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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미의병과 총포화약단속법, 그리고 한말 최대의 총기 밀수사건(1)에서 계속 이어서 씁니다. 앞에 쓴 글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정미의병은 무기와 탄약을 외부에서 조달해야만 했습니다. 그러자면 누군가 돈을 받고 팔아주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지는데, 동서고금을 통틀어 돈 버는 일을 마다하는 장사꾼은 없는 법이죠.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반도 바로 이웃에는 세상에서 둘째간다면 서러워할 장사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중국인 들이죠(...) 당시 일본 통감부가 작성한 문서에 기재된 중국 상인들의 무기 밀반입 세태는 정말 가지가지입니다. 이에 대해 언급한 통감부 문서를 보면 청나라 상인들의 무기 밀수 사례로 이런 것들을 들고 있죠. - 땅콩자루 하나당 10근에서 15근의 화약 혼합 - 모피 또는 다시마 뭉치 사이에 총기 은닉 - 다시마 사이에 도검류 은닉 가히 꽃게에 납 넣기 신공의 선조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중국에서 밀반입되는 무기의 가격은 서양식 총 한 자루가 최상품 100원·중품 70원·하품 50원이었으며 화약은 한 근에 5~7원, 탄약은 100발에 5~10원이었습니다. 따라서 각 세관에서는 중국 상인들의 하물을 검사하다가 콩이나 다시마 같은 물건이 일부라도 발견될 경우 특히 엄중하게 검사할 것을 지시받고 있었습니다. 물론 밀수 루트가 이것만은 아닙니다. 많은 중국 정크 상선들이 해적으로부터의 자위를 구실(물론 기회만 오면 본인이 해적으로 돌변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로 총과 탄약 등 무기를 싣고 다녔는데, 일본 당국은 이 무기가 자위용이 아닌 판매용이라고 강력하게 의심하고 있었죠. 정크선 한척 주제에 ‘모젤’총 11정, 30년식 무라다(村田) 총 5정, 구식 전장총 1정에 탄환 1만 1천발을 자위용이랍시고 싣고 다니는 꼴을 본다면 누가 그걸 자위용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_-;; * "모젤"은 Mauser의 일본식 발음을 딴 표기로, 우리말로는 "마우저"라고 적는 게 맞습니다만 당시의 표기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계속 모젤로 표기합니다. 1908년 12월 17일에 인천에서 있었던 위 사건에서, 일본인인 인천경찰서장(宮館貞一, 미야다테 사다이치?)은 청나라 영사에게 정식으로 항의하여 이 무기들이 한국에서 “폭도”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고 중국까지 무사히 송환될 것이며, 청나라 연안 지방관에게 연락하여 다시는 한국으로 오는 상선들이 무기를 탑재하지 못하게 조치해달라고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서야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그 후 경찰은 입항하는 선박에 대한 검색은 태만히 하지 않았으나, 수상경찰력이 없기 때문에 항구에 들어오기 전 섬이나 해상에서 하는 밀무역은 어떻게 손댈 수가 없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1910년 8월 보고서). 재미있는 건 이 1910년 8월 보고서가 2년 전 있었던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인데, 아래쪽 참고자료 일람에서 “회답”이라고 쓴 부분을 보면 아시겠지만 인천경찰서장이 이런 보고서를 쓴 건 타 부서에서 받은 조회문 때문이었습니다. “황해도 해주 봉산군 일대에서 배회하는 이진룡(李鎭龍)이라는 적괴”에게 무기, 탄약을 공급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영서(申永西) 또는 신석환(申錫煥)이라는 혐의자를 경기도 문산포에 있는 그의 처가에서 헌병이 체포했거든요. 하지만 헌병대에서는 신영서의 혐의에 대한 첩자의 보고 및 풍문에 근거한 정보만을 가지고 있을 뿐 물적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소를 위한 물적 증거를 확보하고자 통감부 보안과장 명의로 인천경찰서장 앞으로 조회를 넣었고, 이에 경찰서장이 현재 인천에서 행해지는 무기·탄약류 거래 실태와 함께 과거 인천에서 적발된 무기밀매 정황에 대한 보고를 한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쓰고 있죠. “근데 우리가 조사해 보니까 신영서(또는 신석환) 같은 애가 우리 관내에 온 일이 없는데? 이름이 비슷한 애가 황해도 쪽에서 몇 온 적은 있지만 모두 일반 상거래라서 그쪽에서 원하는 무기밀매에 관한 증거를 제공해 줄 수 없음. 기왕 잡았다니, 혹시 그놈이 정말로 인천에서 무기를 사갔다면 도대체 어떤 경로로 구해갔는지 심문 후 알려주기 바람. 참고하겠음.” 아아~~이런 내용을 쓰면 일본 통감부 당국의 <공정성과 법치주의, 증거제일주의>를 입증하는 근거라면서 좋아 죽으려고 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지. 서류상의 사실은 사실이니까. 나는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을 빼놓지 않고 쓸 뿐 :P 기왕지사 보고서를 언급한 거, 신영서 씨의 뒷이야기까지 언급하면 좋겠지만 별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어서 아쉽게도 제게도 인터넷에도 자료가 없네요. <한국 근대사와 의병투쟁 2 - 의병편(이태룡 著)>이라는 책에 실린 “새로 발굴한 의병장 행적”이라는 항목에서 신영서가 언급되기는 합니다만, 전자책인 데다 일시품절 상태라 내용을 확인할 수가 없네요, 쩝.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죠. 자, 하여튼 중국인들이 이렇게 무기를 팔기는 했지만 이 세상에 무기상이 청나라에만 존재하는 건 아닌 법. 1908년에는 미국인이 포함된 무기 밀매단이 적발되기도 합니다. 이 사건은 무려 미국 영사가 제보를 했어요. 상해에 주재하는 미국 상사 지점의 분(Boone)이라는 미국인 지배인이 상해에서 청나라 군대가 구입한 모젤총 5만정과 그 탄약을 밀반출하여 몰래 한국으로 들여올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거였죠. 주범인 분이 과거 필리핀 반군(적도賊徒라고 표기)에게 무기를 공급하는 일에 관여한 적도 있다는 말을 들은 일본 당국은 즉각 군, 헌병, 경찰, 세관, 중국 주재 영사관 등 전 관계기관에 경보를 내립니다. 이후 이 일당이 일본 측의 대비태세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계획을 중단했는지, 강행하다가 체포 혹은 성공했는지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만 아마 포기하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일부는 들어왔을지도 모르죠. 참, 당시의 신문 보도 등 여러 자료를 감안할 경우 연해주로부터 러시아제 총이 밀수된 것도 확인됩니다. 5연발 볼트액션인 모신 나강 소총을 소지한 의병에 대한 기사가 종종 나오거든요. 자…이제까지 우리는 몇 차례의 무기 거래 시도를 확인했습니다만 이제까지 나온 것보다 훨씬 큰, 그리고 이 연작 포스팅 제목과도 관련이 있는 <최대 규모의 총기 밀수>는 아직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언급하려는 이 사건은 사실 일본 경찰의 수사망에 탐지되는 바람(1908년 12월)에 미수로 끝났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무척 아쉬운 일이죠. 당시 이 간 큰 상인은 무려 3천 자루의 소총을 한꺼번에 국내로 들여다 팔려고 계획했었습니다. 이 총들이 만일 의병들에게 풀렸다면……(한숨) 그런데 말입니다, 이 상인은 어떻게 3천정이라는 많은 수의 총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까요? ![]() 문제의 상인이 팔려고 했던 이 총은 영국제 스나이더(Snider) 소총으로, 대한제국군도 일부 사용했고 일본군·청나라군도 사용하는 등 꽤 널리 팔린 총이었습니다. 19세기 중반 강제로 개항한 후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한국-청나라-일본은 모두 유럽의 시각에서 볼 때는 전형적인 후진국이었고, 오늘날의 후진국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들도 주요 군사장비의 수요를 거의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합니다. 마침 세 나라 모두 근대화를 위해 매진하던 참이었으므로, 근대적인 서양군대를 따라갈 수 있는 군대를 만들기 위한 병기의 수요는 높기만 했죠.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우수한 성능의 새 장비는 값이 비싸다는 점이었습니다. 게다가 19세기는 단 몇 십 년 사이에 총기의 성능이 놀랄 만큼 바뀌는 시대였죠. 때문에 유럽과 미국의 군대들은 막대한 양의 중고 총기를 민간 시장에 쏟아냈고, 국제사회에 뒤늦게 등장한 동아시아의 세 나라는 많은 경우 구미 국가들이 새 총을 장비하는 대신 중고시장에 내놓은 소총을 들여다 군대를 무장시켜야 했습니다. 진짜 성능이 우수한 최신식의 새 총은 값이 비쌀뿐더러, 생산하는 국가들도 해외수출보다는 자국군의 무장을 교체하는데 우선을 두었으므로(육군이 거의 없었던 미국과 같은 나라는 예외) 구하기도 쉽지 않았죠. 스나이더 총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이들 세 나라가 가지고 있던 또 다른 공통점은, 여러 가지 여건상 전체 군대의 장비를 통일해서 갖추게 할 만한 양의 병기를 한 번에 장비하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구식 장비를 찔끔찔끔 사다가 보유했다는 거죠. 이중 일본만은 1880년대부터 병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데 성공하지만, 일본 역시 유럽에서 사온 중고 총기를 일시에 퇴출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상식적으로 한꺼번에 전군의 장비를 교체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도 아닐뿐더러, 일본 국산 총기도 계속 신형 총기가 개발되었기 때문에 오늘의 최신 소총도 몇 년 만 지나면 구식이 되는 판이었습니다. 따라서 최신의 38식 소총이 개발, 배치되던 그때도 아직 그전에 쓰던 외국산과 일본산의 구식 총이 엄청나게 남아있었지요. 이 구식 총들은 대개 후방이나 예비역(일본식 표기로는 후비역) 부대가 사용하고 있었고, 새 총이 보급되는데 따라서 순차적으로 폐기되고 있었습니다. 이건 한국군에서 K2와 M16, 칼빈의 관계로 이해하시면 대충 맞아요. 한 가지 차이점은 한국군은 폐기하는 총을 말 그대로 “폐기”하지만 일본이나 유럽, 미국의 경우 군대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장비를 대외판매도 아니고 민간시장에 불하해버리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점, 그리고 총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일본군 역시 38식 소총 보유의 증가로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스나이더 총이 더 필요하지 않게 되자 민간에 불하해버렸던 거죠. 그리고 모지(門司, 현재는 후쿠오카 시 모지 구)시 주재 육군 병기창에서 이 총 3천정을 불하받은 마에다 히사타로(前田久太郞, 독음 맞나요?)라는 일본 상인이 이 총을 조선 의병들에게 팔려고 시도하다가 나가사키 경찰에 적발되었던 겁니다. 이게 구한말에 적발된 최대 규모의 무기 밀매였어요. 어때요? 일본 상인이 한국 의병들한테 무기 팔려고 했다니까 놀라셨어요?^_^ 당시 일본 상인들이 의병에게 공급한 무기의 양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의병이 보유한 신식 총기의 상당량이 대한제국군이 장비했거나 밀수한 일본군 총이었고, 이중에는 30식 소총처럼 일본제 탄환만 쓸 수 있는 총도 섞여 있었기 때문이에요. 의병은 이런 총의 탄약을 일본 상인들 또는 일본 상인들로부터 구입한 중국 상인들에게 다시 구입했습니다. 위에서 본 인천경찰서장의 보고서에 “일본제 30년식 무라다 총과 대량의 탄약을 가진 중국 상선”에 대해 기술하고 있었던 것 기억나시지요?^^ * 실제 의병부대의 무장 사례 - 황해도(1910) 이진룡 부대 : 30년식 무라다총 9정, 모젤 총 25정, 권총 20정, 기타 수정 <- 이 부대가 위의 신영서가 연루된 바로 그 부대임. 한정만 부대 : 30년식 무라다총 6정, 모젤 총 30정, 권총 수정, 기타 수정 물론 표본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고 황해도는 서해에 인접하여 무기를 구하기 상대적으로 쉽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 시점이면 생존 의병의 상당수는 화승총 대신 신식총을 쓰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음. 그리고 인천경찰서장의 보고서에는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괄호는 필자). 二. 邦人(일본인) 銃砲 火藥 免許者로서는 藤木利右衛門(本町 一丁目) 奧田貞二郎(同 二丁目) 綱木仙吉 (同三丁目)의 三名이 있다. 그리고 販賣 方法에 關하여 그때마다 賣主 買主의 連絡處와 品目 數量과 使用 目的 등을 갖추어 當署에 提出 許可를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每月의 賣渡品目 數量과 買主의 住所 姓名 등을 빠짐없이 營業用 帳簿에 記入하고 每月末 다시 이를 當署에 提出하여 檢印을 받고 있다. 監査方法도 比較的 완전히 行하고 있으며 從來 少量의 火藥을 免許 韓人 獵業者에게 賣渡한 것이 있는 外에 韓人과 淸國人에 對하여 銃器 火藥類를 賣渡한 것이 없고 또 往年에 當地 同 免許者 中村勝彦이 爆發物 密賣의 嫌疑로 韓國 在留를 禁止 當한 일은 심히 同業者의 注意를 喚起하여 이후 邦人 免許 者間에 密賣買를 함과 같은 不正한 行爲가 있다고는 認定할 수 없다. 여기서도 폭발물을 허가 없이 한국인에게 판매했다가 사업권을 몰수당하고 한국에서 추방된 일본 상인이 나오죠. 이 보고서의 1절은 서양인(독일인이 경영하는 세창양행, 미국인이 경영하는 타운센드 상회(노벨 회사 대리점)), 2절은 일본인, 3절은 중국인의 무기매매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중국인은 허가받은 취급업자가 없고, 서양인은 주로 광산용 폭약을 취급할 뿐 아니라 아예 소매를 안 하고, 규정도 어기지 않는다고 하죠. 즉, 국내에서 무기를 불법으로 판매한 위반사례가 적발된 것은 인천경찰서 관내에서는 일본인 뿐인 셈입니다. 단 중국인들의 밀수는 근본적으로 적발할 수 없다는 게 불공평한 점이지만. 뭐, 돈 때문에 자국군과 맞서 싸우는 의병들에게 무기를 판 일본 상인들을 별로 비난하거나 하지는 않겠습니다. 어쨌거나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돈이라는 게 존재하기 전부터 있었고, 이들 일본 상인들은 본능적인 욕구를 충실하게 따랐을 뿐이니 말이죠. 뭐, 자기네가 판 총에 일본군이 좀 죽으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의병은 진압될 것이고 얼마 안 가 한국에 총 팔 여건은 없어질”텐데, 팔 수 있을 때 남들보다 총 한 자루 총알 한 발이라도 더 팔아야 했겠죠. 안 그래요? 참고자료 :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 소장 한국관계사료목록 明治·大正篇, 4門 司法及警察 前田久太郞 소유 총기에 관한 건 통감부문서 (1) [在上海 韓·美人 暴徒에 供給하기 위한 모젤銃 및 彈藥密輸入 企圖事件 報告], 機密統發第七○號 통감부문서 (832) [義兵用 銃器密輸 情報 件], 憲機第二三六一號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18(의병편XI), 隆熙 四年(一九一○·明治 四三), (五) 八月, 京畿道, 兵器 密輸入의 件 回答 현대한국사 vol.3 - 민족의 저항(1905~1910), 편집부, 신구문화사, 1969 위키(일) - 門司区(http://ja.wikipedia.org/wiki/%E9%96%80%E5%8F%B8)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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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네요... 어떻..by SAGA at 03/01 헐... 대단한 퀄리티.. by SAGA at 03/01 앗 경인왜란 읽는중인데.. by 페퍼 at 02/24 퀄리티 굿... by KittyHawk at 02/23 저거 진짜 놀랐죠 by intherain at 02/22 엄청난 작품이네요. 그.. by asianote at 02/22 와......전 처음엔 .. by 까마귀옹 at 02/22 대체 어떻게 저런 문장이.. by 까마귀옹 at 01/31 외신기사를 구글번역기.. by 도연초 at 01/31 .... 좀 거시기합니다만.. by 漁夫 at 01/31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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