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으로 족한 것을 비난하지 말자.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언, 15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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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탄 십용사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그냥 멋있어 보여서 선택한 이미지.
(사진출처 : http://blog.chosun.com/web_file/blog/497/6497/13/1-4%5B7%5D.jpg)



며칠 전 육탄 십용사를 언급하신 다른 분 포스팅(by Joker™님)을 읽다가 육탄 십용사 중 절반이 호남 출신이라는 내용이 나와서 조금 놀랐습니다. 굳이 어느 지방이라서기보다는 인구 비례라는게 있는데 한 지역 출신자가 그렇게 집중되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거든요. 사실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육탄 십용사라고 하는 것은 겨우 10명밖에 안 되는 소수집단이라 인구비에 따른 병력배치 따위는 말도 안 되는 거지만요.

하여간 관심이 간 김에 육탄 십용사의 출신지에 대해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집에 있는 책에 나오더군요. 사놓고 1년이 넘었도록 안 읽었다는 자폭 OTL 그런데 제가 이 내용을 참고한 책은 1976년판이므로 34년이 지난 현재의 행정구역명은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어, 여기 우리 동네네"하실 분이 계실지도^^;

1사단 1연대 하사관교육대 1소대 1분대 * 이때는 병 계급이 이등병과 일등병 둘 뿐이었음.
지휘자 분대장 서부덕 이등상사 - 전남 광산군 송정읍
김종해 일등병 -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반송리
박평서 일등병 - 전남 나주군 공산면 남창리
양용순 일등병 - 함북 경원군
오제룡 일등병 - 전북 임실군 삼계면 삼계리
윤승원 일등병 -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안녕리
윤옥춘 일등병 - 충남 대전시 덕진동
이희복 일등병 -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 송달리
황금재 일등병 - 전북 익산군 용안면 법성리

중화기소대 분대장
박창근 하사 - 전남 완도군 노화면 동천리


1949년 5월 4일에 전사한 위의 10명은 5월 26일에 위령제가 서울운동장(아마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운동장?)에서 거행되었으며 6월 28일부로 서부덕 이등상사는 소위, 그 외 9명은 일등상사로 추서되었으며 후에 을지무공훈장('50. 12. 30)을 수여받았습니다. 지금도 동작구 흑석동에 육탄십용사현충비(肉彈十勇士顯忠碑)가 남아있는데(직접 가보지는 않음), 이것은 전쟁이 끝난 뒤 당시 사단장이었던 김석원 장군의 주도로 국민 성금을 모아 건립된 것(1956.5.4.)이라고 합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을 추모하고 칭송하는 것은 지당하고도 지당한 것입니다만, 김석원 장군이 얽히면 왜 이렇게 일본군 냄새가 나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빈약한 장비를 몸으로 때우라고 강요한 다음, 입으로만 칭송해 주는 구일본군적 양태 때문일까요. 한 번의 사례를 교훈으로 다음에는 몸으로 때우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는 것도 아니고 "저번에 그랬으니" 이번에도 몸으로 때우라는 식의 태도가 지금도 군대는 물론이고 사회 여기저기에 만연하지 않습니까. 육탄 십용사도 상부의 명령 없이 스스로 자원한 건 아니었습니다. 특공대를 편성하라는 지시는 당시 11연대장 최경록 중령에 의해 내려졌고, 그 후에 자원자를 모집한 것입니다.

물론 당시 한국군의 현실은 이거고 저거고 다 해야 했습니다. 미군이나 독일군만한 능력이 있으면야 토치카 따위 폭격으로 날려버리거나 전차포로 부수면 되지만 한국군은 그게 안 되는 군대였으니까요. 가진 거라고는 인력뿐이었으니 육탄공격밖에 할 수 없었고, 그 점에 있어서 당시 지휘관들의 선택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문제는 60년이 지나갔는데도 똑같은 마인드를 가진 분들이 참 많다는 거지만요.


그럼 여기서부터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좀 다른 이야기.

1. 박창근 하사는 서부덕 상사의 하사관교육대와 "함께" 혹은 "뒤따라" 돌입한 게 아닙니다. 하사관교육대가 특공 명령을 받기 전 중화기중대에 먼저 토치카 파괴 명령이 떨어졌고, 박창근 하사는 김부태 이등중사 및 김막동 일등병과 같이 수류탄으로 적 토치카 1개를 파괴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멀리서 던진 탓에 실패하고, 혼자서 두 손에 수류탄을 쥐고 다시 도전하다가 안타깝게도 인민군의 총에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서부덕 상사 이하 9명이 돌입한 것은 시간상으로 그 뒤의 일입니다.
일단 다른 9명과 함께 묶여서 10용사라고 하긴 합니다만, 같이 행동하지 않은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원거리에서 수류탄 투척을 시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쪽과 똑같은 "육탄"이라고 간주하기는 좀 그렇지요.

2. 명령이 딱히 "자폭하라"고 명시한 건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200~300m를 기관총 사격 밑에서 포복하고, 시한 3초짜리 신관을 단 81mm 박격포탄을 토치카에 던져넣고 살아서 돌아온다는 건 일반인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토치카 주변에는 다른 북한군들도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북한군이 292고지에 구축한 토치카는 땅을 판 후에 20cm 두께의 통나무를 삼중으로 엮어서 지붕을 얹고 2m 두께로 흙을 덮어 81mm 포탄이 겉에서 터지는 정도로는 까딱도 안 할 물건이었습니다. 여기에 4면에 모두 총안구가 있어 들키지 않고 접근하기도 힘들었고요. 이걸 파괴하기 위해 박격포탄(6.8kg, 그것도 처음에는 3개를 묶어서 쓰려고 했습니다만 너무 무거워서 1개로 줄였습니다)을 던져넣는 게 쉽다고 보긴 힘들죠. 결국 안고 뛰어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3. 파괴한 북한군 토치카도 10개가 아닙니다. 다수의 아동용 서적 및 반공서적은 육탄 십용사가 10개의 토치카를 날렸다고 써놓고 있는데, 이는 까놓고 말해 프로파간다입니다. 실제 파괴된 토치카는 4개이며 이것도 폭연을 목격함으로써 확인된 것 기준입니다. 5개의 토치카는 폭연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시체가 확인된 특공대원은 하사관교육대 중에는 한명도 없고 박창근 하사 하나뿐이었습니다.

4. 그리고 이것 때문에 뒷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위령제 이후 뜬금없이 평양방송에 서부덕 상사와 오제룡 일등병이 나타나서 "우리 살았다는. 여기서 대학도 다니고 있다는"하는 방송을 한 겁니다.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쳐 다른 대원들도 살아있으며 잘 대우받고 있다고 했고, 이들이 북한에서 환영받는 모습이나 남한과 미국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삐라도 대량으로 살포되었습니다. 당연히 남쪽에서도 난리가 났지요.
문제는 박창근 하사 외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9명이었습니다. 그중 4명은 자폭했거나 바로 옆에서 포탄이 터져 죽었을 것이니 상관없는데 누군지 알 수 없는 5명이 관건이었지요. 방송에 등장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인적사항 및 교우관계에 대해 훤히 알고 있었고, 목소리도 두 사람의 목소리가 맞는 것 같았지만 작정하고 조작하면 조작이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주변관계야 간첩을 통해 조사할 수 있고 목소리는 닮은 사람을 조달하면 되니까요. 사진도 남쪽에서 원본을 구해다가 합성하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결국 국방부는 평양방송에 등장한 두 사람 및 기타 생존자(?)들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합성 및 조작 가능성도 가능성이지만, 결정적으로 그 뒤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 포인트였습니다. 자진 월북한 표무원, 강태무 같은 자들은 전쟁이 터졌을 때 부대를 이끌고 다시 내려오는 등 얼굴을 드러냈지만 서부덕 상사 이하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거든요. 정말로 북한에서 "잘 지내고" 있다면 그 후로 소식이 묘연해질 리 없다는 게 국방부의 생각이었습니다. 하다못해 전선이 낙동강까지 밀려내려갔을 때 고향마을에 자의든 타의든 한번쯤 얼굴을 내밀었어야 할 일이었지요.
때문에 국방부는 생존설 자체가 북한의 조작이거나, 아니면 살아남았더라도 북한측이 일회성의 선전대상으로 써먹은 뒤 곧바로 숙청해버린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쉽게 말해서 "모르겠다"인 거죠. 북한이 붕괴해서 해당 사건에 대한 기록을 우리가 입수하거나 북한이 어느날 갑자기 헤까닥 해서 정보공개를 해주지 않는 이상 사건의 진상을 접할 일은 없을 겁니다.

5. 그런데 정말로 살아있었다면 문제가 어떻게 될까요? 위령제, 소위 추서, 을지무공훈장 수여는?
실제 대한민국 정부는 소위 추서에서 무려 18개월이나 지난 뒤에 서부덕 상사에게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시간 간격이 서부덕 상사의 생존여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초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뻔하지 않습니까. 기껏 훈장까지 수여했더니 어느날 갑자기 인민군복 입고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거든요. 우리는 북에서 남으로 귀순한 사례만 부각시켜 홍보합니다만 당시의 실제 상황을 보면 남에서 북으로 넘어간 군인들도 상당수였습니다. 육군 뿐 아니라 해군이나 공군도 있었고, 이들은 당연히 자기가 타던 배랑 비행기를 끌고 갔지요. 북한군이 무슨 재주로 개전 전에 미제 L-5 연락기 2기를 보유했겠습니까.
이런 판국이었으니 혹시라도 서부덕 상사가 정말 살아서 나타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훈장 수여를 미루게 했다고 해도 무리한 추측은 아닙니다. 만약에 그런 사태가 벌어졌다면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망신도 그런 개망신이 더 없을 것이니까요. 때문에 한국전쟁이 터지고도 서부덕 상사가 나타나지 않자 안심하고 그제야 훈장을 수여했을 공산이 있습니다.
여기서 음모론을 접목시키면 체면 때문에 사실 은폐를 위해 한국 정부가 공작원을 투입해 살아있는 서부덕 상사를 암살했다는 괴이한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겠지만 설마 여기서 그럴 분은 없겠죠. 1925년생이시라고 하니 살아남았다면 지금 생존해 계실 수 있는 연령이십니다만, 살아계시더라도 설마 이제와서 나타나시지는 않겠지요.

6. 어쨌거나 위의 글도 결국 현상에 근거한 추론일 뿐, 확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훈장 수여가 늦어진 것은 그저 행정적인 문제였을 뿐, 의도적인 연기가 아니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확인이 힘들 겁니다. 서울 함락 때 국방부 문서가 싸그리 거덜이 났기 때문에-_-;;
그러니 독자분들께서도 적당히 보시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정도로 여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부덕 상사는 살아서 빨갱이가 되었다고 주장하거나 비난하는 글은 절대 아니니까 그 점에서 오독은 삼가 주셨으면 감사하겠고요.

그럼 다들 밝은 주말 보내시길...오늘 낮 날씨는 따뜻하네요...^^


덧 : 서부덕 상사 생존설은 구판 한국전쟁사(1968)는 비판적으로 언급하나 신판(2004)에서는 아예 다루지 않습니다. 혹여 찾아보실 분은 참고 바랍니다.


참고자료 :
6.25전쟁사 vol.01 - 전쟁의 배경과 원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4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 제1부 분단의 배경, 박승수, 금강서원
들리지 않던 총성 종이폭탄! : 6.25 전쟁과 심리전, 이윤규, 지식더미, 2006
한국전쟁 :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정병준, 돌베게, 2006
한국전쟁사 vol.1 - 해방과 건군(1945~1950.6),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1968
호국용사100선, 이원복, 명성출판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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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ㅇㅇ at 2010/04/04 12:40
진실은 저 너머에...
Commented by 아브공군 at 2010/04/04 12:50
The Truth is over there.......
Commented by 행인1 at 2010/04/04 13:08
5. 괴이란 결론을 들고나올 분이야 의외로 많죠. 당장 이글루스만 보아도...(이하 생략)
Commented by 이준님 at 2010/04/04 13:11
1. 소싯적에 굴러다니던 어린이용 --;;책에서는 9명이 먼저 성공하고 나중에 한 사람은 따로 가서 먼저간 9명을 그리면서 성공했다고 기술합니다. 적어도 100% 창작이기보다는 저자가 말씀하신 그 순서 모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지를 했다고 봅니다.

2. 1968년판 한국전쟁사는 구판과 달리 "이승만 정권하의 부조리"자체도 소상하게 다루었습니다.-당연합니다. 이승만 정권의 부조리를 극복했다는게 모토인 분이 대통령이니까요. 이승만 정권 아래 여순반란사건 교사자이자 역적으로 몰린 오동기.최능진. 김구--;;가 복권되기도 했으니까요. 박명림의 서술에 의하면 표무원 일당이 낙동강 전선에 나타났다는 것 역시 50년대 관변 자료"만" 나올뿐 68년부터는 사라졌다고 합니다.

3. 소싯적 월북 관련 해서는 비행기. 중화기. 부대. 배. 미국 상선까지도 있었다고 하지요. 리영희 교수의 동기-그는 해양관련 학교를 나왔습니다.-도 선상반란이 일어난 배에 탄 이유로 북으로 같이 넘어갔다고 합니다.(인편에 들은 소식으로는 북한에서도 항해 관련 일을 하다가 전쟁때 사망했다고 하지요. 리영희는 친구 아버지에게 차마 이 이야기는 못하고 회고록에 처음 언급을 하구요)

4. 월북해서 "인적 사항 공개"까지 할 정도면 사실 본인이 맞다고 보는게 낫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케이스도 아니고 어느 정도 속이면 되는 걸 굳이 간첩까지 하기는 어렵죠. 한 개인의 주변 부대뿐 아니라 시시콜콜히 알 정도로 간첩이 확 깔리기는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나 ,의거 입북한 임영박 하사인데 안암동에 살고 형은 서울대를 다니고 2남 1녀의 막내이다"정도는 간첩이나 주변 사람들 탐문 정도로 알수 있지만-물론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아. "우리부대 정윤찬 상사. 어제 또 노름하다가 마누라에게 걸려서 손목 짤린다고 하던데.."나 :어이 이준 상병. 어머님 아프시다던데. 괜찮나? 형님은 요새 오입질 안하고 정신 차리셨나?"류의 이야기는 간첩이 알기는 어렵습니다.

보통 월북(혹은 납북)자 대남방송에서 신상공개는 이 정도 영역까지 가는 것이니까... 본인 인증은 확실한거지요. 국방부에서도 적어도 그 정도는 설정한 셈입니다.
Commented by 명탐정 호성 at 2014/10/29 16:57
최능진은 여순사건과 연결된 혁명의용군 사건 배후 맞습니다.
오동기와 합작했는데 김구, 김규식을 추대하려고 했답니다. 최능진 본인이 인정했음.

http://db.history.go.kr/id/dh_008_1948_10_01_0150

이에 관하여 국방부 모 고급장교는 “일종의 반란적 성격을 띤 사건인데 이것이 어느 정도 근거가 확실하다면 국군은 다만 일반에게 이용당했을 것이고 앞으로 관련된 군인이 드러나는 대로 엄중 처단하겠다”고 말하였다.

10월 1일

http://db.history.go.kr/id/dh_008_1948_10_19_0070

이것이 군정이양을 시작하면서 약 20일 전에 吳와 관련자를 검거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 음모가 성장해온 배경이다. 오동기와 관계자들을 잡자, 군내에 오동기와 통하던 자들은 공포심이 일어난 모양인데 일조일석에 군대 숙정이 불가능하여 이번에 모종 임무을 주어 혐의 농후한 이들을 딴 곳으로 분리할 때 공포를 느낀 자들은 지체하면 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을 개시했던 것이다.

http://db.history.go.kr/id/dh_010_1949_02_08_0270

최능진 자기 변론 :

그런데 나는 이 50만 원을 김동지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군대 내 청년을 포섭하는 데는 좌우익을 막론하고 민족주의정신통일에 중점을 두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군대 내에까지 동지 포섭공작을 하게된 유일한 이유는 유엔에서 남북통일 총선거를 주장할 때 南의 대한민국정부와 北의 인민공화국이 서로 손을 맞잡지 못하고 분열만 하게 될 때에는 내가 조직한 의용대로서 남과 북에 사전교섭을 하여 전혀 통일의 가능성이 없는 것을 알게 되면 내 힘이 있는 데까지 무력으로 남북 양 정부를 쳐부술 각오였다. 그리고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동족상잔을 나는 절대로 원치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여수·순천 반란사건의 동기를 나에게 전가하는 것은 천만부당이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711160032910201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7-11-16&officeId=00032&pageNo=2&printNo=3795&publishType=00010

오동기는 그 이후에 간첩이 됩니다. 이름을 오중환으로 개명
Commented by 이준님 at 2010/04/04 13:15
5. 이런 극단적인 케이스가 진주만 공격당시 잠수정 승조원에 대한 이야기지요. 아시겠지만 1명이 미군에 포로되었고 스위스를 통해서 포로 된 사실이 일본측에 통보되었습니다. 결국 일본에서는 사실을 확인하고 "전원 옥쇄"처리했지만 그 한명만은 야스쿠니 신사 봉헌을 거부하지요. 가족들이나 기자들이 진상을 안건 전쟁이 끝나고서야겠지만요. 서 상사의 경우도 한국 정부에서는 거의 그런 식의 처리를 구상했을겁니다.
Commented by 네모선장 at 2010/04/04 13:22
육탄 십용사는 아무래도 사나다 십용사를 베껴서 만들어낸 표현 같아서...
초창기 국군에 남은 구 일본제국군의 잔재 느낌이 나는지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漆園 at 2010/04/04 14:05
헐. 이렇게 복잡한 뒷얘기가 있을 줄...
Commented by Matthias at 2010/04/04 15:06
아니, 내용은 내용인데...

...저 티안무 제독은 아직도 저러고 있군요;; 저는 촛불 끝날때쯤 그만하나 했더니만;;
Commented by JOSH at 2010/04/04 15:29
> 십용사를 언급하신 다른 분 포스팅을 읽다가

그냥 이렇게만 링크 걸어 놓으셔서 또 혐오포스팅을 클릭해 버렸군요.
클릭한 다음엔 늦으리..
Commented by Allenait at 2010/04/04 16:35
..이거 생각보다 복잡한 뒷이야기가 있군요
Commented by 漆園 at 2010/04/04 16:38
그러고 보니 1949년 6월이 미군철수가 일단 완료된 시점이라는 군요. 북괴의 화력은 날로 보강되는데도 뻔히 그걸 지켜보는 심정이 이해도 가죠. 생각해 보면 남북의 전력 불균형이 뻔히 드러났는데 별 해결책은 없고 그 후로도 전쟁나기까지 1년 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생각하면...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10/04/04 16:52
좌우간 한국전쟁 당시의 일화들은 순수하게 감동에 젖을 겨를(?)을 허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긴 한국전쟁만 그렇겠습니까만.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10/04/04 17:17
"평양방송에 서부덕 상사와 오제룡 일등병이 나타나서 "

-> 북한의 심리전도 상당하군요 ㄷㄷ 그나저나 육탄 10용사 이야기에 저런 복잡한 이야기가 잇는줄 처음 알았습니다. ㄷㄷ
Commented by 네리아리 at 2010/04/04 17:54
군대에서 들었던-특히 정훈시간-.....끄응...
Commented by 아브공군 at 2010/04/05 11:18
제가 군대때 봤던 가장 쇼킹한 정훈자료 구라는 U-2 격추 사건의 주인공, 게리 파워즈 중위가 뒷골목에서 노숙자로 죽었다는 이야기.....

멀쩡히 무려 'CIA 주선'으로 방송사 헬리콥터 조종사로 살다가 편하게 죽었다라는.....
Commented by 아브공군 at 2010/04/05 11:19
아, 실수, 게리 파워즈는 사고로 죽었군요.
Commented by Esperos at 2010/04/04 20:20
저는 군대에서 교육계였지요..... 국방부 정훈자료는 아니 믿겠다고, 이미 현역병 시절에 다짐했지요. 때로는 너무 뻔한 소리도 하는 터라 == 관제 집단교육의 한계겠지만요.
Commented by Wishsong at 2010/04/04 20:24
국방일보에서 볼 수 없었던 흑역사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4/04 23:02
ㅇㅇ//언젠가 먼 훗날에...

아브공군//whereever....

행인1//(먼산)

이준님//
1. 제가 본 대부분의 책도 그렇게 서술하더군요.
2. 강/표는 그래도 북한에서 어떻게 산다는 이야기도 간간이 나오지 않습니까?
3. 그것도 기구하다면 기구하네요;
4. 국방부는 "조작할 수도 있잖아!"로 넘겨버린 모양이더군요. 저 역시 진짜일 가능송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5. 그랬을 듯 합니다.

네모선장//상해 사변의 육탄 3용사도 있었지요.

漆園//자료를 통해서 찾는 거죠. 망상이 아니라.

Matthias//좀 됐습니다.

비공개//그분을 별로 안 좋아하는 분글이 많으신 걸 깜빡했네요. 앞으로는 그분 글을 연결할 때는 출처를 꼭 적겠습니다.

Allenait//정치와 사상이라는 것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漆園//치열했습니다, 정말로.

파파라치//그러게 말이지요.

들꽃향기//양쪽 선전전은 상당히 치열했습니다.

네리아리//정훈자료의 상당수는 구라지요.

Esperos//말씀대로입니다. 위대한 조국을 위한 희생을 주입해야 하니까요.

Wishsong//실어줄 리가 있습니까.
Commented by Anatomist at 2010/04/05 07:07
지휘자 분대장 서부덕 이등상사 - 전남 광산군 송정읍...
라면 지금의 광주광역시광산구 송정동 이네염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4/05 09:20
오옷,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드레드노트 at 2010/04/05 22:38
육탄 10용사는 그 당시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해도 지금도 저런 무모한 작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국방부 윗대가리가 있다면 문제...(근데 있을 것 같아-_-;;;)
Commented by 미연시의REAL at 2010/04/05 23:19
월북 한국군 관련 자료들좀 보고 싶네요. 그런 관련 자료들은 도무지 구할수가 없어서..
의외네요.. 육탄 10용사.. 개인적으로 저도 구 일본군식 자폭공격 M4 셔먼을 향해 인간폭탄식의 공격이라서..
저도 그리 좋게는 안보지만.. 의외네요.. 저는 다 전사한줄 알았는데..
새로운걸 알고 갑니다요^^ㅋ
Commented by 이준님 at 2010/04/06 01:51
좀 깨는건 버젓히 2000년대 남한에서 출간한-심지어는 PDF로도 도는- 모 증언 자료집에서 이름만 들으면 아시는 김모 장군께서는 우리가 아는 저 진실보다 개콘에 나올만한 진실 이야기를 하나 하고 있지요. 어느 분은 "그 사람 평소 허풍이 심하고 다른 모 장군을 대단히 미워해서 그런 소리나 한다"고 하는데... 김모 장군의 행적을 보면 그런 "비뚤어진" 진실에 대해서 토로할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물론 이 사람은 월북이나 이런건 안했고 대단히 출세를 하지만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4/06 09:21
드레드노트//동감;;

미연시의REAL//저도 하ㅓ나로 정리해 놓은 건 본 적이 없고 여기저기서 조금식 보았습니다.

이준님//누군가 했다가 두번째 트랙백 포스팅에서 확인했습니다. 후덜덜한 이야기더군요. 과연 진실일지 궁금해졌습니다.
Commented by dgd at 2011/06/23 16:19
저는 살면서 육탄10용사가 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지금보니 정말 유명한 이야긴가봅니다..

훈련소에서 저희 중대 소대장님 중 한 분이 '육탄10용사 상'을 받은 분이 계시다는 이야길 듣고 처음 알았습니다.

그 때, 분대장님에게 '6.25 때 적 요새를 무너뜨리기위해 포탄을 안고 뛰어들어 산화한 분들' 정도로 배웠었는데 꽤 복잡한 내용이 섞여있었군요.
Commented by 호연 at 2013/05/23 08:41
잘보고 갑니다. 현실은 늘 이야기보다 복잡하네요.
Commented by 정욱한 at 2019/04/07 00:18
제1사단 제13연대 연대장 대령 김익렬

0 일시: 1964년5월4일

0 장소: 전국방장관 박병권 자택

0 대담: 국방주 군사편찬위원회

0 송악산지구 육탄10용사의 진상

# 세부 증원 내용

이 이야기는 1964년 5월 4일 14:30~17:00에 걸쳐 전 국방부장관 박병권댁에서 제5연대 창설에 대한 간담회 석상에서 김xx이 공개한 내용이다.

나는 당시 김석원 장군이 지휘하는 제1사단 휘하 제13연대장으로 있었다.

적이 송악산을 점령하고 피아 교전이 전개되었을 때 제11연대(연대장 최경록 중령)가 공격하고 있었는데 제 11연대가 지탱하기가 곤란하면 제13연대(당시 예비연대)가 투입되겠끔 대기상태에 있었다.

제11연대장은 송악산에서 격전중인 일선부대에 박격포탄을 보급하기 위하여 공병소대장(박모)으로 하여금 10명을 공동 지휘하여 박격포탄을 짊어지고 송악산으로 출발시켰다. 그러나 박소위는 지형을 숙지하지 못하여 이동도중 적과 불의에 조우하게 되자 부하들을 수습지휘하지 못하고 혼자서 탈출하였다.

대원 10명은 박격포탄을 진채 모조리 적에게 포로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정보주임은 계통에 따라 사단 G-2에 보고하였다. 사단장 김석원 장군은 대노햐여 당장 박소위를 총살하라 하였다.

이때 변호한 것이 제11연대장 최경록 중령이었다. 사실상 박소위와는 친구지간으로서 일본 학병의 동기인가 하여 막역한 사이였다. 따라서 박소위를 총살에서 구출하기 위하여서는 사단장에게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연대장은 사단장에게 정식보고를 하는데 있어서 "사실은 참모보고는 사실이 아니고 대원 10명이 모조리 포탄을 안고 적진에서 자폭한 것이라고 정정보고를 하게 되었다."

이 보고를 듣고 사단장은 그 자리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일본군에는 육탄 3용사가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육탄 10용사가 나왔다고 하면서 이 사실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최중령이 자기 친구인 박소위를 살리기 위한 일시적인 임시조치에 지나지 않는 허위

조작한 보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단장은 연대장의 보고를 사실로 알고 상부에 건의하여 대대적인 장례식 행사준비를 하였는데 당시 채병덕 참모총장은 장례식 하루 전까지 행사를 불승인하였다.

그러나 이종찬, 이용문 대령 등이 채총장에게 육탄 10용사는 국군의 전통과 사기진작에도 좋으니 행사를 하자고 권고하게 되어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채장군은 어느 정도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당시 김석원 장군과 채장군과는 남북교역문제로 극히 감정대립이 악화되어 있었거 채장군으로서는 육탄10용사를 냈다고 이박사에게 보고하여 김장군의 사기가 올라가는 것에 시기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하간에 장례식행사는 서울운동장에서 성대히 거행되었다.

그러나 자폭했다는 육탄10용사는 포로가 되어 평양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고 살아 있다는 방송도 하고 가족들에게 편지도 보냈다고 한다.

김익렬 장군이 평양에 입성하였을 때 육탄10용사가 꽃다발을 받고 있는 사진을 보고 놀랬다고 하면서 이는 순전히 최경록 중력의 조작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김석원 장군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당시의 북한방송 등을 녹음한 것이 정부기관에 보관되어 있을 것으로 알고 있다.

(주: 박모 소위는 대령으로 승진하여 예편하였는데 이름이 불명하다.)

**國防部 軍史編纂硏究所 6.25.參戰者 證言錄 [2003年]

,,,,,,,,,,,,,,,,,,,,,,,,,,,,,,,,,,,,,,,,,,,,,,,,,,,,,,,,,,,,,,

이 證言에 對하여 2005年부터 오늘날까지 6年間에 걸쳐 抗議와 削除要求를 끈질기게 한바

語不成說로 一貫하던 國防部가 突變하여 金益烈 將軍의 證言을 公刊史에서 削除하겠다는

處理內容을 通報 받았음니다

6年間의 憤怒가 사라지고 오히려 國防部의 劃期的인 決斷[削除處理]에

敬意를 表하고 싶은 心情임니다

處理結果 通報

[조동흡 님]께서

2011년 05월 02일 申請하신 民願에 對한 國防部의 答辯이 登錄되었습니다

處理結果 [答辯內容]

處理日 2011.05.13. 16:31:56

먼저 貴下께서 6.25 戰爭 參戰勇士로서 轉役 後에도 軍과 6.25戰史에 對해 無限한 愛情과 關心을 갖고 계시면서 2003年 當 硏究所에서 發刊한 "6.25戰爭 證言錄"의 事實과 다른

證言 內容을 指摘하여 주신데 대해 感謝의 말씀과 함께 尊敬을 表합니다.

貴下꼐서 指摘하신 바와 같이 肉彈10勇士에 對한 追悼式 行事는 國家 報勳處가 每年

主管하여 實施하고 있는 國家次元의 行使입니다.

肉彈 10勇士의 戰鬪地域인 開城 松嶽山 戰鬪에 對해서는 6.25戰爭 公刊史에서 이를

正確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國防部 軍史編纂硏究所, "6.25戰爭史 : 戰爭의 背景과 原因 "1卷 2004. 500~502쪽)

貴下께서 提起하신 要求事項에 對한 當 硏究所의 措置 事項

1) 1段階(2011년5월31일한) :

"6.25戰爭 參戰者 證言錄"의 內容 中 該當 部分(69~70쪽) 잧체를 온라인 상에서 " 削除"(인터넷 서비스 영구 중단)하여 온라인 상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이 더 이상

流布되지 않도록 措置할 것임.

2) 2段階(2011년8월 한 措置) :

이미 配布된 "6.25戰爭 參戰者 證言錄"의 該當 페이지(69~70쪽) 全體 內容을 '削除' 하기 爲해 이에 대한 正誤表를 아래와 같이 作成하여, 當 硏究所에서 今年 6月末 發刊할

"6.25戰爭史"(제8卷)配付 時 함께 同封하여 各 配付機關에 配布함으로써 이를 修正하도록 措置할 것임.

"6.25戰爭 參戰者 證言錄(69~70쪽)" 正誤表(2003년 國防部 軍史編纂硏究所 發刊)

~을 : '제1師團 13聯隊 聯隊長 大領 金益烈 證言' 內容(69~70쪽)

~으로 : 該當페이지(69~70쪽) 全體를 '削除'

다시한번 貴重한 時間을 割愛하여 問題를 提起해 주신 貴下의 關心과 配慮에 對해

깊은 感謝를 드립니다.

아울러 貴下의 當 硏究所 및 6.25戰史에 對한 깊은 關心에 對해서도 無限한 尊敬과

함께 感謝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럼 貴下의 家庭에 幸福과 健勝하심이 늘 함께 하기를 祈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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