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으로 족한 것을 비난하지 말자.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언, 15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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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올해가 2009년인데 이 떡밥이 안 나온다 했어.(내용 추가)

"간도반환 소송가능시한 3주밖에 안남아" 재미동포 피맺힌 절규


굳이 이딴 지도를 쓴 건 비웃으려고.


위 기사에서 인터뷰한 1909년 9월 4일에 청일간 간도 협약이 체결되었으니 그날까지 제소하지 않으면 간도가 영영 중국땅이라는 논리,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한 가지 새로운 건 주창자가 국내 시민단체가 아니라 미국에서 활동하는 양반이라는 거군요. 게다가 지난번에 긁어온 리플처럼 "12월 31일"이 아니라 조약 체결일인 9월 4일을 언급한다는 정도...그런데, 이분 약력을 보면 별로 신뢰가 안 가요.

재야 사학자인 그는 애리조나 주립대에서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Ph. D)를 받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분야의 준학사부터 박사까지 다양한 학위를 갖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주인공이다. 한국에서 화공학 학사 학위를 받고 모 전문대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했다. 이후에 고려대 대학원에서 무역학 석사학위를 받고 잠시 실무를 익히기도 했다.

역사하고 관련 있는 공부는 하나도 안 했잖아?


물론 역사를 전공한 사람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 소리를 하는 역사학자가 있다면 벼락을 7번쯤 맞아도 할 말이 없죠. 하지만, 단 한 과정이라도 체계적으로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 하는 발언과 그런 과정을 거친 적이 없는 사람이 하는 발언은 그 비중에서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떡사마가 그나마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도, 학교의 레벨이야 어쨌건 학부에 대학원까지 사학과로 박사까지 땄기 때문입니다. 만일 떡사마가 사학과 출신도 아니었다면, 그 양반이 하는 발언이 지금만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비사학과 출신이 역사적 발언을 했을 때 어떤 취급을 받을 수 있는가는 이영훈 교수를 비롯한 뉴라이트 계열 교수들을 보면 됩니다. 지난해 이들이 식민지근대화론 등 일본에 호의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을 때 나온 비판의 목소리들 중 가장 크게 나온 것 중 하나가 뭐였죠? "사학과도 아닌 경제학과"가 감히 역사를 가지고 이래라저래라 한다는 거 아니었나요?

물론 비전공자라 할지라도 자유로운 발표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누구도 그 자유를 침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 주장이 전공자의 그것보다 신뢰성이 낮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며, 저 역시 같은 발언이면 전공자의 상식적인 발언 쪽을 신뢰합니다. 따라서 기사에 등장하는 취재원의 발언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간도는 분명히 청나라 땅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오지만 두 나라 사이의 국경선은 압록강-두만강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정계비 건립 당시의 국경 확정 문제는 "두 강이 발원하는 곳 근처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으니" 이를 확실히 하자는 거였습니다. 여기서 실수로 "정확한 두만강의 상류"가 아닌 토문강을 찍어버리는 바람에 후대에 와서 토문강이 실은 송화강을 향해 흐른다는 걸 알고 난리가 난 거고요.

그럼 구한말에 조선-한국 정부가 간도 영유권 주장한 건 뭐냐고요?

간단합니다. 침략입니다-_-

처음 간도 이주가 문제가 된 것은 1870년으로, 청나라 길림장군이 부하 관리인 영고탑 부도통을 시켜 조사한 결과 상당수의 조선인 유민이 영고탑/훈춘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흉년으로 곤란을 겪다가 넘어온 함경도 주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때문에 가능한 부드럽게 조선으로 다시 돌려보내려고 하지요. 이에 454명이 다음해 3월에 송환됩니다(이송중 사망 및 도주 57명 제외).

하지만 그 뒤로도 월경은 끊기지 않았고, 도저히 금지할 수가 없자 조선 측에서는 마침내 월경을 공인하여 함경도 관찰사 명의로 두만강 너머의 토지에 대한 지권(地券)을 발급하고 토지대장을 만들어 지세를 거둬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청나라에서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있었죠. 만주가 워낙 넓은 데다 두만강 대안, 간도 지역은 여전히 봉금지역(한족의 이주 및 개간이 금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청나라 정부의 방침이 바뀌어 드디어 만주를 개척하기로 합니다. 러시아가 계속 만주를 먹어들어오는데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죠.

1881년 7월, 청나라 정부는 최후의 봉금지였던 길림성 남부를 개방하고 9월에는 혼춘에 초간국을 설치하여 개발사무 전담 및 개간 가능한 토지의 면적을 조사시킵니다. 그리고 이때에야 비로소 조선인들이 2천여 상(晌)의 토지를 경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지요.

* 네이트 중국어 사전에 의하면 1상은 동북 지방에서는 15묘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일본 측 기록을 보면 1상은 7,200弓인데, 1궁은 淸尺으로 5尺, 폭 2尺 5寸의 직사각형이라고 하네요. 그럼 이게 몇 평이지?-_-;;;

한두 사람이면 그냥 쫓아내고 말겠지만 그 규모가 워낙 큰지라, 청나라 관헌도 일단 북경에 보고했습니다. 그랬더니 중앙정부에서는 이런 답장을 보냈죠.

원칙적으로는 쫓아내야겠지만 그 규모가 크고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월경민들의 기득권을 인정한 셈이 되었으니 관대하게 처분하여 그냥 두고 토지 소유권 및 생활권을 인정한다. 대신 그들을 우리 호적에 편입시키고 세금을 납부하게 하며 그 복색을 청나라 것으로 바꾸게 하고, 그 지위는 장차 운남 지방의 묘족과 동일하게 한다. 차후 조선인들의 호적은 훈춘과 돈화현이 나누어 관리하고 소송관계는 길림 당국이 처리하겠다.


청나라 조정의 반응은 쉽게 말해, 조선인들을 귀화시키라는 거였죠. 한편, 당시 민씨 일파의 지배하에 있던 조선 정부는 간도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별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던 판에 청나라 측의 통지를 받고 난리가 납니다. 그래도 "나라의 근본"인 백성을 다른 나라에 눈 뜨고 빼앗길 수는 없었고, 이에 청나라 정부에 전문을 보내 "1년 안에 몽땅 도로 데리고 올 테니" 월경민들에게 청나라 국적을 부여하는 일은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하죠. 이에 청나라 정부도 동의(1882년)하고 기존 계획을 취소합니다. 그리고 1883년에 돈화 지역에서 조선 농민들을 모두 돌려보낸다는 고시를 발표하죠.

두 정부 사이의 교섭 결과를 알고 난리가 난 건 당연히 조선 월경민들이었습니다. 죽을 고생을 하면서 미개척의 황야를 간신히 농사지을 수 있게 만들어 놨는데 다 버리고 돌아오라지 않습니까. 이에 이들 주민들은 직접 토문강의 상류를 탐사하여 이게 두만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지금 살고 있는 땅은 원래 조선 땅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이주 조선인들로서는 청나라 측의 이러한 조치가 조선인들이 개간한 땅을 빼앗아 새로 들어오는 청인들에게 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았거든요. 하지만 청나라 관리들이 그 부당함을 호소하는 조선인들에게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직접 토문강의 상류를 탐사해서 지도까지 그려서는 조선 관리들에게 호소를 한 겁니다.

이때 조선에서는 어윤중을 서북경략사로 임명하였는데, 어윤중은 부하 관리들을 시켜 주민들의 소에 따른 국경조사를 하게 한 다음 종성부사를 통해 돈화지현에 조회문을 보냅니다(1883년 7월). 이 조회문에서 어윤중은 "토문강은 두만강과 별개의 강이며, 그 정계가 확실치 않으니 실사하여 국경을 다시 정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어윤중의 서한에서조차 조선이 토문강을 양국간의 국경으로 여기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구절이 나와요.

또 그들(조선 월경민들)이 지도도 그려와 그것을 옛지도와 비교 검열한즉 토문강과 분계강(分界江)은 그 사이에 연속되지 않은 곳이 있어 일찌기 의심하였더니 이제 사람을 보내어 답심한 바 또 이와 같았다.


여기서 분계강, 즉 경계선을 나누는 강은 두만강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어윤중의 이 편지는 조선도 역시 두 나라의 국경선을 두만강으로 간주해 왔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두만강의 어디와 토문강의 어디를 이어야 하는 점인 셈이죠.
하지만 이 서한이 인용될 때는 보통 서한 맨 서두에서 등장하는 "양국의 국경은 토문강을 경계로 하며"라는 구절만 제시가 되죠. 이는 조선이 간도를 영토로 여겼다는 주요 근거로 간주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정계비의 내용을 반복함으로서 당위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구실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09.14) 이 부분은 잘못되었습니다. 새 포스팅인 어윤중의 "분계강"은 두만강이 아니었습니다. 독자분들을 혼란시킨 점 사과드립니다.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뒤로도 양국 정부 사이에는 지리한 교섭이 계속되었습니다. 돌아온 어윤중의 보고를 받은 조선 정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정계비의 토문강은 두만강이 아니라 토문강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며, 이에 화가 난 청나라 정부는 무력으로 조선 농민들을 축출해버리기 시작합니다. 1885년 3월, 청나라 혼춘 당국은 조선 측의 조회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은 채 종성/무산 대안의 조선인 부락을 불사르고 농민들을 쫓아낸 뒤에야 비로소 회담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측이 "정계비에 따라 토문강의 흐름을 명확히 밝혀" 경계를 정하자고 한 데 비해 청나라 측은 "국경은 분명 두만강이므로 정확히 어느 지류가 두만강의 원류인지" 밝히면 족하다는 입장이었죠. 고로 회담은 계속해서 교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양측은 엄청난 말다툼 끝에 실사에 나섰는데, 여기서도 다툼이 있었습니다. 조선 측이 정계비부터 보자고 한 데 비해 청나라 측은 애초에 "두만강 하류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자고 했는데 이때는 이미 10월이라 겨울이 끝나기 전에 강을 다 도는 게 불가능했죠. 청나라 측의 논리는 "100근도 안 되는 비 따위" 인력으로 얼마든지 옮겨놓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양측은 셋으로 팀을 나눠(물론 혼성) 양측 주장에 따른 현지탐사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결정짓고, 동년 10월 27일에 이를 마무리한 다음 무산에 다시 모입니다. 이제까지는 사전회담이었고 이제 정식 회담이 다시 시작된 거죠.

여기서 청나라는 "토문강의 하류는 두만강이 아닌 송화강으로 들어가는 것이 분명하므로" 비문의 토문강은 잘못되었으며 마땅히 두만강의 지류 중 하나를 국경으로 확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만 조선 측에서는 "정계비가 토문강이니까" 토문강이 국경선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조선 측 대표단도 자신들의 논리에 허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만일 토문강이 국경이라고 진지하게 주장해 버리면 송화강까지 다 조선 영토라는 논리가 성립이 되는데(오늘날 인터넷에서는 정말 그렇게 주장하는 인종들이...-_-) 이 송화강은 또 흑룡강으로 흘러들어가며, 그럴 경우 분명히 청나라가 영토로서 행정권을 행사하고 있는 길림/흑룡강 일대는 물론 러시아가 차지한 연해주까지 몽땅 조선 영토라는 황당한 결론이 도출이 됩니다. 때문에 조선 쪽에서도 명확하게 "어디까지가 조선 땅이다"라고도 주장하지 못하고 "경계선은 두만강이 아니라 토문강이다"라는 말만 계속 되풀이하게 되지요. 당연하게도 회담은 결렬되었습니다.

이후 계속되는 분쟁으로 1887년에 재차 회담이 열립니다만, 이때는 조선 쪽에서도 입장을 좀 현실적으로 정리해서 나가요. 청나라는 이번에도 또 정계비의 문구는 완전히 무시한 채 서두수를 조사하자고 하지만, 조선은 서두수는 "조선 내지에서 발원하는 강"이므로 청나라의 요구는 말도 안 된다고 반박하고, 최북단의 홍토수를 경계로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최초의 토문강이 경계라는 주장에 비하면 조선 측의 입장도 많이 현실적으로 바뀐 것이죠. 1887년의 회담에서는 조선 측도 더 이상 "토문"이라는 명칭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청나라 측은 두만강으로 직접 이어지는 지류 중 최남단이자 서단수와 홍토수 사이에 있는 홍단수를 경계로 하자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홍단수는 조선 쪽에서 보기엔 분명히 조선 내지를 흐르는 강이었으므로 받아들일 수 없었죠. 절대 거부하는 조선 측의 태도로 인해 협상이 난항을 겪자 청나라 쪽에서도 일부 양보, 홍토수의 지류인 석을수(소백산에서 발원)를 경계로 삼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이 의견은 조선에 의해 거부되고 회담은 또 결렬되었죠.

이후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서 국경선 획정과 관련된 회담은 다시 열리지 않았습니다만, 청나라는 "국경이 정해지지 않은 부분은 무산에서 두만강 발원지까지의 구간"일 뿐 그 이하의 두만강 유역에서는 강 북쪽은 청나라 영토라고 선포하고, 해당 지역에 대한 행정권을 확립해 나갑니다. 군대 주둔, 행정관 주재, 세금 징수 등등이죠. 하지만 이 시기 조선 조정은 임오군란 이래 청나라의 강력한 압력 아래 놓여 있었으므로 청나라 관헌들이 월경민들에게 치발역복(변발을 하고 호복을 입는 것)을 강요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의 땅을 몰수한 후 두만강 이남으로 쫓아내는 데 대해 어떤 유효한 항의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 추방된 조선인들의 땅은 몰수되어 청나라 사람이나 추방되지 않은 조선인들에게 불하되었고, 매 상에 2냥 2전의 지조가 부과되었습니다. 추방되지 않은 조선인들은 한 집에서 대표로 한 명씩 변발을 하고 청나라 정부에 세금을 바치는 대신 겨우 머무를 수 있었지요.

하지만 이때 조선에 기회가 왔습니다. 어떤 기회냐고요?


그야 간도를 먹어치울 수 있는 기회죠.


청일전쟁의 패배로 인해 청나라가 급격하게 약화되면서 조선 조정에 대한 청나라의 영향력도 거의 사라져 힘을 잃었습니다. 이에 조선, 아니 이제 대한제국 정부는 1898년 4월에 조사단을 파견하여 현지 실사를 실시하는데 이들은 청나라의 쇠퇴에 힘입었는지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분명 한청 양국의 국경은 토문강-송화강-흑룡강이며, 청이 이중 1,000여 리에 해당하는 땅을 임의로 러시아에 준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대략 벌린 입을 다물 수 없는.

이후 의화단 사건의 발발로 간도가 러시아의 점령하에 들어가자(1900) 조선 조정의 움직임은 더 활발해졌습니다. 고종은 이범윤을 간도에 파견(1902)하여 토문강과 두만강 사이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호수와 인구를 조사케 하고, 다음해인 1903년에는 이범윤을 "북변간도관리"로 임명하고 이 조치를 청국 공사에게 통보합니다. 이범윤은 현지에서 한국인 주민들에게 조세를 징수하고 이를 자금으로 하여 사포병(까놓고 말하자면 사병집단)을 양성, 치안유지 활동도 벌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청나라와 갈등을 빚지 않을 도리는 없었죠. 청나라가 약화되었다고 하나 엄연히 대국이고 지방관들도 여전히 주재하고 있었으므로 현지에서는 충돌이 계속되었습니다. 이에 청나라 정부가 정식 외교계통을 통해 항의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는 지속적인 외교분쟁이 이어집니다만,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혹시라도 사고가 날 것을 우려한 청나라 쪽의 요청으로 협상이 일시 중단됩니다. 이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이 행사하게 되면서 간도 문제는 청나라 정부와 일본 정부가 논의하게 되며, 이후 두 나라가 어떻게 타결을 보았는가 하는 문제는 인터넷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 간략하게만 쓰겠습니다.

일본도 애초에는 간도를 한국령으로 간주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한국인의 생명 및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통감부 파출소를 설치하고, 무려 14개소의 중요 지점에 헌병 분견소를 설치한 다음 한국 경찰관을 부속시켰습니다(제가 예전에 포스팅한 대한제국군 실업대책 이야기에서 "순검으로 임용하지 않는 하사관 및 병졸은 간도로 이주시켜 개간에 종사하게 하거나 둔전병으로 주둔시킨다"고 한 부분들을 기억하시나 모르겠습니다). 또한 간도 거주 한국인들에게 청국 관헌의 지시를 따르지 말라고 지시하는 등, 청나라가 간도의 경계선(일본측이 임시로 정한)을 침범할 경우 무력대결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였죠.

그런데 일본의 이런 태도를 정작 간도 거주 한국인들은 달갑지 않게 여겼다고 합니다. 왜냐 하면 한국을 위해서 간도를 지키려는 게 아니라 결국 일본이 먹으려고 하는 게 뻔했으니까요. 그래서 "일본에 좋게 해주느니" 차라리 청나라 관헌의 보호를 요청하는 한인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청나라 쪽도 반일 한인들과 힘을 합치는 한편으로 군대와 관리를 증파하여 간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립하려 하면서 일본과의 분규는 점점 심해져갔어요.

그러나 일본에게는 간도보다 중요한 다른 문제가 있었죠. 러일전쟁의 승리로 획득한 만주철도와 관련된 이권은 엄청난 것이었지만 청나라 쪽에서 선뜻 협조해주지 않을 경우 그 권리의 행사에는 심각한 지장이 초래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일본은 간도보다는 만철 쪽이 중요하다는 판단하에, 청나라로부터 만철에 대한 주요 이권 네 가지를 보장받는 대신 통감부 파출소를 설치한지 2년밖에 안 된 간도를 청나라 영토로 인정합니다. 이 협약에서 한국과 만주의 경계선은 1887년 회담에서 청나라가 제안한 석을수를 경계로 하게 되었고, 간도에서 거주하던 한국인들은 계속해서 거주권과 생활권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간도는 누구 땅일까요?

두말 할 나위 없이 간도는 청나라 땅이었습니다. 그걸 가지고 19세기 말 청나라가 서양 각국과 일본에게 돌아가면서 얻어터지느라 정신없으니까 그 틈에 어떻게 먹어보려고 대한제국이 이리저리 손써보다가 실패한 거죠. 정말 간도 전체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믿었다면 왜 조선은 1887년 회담에서 토문강이 아니라 "고작 두만강의 지류"인 홍토수를 경계로 하자고 했을까요.
위에 인용한 어윤중의 조회문에서 두만강을 분계강(分界江)이라고 지칭한 것만 보아도 죄송합니다. 위에 새로 연결한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애초에 경계선이 두만강이었음은 조선 측도 알고 있었습니다. 경계회담에서 토문강을 경계로 고집한 것은 이미 실거주자가 있다는 것을 핑계로 슬쩍 먹어볼 심산이었기 때문이죠. 국경 문제가 시작된 것 자체가 월경민들 때문인데, 월경이라는 말 자체가 경계선을 슬쩍 넘어간 사람이라는 뜻 아닙니까. "국경 넘어가서 사는 우리나라 사람이 많으니까 이제 거기 우리 땅"이라는 논리가 가능하다면 중국은 연해주를, 멕시코는 캘리포니아-애리조나-뉴멕시코-텍사스 같은 동네 남쪽 지방을 자기네 거라고 주장할 수 있겠군요. 그런가요?

어쨌거나 결론은 간도 100년 운운은 떡밥질이라는 거. 아무 소용 없는 소리입니다. 가카나 반기문 총장이 들은 척도 안 하는 것도 당연한 거예요-_-

참고자료 :

현대한국사 vol.3 - 민족의 저항(1905~1910), 편집부, 신구문화사, 1969


* 2009.9.5. 08: 내용추가

간도와 관련해서 새 포스팅을 몇 개 했는데, 아직도 외부에 링크되거나 하는 건 이쪽 포스팅이 많기에 새 포스팅으로 가는 링크를 남깁니다.이 포스팅에서 간략하게 설명한 두 차례의 감계회담 과정과 그 뒷이야기, 홍토수와 석을수의 위치 등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은 아래쪽에 링크된 포스팅들을 한번 더 읽어주세요.

간도협약(1) - 제1차 감계회담, 1885년 : http://nestofpnix.egloos.com/4224923
간도협약(2) - 제2차 감계회담, 1887년 : http://nestofpnix.egloos.com/4225617
간도협약(3) - 한국은 1900년부터 간도에서 실질적 지배권을 유지했다? : http://nestofpnix.egloos.com/4226067
간도협약(4) - 을사조약 이후 간도의 향방, 그리고 간도협약 : http://nestofpnix.egloos.com/4226141

by 슈타인호프 | 2009/08/12 20:43 | 한국현대(~20XX) | 트랙백(8) | 핑백(6) | 덧글(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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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올해가 2009년인데 이 떡밥이 안 나온다 했어. 이런 떡밥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 국사. 뭐 이건 교과서 잘못이지 국사란 개념 자체의 잘못은 아니지 않는가 하겠지만, 정권이 여러 번 바껴도 저런 건 안바뀌는 걸 보면, '국가의 신민'을 교육할 때 국가의 치부를 알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more

Tracked from The Daystar at 2009/08/13 03:12

제목 : 간도 하는데..
어째 올해가 2009년인데 이 떡밥이 안 나온다 했어.-from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는 둥지자세한 내용은 슈타인호프님 블로그 가셔서 읽어 보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괜히 역사 문외한이 건드렸다가는 꼬일 것 같아서요.1. 아무튼. 대략 내용은 이런 거죠. 간도가 사실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거기를 다시 차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죠. 어제 기사 보니까 한 재미 동포가 거길 반드시 다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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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올해가 2009년인데 이 떡밥이 안 나온다 했어.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선은 대충 그은 것임. (사진 원본 출처 : http://www.asiaonline.com.au/hong_kong/hong_kong_map_of_cities.gif) 다들 아시겠지만 홍콩은 "99년의 조차" 기간을 거쳐 중국에 반환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게 그렇게 단순하기만 하지 않아요. 역사적 연원을 따져 보면 영국은 굳이 홍콩 전......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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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이 되면 이제 간도를 찾을 수 없습니다....more

Tracked from 강철의 액시움 at 2009/08/13 13:58

제목 : 다 좋은데, 간도 따위 얻어서 어디다 쓴다는 것일까.
어째 올해가 2009년인데 이 떡밥이 안 나온다 했어. 슈타인호프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간도가 우리 땅이냐, 아니냐는 논쟁은 사실 무의미하다. 애초에 국제법상 시효 100년 같은 것도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하고, 간도 자체도 고구려 멸망 이후부터는 조선 후기 월경민들의 이주 외에 한민족과 별 연고가 없는 땅이다. 뭐, 현재의 한나라당 같은 짜가 우익 말고 진짜 제대로 된 악질극우당이 정권을 잡고, 그에 걸맞게 대한민국의 국력이 뒷......more

Tracked from Kind of Blue.. at 2009/08/13 17:28

제목 : 조선시대 환빠
슈타인호프님의 포스트를 통해서 구한말의 조청간 국경 논쟁의 진행과정을 좀 더 상세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관련문제에 관심있으신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이 포스트를 읽고 나서 문득 기억난 건데, 구한말에 국경 논쟁에서 조선측의 처리에 불만을 가졌던 누군가가 올린 아주 재미있는 상소가 있으므로 소개해봅니다. [보기] 고종 21권, 21년(1884 갑신 / 청 광서(光緖) 10년) 6월 17일(기축) 5번째기사 친기위의 일 ......more

Tracked from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 at 2009/08/14 23:14

제목 : 간도는 어떻게 거래될 수 있었나, 포클랜드, 100..
어째 올해가 2009년인데 이 떡밥이 안 나온다 했어. 홍콩 반환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에 이은 간도 관련 세 번째 포스팅입니다. 이 포스팅으로 간도와 관련된 글은 일단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이번 일은 직접적인 사료 제시 등의 설명보다는 비유와 외국의 사례를 이용하여 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혹시 사실과 다르거나 논리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1. 간도는 일본에 의해 "팔린" 것인가? 간도 문제로 분노하......more

Tracked from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 at 2009/09/02 03:33

제목 : 청과 조선의 감계회담,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어째 올해가 2009년인데 이 떡밥이 안 나온다 했어.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사실 간도에 대한 포스팅은 이제까지 한 4개로 그치려고 했습니다만(읽어보실 분은 아래쪽에 있는 "간도" 태그를 눌러주세요), 감계회담을 했다는 자체만으로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시는 분들이 진짜 많은 것 같아 하나만 더 합니다. 여러분, 감계회담의 "본질"은 뭘까요? 회담을 했다는 사실 하나면 족할까요? 아니면 그 회담에서 실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more

Linked at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는 둥지.. at 2009/08/13 19:36

... 슈타인 씨의 문제점 에서 나츠메 씨는 본인에 대해 이런 비판을 했습니다. 비판의 근거는 앞에 나온 간도 문제에 대한 포스팅의 이 부분입니다. 비사학과 출신이 역사적 발언을 했을 때 어떤 취급을 받을 수 있는가는 이영훈 교수를 비롯한 뉴라이트 계열 교수들을 보면 됩니다. 지난해 ... more

Linked at ☆:*:.. 대원수부 집무실 .. at 2009/08/13 22:10

... 어째 올해가 2009년인데 이 떡밥이 안 나온다 했어. <= 에서 핑백 그러니까 누구들 하는 말대로 동위토문이 정말 '토문강'이라고 쳐 보자. 나 역시 저 누구들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 ... more

Linked at It's Wonderful L.. at 2009/09/10 23:05

... 게 펼쳐지고 있다. 간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는 동지'라는 유명블로그에 있는 명포스트 링크로 대체하고... (http://nestofpnix.egloos.com/4209739) 간단히 말하면 간도는 청나라 땅이 맞으며, 우리나라가 조선말 간도를 가지고 대립을 벌인 것은 일종의 침략이었음. 간도가 우리나 ... more

Linked at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는 둥지.. at 2009/09/14 18:58

... 한 달 가량 전에 간도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때, 제가 처음 올린 포스팅이 있었습니다. 어째 올해가 2009년인데 이 떡밥이 안 나온다 했어.(내용 추가) 그런데 제가 작성한 포스팅 내용 중 상당히 중요한 부분에서 오류가 있었기에 정정포스팅을 합니다. 죄송합니다. ===== ... more

Linked at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는 둥지.. at 2009/12/30 11:32

... 이런 애들이 블로그를 채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이 포스팅이 댓글이 많은 건 제가 낚시를 했기 때문이지만 F-- 8월 : 어째 올해가 2009년인데 이 떡밥이 안 나온다 했어.(내용 추가) 제가 쓴 올해 최고의 대박 포스팅은 정말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간도 떡밥 때문에 개난리가 났었던 위 포스팅이죠. 요 ... more

Linked at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는 둥지.. at 2009/12/30 22:52

... 권.가장 많이 읽힌 글은 어째 올해가 2009년인데 이 떡밥이 안 나온다 했어.(내용 추가)</a> 입니다. 가장 대화가 활발했던 글은 <a href="http://nestofpnix.egloos.com/4209739" target="_new">어째 올해가 2009년인데 이 떡밥이 안 나온다 했어.(내용 추가) 입니다. ( 덧글 ... more

Commented by www at 2009/08/15 01:51
국빠들 정말 중병이네요 중병.... 정치꾼들도 국빠들 많지요. 인기 끌기 좋거든요.
Commented by Wellesely at 2009/08/15 01:54
5-60년대에 이북 팔아 장사하던 친구들이 최근엔 일본이나 중국팔아 장사하니깐여 ( 웃음 )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15 10:47
all//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상대하느라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Commented by 켈리시리안 at 2009/08/15 14:55
주인장께서 더 수고하신거같네요(웃음) 우리나라 조금 넓어져서 뭐 좋은게 있다는걸까요....

오히려 치안유지하랴 인구조사하랴 이것저것 하면서 돈깨질생각 하면 머리가 아플거같은데...

안그래도 북한과 통일만 되도 우리나라 망한다는 소리가 나올지경에 간도에 대마도라니원..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15 14:59
전 그래도 작년에 대마도가 일본땅이라고 쓰셨던 분보다 약하게 겪고 넘어간 겁니다. 그분은 작년에 800플까지 갔던가...? 600플은 확실히 넘으셨었죠.
Commented by t3t3t at 2009/08/18 06:02
간도를 부정하면..

광개토대왕비나 장군총 여러가지 아직 밝혀지지않은

무덤들을 다포기해야하므로서 고구려나 발해는 중국이 덤석 먹는다는게

스토리대로 가겟네여

탐원공정도 그렇고 동북공정도 완성단계니

새삼 일제시대에

왜넘들이 해논대로 역사를 모르게 하라 처럼 우리도 무관심하게 그렇게 흘러갈것같습니다

태왕비에

천원짜리 뿌린거 보면서 정말 피눈물 나던데..

차라리 다 포기하죠머~

위에선 짱개가 밑에선 일본이..자기 역사라 우기면 우린 머만 남습니까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9/08/18 07:12
왜넘들이 해논대로 역사를 모르게 하라 -> 문정창이 뿌린 떡밥

광개토대왕비나 장군총 여러가지 아직 밝혀지지않은 무덤들을 다포기해야 -> 영토가 아니면 포기라는 이야기가 왜 가능한지? 그리스 문명이 남긴 유적들이 터키에 산재해 있고, 페르시아의 유적도 이란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고대 이집트 유적도 현 이집트를 벗어난 지역까지 뻗어있는데 그런 거 다 포기되었나요?

쯧쯧, 이래서 영토주의 역사를 따르면 남는 것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지금 t3t3t3님이 하는 이야기야말로 일제가 남긴 식민사관 중 하나인 만선사관이라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요?
Commented by ㅇㅁㅇㅁ at 2009/08/18 06:15
전 솔직히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그러면 슈타인호프님은 간도전체=중국, 대마도= 일본(이것도 논쟁의 여지가 있나?),

독도= 한국 <- 이렇게 생각하고 계신건가요?

간도 전체를 중국땅이라고 하시는건가??? 사실 전체 글은 너무 길어서리 ㅎㅎㅎ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18 09:51
t3t3t//"지금" 우리 땅이 아니라고 해서 "과거" 역사가 사라진다는 논법은 이해하기 힘들군요. 베트남 북부 지역은 한때 중국이 차지했었는데, 지금 베트남 땅이어서 중국령이었던 역사가 사라졌습니까? 아니면, 로마가 유럽을 정복했던 역사가 지금 사라졌나요?

초록불//감사합니다.

ㅇㅁㅇㅁ//간도는 중화인민공화국령, 대마도는 일본왕국령, 독도는 대한민국령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nighthammer at 2009/08/18 11:50
'한때' 우리땅이였으니 죄다 우리땅이라면 몽골은 제주도와 평안도, 함경남북도를 가져갈 권리가 있겠죠. 전세계에 권리가 있는 몽골.
당나라가 일시적으로 백제땅에도 도호부를 세웠으니 전라도는 중국땅?
그냥 백두산이나 어떻게 재협상을 하든 뭘하든 해서 약간이라도 얻어내는 걸 바라는 게 현실적일지도요. 이것도, 아마 안될거 같지만.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18 17:15
저런 분들 주장으로는 걔네들은 "잠깐 거쳐간" 것 뿐이고 수천 년 전부터 거기서 "우리 민족이 계속 살아온" 것은 경우가 다르다고 합니다(맥풀린 웃음).
Commented by 국력은힘 at 2009/08/18 18:55
딱 5문장만 적겠습니다.

1.간도는 우리땅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교묘하게 역사서를 들추며 설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친중국계 학자들입니다. 동북아공정은 지금도 조금씩 하나하나 역사를 왜곡하며 장꼐에게 유리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2.역사서를 들추며 간도가 한국땅이 아닌것을 증명하는 글은 조선이후의 자료를 토대로 하였다. 당연히 조선시대때에는 힘이 없었다

3.얼마전 뉴스에 조선시대(왕이름 생각않남)왕이 해외로 일본의 부당강제조약을 고발하면서 도움을 청하는 특사를 통해 보내온 서신을(편지)이 공개되었다.

4.간도는 김정일이 개인의 욕심때문에 백두산이남까지 중국에게 넘겼다
당연히 이것은 독재와 개인이윤이므로 합법적이지 않다.

5.나중에 남과북이 통일이 되었을시 북의 경계를 반쪽짜리 백두산박에 찾아오지 못한다.

서태지의 노래 발해를 꿈꾸며가 생각이 나는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18 19:14
극력은힘//쓰신 내용 중에도 모순이 있네요.

1. 그분들이 친중국계라는 증거는요?
2. 힘이 없어서 우리 영토가 현재의 국경으로 줄어든 거 맞습니다. 그런데 간도 먹을만큼 힘 커져서 국경 늘어난 적 없는데요?
3. 고종입니다. 그런데 고종이 해외에 지원을 청한 것과 간도가 무슨 관계인가요.
4. 조중변계조약은 1963년, 김정일이 아니라 김일성 집권 시기에 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백두산 "이남"이 아니라 "중간"을 잘랐는데요.
5. 백두산 "이남"까지 넘어갔다고 하신 4번과 상충되지 않나요? 그리고, "통일 이후에는 북한이 양보한 영토 도로 달라고 할 거다"라고 하면 중국이 한국의 통일을 찬성할까요? 저라도 반대할 겁니다.

노래는 노래일 뿐입니다. 간도 때문에 중국과 생기는 갈등을 서태지가 책임지나요?
Commented by at 2009/09/05 00:32
3. 고종입니다. 그런데 고종이 해외에 지원을 청한 것과 간도가 무슨 관계인가요.

간도가 일제로 인해 넘어간것은
청과 조선이 토문강으로인해서 막 다투고 있으니까
을사조약 (당시 조선과 일본이 맺은 조약 ) 으로 인해 외교권을 박탈당해
일본이 " 너네 간도땅 가져라 ,대신 철도부설권은 우리에게 넘겨 "
이런식으로 간도협약이 이루어졌는데

고종을 을사조약을 반대하기 위해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것입니다

그런고로 고종이 해외에 지원 즉 헤이그 특사를 펴견한 것도 간도는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지요
을사조약으로인해 강제적으로 어쩔 수 없이 간도협약이 이루어 진거니까요
Commented by ㅇㅁㅇㅁ at 2009/08/19 15:38
음~ 제가 잘 모르고 그런데 궁금해서 그런데요.... 중국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간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할 근거가 있나요? 있다면 누구 영토라는것은 어떻게 정해요?? 민족도 애매모호하고,,, 최근통치??? 도 좀 그렇고... 딱 잘라서 중국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딱잘라서 우리나라것이라고 할 수 없고..?? 어떻게 되는거지...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9/08/19 18:11
독도는? 거문도는?
Commented by ㅋ.. at 2009/08/19 16:48
일제시대때 태워진 우리의 300,000권 역사책 그거의 반의 반만 더 있었더라면.. 슈타인호프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우리의역사는 일본에게 쓰여졌다는걸 알려드리고 싶네요 간도도 인본때문에 빼앗겼고 하지만 님상태는 지금 말이 통할것 같진 않아보이네요 나중에라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8/19 16:54
일제 때 역사책 3십만 권이 소각됐다는 말도 일제 시대 군수까지 하신 문정창 재야사학자께서 친히 설파하신 떡밥! 막상 일제가 소각한 책을 조사해 보면, 옛 역사서하고는 거리가 많이 멂.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9/08/19 18:11
일제 군수 출신 문정창이 처음 흘린 말은 20만권 분서였지요. 이제 30만권으로 늘어났군요. 댓글 단 분은 어디서 누구에게 30만권의 역사책이 불탔다는 말을 들었는지 추적해 볼 용의가 있습니까? 물론 그럴 열의도 없고, 진실을 알고 싶은 생각도 없겠지요. 그저 귀에 달콤하게 들리는 말만 믿고 싶을 뿐이겠지요.

나중에라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maat at 2009/08/19 17:30
증말 제대로된 조선후기사료는 이승만정권때 우리나라 관리들에 의해 방화로 홀라당 날려 먹었습니다.
왜 홀라당 발라당 탔는지는 궁금하신 분이 찾아 보시고요.
아마 1958년 일겁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19 18:29
ㅇㅁㅇㅁ//기록과 유물이죠. 간단합니다.

초록불//간도탈환론자들의 주장 대부분이 독도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죠--;;

ㅋ..//어? 20만권 아닌가요?

Esperos//초록불님이 아주 명확하게 깨부숴 주셨지요.

초록불//어디서부터 50%나 늘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몇 년 더 가면 50만권 되는 거 아닐까요?

maat//마지막 황제 영화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하나 있었죠...(쓴웃음)
Commented by 미디어 at 2009/08/22 11:14
국빠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일제의 식민사관과 일맥상통 한다는 것을 모른다는..

내선일체 그리고 중국은 짱개...
Commented by 미디어 at 2009/08/22 11:29
간도가 중국영토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친중국계라고요? 웃음 밖에 안나옵니다. 친일본계든, 친중국계든, 친미국계든 아니면 오로지 한국이 최고인 국빠든 국적은 한국인이겠죠. 국적 말입니다. 국적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22 12:11
그냥 뭐 기분이 씁쓸할 뿐입니다.
Commented by   at 2009/08/24 21:01
나중에 저-_-사람이 부끄러워할지,
아니면 저런 사고를 가지고 계속 살아갈지 궁금하군요.
어린 나이에 저런거에 빠져서 -_-;

유사역사학이 종교라더니 틀린거 없네요.
Commented by   at 2009/08/24 21:02
게다가 자기가 모르는거에 대해서 저리도 당당하게 -_-............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24 21:06
지금 하는 짓을 보면 책사풍후처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_;;;
Commented by   at 2009/08/24 23:44
-_-;;;;;;;
따뜻하게 해줘도 안 되고 후드려까도 안 되니
손을 떠났다고 생각해야...

쩝. 서글프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25 01:26
버리는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먼산).
Commented by 낭인 at 2009/08/26 03:09
역사란건 정말 어려운건가봅니다.. 수십수백년이 지나면서 진실은 모호해지고 수십수백가지의 입장은 뚜렷해져서.. 그들이 하고자하는 말은 너무 명확한데 서로는 전혀 알아들을수없는게 각자 다른나라 말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싶을 정도로..

저도 얼마전부터 간도문제에 관심을 갖게되어 흘러흘러 이글까지 보게되었습니다. 한참동안 글과 댓글을 찬찬히 보았지만 어느쪽으로 기울긴했어도 저에게 확답을 주진못하는군요..
나름의 애국심을 갖고 간도문제에 관심을 기울여보고자했으나 이 글을 보고 한걸음 물러서게 됐습니다. 어떤주제의 무슨문제에도 등장하는 무작정 빠/까 가르기를 여기서도 역시나 볼수있어서 눈살찌푸려지긴 했지만 덕분에 몰랐던 걸 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26 09:23
네, 고민하시는 분께 판단의 근거를 제공했다면 저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글이었습니다.잘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란첸티어젠느 at 2009/08/27 01:15
환빠들 망상 스케일 크다는 말도 다 거짓말이네요.중국이 망하는 시점에서 고작 만주나 빼앗아오자고 밑밥을 깔아놓으라고 하라니..쯧즛...
중국이 망했는데 겨우 만주하나 먹고 말래?중원을 먹자는 말은 왜 못해!
땅만 넓고 인구만 많으면 다 좋은줄 아는 아이들이 참 많네요.
남에 나라 땅 가지구 건덕지 만들어서 분탕질 할 생각하지말고 내집마련이나 꿈꿔.
지금은 몇천리 간도땅보다 30평짜리 내 땅이 더 소중한 시대야...(너무 속물적인가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27 18:42
속물적이긴요^^
Commented by 하하하핫 at 2009/08/27 19:44
저 위엣 분들은 아고라나 개소문으로 가시면 환영받으실 것 같습니다.ㅋ

오랜만에 청정지역에 온 느낌입니다.

제가 아무리 역사를 모르는 놈이긴 하지만 저런 사람들의 글을 보고 있자면 "내가 아무리 역사를 모른다고 해도 니들 글은 구라같아." 라고 생각하게 된답니다. 헌데 문젠 인터넷에선 저런 사람들의 글이 먹힌다는 겁니다. 같은 역사를 모르는 내가 봐도 구라같고 근거가 부족한 막장논리인데 왜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먹히는지.. 대마도관련내용도 마찮가지 입니다. 올초인가, 작년인가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마도반환운동 어쩌고 저쩌고 했을 때도 댓글들 보면 한나라당은 싫어하는 것 같은데 대마도는 당연히 한국것이라 여기는 글이 다수였고, 야후에선 몇백개의 추천을 받으며 '대마도한국땅'글이 베플에 올라가고 아고라에서 또한 해당글들은 막강한 추천을 받더군요.

이런사태를 보면 참 인터넷은 특정한 주장에 대해 너무나 아무렇치않게 받아들이며 스스로가 우민화가 되가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저런 글들은 보면 어찌 해야할까요? 지금까진 그냥 니들 좋은대로 믿어라~ 했지만 이젠 걱정이 앞섭니다. 저런 주장을 생각없이 그냥 받아들이면서 우민화되버리는 인터넷이용자들.. 에구.

여하튼 여긴 청정지역입니다. 논리가 있고 근거가 있는 분들의 글을 보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ㅁ+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27 23:53
감사합니다. 과찬이십니다^^;;
Commented by vomster at 2009/08/27 23:55
아는 것이 없어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사실 간도 반환을 주장하는 글들을 보면서 '대동여지도에도 안 나온 간도가 우리 땅이 맞긴 한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역사쪽은 워낙 문외한이라 긴가민가 하던 차에 궁금증이 풀렸네요.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게 있습니다만, 봉금을 하고 있던 시기에는 그곳에 누가 살았습니까?
우리나라땅이 아니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한족이 넘어가서 살지도 못하게 한건 왜죠?
Commented by gwangyi at 2009/08/28 04:08
한족이 못 넘어가 살게 한 이유는 거기가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고향땅이기 때문이었다고 알고 있어요. 그 전에는 만주족들이 살고 있었겠지만 거의 안살고 있었다고 하던데...
Commented by highseek at 2009/08/28 04:30
봉금 정책 상으로는, 한족 뿐 아니라, 여진족(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이 아니면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른바 여진족의 성지라는 거죠. 물론 이 정책을 한다고 해서 "100% 절대 못 들어"간 건 아니겠습니다만..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28 10:14
만주족, 여진족의 발상지라고 해서 만주 전역이 애초에 성지이자 한족이 이주할 수 없는 봉금지역이었습니다. 이걸 금지한 건 예로부터 "한족이 이주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 유목민족은 결국 그 땅을 빼았기고 약체화된다는 역사적 선례를 청조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때문에 청나라는 만주를 한족이 이주할 수 없는 상태로 놓아둠으로써 유목, 수렵 등을 행하는 여진족의 생활 터전을 보존하고 군사력을 보존하고자 했습니다. 봉금에는 그런 의도가 있었죠.


그리고 조선인이야 "국경 너머"니까 함부로 넘어가면 안 되는 게 당연한 거였죠. 간혹 보면 "청나라가 비워둔 땅이니" 살아도 된다는 분들도 계시는데 같은 논리로 따지면 "조선이 비워둔 섬이니" 울릉도랑 독도에 일본인이 살아도 좋다는 것과 같은 논리가 됩니다.
Commented by qwerty at 2009/08/29 22:49
우리나라에 안좋은 소리만 하면 친일파니 짱깨니 하는 것들..
정말 짜증난다,,,,
지금 간도협약 100주년이라고 리포트 내라는데...
이 내용으로 썼다간....ㅠㅠ
내 생각이랑 다르게 쓰려니까 글은 안나오고..ㅠ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29 22:52
고생하시겠습니다. 그저 애도를 표할 뿐입니다(...)
Commented by dasdfasdf at 2009/08/31 22:51
그럼 굴러들어온 복을 차시겠슴니까? 거참 비전없는 사람이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31 22:55
일단 굴러들어온 복을 보여주세요.
Commented at 2009/09/01 19:0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9/01 19:21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풍요로운 가을 맞이하시기를 빕니다^^
Commented by 삶곰 at 2009/09/01 21:18
좋은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막연히 알고 있던 내용을 비교적 자세히 배우게 되었네요.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허세와 허풍으로 범벅된 허구를 좇는 다는 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의미의 정확히 반대가 되는 안타까운 현상이죠.
하지만 그 중 동북공정에 대한 우려 및 카운터어택으로 간도를 걸고 넘어지는 일부 정략적(?) 외침은 일단 마냥 비판하긴 그렇네요.

똑같은 애국이고, 똑같은 정의이지만 사학에 기준한 양심론이냐 정치학에 기준한 실리주의냐의 차이이다 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려나...
사실 잘 따져보지 않으면 그 주장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것도 혼란스럽고 매우 어렵겠죠.

아무튼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허'에 묶여 발끈하는 분들은 자신의 바람이 어느덧 믿음이 되어 눈을 가리고 있는 모습을 인지하셨으면 하고...
또 이 주제를 자꾸 수면 위로 부각 시키는 사람들을 꾸짖는 사람들도 좀 더 부드럽게 타일렀으면 좋겠네요.

특히 올바른 역사 앎을 추구한다면 애국의 심리가 지나쳐 극한 민족주의나 파시즘의 경계에 걸쳐진 사람들에게 두드러기가 나느니 짜증난다느니 하며
경을 치긴 보단 설득을 좀 했으면 좋겠네요.

본인이 하다 하다 지쳤거나 상대가 계몽불가라 판단되면 무시하면 되는 겁니다.

도가 넘게 그러한 성향을 혐오한다면서 똑같이 혐오스런 말을 내뱉는 분들이 분명히 계시는데, 이는 절대 역효괍니다.
애써 좋은 글을 작성한 노력을 뭉게버리게 되죠, 눈이 가려진 사람들 안대를 풀어줘야하는데, 한대 갈겨서 진짜로 눈이 멀게 만들게 되니까요...

Commented by Marcus878 at 2009/09/01 22:12
이게 무려 '국사교과서'에 나와있는 떡밥이라 저도 불분명한면이 있었는데 사실은 이랬군요. 잘 보고 갑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9/01 23:50
삶곰//잘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간도는 우리땅 논리에 반대하는 분들 말이 종종 격해지는 건 아마 고립된 상태에서 벽에다 대고 말하는 기분을 하도 많이 느끼다 보니 그러실 거예요.

Marcus878//잘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Jude at 2009/09/02 11:40
역사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라는 말을 깨닫게 해주는 블로그네요. 잘 읽었습니다. 편향된 역사관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비판하는 일본 우익들과 같은 행태겠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9/02 12:36
잘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09/09/03 15: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9/04 00:14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Commented by 만약 at 2009/09/04 12:48
슈타인호프님의 글이 사실이라면 그 원본은 어디어디에서 발췌할수 있을까요? 직접 보고 싶네요.. 기술된 역사는 역사가의 주관이 들어가 있으니, 슈타인호프님이 쓰신 이글 또한 주관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가 싶어 몇자 올립니다. 원본은 어디를 참조하면 될런지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9/04 13:10
본문에는 제 주관이 들어간 게 사실이지만 파란색으로 소개한 사료 부분은 제 주관이 들어가 있지는 않습니다. 전재된 인용문이 아니라 원문을 확인하시겠다면 국사편찬위원회(http://www.history.go.kr/) 자료검색을 사용해복시길 권할게요.
Commented by 미르 at 2009/09/04 22:58
원문이 확실한지....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역사절반이상은 못 믿겠네요... 하두 조작된게 많아서..
Commented by 아롱쿠스 at 2009/09/04 23:12
무엇이 조작인지 구체적으로 증거를 들어보십시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9/04 23:57
조작되지 않은 역사는 어떤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Commented by 바시 at 2009/09/05 00:11
어 근데 말이죠. 궁금한게 하나 있습니다만,
저는 이제 막 고입을 준비하는 중3인데 말이죠.
학교에서 간도에 대해 수업을 했습니다. 우리 반ㅋ동영상도 보고 말이죠.
근데 선생님이 간도 관련해서 지도를 보여줬는데 어...그러니깐 외국에서
간도를 우리나라 영토로 표기했다는 지도를 선생님께서 보여줬는데요...
(어딘지는 기억이 안나지만)...이건 어떻게 되는거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9/05 01:10
웃기는 점은, 그 "외국 지도"들이 표시한 "간도의 영역"이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다는 거죠. 정말 확실한 조선 영토였으면 왜 그게 다 다르겠습니까. 저는 청나라 내에서 "봉금 구역 경계선"을 서양인 지도 제작자가 국경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천주교 교구 지도는 행정 경계와는 상관없이 설정될 수 있으므로 역시 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Commented by 바시 at 2009/09/05 11:10
아...그렇군요. 이제 알겠습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가 at 2009/09/05 04:14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측이 '분계강'이라고 가리킨 건 조선과 청나라를 분계하는 강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칭한 것인가요??

아니면 단순히 두 육지를 나누는 나누는 강이라는 의미에서 지칭한 건가요??

그리고 홍토수, 석을수는 어딘가요?? 지리에 워낙 무지한 탓이라 잘 못 알아듣겠어요;;

혹시 관련 지명에 대해 상세히 나온 지도 사진 있나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9/05 08:01
일단 저는 분계강을 경계를 나누는 강의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홍토수, 석을수의 위치에 대해서는 제 후속 포스팅을 참고해 주세요.

간도협약(1) - 제1차 감계회담, 1885년 : http://nestofpnix.egloos.com/4224923
간도협약(2) - 제2차 감계회담, 1887년 : http://nestofpnix.egloos.com/4225617
간도협약(3) - 한국은 1900년부터 간도에서 실질적 지배권을 유지했다? : http://nestofpnix.egloos.com/4226067
간도협약(4) - 을사조약 이후 간도의 향방, 그리고 간도협약 : http://nestofpnix.egloos.com/4226141

본문에도 수정해서 링크를 넣어야겠네요.
Commented by Deios at 2009/09/06 22:05
좋은 글 보고 갑니다. 정말 수고하시는군요 ㅎㅎ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9/07 02:13
잘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Dolphin\'s at 2009/09/19 22:24
좋은 글이네요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ㅋ

역사란 항상 이해가 되야하고
결과와 주장만 하는 건 사기라는 말처럼(저희과 교수님의 말입니다)
이해가 쏙쏙되네요 ㅋ

더 좋은 글도 기대해 봅니다 ㅋ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9/20 01:20
감사합니다, 잘 보셨다니 다행이네요. 이건 좀 간략하게 썼으니, 간도 태그의 다른 글들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Commented by 방문자 at 2009/09/23 08:52
중국에게 피빨리고 일본에게 털리기 일쑤였던 조선이 저런 얍삽한 잔꾀를 부리던 때가 있긴 있었군요...와우^^
아참, 조선이 아니라 대한제국으로의 국호 변경을 기념할 겸 제국주의를 한 번 실천해보고 싶었던 걸까요?
좋은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9/23 11:24
잘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으하하 at 2009/10/05 12:42
아이고, 오랜만에 간도 관련 개념글을 보니 머리가 다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학도인데 하필이면 아버지가 간도는 우리땅이라고 노래를 부르셔서.... 저번에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이런 중요한 것도 신경을 안 쓴다고 마구 욕을 하시길래 대판 싸우기까지 했습니다. 슈타인호프 님께서 제시한 근거들을 저도 아버지에게 계속 설명드렸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시더군요. 에고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0/05 13:31
잘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Commented by 내생각 at 2009/10/19 00:52
야 이 바보들아 간도찾는게 문제가 아니라

북한땅이나 제대로 평화통일하길 기대해라 ㅡㅡ

지금 중국이 평화적으로보이긴하나

동북공정등으로 역사부터 야금야금 먹어가고 있지 않냐?

전에 un북한 비상대책보니까 북한에서 내분나서 망하면 중국,러시아,un,남한,일본 이렇게 북한 나누어 통치할 계획세우고있더라 ㅡㅡ

지금 간도가 문제냐?

한반도부터 잘지킬 궁리를 해야해....

그럴려면 핵밖에 없는것같지만...

지금 한국은 의외로 너무 위험한 상태야...

북쪽엔 언제 터질지모르는 북한이 있지.서쪽엔 기회만 얕보는 중국있지

동쪽엔 일본쪽발이들이 대기타고있지 남쪽엔 그나마 나은듯해도 중국해군,대만해군,일본해군,미군 다 돌아다니자나... 한국은

진짜 외교잘해서 중립국유지해야된다..전쟁으론 답이없어..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0/19 11:10
네 의견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ㅡㅡ at 2009/10/20 04:07
간도는 고구려의 영토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0/20 09:45
네, 고구려 뿐 아니라 발해의 영토기도 하지요.
Commented by 민병장 at 2009/10/21 23:23
잘 읽었습니다만, 사실 국제사회에서 국가간의 관계가 항상 fact에 근거한 상식적이고 도덕적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전쟁은 일어나지도 않겠지요. 결국 어거지든 아니든 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발을 하나 담가 두면 이래저래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굳이 애써 평가절하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사학과를 전공한 엘리트가 아닌데 이런 글을 남겨 혹여나 고고하신 분의 심기에 누를 끼칠까 걱정이 됩니다. 좋은 밤 되시길 빕니다.
Commented by highseek at 2009/10/22 10:53
바로 그래서 그런 겁니다. 구실을 주장하려면 힘이 받쳐줘야 먹어주는데, 지금으로서는 괜히 주장해봐야 얻어터지기만 할 국제 상황이라서 말이죠.

그리고 구실을 만들든 발을 담가놓든 하는 건 별로 소용이 없는 게, 결국 힘으로 뺏으면 그만입니다. 전쟁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국제적으로 압력을 넣을 수 있게 된다면야 지금 아예 신경끄고 있어도 상관없다는 거죠.

게다가 그 구실이라는 것도 상당히 구멍이 많아서, 그대로 가져다 댔다가는 공격당하기 딱 좋을 수준이지요-_-;

그리고,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길지"라고 하셨는데, 막상 따져보면 간도를 우리나라 영토로 확정한다 해서 사실상 별로 이득볼 게 없습니다. 몇몇 민족주의자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킨다는 것 외에 어떤 좋은 점이 있나요? 간도에 무슨 보물이라도 묻어 둔 것도 아니고, 국토유지비와 간도 주민 먹여살리는 덕에 세금만 늘어나죠. 진짜 나중에 우리나라가 초강국이 되어 간도니 뭐니 다 확장한다고 해봐요. 좋을 거 같나요?

"이번에 간도 지역을 점령하여 영토를 확장했으므로, 국토유지를 위해 세금을 인상합니다" 이런거밖에 없다는 겁니다 -_-;;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0/22 12:30
민병장//언젠가 있을지 모르는 좋은 일을 기대하고 화학물질과 중금속으로 오염된 뻘에 발을 담글 생각은 없어서요. 비꼬시는 말씀은 고맙게 걸러 듣겠습니다.

highseek//뭐 그런 거죠.
Commented by 사학도지망생 at 2009/10/22 17:47
(덧글 수정하려고 지우고 다시 쓰려니 복사 금지 ㅠㅠ)

아니 저 위의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간도가 우리땅이라고 주장하는 건가요

땅따먹기가 그렇게 좋나요



척 보니 크게 두가지 부류가 있음


1. 자신의 눈앞에 훤히 보이는 논리정연한 반박글들을 애써 외면하며 그저 근거도 없이 '간도는 우리땅' 이라 외치는 소위 '환빠의 주장' 을 하는 사람들.
(사실 동북공정도 이들-정확히는 환빠들-의 헛소리가 원인)

2. 간도가 우리땅이니 중국땅이니 하는데엔 관심없고, 혹시 모르니 침발라 놓고 나중에 기회되면 뺏어오자고 하는 '나치, 파시스트, 일본 군국주의자들' 의 동류
(애국심-빗나가긴 했지만-에서 비롯된 1번 부류보다 더 질이 나쁘다고 생각되는 경우)



아오 현시창 ㅠ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0/22 17:48
그러게 말입니다. 얼마전 반크에서 만든 간도 우리땅 주장 만화를 봤는데, 그냥 한숨만 나오더군요.
Commented by 사학도지망생 at 2009/10/22 17:49
아참, 2번에 '일본 군국주의자들' 보다는 '일본 제국주의자들' 이 더 맞는 것 같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0/22 17:51
그러게요. 그쪽이 맞겠군요.
Commented by 소현욱 at 2009/11/21 14:06
안녕하세요 늘 슈타인호프님의 글을 즐겨보는 눈팅족입니다 :)

이 글을 읽고 제가 지난 역사에 대한 사실중 간도에 대해 오개념을 갖고 있다는것을 알았네요.

중 고등학교 시절때 국사를 배울때도 지나간 역사만 배웠지 실제로 현 시점에서 어떻게 역사를 보아야 하고 역사관을 갖는 다는 것에 대한 교육이 없어 수백년전 선조들이 떨친 위용만 기억하지,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오기까지의 과정은 보지 않은듯 합니다. 이로인해 저역시 간도에 대한 인식이 댓글을 다신 분의 말처럼 영토주의 역사관에 잡혀 옛날에 우리땅이었으니 힘쌔지면 다시 우리땅, 이란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온듯 합니다.

이렇게 좋은 글 읽게 해주신점 감사드리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정확한 역사관을 갖았으면 좋겠네요.

p.s. 이제보니 김진명 작가분 위험한 역사관을 가지고 계신분이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1/22 01:06
잘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김진명씨는 저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1/28 21:32
마리아 테레지아//답글 다는 중에 리플을 삭제하셨네요. 안 하셔도 되는데..^^;;
잘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보시다가 궁금하신 거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질문 남겨주세요.

대마도 문제는 이글루에서 검색해 보시면 좋은 글이 많답니다.
Commented by yohan at 2009/11/29 22:36
정말.. 어느나라든 역사적으로 깨끗한 나라는 한 나라도 없네요...

남의국가 과거행적 욕할게 아니라 먼저 우리것을 정확히 아는것도 중요할것 같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1/29 23:58
누구나 기회가 왔을 때 하는 짓은 비슷하죠.
Commented by 고놈희 at 2009/12/09 19:44
나름 역사를 좋아하고, 한국사 검정능력1급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역사에 빠삭하다! 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오늘 많은걸 느끼고 갑니다. 감사드립니다.

PS: 개정7차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는 이 부분이 수정될까요? 분명 기존 7차 교과서엔 이 내용이 있었고, 간도가 조선땅이라는 논지가 있었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9 20:26
잘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덧으로 말씀하신 문제는...아마 안 없어지지 않을까요. 그냥 유지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소인 at 2009/12/15 01:09
좋은글 읽었습니다 . 이미 지난일이지만. . 침략이라고 해도 뺏었으면 저희땅 아닌가요 ? 독도도 침략당해서 일본한테 넘겨줬다가 다시 반환 했었잖아요. 그리고 더욱 이해가 안가는것은 올해 9월4일날 뉴스에서 간도협약 계속 떴었더라구요. 딱 100년이 지난날에요. 참 .. 어떻게보면 한심하고 .. 옛날에 국사선생님들도 그러더라고요.우리나라 역사가 왜곡된것이 많다고, 한두번 들은게 아니였는데 간도도 왜곡된것일까요.. 간도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말이죠.. 이미 끝날일이니 독도나 계속 지켜야죠. 많은것을 알아갑니다 ^^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15 18:25
"뺐었으면"땅인 거 맞는데 "뺐으려다 못 뺐어서" 문제가 더 처량해졌지요.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입니다.
Commented by ㅁㄴㅇㄹ at 2010/06/22 11:37
독도도 사실상 반환 받은 것은 아님. 국제법상으로 불법 침략으로 뺏은 상태임.
Commented by 나그네 at 2010/09/03 18:16
ㅁㄴㅇㄹ//
해방후 연합국의 독도에 대한 판정과 정책은 독도는 한국영토라는 일관된 합의에 의거한 것이었다.
1894년 1월1일을 기준으로 그 이후 일본제국주의가 영토 야욕으로 침탈 또는 편입한 모든 땅은 일본영토에서 제외하여 원주인에게 반환된 것이 연합국의 합의와 원칙이었다.
미군의 항법지도와 미연방 지명 위원회 지도도 독도를 한국영토에 포함시키고 있다
Commented by EqualJusticeUnderLaw at 2010/07/11 13:00
재밌네요. 좋은 정보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11 17:39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룰리레몬 at 2011/06/02 19:53
청척이 약 32cm라니 18.432 km ^2. 약 550만평 정도 나오네요. 생각보다 작은가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1/06/03 19:33
그래도 꽤 넓은 것 같네요.
Commented by 지나가던 사람 at 2013/04/15 21:06
간도를 우리땅이라고 주장하시는분들에게 조선왕조실록에서 間島가 쓰인것은 양손으로 셀수 있고 순종때를 제외하면 고종때 한손으로 셀수있다는점과 대동여지도같은곳에는 왜 누락되었는지 등으로 반박하면 꼭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하듯이 우리가 지계발급하고 사병키웠고 세금걷었다고 하니... 정말 남이하면 불륜 내가하면 로멘스 라는 말이 이렇게 실감되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04/17 07:35
그러게 말입니다.
Commented by 간도 at 2016/07/12 14:06
정말 우리 역사 까내릴려는 놈들 가관이네요ㅋㅋ 이런거 욕하는 사람들이 꼭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입을 닥치고 있드라...
Commented by 지나가는 사람 at 2016/09/04 11:03
글 잘봤습니다. 간도같은 허상을 제대로 바라보신 글이네요 근데 마지막에 중국이 빼앗긴 연해주와, 멕시코가 빼앗긴 미국 남서부랑 같은것과 같이 비교를 하셨는데, 이부분은 조금 의문입니다.
간도는 애초에 한국이 점유한적도 없는 땅이었는데 반해 연해주는 중국이 불평등 조약으로 뺏긴 땅이 맞고, 뉴멕시코, 텍사스, 캘리포니아 등등은 본래 멕시코 땅이던걸 미국이 전쟁걸어서 빼앗아간 땅입니다.
간도따위와 비교하는건 좀 어폐가 있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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