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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포로 이야기(1) - 거제도 포로수용소 : "그것은 실존한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예배를 보고 있다.



한국전쟁에서는 양측을 합쳐 최소 20만에서 최대 30만에 가까운 포로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서적이나 인터넷 등에서 돌아다니는 포로 이야기는 자유진영 포로수용소와 공산진영 포로수용소를 막론하고 불쾌한 주제에 대해서만 논하는 이야기일 때가 많습니다. 공산군 포로수용소의 경우에는 세뇌나 고문, 기아, 질병, 전향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유엔군 포로수용소는 송환 문제를 둘러싼 포로 폭동과 반공포로 탈출만 강조하는 식이죠. 반공포로 탈출사건은 저도 예전에 한번 포스팅했었지만.

그래서 이번에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 중심으로 조금씩 포스팅을 해볼까 합니다. 물론 아는 사람은 다 알 이야기지만 적어도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로요. 주제도 가급적이면 불쾌한 것들은 그냥 넘기려고 하는데 재미있으실지 모르겠군요. 아마 이준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교정을 받게 될지도^^;

===========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는 1951년 여름 기준으로 최대 17만이라는 막대한 숫자의 수용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중 가장 많은 수는 역시 북진 때 잡힌 인민군 포로였고, 공산주의 동조자로 간주된 다수의 민간인 억류자와 함께 상대적으로 소수의 중공군 포로들이 있었습니다. 한국군 및 유엔군은 북한군에게 대한 것처럼 중공군에 대해 궤멸적인 대승리를 거둔 적이 없었으니 포로가 적을 수밖에 없었죠.

당시 포로수용소 관리를 맡은 미군은 공산군 포로들을 따끈따끈한 제네바 조약(1949년에 조인했으니)의 조문을 곧이곧대로 적용하여 대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한국군 경비병들보다 포로들이 더 잘 먹고 잘 입고 지내는 현상까지 벌어졌죠. 그뿐 아니라 미군은 포로들에게 주기적으로 영화도 보여주었습니다만 이 작업이 선전선동으로 보이지 않도록, 정치색이 들어간 영화전쟁영화는 일체 배제하고 전기영화나 만화영화 중심으로 상영했다는군요. 영화사들은 특별히 무료나 다름없는 가격에 상영을 허가해줬고요.

미군의 배려는 이 정도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미군은 문맹인 포로들을 대상으로 초급교육도 실시했는데, 북한군 뿐 아니라 중공군 포로들을 상대로도 이 교실을 열었습니다만 대만 출신은 절대 교사로 채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간단합니다. 자신들이 장개석 정권의 홍보를 해준다는 소리가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당시 적십자는 유엔군의 포로관리에 대해서도 매서운 비판을 가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적십자가 "감시"할 수 있는 게 유엔군 수용소 뿐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당시 현실에서 체제우월성에 대한 선전이 아예 없을 수는 없었죠. 수용소 측은 포로들에게 자유민주국가의 우월성을 보여줄 겸 해서 미국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이런저런 읽을거리를 많이 주었는데, 그중에 사진이 꽤 많이 들어간 책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었죠.


시어즈 로벅(미국의 통신판매회사) 카탈로그.
(사진출처 : http://www.historichousecolors.com/images/SSearsHowtoPaint1955P2.jpg)


공산주의에 충성하는 지도자급 북한군 포로들은 이걸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미군 당국이 제공하는 모든 것은 포로들을 현혹시키려는 자본주의자들의 음모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적어도 일부 포로들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무, 동무 같으면 겨우 포로 몇 명 속이자고 이런 비싼 종이에 색깔사진까지 넣어서 이런 두꺼운 책을 찍겠네? 이건 진짜고, 이 사진에 나온 물건들이네 죄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게 틀림없어야!"


그리고, 손재주가 있는 기능공 출신 포로들은 카탈로그 속에 있는 가구, 연장, 서류상자 등등의 물건들을 완벽하게 복제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물건들을 수용소 내의 일상용품이나 공공비품으로 사용했지요.

여담이지만 이들 중 일부는 한층 더 기상천외한 고안을 해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미군은 포로들에게 칫솔과 가루치약(치분)을 지급했는데, 당연하게도 거의 모든 북한군 포로들은 이런 물건을 생전 처음 보았으므로 뭐에 쓰는지도 몰랐죠. 이때 이 기술자막사의 인원들은 새로운 생각을 해냈는데, 바로 자기들한테 지급된 치분을 몽땅 모은 다음 물에 타서 페인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얀색 페인트로 취사장을 하얗고 깔끔하게 칠했다고 하네요(먼산).


내용출처 :

군사참고 vol.003 - 한국전쟁 포로, 윌리엄 린드세이 화이트,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6



by 슈타인호프 | 2010/03/31 22:10 | 한국현대(~20XX) | 트랙백 | 덧글(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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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드레드노트 at 2010/03/31 22:16
오, 내가 1등인가?

필요야 발명의 어머니이니 위 사례가 그렇게까지 신기하진 않군.

뭐 울 나라 감옥에서는 바늘 하나로 남자는 고래잡는 수술도 하고 여자는 X쁜이 수술(...)도 한다는데.(어디까지 믿어야 할 진 모르겠지만)
Commented by 정호찬 at 2010/03/31 22:18
딴지는 아니고 우리 외할아버지께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계셨답니다. 이북 출신은 아니시고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계시다 의용군으로 끌려오신 케이스인데 인천 상륙작전 터지니까 인민군이 정신없이 철수하는 와중에 간신히 빠져나오셨다고 하시더군요. 다행히 그때까지 신분증을 감춰두고 계셔서 반공포로 인증 받고 거제도에서도 무난히 계셨답니다.
Commented by 드레드노트 at 2010/03/31 22:20
공무원으로 신분증까지 갖고 계셨는데 신분 확인되자마자 바로 석방이 안되셨나요? 말이 의용군이지 강제로 끌려가셨을텐데.
Commented by 정호찬 at 2010/03/31 22:25
바로 석방은 아니고 반공포로 석방 때 나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그 이상은 자세히 여쭤봐야 알겠군요.
Commented by Ya펭귄 at 2010/03/31 22:19
저것이 진퉁에 육박한다는 한국적 짝퉁의 원조....
Commented by 我幸行 at 2010/03/31 22:19
경비병들보다 포로들이 더 잘 먹고 잘 입고 가구도 만들고 취사장까지 환경개선을 자발적으로 할 형편이 되었으니 팔자 늘어진 포로들입니다.
Commented by 단순한생각 at 2010/03/31 22:32
그래도 아직 이탈리아 포로전설을 따라가려면 멀었습...(퍽)
Commented by 초효 at 2010/03/31 22:34
옛날 모 TV프로에 나왔는데, 미군에게 치약을 얻은 아들이 집에 갖다 줬는데, 집안 사람들은 그게 뭔 물건인지 모르고 그냥 먹었답니다.

...그런데 그게 뱃속에 기생충 죽이는 효과가 끝내줬다고..;;;
Commented by Allenait at 2010/03/31 22:45
...복제할 줄은..(...) 대단하군요
Commented by 아브공군 at 2010/03/31 22:45
역시 필요와 상상력은 모든것을 만드는 원동력.....
Commented by 행인1 at 2010/03/31 22:56
카탈로그만 보고 물품을 복제해내다니...;;;
Commented by 다루루 at 2010/03/31 23:15
순간 노루표 페인트부터 생각이 나는군요(...)
Commented by 信念의鳥人 at 2010/03/31 23:17
헐킈, 저거야 말로 장인의 정신(!)
Commented by 지나가는맨 at 2010/03/31 23:17
그런데 중공군에 대승리가 없었다고 하시는데 수동 전투도 있고 6.25 참전 중공군 기록을 보면 무려 300만명 참전에 14만명이상 사망에 100만에 달하는 인적피해를 입었으니 중공군이 엄청난 피해를 본 것인데 뭔가 약간 이해를 잘못 하신듯?
Commented by Mr 스노우 at 2010/03/31 23:20
헐..... 역시 인간의 능력은 위대하군요 (-.-)
Commented by 일국지 at 2010/03/31 23:24

소설 <광장>이 떠오르네요... 어떻게든 주인공을 설득하려는 그 북한군 장교의 말이 참...

Commented by Cicero at 2010/03/31 23:25
일용품은 아니지만, 중공군포로들이 수용소에서 자유의 여신상 모조품을 만들기도 했더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4/01 00:22
드레드노트//나도 모르겠다~~

정호찬//어이쿠, 인민군복 때문에 반공포로가 되셨군요. 민간인 억류자로 분류받으셨다면 2년은 빨리 풀려나셨을텐데.

Ya펭귄//아니 사실 그보다 이전일 듯...

我幸行//그러니 사제무기 만들어 싸움질이나 했지요.

단순한생각//그건 누구도 못 따라간다는!!!!

초효//커헉;; 성분이 뭐였기에;;;

Allenait//가구류는 그래도 복제가 쉽죠.

아브공군//그런 겝니다.

행인1//에이 카탈로그에 컬러사진이 실려 있잖아요.

다루루//노루표라(...) 그거 관련 이야기도 있습니다(...)

信念의鳥人//장인의 정신!!!!

지나가는맨//설명이 부족했나요. "북한군에게 거둔 것처럼" 군 조직 자체가 와해되어 한번에 포로가 10만 명씩 잡히는 대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는 이야깁니다. 인천상륙작전 후 북진하는 동안 잡은 북한군 포로가 10만은 족히 넘는데요.

Mr 스노우//필요하면 뭐든 만드는게 사람(...)

일국지//국군 장교도 마찬가지였지요(먼산)

Cicero//스탈린도 만든 것으로 압니다. 물론 풍자를 위해서지만...

XXX//달았던 리플을 지우신 걸 보니 다음 포스팅에 화가 나신 모양이군요. 유감입니다...^^
Commented by 고어핀드 at 2010/04/01 00:48
어딜 가도 공돌이(...)의 근성은 위대하다!!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10/04/01 01:38
"동무, 동무 같으면 겨우 포로 몇 명 속이자고 이런 비싼 종이에 색깔사진까지 넣어서 이런 두꺼운 책을 찍겠네? 이건 진짜고, 이 사진에 나온 물건들이네 죄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게 틀림없어야!"


-> 이것이 바로 행간을 읽는 능력 ㄷㄷ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4/01 01:39
고어핀드//우오오오!!!

들꽃향기//정답입니다!!!
Commented by 이준님 at 2010/04/01 08:52
1. 사실 이 책 자체는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80년대 --;;에 교재로 삼을 정도였으니 극히 편향적인건 부인할수 없습니다. 90년대 한-중-미의 해빙기에 관련 구술자료와 비교해도 좀 그런게 많지요. 2000년대에 미국에서 나온 주목할만한 한국전 유엔군 포로 관련 구술사 연구에서도 이 책의 서술에 대해서 지극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4/01 09:01
제가 보기에도 확실히 편향된 점이 많아서, 가급적이면 논란의 여지가 없는 "밝은" 이야기만 포스팅할 생각입니다. 사실이 아닌 부분이 있는지, 그리고 어느 부분인지 가려낼 능력도 사실 없으니 말이죠.
Commented by 이준님 at 2010/04/01 09:17
2. 2차 대전 연간에 미국의 일본 수용소의 황당할 정도의 밝음과 비교하면 차라리 한국전 당시의 그곳은 좀 어두운 편이죠. 물론 그것은 포로 수용소내의 투쟁때문에 그렇지만요

3. 대만 출신..부분은 어느 정도 가감은 해야 합니다. 한국전 당시 중/조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한 전쟁범죄중에 "세균실험"이나 "인육취식"같은 신빙성이 의심스런 일을 제외하면 "대만인을 통한 세뇌및 가혹행위"내지는 "항복한 포로를 스파이로 삼는"일이었지요. 적어도 90년대 나온 한국측 자료에도 "대만 고위 장교가 포로 교육차 옵저버로 왔는데 뭐라고 그래서 귀국했다"라는 이야기는 나옵니다. 중국 포로들의 증언관련해서도 지속적으로 대만출신 장교(여자 포함)들의 회유 이야기가 나올 정도죠.-진짜대만 출신이거나 혹은 국부군출신으로 전향한 사람일수도 있지만요. 스파이..운운은 이쪽 진영에서도 자랑하니까요.
Commented by 안케패스 at 2010/04/01 09:57
미국의 우월함은 저런 데서도 발현되는군요. 하기사 적십자가 공산군 포로수용소를 감시 못하는게 당연하지만... 국제NGO단체가 독재국가엔 함구하고 오히려 자기들 말을 들어먹을 만한 나라에만 태클거는 게 생각나 씁쓸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4/01 10:00
이준님//
2. 그나마 분산수용 이후로는 좀 나아졌다고 하더군요.
3. 실제 첩보 및 선전활동이 이루어진 건 사실이니까, 적십자에 트집이 잡힐 말썽의 소지를 좀 줄이려고 한 거 아니겠습니까.

안케패스//세상 일이 다 그렇지요^^
Commented by BigTrain at 2010/04/01 10:19
치약 뺑끼칠... 치약 미씽의 전통은 저기서부터일까요? ^^;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4/01 12:01
그건 저도^^;;
Commented by 네리아리 at 2010/04/01 13:29
위에 있는 이탈리아 포로 관련 보니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ㄱ-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4/01 13:52
이탈리아 포로수용소는 전설입니다(...)
Commented by sinis at 2010/04/01 14:37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미군 포로를 잡았는데, 군화에 보니 작은 글씨로 숫자와 알파벳이 적혀 있더랩니다.
미심쩍게 생각한 일본군 장교는 다른 포로 몇 명의 군화를 벗겨서 살펴보니, 이럴수가! 동일한 장소에 각기 다른 숫자와 알파벳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을 본 일본군 장교는 "아, 이것은 뭔가 중요한 암호를 나누어 적어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곤 그 내용에 대해서 심문했답니다.

....결과는 단순히 신발의 크기였다고하네요.
미국의 군화는 발의 폭이나 길이 등을 고려해 다양한 종류가 생산되었고, 그 치수를 숫자와 알파벳으로 표시해둔 것이었습니다.

단지 大, 中, 小 세가지 사이즈의 군화에, "옷에 몸을 맞춰라!"는 호통이 익숙한 일본군 장교는 "아, 우리는 이미 싸우기도 전에 지고 있었구나"하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PS : 실제인지 모를 이야기입니다.
PS2: '하나를 부수는 동안 똑같은게 열이 더 생산된다'는 미군의 공업생산력을 잘 묘사한 에피소드인듯...
PS3: 더 무서운 것은, 미국은 태평양과 유럽 2개소에서 두개의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서, 군인이나 민간인 모두 두 나라보다 훨씬 잘먹고 잘살았다는 것이죠....징한 놈들....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10/04/01 19:04
관련있는 글 자동 검색에 이준님이 2008년도 쓰셨던 포스팅(호부님하고 저도 댓글 달았었네요^^)이 뜨는데,

그 글 하고 보니까 "호간의 영웅들"중 나왔던 에피소드 하나가 생각나네요. 호간 대령-커널이었던 거 같은데-네 패거리와 크링크 대령및 슐츠 상사(크링크역의 배우가 독일계인데 나치가 멍청한 역으로 나와야만 출연하겠다고 했다지요)가 으르렁툭탁대던 수용소에 이탈리아군 장성 한 명이 방문했는데 그 사람을 꼬시는데 피자를 이용하기로 하고, 피자 레시피를 얻기 위해 마침 수용소내 포로중 시카고출신의 이탈리아계 병사가 있고 아버지가 피자가게를 하신다니까 대략 수용소 비밀 무전기-북해에 잠복중인 잠수함-영국의 서부연합군 총사령부-워싱턴의 육참본부-시카고의 피자가게를 중계해서 레시피를 알아내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4/01 23:15
sinis//미국과 전쟁을 시작하면 그 순간 패배가...ㄷㄷ;;

위장효과//재밌는 영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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