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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경 최악의 충돌, 영암경찰서 습격사건
대한민국 건국 초기 군대와 경찰 사이의 관계가 매우 나빴다는 점은 아마 들어본 적들 있으실 겁니다. 여수에서 14연대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반란의 주모자였던 지창수 상사가 "경찰이 쳐들어온다!"고 사병들을 선동했고, 그게 먹혔던 것만 보아도 군인들이 경찰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적개심의 정도를 알 수 있겠죠.
그런데 이 적대감이 감정다툼이나 시비, 주먹다짐 정도를 벗어나 총격전으로 비화한 사례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최악의 사고였던 영암경찰서 습격사건에 대해서 짧게 다뤄볼게요.


미리 말해두자면, 이런 식의 충돌은 사실 어느 정도는 필연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미 군정이 군대를 창설한 시초 자체가 경찰예비대(Constabulary Police Reserve)였으므로 경찰은 경비대를 자신들의 보조기구로 여기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장비에 있어서도 경찰은 창설 직후부터 새 제복과 칼빈을 지급받았는데 경비대는 한참동안 일본군복과 일본제 38식-99식 소총을 써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경비대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건 바로 계급장이었습니다.

창군 초기, 경비대 계급장을 만드느라 골치를 썩이던 군정 당국은 일단 임시로 경찰모자의 귀단추로 사용하던 무궁화를 경비대 장교 계급장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무궁화 하나가 참위(소위), 둘이 부위(중위), 셋이 정위(대위)였지요. 경찰모의 귀단추를 계급장으로 쓰게 된 경비대를 보자 경찰은 경비대를 "더" 깔보게 되었고, 경찰에 대한 경비대의 적개심도 더 커졌습니다. 1946년 2월 1일자로 새 계급장이 제정되면서 이 문제는 조금 나아졌죠. 하지만 군경간의 갈등은 계속 있었고, 주로 외출/외박을 나간 군병력을 경찰이 제재하면 군인들이 몰려나가 보복하는 식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격렬했던 게 바로 이 영암경찰서 사건이죠.


1947년 6월 1일,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서는 이곳 출신 국방경비대 4연대 소속 하사 1명이 외박을 나와 집에 들렀다가 신북지서 소속 경찰관과의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경비대원이 쓰고 있는 모자에 달린 모표를 보고 경찰이 "일본놈들 좋아하는 사꾸라 꽃 같다"고 놀렸거든요. 이게 본서인 영암경찰서로 넘어가자 경찰에서는 이 하사를 즉각 구속하여 본서 유치장에 처넣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신병을 인수하러 찾아간 4연대 장교와 군기대(헌병) 사병들까지 폭행했습니다. 이 소식이 광주의 4연대 본부에 전해지자 듣자 눈이 뒤집힌 병사 및 하사관 3백여 명이 무기고를 털어 총과 실탄을 꺼내 트럭 7대에 나눠 타고서 영암으로 달려갔죠.

4연대 장교들이 허겁지겁 뒤쫓아갔을 때는 이미 때가 늦어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경찰측은 아예 망대에다 기관총까지 걸어놓고 쏘아대고 있어서 공격측인 경비대가 크게 불리한 상황이었죠. 연대장인 이한림 소령이 경비대에 사격중지 명령을 내린 다음 영암군수와 함께 몸소 경찰서에 들어가 담판을 벌였는데, 접근중에 경찰이 던진 수류탄 때문에 호위병 1명이 죽고 1명은 중상을 입는 위험을 무릅써야 했습니다. 연대장의 적중담판(?)으로 간신히 사태가 마무리되기까지 희생자는 경비대가 사망 6명에 부상 10여 명, 유리한 위치를 잡고 있던 경찰은 제로였습니다(이상의 수치는 장창국 저 <육사졸업생>에 의하며, <경찰전사>에 의하면 경비대 2명, 경찰 1명 전사). 여기에 전남도경이 영암경찰서 지원을 위해 기동대를 출동시키고 있었으니 그 병력이 도착했으면 뭔 꼴이 났을지-_-;;

한 가지 재미있는 건 기동대 지휘관 정래혁 경감 역시 연대장 이한림 소령과 같은 군사영어학교 동창생 출신이었다는 겁니다. 군사영어학교 출신이라고 다 경비대에 들어간 건 아니었거든요. 총 170명의 졸업생 중 장교 임관자는 110명 뿐이었고, 나머지는 경찰 등 행정관서에서 일했습니다. 다만 정 경감의 경우는 임관하여 3연대에서 참위로 잠시 근무하다가 고문관과의 트러블 때문에 경찰로 옮겨간 사례라, 약간 경우가 다르긴 해요.

전남 지역에서는 1년쯤 지난 후에도 큼직한 충돌사건이 한 건 터집니다. 1948년 9월 24일에 구례경찰서 직원 한 명과 14연대 사병 9명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는데, 몰려든 구례경찰서 경찰관들에게 사병들이 구타당한 후 구금당했습니다. 그래서 14연대 헌병들이 구례까지 가서 이 병사들을 인수받아 왔는데, 연대 인사계인 지창수 등이 이 사건에 대해 분개하면서 언제 한 번 보복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반란이 터진 거죠. 그리고 뭐 그 뒤는.....

어때요, 그정도면 "경찰이 쳐들어온다"는 선동이 통할 것 같죠?


참고자료 :

경찰전사(1945~2003) : 아~살아있다! 대한민국 경찰의 혼, 대한민국참전경찰유공자회, 월간조선, 2003
육사졸업생, 장창국, 중앙일보사, 1984

by 슈타인호프 | 2009/05/08 19:46 | 한국현대(~20XX) | 트랙백(1) | 덧글(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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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 at 2009/05/09 11:46

제목 : 구한말에 있었던 군경 충돌사건
군경 최악의 충돌, 영암경찰서 습격사건과 약간 연관이 있는 이야기라고 보아 셀프 트랙백. 앞 포스팅 본문 및 덧글에서 이야기가 나왔던 것처럼, 국가의 공식적인 무력집단으로서 군대와 경찰은 대립, 보다 부드럽게 말하자면 경쟁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그게 그렇게 심하지 않지만, 남미나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경찰 또는 경찰군, 또는 헌병대 등이 정규군과 경쟁하면서 쿠데타에 가담하거나 정권을 잡는 일이 드물지 않거든요. 우리나라도......more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5/08 19:50
이 정도면 '사건'을 넘어서 전투라고 불러도 무방할 수준이로군요....;;;
Commented by 제노테시어 at 2009/05/08 19:55
...경찰과 군대가 갈라져서 내전을 안벌인게 신기할 지경이로군요 orz...
Commented by 比良坂初音 at 2009/05/08 19:59
저 전투 때문에 지금도 군대와 경찰이 사이가 별로인걸까나요....
Commented by 계원필경&VDML at 2009/05/08 20:16
영암경찰서 전투(?)의 결론은 "기관총이 답이다"라는 겁니다(아니잖어!!!) -> 진짜 정신이 멍해지는 전투(?)군요...
Commented by seawolf at 2009/05/08 20:24
같은 나라에 서로 고양이과 강아지에 지간이 됐으니.. 결론은 둘중에 하나는 죽어야 해결된다능...
Commented by 뚱띠이 at 2009/05/08 20:41
인명,지명과 시간만 밝히지 않고 적는다면 어느 제3국가 이야기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군요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09/05/08 20:43
군경..이라는 단어도 군이 앞에 온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었다는 얘기가 사실이었나보군요..;;
Commented by 애프터스쿨 at 2009/05/08 21:14
헐... 얼마 전에 남아공이던가... 아프리카 어디에서 군인들이 경찰서를 습격해서 불태우고 경찰 수십명을 사살한 일이 있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나는데...(...)

한국에서 저런 일이...(...) 그러고보면, '민족주의'라는게 정말 근래에 생긴게 맞나봅니다...
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09/05/08 21:14
어느 나라든 내부상황이 별로 좋지 않을 때 치안의 주체가 누구냐를 두고 경찰과 군이 대립하기 마련이죠.
평상시라면 군은 국경이나 잘 감시해라-라고 할텐데 건국초기 등등 같은 경우에는 또 경우가 다르다보니...
Commented by StarSeeker at 2009/05/08 21:40
하필 4연대와 14연대라...-_-a 뭔가...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09/05/08 21:42
근데 이거 뭐 맨날 군만 쳐맞는군요 OTL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5/08 21:58
행인1//전투죠, 거의.

제노테시어//에이 또 그것까지는 아니라는.

比良坂初音//그건 옛날 이야기입니다.

계원필경&VDML//진지구축도 정답.

seawolf전쟁 치르고 좀 나아집니다.

뚱띠이//그래도 우리 조상들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MessageOnly//크 지독하네요.

애프터스쿨//음 전 그 뉴스는 모르겠어요.

계란소년//뭐 평시에도 경찰이 국경 경비를 서는 나라들도....

StarSeeker//일부러 안 적었지만...부대 내 좌익에 대한 선전여부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천지화랑//비슷한 구한말 때 이야기 해줘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5/08 22:16
구한말 때라면, 임오군란 말씀이신가요?
Commented by 카바론 at 2009/05/08 22:18
치욕이군요, 공3 수1이라고 하지만 군대가 경찰에게 지다니.
역시 대한민국 경찰들은 그 기상이 남다른 것인가. (?)
Commented by Ya펭귄 at 2009/05/08 22:18
자존심 문제도 문제이지만 건군 초기에 좌우 인력이 섞여 있었던 국군과, 공산당이라면 철저하게 대립각을 세웠던 경찰간의 색깔론적 대립도 저런 문제를 키우는 데 한몫 했을겁니다...
여순반란 사건 이후 숙군 과정에서 군관련 감찰자료를 '즉시' 던져주었던 것이 경찰이었으니.... 감정대립을 훨씬 넘어선 암투가 이미 있었다고 봐야지요....
Commented by Allenait at 2009/05/08 22:43
...진짜 전쟁이군요. 이거 원..

그런데 귀단추가 뭔가요?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9/05/08 23:40
군 장교나 경찰의 정모를 보시면 모자 챙 위로 장식띠가 지나가는데, 이게 원래는 양쪽 고정 단추를 풀어서 챙 아래로 내리면 턱끈이 됩니다. 이 고정단추가 귀단추지요, 귀 바로 위에 자리하고 있어서요. 우리나라는 모자 장식띠를 턱끈으로 쓰지 않지만 일본 자위대나 중국군은 턱끈으로 쓰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朴下史湯 at 2009/05/08 22:52
무궁화 하나가 참위(소위), 둘이 정위(중위), 셋이 정위(대위)였지요 부분 수정 부탁드립니당
Commented by 我行行 at 2009/05/08 23:05
준 내전상황으로 사상자가 발생한 중대사건인데 뒷처리는 어떻게 했는지요?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5/08 23:32
1. 사실 원시부족 식민지가 독립하는 경우도 은근히 저런 일이 많이 벌어지는 법입니다. 더군다나 한국은 원시부족도 아닌 상태에서 식민지 경험과 독립을 겪었지요. 경찰의 경우는 미 군정에서 기존의 조직을 아주 충실히 받아들였고-상당히 능력있던 최능진을 파버리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프로 젭 프로잡 논쟁같은 졸라 이경숙스러운 이야기를 동원하며 구 조직을 끌어들였지요

2. 문제는 군의 경우는 이런 시대에 흔히 잘 나오는 "군을 빙자한 유사단체가 군을 참칭하는" 세력을 흡수한 측면이 큽니다. 한국전쟁 당시 남이나 북이나 점령통치 기구가 들어올때 "어디선가 나타나는 잡스런 무장단체겸 투쟁가"들이 아주 안 좋은 일을 벌이는 거나 같은 이치이지요. 여운형이 어느 정도 손을 댄 국군준비대나 이런 유사 기구들을 "적어도 대한민국에 충성한다는 서약"만 한다면 아무런 제약 없이 받아들였으니 군의 충성심은 심하게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지요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5/08 23:36
3. 히틀러가 긴 나이프의 밤을 통해서 이런 사적인 조직들 대신에 충성심으로 뭉친 친위대를 육성했던 것과 달리 1940년대 말의 남한"군"은 이념적으로 상당히 복잡한 조직이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해서 나쁜 짓과 사바사바를 일삼는 경찰과는 달리 "외부인"이었다는 점에서도 서로 대립각을 둘수 밖에 없었지요

4. 군으로서는 여순 사건 이후의 숙군과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해서 이런 악습을 청산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연간에 필요 이상으로 커진 경찰 세력과의 대립은 저 정도는 아니더라도 지속될수 밖에 없었지요. 4.19 당시 정부의 발포 명령을 군이 지긋히 밟아주었다는걸 보면... 50년대까지만 해도 무법천지 국가라고 볼수 있지요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5/08 23:37
ps: 김동춘 교수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1960년대의 남한은 지금의 남미에서 볼수 있듯이 내란과 시위, 권력기관의 과잉 충성등등으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벌어졌을수 있다구요.(그렇다고 전쟁을 긍정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당장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대체 역사로서의 1960년대가 아닌 1940년대 후반을 보면 그렇게 틀린말은 아닙니다.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9/05/08 23:39
그런데 양측 지휘관들은 나중에 크게 출세한 분들 아닌가요. 이한림 소령은 나중에 육군 중장에 3공화국에서 건설부 장관 지낸 분이고, 정래혁 총경도 제가 아는 정래혁씨가 맞다면 다시 군으로 복귀해서 역시 육군 중장에 국방부 장관, 국회의원 지낸 분 아닙니까. 이런 큰 사고를 치고도 무사히 진급한 걸 보면 역시 아스트랄한 제1 공화국 이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5/09 02:11
rumic71//제가 아는 건 임오군란 이후, 1890년대 이야기입니다. "조선왕국" 막바지 때.

카바론//일단 조직력이나 무장에서 경찰이 도리어 더 우수했거든요.

Ya펭귄//해방조국에서의 주도권을 갖는 무력집단으로서의 갈등이 컸지요. 만약 전쟁을 겪지 않았다면, 한국군도 일본 자위대 비슷한 법적 지위에 매여 있었을 공산이 크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Allenait//다음 포스팅 참고해 주세요.

네비아찌//설명 감사감사.

朴下史湯//아아, 중간 게 부위인데 잘못 들어갔네요. 수정하겠습니다.

我行行//"좋게좋게" 끝났습니다(먼산). 이한림 소령은 무난하게 사태를 잘 마무리했다고 군 수뇌부한테 칭찬도 받았지요.

이준님//
1. 음 그 이야기는 제가 전혀 모르는 쪽인 듯. 공부를 더 해야 할 모양입니다.

2. 미군이 "사상의 자유"를 공언하면서 대원을 모집한 데서 나오는 근본적인 약점이었던 듯 합니다.

3. 그렇다고 이걸 다 숙청할 수도 없었고...서청이나 족청이 정규군으로 탈바꿈하는 걸 보고 싶지는 않..;;

4/p.s. 확실히 동의합니다.

네비아찌//그 이한림 장군과 정래혁 의원 맞습니다. 뭐, 요즘과는 여러모로 여건이 많이 달랐던 시대니까요.
Commented by 獨步 at 2009/05/09 09:37
군사정권이 끝나고 땡삼거사로나마 정권이 넘어가자 '이제 사관학교 특히 육사의 시대는 끝났다. 새시대에는 군대보다 경찰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며 따라서 이제 선택은 경찰대이다!'라는 말까지 돌았다는 것을 보면 국가의 '허가받은 무력'이라는 자리를 놓고 벌이는 군대vs경찰의 대립은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일인가 봅니다.
Commented by 소시민 at 2009/05/09 09:37
애초에 미 군정이 군대를 창설한 시초 자체가 경찰예비대(Constabulary Police Reserve)였으므로 경찰은 경비대를 자신들의 보조기구로 여기고 있었거든요.

- 미 군정으로서는 일단 국내 치안 안정이 중요하다 여겨서 경찰을 군대보다 주요시 한것인지요?
Commented by 배길수 at 2009/05/09 09:50
올해로 꼭 30년 전에 가카 옆에서 덤으로 총 맞아 죽은 경호실장이 생전에 "데모하면 그까이꺼 기관총으로 다 쓸어버리면 된다"고 하더라는 말이 있는데, [기관총 든 경찰]은 좀 불휘 깊은 듯...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5/09 12:36
그 '실장님'은 군출신이라능!
Commented by 배길수 at 2009/05/09 14:10
시땅님이 군대 출신인 건 저도 기억은 하는데

근데 군대를 동원하라고까지 했습니까?
저 말 나온 녹취록인지 뭔지를 중1때 마지막으로 읽어서 잘 기억이 안 납니다.
Commented by 어릿광대 at 2009/05/09 09:50
군과 경찰이 사이가 안좋았던 시절이 있었나 보네요..
Commented by near at 2009/05/09 11:54
이런 사태도 있었네요.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망루에다 기관총까지 걸어놓고 사격했다니 당시 무장 자체가 경비대보다 경찰쪽이 더 우수했나 보네요. 아무리 그래도 군대인데 말이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5/09 12:40
獨步//통일이 되고 군대의 위상이 낮아지면 재연될 가능성이 크죠.

소시민//전쟁을 위한 군대의 필요성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거든요.

배길수//공비라든가 공비라든가 공비라든가가 좀 신경쓰이던 시절이죠.

어릿광대//넵.

near//그 정도까진 아닌데...사기와 조직력 쪽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Commented by JOSH at 2009/05/09 14:15
> 경찰이 "일본놈들 좋아하는 사꾸라 꽃 같다"고 놀렸거든요.

당시 경찰이 할 말이 아닐텐데.. =_=;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5/09 22:37
해방 이후에 경찰에 들어간 사람들도 많았으니까요.
Commented by 명랑이 at 2009/05/18 01:06
뭔 경찰이 기관총 씩이나 가지고 무장을 했는지요...하하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5/18 02:13
그 당시에는 공비토벌이라든가 치안유지 등등의 문제가 있었거든요. 지금도 경찰서 무기고 뒤지면 자동화기 나오는 것도 비슷한 이치입니다. 다만 요즘은 정말 꺼내 쓰지는 않지만...
Commented by 에른스트 at 2010/02/03 20:28
더티해리가 한국에 연수와서 미국가면 44매그넘대신 기관총을 들고 다녔을지도 모릅니다.
Commented by 미연시의REAL at 2009/08/05 19:12
다른곳으로 퍼갈게욤! 당연하게 출처표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05 22:05
에, 퍼가시는 곳이 어딘지도 좀 알려주셨으면^^;;
Commented by 에른스트 at 2010/02/03 20:27
외국에서는 군대와 경찰이 서로 봐주고, 허물을 덮어주는 내용의 소설들을 많이 접했습니다. 그걸 보면서 분노를 많이 느꼈는데, 지금 위의 글을 읽어보면 정말로 뛰어난 처세같습니다.
Commented by 비도승우 at 2010/09/18 23:41
미군정에서 처음부터 반공색채가 뚜렷한 일본경찰출신들을 우대한데다가

업무처리능력이나 기타모든부문에서 엘리트였고 군정당국의 업무를 보조및 치안유지가

절실했던만큼 사상적검증이 확실하지않은 누구나 들어가는 경비대보다 경찰을 신뢰해서

장비지원순위나 기타모든 부문에서 경찰이 우대받은거죠. 따라서 군출신들은 배알이 꼴리는거고

역으로 일제때는 군출신앞에 경찰들이 기었는데 시대가 바뀌어 역전된거죠.

신생대한민국의 경찰이던 군대던 어차피 일제때 같은업무에 종사하던자들이 군복만 갈아입고

다시 앉아있으니 알력이야 말할것도 없구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9/19 12:29
에른스트//서로 총질하는 것보다야 야합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합니다.

비도승우//일단 창설 배경부터가 "경찰을 보조"하는 조직이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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