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으로 족한 것을 비난하지 말자.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언, 15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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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다른 편에서 보았을 때 - 서울대병원 부상병 학살사건
6.25 -1를 잠깐 읽다가. 마침 내일이 25일이기도 하고 해서 하나 씁다.

원 포스팅을 쓴 organizer™님도 언급하셨지만, 한국전쟁 당시 서울이 함락되었을 때 인민군에 의한 국군 부상병 학살이 있었습니다. 우리측 기록에 의하면 이때 학살당한 부상병이 서울대 병원에서만 100여 명(서울대 측이 세운 기념 명판에서는 1천여 명이라고 함),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서 다수가 있었고 그외 시내 일반병원에도 상당수가 있었다고 해요.

당시 서울대병원에는 1개 소대의 경비병력이 있었으나 압도적인 적과의 교전으로 전멸했고, 일부 부상병들도 무기를 들고 저항하다가 전멸했습니다. 또한 생존한 부상병이 학살당한 후 시신이 방치되어 서울 수복 당시에야 비로소 유골이 수습되었다는 증언도 읽은 기억이 있는데 현재로서는 출처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걸 어디서 봤더라-_;;

일반적으로 이 사건에 대한 반응은 세 가지인 듯 합니다.

첫째, 공산당의 비인간성과 잔혹성 강조.
병원에 있는 부상자 및 그 가족, 일반환자와 의료진까지 학살한 북한군의 비인간성에 대한 성토입니다. 이런 시각에 대해 굳이 더 강조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

둘째, 사건 자체에 대한 부인.
이것 역시 어떤 진영에서 나오는지 말할 필요가 없는 시각이겠죠. 잠깐 검색해보니 "인민군은 군기가 엄정했기 때문에 전쟁 기간 내내 단 한 번의 부상병 학살도 하지 않았다"는 소리도 있고 "매국 친일집단의 기록은 신용할 수 없다"는 망발도 있더라고요. 이는 "국민의 군대인 국군은 단 한 명의 민간인도 죽이지 않았다" 내지는 "자유 우방 미군의 민간인 학살이라니 있을 수 없다"와 같은 수준의 헛소리로, 따라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셋째, 물타기.
북한군의 국군 부상병 학살 사건을 거론하는 사람에게 "당시 북한만 학살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한국군과 미군도 학살을 저질렀다. 노근리 민간인 학살이나 보도연맹 학살 등 수십 만의 학살이 한국 정부와 미군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고작 천 명 정도 되는 희생자를 낸 북한군 학살이 그렇게 중요한가?" 라는 식의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이 있더군요. 이 분의 주장대로라면,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수천만의 자국민을 죽게 만든 중국 정부는 일본의 남경대학살에 대해 항의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제암리 학살 사건이나 관동대학살에 대해서 일본을 탓할 수 없겠군요? 상대가 더 큰 죄를 지었다고 당사자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상이 참작될 뿐입니다.


고로, 그 규모의 차이에 대한 이론(異論)은 있을지언정 북한군에 의한 국군 부상병 학살은 실제 존재했던 사건으로 본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그럼 제목에서 쓴 대로, 다른 편에서 이 사건을 다른 쪽에서 한번 보겠습니다.

일단 이런 가정을 해 봅시다. 한국전쟁(또는 6.25사변)이 지킬 건 지키면서 하는 신사적인 전쟁이라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2차 세계대전 서부전선과 같이 제네바 조약이 준수되는 전장의 경우, 일방이 패퇴하여 미처 환자를 후송하지 못한 상태에서 야전병원을 적에게 넘겨주게 될 경우 경비부대는 서슴없이 적에게 손을 들었습니다. 어차피 끝까지 항전한다고 해서 환자들을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도리어 교전중에 환자들에게 위해가 갈 가능성만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승리한 측 역시 부상한 포로들에 대해서 인도적인 처우 및 자기들 부상병과 같은 정도의 치료를 보장(일단은)했습니다. 동부전선처럼 인종말살 전쟁이 벌어지는 전장에서야 치료소 현장에서 드르륵하거나 전차로 깔아버리는 일도 숱했지만, 적어도 룰을 지키는 전장에서는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쪽을 파면 북한측으로서도 변명거리가 있습니다. 경비부대가 투항을 거부하고 항전했으니 전멸시킬 수밖에 없고, 일부 부상병들이 여전히 총기를 소유하고 저항했기 때문에 교전이 벌어져 우발적인 피해가 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일반 환자에게 총질을 한 것도 을 갈아입은 국군이 기습할 가능성에 대비해서라고 우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당시 상황이 투항이라는 것이 허용될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입니다.

일단 한국전쟁은 동족간의 사실상 내전이자 이념전쟁이었습니다. 독소간의 동부전선도 같은 경우지만 이념전쟁에서 이념이 다른 상대는 말살해야 할 대상에 다름아니며, 이는 내전의 경우 더 심각합니다. 스페인 내전에서 벌어진 잔학행위의 사례를 보아도 이 점에서는 첨부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스페인에서도 좌우 양파가 경쟁하듯이 학살 및 잔혹행위를 벌였으니까요. 이는 설혹 부상자라 해도 인도적인 대우를 기대하고 투항할 수 없게 하는 걸림돌이었습니다.

물론 평소의 교육이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설령 패하더라도 칼이 부러지고 화살이 떨어져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을 신성시하고 포로가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동양의 포로에 대한 사상도 영향을 미쳤겠지요.
하지만 생명의 위기를 눈앞에 보게 되면 투항하는 사람은 나오게 마련입니다. 투항을 부끄럽게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인 죄악으로 여기는 일본군조차 미군에 투항하는 병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군 장병들에게 있어서 북한군에 투항한다는 것은 개전 초에도 이미 죽음을 뜻했습니다. 38선에서 북한군에게 생포된 국군 병사나 경찰관들이 어떤 꼴이 되는지 익히 보아왔거든요.
38선을 경비하는 인민군은 남측에서 귀순한 인원에 대해서는 선전효과를 위한 떠들썩한 행사를 벌였지만 남측 군경과의 교전에서 생포한 포로의 경우에는 눈을 파내고 귀를 자르는가 하면 사지를 토막내어 나무에 걸어놓는 따위의 짓도 서슴치 않았고, 이런 소문은 과장이 더해져서 퍼졌습니다.자연스럽게 한국군 장병들은 배신자의 오명을 뒤집어쓰면서 투항해 봤자 죽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렇다 해도 북한군 쪽이 조금만 생각이 있었다면 서울대병원이나 서대문 적십자병원처럼 어느 정도 이상의 저항으로 교전이 발생한 곳 이외에, 서울 시내에 산재한 개인 병원에서까지 국군 부상병을 뒤져내어 학살할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이 점에서는 만약 서울에 입성한 부대가 중공군 출신으로 구성된 5사단이나 6사단이었다면 이런 식의 학살이 자행될 가능성은 확실히 낮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 두 개 사단은 실전경험이 풍부하고 훈련도가 높아 기강이 엄중할 뿐 아니라, 중공군은 국부군 포로를 잡았을 경우에도 일체 가혹행위를 하지 않고 선무하여 자군에 편입시키거나 안되면 그냥 귀가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했거든요.
이에 반해 서울을 점령한 3사단과 4사단은 소련군 출신자가 간부진의 중핵을 이루었는데 소련군의 포로대우는 말할 필요가 없겠고, 병사들은 북한에서 징병된 자들이라 포로에 대한 배려 따위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국군 부상병들의 운명은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봐야겠죠. 고로 만약 방호산의 6사단 같은 부대가 선두로 서울에 입성했다면 부상병 학살 사건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결론과 함께 마무리.


참고자료 :

경찰전사(1945~2003) : 아~살아있다! 대한민국 경찰의 혼, 대한민국참전경찰유공자회, 월간조선, 2003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 제1부 분단의 배경, 박승수, 금강서원
북한 인민군대사, 장준익, 서문당, 1991
육군종합학교, 박경석, 서문당, 1990
한국전쟁사 vol.1 - 해방과 건군(1945~1950.6),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1968


* 이 포스팅 내용에는 작성시 제가 실수로 집어넣은 오류가 있습니다. 그점 보충하기 위하여 아래 트랙백된 포스팅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by 슈타인호프 | 2009/06/24 16:09 | 한국현대(~20XX) | 트랙백(1) | 덧글(42)
트랙백 주소 : http://nestofpnix.egloos.com/tb/417317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 at 2009/06/25 21:48

제목 : 어제 했던 국군 부상병 학살사건 포스팅, 내용 일부..
사건을 다른 편에서 보았을 때 - 서울대병원 부상병 학살사건에서 셀프 트랙백. 어제 포스팅에서 저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북한군 쪽이 조금만 생각이 있었다면 서울대병원이나 서대문 적십자병원처럼 어느 정도 이상의 저항으로 교전이 발생한 곳 이외에, 서울 시내에 산재한 개인 병원에서까지 국군 부상병을 뒤져내어 학살할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른 자료를 통해 확인한 바, 적십자병원에서는 서울대병원 같은......more

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09/06/24 16:14
38선에 토막시체를 걸어놓는다라...그로테스크하군요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9/06/24 16:19
토막낸 시체를 널어놓는 것보다 더 과장된 소문이 나온다는 건... 좀... 뭐가 있었을까요? 삶아먹는다?
Commented by organizer™ at 2009/06/24 16:20
>> 중공군은 국부군 포로를 잡았을 경우에도 일체 가혹 행위를 하지 않고 선무하여 자군에 편입시키거나 안되면 그냥 귀가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했거든요.

정권을 얻기 전까지는 저랬었었군요... [그 뒤의 문화 혁명은 대체 뭔일인지...ㅠㅠ]

---

>> 인민군은 *군기가 엄정*했기 때문에 전쟁 기간 내내 단 한 번의 부상병 학살도 하지 않았다

그냥 웃고 말겠습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6/24 17:18
문화혁명은 적군 포로를 잡은 게 아니니까요.
Commented by organizer™ at 2009/06/24 18:31
그렇군요. 이념적으로 이미 "통일"을 이뤘는데... 반혁명 분자라니...ㅠㅠ ;;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6/24 16:33
계란소년//끔찍한 일이죠.

초록불//아마 토막난 인원수의 뻥튀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organizer™//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변하게 마련이죠.
Commented by 젝리 at 2009/06/24 16:43
이미 한강 인도교 폭파사건에서 보여준 한국정부의 개막장 짓을 기억하는 지라, 뭘 말해도 한국정부의 소위 공식 입장은 왜곡으로 보입니다.
Commented by Allenait at 2009/06/24 16:48
가장 잔혹한 전쟁이 내전이라는데... 거기다가 이념까지 더해졌으니까 답이 나오긴 하는군요.
Commented at 2009/06/24 16:5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6/24 16:55
소련군 출신과 중공군 출신의 차이라... 더 찾아보면 뭔가 양자의 차이를 드러내줄만 "펙트"가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더 진정한 차이는 '독소전쟁'과 '국공내전'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지만...
Commented by 월광토끼 at 2009/06/24 16:55
"동족상잔의 비극" 어쩌고 하기 이전에... 모든 전쟁이 다 그렇듯, 그저 너무 끔찍할 뿐입니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나서는 결코 안되겠지요.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6/24 16:55
1. 보통의 경우 인간 인수분해나 상대방의 여자요원을 잡았을때 누드쇼 시키기나 카니발 홀로코스트 실사판 촬영같은 일은 정규군간의 작전보다는 대게릴라전에서 벌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38선 충돌의 경우는 격렬은 하되 소규모 충돌인 경우가 많아서 뚜렷한 포로 학대의 이야기는 별로 없었습니다. 아마도 대게릴라전 당시 벌어진 양측의 잔학행위가 다른쪽으로 퍼저나갔을 확률이 큽니다.

2. 초록불님//거제도 중국군 포로 수용소에서 실제 퍼진 소문이 반공포로들이 친공포로를 삶아서 먹고 먹고 남은 걸 바께스에 넣어서 진열했다 --;;;라는 겁니다.

3. "인민군은 군기가 엄정.." 버젼은 보통의 좌파학자들조차도 안하는 이야기입니다. 악명높은 강정구나 덜 악명높은 한홍구조차도 인민군에 의한 잔학행위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들어갑니다. 한국전 피학살자 진상 관련 업무에 참가하고 있는 김동춘 교수 같은 경우는 뭐 상당히 밀도 있게 이런쪽 이야기를 하면서 아예 "남북 상호간 학살이 광범위하게 벌어진건 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책임이 1차적이다"라고 못박을 정도이지요.

그럼 그런 버젼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면 대부분 비전향 장기수나 간첩찌꺼기나 전직 빨치산 부류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OTL;;;; 애시당초 지적인 토양은 거의 없고 폭 넓은 사고방식을 가질 기회도 없었고 오로지 원한으로 먹고 사는 그런 부류이지요. 그 자신이 삼청교육대 피해자이고 졸라 좌빨이고 빨치산의 영웅적 투쟁을 미화한 정순덕 실록을 쓴 정충제가 "빨치산이 국방군 낙오병을 사살했다"거나 마을에 들어가 반동분자를 처단했다라는 구술을 남긴 죄?로 그쪽 업계에서 인간 말종 취급을 받은건 뭐 개그라면 개그입니다.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6/24 17:03
사실 이런류의 사고를 가진분들은 좌뿐 아니라 우에도 버글버글합니다. 아무래도 수질관리가 필요한듯

4. 서울대 학살은 의외로 당대에도 말이 많아서 남한의 공식기록에도 빠짐없이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국딩때 독후감용으로 나온 성인용 --;; 만화 "한국전쟁"에서 첨봤지요. 김혜수와 이효정이 졸라 신인때 나온 TV 문학관 "젊은 느티나무"의 작가 고 강신제 여사의 장편 "임진강의 민들레"에서 주인공 이화의 남친이 이때 부상병으로 있다 매장당했다가 살아나온 국군병사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Commented by 갑옷을 그리는 젊은이 at 2009/06/24 17:12
원래 사람은 근거없는 소문에 약하잖습니까...ㅎㅎ
Commented by 델카이저 at 2009/06/24 17:34
기본적인 전술훈려도 제대로 안된 경우가 허다한데 저런걸 요구하는게 넌센스 같습니다만..-_-;; 그리고 설득하는 거 보단 죽이는게 편하고 자기편에 사기를 높이는데는 도움이 되지요..

동양권에서 항복을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있다기 보단 중앙집권제가 확립된 동양에서는 항복이란 곧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선택이라기 보단 그냥 이적행위에 가깝고 정당한 이념적 정권에 대한 반역행위처럼 다뤄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항복한 애들의 가족들에게 대해서 그닥 관대하지 않지요..-_-;; 그러니 열씸히 싸워야지요.. 보통 병사들이 열씸히 싸운 이유는 다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물론 살려면 열씸히 싸워야 했겠지만요..
Commented by 소년 아 at 2009/06/24 17:47
중공군과 소련군의 포로대우가 많이 달랐다는 사실이 재미있네요. 북한군은 반반일까요?

이준 님의 매장당했다가 살아나온 국군병사에서 좀비를 떠올려버렸네요=ㅅ=(...)
Commented by 원래그런놈 at 2009/06/24 18:24
참 불행한 역사의 한 장면이네요.....
Commented by 아브공군 at 2009/06/24 18:28
말 그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그러나 일어나버린 끔찍한 일인거죠.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하고.
Commented by 소시민 at 2009/06/24 18:29
확실한 팩트가 있는데도 두번째나 세번째 같은 반응을 보이면 곤란하죠...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9/06/24 18:57
군의관 입대해서 훈련받을 때 훈육장교가 해주신 말씀 중의 하나가
"북한군은 아군 야전병원을 습격해서 부상병이건 의무요원이건 다 죽이는 것이 작전교리니까, 여러분들도 사격훈련 우습게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배워!" 였었지요. 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6/24 19:15
젝리//그래도 역사적 사실은 사실입니다.

Allenait//그런거죠.

비공개//그런 셈이죠.

행인1//전쟁 여건이 완전히 달랐다는 점도 있습니다.

월광토끼//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죠.

이준님//
1. 소규모 충돌인만큼 포로도 소수니까 그냥 현장에서 "처리"해버리고 만 케이스는 종종 있었던 듯 합니다.
2. 중국인들이라 그런 소문이 가능했을 듯--;;
3. 사실 문제의 주장을 본 것도 오마이 댓글란이었습니다. 빤한 곳이죠.
4. 저도 그 만화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갑옷을 그리는 젊은이//그래서 인간이지만.....

델카이저//하여간 전쟁은 없는 게 좋다는.

소년 아//실제 전후에 송환된 장병들의 체험담을 봐도 중공군 관리하의 포로 수용소가 북한군 관리하의 포로수용소보다 훨씬 대우가 좋았다고 하더군요.

원래그런놈//그런 거죠.

아브공군//네, 정말 다시 안 났으면 좋겠습니다.

소시민//그럼 뭐 친북이라고 불려야겠죠.

네비아찌//사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의무요원은 사격훈련 따위 안 받아도 되는 게 정상인데 말이죠.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9/06/24 19:17
한국전쟁 당시 양쪽의 학살 사례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정말 아프리카 안부럽더군요. 김규식 박사 말씀 마따나 우리 조선민족은 참 잔인한 민족 인듯...
Commented at 2009/06/24 19:1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6/24 19:32
길 잃은 어린양//그때 한국을 보면 뭐 아프리카 부족전쟁이 남부럽지 않죠-_-;;

비공개//힘들 거라고 봅니다. 미국 해군은 통상파괴전 이상을 할 수 없고, 프랑스-스페인-네덜란드 해군은 이미 심각하게 약화되어 있던 터라...네덜란드 해군은 1797년의 캠퍼다운 해전, 스페인 해군은 트라팔가 해전 이후로 거의 전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프랑스는 함선은 꽤 남아 있었지만, 50척의 전열함 모두 유지보수가 제대로 안 되고 있었지요.
Commented by highseek at 2009/06/24 19:43
사건을 부인하는 시각의 원인 중..

....우리민족은 순박해서 그럴리가 없다능! 같은 민족주의적인 원인도 일부 있을거라고 생각.
Commented by m at 2009/06/24 19:55
m
Commented by 산중암자 at 2009/06/24 20:16
사실, 한국전쟁을 비롯해서 '그런류의 전쟁'이라면 보통 나오는 사건들이니 딱히 우리만의 일이라고 볼순 없겠습니다.(씁쓸..)

전에도 말했지만 기초적인 군전통이나 훈련도 제대로 안이루어진 군대가 단기간의 전투력 향상을 위해 타진영에 대한 적개심을 중점적으로 교육받는다면 뭐....결과란;;;(현제 제3세계진영쪽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겠습니다만)

그나마 시간이 지나고 인간의 사싱이 보다 성숙해졌다는 지금도 미군에선 테러와의 전쟁에서 의무병/담당관들이 받는 "컴벳메딕" 자격장이 생겨나는 걸보면 세상이 보다 긍정적으로 바뀌려면 역시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Commented by 드레드노트 at 2009/06/24 20:22
엇~난 이 이야기를 월간 조선에서 봤는데.(한 10년 전이던가...) 아마 호프도 월간조선에서 본거 아냐?
Commented by 제노테시어 at 2009/06/24 20:35
"개막장 한국 정부 발표내용은 뭔 내용이래도 못믿겠다"->"개막장 국부군 발표내용은 뭔 내용이래도 못믿겠다"


네. 앞으로 남경 대학살 사건도 못믿는 사건이고 독소 양군의 포로 학대도 못믿는 사실이고, 심지어 유태인들 학살도 못믿는 사건이 되겠습니다.

정부의 공식 발표 뿐만 아니라 여러 증언도 교차검증할 수 있는데도 저런 말씀을 하시니 그저 혀를 찰 수 밖에요.

그건 그렇고, 불과 5년만에 국군과 인민군 양군이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저렇게 팽배하게 되었군요. 지속적인 38선 인근의 교전과 이데올로기 주입의 상승효과일까요?
Commented by 알렉세이 at 2009/06/24 21:35
이데올로기가 개입되었을 때 굳이 군이 아니라도 민간에서도 많은 살해가 있었죠...
Commented by 김희대 at 2009/06/24 21:51
이 포스팅을 보니 생각나는 저희 집안의 전설이 저희 본가가 본래는 대대로 현리에 살던 대지주 집안이었습니다. 연로하신 사촌형님과 현리길을 달리는데 근 30동안 원래는 우리땅을 지나쳐야 했죠. 그런데 원래 풍수학, 관상학등에 조예가 깊었던 할아버님의 지인인 도인께서 니네 땅이 왕이 나올 명당이니 나랑 도닥자 라는 꼬임에 입산수도중 하산해서 흉사가 끼었다며 그 넓은 농토를 헐값에 처분 야반도주하듯 이사했다더군요. 그리고 한달도 안되어 625발발 현리일대의 지주 공무원 경찰 지식인들이 전부 꼬치구이가 되고 좀 행세꽤나 한다는 집안중 저희집안만 살아남았답니다. 그래서 현리에 있는 어떤 산 어귀에 저희 할아버지를 도인으로 모시고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 있답니다. 그런데 그 사당이 생긴후에도 할아버지께서는 공기좋은 정선땅 에서 잘 살고 계시다 60년대 중반에야 돌아 가셨죠.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09/06/24 21:54
그나저나 공산군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귀가'한 국부군 장병들은 나중에 중공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을지 궁금하군요. 문화대난리때 조리돌림?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6/24 22:25
highseek//그럴 지도.

m//m?

산중암자//네, 세상이란 게 다 비슷한가 봐요.

드레드노트//아냐, 난 어릴 때 만화책으로 봤어.

제노테시어//그렇게 봐야 할 겁니다.

알렉세이//끔찍한 과거죠.

김희대//할아버님이 정말 도인이십니다-_-;;

천지화랑//워낙 수가 많아서 별 탈 없었을 거예요. 장교쯤 되면 혹 모르지만.
Commented by 措大 at 2009/06/25 01:14
김성칠 교수의 일기에도 등장하고...당시 혜화동이면 사실상 서울에서도 중심지 축에 들어가는데 거기서 사단이 났으니 보는 눈들이 오죽 많았겠습니까. (그 시대의 원칙대로라면 군의나 의무병은 비무장에 표식을 다는게 정상이겠습니다마는... 그것은 구라파의 모습이고 -_-)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에 숱하게 나오는 것이 포로 학살(...눈물을 머금고 처단 운운)인데요 뭘 -.-; 그런 이야기를 태연자약하게 하는 세태였다보니, 되려 묻힌 감이 없지 않습니다. (반공의식을 고취시킬만한 양민 학살 사례가 허다한데...부상병쯤이야라는 마인드 -_-;)
Commented by 한뫼 at 2009/06/25 02:55
2번 3번은 답이 없을 듯....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9/06/25 09:10
"항미원조의용군"이라고 인민해방군이 파병되어 인해전술을 펼칠 때 예전 소련의 형벌부대처럼 꽹과리 징치면서 진지로 먼저 돌격하는 선발부대는 국부군 포로 출신들이었고, 대충 유엔군이 탄약떨어지고 지뢰도 처리되면 8로군이래 정예부대가 돌격해왔다...뭐 이런 설도 있던데 그에 대해 혹시 자료 들으신 건 없으신가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6/25 09:39
措大//하긴 양민학살이 널렸는데 부상병 학살이야 강조할 필요도 없겠군요.

한뫼//답이 없습니다---

위장효과//그쪽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증언 정도라면 들은 적이 있지만, 국부군 포로 출신들이 워낙 많았어야 말이죠.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6/25 09:47
위장효과님//그건 소비에뜨의 형벌부대를 빗대서 우리쪽에서 만든 괴설입니다. 소싯적만 해도 "국군포로" 버젼으로 돌기도 했지요. 문혁때 작살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부군출신들은 그냥 편입정도로 보면됩니다.

우어우어 인해전술이 아니라 나름대로 탄탄하고 정밀한 것이 중국군의 전술로 본다면 그리고 그걸 조금이라도 연구한다면 그 이야기 자체가 괴담수준도 안되는 이야기라는 걸 알수 있지요. --
Commented by wpcasper at 2009/06/26 01:3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빨리 글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신 부분을 새로 포스팅 하신 것도 대단하시네요.

한가지 조언 드리자면, 새로운 포스팅으로 글을 수정하실때는 원글에 그 내용을 눈에 잘 띄도록 표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6/26 01:37
아, 하긴 트랙백으로는 부족하겠군요. 안내문을 삽입하겠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 at 2012/08/19 17:01
오래됐지만 간만에 개념글 보고 갑니다.

말이 문화고 말이 혁명이지 ㅋㅋㅋㅋㅋㅋ 명칭 자체가 기가 막힌거임.뭐 중국인들이 반어법을 좋아한다면 이해가 가겠지만.

당시 무능한 毛씨가 경제개혁이랍시고 농민경제 다 망쳐놓고 기아로 수천만명 굶어죽여놓고 퇴물취급 받는게 서러워서

홍위병들 내세워서 수천만명을 더 학살한,인류 역사상 그 어느 범죄와도 견줄 수 없는 초호화 스케일의 학살극이죠.

당시 중국이란 국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도살장이었다고 보면 됨-중국은 당연히 남경학살에 대해 큰소리 칠 자격도 없습니다.

스탈린의 고려인 학살과 더불어 이런 블록버스터급 학살극들은 대체로 쉬쉬하는 반면 대한민국 정부/미군과 연관된 노근리 양민사살 등

이런 사건들만 골라서 주목받는게 우습죠. 책임 주체는 당연 무고한 양민들 틈바구니에 껴서 피난민들까지 같이 죽게 만든 빨치산놈들인데.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2/08/19 17:29
잘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문혁이야 뭐 정말 말이 안 나오는 사건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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