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으로 족한 것을 비난하지 말자.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언, 15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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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조선인에 대한 교련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 무명씨님 지적에 대한 반론
슈타인호프씨의 글 중 오류 몇개

무명씨님이 작성하신 위 포스팅에서는 제가 지난 포스팅에서 몇 가지 중대한 오류를 냈다고 하네요. 사실 문제에 대한 지적을 모른 체 하기는 곤란한 만큼 간단하게 남깁니다...라고 처음에 쓰긴 했지만 무작스럽게 기니까 각오하고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어쩌다 보니 길어졌습니다(...0

* 혹시라도 이 포스팅을 읽으실 분들께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 포스팅은 "일제 식민지 시기 조선에 있는 <고등보통학교>에서 1934년 이전에 육군 현역장교에 의한 교련이 실시되지 않았다"라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하여 당시의 신문기사를 모아 작성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중 몇몇 신문기사의 해석에 오류 및 태만으로 인한 실수가 있었기에 34년 이전에 시범실시한 학교가 있음에도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포스팅 본문을 작성했습니다. 이에 죄송하게 생각하며, 제 운영 원칙대로라면 포스팅 전체에서 잘못된 논조로 말한 부분을 수정해야 하나 워낙 막대한 탓에 일일이 다 수정하지 못하고 결정적으로 해석에 있는 두 개 기사만 수정하게 된 점을 사과드립니다.
굳이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돌리지 않고 그대로 두는 이유는 아시리라 믿습니다.



==================


지적 1. 배일감정과 무관경시 풍조 때문에 조선인이 일본군에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 근거 없는 추론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씀하신 바가 맞습니다. 아무렴요. "난 일본이 싫으니까 일본군에 지원하지 않는다"는 기록 따위 어디도 없으니까요. 독립군에 참가하려고 일본군에서 탈영한 대한제국 출신 장교 같은 건 여기 거론될 필요도 없는 일이고, 데라우치 총독의 무단통치로 인한 조선인의 반감이 아직 남아있다는 20년대 신문기사 같은 것도 언급할 가치가 없겠죠. 어디에도 "일본이 싫어서 일본군에 지원 안 한다"는 기록 같은 건 없으니까요. 그리고 한국군에도 지원 안 하던 어르신네들이 일본군이라고 지원할까 하는 추론도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니 말입니다. 네, 이건 어디까지나 1차 사료가 아닌 일반 역사책을 바탕으로 한 추론입니다^^


지적 2. 일제가 중등교육기관에 현역장교를 배속하여 교련교육을 시작한 것은 1925년 4월 칙령 제135호로서『陸軍現役將校學校配屬令』을 공포하면서 부터임. 그해 7월에 조선 및 대만 등『문부대신 관할 학교외 육군현역장교 배속의 件』을 통해 조선에서도 교련수업을 할 수 있도록 법적 기초를 마련함.

이에따라 1926년부터 고등보통학교(즉, 중학교), 관립경성사범학교, 실업학교 등 10개 중등교육기관에서 교련수업이 도입된 것임. 즉, 일본 본토나 조선 땅에서나 현역장교가 중등기관에 배속되어 교련교육을 한 것은 시기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고 봐야함. 따라서 교련수업이 없어가지고 육사 진학 못했다는 소리는 허황된 얘기일 뿐만 아니라 사실관계에도 부합하지 못함.


여기 대해서는 도리어 제가 몇 가지 반론을 해야겠군요. 무명씨님이 즐겨 사용하시듯, 저도 이번에는 당시의 신문기사 몇 가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이하의 모든 기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에서 구한 것입니다.


1923 7월 8일 동아일보 사설 :
일본에서는 병식체조를 의무적으로 가르치나 조선에서는 금지하고 있다. 똑같이 허용하라.

위 사설의 요지는, 일본 본토에서는 학생들에게 <군대식 체조>를 이미 정규 과정으로서 가르치고 있는데(일본 각 중등학교의 실례로서 논하여도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병식교련의 과목을 배우게 하였으니) 조선에서는 가르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금제(禁制)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똑같이 허용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군사교련이 실질적으로 군사적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체력단련이나 정신단련에 효과가 있고 문약함을 깨칠 수 있는" 군사교련을 가르치지 않느냐는 거죠. 이 사설에서 지적했듯, 당시 조선에서는 교련을 가르치지 않고 있었으나 일본은 "수십 년 전"부터 이미 교련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정식으로 중학교에 "군대식 체조"를 도입한 것은 1886년입니다.

또한 무명씨님은 "현역 장교에 의한 교련"은 거의 동시에 시작했다고 말씀하시면서 현역장교가 배치되기 전의 교련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으셨는데요, 현역장교가 가르치지 않는 교련도 교련은 교련이죠? 예비역 장교도 중학생들 정도는 가르칠 수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문제는 조선에서 언제부터, 누구를 대상으로 교련 과목을 가르쳤나 아니던가요?

그럼 다음 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926년 5월 20일 시대일보 :
조선 내 중등학교 이상 생도의 군사교육에 현역장교가 임명된다는데 대하여 조선군사령부의 야마다(山田)라는 고급참모가 인터뷰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 참모의 인터뷰를 정리하면 이런 내용이에요.

"14개 학교에 배속할 현역장교를 선정, 임명했는데 교육을 시작할 시기는 총독부에서 정할 것이다. 조선은 일본과 사정이 다소 다르므로 14개 학교에 한정하는데, 이 교육은 국민의 실질향상-국방능력의 증대-심신의 단련-단체생활의 능력-조직관념의 획득 등을 목표로 한다. 교관은 물론 학교장의 방침에 따라 교육을 할 것이다."



10개가 아니고 14개군요. 뭐 이거야 크게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다만 이 인터뷰에서는 14개 학교가 어디인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겨우 14개 학교를 가지고 조선 전체에 교련교육이 일반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지만, 14개라는 학교 숫자만으로 누가 교련교육을 받고 누구는 못 받았는지 확실히 말할 기준이 되기는 힘들죠. 따라서 다른 기사를 좀 더 찾아보겟습니다.


1926년 6월 6일 시대일보 :

교련교육과 관련하여, 모 농업학교 학생들이 차별대우를 묵과할 수 없다고 불만을 표시, 조선인 학생 전체에 문제가 될 수 있을 듯 하다는 기사입니다. "조선인 학생 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기사 내용은 조선인들은 교련 교육을 받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다음 기사를 또 찾아볼까요? 이번에는 동아일보입니다.

1928년 4월 12 일 동아일보 :
朝鮮總督府는 朝鮮學校 學生의 軍事敎練計劃을 추진하다.

이 기사의 논지는 총독부가 조선의 공립학교를 필두로 모든 중등학교에서 군사교련을 시행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1928년 현재 교련이 어떻게 실시되고 있는가를 기술한 부분은 이렇습니다.

<...조선에서도 일본인 중학교와 일본인을 위주로 하는 실업학교에서는 벌써 군사교련을 실시하여 왔으나 조선인을 위주로 하는 고등보통학교나 일본인과 조선인이 공학하는 실업학교와 전문 고등학교에서는 조선인에게 군사교련을 시키는 것이 국책상으로 보아 타당치 못하다는 해석으로 지금까지 군사교련을 실시하지 않고 지내왔었는데...>

무명씨님의 말씀대로라면 1886년부터 일본에서 행해진 군대식 체조는 그렇다 치더라도 1926년의 "현역 장교에 의한 교련 수업" 도입은 조선과 일본 모두에 동등한 조치로서 함께 시행되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위 기사를 볼 때, 이 시점에서 조선에서 교련 수업이 시작된 곳은 단 14개 학교일 뿐 아니라 모두가 일본인 학교였습니다. 따라서 이때까지 학교에서 정식으로 교련 수업을 받은 조선인은 일본인 중학교에 재학하는 극히 일부 뿐이었습니다.

제가 인용하지 않은 기사 아랫부분은, 바로 이 교련 문제로 총독부 내에서 분란이 일어났다는 내용입니다. 조일 학생이 공학하는 학교는 조선인 학생 때문에 교련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일본인 학생에 대한 형평성 침해라는 것이죠. 하지만 같은 학교에서 조선인과 일본인 학생을 구분해서 일본인만 교련 수업을 할 수도 없으니 결국 조선인 학생도 교련을 받도록 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이번에는 조선인 학교에 다니는 조선인 학생과 공학을 다니는 조선인 학생 사이의 형평성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 때문에 총독부 내에서 상당한 분란이 벌어졌고, 결국 "그럴 바에는 모든 학교에서" 교련 수업을 하도록 하자는 게 총독부 측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선군사령부의 동의를 얻은 후 모든 경비는 총독부가 부담하겠다면서 동경의 육군성과 문부성에 교섭을 위한 담당 직원을 파견했는데...자, 그 결과는?

1928년 5월 15일 경성일보 :

자, 거의 한 달이 지난 상황에서 가시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준비기간 1년 정도" 있으면 하겠다고 했군요.


1928년 7월 7일 중외일보 :

아, 진전이 좀 있습니다. 경성제대 및 각급 전문학교에 드디어 교련을 위한 배속장교가 배치되었군요. 하지만 이들은 이미 대학생이므로 육사 진학과는 관련이 없지요?
역시 중외일보의 이틀 뒤 기사를 보면 곧 중등학교에도 배속장교가 배치될 것 같다...고 쓰고 있습니다.


1929년 11월 8일 동아일보 :

드디어 중학교 군사교육이 시작되나 봅니다. 일본에 교섭차 총독부 관리를 보낸다는 기사가 작년 4월에 있었고, 5월에 나온 기사에서 "준비기간이 1년"이라고 했으니 대충 시기도 맞습니다. 어절씨구 하고 읽어보니..."봉천 당국"입니다. 만주의 장학량 정권 이야기입니다. 조선에서도 하는구나 하신 분들 모두 낚였습니다.


1929년 12월 2일 동아일보 :

중학교에서 교련 중 오발사고가 났군요. 중학생도 실탄을 가지고 수업을 하는데...근데...이 용산중학교는 한반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중학교(1917년 설립)이자 광복 때까지 일본인 중학교였지 말입니다. 총에 맞은 학생도 마에다(前田 廣)라는 일본인입니다.

자, 드디어 조선인이 공식적으로 군사교련을 받았다는 첫 기사가 나왔습니다.

1930년 4월 17일 조선민보 :

위 기사에 의하면, 경상북도 내에서 현역장교에 의한 군사교련을 받는 학교는 대구중학교 하나 뿐이었으나 "이번 신학기부터" 내선인 공학(전교생 400명 중 반반)인 대구상업학교도 현역장교를 데려다 학과목의 차별 없이, "일선융화를 위하여" 교련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니미 일선융화. 어쨌든 이로써 현역장교를 교관으로 받은 중등학교가 확실히 14개를 넘게 되겠군요.

잠깐, 그런데 말입니다. 1928년에 "1년만 있으면" 한다던 조선 전체 학교에 대한 교련 실시는 어떻게 된 걸까요? 다음 보도를 얼른 찾아봐야겠군요.


1931년 11월 14일 부산일보 :

오오, 드디어 조선인 학교인 평양고등보통학교의 교련 실시에 관한 보도를 발견했습니다. 와다(和田)라는 새 교장이 부임한 후 학생들에게 교련 수업을 실시했는데, 여기에 불만을 품은 일부 조선인 학생들이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불온한 움직임을 꾀하다가 고등계 형사들의 수사에 체포되고, 학교는 무기휴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는 교련을 했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육군에서 파견한 현역장교가 교관이었다는 이야기는 없군요. 좀 더 확인이 필요하겠습니다.


1932년 2월 28일 중앙일보 :

이번에는 경성(서울)의 제2고등보통학교로군요. 교련 시간에 각반을 차지 않고 나온 백여 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교사가 교실로 불러들여 훈시하는 도중 학생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이에 학교 당국이 학생들을 교실 내에 잡아두고 저녁으로 과자를 사먹여 가면서 주모자를 색출했다고 합니다. 다음날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색출한 주모자 4명은 다음날 종로경찰서 고등계로 넘겨졌고요.

앞의 부산일보 기사와 이 기사를 볼때, 1930년대 초에는 일부 조선인 학교에서 교련 수업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관이 일본인 학교의 사례처럼 현역장교인지, 아니면 예비역장교인지는 아직 알 수 없군요. 추가로 더 찾아보겠습니다.


1933년 4월 19일 조선중앙일보 :
이날 신문에는 전주고등보통학교에 경기관총이 비치되었다는 기사가 있다고 합니다만, 이미지 상태가 나빠서 전문이 확인이 안 되는군요. 역시 교관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 기사의 전문은 "산병훈련(散兵訓練)에 꼭 필요해서" 전주고보 측이 기관총을 "사들였다"는 내용입니다. 눈 크게 뜨고 기사를 제대로 확인했다면 하지 않았을 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1933년 9월 30일 동아일보 :

앗, 경성 시내에 있는 학교들이 합동으로 "연합전투연습"을 한답니다. 그럼 교련 교육을 제대로 받는 학교들은 모두 참가한다고 봐도 되겠지요? 한번 참가 리스트를 보겠습니다. 모두 약칭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일부 원래 명칭을 병기했습니다.

▲성대 예과(경성제국대학 예과) ▲경성농업(耿君님 수정) ▲경성상업 ▲경사(경성사범학교) ▲의전(경성의학전문학교) ▲약전(경성약학전문학교) ▲선린상업 ▲철도양성(耿君님 수정) ▲고상(경성고등상업학교) ▲고공(경성고등공업학교) ▲용중(용산중학교) ▲법전(경성법학전문학교) ▲경중(경성중학교) ▲경기상업 ▲경성공업

이상 15개교가 합동으로 영등포 비행장(여의도 비행장?)을 점령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일본인 현역장교가 교련 교관으로 배치된 학교라는 점이군요. 아까 "교련 중 소동"을 일으켰다는 기사가 분명히 있었던 제2고등보통학교도 등장하지 않는 걸 보면, 이들이 받은 현역 교관이 배치된 정식 교련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미 수년 전부터 현역 장교가 배치된 일본인 중학교 및 실업학교, 전문학교 학생들만 모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습니까? 이 문제는 다음 기사를 보면 확인되리라고 생각합니다.


1934년 6월 16일 동아일보 :

6년 전부터 한다 한다 미루던 모든 중등학교에의 현역장교 배치! 드디어 뭔가 가시적인 결과가 정말로 나왔습니다.

본문의 기사에 의하면, 조선 전체의 중등교육기관은 33개인데 이중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중학교 및 공학으로 편성된 실업학교들은 이미 모두 현역장교를 교관으로 받았습니다. 하지만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사립의 고등보통학교 및 중등학교는 현역장교 배정을 받지 못했고, 청주/전주에 소재하는 고등보통학교는 인원과 예산은 받았으되 조선인에게 군사교육을 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결말이 나지 않아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그것이 이제 모두 해결되어 불원간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모든 공사립 중등학교도 일본인 학교처럼 현역 교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나온 중앙일보의 "전주고보에 경기관총" 기사가 이제 이해가 갑니다. 교관을 배정받았으니 총기도 지급되긴 했는데, 교육을 할지 말지 결정을 못해 못 하고 있었다니 창고에서 썩었겠군요. 그 교관은 놀고먹으면서 팔자 좋은 시간을 보냈을 듯^^)
제 오독입니다. 이미 실시한 것인데 제가 문장을 잘못 읽었습니다. 아래쪽에는 맞게 적어 놓고 이해를 잘못 했네요.


여기에 대해서 총독부 학무과장 오오노(大野)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군요. "소화 5년(1930년)부터 이걸 실시하려고 예산까지 마련했는데 군부 쪽 형편으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립실업학교(주 : 내선공학인)는 이미 실시했고 청주와 전주 고등보통학교도 이미 실시했으니 나머지 학교도 앞으로 하자는 것이다."라고요.

어떻습니까? 앞에서 나온 조선인 학생들에게 교련을 실시한 고등보통학교들은 현역 장교가 아니라 예비역 장교 등 다른 교관에 의한 교련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여기서 입증이 되지요?


1934년 6월 17일 동아일보 :

다음날의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총기 지급 문제에 대한 당국의 입장을 실은 보도가 있습니다. 1년에 10개 학교씩 창(총검? 목창?)과 총을 지급한다는 계획이로군요. 명년(1935년)에 경성-대구-평양 등지의 공사립 고등보통학교에 지급한다고 하는데, 지금까지는 없었단 이야기겠죠? 자, 이제 조선에서 언제부터 중등학교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교련이 실시되었나 규명하는 것은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참, 이 기사를 보니 무명씨님이 "10개 학교에서 교련 시작" 운운하신 게 여기서 나온 게 아닌가 싶어지는군요.


1934년 6월 26일 동아일보 :

드디어 고등보통학교에 현역장교를 배치하는데 관한 확실한 일정이 나왔습니다. 8월의 정기 인사이동을 기하여 배속장교를 배치하는데, 일단 경성의 우수한 학교 2,3개교를 선정하여 현역장교를 배치한 후 그 성과를 보아 차츰 확대한다는 것입니다. 아까 당국자의 말과는 좀 다르지만 뭐 그거야 어느 세월이건 그렇겠거니 해야겠죠. 안 그런가요? :)
기사 말미에 "장래에는 조선사람에게도 병역상의 권리의무를 부여할 수 있게까지 되도록 하려는 것이라 한다"라고 쓴 문장이 참 여러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오늘의 주제는 그 의미를 분석하는 게 아니니.


1934년 7월 18일 동아일보 :

자, 드디어 조선군 예하의 주력사단이 20사단으로부터 1차로 배속장교를 받을 5개 학교가 선정되었습니다. 이 학교들은 8월의 육군 정기 인사이동 때 담당 장교를 받아 가을 학기부터 교련 수업을 받게 됩니다. 그림파일은 읽기 불편하신 분들도 있으실 테니, 옮겨적어 보지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 ▲평양의전 ▲평양공립상업학교 ▲대구의전
* 각 의학전문학교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대체로 2:1 비율로 입학했으므로 한국인"만" 다닌 학교는 아닙니다.


자, 이 기사로 미루어보아 아까 등장했던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는 현역장교 교관이 없었다는 점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잘 읽어보면 이들은 모두 20사단 관할구역의 학교들이라고 하는군요. 일본군 20사단은 당시 용산에 본부를 두고 있었습니다. 19사단(나남 주둔) 관할 지역에서도 1개 교에 현역 교관을 보냈다는 기사가 2면에 있는데, 영 흐려서 알아보지를 못하겠군요.

자, 이제까지 언론보도를 통해 조선에서의 중등학교 교련 교육이 어떻게 시행되었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신문만 보면 밋밋하니까 공문서도 한번 보도록 하죠. 국가기록원이 제공하는 조선총독부 문서, 1928년자 <학교배속장교에 대한 서류>입니다. 국가기록원이 제공하는 요약본을 전재해 보겠습니다. 원문은 꽤 양이 많으니 원본을 보실 분들은 위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이 기록물철은 1928년 조선총독부 학무국(學務局) 학무과(學務課)에 접수된 학교배속장교에 관한 서류를 모아놓은 문서이다. 문건은 현역장교의 배속을 신청하는 학교에서 조선총독 앞으로 보내는 형식을 띤다. 또 그 절차는 각 학교가 속한 도지사와 학무국장을 거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기록물철의 사료적 가치는 관공립 학교를 중심으로 한 교련의 실시와 거기에 따른 현역군인의 배속을 파악할 수 있다는 데 놓인다. 이 기록물철에 따르면 1928년부터 대부분의 관공립학교와 선린상업학교 등의 사립학교에서 교련이 실시되었으며, 그것이 육군 현역장교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교련의 실시가 일본 내지인 졸업자의 재영기한(在營期限)에 도움을 주기 위해 실시된 것은 주목을 끈다. 또 그것이 선린상업학교의 <육군 현역장교 배속 신청>에서 알 수 있듯이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朝鮮敎育令)의 표면적 취지인 내지인과 조선인의 공학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것 역시 주목을 끈다. 이렇듯이 기록물철은 학교에서 육군 현역군인에 의한 교련의 실시가 시행되는 출발을 보여준다는 데 그 사료적 의의를 지닌다.

▲육군 현역장교 배속 신청 - 1926년 7월 6일
1926년 7월 6일 선린상업학교 이사가 조선총독에게 보낸 문건으로 육군 현역장교 신청이유서가 첨부되어 있어 주목을 끈다. 거기에 따르면 현역장교를 배속한 학교의 내지인 졸업자는 재영연한(在營年限) 1년을 거친 후 예비역 장교로... 1926년 7월 6일 선린상업학교 이사가 조선총독에게 보낸 문건으로 육군 현역장교 신청이유서가 첨부되어 있어 주목을 끈다. 거기에 따르면 현역장교를 배속한 학교의 내지인 졸업자는 재영연한(在營年限) 1년을 거친 후 예비역 장교로 임명되는 특전을 위해 신청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단 조선인 학생의 경우 규율, 협동, 절제, 복종 등을 배양하기 위해서라고 되어 있다. 이어 선린상업학교 최근 연간 생도수가 첨부되어 있다. 거기에 따르면 1922년에서 1925년까지 내지인은 258명에서 284명이 되었으며, 조선인은 153명에서 146명이 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선린상업학교는 1907년 설립될 때 조선인 입학을 본체로 했으나, 1913년 본과를 분리하면서 종래의 조선인 수용을 2부에서 하고, 내지인 수용을 제1부로 해 갑종과정의 상업교육을 개시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는 1922년 조선교육령의 개정에 따라 실업교육 공학(共學)의 정신에 기초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고, 이후 수업년한을 5년으로 하고 학급수를 10학급으로 편제해 내지인과 조선인 공학의 정신을 실현코자 했다고 한다.

▲육군 현역장교 배속 신청 - 1927년 12월 17일
조선총독부 철도종사원양성소와 관련된 문건으로는 1927년 12월 17일 조선총독부 철도국장이 조선총독에게 보낸 <육군 현역장교 배속 신청>이 있다. 그 내용은 육군 현역장교 학교배속령에 따라 조선총독부 철도종사원양성소... 조선총독부 철도종사원양성소와 관련된 문건으로는 1927년 12월 17일 조선총독부 철도국장이 조선총독에게 보낸 <육군 현역장교 배속 신청>이 있다. 그 내용은 육군 현역장교 학교배속령에 따라 조선총독부 철도종사원양성소 본과 생도에게 군사 훈련을 실시할 학교배속장교를 신청한다는 것이다. 이어 육군 현역장교 배속 신청에 필요한 사항이 첨부되어 있다. 거기에는 학교 명칭, 위치, 입학자격 및 수업년한 등이 기술되어 있다. 거기에 따르면 철도종사원양성소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은 고등소학교 2년 과정을 수료하거나 동등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로 되어 있다. 또 옥외체조장의 구역 및 면적과 무기 및 그 부속물의 종류와 원수도 기술되어 있다.

▲소화(昭和) 3년도부터 새롭게 교련을 실시할 관공립학교 조사 - 여기부터는 모두 1928년 문서
조사는 학교 이름, 창립년월일, 소재지, 학급수 및 생도수 등의 항목으로 기술되어 있다. 거기에 따르면 13개의 공립사범학교(公立師範學校), 15개의 공립고등보통학교(公立高等普通學校), 22개의 농업·공업·상업학교 등의... 조사는 학교 이름, 창립년월일, 소재지, 학급수 및 생도수 등의 항목으로 기술되어 있다. 거기에 따르면 13개의 공립사범학교(公立師範學校), 15개의 공립고등보통학교(公立高等普通學校), 22개의 농업·공업·상업학교 등의 공립실업학교(公立實業學校), 사립 선린상업학교, 조선총독부 철도종사원양성소 등 모두 52개의 학교에서 새롭게 교련이 실시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생도수 등 조사의 건
1928년 2월 27일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총장이 학무국장 앞으로 보낸 문건으로 역시 교련 실시와 관련되는 문건으로 보인다. 문건에는 생도 정원, 옥외체조장의 구역 및 면적, 무기 및 그 부속물의 종류와 원수, 현재... 1928년 2월 27일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총장이 학무국장 앞으로 보낸 문건으로 역시 교련 실시와 관련되는 문건으로 보인다. 문건에는 생도 정원, 옥외체조장의 구역 및 면적, 무기 및 그 부속물의 종류와 원수, 현재 체조과(體操科) 교원의 씨명 및 이력 등이 첨부되어 있다. 이후에는 <소화(昭和) 3년도부터 새롭게 교련을 실시할 관공립학교 조사>에 따른 각 학교에서 보낸 <생도수 등 조사의 건>이 있다. 조사서의 항목이나 양식은 앞서 살펴본 학교의 그것과 동일하다.

▲옥외체조장의 구역도에 관한 건
1928년 5월 21일에 선린상업학교가 조선총독 앞으로 보낸 문건이다. 거기에는 옥외체조장의 운동장 총평수가 5,280평, 교사(校舍)와 부속건물 총평수가 979평으로 되어 있다. 또 이어 평면도가 첨부되어 있다. 1928년 5월 21일에 선린상업학교가 조선총독 앞으로 보낸 문건이다. 거기에는 옥외체조장의 운동장 총평수가 5,280평, 교사(校舍)와 부속건물 총평수가 979평으로 되어 있다. 또 이어 평면도가 첨부되어 있다.

▲장교배속에 관한 희망의 건
1928년 4월 11일 선린상업학교(善隣商業學校) 교장이 조선총독 앞으로 보내는 문건이다. 그 내용은 육군 현역장교 배속령 제2조에 따라 선린상업학교에 육군 현역장교의 배속을 희망한다는 것이다. 그 대상자로는 내지인(內地人)과... 1928년 4월 11일 선린상업학교(善隣商業學校) 교장이 조선총독 앞으로 보내는 문건이다. 그 내용은 육군 현역장교 배속령 제2조에 따라 선린상업학교에 육군 현역장교의 배속을 희망한다는 것이다. 그 대상자로는 내지인(內地人)과 조선인의 공학(共學)인 선린상업학교의 경우 인물, 재간(才幹) 등 각 방면을 고려해 보병 제78연대 육군 보병 대위 송전원치(松田元治) 씨를 최적임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학교에서 교련에 관한 건
1928년 3월 27일 조선총독이 육군대신(陸軍大臣) 앞으로 보낸 문건으로, 1928년부터 육군 현역장교 학교배속령에 기초해 선린상업학교와 조선총독부 철도종사원양성소(鐵道從事員養成所)에 교련실시를 위해 육군 현역장교 배속의 신청을... 1928년 3월 27일 조선총독이 육군대신(陸軍大臣) 앞으로 보낸 문건으로, 1928년부터 육군 현역장교 학교배속령에 기초해 선린상업학교와 조선총독부 철도종사원양성소(鐵道從事員養成所)에 교련실시를 위해 육군 현역장교 배속의 신청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육군 현역장교 배속 신청
1928년 3월 12일 선린상업학교 이사가 조선총독에게 보낸 문건으로, 역시 육군 현역장교 배속령 제2조에 따라 장교배속을 신청하는 내용이다. 이 문건에는 학교 명칭, 위치, 입학자격, 생도 정원, 옥외체조장의 구역 및 면적, 무기... 1928년 3월 12일 선린상업학교 이사가 조선총독에게 보낸 문건으로, 역시 육군 현역장교 배속령 제2조에 따라 장교배속을 신청하는 내용이다. 이 문건에는 학교 명칭, 위치, 입학자격, 생도 정원, 옥외체조장의 구역 및 면적, 무기 및 그 부속물의 종류와 원수(員數), 현재 체조교원의 씨명(氏名) 및 약력이 첨부되어 있다.


이 문서들을 보시면 1928년에 이미 총독부 측의 준비는 상당히 진척되어 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나온 당국자의 말마따나 "육군성과의 조율 문제" 때문에 대상학교 선정 등 준비는 하되 실제로 하지는 못한 것이라고 봐야죠. 이미 앞에서 기사를 통해 확인했듯, 이 시기까지 실제로 고등보통학교가 교련을 받지는 못했으니까요.


어떻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이만하면 조선에서 "조선인 학생"에 대한 교련이 언제부터 시행되었나 하는 점은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보는데요. 이쯤에서 무명씨님 말씀을 다시 보기로 할까요?



무명씨님은 위에서 거론한 1925년의 『陸軍現役將校學校配屬令』공포 및 『문부대신 관할 학교외 육군현역장교 배속의 件』을 논거로 하여 "1926년부터 조선에서 교련이 실시되었다"면서 제 포스팅 중 이 부분이 오류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이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하는데는 한 가지 장애가 또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한국인이 다니는 고등보통학교에서는 교련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일본인이 다니는 중학교는 의무적으로 교련 과목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한국인은 중등교육 과정에서 교련을 배우지 않았으므로 입시에 있어서 확실히 불리했습니다. 고등보통학교가 교련을 가르친 것은 1934년부터였죠.

자,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께서는 어느 쪽 이야기가 맞는 것인지 쉽게 판별이 가능하실 겁니다. 제가 다시 정리를 해 볼까요?


1. 무명씨님의 주장, "1925년에 현역장교가 교련교육을 하는 법적 기초가 마련되었다"는 부분은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부분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으므로 쓸데없는 논박입니다.

2. 무명씨님의 주장, "조선에서 1926년부터 교련을 실시했다"는 이야기는 분명히 맞습니다. 하지만 이는 제가 먼저 제시한 "일본인이 다니는 중학교는 의무적으로 교련 과목이 설치되어 있었지만"이라는 역사적 사실의 반복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 10개 학교(실제 14개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겠지요?)에 조선인과 일본인이 골고루 다니고 있다면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도 아니지요. 조선에 사는 일본인만 받는 교육이라면, 조선인의 입장에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3. 무명씨님의 주장, "일본에서나 조선에서나 현역장교가 중등기관에 배속되어 교련교육을 한 것은 시기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고 봐야한다"는 이야기는 일부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본인 학교에 한정된 이야기로, 위에 인용한 1930년 동아일보 기사에서 토로하고 있듯이 당시 시점에서 일본인 학교 또는 내선인 공학 학교에만 현역장교가 배속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하셨을 것입니다. 조선인 학교인 고등보통학교에 현역장교가 배속되어 교련 교육을 시작한 것은 끝쪽의 기사에서 보시듯, 1934년 9월부터입니다.1931년부터로 보는 게 타당한 것 같습니다내선공학 중학교가 나중에 생기긴 하지만, 그건 1936년 이후의 일이었죠.

4. 무명씨님의 주장, "교련수업이 없어가지고 육사 진학 못했다는 소리는 허황된 얘기일 뿐만 아니라 사실관계에도 부합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맞는지 틀리는지는 이로써 독자분들이 충분히 판단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또한, 저는 교련수업의 부재로 인해 조선인 학생들이 "불리했다"고는 했어도 "육사 진학 못했다"고 발언한 적도 없습니다. 교련 안 배우고 합격한 실제 사례를 볼까요?

육사 44기의 이동석은 아마도 일본인 중학교를 다녔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출신 학교를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49기로 입학한 이종찬과 채병덕 두 사람을 보죠. 이종찬은 일본인 학교인 경성중학교(이종찬 재학 당시 천여 명의 전교생 중 조선인은 10명 내외)를 졸업했고, 당연히 현역 장교인 교관으로부터 교련 수업을 받았습니다. 채병덕은 평양고등보통학교 출신이라 교련 수업은 받지 않았지만 유도를 했기 때문에 워낙 몸이 좋아서 신체검사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죠. 하지만 사실 정식 군사교련은 위에서 인용한 기사들(체조 뿐 아니라 실탄을 사용하며 목표 탈취 훈련을 하는 등)이 보여주듯 몸을 만드는 데 있어 체육 시간의 체조나 공차기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또한, 당시 중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련이란 어떤 의미였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 한국에서는 대한민국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교련을 떠올린 나머지 일제시대의 교련이라는 것도 "대충 굴리는 거 아니냐"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위에서 인용한 선린상업학교 이사의 <육군 현역장교 배속 신청>을 떠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항목에서 설명하듯이 현역장교를 배속한 학교의 내지인 졸업자가 교련시험에 합격할 경우, 군대에 입영하여 재영연한(在營年限) 1년을 거친 후 예비역 소위로 전역할 수 있었습니다.
1889년부터 1927년까지는 이 제도를 이용하는 자를 가리켜 "1년 지원병"이라고 불렀으며 이후에는 병역법 개정으로 그 호칭이 "간부후보생"으로 바뀝니다(단 이들은 복무기간이 짧은 대신 경비를 스스로 조달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 못한 일반병의 경우 2년간 복무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확실히 고학력자에 대한 우대조치였습니다. 이때 중학교를 갈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전체 인구 중 얼마나 될지를 한번 생각해 보시는게 좋을 거예요. 지금 대학교 숫자보다 적습니다.

자, 이건 무슨 의미일가요? 간단합니다. 중학교에서 실시하는 교련은 단순히 체력단련과 정신수양의 의미가 아니라, 장래의 일본군 장교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과정의 일부였다는 이야깁니다. 따라서 조선인에게 병역의 의무가 없었던 30년대 초까지는, 육사에 지망할 생각이 없는 조선인 학생들에게는 그저 빡세게 구르기만 할 뿐 예비역 장교의 특전 따위는 없었지요. 물론 "선생님 칭찬"이라도 받는 편이 괜히 빼다가 더 구르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말입니다.

더불어 말하자면 조선인의 배일감정이 지원을 꺼리게 했다는 이야기 및 교련수업이 한국인 생도들의 육사 진학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는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니며, 일본 육사를 졸업한 한국인들에 대해 기록한 <비극의 군인들(이기동, 일조각, 1982, p42)>을 참고한 것입니다. 해당 문단을 전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위에서도 이미 말했지만 무관직에 대한 경시는 제가 넣은 것 맞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주 : 20여 년 간 육사 입교가 끊긴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첫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일반적인 배일 풍조이다. 병합 직후 무단통치 시대에 형성된 한국인의 일제에 대한 적개심은 1920년대의 이른바 문화정치 시대에 들어와서는 상당히 누그러진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육사의 문호를 두드릴 정도까지는 되지 못하였다. 둘째로는 이 때까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고등보통학교(일본인의 중학교에 해당함)에 교련과목이 없어서 육사 입학시험에 커다란 곤란을 주었다는 사실이다(1934년 9월부터 고보에도 교련이 실시되기 시작함). 세째로는 그 입학시험 자체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입증은 됐습니까? 아아, 이번엔 이 책이 권위가 없는 책이 되겠군요. 쯧쯧, 가엾은 것.



이번 포스팅은 여기쯤에서 마치겠습니다. 이쯤 하면 제가 할 이야기는 다 했고, 그다지 추가자료가 필요하지도 않을 것 같네요. 사실관계가 워낙 명백한 주제라 그다지 덧붙일 말도 없고 말입니다.
빡세기는 했습니다만 대략적으로만 알고 별 신경 안 쓰던 분야를 조금 더 알게 됐으니 그 점에서는 뭔가 남기는 했군요. 이런 계기를 주신 무명씨님께 감사라도 드려야 하려나요~:)

하여간 여기까지 이어지는 긴 포스팅 읽느라 수고들 하셨습니다. 다들 즐거운 아침 되시고요, 오늘도 밝고 보람찬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참고자료 :
6.25 전쟁과 채병덕 장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2
비극의 군인들, 이기동, 일조각, 1982
일본군사사, 후지모토 아키라, 시사일본어사, 1994
일본근대스펙트럼 vol.03 - 일본의 군대 : 병사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 요시다 유타카, 논형, 2005
참군인 이종찬 장군, 강성재, 동아일보사, 1986



by 슈타인호프 | 2009/12/01 06:26 | 한국현대(~20XX) | 트랙백(2) | 핑백(2) | 덧글(123)
트랙백 주소 : http://nestofpnix.egloos.com/tb/4287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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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 at 2009/12/01 16:00

제목 : 일제시대 교련 수업, 뭘 배웠을까?
일제시대 조선인에 대한 교련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 무명씨님 지적에 대한 반론 이 문제는 사실 위 포스팅에서 나왔어야 할 이야긴데, 제가 집어넣는 것을 잊었습니다. 아무래도 새벽에 포스팅을 하다 보니 머리가 좀 둔해지더군요. 먼 데 가서 찾는 것도 아니고, 손만 뻗으면 닿는 자리에 꽂아둔 책에 나오는 이야긴데 말입니다--;; 앞에 글 읽으면서 "교련에서 도대체 뭘 배우기에?!" 하시는 분들 많으셨죠? 그럼 아래에서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more

Tracked from 일본에 먹으러가자. at 2009/12/02 04:11

제목 : 삿포로 시계탑의 정체.: 아마 이것이 일본 최초....
'삿포로 시계탑'이 삿포로의 명소라는 것을 듣고 한동안 오도리 공원에 세워진 저 탑을 '삿포로 시계탑'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삿포로 한 복판에 시계가 달린 탑하면 저것 뿐이었으니까요, 실제로 동행들과 '삿포로 시계탑'앞에서 만나자고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탑의 이름은 '삿포로 테레비 탑(さっぽろテレビ塔:삿포로 테레비 토우)'입니다. 삿포로 TV탑을 보면 바로 '도쿄 타워'를 떠올리게 되는데, 삿포로 테레비 탑 쪽이 도쿄타워보다......more

Linked at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는 둥지.. at 2009/12/02 17:31

... 적 증거를 가져와 보시기 바랍니다. 2. 일본인 학교 및 사범학교 등 내선공학교의 조선인 재학생 문제. 이 문제에 대해서 저는 http://nestofpnix.egloos.com/4287181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4. 무명씨님의 주장, "교련수업이 없어가지고 육사 진학 못했다는 소리는 허황된 얘기일 ... more

Linked at 남중생 : [크리스마스 특집].. at 2017/12/10 01:39

... 즉 군사교육을 받고 각목 등의 무기를 쥐어진 일본인 학생과 군사교육을 받지 못한/않은 조선인 학생의 대립구도도 있다는 것이죠.(슈타인호프 님의 일제시대 조선인에 대한 교련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참조) 무엇보다 이 영화를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해방이 된지 얼마 안 된 때라 그런지 영화 속의 고증이 상당한 수준으로 되어있 ... more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12/01 09:50
저같으면 군사교련을 무척 싫어했을텐데, 근대화가 목적이던 일제강점기때에는 군사교련을 원하는 상황이 되었군요. 여튼,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Commented by highseek at 2009/12/01 09:58
음. 결론은 호프님을 괴롭혀야 한다는 건가! (...)
Commented by 크악크악 at 2009/12/01 10:00
오발사고에 경기관총까지 비치해뒀다니...-.-;; 지금 생각하는 교련과는 차원이 다르군요....-.-;;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9/12/01 10:01
신문기사 제시될 때부터 예상했던 반론 형태지만서도...
진명행이 북한군 10만 파병설에서 발렸던 건 그게 신문기사여서가 아니라 "전쟁중의 불확실한 소문과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신문기사"였기 때문인데 그걸 아직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건지 아님 알면서도 무시하는 건지 모를 일이군요. ( ' ^')
Commented by Cicero at 2009/12/01 10:16
헐ㅋ... 교련수업거부를 위한 비밀결사에 단체수업거부라...
30년대 학생들의 반일의식을 보여주는것 같군요.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알렉세이 at 2009/12/01 10:17
헤에.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중간 부분에 각반 안차고 나온학생들 훈시하다 형사가 '과자를 사먹여 가며' 주모자 색출 에서 뿜었습니다.ㅋㅋ
Commented by Luthien at 2009/12/01 10:21
제로경이 떠올랐어요.
Commented by 12345 at 2009/12/01 10:23
무명씨 친구분들이 무명씨가 본문에서 설명하는 하수들이 맞나요?
Commented by thespis at 2009/12/01 10:27
우와, 사료의 파도가 물결치는군요 'ㅁ'!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적어주시니 음! 제게는 상당히 유익한 시간이 되었군요 >ㅂ<
Commented by 비로그인 at 2009/12/01 10:34
또 무명이야? 라는 장탄식이....상대 안 해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
Commented by 월광토끼 at 2009/12/01 10:37
역사밸리가 키배로 뒤덮히겠군요 -_-

무명씨 트랙백은 읽어보니 이젠 확실히 확신범이네요. 더 이상 박정희가 친일했건 뭐했건이 문제가 아니고 그냥 '나랑 싸우자 세퀴야' 정도의 도발인 것 같군요.
Commented by IEATTA at 2009/12/01 11:53
포스팅은 점잖은 편입니다. 자기 블로그에서도 댓글은 점잖은 편이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 블로그 달아두는 댓글은 상상을 초월하지요.
Commented by dhunter at 2009/12/01 14:09
예전에 다른 사람 블로그 댓글을 'Commented by 진명행' 만으로 긁어서 포스팅했더니 이오공감도 가고~ 댓글도 200개나 낚고~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나는군요.

뭐... 블로그따위 그만 둔 지금에서야 아련한 추억의 키배일 뿐입니다만.
Commented by 나야꼴통 at 2009/12/01 10:39
이정도 자료 모으시는 것도, 그리고 찾아내시는 것도 대단하십니다.
저같은 귀차니즘 말기 환자에겐...
검색버튼 누르는 것 마져도 너무 너무 힘든 사항입니다.

정말 많은거 보고 느끼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Commented by sinis at 2009/12/01 10:40
트랙백된 무명씨님 글을 읽어보니...[사실 이런 신문기사들은 중학교 이상의 중등교육기관에서 교련교육이 언제부터 어떻게 얼마나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으므로 반론자료로서 의미가 없음.]이라고 하는군요...^^;;

그렇지만 "일반적인 조선인의 일본 사관학교 입학에 대한 차별이나 문제점"는 주장에 대한 반박자료로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최소한 '언제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료이니까요.

즉, [교련교육이 언제부터 어떻게 얼마나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더라도, 최소한 1930년대 초반까지는 조선인 중등교육기관에서의 교련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내용은 충분하고, 이는 육사진학시 충분히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수 있다는 점에서 슈타인호프님의 주장에 더 힘이 실린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공무원 시험에서 "각개전투에 대하여 논하시오"나 총검술 동작 재현 등의 과목이 있다면 군에 다녀온 사람과 안다녀온 사람들 가운데 누가 더 유리할지는 뻔합니다...
단지 가산점만으로도 엄청난 혜택이 된다고 하는데 말이죠...

더우기, 교련 과목은 토익토플과는 달리 어디가서 개인적으로 배울수 있는 과목도 아니죠...
당시 한국이나 일본에 사설 군사훈련소 같은 것이 있었을 턱이 없고, 개인교습을 받고자 하여도 실탄사격이나 총기분해 등을 어찌 배우겠습니까?

결국 교련과목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조선인은 가급적 장교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을 법제화시킨 것이나 다를바 없습니다.
Commented by Linesys at 2009/12/01 11:07
무명씨님의 포스팅을 보면
"내가 도둑질을 하긴 했는데, 신발자국도 나오고 지문도 나오고 장물도 나왔지만 도둑질하는 그 순간을 찍은 CCTV가 없으므로 무죄" 라는 말과 겹쳐지는 느낌입니다.

데쟈뷰일까요?
Commented by The xian at 2009/12/01 11:08
고생이 많으십니다. 부록열사와 펜을 섞으면 그저 피곤해질 뿐이라 저는 자제하고 있습니다.-_-
Commented by SoulbomB at 2009/12/01 11:13
사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 공부가 되는건데

어째 공부는 한쪽만 되는 거 같아서 아쉽네요, 한쪽은 옹고집인 거 같아서...
Commented by Allenait at 2009/12/01 11:25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슬슬 떡밥을 그만 무셔야 할것 같군요.
Commented by 김첨지 at 2009/12/01 11:28
그 당시에 반일 감정이 없었다면 대체 3.1운동은 뭐가 되는거지.. 아, 이것도 일부의 불순종자에 불과하려나요?
Commented by 소하 at 2009/12/01 11:32
또 우기기 신공이 나올 것 같군요. "쟁" 전문인 무명씨님.
Commented by LemonTree at 2009/12/01 11:41
어째 예전에 그리도 '풍Q'를 까던 사람이 그리도 풍Q가 하는 짓을 그대로 답습하는지 모를 일이죠(웃음)뭐,그 분께서는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일본국회도서관의 '마이크로필름'은 안 찾고 뭐하시는지.뭐 그런 거야 '대출심사하느라 바쁜 와중'이라면 이해는 가는데,저렇게 '포스팅(이라고 하면서 키배라 읽는다)'할 시간은 있긴 있나 보죠(하품)

아,'너는 더 망신당하기 전에 글 내리는 게 좋다.어디 퇴근 후 보자!!'식의 그런 거라,예전 초록불님의 '환Q이야기'시리즈에서 '두,두고보자! 나는 돌아온다!'라는 환Q의 그 구절이 생각난다죠.
Commented by 쿠쿠 at 2009/12/01 11:48
사료가 많이 쌓여 보기는 좋은데 무명씨님과 슈타인호프님의 글 둘 다를 보면 서로가 주장하는 바가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무명씨님의 글을 보면, 당시 일본과 조선에서 교련은 같은 해에 시작되었고 함께 제도를 운용했기 때문에 교련 때문에 사관학교 입학에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는 주장을 하는 반면
슈타인호프님의 글은 조선에서의 교련 교육은 전국규모 확대가 느려서 일본인에 비해 교련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었고 이것이 사관학교 입학에 장애가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두 주장 사이에는 일본에서의 교련 실시 현황이라는 자료가 빠져있어서 주장간에 쟁점이 맞물리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즉 무명씨님으로서는 일본에서도 전국규모 교련확대는 느렸기 때문에 별 차이 아님. 이라는 주장이라든지 제도 확대의 속도를 비교하여 결국은 같은 결과에 다달았는데 교관인 장교를 육성하는데 드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 사이 몇년의 차이는 본국과 식민지의 차이였음 이라는 반론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이 부분에의 슈타인호프님 주장은 기사 중에 스쳐지나가는 일본인과의 차별대우 부분인데, 이것만 떼놓고 보면 그렇게 신뢰도가 높지는 않네요.

어쨋든 일제 후기에 병역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였다는 것이 기사 속에 드러나 기분이 아리삼삼하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11:49
功名誰復論//전 별로 그래지고 싶지는 않네요.

Frey//sinis님의 말씀대로, 조선인의 상급학교 진학율이 높지는 않았으니까요. 또한 이종찬 장군의 전기에서 보듯이, 일본인 중학교에 다니는 조선인의 수는 극히 적었고 말입니다.

sinis//감사합니다.

하늘이//아아, 에너지를 너무 소비해서 이걸로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Taxi Driver//1차 사료가 있고 검증이 가능하다면 그에 근거한 판단만을 해야 하는게 맞겠지만, 잘 해석된 2/3차 사료도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뭐,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요.

아브공군//뭐 할 테면 하라죠.

耿君//앗 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ㄴㄹㅋ//트랙백해주신 글을 보니 뭔가 자료를 제시한 반론을 하실 모양이더군요. 타당한 근거로 제가 틀렸음을 입증하신다면 기꺼이 제 오류를 인정하는 포스팅을 할 용의가 있습니다.

굽시니스트//실증이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위 신문기자를 삭 다 부정할 수 있는 근거만 있다면야.

들꽃향기//저도 이럴 줄은 F-

소년 아//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_^/

nighthammer//어차피 대부분의 토론은 상대가 아닌 제3자를 설득하기 위한 경우가 많죠^^;

maxi//저도 모르겠습니다. 아, 제가 처음 리플에서 "고까우십니까?"단어 하나 쓴 것 때문에 자기를 모욕한다고 절대 잊지 않겠다고 화를 냈었죠.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이//음 그분도 나름 메이저 아닌감요 ㅋㅋ

아브공군//그랬었죠. 뭐, 퇴근 뒤 나올 근거가 뭔지 모르겠지만 저를 설득할만큼 합리적인 근거라면 이오공감에서 글 내리고 패배를 인정할 용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글 내릴 용의 따위는 없다는. 틀린 내용으로 쓴 포스팅도 제 역사거든요 :)

행인1//그러게요. 한동안 혼자글만 쓰다가 모처럼 트랙백이 붙으니 자극이 되셨나 봅니다.

blue ribbon//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분"보다는 그래도 말 되는 근거를 가져오십니다. 적어도 "그분"처럼 SF를 쓰지는 않죠.

나아가는자//일본인과 "같은 권리"를 갖는 상징이 병역이었다고 봐야죠. 실제로 당시 조선인들 중에는 총독부 예하의 식민지 체제가 아닌 일본 정부에의 완전한 통합과 평등을 추구하는 움직임도있었으니까요. 조선인도 군대에 가고, 투표도 하고, 완전한 평등을 이루어야 한 나라가 된다는.

highseek//즐. 거부. 됐음.

크악크악//사실상 준군사훈련입니다.

하늘이//만주일보 혈서 건에 대해서는 "신문 쪼가리 믿는다고 까던 놈들이 신문을 근거래?ㄲㄲㄲ"이더군요. 말씀하신 것 중 전자라고 보고, 퇴근 후에 나올 근거가 뭘지 궁금해집니다.

Cicero//주모자로 판정받은 4명이 고등계에 끌려가서 당했을 수모들을 생각하면...ㄷㄷ;;;
잘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알렉세이//아, 형사는 아니고 학교측에서 한 거라고 합니다. 제가 "학교 당국"이라고 썼죠?
형사들이었다면 패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고문 겸 해서 저녁은 굶겼을 듯. 현실적으로 학생 400명 저녁을 먹이기가 쉽지 않죠ㅋ

Luthien//오오(.....)

12345//음, 잘 모르겠습니다.

thespis//사실 뭐 국편위 사이트에서 노가다질 조금만 하면 나오는 거지 뭐 대단할 것도 없습니다(...0

비로그인//저도 웬만하면 이걸로 끝입니다. 지적 2개 중 1번만 나왔으면 추론한 게 사실이니까 그냥 넘어가면 그만인데, 2번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문제라 한 마디 한다는게 길어졌네요. 뭐, 웬만한 근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아마도 앞으로 더 하지는 않을 듯.

월광토끼//큰 생각 없이 사용한 단어 하나가 이토록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쓴웃음). 앞으로는 리플을 달 때 이 단어가 안 좋은 어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더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야꼴통//뭐 그냥 인터넷 노가다질일 뿐입니다.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sinis//애초에 제가 이야기한 것은 "교련 수업의 부재가 영향을 미쳤다"는 거였는데 무명씨님은 "교련 했다"고 하셨고 여기에 대해서 저는 "안 했는데?"한 거니까요. 여기서 교련수업 내용이 어쩌고 하는 건 곁가지밖에 안 되죠. 말슴대로 애초의 논지였던 했고 안 했고만 입증하면 된다고 봅니다.
사실 문제를 정확히 규명하려면 일본 육사 입시에서 "신체검사"가 대한민국 육군 입대시 하는 검사처럼 단순히 체격만 측정하는지 체력 및 운동기술까지 모두를 측정하는가 하는 것과 필기시험 과목은 무엇무엇을 보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그쪽은 아직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Linesys//음, 그렇게 보이시는가요?;

The xian//감사합니다. 저도 몇 번 봤으면서 왜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습니다.

SoulbomB//뭐, 이 정도 선에서 끝나면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없이 계속되는 걸 몇번 보았으니 말이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11:56
Allenait//네, 저도 계속 하고 싶지 않습니다.

김첨지//10년대 20년대는 알 바 아니라고 하시면서 39년 자료만 뽑아서 제시하셨었죠.

소하//뭐 우길 건 우기시면 됩니다.^^

LemonTree//오늘 퇴근하고 찾으러 가시려나 보죠...뭐, 저는 망신당하더라도 글 닫고 잠수타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무명씨님의 증거에 의해 제가 틀린 게 입증되면, 사과포스팅 하고 이쪽 본문에는 수정메세지 달면 되죠.

쿠쿠//말씀대로 신문기사보다는 "조선인에게 군사교육을 실시할 수 없다"는 육군성이나 해군성의 공식문서를 제시하면 확실히 더 효과적일 겁니다. 그런데 뭐, 그걸 못 구했으니 할 수 없지요.
사실 20명 정도 되는 교관자원을 정말 일본군이 "마련하기 힘들어서" 배속장교를 보내지 못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지 않습니까. 그때쯤 육군이 일부 사단을 해체하면서 병력을 감축할 때였는데, 정말 장교가 없지는 않을 거고요.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9/12/01 11:59
저도 이제 이 주제는 그만 하심이 좋지 않을까 저어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12:00
네, 저도 살아야죠^^;
Commented by 단순한생각 at 2009/12/01 12:01
일단 보는사람이야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서 즐겁습니다만, 키배 당사자들에게는 도움이 안되는거 같아 그저 씁쓸합니다. 사실 지금 좀 쉬시고 훗날 해야할 일을 도모하는게 맞지 않겠습니까 -_-;;

사실 이런류의 의사소통일 경우에는 일단 자료가 많아야 하고, 그 자료의 신뢰도를 검증해야하며, 그 자료를 통한 정확한 해석을 보여주는 메카니즘을 보여줘야하는게 당연한건데 그걸 자료폭탄이니 뭐니 하는거 보면... 풋.

일단 이걸로 클래스차는 확실해졌으니, 더이상의 떡밥을 주는건 자제하셔도 될 듯 합니다.
Commented by orca at 2009/12/01 12:12
일단 논쟁과는 상관없이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거 어느 분한테 감사를 들야 하나요?ㅋ
Commented by 12345-2 at 2009/12/01 12:16
사론곡필찡이야 호위함대 하나도 업는 어찌보면 불쌍한 사람이지만,
이글루스에 패악을 끼치는건 부록열사패거리죠.
가끔보면 저 부록질에 낚이는 사람들이 있으니.
아무리 수꼴이라도 저정도면 학을 떼야지 정상인거 같은데,
그들의 머리굳음은 참으로 견고한거 같습니당.
Commented by 신나열사 at 2009/12/01 12:30
신나에 타죽은 경관이 당신을 노려보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John at 2009/12/01 12:22
부록열사 이 사람은 아직도 자기가 대단한 영향력이 있는 줄 아나봅니다. 하도 서커들이 빨아주니까 착각하는 모양이지만, 현실은 사론곡필과 동등 내지는 그 이하로 취급받고 있다는 걸 왜 모르는 건지... 아니,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는 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으려나요...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2/01 12:23
슈타인호프씨, 사람이 그러는 것 아닙니다. “민족문화연구소 측의 논리는 ‘일본 육사는 조선인이 1년에 한명도 못 들어갈 만큼 들어가기 엄청 어려운 곳이고, 따라서 그 어려운 곳에 들어가는데 성공한 자는 진짜 친일파다.’라는 것, 인정하시지요?”이라는 내용이 들어있는 포스팅이나 최초의 원문대로 복구하시고, 남의 말을 비난하던 말던 하십시오. 더구나 엉뚱한 포스팅에서 남의 욕을 하시다니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홀기는 그런 짓은 정말 몹쓸 짓입니다.

게다가 “민족문화연구소 측의 논리는 ‘일본 육사는 조선인이 1년에 한명도 못 들어갈 만큼 들어가기 엄청 어려운 곳이고, 따라서 그 어려운 곳에 들어가는데 성공한 자는 진짜 친일파다.’”라는 것을 “인정하시지요?”라고 반문했다면 귀하가 “민족문화연구소 측의 논리는 ‘일본 육사는 조선인이 1년에 한명도 못 들어갈 만큼 들어가기 엄청 어려운 곳이고, 따라서 그 어려운 곳에 들어가는데 성공한 자는 진짜 친일파다.’”라는 주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알지 무슨 민족문화연구소가 “조선인 입교자의 수를 줄여 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이해합니까?

그리고 제발 웃느니 마느니, 그런 소리 좀 하지 마세요. 웃던 말던 그건 읽는 사람이 알아서 하게 버려두세요. 귀하의 “당시 전국에 조선인 학교 교사가 수천 명이 넘었는데, 그 사람들이 전부 일제 식민교육에 협조하여 민족말살 교육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진 않았잖아요. 혹시 압니까? 박정희가 학교 선생님을 계속 했다면 일본인 교장 모르게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대단한 선생이 되었을지. 뭐, 모를 일입니다.”라는 댓글에서 귀하의 대단한 역사 의식과 고매한 지적 수준을 감지하고 정말 뒤집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Commented by Esperos at 2009/12/01 12:24
포스팅에 반대하는 줄은 알겠으나, 댓글 내용을 잘 이해하기 어려움.
Commented by 쿠쿠 at 2009/12/01 12:28
Mediocris / 구경꾼으로서 주장하시는 바는 이해하고 있으나 지난 포스팅에서 주제의 줄기와는 조금 어긋나보이더군요. 블로그를 보니 글도 잘 쓰시던데 말씀하시는 바를 잘 정리해서 트랙백으로 달아두시는게 어떨지요.
Commented by ex딴따라 at 2009/12/01 12:31
내가 난독증인건가..
Commented by 행인1 at 2009/12/01 12:32
원 세상에나, 대체 이런 덧글로 뭘 나타내려고 하시는겁니까?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12/01 12:53
만주국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이라는 논리를 가지신 분이 할 얘기는 아닌것 같습니다만? ^^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2/01 13:01
제 글을 단순히 포스팅에 찬성/반대의 이분법으로 읽는 분이 이해하기 힙든 것은 당연하겠죠? 주제의 줄기와는 조금 어긋나 보이는 곳이 어디입니까? 내가 언제, 어디서 "만주국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이라고 했는지 근거를 대세요.
Commented by maxi at 2009/12/01 13:05
찬성,반대의 이분법으로 나눌수 없는 글인지는 모르겠는데

글을 참 작가같이 쓰시는건 대번에 알수 있네요.

역벨 작가로 추천.
Commented by 쿠쿠 at 2009/12/01 13:09
Mediocris / 줄기에서 어디가 달랐는지 말해달라는 답글이 달렸다가 지워졌는데, 지난 슈타인호프님의 포스팅게 왕공족 3인에 대한 주장을 하셨더랬습니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 별도로 말씀하신다면 맞는 말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난 글의 주제는 왕족도 안지키는 나라를 개인이 지켜야 하느냐라는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육사 입학 숫자에 대한 글이었지요. 조금 핀트가 안맞는 이야기는 저도 자주 하니까 뭐 그럴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독립된 주제를 계속 끈질기게 다른 주제 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12/01 13:12
"맞습니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만주국을 괴뢰국이라고 단정해 버리지만 나름대로 명실상부한 독립국을 지향하던 만주국을 단순히 괴뢰국이라고 부르기에는 당시의 국제적 역학 관계와 사정은 너무도 복잡합니다."
(http://gkaqor.egloos.com/10269743)

-> 창립 당시부터 애시당초 일본 군부의 입김을 벗어나지 못했고, 행정권의 다수가 만철 출신 혹은 일본인 관료에게 쥐어 있던 만주국이 퍽이나 독립을 지향했겠습니다? 적대적 공범자라는 것은 만주국이 일본의 단순한 하부 속체가 아닌 하나의'국가'로서 적대적인 공범관계를 가졌다는 얘기밖에 더 되는지?

혹시 만주국의 일본의 영향력과는 별개로 '자주국'으로서 '대항적' 혹은 '독립적 행위'라도 한게 있음 설명좀 해주시죠?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2/01 13:13
"맞습니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만주국을 괴뢰국이라고 단정해 버리지만 나름대로 명실상부한 독립국을 지향하던 만주국을 단순히 괴뢰국이라고 부르기에는 당시의 국제적 역학 관계와 사정은 너무도 복잡합니다. 만주국은 청조의 멸망과 때를 같이한 무장한족의 부흥에 반대하여, 다시 만주족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도 청조의 재건으로 비쳐지는 것을 꺼려서 만주국 황제의 즉위식 일자를 늦추었습니다. 일본과 만주족은 서로 적대적 공범자 관계입니다. 독립국을 지향했지만, 힘이 미약했던 만주군은 정식의 사관학교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예과인 신경군관학교를 졸업하여 장교가 되려면 본과인 육사로 가야 하는데 본과 육사는 일본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박정희도 본과인 일본 육사에 위탁생으로 보내진 것 뿐입니다."

이 부분이 "만주국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이라고 읽힐까? '적대적 공범자'는 반드시 적대행위가 존재해야만 성립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자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겠는가? 이런 자에게 무엇하러 "만주국이 일본에 대항해서 자죽주국적인 '대항적' 혹은 '독립적'행위라도 있음 설명좀"을 제공하겠는가? 이런 자는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것만 주장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살면 된다.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2/01 13:19
"Mediocris / 줄기에서 어디가 달랐는지 말해달라는 답글이 달렸다가 지워졌는데, 지난 슈타인호프님의 포스팅게 왕공족 3인에 대한 주장을 하셨더랬습니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 별도로 말씀하신다면 맞는 말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난 글의 주제는 왕족도 안지키는 나라를 개인이 지켜야 하느냐라는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육사 입학 숫자에 대한 글이었지요. 조금 핀트가 안맞는 이야기는 저도 자주 하니까 뭐 그럴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독립된 주제를 계속 끈질기게 다른 주제 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제국 왕공족들이야말로 진짜 친일파라는 이야기는 했어도 "왕족도 안지키는 나라를 개인이 왜 지켜야 하느냐?"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왕공족 3인의 육사입학에 대한 주장과 왕공족이 친일파라는 주장이 동떨어졌다는 사고에 그저 경악을 금치 못할 뿐이다.
Commented by 쿠쿠 at 2009/12/01 13:20
말씀하신 왕공족 이야기의 행간이 제 이해와 달랐다면 죄송합니다. 뭐 그렇게 읽히더군요.
Commented by 노르웨이의 숲 at 2009/12/01 13:24
저 난독증인듯.. 이 댓글읽고 뭔뜻인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12/01 13:28
그러니깐 부디 만주국이 일본의 영향력과는 별개로...즉 '적대적'인 성격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나름대로 명실상부한 독립국을 지향하던 " 행위나 역사적 사실이 있는지를 설명해 달라는 거입니다.

말이 막히거나 논거를 제시할 수 없으면 '이런 자' 운운이신 겁니까? 안타깝군요. 즉 님이 세운 '적대적 공범자'라는 개념에서 일본정부와 관동군이 만주국과 '적대적'인 적이 있었는지, 그리고 '공범자'로서 비교적 비등한 비중과 주권을 가지고 '공범자'란 개념이 성립할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 제가 님이라면 '수동적 협력자로서의 상하관계'라는 표현을 쓰겠죠.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2/01 13:30
적대적 공범관계를 반드시 적대행위가 존재해야 성립된다는 자에게 일일이 답글 달기도 그렇고, 방금 읽기를 마친 책의 마지막 대목만을 적어본다. 만주국 연구가 드문 한국 실정에서 나름대로 노력의 흔적이 엿보이지만, 그렇다고 만주국을 독립국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만주국은 일본의 괴뢰국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입장이다.

"만주국의 설립자요, 경영자들은 오랫동안 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이들은 '황제'를 앞세우고 주민들을 국민으로 치켜세우며 바로 일본에 대해서 홀로 서기를 시도한 것이다. 만주국은 어떤 의미에서 '독립국'이었다."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12/01 13:55
"즉 '적대적'인 성격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라고 까지 얘기했는데, "반드시 적대행위가 존재해야 성립된다는 자에게"라고 언급하시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 즉 '적대적인 행위'가 아니어도 좋으니 만주국이 독립국으로서 지향하던 행위나 역사적 사실 몇가지만 들어도 충분하실 것을 '남의 인격 탓'으로 몰아가면서 빠져나가시려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 없군요.

만주국의 설립자들이나 경영자들(즉 만철의 브레인)들이 일본과 언제나 협력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저도 매우 잘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과의 독립된 하나의 국가'로서의 독립국이 아닌, 일본으로 재수출하는 모델로서의 '실험국가'의 성격에 기인한 것이며, 그러한 실험국가의 수립에 방해되는 관동군과 일본정부의 간섭에 반대했다는 것이죠. 제가 읽은 고바야시 히데오나 한석정 등의 책을 종합자면 그렇습니다. 즉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괴뢰국'이 아닌, '어떤 의미에서의 독립국'이라는 것이지, '명실상부하게 독립을 지향하던'과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아니 각설하고 굳이 책을 인용해서 거창하게 자신에게 유리한 말미만 다실거 없습니다. 내용을 설명해 주시기 싫다면, 제가 그 책을 읽어볼테니 말이죠. 방금 읽은 책 운운하지 마시고 제목이나 저자라도 알려주십시오. 일어나 중어라도 상관 없습니다. 말미는 인용하실 수 있는 분께서 극적인 예 하나는 인용 못해주시는 현실이 서글픕니다그려.
Commented at 2009/12/01 12:2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글쎄올시다 at 2009/12/01 12:29
반론이라고 대신 게 직접적인 근거가 아니잖습니까 -_-
준비가 되었다는 것과 그게 착수가 되었다는 것을 똑같이 보는 논리라

된장이 없으니 옆집 뒷간 똥을 퍼다오는 그런 포스팅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뭐라고 해야하나 --
Commented by 大望 at 2009/12/01 12:35
슈타인호프님의 글도 재미있지만, 트랙백된 글이 더 재미있군요.^^
저같으면 저런 꼴통은 직원으로 안쓰지 싶은데, 현실에서의 삶은 평범한 사람이겠죠?(그게 더 무섭네요.ㅠ,ㅠ)
Commented by The Nerd at 2009/12/01 12:35
수고가 많으십니다; 왜 하필 이 분하고 글을 섞으신건지;;
Commented by ㅂㅂ at 2009/12/01 13:00
이 글에 달린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여러가지 비하표현들을 왜 방치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저런 꼴통은 직원으로 안쓴다는 말등을 그냥 방치하신다면
저쪽 블로그에서 서른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임고 1차에서 계속 낙방하는 사람이 어쩌고 하는 리플이 달려도
별 불만이 없으시겠군요


Commented by 비로긴 at 2009/12/01 14:03
여기에 대해 제 3자가 끼어들어 누가 옳네 그르네 하는 게 어떻게 비춰 질지 모르겠지만,
슈타인호프님이 '키배' 중에 해당블로거와 반론 댓글러에게 특별히 인격모독에 해당되는 표현을 사용한 경우를 본 적은 없는 거 같습니다.
반면 무명씨님의 포스팅에선 별 그지같은 어그로를 참 많이도 봐 왔습니다.(최근에 유명한 게 '룸펜좌빨 한마리'... 누군가의 블로그 게시판에 평생 저주를 퍼붓는 댓글도 기억나고요.)
그 추종자들과 벌이는 어그로의 향연은 더 심각한 수준이고요.
게시판에서 벌어지는 모욕적인 댓글들도 게시판 운영성향에 차이가 있다고 여겨집니다.무삭제에 가까운 슈타인호프님의 게시판운영원칙은 본인에게 가해지는 어그로(정상적인 반론도 포함)도 역시 수용합니다만, 무명씨님의 게시판은 대립상대에 대한 온갖 어그로에는 본인도 같이 동참하는 반면 자신을 향한 어그로나 반론댓글마저도 자주 차단하더군요.

그럼 여기서 님이 하시는 충고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 걸까요?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9/12/01 14:12
부록열사님 여기서 깃발 꽂으시면 안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15:29
비로긴//감사합니다.

지나가다//감사합니다만 부록열사 운운하는 표현은 일단 삼가주셨으면 합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분이 토론 상대니까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13:56
단순한생각//모르죠 어떤 자료를 퇴근 후에 보여주실지...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orca//글쎄요. 일단 불을 당긴 분께(...)

12345-2//"그분"도 나름 옹호자는 있습니다. 이글루가 빈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부록열사란 호칭은 유래를 알고 있기는 하지만 참 들을 때마다 듣기 거시기하군요. 여기서는 그냥 그분이나 이분이라고 해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신나열사//적당히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John//이글루 한번 닫기 전에는 말 그대로 메이저였죠. 지금은 예전만 못하시지만...뭐, 부록열사라는 호칭은 거시기하니 좀 피해주시길.

Mediocris//죄송한데, 그 문장은 해당 포스팅 본문이 아니라 덧글 중에 있으며 이글루는 덧글을 수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습니다. 무슨 수정하지도 않은, 아니 존재하지도 않은 내용을 "원상태로" 돌려놓으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그 문장은 님께 "반문"하는 거잖습니까. 님이 민족문화연구소가 그런 논리를 "주장"했다는 것을 인정하느냐고 묻는 거잖아요. 남들 다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읽는 사람이 웃는다"는건 제가 웃는다는 소립니다. 남들 지칭한 거 아니거든요.
마지막에 박정희 민족교사 운운은 이해를 잘못 하신 것 같은데, 비아냥입니다, 비아냥. 그걸 못 알아채시다니 제가 글스기가 아직 부족하군요.

비공개//뭐 사실 자초한 셈이니 어쩔 수 없죠. 이 정도까지 커질 줄 모르긴 했습니다만...F--

글쎄올시다//착수한다는 이야기는 준비를 시작한다는 의미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무명씨님은 1934년부터 고등보통학교의 교련교육이 시작되었다는 제 이야기를 부정하면서 "1926년부터 현역 장교가 교련을 했다"고 하셨고, 저는 이에 대해서 "정식 교육이 아닌 교련은 그 전에도 일부 고보 교장의 재량에 의해 있었으나, 현역 장교의 정식 교련은 1934년부터가 맞다"는 것을 신문기사를 통해 입증했을 뿐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엉둥한 소리를 하는 포스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大望//좋게 봐주셨다는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토론 상대방에 대한 인신모독성으로 간주될 수 있는 댓글은 삼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필요 이상의 감정대립이 더 생기기는 바라지 않아서요.

The Nerd//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ㅂㅂ//평소보다 많이 달리는 댓글을 실시간으로 다 처리할 수는 없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보기에 불쾌하셨다면 그 점은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2/01 14:37
정말 미치겠군. 그럼 해당 덧글이 달려 있는 곳이 어딥니까? 남의 댓글 모두 지우고 다른 말 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문장은 님께 ‘반문’하는 거 잖습니까. 님이 민족문화연구소가 그런 논리를 ‘주장’했다는 것을 인정하느냐고 묻는 거잖아요.” 나는 슈타인호프씨가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어제 깜박하고 스캔하지 않은 제 잘못입니다. 앞으로는 슈타인호프씨의 글을 스캔하기 전에는 절대 댓글 달지 않겠습니다.

“당시 전국에 조선인 학교 교사가 수천 명이 넘었는데, 그 사람들이 전부 일제 식민교육에 협조하여 민족말살 교육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진 않았잖아요. 혹시 압니까? 박정희가 학교 선생님을 계속 했다면 일본인 교장 모르게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대단한 선생이 되었을지. 뭐, 모를 일입니다.”라는 비아냥에서 귀하의 대단한 역사 의식과 고매한 지적 수준과 재치있는 유머 감각을 감지하고 정말 뒤집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Commented by 消爪耗牙 at 2009/12/01 14:53
Mediocris //

http://nestofpnix.egloos.com/4286415#13039405.05

저리가서 놀아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15:30
Mediocris//消爪耗牙님이 달아주신 링크보다 조금 위로 올라가시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말해두는데, 전 댓글 안 지우거든요?

消爪耗牙//감사합니다. 수고 끼쳐 드렸네요^^;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2/01 16:08
슈타인호프씨가 댓글을 지운 것으로 착각한 점과 “인정하지요?”를 잘못 해석한 점은 사과합니다. 귀하가 댓글 복사조차 허락치 않으므로 댓글 내용 전체를 옮길 수는 없어, 요지만으로 판단하자면 “조선인 입교자의 수를 줄여 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는 말은 일반 입교자의 수가 1명 이상이라는 민족문제연구소(이제 그만 바로 잡을 때가 되었지요?)의 잘못된 논리는 “육사가 들어가기 어렵다는 논리가 희석되므로” 줄여 잡아야 한다는 주장 아닙니까? http://nestofpnix.egloos.com/4286415#13039405.05

요컨대, “일본 육사는 조선인이 1년에 한명도 못 들어갈 만큼 들어가기 엄청 어려운 곳이고, 따라서 그 어려운 곳에 들어가는데 성공한 자는 진짜 친일파다.”라는 귀하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귀하의 지적 수준에 대한 저의 판단은 변치 않습니다. 가급적이면 박정희가 지원한 군관학교가 어딘지도 모르고 댓글 놀이 하다가 “만주신문 기사로만 본다면 日系 특임교위관으로 지원했다고 볼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습니다.”라는 헛소리나 하고 달아나는 消爪耗牙 같은 사람과는 멀리하는 것이 잘못을 사과하는 저를 멀리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16:14
착각했다는 점을 사과하신 데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1. “육사를 들어가기 어려운 곳으로 상정하기 위하여 조선인 입교자의 수를 줄여 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은 민족문제연구소의 필요에 대한 제 분석이지 "제 의견"이 아닙니다.

2. “일본 육사는 조선인이 1년에 한명도 못 들어갈 만큼 들어가기 엄청 어려운 곳이고, 따라서 그 어려운 곳에 들어가는데 성공한 자는 진짜 친일파다.”라는 주장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장을 제가 요약한 것이지 "제 주장"이 아니라니까요? 저는 이어지는 포스팅에서 본문이건 댓글이건 단 한 번도 "그 어려운 사관학교에 들어갔다는 것만 봐도 친일파다" 하는 식의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못 받아들이시겠다면 그만두겠습니다.

3. 消爪耗牙님은 적어도 "제 말"을 오해하지는 않고 계십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Mediocris님보다 대하기 편하군요. Mediocris님도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로, 선입견 없이 제 글을 다시 한 번 읽고 오해를 풀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Commented by 消爪耗牙 at 2009/12/01 16:54
뒷담화까던 글을 끌어오기는 그렇지만,

http://munbba.egloos.com/2483417

유증선의 증언을 갖고 '헐 신경군관학교는 이때 뽑지도 않았으니 박정희는 여기 지원한 게 아님 !' 이라던 분들이 혈서뜨자 '헐 박정희가 지원한 곳은 신경군관학교임 !' 이러면서 만주신문 기사는 제대로 읽지도 않는 자기모순을 상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지.

주어진 팩트는 단지 박정희가 신경군관학교 만계 2기생으로 입학했다는 것 뿐.

이번에 공개된 기사에서 새로 나온 사실은 외려 유증선의 증언과 다르기 때문에, 박정희의 만군입학과정의 문제를 제법 복잡하게 만들고 있음.
日係라면 봉천군관학교도 배제할 수 없고, 더 나아가 관할기관도 문제가 됨.

ps.
귀찮으니까 여기서 상대할 생각없음. 맘대로 떠들고 맘대로 생각하시길.
아니 그전에 없다는게 있으니 깨끗이 인정이나하셈.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2/01 22:07
<유증선의 증언을 갖고 '헐 신경군관학교는 이때 뽑지도 않았으니 박정희는 여기 지원한 게 아님!'이라던 분들이 혈서 뜨자 '헐 박정희가 지원한 곳은 신경군관학교임!' 이러면서 만주신문 기사는 제대로 읽지도 않는 자기모순을 상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지.>

“1939년 5월에는 있지도 않은 신경군관학교에 지원했다는 것, 연령 초과를 속이기 위해 호적상의 나이를 1살 줄였다는 유증선의 증언은 믿을 수 없으니 혈서는 없다”와 “합격자가 발표된 1939년 2월 24일보다 1달도 더 지난 1939년 3월 29일에 혈서 편지가 도착했다는 만주신문의 기사는 믿을 수 없으니 혈서는 없다”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사실인데 왜 뒤죽박죽으로 섞어 버릴까? 이 자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두 개의 사실이 다름을 모르고 있다.

<주어진 팩트는 단지 박정희가 신경군관학교 만계 2기생으로 입학했다는 것 뿐. 이번에 공개된 기사에서 새로 나온 사실은 외려 유증선의 증언과 다르기 때문에, 박정희의 만군입학과정의 문제를 제법 복잡하게 만들고 있음. 日係라면 봉천군관학교도 배제할 수 없고, 더 나아가 관할기관도 문제가 됨. ps. 귀찮으니까 여기서 상대할 생각 없음. 맘대로 떠들고 맘대로 생각하시길. 아니 그전에 없다는 게 있으니 깨끗이 인정이나 하셈.>

유증선의 증언이 틀렸거나 착각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차라리 설득력이 있는데도 유증선의 증언이 틀렸으니, 박정희가 지원한 곳이 봉천군관학교 아니면 일계특임교위관(特任校尉官)일지도 모른다고 끝까지 우긴다.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새로운 논리를 전개하면 될 일을 왜 이리 고집을 피우는 것일까? 봉천군관학교나 관할기관이 문제가 된다면 근거를 찾아 제시해야 하는 게 도리거늘 의혹만 툭 던져놓고 달아나는 태도는 또 뭔가?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2/01 22:19
<1. “육사를 들어가기 어려운 곳으로 상정하기 위하여 조선인 입교자의 수를 줄여 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은 민족문제연구소의 필요에 대한 제 분석이지 "제 의견"이 아닙니다.>

‘제 분석’과 ‘ 제 의견’의 차이는 뭘까? '당황'과 '황당'의 차이 정도는 되나?

<2. “일본 육사는 조선인이 1년에 한명도 못 들어갈 만큼 들어가기 엄청 어려운 곳이고, 따라서 그 어려운 곳에 들어가는데 성공한 자는 진짜 친일파다.”라는 주장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장을 제가 요약한 것이지 "제 주장"이 아니라니까요? 저는 이어지는 포스팅에서 본문이건 댓글이건 단 한 번도 "그 어려운 사관학교에 들어갔다는 것만 봐도 친일파다" 하는 식의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못 받아들이시겠다면 그만두겠습니다.>

‘제가 요약한 것’과 ‘제 주장’의 차이는 또 뭘까? '보고서'와 '리포트'의 차이 정도는 되나?

<3. 消爪耗牙님은 적어도 "제 말"을 오해하지는 않고 계십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Mediocris님보다 대하기 편하군요. Mediocris님도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로, 선입견 없이 제 글을 다시 한 번 읽고 오해를 풀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消爪耗牙가 오해를 하지 않는다고 믿는 분에게 잘못을 인정하면 '용기'일까, '오해'일까?
Commented by 消爪耗牙 at 2009/12/01 22:28
애초에 그건 내가 입증할 것이 아님. 반대증명에 나선 것은 그쪽이고, 그쪽의 반대증명이 있었고, 그 반대증명의 방법이 온당하지 못하다는 걸 지적했을 뿐.
만주신문의 기사대로라면 박정희의 지원서는 인근 사단에서 취합하여 일본 육군성에서 처리했다고 봐야함.
게다가 만계 합격자만 발표한 신경 1기 결과 들고와서 언제까지 눈속임할 것임? 기사에서는 만주군관학교(신경)이란 얘기도 없고, 애초에 日系, 그것도 '군관지원' 이라잖아. 너님 일계가 만군장교로 지원하는 루트가 몇가지가 있는지는 알고있겠지?
반대증명은 이쪽에 대해 이것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해야지, 유증선 증언갖고 모순되는 소리 해봤자 자가당착이지.

ps. 그 '깨끗이 잘못을 인정'은 언제하는 거임? 고집을 누가 피우고 있을까?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2/01 22:53
<애초에 그건 내가 입증할 것이 아님. 반대증명에 나선 것은 그 쪽이고, 그 쪽의 반대증명이 있었고, 그 반대증명의 방법이 온당하지 못하다는 걸 지적했을 뿐.>

얼어죽을 반대증명 같은 소리씩이나 하고 계세요? “유증선의 증언이 거짓이니 혈서는 없다.”와 “만주신문의 기사도 거짓이니 혈서는 없다.”가 무슨 반대증명이야, 그냥 Mediocris의 주장이지. 消爪耗牙는 “유증선의 증언과 만주신문의 기사는 거짓이 아니니, 혈서는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 되네요. 거짓 아님을 주장하는 쪽의 증명이 반대증명이에요. 아시겠어요?

<만주신문의 기사대로라면 박정희의 지원서는 인근 사단에서 취합하여 일본 육군성에서 처리했다고 봐야 함.>

아예 소설을 쓰세요. 도대체 박정희에 대해서 아는 게 뭐가 있나요?

<게다가 만계 합격자만 발표한 신경 1기 결과 들고 와서 언제까지 눈속임할 것임? 기사에서는 만주군관학교(신경)이란 얘기도 없고, 애초에 日系, 그것도 '군관지원' 이라잖아. 너님 일계가 만군장교로 지원하는 루트가 몇 가지가 있는지는 알고있겠지?>

만주신문 혈서 편지 기사에서 만주군관학교(신경) 얘기가 없으면 ‘일계가 만군장교로 지원하는 루트’와 관련한 거에요? 혈서는 ‘박정희가 군관학교에 지원했느냐, 안 했느냐?’와 관련한 거에요? 자신의 일계 특임교위관 따위 주장을 합리화하려고 너무 힘 빼지 마세요.

<반대증명은 이쪽에 대해 이것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해야지, 유증선 증언 갖고 모순되는 소리 해 봤자 자가당착이지. ps. 그 '깨끗이 잘못을 인정'은 언제 하는 거임? 고집을 누가 피우고 있을까?>

유증선 증언 가지고 모순된 증언을 하는 쪽은 ‘군관학교 지원’을 ‘일계의 장교 지원’ 따위로 헛소리하는 쪽이지 “유증선 증언이 거짓이니 혈서는 없다.”는 쪽이 아닙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22:56
더 이상 댓글을 주고받는다는 것에 한계를 느꼈고 님이 오해하든 말든 신경 안 쓸 테니 그만 와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님의 블로그에서 하십시오. 분명히 그만 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Commented by 消爪耗牙 at 2009/12/01 23:04
미안...아, 미안하지않음. 미안할게 있어야지. 난 지금껏 계속 이번에 등장한 만주신문 기사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너님은 유증선의 증언을 반박하던 논리를 그대로 가져다가 유증선의 증언이 만들어낸 상(像)에 갇힌채로 만주신문 기사에 접붙이려하니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지.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은 해봤음?

ps. 너님의 깨끗함에 대해서는 잘 알았으니, 더 이상 얽히려고 하지 마삼.


ps II. 슈타인호프님 둥지에서 민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무책임한 얘기지만 수습해주십시오.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2/01 23:12
이 글은 슈타인호프씨가 읽고 나면, 몇분 후에 제가 스스로 지울 것입니다. 그런데 또 고약한 댓글이 달렸군요. 슈타인호프씨의 아래 消爪耗牙 대글을 지우지 않으면 저도 댓글을 지우지 않습니다.

저도 한계를 느끼고 더 이상 글을 엮고픈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를 비하하는 댓글이 달리면 방치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슈타인호프씨의 블로그에서는 누가 봐도 제가 약자의 입장입니다. 만약 슈타인호프씨가 저를 비하하는 댓글이 달리지 않도록,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댓글을 지워주시면 저도 더 이상 댓글을 달지 않겠습니다. 消爪耗牙는 비열한 인간입니다. 내용은 없고, 남을 비하하는 습성이 아주 몸에 배었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23:15
消爪耗牙님과 합의하셔서 두 분 댓글 스스로 지우시면 됩니다. 제 댓글은 지우기 싫은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23:17
두 분 다 이의 없으시면 제가 날려도 상관없고, 한 분이라도 거부하시면 현 상태에서 동결시키고 더 이상 달지 못하시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消爪耗牙 at 2009/12/01 23:19
동결해주십시오.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2/01 23:20
다른 댓글까지는 몰라도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13:56 아래에 달린 消爪耗牙 와 관련된 댓글은 지워주시기 바랍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23:26
Commented by 消爪耗牙 at 2009/12/01 14:53

이거 말씀이십니까?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2/01 23:46
Commented by 消爪耗牙 at 2009/12/01 14:53 뿐만 아니라 그 아래 消爪耗牙씨와 제가 주고받은 댓글 모두를 지웠으면 했는데, 消爪耗牙씨가 동결을 원하니 그냥 두시기 바랍니다. 돈 생기는 일도 아닌데,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오늘은 그만 접으려다가 슈타인호프씨에게 꼭 드리고 싶은 한마디만 하고 갑니다. 저야말로 누구보다도 먼저 박정희를 다카키 마사오로 부르면서 극도로 미워하고, 김대중씨의 연설을 듣기 위해서 전국을 따라다닌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삶은 보수(보호하고 지킴)이지 퇴폐(무너뜨리고 없앰)가 아니라는 것을, 지독한 가난으로부터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이룬 오늘에 이르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언젠가 비공개 댓글로 제 지나온 인생이야기를 꼭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친일 논란 따위와는 아무 관련 없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2 01:41
알겠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고, 다음에는 밝은 분위기로 리플 주고받았으면 좋겠군요.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9/12/01 14:04
진멍행인지 무멍인지는 정말 생업이 있기는 한건지 모르겠군요. 발리지 않으려면 크로스체킹이나 제대로 하든지. 또 "좌빨이 협박해" 드립 날리며 숨었다가 좀 잠잠해졌다 싶으면 기어나오겠군요.
Commented by mate at 2009/12/01 15:02
저분의 키배 방식은 늘 상대의 반박에 '그건 반론자료 로서의 가치가 없음' '님 틀렸음ㅋ 내가 하는 말과 제시하는 자료가 진리임ㅋ' 식으로 일축해 버리니 뭐 이건 쇠귀에 경읽기가 아닐지요...
어차피 어떻게든 정신승리를 구사하실 분입니다. 소통을 바라시는건 좀 무리라고 봐요=_=;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15:32
누렁별//그런 면을 가지고 의심할 필요는 없겠지요. 모니터 밖, 그분의 일상사에 대해서는 끼어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분도 마당히 그러시길 바라고요.

mate//일단 이따 밤에 뭔가 제시하실 것 같기는 한데 뭘 가져오실지 궁금하네요. 뭐, 저도 저 분이 승복할 거라 여기지는 않고요, 그동안 쉬던 포스팅 쪽 머리 돌리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라세엄마 at 2009/12/01 15:36
이걸로 돈을 벌고 있다면 존경과 흠모, 아니라면 참을수_없는_잉여의_향기.png ...
글쓴이가 병신[..]이 아니라면 우리의 위대한 진명행님이 사료의 해일에 넘어갈 리가 없다는건 당연히 알텐데 이런 글을 올린건 '자 무명씨 보고 배우시오'가 아니라 '난 이렇게 열심히 찾았는데 엄마 쟤봐 흙먹어'잖아요.
마치 천동설을 주장하는 키워에 대고 지동설의 역사와 발전, 천문학과 우주물리학에 대한 논문들을 열거하는듯한 느낌(사실 위에 있는 사료가 지동설만큼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이네요.
Commented by 아브공군 at 2009/12/01 15:50
앗, 실수를 했네요.
예전에 초록불님이 어떤 역사 포스팅(아마 금성출판사 교과서 개정 내용 중에 조미수호조약 관련한)을 올리신 적이 있는데, 그때 '백과사전'을 인용하셨다는 이유로 초록불님에게 '백과사전은 레퍼런스 대상이 아니다' 라고 마구 대들던 분이 계셨죠.... 초록불님이 남에게 대든 것은 아니었는데. 말을 잘못 썻네요....ㅠ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16:05
라세엄마//애초에 얽히지 않고 넘어갔어야 했는데 그때부터 잘못 꼬였죠. 뭐, 말씀대로 잉여짓 인증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ㅎㅎ 블로그 해서 돈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팝스 광고수입 잘해야 하루 몇백원 정도?

뭐 무명씨님이 설득돼서 잘못을 인정한다거나 그런 건 저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포스팅을 한 건 제 글 읽으신 분들 중 무명씨님의 트랙백을 읽고 정말 제가 틀렸다고 생각해버리시는 분이 있을까봐였다고나 할까요.


이브공군//앗, 그 사건 이야기셨군요. 제가 혼동했습니다^^;;
Commented by 라세엄마 at 2009/12/01 16:09
아브공군//음..? 위에 초록불님 언급한 그분인가요? (당연히)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 <- ㅇㅇ..


슈타인호프//'저놈글 보고 내가 틀렸다고 생각할까봐' 때문에 많은 사람이(저 포함해서) 피해를 보는데요, 그냥 정신승리하게 냅두니까 편해지더라구요. 이겼다고 날뛰는거 보면서 스트레스 받는거랑 그걸 상대로 싸우는 자기를 바라보면서 스트레스 받는거랑 어차피 비슷한 느낌[..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16:16
라세엄마//하긴 맞는 말씀입니다. 눈 딱 감고 그냥 넘겨야 하는데, 그걸 못 참은 걸 보면 저도 아직 많이 모자란 것 같아요. 웬만하면 저도 이걸로 끝내고 그만 신경 끄려고 합니다.
Commented by 라세엄마 at 2009/12/01 16:44
물론 정신승리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들이 죽어라고 들러붙어선 승리를 주장하면 참다가도 소주병에 손이 가는것이 인지상정[..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17:19
뭐 그래도 참아야 수양.....(암양은? 퍽퍽퍽)
Commented by LemonTree at 2009/12/01 17:34
슈타인호프//그래도 광고수입 하루 몇백원이면 담배값정도는 댑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18:21
많아야 몇백원 나오는걸요. 이번 11월 한달에 1600원 정도 벌었으니, 음료수 하나 값임다
Commented by 라세엄마 at 2009/12/01 18:26
음? 저 아이디 어디선가..
Commented by 萬古獨龍 at 2009/12/01 18:29
간만에 가슴뻐근해지는 좋은 글 읽고갑니다. 그리고 일일히 상대하면 피곤하시니 그냥 내비두세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18:47
네 감사합니다. 저도 이걸로 끝내려고 합니다.
Commented at 2009/12/01 23:0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23:17
몰라, 나도 이젠 귀찮아졌어. 같은 소리 반복하기도 싫고.
Commented at 2009/12/01 23:1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을파소 at 2009/12/01 23:26
더 하셔봐야 네버엔딩스토리겠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1 23:28
비공개//괜찮습니다^^

을파소//뭐 뻔하죠. 어차피 더 할 말도 없으니, 그냥 신경 안 쓰렵니다.
Commented by JOSH at 2009/12/02 12:42
이야 스크롤 내리는 데 만 꽤 시간이 걸리는 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2 17:43
옙 좀 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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