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으로 족한 것을 비난하지 말자.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언, 15장 4절)
by 슈타인호프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3 대표 이글루 2016 대표 이글루
이글루 파인더


메모장

카테고리
전체
기록공지
일상잡상
가족일기
몽유잡담
도서잡담
만화잡담
음식잡담
기행잡담
게임잡담
영화잡담
문답설문
낭만잡담
까칠할때
도서좌판(판책+공지)
좌판매물(팔책)


역사 : 통사(?~?)
한국고대(~668)
한국중세(~1392)
한국근대(~1910)
한국현대(~20XX)
한국전쟁연대기(500501~550731)
세계고대(~476)
세계중세(~1453)
세계근세(~1789)
세계근대(~1900)
세계현대(~20XX)
자연사說


한국뉴스
외국뉴스
뉴스비판


봉황의 비상
큰칼짚고일어서서:이순신戰記
내가 히틀러라니!!!
은영전 팬픽
미래뉴스
新 비잔티움 연대기
기타창작


멋진펌글
유머만담
클러스터맵
☆☆☆☆
★★★★
※※※※
미분류

태그
생체실험 유시민 대함미사일 스마트그리드 강제동원 북방물개 용병 오늘은취재원을까자 오늘도기자를까자 오마이뉴스 미국너구리 일제시대 일제강점기 지구온난화 이청천 주한미군 우한폐렴 731부대 마루타 온실가스 독도바다사자 화석연료 러쿤 홋카이도 독도강치 너구리 코로나바이러스 마피아 물개 코알라
전체보기

라이프로그
한국전쟁
한국전쟁

청소년을 위한 파닥파닥 세계사 교과서
청소년을 위한 파닥파닥 세계사 교과서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기억
기억

독소 전쟁사 1941~1945
독소 전쟁사 1941~1945

전격전의 전설
전격전의 전설


rss

skin by jiinny
임해군의 생포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은 어떻게 적었나.
고려, 조선에 대해 처음 듣는 이야기가 있어서 질문드립니다.에서 을파소님, Moon님 등이 "조선왕족 일보 납치설의 출처는 역사스페셜"이라고 제보를 해 주셨기에, 기사를 확인해 보니 왕자와 공주의 정체는 임해군의 아들(당시 4세), 딸(당시 6세)들이라는 보도내용이 있더군요. 이에 조선왕조실록을 한번 들여다봤습니다. 일단 임해군의 혼인 기사입니다.


선조 19권, 18년(1585 을유 / 명 만력(萬曆) 13년) 4월 17일(무오) 5번째기사
임해군 이진이 허명의 딸을 맞아들이다

왕자(王子) 임해군(臨海君) 이진(李珒)이【김빈(金嬪)의 소생이다. 김빈은 김희철(金希哲)의 딸로 총애를 받았다. 숙의(淑儀)로 있다가 빈(嬪)에 봉해졌는데 임해군은 왕자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 허명(許銘)의【처음 입신(立身)할 때부터 칭찬할 만한 지조가 없더니, 혼인하던 날 이리저리 영구(營求)하는 것이 매우 번거로왔다. 】 딸을 맞아들였다.
태백산사고본/영인본/21책 417면/분류 *왕실-의식(儀式)


임해군이 1585년에 결혼을 했다면 포로가 된 1592년에 아들과 딸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은 임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런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선조 26권, 25년(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4월 29일(무오) 4번째기사
윤두수에게는 어가의 호종을 명하고 각 왕자의 호종 담당자를 정하다

상이 윤두수에게 어가를 호종할 것을 명했다. 또 김귀영(金貴榮)과 윤탁연(尹卓然)에게는 임해군(臨海君) 이진(李珒)을 받들게 하고, 한준(韓準)과 이개(李墍)에게는 순화군(順和君) 이보(李)를 받들게 하여 함경북도로 나가도록 명했다.
태백산사고본/영인본/21책 484면/분류 *외교-왜(倭) / *군사(軍事) / *왕실-종친(宗親)


여기서 두 왕자가 함경도로 간 것은 현지에서 "군사를 모아" 왜군과 싸울 수 있도록 하라는 목적입니다. 당연히 처자를 동반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지요. 차라리 15,6세 정도로 장성한 아들이 있다면 동반할 수도 있지만 이제 겨우 4살, 6살 된 아들딸을 동반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또한 그런 어린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함경도로 가는 것보다 할아버지(선조)와 함께 의주에 있는 것이 훨씬 안전합니다. 여차하면 중국으로 도망갈 수 있으니까요.

또한 두 왕자가 포로로 잡혔을 때의 기록을 보죠.

선조 30권, 25년(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9월 4일(신유) 3번째기사
왕자가 사로잡혔다는 소문이 돌자 최흥원이 탐문하고 있다고 답하다

상이 최흥원에게 하문하기를,
“왕자가 사로잡혔다는 말이 제일 먼저 성천에 떠돈다고 하는데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니, 흥원이 회계하기를,
“유복(有福)이란 이름을 가진 자가 와서 전해주기를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 및 재신(宰臣) 5∼6명이 모두 사로잡혔다.’고 하였으나 정확히 근거할 만한 소식이 없었기 때문에 동궁도 감히 치계(馳啓)하지 못하고 우선 사람들을 강계(江界) 등지로 보내어 정탐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영인본/21책 539면/분류 *왕실-종친(宗親)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임해군과 순화군이 잡혔다는 소식이 처음 왕의 귀에 들어갔을 때를 다룬 기사입니다. 왕자들과 "신하 5,6명"이 잡혔다고 하고 있으나 그 가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죠?
이번에는 중국에 보낸 원병을 청하는 편지 중 일부입니다.

선조 30권, 25년(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9월 25일(임오) 3번째기사
왜적의 만행과 전투 상황을 적어 요동에 자문을 보내며 구원병을 청하다

(전략) 함경도는 선조가 기업을 일으킨 땅이고 또 그 지세가 견제하기에 편리함이 있을 듯하여 재신(宰臣) 김귀영 등에게 큰아들인 진(珒)과 함께 함흥부로 나아가도록 하였고, 또 황정욱에게는 다섯째 아들인 보(珏)와 함께 강원도 철원부(鐵原府)에 머무르면서 군사를 모집, 왜적을 막아 길을 끓음으로써 함께 기각(掎角)의 형세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본인의 처음 생각에는, 오직 두 도(道)를 수습하여 회복하는데 협찬하기를 바랐었는데, 뜻밖에 대군이 몰아쳐 끝내 사로잡히게 되어 골육을 보전하지 못하였으니 더욱 비통하고 분합니다. (후략)
태백산사고본/영인본/21책 548면/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왕실-종친(宗親) / *왕실-궁관(宮官)


이 편지에서도 가족 이야기는 없지요. 가능한 중국에 불쌍하게 보여야 원병을 보내줄텐데, 정말 잡혔으면 왜 뺐을까요?
이번에는 왕자들이 직접 쓴 편지를 보겠습니다.


선조 31권, 25년(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10월 19일(을사) 5번째기사
경성 판관 이홍업이 가지고 온 적에게 잡힌 왕자 및 적장의 편지

경성 판관(鏡城判官) 이홍업(李弘業)이 오랫동안 적에게 잡혀 있다가 북병사(北兵使) 한극함(韓克諴), 남병사(南兵使) 이영(李瑛), 임해군(臨海君) 이진(李珒), 순화군(順和君) 이보(李), 상락 부원군(上洛府院君) 김귀영(金貴榮), 장계 부원군(長溪府院君) 황정욱(黃廷彧), 전 호군(護軍) 황혁(黃赫)의 서장과 적장 청정(淸正)의 편지를 가지고 적중으로부터 성천(成川)에 도착하였다. 동조(東朝)의 신하들이 사람들이 놀랄까 두려워 내버려 두고 묻지 않았는데, 대간이 이를 논하여 행재소로 압송해 왔다. 흥업이 아뢰었다.
(중략)
극함과 영 등의 서장은 다음과 같다.
(중략 - 뒤에 이어지는 부분은 청정(가토 기요마사)의 말을 인용한 것임) '일본은 원래 살상을 즐기는 마음이 없어 지나는 성읍(城邑)에서 한번도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관방(關防)을 파수하던 사람 중 현재 사로잡힌 자는 모두 완전하게 보호하고 있고 임해·순화 두 왕자도 모두 예로써 접대하고 있다. 이제 듣건대, 대왕께서 서쪽 지방에 계시어 다시 통신이 되지 않고 있다 하는데 이는 의심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 불과하다.' (중략) 신들이 두 왕자와 배행한 대신들을 모시고 함께 안변(安邊)에 머무르면서 그들의 말을 대략 갖추어 알립니다.”

진(珒)과 보()·귀영·정욱·혁 등의 서장은 다음과 같다.
【“혁 등이 지난 7월 24일 회령부(會寧府)에서 사로잡혔으나 (중략) 만일 의심스러워 믿기지 않는다면 직접 의논한 뒤에 다시 당신에 국왕에게 품의(稟議)케 하고 또 처자(妻子)를 볼모로 들이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중략)

적장 청정(淸正)의 글은 다음과 같다.
【“지난 7월 23일, 회령부에서 두 왕자와 관원들을 체포하여 지금은 안변부(安邊府)에 체류하고 있습니다. (후략)

태백산사고본/영인본/21책 557면/분류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왕실-종친(宗親)



위 기사의 세 편지를 종합해보면 간단히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1. 왕자와 몇몇 관원들은 분명히 일본군에게 잡혔다.
2. 일본군에게 잡힌 이들은 일본군의 요구에 의해 선조에게 보내는 편지(항복 요구는 아님)를 썼다.
3. 일본군이 왕자와 대신들의 편지를 조선 조정에 보낸 것은 자신들의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 항복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3번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청정의 입장에서 임해군의 처자를 잡았다는 것을 알리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포로로 잡은 왕자 뿐 아니라 그 처자식까지 정중하게 대하며 보호한다는 것은 자신의 자비심과 관대함을 자랑할 기회면 기회지 절대 숨길 일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실록에 실린 위의 세 편지 중 어느 한 통도 임해군의 처자식에 대해서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잡힐래야 잡힐 수가 있어야 말이지.

혹시 음모론 좋아하시는 분들은 "왕족이 잡혔다고 하면 망신이니까" 실록에서 지운 거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정신으로 조선이 실록을 편찬했다면 그 많은 왕들과 왕자들의 깽판은 왜 실록에 남아있을까요? 민간의 여자를 약탈하고 백성들의 재산을 갈취하며 부왕에게 거역한 일들보다 적에게 세자도 대군도 아닌 후궁 소생의 왕자가 거느린 자식들이 왜군에게 잡혔다는 게 더 치욕적인 일이라서 그걸 지운 걸까요?
"왕께서 이러이러한 일은 적지 말라고 하셨는데 적었다고 화를 내셨다고 적는다고 적었다고 뭐라 하셨다"식의 기록이야 웃어버린다 치더라도, 하다못해 정조대왕조차 자기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공식 기록을 없애지 못했지요. 이미 여러 군데서 지적이 나온 것으로 알지만 조선왕조실록이 "전부"는 아닙니다. 병자호란 당시 청 태종의 항복 권고문처럼 너무도 치욕스러워 도저히 적지 못한 것도 있지만, 적어도 적은 것 안에서 거짓으로 알려진 사실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음모론으로 넘겨버릴 대상이 아니라는 이야기죠. 적어도 통치행위의 기록이라는 면에서 대한민국은 조선과 경쟁이 안 될 겁니다.

그럼 눈을 반대편으로 넘겨봅시다. 일본 기록이 조선 왕자/공주 납치설의 기원이라고요? 그런데 그 기록이 어디 거죠?

1. 대마도 우나쓰라 마을의 “이연왕희()”묘비
2. 후쿠오카 묘안사의 목상에 새겨진 기록

달랑 묘비, 목상 각 하나뿐입니다. 아무 기록도 근거도 없습니다. 하다못해, 임해군을 사로잡은 장본인인 청정 본인에 대한 기록에서도 임해군의 아들딸들을 붙잡았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커다란 전공인데 왜 뺐을까요? 실록에 기재된 청정의 편지를 다시 보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직접 의논한 뒤에 다시 당신에 국왕에게 품의(稟議)케 하고 또 처자(妻子)를 볼모로 들이겠다."

나중에 왕자들의 처자를 다시 볼모로 잡겠다고 합니다. 즉, 아직까지는 못 잡은 겁니다. 재론의 여지가 없지요. 일본군에 포로로 잡혀 돌아오지 못한 조선 왕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결론 : 역사스페셜은 찌라시다.

by 슈타인호프 | 2009/08/03 14:21 | 한국근대(~1910) | 트랙백 | 덧글(27)
트랙백 주소 : http://nestofpnix.egloos.com/tb/420291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8/03 14:25
저도 역사 스페셜 해당 내용을 보고 매우 흥미롭게 여겼지요. 하지만 방송사의 엉터리 결론이었나요.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럼 그렇지 싶기도 하고. 미묘한 기분이네요.
Commented by Allenait at 2009/08/03 14:39
..역사스페셜에서도 저런 찌라시 짓거리를 할 줄은 몰랐군요. 진짜 실록에 없다 해도 가등청정 기록 조금만 들춰보면 나오는 건데 말이죠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8/03 14:42
1. 임란 이후에 상당히 많은 포로 송환 협상-사명당의 냉장고 쇼의 전설이 나온-을 했고 당시 기준으로 "잡스런 상놈"도 수두룩하게 돌아왔(지만 노비가 되거나 살해되고)는데 대단한 성과라고 할수 있는 왕실의 자손이 돌아오지 못한건 상식적으로 어렵습니다.

2. 더군다나 왕실 자손이 생포되었다면 덕천막부와 조선조정의 외교 재개 협상에서 왕릉 도굴범 송환보다 더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수 있음에도, 양측이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당시 도굴범이 아닌 잡범"으로 사기를 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생포된 왕자를 보내는게 더 공적이라면 공적인데요.

3. 방송에서는 생포된 왕자가 "승려"가 되었고 임해군이 정치적인 이유로 처형되었기에 덮어졌다는 설을 냅니다. 그러나

1) 임해군의 왕자가 생포되었다는 시기와 임해군 처형과는 시간이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동일 논리라면 임해군 본인이 돌아오기도 어렵습니다.

2) 일본 장수들의 화려한 군공-이를테면 수만의 명군의 목을 짤라온 울산 전투같은-뻥에도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3) 광해군이 잘 살다 죽은 것도 아니고 인조 반정으로 폐위된 이상 인조측에서 얼마든지 찾아올수있었습니다. 아니 찾지 않더라도 "사실은 임해군의 자식이 있었는데 광해군이 버려서 일본에서 죽었다"는 식의 흑색선전도 가능했습니다.-그거보다 더 한 흑색선전도 있었는데요. 그러나 아무런 언급이 없었습니다.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8/03 14:45
4. 결론적으로 보면 아마도 양반 가문의 어느 인물이 "이"씨라는 이유때문에 일본에서 과장되게 포장했거나 -이를테면 조선왕의 사위 송상현류의 기록- 아니면 포로된 본인이 살기 위해서 그런 행세를 했을수도 있습니다. (듣보잡 어부가 "남조선에 가면 특별대우 해줄거"라는 이유로 김일성의 친척 행세를 하다 걸리는 경우는 요새도 있습니다.) 천황이나 쇼군 앞에서 그런 사기치면 인수분해되기 쉽지만 작은 지역에서는 그정도는 가능할겁니다.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8/03 14:46
ps: 역스에서 찌라시짓 많이 합니다. 소정방이 사실은 신라에서 죽었고 그걸 당에서 숨기려고 했고 그런 수치때문에 소정방의 무덤이 "중국에" 없고 벼슬도 낮았다는 걸 버젓히 방송했는데요. 전자의 증거는 "당군이 죽었다는 전설의 산"이 전부이고 실제로 소정방의 행록이나 무덤은 중국에 엄연히 있습니다. --;;
Commented by 한뫼 at 2009/08/03 14:47
공중파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군요.
"부루투스, 아니 KBS 너도냐?"
Commented by 아브공군 at 2009/08/03 14:50
(역스) 믿을뻔 했다가 OTL
Commented by 페리 at 2009/08/03 15:20
ㄷㄷㄷ 요즘 티비는 믿을게 못된다능...=ㅅ=;
Commented by 야스페르츠 at 2009/08/03 15:22
역스에서 김일제 떡밥을 설파한 것만으로도 이미 찌라시성은 확정적이지요. ㅜㅠ
Commented by 어릿광대 at 2009/08/03 15:43
역시 떡밥이었다는건가요 OTL;;
Commented by 을파소 at 2009/08/03 15:46
혹시 했더니 역시 역스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군요.

이거 하고 바로 다음주에 김일제 떡밥 또 방송했어요.ㅡㅡ;
Commented by dunkbear at 2009/08/03 15:49
역스는 이미 환단고기도 다뤘는데요... 어떻게 다뤘는지 몰라도
그걸 다뤘다는 그 자체부터 이미 떡밥 찌라시 확정이지만... ㅡ.ㅡ;;;
Commented by highseek at 2009/08/03 19:45
환단고기를 다루는 편은 본 적이 있습니다.

내용은.. 환단고기는 위서 논쟁에 휘말려있고, 직접 환단고기의 내용 중 몇개를(가림토라든지 중국의 무슨 유적이라든지) 추적해봤더니 별 증거가 없더라 라는 내용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Commented by dunkbear at 2009/08/03 19:55
오, 그랬군요. 근데 왜 갑자기 이상한 길(?)로 빠졌는지? ㅡ.ㅡ;;;
Commented by highseek at 2009/08/03 21:40
...글쎄요. 진행자 바뀐 이후로 본적이 없어서..;; 저 환단고기 편을 진행한 건 유인촌씨였죠 아마.
Commented by Leia-Heron at 2009/08/03 15:56
그래도 재미는 있었으니....(중얼)
Commented by Alias at 2009/08/03 17:06
사이언스 TV도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쩝...
Commented by 지나가는사람 at 2009/08/03 19:34
떡밥은 떡밥일뿐, 오해하지 말자!!!!(응?)
Commented by 아롱쿠스 at 2009/08/03 20:18
그거 막판에 잠깐 보고 '솔깃'했었는데, 결국 거짓이었군요.

KBS 역사 프로그램이 요즘 왜 이러나~
Commented by asianote at 2009/08/03 21:35
낚이는 넘만 바보가 되는 건가?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03 21:50
Esperos//요새는 역사스페셜을 10년째 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Allenait//그러게 말입니다.

이준님//
1. 그러게요. 얼마나 큰 성과입니까.
2. 맞습니다.
3. 1) 맞습니다. 그 전에 돌아오게 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죠.
2) 그런게 없으면 말이 안 되죠.
3) 동감입니다.
4. 규슈 구석 촌동네 따위에서야....
ps: 원균재평가론도 그런 류의 프로그램에서 처음 접했죠. "역사 속의 라이벌" 지금도 치가 떨립니다.

한뫼//벌써 15년 전부터입니다-_-

아브공군//낚이실 뻔 했군요.

페리//역시 기본은 책입니다.

야스페르츠//십수 년 전부터 원균재평가 떡밥 뿌려대기 시작한 걸 생각하면....

어릿광대//조그마한 실마리를 가지고 완전 개낚시질을...

을파소//뭐 그냥 신경 끄렵니다.

dunkbear//이목을 끌 것 같은 주제는 다 다루는 것 같아요.

highseek//전 전혀.

dunkbear//상업적인 거죠 뭐.

Leia-Heron//영화라면 몰라도 다큐멘터리로는 진실성이 떨어지죠.

Alias//뭐 그냥 한숨이나;;;

지나가는사람//떡밥은 떡밥!!!

아롱쿠스//잘 걸러 보시면 될 겁니다.

asianote//그런 셈이죠.
Commented by 암호 at 2009/08/03 22:17
뭐, 철쇄부터가 웃기는 것이었으니까요. 이순신을 매장하려고 온갖 발악하던 이균을 국영방송이 오버액션이라도 해서 제대로 까고 또 깐다면, 이 나라는 민주화된 국가라고 불려도 손색은 없겠지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03 23:26
그날이 올 수 있을까요?
Commented at 2009/08/04 02:5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04 09:55
음 저도 맹꽁이서당 전편을 본 건 아니라 잘 모르겠군요--;;
Commented by 임해군 at 2013/10/21 02:58
임해군은 역사 속의 희생양일 듯 하네요. 선조실록이나, 선조수정실록, 광해군일기가 어떤 지경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네요. 선조는 피난길에 역사의 기록들을 모두 소각해 버리고, 광종이 거의 찬탈하듯 왕위 등극을 해서 국상기간에 임해군을 유배보내죠. 선유배후국문... 아무나 막 다 잡아들이고 거짓말들을 이리저리 꿰어서 시나리오를 쓰죠. 선조실록 작업에 사초를 지들끼리 마구 위조해서 올려놓고 임해군에 대한 거짓보고들을 진실인냥 열거하는 거죠. 선조가 승하하기전 유고를 받든 신하들은 모두 죽어나가죠. 선조의 유고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마 임해군을 왕으로 세운 후 훗날 영창대군으로 종사를 바로 세우라는 내용이었을 거라고 추측되네요. 왜 인조반정이후 임해군의 역모사건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지죠. 없는 역모사건을 만들어 임해군의 목숨을 빼앗은 그들에게는 익사공신으로 훈하죠. 있지도 않은 역모와 거짓 공훈을 인정하고 보상을 나눠줘야 할 정도로 다급했던 상황이 광해군에게 있었단 거죠. 붕당체계에서 제대로된 조력자를 찾지 못했던 임해군..., 정말 못나서 사람들이 주위에 없었을까요? 아마 그것은 당시 선조의 사랑을 받던 인빈김씨의 영향력과 광해군 주위의 사람들이 임해군을 견제했기 때문일 것 같네요. 임진왜란이 발생하고 임해군과 처자가 붙잡혀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여지네요. 임해군을 견제하려는 입장에서 임해군이 왜에게 잡혀간다면 세자책봉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세력들의 모략이었을 가능성도 크고요. 물론 임해군은 여러차례 행조에 서편을 보내지만 진본은 사라지고 왜장을 속이기 위해 작성된 서편만이 도착하는 거죠. 서편을 전달하거나 보고받는 사람들이 빼돌린 거죠. 제대로 된 실록이 쓰여졌다면 물론 원자에 대한 글귀가 어디엔가 있어야 겠지만 선조(종)실록이나 수정본에서도 보여지지 않죠. 더 많은 인물탐구와 붕당권력지도가 있다면야 모르겠지만...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3/10/21 09:21
별로 그렇게 생각은 안 되는군요.

:         :

: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메뉴릿

최근 등록된 덧글
뒷북이지만 질문드립니다..
by 지나가다 at 07/26
3000킬로미터라.... ..
by 한뫼 at 07/10
답답하네요..이런 글을..
by 무지개다리 at 07/10
아니 기사를 우라까이해..
by 아즈라엘 at 06/15
제목은 태평양전쟁 이..
by 빛의화살 at 06/14
??: "우매한 잉간들" "조..
by LVP at 04/30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
by 꾀죄죄한 하프물범 at 04/27
무슨 종류의 책인가요? 제..
by 슈타인호프 at 04/25
호프님 글주제에 맞지 않..
by 빛의화살 at 04/25
요즘 알았는데, 종종 ..
by 슈타인호프 at 04/25

최근 등록된 트랙백
2018년까지는 여전히 진..
by 슈타인호프의 함께 꿈꾸..
진짜 마지막 빨치산이 ..
by 슈타인호프의 함께 꿈꾸..
굿모닝 티처, 리디북..
by 슈타인호프의 함께 꿈꾸..

이전블로그
2020년 07월
2020년 06월
2020년 04월
2020년 03월
2020년 01월
2019년 12월
2019년 11월
2019년 10월
2019년 09월
2019년 08월
2019년 07월
2019년 06월
2019년 05월
2019년 04월
2019년 03월
2019년 02월
2019년 01월
2018년 12월
2018년 11월
2018년 10월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