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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일본 공수부대, 전술 면에서의 몇 가지 비교
팔렘방 공수작전의 한 에피소드에서 dunkbear님이 이런 리플을 달아주셨습니다.



여기에 아무래도 부연설명이 필요한 듯 하여 몇 마디 추가합니다.


첫째, 독일군 크레타 공수작전과 일본군의 팔렘방 공수작전은 모두 주간에 행해졌습니다.
크레타에 독일군의 첫 글라이더가 내린 것은 1941년 5월 50일 07시 15분이었고 낙하산에 의한 강하도 그와 거의 동시에 행해졌습니다. 팔렘방에 내린 일본군의 첫 강하는 이미 말씀드렸듯이 11시 26분입니다.

그럼 다른 전투는 어땠을까요?

독일군의 경우, 대부분의 전역에서 여명에 적을 기습하는 편을 선호했습니다. 새벽에 출격하여 해 뜨기 직전 가장 방심하기 쉬운 시각에 습격하는 거죠. 노르웨이-벨기에-네덜란드 전역에서도 대부분의 공수낙하가 여명에 행해졌고, 에벤 에마엘 요새 같은 경우 05시 30분에 공격이 가해졌죠. 코린트 공정작전의 경우 오전 7시에 강하가 행해졌습니다.

일본군도 메나도 공정작전(09시 52분), 쿠방 공정작전(10시 30분) 등에서 백주 대낮의 강하를 실시했는데 이는 아침 나절에 작전한 독일군보다 도리어 더 밝을 때 강하한 겁니다. 이후 일본군이 야간 강하작전을 벌인 것은 레이테 섬의 미군에 대한 자살적인 강하공격을 벌인 것이 아마 최초일 겁니다.


둘째, 독일군이나 일본군이나 소총 없이 강하한 건 똑같습니다.
독일군과 일본군 모두 강하대원의 휴대무장은 권총에 수류탄, 대검 정도였습니다. 소총 등의 무장은 모두 별도의 상자에 넣어 별도로 낙하했죠.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팔렘방 작전에서 일본군의 장비 회수율은 아래와 같습니다. 참가병력 중 4중대만 따진 자료긴 합니다만...강하 후 2시간 30분이 경과한 시점에서의 인원 및 장비현황입니다.

인원 : 97명 중 59명(65%)
소총 : 60정 중 20정(34%)
경기관총 : 6정 중 3정(50%)
중기관총 : 2정 중 1정(50%)
척탄통 : 4정 중 3정(75%)
20mm 대전차포 : 1문 중 0문(0%)
무전기 : 4개 중 0개(0%)


이게 만족할만한 답변이 되었나 모르겠네요. 스펙상으로도 일본군 공수부대가, 적어도 독일군보다 "나을 건" 없었습니다. 실제로 지상군이 신속하게 연결할 수 있었던 전투에서는 크레타 같은 참상이 한번도 빚어지지 않았죠. 크레타는 너무 넓은 바다 건너에 있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추가 : 독일공군이 크레타 강하부대에 대한 근접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은 수송기들의 이륙이 늦어진 탓이었습니다. 발진기지인 그리스 남부의 비행장들이 워낙 건조하고 모래먼지가 많이 날리는 탓에 나중에 출격하는 수송기는 먼지가 가라앉아 시야가 트이기를 기다려야 했고, 폭격기는 또 폭격기대로 연료 사정 때문에 얼른 폭탄을 투하하고 돌아가야 했으니까요. 역시 어쩔 수 없는 문제로, 독일공군도 공수부대의 화력부족을 지상지원기가 커버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서부전선 전격전 같은 경우에는 그런 면에서의 협조가 잘 이루어졌지요.

by 슈타인호프 | 2009/03/03 00:00 | 세계현대(~20XX) | 트랙백 | 덧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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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계원필경&Zalmi at 2009/03/03 00:08
하긴 그때 크레타섬 침공 당시 병력을 상륙시킬 '독일 해군'의 세력은...(그나마 긁어모은 것도 다 영국 해군, 공군의 밥이 됬지만 말이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3 00:13
조금만 더 가까웠으면 혹 모르죠(...) 아니면 아예 백주대낮에 공군 엄호하에 넘어가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Commented by 하얀까마귀 at 2009/03/03 00:13
그보다 우선 크릭스마리네는 U보트 말곤 지중해에 아예 들어갈 수도 없지 말입니다. ^^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3 00:46
긁어모은 그리스 어선 타고 넘어가야 했으니(...)
Commented by dunkbear at 2009/03/03 00:21
잘 읽었습니다. 일본군의 무기 회수율 통계가 특히 흥미롭네요.

위에 캡쳐로 올리신 제 답글 다음으로 다른 답글 하나를 더 올렸지만 더 자세하게 찾아본 뒤에 느낀 것은 팔슈름야거의 크레타 섬에서의 피해는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수뇌부의 여러가지 오판 때문에 야기된 면이 더 크지 않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폭격의 경우는 시간 차이도 있었지만 애초부터 그 규모가 지나치게 축소된 부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답글에도 올렸지만 크레타 섬의 적군 규모를 딸랑 영국군 5천여명으로 추정하고 있었다는 점은 큰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병력은 4만 이상이었는데 말이죠... ㅡ.ㅡ;;;

또한 주간에 공수부대를 투하한 것은 기습이라는 것을 상정한 것인데 에니그마가 뚫린 이상 언제 투하하건 기습의 효과는 사라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위키피디아에 나온 바에 따르면 크레타 섬이 연합군이 에니그마 코드를 해독한 이후 첫번째로 에니그마 코드 분석을 통해서 독일군의 동태를 파악한 전투였다고 나와있더군요.

아무튼 제가 언급한 팔슈름야거의 '삽질' 표현에 대해서는 슈타인호프님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팔슈름야거가 채택한 장비들의 기술적인 문제를 고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한계를 인식하고 작전을 수립했어야 할 독일군 수뇌부의 오판이 크레타 섬의 상황을 만든 것으로 보이니 말이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3 00:46
그 외에 대안도 없었지만, 너무 희망적으로 작전을 짰다고 할 수 있겠지요.
Commented by 델카이저 at 2009/03/04 15:46
당시 공수부대 사령관이던 슈투텐트가 에벤에말 요새의 성공으로 너무 오바질했죠..-_-;; 게다가 본인이 강력하게 상신했으니 에벤에말 요새의 혁혁한 전과에 감동해 있던 히틀러가 작전허가를 내줬죠..

굉장히 어려운 임무였고.. 실제로 피해가 매우 컸지요.. 뭐 소총만 휴대하고 강하할 수 있었어도 상황이 많이 바뀌었겠습니다만..
Commented by Allenait at 2009/03/03 00:34
하기야 무기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공수부대는 그저 사격 목표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겠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3 00:47
뭐 그런 겁니다(...0
Commented by 淸年_D at 2009/03/03 02:26
인간 따로 장비 따로 낙하시킨건 당시엔 소총들고 강하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죠. 회수가 불가능할 확률도 높은데 괜히 따로 투하한 것은 아니니까요.

크레타섬에서의 손실 덕분에 팔쉬름야거가 더 이상 공수부대보다 지상전의 에이스로활약한 모순이 생기게 되었지만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3 02:33
또 공수를 아예 끊은 건 아닙니다. 따로 포스팅해볼까요^^;;
Commented by 淸年_D at 2009/03/03 02:36
공수를 그만두진 않았지만, 크레타 이후에 물량 투입은 안 하더군요.

근데 분명히 공수부대이긴 한데 왜 크레타같은 공수작전보다 몬테카시노의 악마들이 더 기억에 남는지 ;;
Commented by scharnhorst at 2009/03/03 03:25
벌지 대전투에서 소규모의 낙하를 시도했으나, 물자와 인원, 훈련도의 부족으로 처참하게 실패만을 ^^;;;;
팔슈름 야거는 역시 초반의 끗발과 지상군으로 변모한 후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 듯 합니다 ㅎㅎㅎ
소총을 들고 강하를 할 수 없다기 보다는 아마도 독일 특유의 낙하산 설계방식이 그걸 불가능 하게 했던게 조금 더 맞을 듯 합니다.
독일의 사례를 잘 연구한 미국의 경우에는 낙하산을 재설계 해서 무장까지 같이 딸려서 내려보낼 수 있었지요. 다만 다들 강하시에 극심한 프로펠러 바람으로 분실했을 뿐이고 [......]
Commented by band at 2009/03/03 05:39
2차대전 당시 낙하산은 영국식(지금까지 대표적으로 쓰이는..)과 이탈리아식(독일군이 체택한)으로 크개 나뉘는대 이탈리아식은 전투장비를 많이 장착하기 어렵다고 하죠. 그래서 간단한 경화기(권총, 수류탄,기관단총)위주만 장착하고 나머지는 장비컨테이너에 수납하는 식으로 한다고 하죠. 영국식역시 화기수납에서의 어려움은 마찬가지였었지만 이탈리아식보다는 나은편일뿐이죠.

크레타이후의 독일군사정을 보면 공수군유지를 위한 물량부족(수송기 자체의 절대적 부족)과 공세에서 수세로 돌아간 독일의 전쟁양상이 크다고 봐야갰지요. 연합군의 대규모 공수가 가능했던것은 무한물량 미국의 생산력이 뒷받침해주지 않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고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3 13:03
scharnhorst//그 외에 다른 작전도 있습니다. 43년 지중해 전선에서 행해진 코스 섬 및 레로스 섬 강하작전, 티토를 체포하기 위한 44년의 뢰셀스프룽 작전, 항독 마키단을 제압하기 위한 44년 7월의 베르코르 작전 등이죠. 베르코르 작전의 경우에는 저도 포스팅한 적이 있긴 하지만 채승병님의 아래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forum.periskop.info/viewtopic.php?t=1574
Commented by 월광토끼 at 2009/03/03 05:38
펄셤 예거의 경우는 음...
19세기의 '척탄병'이 정말로 수류탄 던지는 군인은 아니었던 것처럼
'공수부대' 라는 용어가 그저 '엘리트부대'라는 뜻에서 사용되었다고 보면[...] (농담입니다)
지금은 실제로 '낙하산 타고' 공수되는 개념은 이미 후진 개념이 되어서 미국의 101 공수 사단도 Airborne이긴 하지만 '공중 강습' 부대 정도로 운용되지 않습니까.


펄셤예거의 크레타의 삽질보다는 몬테 카씨노에서의 활약이 눈에 띄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band at 2009/03/03 05:44
101은 핼기의 도입으로 나온 공중강습부대로 전환이지만 부대원 상당수가 공수자격자들이니(82는 완편공수) 양쪽이 다 가능하다고 봐야갰죠. 현 독일연방군 공수부대역시 Ch-53을 주 수송대상으로 삼고 있으니까요.
Commented by 티이거 at 2009/03/03 06:07
Jager 자체가 이미 명예호칭인데요 뭐^^

크레타 전투는 삽질이라기보다는 독알군의 역량부족이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그래도 크레타 공수전은 영국군에 엄청난 쇼크를 안겨주었죠... 공수부대만으로 대규모 지상군이 수비하고 있는 전략요충지를 점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까요
Commented by 뚱띠이 at 2009/03/03 09:30
재미있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3 13:05
월광토끼//실질적으로는 41년 이후 거의 엘리트 보병부대...^^;;

band//옙, 그렇죠.

티이거//그러게 말입니다.

뚱띠이//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쓰레기청소부 at 2009/03/03 18:15
따로 위험한 적지에서 낙하산으로 강한 한 것 치고는 회수율이 높습니다. 만약 나무로 만든 칼빈이 쓰였다면 떨어지자마자 쪼개질텐데...(개인적 경험)
Commented by maat at 2009/03/03 23:35
현재로서는 101이나 82공수사단 모두가 공중강습부태라는 성격도 지나서 신속배치군 성격입니다. 정규 완편사단이 이동,전개하는데 보통 수개월의 기간이 필요하다보니 그이전에 (규정상 명령하달후 72시간이내에 이동을 마치고 전개한다는 개념) 투입 적의 전진을 차단, 방어선을 유지하고 정규사단이 도착 전개하면 공격에 합류하거나 재배치되는 형태의 부대로 바뀐거죠. 이 개념을 그대로 이어받아 창설된게 스트라이커 부대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여기에서도 근소한 차이가 있는데 82공수는 위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101사단은 공중강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오히려 선공,기습부대의 성격을 가지고 교두보확보에 주력하는 부대로 변모했습니다.결국 스트라이커는 101사단의 개념은 잊지못하고 82공수사단의 대체부대 성격으로 바뀌었습니다. 현재 101사단은 신속전개가 불가능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4 03:04
쓰레기청소부//괜찮으라고 잘 포장해서 던지니까요. 미군의 경우에는 총기를 개인의 몸에 휴대한 채 강하합니다.

maat//그렇군요.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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