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으로 족한 것을 비난하지 말자.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언, 15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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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에서 살아돌아오다 - 종전 10년만의 귀환
태평양전쟁이 막을 내린지 거의 10년이 지난 1955년 7월 5일 오후 6시 20분, 한 남자가 고국으로 돌아오는 배의 트랩을 내려섰습니다. 그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에 고국을 떠났고, 패전과 함께 고립되어 남태평양의 머나먼 섬에서 혼자 살다가 이제 13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참이었죠. 홀로 돌아온 이 남자는 일본군 펠렐류 섬 수비대 최후의 일원이었습니다.





팔라우 군도의 위치와 군도 내 펠렐류 섬의 위치.
(사진출처 : http://home.sprynet.com/~kier/palaumap.jpg)


필리핀 동쪽에 있는 팔라우(Palau) 제도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크게 유명하지는 않죠. 물론 관광코스도 있고 하지만,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아! 나 알아!"하는 필리핀이나 사이판, 괌(둘 다 매리아나 제도) 등지에 비하면 인지도가 낮은 편입니다. 여기는 본래는 에스파냐 식민지였으나 미서전쟁에서 패한 후 독일에 팔아버렸죠.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독일이 그 권리를 상실하면서 국제연합에 의해 이번에는 일본의 위임통치령이 된 곳이었습니다.

일본은 이곳을 점령한 초기에는 점령지로서 군정을 실시했지만, 정식으로 이곳을 위임통치하게 되자 1922년에 팔라우 제도의 코로르(Koror)섬에 남양청을 설치하여 일본령 태평양 제도의 행정 중심으로 삼았고, 국제연맹 탈퇴 후에는 군사기지를 설치하여 남양진출의 도약대로 삼았죠. 실제 개전 후 팔라우 본도 및 펠렐류의 항공기지와 코로르의 항만은 일본군이 남양을 정복하는 주요 전진거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의 패색이 점점 짙어졌고, 이에 대본영은 방위 중심의 절대국방권을 설정합니다. 그리고 그 주요거점 중 하나가 바로 팔라우 제도였어요. 팔라우에는 주요한 해공군 기지가 있을 뿐더러 매리아나 제도의 남쪽이자 필리핀의 동쪽에 위치한 중계지로서 중요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매리애나 제도를 함락한 미군도 측면 방어 및 필리핀 공략의 전진기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다음 과녁을 팔라우로 잡았죠.
하지만 미군은 팔라우 전체를 점령하려던 애초의 계획은 변경했습니다. 1944년 6월의 매리아나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항모기동전력이 괴멸되면서 굳이 모든 일본군의 거점을 차지할 필요가 없어졌거든요. 그래서 팔라우 제도의 여러 섬들 중 펠렐류와 앙가우르(Angaur), 두 개의 섬만 공략하기로 합니다. 펠렐류에는 1200m짜리 활주로 2개가 있었고, 앙가우르에도 그보다는 작아도 비행장이 있었거든요.

미군의 팔라우 공격을 대비한 일본군의 방어준비도 계속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일본군 수비대의 규모는 도조의 명령으로 부임한 역전의 노장, 이노우에 사다에(井上貞衛) 중장 지휘하의 일본 육군 14사단과 여러 잡다한 독립부대들, 그리고 해군의 일부 육상병력을 합쳐 총 3만여 명에 달했지요. 하지만 군도라는 특성상 이 병력을 모두 결집시킬 수는 없었고, 전장이 된 펠렐류와 앙가우르에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수비대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중 팔라우에 있던 병력은 14사단 2연대를 중핵으로 해서 육해군의 잡다한 독립부대 및 지원부대 약 1만 1천(앙가우르는 1400)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조선 및 오키나와 출신의 노동자 3천명 가량이 여기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실제 전력은 그 이하였습니다. 해공군의 화력을 감안하면 펠렐류에서 일본군과 미군과의 전력비는 1/6 이하였죠.

압도적으로 우세한 전력의 미 해병 1사단이 펠렐류에 상륙한 것은 1944년 9월 15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군이 이오지마나 오키나와에서 보인 것 같은 "발전된" 방어전술을 처음 선보인 곳이 바로 이 펠렐류였으므로 미군은 낯선 적의 대응에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됩니다.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무력함이 입증된 해안선 방어와 반자이 돌격을 지양하고, 철저하게 은폐/엄폐된 중화기진지 및 거미줄같은 터널망과 동굴진지를 이용하여 구축된 종심진지로 미군의 피를 최대한 짜내는 전술이 처음 쓰인 곳이 바로 여기였거든요. 처음 보는 적에게 깨지기 쉬운 미국의 징크스-_-;;가 또 발휘된 셈입니다.

이러한 방어계획을 수립한 팔라우 방위사령관이자 14사단장 이노우에 중장은 미군이 내습했을 때 펠렐류가 아니라 팔라우 본도(가장 큰 섬)에서 사단 지휘를 맡고 있었지만, 팔라우 수비 책임을 맡은 사단 2연대장 나카가와 쿠니오(中川州男) 대좌(大佐, 대령)는 사단장의 명령에 따른 방어전술을 철저하게 숙지하고 부하들을 그렇게 준비시키고 있었습니다. 목적은 당연히 "가능한 오래 버티는 것"이었고요.

미군은 이제까지 여러 섬을 공략하면서 얻은 경험으로, 애초에 3일이면 펠렐류가 함락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자도 달랑 6명밖에 안 불렀....는데, 예상치 못한 일본군의 전술에 애초의 예상을 24배나 초과한 기간동안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수비대장 나카가와 대좌는 결국 연대기를 불태운 다음 자살했고, 그후로도 3일이 지나 마지막 고지가 함락된 것은 무려 11월 27일의 일이었어요. 두 달을 조금 넘는 전투에서 일본군 수비대는 거의 전멸, 10,695명의 전사자와 202명의 포로를 냈으며 미군은 육군(81사단)과 해병(1사단)을 합쳐 1,794명의 전사자와 8,010명의 부상자를 냈습니다. 그 결과 펠렐류 전투는 태평양전쟁에서 투입병력 대비 사상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전투가 되었으며, 이로써 펠렐류 섬에서의 조직적인 전투는 끝났습니다.

그. 러. 나.


늘 그랬듯 여기서도 패잔병은 남아있었죠. 정글 속과 산속을 숨어다니는 패잔병이 상당수였고, 이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 숨어다니지 않으면 발견되어 사살되거나 투항하거나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지막 일본군이 투항한 것은 1947년 4월 22일로, 육군 2연대의 중위 한 명이 거느리고 있던 자기 부하 25명과 해군 45경비대(警備隊, 일본 해군에서 점령지의 방위·치안 임무를 위해서 편성된 전문 육전대) 소속의 수병 8명을 거느리고 항복한 것이었습니다. 종전 후 2년이 지나도록 이들이 투항하지 않은 것은 전쟁이 끝났다는 미군의 선전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결국 일본에서 날아온 제독 한 사람(누군지 모르겠습니다)이 이미 전쟁은 끝났다고 설득한 후에야 비로소 항복했습니다. 이들이 2차 세계대전에서 정식으로 항복한 최후의 장병들이었죠.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이 34명이 펠렐류 수비대 최후의 생존자가 아니었던 겁니다.

이들 잔여병력이 투항한 뒤에도 펠렐류의 산속에는 오매불망 일본군함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원래 세 사람이 함께 움직였으나 "다께노"라는 이름의 한 사람은 먹을것을 찾으러 인가로 내려갔다가 미군에 사살당했고, 또 한 사람은 역시 마을에 갔다가 미군에 잡혀갔습니다. 이제 한 사람만 남게 되었죠. 미군에게 잡히면 코와 귀가 잘리고 혀를 뽑혀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므로 미군에게 투항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마지막 한 사람은 미군부대의 바리케이드용 포대(즉 모래자루)를 훔쳐서는 옷을 만들어 입었고, 깡통으로 만든 바늘로 모래주머니를 꿰메서는 요와 이불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숲에서 벌레를 잡아먹다가 배탈이 몇번 난 뒤로는 용기를 내서 밤이면 원주민 마을의 밭을 뒤져 "다베오깡"이라는 무 비슷하게 생겼다는 작물을 훔쳐다 먹고, 생식만 해서 배탈이 자주 나자 미군 병사들이 흘린 성냥을 주워다가 불씨를 만들어서는 11년간 그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사용했다고 해요. 불을 얻은 뒤로는 주로 달팽이를 구워먹었는데, 아마 수십 가마니는 족히 먹었을 거라나요. 물은 미군 깡통에다 바닷물을 끓여서(증류해서?) 먹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줄도 모르는 이 최후의 생존자 양반은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았습니다. 일본 군함이 와야 자기를 고향으로 데려다 줄 텐데, 섬 앞 바다에는 늘 미국 군함만 오갔거든요. 오가는 사람이 없는 밤이면 가끔 바닷가에 나가 펑펑 울면서 고향을 그렸지만 그래도 배는 오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무거운 발을 끌고 토굴로 돌아가면서도 그는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잃지 않았어요. 그리운 고향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갓 낳은 어린 아들이 있었거든요. 유리병에 나뭇가지를 30개 꽂을 때마다 한 달이 지나가는 식으로 날짜를 세면서, 언젠가 고향에 돌아갈 꿈만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뜻밖에도 빨리 왔습니다. 자르지 못한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가고, 세수라고는 한 일이 없는 얼굴에 눈만 툭 튀어나오고 누더기를 걸친 그가 밭에서 작물을 훔치는 것을 본 원주민들이 뭔가 괴상한 동물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잡으러 왔거든요. 집단을 이룬 원주민들이 토굴을 습격하자 그는 황급히 도망쳤지만 결국 1955년 5월 7일에 원주민들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일본 식민지였던 이 섬의 역사 때문에 일본어를 구사하는 원주민들이 많았으므로 "나는 동물이 아니고 사람이다. 11년 동안이나 숨어살았는데 제발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도와달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원주민들은 5월 27일에 그를 섬에 주둔한 미군에게 인도했어요. 미군들은 당연하지만 그의 귀와 코를 자르거나 죽이지 않았고, 친절하게 대우하여 고향으로 보내주었습니다. "빠다오" 섬에서 8일간 머물면서 귀국 절차를 밟고, 괌을 거쳐 요코하마로 가게 해준 미군 당국 덕분에 마침내 그는 만 13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겁니다. 고국의 배를 타고 부산항 부두에 내려서는 그 기분이 어땠을까요.

그렇습니다. 부산항입니다.




남태평양에서 돌아왔으니 당연히 일본군이라고 생각하신 분! 낚이신 겁니다 ㅋㅋㅋㅋ

조병기(趙炳基․당시 39세)씨는 본래 충북 단양군 가곡면 덕천리에 살던 사람으로, 1942년 음력 6월에 징용에 뽑혀나가 요코스카의 군수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양으로 보낼 노동자가 필요해진 일본군 당국이 높은 급여를 미끼로 공장 내에서 자원자를 모집했고, 조병기 씨도 "남양에는 황금이 노다지"라는 말에 속아 자원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250명으로 이루어진 "기보따이(따이는 대(隊)가 분명한데, "기보"가 뭔지 모르겠네요 - 많은 분들의 조언에 따름면 "희망希望"의 일본 발음일 거라고 합니다. 확인해보니 맞는 듯^^)의 일원이 되어 남태평양, 괌 주변의 "주위 30리" 정도 되는 "베레레우" 섬으로 보내졌습니다. 이게 미군의 진공이 시작되기 약 4개월 전이라고 해요.

* 조병기 씨가 갔던 섬은 제가 가진 <광복 20년>에서는 "베레레우", 일부 인터넷 문서에서는 "메레레우"라고 쓰고 있으며 "페레류"라고 쓴 문서가 딱 하나 있었습니다. 자판의 위치로 보아 "메"는 "베"의 오타로 보이며, 웹상에서 "메"와 "베" 쪽이 "페"보다 훨씬 많은 것은 인터넷의 특징인 펌과 무한복제의 힘이라고 보이네요. 전엔 몰랐는데, 포스팅 작성하면서 보니 조병기 씨의 귀환이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라는 제목으로 "오늘의 역사적 사건"류에 많이 올라 있더라고요. 당연히 무한 펌의 대상-_-;
그런데 그 기사 내용들에도 혼란의 여지가 좀 많습니다. 위에서도 썼지만 당시의 보도와 이를 인용한 포스트들은 "괌 주변", "괌 군도(群島)"같은 표현들을 쓰고 있는데 위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펠렐류는 괌에서 좀 많이 멀어요. 게다가 이 기사들은 44년 7월에 미군이 "베레레우"에 상륙했다고 쓰고 있는데, 이미 전술했다시피 펠렐류 상륙은 9월이었습니다. 수비대와 노무자의 수도 다르죠. 보도는 "베레레우"에 2만의 수비대와 250명의 노무자가 있었다고 했는데 실제 펠렐류에는 8천명이 안 되는 일본군과 3천명의 조선인 노무자가 있었거든요. 이 두 가지 점에서 볼때 조병기씨가 갔던 섬이 펠렐류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실제 44년 7월에 상륙전이 벌어지고 수비대가 2만명인 섬이 있었으니까요. 바로 괌입니다.

그럼 조병기씨는 괌으로 갔을까요? 천만에요. 모든 기사가 "괌 주변"이라고 해서 괌으로 가지는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고, 귀국할 때도 괌을 "거쳐서" 귀국했습니다. 따라서 조병기 씨가 괌 섬에서 숨어살았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다음, "베레레우"의 수비대 규모와 개전 날짜에 대한 조병기씨의 진술을 말 그대로 100% 인정할 근거도 필요도 없습니다. 그는 일개 노무자에 불과했고 섬 전체의 병력 수 따위를 풍문 이상으로 알 수 있는 수단이 없었으니까요. 노무자면 노무자 숫자는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하실 지 모르지만, 자유행동도 허용되지 않고 작업구역에만 머물러야 했을 노무자가 전체 인원수 따위를 알 수 있을까요. 보도에서 나온 250명은 그저 조병기 씨 자신이 속한 작업대의 인원수였을 뿐일 공산이 큽니다. 2만이라는 인원에 얽매일 필요가 없죠.
날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병기 씨는 미군의 진공이 7월이라고 했는데, 이게 음력일 공산이 큽니다. 펠렐류에 미군이 상륙한 1944년 9월 15일은 음력으로 7월 28일이거든요. 조병기 씨가 몸에 밴 음력으로 날짜를 계산했다면 "미군이 7월에 쳐들어왔다"고 적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따라서 조병기 씨가 갔던 섬은 펠렐류가 분명하며, 본 포스팅은 이런 판단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팔라우 제도의 펠렐류를 "괌 제도"내지 "괌 근처"운운했나 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역시 포스팅 첫머리에서 이야기한 인지도 문제일 겁니다. 지금도 팔라우, 펠렐류 하면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데 50년대인 당시에는 더 그랬겠죠. 팔라우는 몰라도 괌은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편의상 괌 근처라고 부른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기자들도 몰랐는지도 모르지요.

또한 고도(孤島)라는 표현도 많이 보이는데,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펠렐류는 바로 옆에 다른 섬들이 많습니다. 고립된 섬이 아니에요.


펠렐류에서 비행장 공사에 동원된 조병기 씨 일행은 미군의 사전폭격으로도 많은 희생자를 냈고, 본격적인 진공이 시작되자 3명만 남기고 이래저래 다 죽고 말았습니다. 미군의 잔학행위에 대한 일본군의 악선전 때문에 투항도 못 하고 있다가 강원도 영월 출신인 다께노(창씨명) 씨가 미군에게 사살당하고, 제천군 명길리 출신 이순기 씨는 잡혀갔던 거죠. 이분은 무사히 귀국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습니다.

혼자 남은 조병기 씨가 원주민들에게 잡힌 것도 한국인 특유의 입맛 탓이었습니다. 매운 게 너무 먹고 싶었던 조병기 씨가 원주민 마을을 뒤지다가 고추 비슷한 농작물을 찾았고, 자꾸 고추밭(...)이 털리는 것을 수상하게 생각한 원주민들이 밭을 지키다가 그의 모습을 보고 뒤를 쫓았던 거죠. 원주민들은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를 미군에 인도했고, 미군도 그가 강제로 끌려온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친절히 대해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6월 3일 주일대표부의 연락으로 비로소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장에 서울신문 기자 한 사람이 조병기 씨의 고향을 찾아갔고 수소문 끝에 가족들을 찾아내긴 했지만 현실은 비참했죠. 가난한 소작농이던 그가 징용으로 끌려가자 젊은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품팔이로 3년을 겨우겨우 연명하다가 45년 봄에 남편의 전사통지를 받고 개가했고, 아들은 큰아버지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살던 초가삼간도 주인이 바뀌어 다른 사람의 문패가 달려 있었죠. 하지만 결국 그는 살아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한편 조병기 씨와 일본 정부 사이에도 해결할 문제는 있었죠. 일본 정부는 그에게 밀린 징용기간의 임금으로 일본 돈 5만 599엔을 지불하고, 그동안의 거친 식사로 생긴 기생충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구충제를 처방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조치 없이 한국으로 보냈죠-_-;;

* 5만 엔이 넘는 돈을 준 걸 보면 아마 종전 이후 10년분의 임금도 합산해 준 것으로 보입니다. 징용자 급료를 얼마로 쳐 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포로수용소 담당 군속의 1달 임금이 50엔이었거든요.
그나마 이 양반이 한일협정 체결 전에 구조가 됐으니 정산해 줬지, 체결 후에 발견됐으면 "한국정부와 일괄처분했으니 그쪽에 가서 받아라. 우린 이제 당신 임금을 보상해줄 의무 없다"고 배쨌다는데 500원.


조병기 씨는 주일대표부의 주선에 따라 7월 3일에 고베를 출항하는 대한해운공사 소속의 "데이모스"호를 타고 귀국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준 돈으로 양복 한벌과 모자, 구두를 사고 가는 길에 먹을 도시락 2개와 주전자 하나, 셔츠 여섯벌에 가족들을 위한 선물 약간을 산 것이 짐의 전부였지요.
부산항에서 트랩을 내려서는 그의 앞에는 가족들은 없고 십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 뿐이었습니다. 한국어를 거의 잊어버려 누구를 가장 먼저 만나고 싶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내와 아들이 보고 싶다"고 더듬거리는 일본어로 대답하기는 했지만 돌아온 고국에서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는 의욕에 차 있기도 했습니다. 조병기 씨는 이틀 뒤인 7월 7일 오후 버스편으로 단양에 귀향해서야 친지들과 만날 수 있었고, 단양군수 및 경찰서장과 여러 유지들은 살아돌아온 그를 위해 환영연을 열어 주었습니다.
고향집에 돌아간 조병기 씨는 아들 보형군(15세)과 아내 신금순(37세)씨와 해후하여 일본에서 준비해 온 선물을 주면서 새출발을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부인도 개가한지 10년이라, 이미 그쪽에서 애가 한 둘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계실까요? 조병기씨 본인은 살아계셔도 93세니 아마 돌아가셨을 것 같지만, 아들인 조보형 씨는 69세니 살아계실 것도 같습니다. 그분은 아버지가 해주었던 펠렐류 섬 이야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려나요...^^


참고자료 :

해방 20년사, 김종완, 희망출판사, 1965
http://www.navinside.com/bbs/view.php?id=forum_bluenavi&no=8409
http://blog.empas.com/kgh2516/read.html?a=31287100&c=2187547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Angaur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Peleliu
http://en.wikipedia.org/wiki/Imperial_Japanese_Navy_Land_Forces
http://en.wikipedia.org/wiki/Sadae_Inoue
http://ja.wikipedia.org/wiki/%E3%83%9A%E3%83%AA%E3%83%AA%E3%83%A5%E3%83%BC%E3%81%AE%E6%88%A6%E3%81%84#.E6.97.A5.E6.9C.AC.E8.BB.8D_2
http://ja.wikipedia.org/wiki/%E6%B5%B7%E8%BB%8D%E9%99%B8%E6%88%A6%E9%9A%8A

by 슈타인호프 | 2009/07/30 15:05 | 한국현대(~20XX) | 트랙백 | 핑백(2) | 덧글(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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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람이나.뭐, 기다리다 보면 모두 지쳐 그만 두겠지.2. 남태평양에서 살아돌아오다 - 종전 10년만의 귀환슈타인 씨의 포스팅 및 댓글에 대한 필자의 소견 ... more

Linked at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는 둥지.. at 2009/12/30 11:32

... 국 결말이 어떻게 났을지 걱정이 되는군요. 사실 이거 말고도 논란거리가 꽤 있었는데 댓글 수라는 기준으로 꼽다 보니...F-- 7월 : 남태평양에서 살아돌아오다 - 종전 10년만의 귀환 이제까지 뽑힌 포스팅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포스팅입니다. 늘 이런 애들이 블로그를 채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이 포스팅이 ... more

Commented by 비로그인 at 2009/07/31 15:39

그냥 일빠는 여기서 난리치지말고 당신 블로그에서 자위질이나 하세요.
Commented by 비로그인 at 2009/07/31 15:40
일제를 가리켜 "대일본제국"이라 하시는 분이라면 뭐.. 할말이 없는거죠 OTL
Commented by 제발 at 2009/08/01 00:16
이런 좋은 글에 찌꺼기 흘리지 말길..
Commented by 소년 아 at 2009/07/30 18:28
어찌 생각하면 황당한 일이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0 18:39
Ha-1//사실 모든 역사는 옛날이야기죠.

은현//서글픈 역사의 한 단면이죠. 남의 전쟁에끌려가 겨우 살아왔으니.

더카니지//저도 아직 모르는 거 많습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니 다행일 뿐^^;; 이런 "~~XX년"류의 책은 의외로 꽤 많은 편이죠.

dunkbear//잡혀서 다행입니다, 정말. 저 후에도 20년을 더 버틴 양반도 있으니.

아브공군//기막힌 비극 맞지요. 그나마 마무리도 희극인지 비극이지 좀 헷갈....

듀란달//그러게요.

월광토끼//부인만 참고 기다려 줬으면 진짜 해피엔딩인데 조금 아쉽죠. 하지만 워낙 힘들었으니 부인을 머랄 수도 없고...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이준님//
1. 오노다 소위는 정말...-_;;;;
2. 팔라우에서 전투가 벌어진 섬이 딱 2개 뿐이었으니, 펠렐류가 맞기는 한 것 같습니다.
3. 지도라는 걸 평생 본 적이 없을테니, "괌을 지나 가서" 괌 근처인 줄 안 거 아닐까요.
PS: 포로 감시원이면 그리 드라마틱하게 돌아오지도 못했으니. 게다가 군속은 징용과는 선발이 좀 달랐으니 시비거리 되기 싫어서도 조용히 있었어야 했겠죠.

rumic71//희망이라...

위장효과//전투원은 아니었지만 정말 죽을 고비를 넘기셨을 것 같습니다.

캐안습//타라와급 자체가 상륙함이다 보니 그렇겠지요.

미친과학자//"인천"은 참 양호한....

Nine One//그러게 말입니다.

Ladenijoa//70은 넘게 먹었겠네요.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니어//네, 그래도 살아돌아오셔서....

행인1//확실히 그 점은.

NePHiliM//에이 잘 익혀 먹으면 괜찮겠죠.

네비아찌//타피오카를 가타카나로 "タピオカ"라고 쓰네요. 일본어로도 타피오카...라고 읽는 것 같습니다. 뭐, 표준 표기야 어쨌든 다르게 발음할 수도 있고 다베오깡이 타피오카랑 비슷하기는 하니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JOSH//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노무대에 붙은 조직명이지 전투병은 아니니까요. 친척이시라...느낌이 새로우실 듯^^

루치까//저도 명쾌하진 않습니다.

라라//뭐든지 중간에 끼어드는 단계가 늘면 늘수록 받아내기 힘들어지는 법이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0 18:40
한뫼//사할린으로 가신 분들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소년 아//잘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Commented by 긁적 at 2009/07/30 18:44
재미있지만 슬픈 이야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0 18:48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0 18:47
나츠메//
1. 기사에 보도된 부인의 증언에 의하면 "자원하지 않았으며, <징용담당 면서기>에게 잡혀서 나갔다"고 하고 있습니다. 경찰관이 육체적 힘으로 끌어가지 않았다 해도 면서기로 대표되는 통치기구의 강제력이 징용의무를 부과하여 수행시킨 것은 사실이며, 이를 "끌려갔다"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는 서술입니다. 현대 한국에서도 "군대에 끌려간다"는 표현은 흔히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쓰는 사람들이 모두 병역 기피로 헌병에 끌려가서 입대하나요?

2. 법적 책임은 없으나 도의적 책임은 있는 채무자가 법적 책임의 부재를 내세워 도의적 책임을 회피할 경우 "배를 짼다"고 하는 것 역시 통상적으로 쓰이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at 2009/08/06 12:12
명답.
Commented by 정호찬 at 2009/07/30 18:50
후후후. "조선 및 오키나와 출신의 노동자 3천명 가량이" 나왔을 때부터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반전에 준비하고 있었음.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0 18:52
근데, 영어 위키에는 오키나와 노동자 이야기가 있는데 일본어 위키에는 조선인 노동자만 나오더군요. 차별논재잉 불거질까봐 뭉뚱그려버린 모양입니다.
Commented at 2009/07/30 19:1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피그말리온 at 2009/07/30 19:21
여러가지로 슬프네요.....
Commented by 소시민 at 2009/07/30 19:39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사신 분이군요...

여기는 본래는 에스파냐 식민지였으나 미서전쟁에서 패한 후 독일에 팔아버렸죠.

- 미국은 팔라우에는 별 관심이 없었나 보내요.
Commented by 대도서관 at 2009/07/30 19:49
흐미....신기한 이야기군요-_-;;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0 19:51
비밀글//뭐 하루이틀 일인가요 :)

피그말리온//그렇죠(...)

소시민//일단 필리핀을 차지했으니 그걸로 만족이었던게죠. 사실 팔라우는 1880년대부터 에스파냐와 독일이 영토분쟁중이어서 미국이 팔라우에 손을 댔다가는 독일과도 충돌해야 했습니다. 아마 그래서 손을 안 댔을수도 있어요. 에스파냐도 필리핀을 상실해서 팔라우 관리가 힘들어진 탓에 분쟁도 마무리할 겸 팔아버린 거고...

대도서관//파란만장한 이야기긴 합니다.
Commented by Allenait at 2009/07/30 20:25
아... 예전에 그런 식의 일본군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한국인도 있었군요. 애닯군요
Commented by 한뫼 at 2009/07/30 20:41
호프공//아니요. 전쟁 끝난줄 모르고 1990년대 까지 정글에서 버틴 사람 있습니다. 그사람 일본으로 갈 때 일본 극우들 장난 아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Commented by Karl at 2009/07/30 20:52
.....일단, 낚였습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7/30 21:00
그러고보니 왕년에 6백만불 사나이에서도 저런 '미귀환 일본병'이 나왔던 적 있습니다. "전쟁은 수십년 전에 끝났소!"라고 얘기해줘도, "전쟁이 끝났다면 여기는 일본 영토야!"
Commented by minz at 2009/07/30 21:04
.....이단, 낚였습니다.(...)
Commented by 계원필경Mk-2™ at 2009/07/30 21:34
아마 더 일찍 귀환 하셨더라면 또 다른 전쟁의 아픔을 겪으셔야 했을지 모르니 뭐 이 정도면 해피엔딩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0 21:48
Allenait//끝까지 발견되지 않고 정글 속에서 죽은 사람도 한둘이 아닐 거예요.

한뫼//뷁, 그런 사람이 있었단 말입니까;;

Karl//오오 죄송(...)

rumic71//자기가 차지했으니 일본 땅이라는 논리인가요;;;

minz//(쏜다)

계원필경Mk-2™//뭐 살아돌아온 것만 해도 해피엔딩이죠.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7/31 00:44
일본은 승리할때까지 전쟁을 끝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1 01:24
크어억! 이해해 버렸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0 21:53
"징용에 <잡혀갔다>"는 이야기는 본인이 아닌 부인의 증언이니 신뢰할 수 없고, 일개 면서기가 무슨 힘이 있어서 징용을 "잡아갈" 것이며 일본은 한일협정으로 법적 책임을 모두 대한민국 정부에 이양했으니 도의적 책임조차 느낄 필요가 없다고 한 어떤 분의 리플이 잠깐 눈을 뗀 사이 사라졌군요.

또한 "통속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썼다고 해서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이런 식의 글을 써도 되느냐"며 힐난하는 내용도 있었는데 싹 사라지고 보니 어딘지 모르게 묘한 기분이 드는군요.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제가 별나서일까요?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9/07/30 22:19
1. 일제시대, 하다 못해 7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면서기가 어떤 자리였는지를 모르는 모양. ( ' ㅆ')

2. 그 분께선 남에게 뭐라 하기 전에 스스로 주제파악좀 하셔야 될텐데 말입니다. ㄲㄲㄲ

3. 역사를 머릿 속에서만 재단할 뿐 몸으로 느껴보지 못한 사람의 한계. 책에 나와있는 것만이 역사가 아니건만...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0 23:14
1. 모르나 봅니다(웃음)

2. 했으면 지금 저러겠습니까.

3. 그 책이나 다 봤는지.
Commented by 원래그런놈 at 2009/07/30 21:58
아 이거 눈물이 갑자기.....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09/07/30 22:24
영화화!
Commented by 긁적 at 2009/07/30 22:56
후... -_-)y=o0
나츠메같은 인간은 걍 쌩까시는게 좋을 듯합니다.
리플도 막고, 트랙백도 막으세요.
혼자 '이겼다'고 지랄하던 말건간에 (...)

뭐 선택은 슈타인호프님의 것이지만,
제가 보기엔 이게 건강의 지름길입니다. -_-b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7/30 23:01
다시 보니까 왠 어처구니 없는 핑벡이 하나 걸렸네요. 나츠메 그 냥반 지치지도 않는지 원....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9/07/30 23:03
어익후, 역사밸리에 그 분이 친히 반박포스팅을 했다능.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도 적확성, 엄밀성 타령...-ㅅ-

대략 메이저 블로거인 호부후에 묻어가기(...) 전략인지도.

그런데 "슈타인호프님"은 알겠는데 "슈타인씨"는 누굴까요? ㄲㄲㄲ
Commented by asianote at 2009/07/30 23:04
호프님이라고 해야 하지요. 호프=희망. 저 호프교도입니다. (도주) 하늘이님께서는 호부후라 하시고 저는 호프님이라고 하니 호부후라는 중국스런 호칭은 피해야 할듯. (빠른 도주)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9/07/30 23:13
asianote 님/ 슈타인호프에서 호프는 hof이니만큼 희망과는 백만광년쯤 거리가 있는 바 차라리 생맥주 hof로 부르는 게 합당한 줄 사료되옵니다. 그러니 호부후를 생맥주집으로 모신 다음 생맥주교로 개종하시옵소서. ^^ ;;; (휘리릭~~)
Commented by highseek at 2009/07/30 23:05
어이쿠. 그분..

저분 논리대로면 대한민국 60만 사병은 모두 자원입대임.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9/07/30 23:07
그러게나 말입니다. ㄲㄲㄲ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9/07/30 23:06
비속어 타령하기 전에... 왜 사람들이 군대에 굳이 "끌려간다"라는 표현을 쓰는지 모르는 모양입니다.
"자기의 의사에 상관없이, 혹은 반해서 강제적으로 가야 하는" 성격 자체는 징용이나 징병이나 같은데 말이죠.
Commented by highseek at 2009/07/30 23:08
저분은 웬지 슈타인호프님의 개인블로그를 무슨 전문 역사서인 양 취급하시는 거 같아요.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9/07/30 23:17
정작 나츠메 본인은 반박 글(?)에서 슈타인씨 혹은 슈타인은... 이라고 써대는 걸 보면 토론 상대방에 대한 호칭에도 스스로가 주구장창 주장하는 "적확성과 엄밀성"을 지키지 못하고 있지 말입니다. 기본적 예의이건만... 본인이나 잘하지 말입니다. 아, 너무 지나친 바램이었으려나요?ㄲㄲㄲ
Commented by 늅이 at 2009/07/31 01:23
그야 그분은 후안무치하지 못한 분이니까요 ㄲㄲㄲ
Commented by highseek at 2009/07/31 02:29
...후안무치하지 못하다면 뻔뻔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안다는 말이 됩니다..(..)

후안무치 (厚顔無恥) - [명사]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이 없음.

그분께서 주장하시는 적확성과 엄밀성을 맞춰드려야 할 것 같아서 ( -ㅅ-)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1 07:20
highseek//"그분"이 저를 보고 비난하면서 "자기는 후안무치하지 못해서" 저처럼 애들 팔아 포스팅하지 못하겠다고 한 적이 있죠. 늅이님은 그 이야기신 겁니다.
Commented by highseek at 2009/07/31 15:15
아아. 미처 그 생각을 못했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0 23:18
원래그런놈//눈물 흘려도 괜찮습니다(...)

천지화랑//정말 대단할 거 같죠?

긁적//그냥 뭐라고 하건 자기 자유죠. 뭐라고 하든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행인1//지금 봤습니다. 뭐, 재미있나 보죠.

하늘이//전부터 그렇게 자주 줄여부르더군요. 근데 슈타인은 장르가 다른 동명이인이 너무 많은데.

asianote//편하신대로 부르셔도 괜찮습니다 ㅋ

highseek//세금도 모두 자율납부죠.

하늘이//직접 행사되는 물리력만 강제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highseek//영광스럽게 여겨야 하나??/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9/07/30 23:32
옛날 애국 논쟁(?)에서 "실체적 국가"만이 애국의 대상이라고 주장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듯. ( ' ^')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1 00:04
하긴 그때도 그런 소리를 했었죠.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9/07/31 00:25
어느 분 책을 읽는 중입니다. 그 책에서 인용한 서적들은 전부 은유적인 표현도 써 가면서 서술을 진행했는데, 그럼 그 책들은 전부 역사서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책들...이겠군요.
Commented by 크악크악 at 2009/07/31 00:28
부산항 부분이 강조 되어있길래...다 읽기도 전에'저 일본군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 사람인가?' 했습니다...-.-; 왠지 저렇게 오랫동안 미군을 피해서 숨어 사는 일본군은 당연히 일본인이라 생각해서...-.-;;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7/31 00:41
마지막에 반전에서 깜놀했습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니 ㄷㄷㄷ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1 01:23
위장효과//그런가 봅니다. 뭐, 논문이나 읽으라죠 :P

크악크악//아무래도 고정관념^^

나아가는자//노렸습니다 ㅋ
Commented by elle at 2009/07/31 02:12
흠 제가 봐도 기보타이 는 희망대가 맞을것같네요.
신칸센 이름중에도 히카리 이런게 있는거보면 노무자부대에 저런 이름을 붙이지말란 법은 없을것같군요.
Commented by highseek at 2009/07/31 02:36
수메르어 전공자인 조철수박사의 <수메르 신화> 같은 책은 어찌해야할지.. 전문서적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해당 분야에는 내용있는(?) 책인데도 온갖 비속어와 육두문자가 난무하는데 말이죠 (..)
Commented by 瑞菜 at 2009/07/31 05:17
그리고보니 1945년 7월 말 미군 비행장 기습을 위해 필리핀 민드로 섬에 상륙했다
산으로 쫓겨 올라간 일본군 특공대가 1956년까지 숨어있었다 합니다.
http://gall.dcinside.com/list.php?id=gun&no=57509&page=1&search_pos=-38384&k_type=0110&keyword=%ED%95%84%EB%A6%AC%ED%95%80

생존방식 들으면 기상천외합니다. 쌍안경 렌즈로 불씨를 만들어 바나나잎에 싸고 다니고,
소금은 원숭이가 조금씩 먹는 것을 보고 덫을 놓아 간접섭취하고,
돼지 쓸개로 복통약을, 원숭이 골을 가루를 만들어 두통약으로 쓰고...

들불 이라는 영화가 있지요, 원래 소설인데, 작가가 필리핀 레이테에서
굶주림과 말라리아로 다 죽다 살아난 사람입니다.
그 영화 보면 진정한 밀림의 패잔병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더라고요.
http://www.youtube.com/view_play_list?p=E9CC17A0846AD0CF&search_query=%E9%87%8E%E7%81%AB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1 07:16
elle//네 제가 보기에도 충분히 그런 이름 붙을 수 있을 것 같네요^^

highseek//책 취급 못 받나 봅니다.

瑞菜//필리핀은 역시 땅이 넓다 보니 여기저기 숨어서 산 양반들이 많군요. 오노다 히로 소위같은 괴물(?)은 별도로 하고;;
영화...다는 못 보고 일부만 봤습니다만 정말 후덜덜입니다.;;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7/31 07:46
들불 작가는 그렇게 힘든 일을 겪지 않았습니다. --;;; 좀 해매다가 빨리 포로가 되었지요. 그리고 영화와 원작이 결말이 다릅니다. --;;;
Commented by 아브공군 at 2009/07/31 08:56
瑞菜님이 쓰신 일본군 특공대의 생존 사례를..... 우연하게 본 육군의'생존' 관련 교범에서 읽은 적이 있다는. (군대 인트라넷쪽으로 본)
Commented by freki at 2009/07/31 09:32
그거 혹시 터키군 찬양이랑 SAS 찬양 좀 하는 교범아닌가요?
Commented by BigTrain at 2009/07/31 09:53
와... FUN하게 쓰셨습니다만, 정말 눈물나네요...
Commented by NoLife at 2009/07/31 10:03
비슷한 일화를 워낙 많이 들어서 그런 예의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반전이 대단하군요(...)
Commented by 베르 at 2009/07/31 10:22
아아...끝의 대반전...
Commented by draco21 at 2009/07/31 11:00
이 기막힌 대반전에..... 하늘도 우는듯.. 땅도 우는듯.. 그리고 저도 우는듯합니다. T.T
Commented by 삼천포 at 2009/07/31 11:48
팔자한번 기구하네요
Commented by 진주여 at 2009/07/31 11:59
..... 진짜 기구한팔자다;;
Commented by Hyunster at 2009/07/31 12:53
희망대가 맞는듯.... 저 이야기 중간부터는 들은 이야기인듯...? 저한테 해주신 적이 있었던가[...]
Commented by sena君 at 2009/07/31 13:04
저만 변태같이 찾아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조병기씨 이름이 조형기라고 적혀있는 오타가 있습니다.
ㅡㅡ.... 참고하시길...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9/07/31 13:59
저도 조형기 적으러 왔습니다 ㅋㅋㅋㅋ
원주민 텃밭에서 고추를 찾는 조형기씨 모습이 자동지원되는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1 16:14
이준님//오오 그렇군요.

아브공군//사실 고등학교 교련 교과서에도 생존교범이 있었는데....

freki//생존교범에서 터키군이? 포로 문제가 아니라요?

BigTrain//눈물이 안 나면 그게(...)

NoLife//사실 노렸습니다(2)

베르//사실 노렸습니다(3)

draco21//사실 정말 극적으로 돌아오셨죠. 3천명의 노무자 거의 전부가 죽었는데...

삼천포//그래도 살아서 돌아오셨으니.

진주여//그렇지요. 부대이름 덕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Hyunster//아니 해준 적 없는데(...) 희망대는 본문에 삽입~~^^

sena君//크윽, 수정했습니다.;;

지나가다//사실 저도 원고 쓰면서 자꾸 실수해서, 보일 때마다 고치고 보일 때마다 고치고 했는데 하나 빠트렸더군요;;
Commented by enod at 2009/07/31 18:23
이런 걸 영화로 만들고 다큐멘터리도 자꾸 만들어야 국제적인 관심도 받고 연구도 할 수 있는데..
미국애들이나 유럽애들이 틈만나면 자꾸 아우슈비츠 특별 다큐멘터리같은 걸로 매년 방송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죠... 쩝...
절대로 잊지 말자는 것...
그런데 왜 우리만 잊지 않고 일본만 잊어가는지 참 알 수 없는 노릇...

Commented at 2009/07/31 18:4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瑞菜 at 2009/07/31 19:13
아 참. 이런 일본 패잔병은 영화 봉고봉고 대소동도 있군요.
일본군이 일단 진주를 해서 전차도 갔다 놨는데,
미국도 일본도 둘 다 잊어버리고 말 그대로 잊혀졌던.
거기 남은 일본군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 둘씩 늙어 죽고,
결국 남은 사람 하나가 끝까지 진지를 구축해 버티고 있는.
그 사람이 원주민 여추장이랑 결혼해서 아들 하나 낳았는데 이게 좀 덜 떨어져서....

나중에 주인공 일행이 그 진지를 공격(?)할 때 섬에 있던 전차를 타고 공격하고
진지에서는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며 저항합니다.
결국 늙고 혼자서는 힘에 벅차 그만 두지만.

처음에 일본군이 쌍안경으로 일본군 전차를 보고 일본에서 지원병이 온 줄 알았는데,
그 아들내미가 전차 옆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것을 보고 총격을 개시하더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7/31 21:09
enod//돈이 안 되기 때문이겠죠. 끌려간 것도 대부분 힘없는 사람들, 되살리려 하지도 않고...

비공개//
1. 크, 이미 실마리가 있었군요 ㅋ
2. 그러고 보니 저도 그런 교범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군요. 그래봐야 병사들한테 전혀 교육은 안 하고-_-;;;
3. 감사합니다^^;

瑞菜//와 재미있어 보입니다. 검색해보니 국내방영도 했었군요, 호오.
Commented by 스타라쿠 at 2009/07/31 22:19
나츠메... 치졸한 것도 정도가 있지.
Commented by John at 2009/07/31 22:47
반전 제대로군요. 부산항이라... 이것도 일종의 역사적 비극이겠죠. 무사귀환하셨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만...

아무튼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 글의 100번째 덧글을 가져갑니다.
Commented by highseek at 2009/07/31 22:55
그분의 엄밀성과 적확성을 도와드리기 위해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들과 오타 등을 지적해 드렸더니, 대뜸 욕부터 하시더군요. :) 비문에 대한 지적과 역사서술에 관련한 지적 역시 구분을 못하시고..

그러다 댓글마저 지워버리던데 말이죠 :)
Commented by 이명준 at 2009/07/31 23:36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전범혐의로 사형당하거나 형을 산 억울한 한국인 부역자들에 비하면 참으로 좋은 결말이네요. 그때 당시 5만엔이면 한국에서 집도 사고 농사 지을 땅도 마련하고 해서 어느정도 행복하게 보내지 않았을까 생각은 합니다만 확실히 아는건 없으니 말이죠.


전쟁은 일본이 했지만 식민지의 운명으로 희생을 강요당했던 한국인의 삶은 지금에 와서도 많은 의미를 주는군요.

그런 비극을 당한 사람들의 나라의 국민들 중 일부가 헛소리를 하는거 보면 아직 그 시절의 굴례를 벗어나지 못한것 같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01 00:46
스타라쿠//저렇게 살겠다는데 냅두죠 뭐 :P

John//아앗, 축하드립니다. 100플 넘는 것도 오랜만이군요^^;;

highseek//그러고 싶을까....-_-;;

이명준//확실히 어느 정도 밑천은 되어주었을 것 같습니다. 그때 환율표나 그런 걸 구할 수 있으면 대충 추산이라도 해보겠는데, 그걸 못 찾아서요. 정말 아예 돌아오지 못한 분들에 비하면 저분은 행운이십니다.
Commented by 물속인간 at 2009/08/01 00:57
막 웃고나서...ㅡ.ㅜ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군요...;;아이고야.

암튼 학생들 졸때 들려줄 이야기 하나 겟했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01 01:18
잘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와우 at 2009/08/01 02:41
처음에는 신기한듯 보다가 곧 이러한 일들이 발생된지 채 얼마되지도 않았고 이런 일들을 겪으신 분들이 고작 저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라는 것에 가슴이 아프군요. 사담이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큰 형님께서도 전쟁말에 오키나와로 끌려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후에 살아돌아오셨지만요. -_-;;;

p.s: 비로그인이지만.... 80%안에 들지는 않으니 양해를..ㅡ,.ㅡ 쿨럭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01 08:30
네, 바로 우리 이웃 누군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겪으신 일이죠. 그런데 80%가 무슨 말씀이신지....F--(벅벅)
Commented by highseek at 2009/08/02 13:54
그 왜 볼프씨가 잘 하는 말 있잖아요. 비로그인의 80%는 뭐.. 라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02 19:32
아아, 그겁니까;;
Commented by K-ON at 2009/08/01 08:35
와 이거 전쟁이끝나고난뒤에도 계속 숨어서 살아아왔던 일본군이야기
많이들었는데 학국인이였군요
뭔가 눈물이납니다 ㅠ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01 08:36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Commented by BeN_M at 2009/08/01 13:43
읽으면서 '하하....참 기구하네, 그래도 고향 잘 갔으니 해피엔딩인가'라면서 가볍게 읽다가

'부산항'에서 급 정색.
(그럼 같이 있던 사람 셋도 한국사람?)

아무튼 무사히 돌아오셨으니 다행이라면 다행.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끌려가서 죽었을꼬)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8/01 21:16
정말 반전이네요.
운명의 장난, 국가간의 파워게임 속에서 한 개인이 휘둘리는 장면이란...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기뻐하기도 뭣한 기구한 얘기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02 01:17
BeN_M//네, 한국인 3사람이 살아남았다가 한 사람은 사살되고 한 사람은 잡히고 나머지 한 사람이 혼자 10년을 버틴 거죠. 정말 살아온 것만으로도 행복한 결과입니다.

paro1923//그래도 일단 살았으니 다행이죠. 안 "끌려갔"으면 더 좋았겠지만.
Commented by at 2009/08/02 15:11
아 포스팅 금지군요 ^^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02 19:32
네? 무슨 말씀이신지...;;
Commented by highseek at 2009/08/03 02:09
포스팅 전재 이야기이신 듯.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03 08:54
highseek//네, 두번째 리플 보고 이해했어요. ㅋ
Commented by at 2009/08/02 20:32
아 가능하시면 링크만 해도 될까요??

http://ruliweb.nate.com/ruliboard/list.htm?main=hb&table=hb_news2

요 싸이튼 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03 01:57
네, 카피는 곤란하지만 링크는 괜찮습니다^^
Commented by 12345 at 2009/08/03 14:02
나츠메님의 슈타인님에 대한 열등감은 워너비 친구에서 나오는것 같습니다. 관심과 사랑을 주면 좋겠습니다.ㅠ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03 21:41
글쎄요.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F--
Commented by tetegy at 2009/08/03 23:09
부산항이 나오길래 배달사고인줄 알았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03 23:27
사실 제가 의도적으로 내용을 좀 가렸죠^^;;
Commented by 비도승우 at 2010/09/22 00:18
절묘하신 필력입니다.ㅋㅋㅋ 완전 낚일뻔했어요.ㅋㅋㅋㅋ

그나저나 우리나라에도 오노다히로오 나 요코이쇼이치같은 사례가 있다니..

징용이라서 더욱슬프네요. 참.. 제가 패션에 관심많고 좀 예민해서 수선을 자주하는데

자주가는 수선집에 아저씨 친척분중에 유황도에 징용갔다가 살아돌아오신분이 있다는데..ㅎ ㄷ ㄷ

유황도에서 살아돌아온 조선인이 몆명이나 되는지도 긍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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