다고 판단되었으나 실전에서는 사실상 완전히 무력하다시피 한 수준의 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형편은 M1 바주카만이 아니라 후기형인 M9바주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5 22:11
생각보다 더 형편없었군요. 티거 쇼크의 영향도 감안하긴 해야 했겠지만 말입니다.
Commented by 윤현철 at 2010/07/06 00:20
역시, 윤본좌님의 말씀에 이해가 쏙쏙 되네요.

저는 전차의 장갑이 가장 약한 후면에서 대전차무기를 날려도 멀쩡했다는 기록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그러고 보니 6.25때 T-34격파원인 중에 절반이상이 공군이었다는 기록도 수긍이 가네요.
Commented by Ruum at 2010/07/06 01:20
어느 분과 논쟁을 했는지는 보여드리기가 부끄러워서(...)
그 사람 주장은 둘째치고 제가 부족한 지식으로 여럿 실수한게 한 둘이 아닌지라;

2.36인치 로켓포가 가진 효과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저로서 이번에 크게 배우고 갑니다. (__)
Commented by 윤민혁 at 2010/07/06 02:01
T-34/85의 격파 원인 중 절반이 공군이라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는 11% 내외입니다. 북한군 전차 손실 이유 4위죠. 1위 전차포(97대, 37.9%), 2위 승무원 유기(63대, 24.6%), 3위 바주카 및 무반동총(35대, 13.7%), 4위 항공기(29대, 11.3%), 5위 포병화력(28대, 10.9%), 6위 수류탄(3대, 1.2%), 7위 지뢰 (1대, 0.4%)였습니다. 절반 가까이가 공군이라는 설은 1950년 10월의 조사고, 위의 조사는 이 전과를 포함해서 이후에 추가로 발생한 사례를 총정리한 1952년의 조사입니다. 둘 다 38도선 이남에서 발견된 잔해에 대한 조사 결과지만, 1차 조사 때는 총 239대를 조사했고 2차 조사 때는 252대를 조사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두 조사결과(육본의 한국전쟁사 웹페이지 링크 참고. http://www.army.mil.kr/history/%B9%DD%B0%DD%C0%DB%C0%FC/tank-reason.htm )를 연계해서 살펴보면 꽤 재미있는 결론이 나옵니다. 공군 전과는 거의 대부분 전차포 및 바주카나 무반동총으로 돈좌되거나 이미 격파된 것들을 공군이 다시 한 번 타격한 것이고, 이때 사용된 무기체계는 대부분 네이팜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네이팜에 의한 타격 특성 - 철저하게 태워버리는 바람에 연료 및 잔존 탄약의 유폭 등을 불러 원형이 심하게 훼손된다는 - 때문에 전차의 실제 파괴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이와 같은 전과 혼란의 원인이 될 것이고, 여기에 덤으로 항공로켓 및 일반 폭탄에 의한 전과 역시 상당수는 이미 파괴되거나 버려진 전차, 즉 고정표적에 가해진 것이었다는 결론이 되죠. 그리고 덤으로 생각보다 많은 적 전차가 바주카나 무반동총에 당했음이 입증되기도 합니다. 물론 대부분은 3.5인치 M20 수퍼 바주카일 수밖에 없습니다만... 대전 전투에서 2.36인치의 것으로 추정되는 완파 전과가 1대 있기 때문에(물론 3.5인치가 함께 쓰인 전투이기 때문에 잘못 파악된 것일 가능성은 비교적 높습니다.), 의외로 전쟁 초반 항공공격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여겨진 전차 격파전과 중 일부는 한국군의 2.36인치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셈이죠.

이런 추측은 1943~1944년에 영국군과 미군이 실시한 독일군 기갑부대의 주요 장비손실 원인 분석 결과와 일치합니다.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blog.periskop.info/20?category=3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6 09:59
윤민혁//출입구를 통해 내부에서 수류탄이 터진 정도의 피해로는 승무원들이 사상할 뿐 전차 자체는 대개 큰 손실이 없는거로군요? 국군이 수류탄을 집어넣은 전차가 3대보다는 많은데 수류탄으로 인한 손실이 그거밖에 안 된다면, 전차의 기계장치 자체에는 별 피해가 없어서 회수 후 인원만 보충해서 계속 굴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네요.
Commented by 윤민혁 at 2010/07/06 15:53
사실 수류탄으로 전차를 파괴할 방법은 없습니다. 저것은 "유기 전차 중 수류탄 및 유사한 공격수단(즉 육탄공격)에 의해 내부 인원이 살상된 후 회수되지 않았거나, 항공공격 또는 기타 타격수단으로 완파된 상태에서조차 수류탄 공격으로 파괴된 것이 확인될 만한 흔적이 남은 잔해"를 가리키는 거죠. 해당 항목 전체를 통틀어서 "육탄공격" 항목이 따로 없는 것과도 관련이 되는데, 육탄공격으로 파괴된 전차는 사실 어지간해선 회수 후 수리를 거쳐 곧장 전장 투입이 가능한 상태기 때문에 확실한 후속 조치를 거쳐야 하는데, 초기작전간 발생한 육탄공격 파괴 전차는 대부분 저렇게 회수 처분이 됐거나 아니면 방치 상태에서 항공공격 및 기타 공격수단으로 완전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방치 상태에서 항공공격으로 완파된 상태에선 육탄공격에 의해 파괴된 건지 아니면 다른 수단에 의해 파괴된 건지를 명확히 알기 어려웠던 게 문제인 셈입니다.

실제 육탄공격에 의한 전과 중 상당수는 1952년 조사에서조차도 승무원 유기와 포병화력, 항공기 항목 속에 묻혔다고 봐야 할 겁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차포 사격이나 바주카 및 무반동총(즉 대전차포)에 의한 파괴와는 달리 앞의 세 항목은 전문적인 대전차공격수단이 없는 상태에서의 육탄공격과 병행해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쉽사리 혼동할 수 있거든요. 여기에 저는 개전 첫 3일 동안 발생한 북한군 전차 손실 중 상당수는 수리를 거쳐 전선에 재투입되었다고 보고 있고요. 개전 전 북한군 전차 보유량 문제와 연계해서 생각해 본 문제가 있는데, 그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해 볼 기회가 있을 겁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6 16:11
예, 알겠습니다. 상세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maat at 2010/07/06 02:42
1950년 상황도 고려해야 도리껄요.
당시 미군은 실제적으로 노련한 2차대전 참전자들이 거의 전부 전역하고
실제로 거의 병아리수준의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4년간의 전쟁에 지친 고참병들이 지치기도 했고
생가밖으로 오히려 평시에는 무료한 일상에 제대를
택한쪽이 대부분입니다.
전쟁이 나자 다시 징집되기도하고 자원하기도하고 해서
다시 전쟁에 복귀한 것은 50년 후반 부터죠.
주로 육군 이야기 입니다.
또 하나는 당시 탄약이 거의 대부분 1945년 이전에 생산된 잉여
탄약이라 장기 보관된 상태라 상태가 심히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탄약의 장기 보존은 상당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데
그게 제대로 됐느냐는 좀 의심스러운 문제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06 09:56
동감입니다.
Commented by KittyHawk at 2010/09/27 09:35
간혹 드는 생각입니다만, 한국 정부가 기부금까지 모으는 등 어떻게든 노력했다면 이스라엘보다 편하게 전차를 확보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더군요. 영국 등에서 노획해 사용한 판터 등을 말이지요. 프랑스 같은 경우엔 전쟁배상 목적으로 독일로 하여금 판터, 야크트 판터의 부품을 생산케 하기도 했다고 하니 미국이 제식장비를 안 주겠다면 유럽 방면 연합국들이 어떻게 처리할지 골치이던 방치된 독일제 장비를 고철값으로 들고 왔다면... 스위스, 체코 같은 경우엔 Bf-109, 헤처를 전후에도 만들어 쓰거나 팔기도 했으니 심혈을 기울여 확보를 시도했다면 불가능하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거기에 더해 소련군과의 전투로 단련된 독일 측 퇴역 전차병이나 지휘관들을 초빙해 경험이 축적된 교육과 훈련도 받았더라면...
Commented by Warfare Archaeology at 2011/05/24 13:30
음.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몰랐던 사실들도 있고, 잘못 알고 있던 부분들도 있네요.

요즘 이글루스에서 벌어진 일련의 토론과 연계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감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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