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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렘방 공수작전의 한 에피소드
2차 세계대전 초기, 일본군의 유명한 공수작전으로 팔렘방 강하작전이라는 전투가 있었습니다. 창설된 지 이제 갓 한 달이 되지 않은 육군 정진 제2연대가 낙하산으로 강하,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의 가장 중요한 정유소인 팔렘방(Palembang) 정유소를 점거한 작전이죠. 이때 일본군은 350명의 공수부대원과 3천 명의 보병을 동원, 약 2천의 연합군 수비대를 격퇴하고 정유소를 장악합니다. 그런데 이때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었지요(...)



팔렘방의 위치



강하작전은 2월 14일 아침의 첫 강하, 15일 낮의 두 번째 강하로 이루어졌습니다. 전 병력을 한 번에 투하해야 기습효과를 볼 수 있음에도 병력을 분산시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수송기 부족이었습니다-_-;;

당시 정진단 소속 정진비행전대에는 수송기 3개 중대가 있었지만 이걸로는 모자랐기 때문에 작전을 주관한 제3비행집단은 제12수송비행중대를 추가로 정진단에 배속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병력수송도 벅찼으므로 물자 투하는 중(中)폭격기를 보유한 전대인 비행 제98전대가 추가로 배속되어 맡게 됩니다. 문제는 폭격기를 보유한 98전대는 공수작전을 위해 물자를 포장해 본 경험이 전혀 없었고 정진단 내에도 숙련자가 없었다는 거죠. 결국 엄청난 혼란이 있었습니다.



정진비행전대의 가와사키 키-56 수송기(연합군 코드네임 탈리아Thalia).
적재량 2.4t(혹은 인원 14명), 항속거리 3,300km



98전대의 미츠비시 키-21 폭격기(연합군 코드네임 샐리Sally).
폭장량 1t, 항속거리 2,700km



사실 이 작전은 본래 1년 전부터 철저하게 훈련받은 1연대가 맡아야 할 작전이었어요. 그런데 2연대가 맡았던 건, 1연대가 남방으로 이동 중 화재사고를 당한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이 타고 가던 수송선에서 항공소이탄의 자동발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고, 인원피해는 없었지만 1연대의 장비 전체가 수송선과 함께 남중국해에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때문에 본국 주둔지에 남아있던 잔여인원을 달달 긁어모아 급하게 제2연대를 창설해서 배에 태워 보냈던 겁니다. 그나마 "부대로서는" 급조한 부대였지만 선발 과정에서부터 정예를 골라 뽑았기 때문에 각개 대원들의 전투능력에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게 다행이었지요.

그런데, 애초부터 수송기 부족으로 연대본부 및 3개 중대(1~4 중대 중 3중대 제외)로 한정되었던 강하병력은 작전비행장으로의 이동 중 낙오기가 발생(34대만 작전투입)함에 따라 또 축소됩니다. 그래서 후속병력으로 제외한 3중대 외에 선봉에 선 1,2,4 중대도 전부 1개 소대씩 빼게 되지요. 하지만 이 병력만으로도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4일 11:26분에 비행장에서부터 강하를 시작한 일본군 정진 제2연대는 그날 단 하루만에 팔렘방 비행장과 정유소 두 목표 모두(비행장은 팔렘방 시가지에서 12km 정도 북서쪽으로 떨어져 있고, 정유소는 시가지 바로 동편에 위치)를 점거하는데 성공합니다. 비록 정유소의 절반은 불타버렸지만.



팔렘방에 강하한 일본군 정진대원



다음날인 15일 낮, 13:40에 2차 투하병력인 3중대 90명(역시 1개 소대 빠짐)이 강하하는데, 이때 웃기는 일이 발생합니다.

15일 강하 때는 이미 1차로 강하한 2중대와 4중대가 팔렘방 비행장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대공포와 대공기관총으로 무장하고 비행장을 방어하던 연합군은 공정작전을 지원하는 일본군 전투기 및 폭격기의 공습과 정진대원들의 저돌적인 돌격으로 이미 전날 저녁에 물러났고, 후속부대로 날아온 3중대 병력은 그냥 비행장에 착륙해서 내릴 수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3중대장의 심기가 매우 꼬여 있었다는 겁니다.

"썅! 왜 우리는 1진으로 선봉에 서지 못한거야? %#&%^@#@#@!"
"중대장님, 팔렘방 비행장에 도착했습니다. 내릴 준비를 하셔야..."
"선봉에 못 선 것도 억울한데 그냥 내리라고? 에이 썅! 강하라도 해야겠다! 조종사, 고도 낮추지 마! 걍 뛴다!"




뛰라면 뛰어주지 뭐



그러고 착륙 안 하고 부하들 데리고 점프를 했는데......뭐 이것까지는 괜찮습니다.

........문제는 비행장 및 정유소 주변에서 저항중이던 연합군 잔여병력들이 이 강하를 보고 쇼크에 빠진 것.


"일본군이 대규모 증원부대를 낙하시켰다! 이대로 버티다간 퇴로가 차단된다!"



싸그리 튀어버렸습니다.(응?)



뭐 그 덕에 일본군 정진부대는 이후 별다른 전투 없이 기다리다가 그날 오후 19시, 무시 강을 거슬러 올라온 38사단 229연대와 연결하여 40시간 이상 소요된 팔렘방 비행장 및 정유소 점령작전을 완수합니다. 이후 18일까지 제3항공집단의 비행장 전개가 완료되면서(선견대는 이미 15일 낮부터 진출) 연합군의 방어거점이었던 팔렘방 비행장은 역으로 19일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자바에 대한 항공격멸전의 거점이 되지요. 이 작전에서 일본군 공정대(공중정진부대의 준말입니다)원의 피해는 불과 전사 38, 부상 50, 실종 1명이라는 지극히 약소한 것이었습니다.

이상, 개전초 일본군의 신화 중 하나로 평가되는 팔렘방 공정작전에서의 짧은 에피소드였습니다^^


일본군의 공수작전을 그린 일본 화가의 그림 두 점은 덤~~^^
위쪽 그림은 어딘지 모르겠는데, 아래쪽 그림은 가쯔다 대쯔(勝田 哲)라는 화가가 그린 해군 낙하산부대의 메나도 공정작전(1942년 1월 11일~12일)입니다. 메나도는 인도네시아의 5대 섬 중 하나인 셀레베스(요즘은 술라웨시라고 부르죠. 메나도Menado도 요즘은 마나도Manado로 명칭이 바뀐 듯)섬 최북단의 항구 중 하나입니다.



참고자료 :

신화는 또다시 창조될 것인가! - 공정부대의 역사와 미래, 오정석, 일신사, 1991

위키피디아(영)
Kawasaki Ki-56
Mitsubishi Ki-21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Palembang
http://www.geocities.com/dutcheastindies/palembang.html


by 슈타인호프 | 2009/03/02 19:32 | 세계현대(~20XX) | 트랙백(1) | 덧글(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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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 at 2009/03/03 00:00

제목 : 독일과 일본 공수부대, 전술 면에서의 몇 가지 비교
팔렘방 공수작전의 한 에피소드에서 dunkbear님이 이런 리플을 달아주셨습니다. 여기에 아무래도 부연설명이 필요한 듯 하여 몇 마디 추가합니다. 첫째, 독일군 크레타 공수작전과 일본군의 팔렘방 공수작전은 모두 주간에 행해졌습니다. 크레타에 독일군의 첫 글라이더가 내린 것은 1941년 5월 50일 07시 15분이었고 낙하산에 의한 강하도 그와 거의 동시에 행해졌습니다. 팔렘방에 내린 일본군의 첫 강하는 이미 말씀드렸듯이......more

Commented by Joker™ at 2009/03/02 19:37
아, 항공기 부족의 이유에 대해서는 종종 일본군의 아군 수송기가 아군 전투기에 격추된 사례도 있어 운영에 꽤 신경이 들었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실제 말레이 작전 당시 해군 고관을 태운 96식육공이 육군의 1식전에 격추되기도 했지요.

헌데 아시다시피 1식전의 무장은 7.7mm 2정 (........)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3 00:17
깜박 빠트리고 안 썼는데, 메나도 공정작전에 참가한 해군 수송기 중에도 2대가 작전중(!!)에 아군 수상기에게 격추되었다는군요(...0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9/03/02 19:39
밑의 그림은 라이프 시리즈에서도 본 건데 팔렘방 공수작전이 그런 것이었군요^^.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03/02 19:39
팔렘방 투하작전엔 이런 비화가 있었군요. ㄷㄷ 만일 크레타였다면 대략 이런 강하는 엄청난 피해를 불러와서 중대장은 당장 히틀러한테 목이 메달렸을듯 -_-;;

그런데 이렇게 점령한 유전도 정작 본국의 해상수송량의 부족으로 제대로 이용해먹지 못하니 안구에 그저 육즙만이.....ㄷㄷ
Commented by Joker™ at 2009/03/02 19:51
이용못한 거 전혀 아닙니다 -ㅅ-;;

육군과 해군은 독자적으로 따로 유전지대를 점령했는데 육군이 쓸만한 유전지대를 대량 점거한 거에 비해 해군은 피해가 막심한 유전지대 - 그것도 바릭파판 하나 - 를 획득한 것에 불과했지요.

때문에 일본이 아닌 일본해군은 전시 내내 대형함선을 움직일 유류부족에 시달렸습니다.

사실 마리아나 해전에서 일본해군이 원유를 그대로 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해군에서 기름이 부족해 육군에게 애걸복걸 매달려서 겨우 얻어낸 기름이라 제대로 정제할 시간도 없었거든요.

이걸 육군만 욕할 수도 없는게 해군은 민간선 30만톤을 징발해 지들이 27톤을 가져가고 3만톤을 육군과 민간이 알아서 쪼개써라고 했을 뿐더러, 육군에게 자기네들이 쓰는 원유정제기도 빌려주지 않았어요 (......)

나중에 문제를 깨닫고 연료를 통합하기 전까지 일본육군 항공기는 해군보다 옥탄가가 5 정도 떨어지는 연료를 썼습니다 -ㅅ-;;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03/02 19:57
Joker™ 님// 아하 그렇군요.... 저는 2차세계대전을 다루는 통사류의 책들에서 일본이 남방을 점령하고도 해상수송량의 부족과 전시산업체제의 편제부족으로 이를 제대로 이용해먹지 못했다는 논조를 많이 봐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이건 단순한 해상수송량의 부족이 아니라, 자원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의 문제와 거기에 얽힌 육-해군의 고질적인 갈등이 얽힌것이었군요. 덕분에 좋은 정보 잘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Joker™ at 2009/03/02 20:05
뭘요, 저도 이리저리 긁어모아 어찌 알게 된 거지요 ;;
Commented by 곤충 at 2009/03/02 19:40
....... 그러고 보니 노르웨이에선 파일럿이 공항에 제일 먼저 착륙한 병력이 된 적이 있던걸로;;;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2 19:46
Joker™//D식 말고 일제 수송기도...하긴 일제 수송기 자체가 구미제의 라이센스인 경우가 많았으니 헷갈리기도 했겠군요.

위장효과//아, 라이프에 실린 아래 그림은 해군 공정대의 메나도 공수작전입니다. 오해가 없도록 설명을 추가해야겠군요.

들꽃향기//안습이죠(...)

곤충//끄덕.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9/03/02 20:44
아, 그건 또 메나도 공수작전이었습니까?

그런데 팔렘방, 메나도...대항 4에서는 하나같이 안톤 쿤의 세력지역인데다가 항구 점유율 획득못한 상황에서는 각 항구간을 오가는데도 무진장 어려운, 골치아픈 동네군요...(팔렘방-바타비아-반자르마신-마카사르-메나도-암보나이...으으으으)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2 21:06
대항해 시리즈를 안 하다 보니^^;;
Commented by dunkbear at 2009/03/02 19:52
그래도 급조된 일본공수부대 치고는 상당히 잘 해냈네요...

크레타섬에서 대단위 삽질을 벌인 독일 팔슈름야거에 비하면 뭐... ^^;;;
Commented by 늑대별 at 2009/03/02 20:02
안전하게 내릴 수 있었는데 그냥 "강하"를 강행했다면 나중에 군사재판감일 텐데...결과가 아주 좋았군요? 역시 무슨 일이든 반전이 묘미입니다..^^
Commented by 게온후이 at 2009/03/02 20:11
연합군 입장에서야 완전히 자라보고 놀란 다음 진정되려는 차에 솥뚜껑이 보인격이군요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3/02 20:34
말도 안되는 명령이 의외의 결과를 불러올수도 있군요.
Commented by 계원필경&Zalmi at 2009/03/02 20:46
그러고보니 일본군 수송기 중에서 쇼와 L2D는 DC-3의 라이센스형이라는...(소련은 Li-2를 사용했으니 DC-3는 모든 전선에서 사용된 수송기군요 ㅎㄷㄷ...)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2 21:09
dunkbear//수평비교를 하시면 상당히 곤란합니다;;;
크레타 섬이라는 지중해에서 몆째 가는 큰 섬을 통채로 먹는 것과 단 1개의 거점을 탈취하는 것을 동일하게 비교하시면 곤란하죠. 게다가 수비대의 질도 전혀 달랐으니까요. 불과 1년 밖에 양성하지 않은 공수부대 치고는 제법 잘 한 건 맞지만, 일본군 공수부대는 팔슈름야거에 비하면 젖뉴비입니다-_-;;

늑대별//그러게요 ㅎㅎ

게온후이//오오 멋진 비유.

나아가는자/어차피 이길 거긴 했지만 저거 덕에 더 쉬워진....

계원필경&Zalmi//그러게요 ㅎㅎ
Commented by dunkbear at 2009/03/02 22:52
목표 등을 무시한 수평비교가 아니라 팔슈름야거가 작전을 수행한
과정이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경우가 많아서 삽질이라고 한 것입니다.

크레타섬 작전 당시에도 팔슈름야거는 맨땅에 헤딩하는 입장이었지만
그렇다고 처음 공수할 때 무기 따로 병사 따로 투하하는 엄청난(?) 일을
그것도 야간이 아닌 주간에 저질러서 스스로 화를 자초했으니...

그리고 그렇게 팔슈름야거가 저지른 삽질을 수비하던 영국군은 십분
살리지 못하고 스스로 요충지를 포기하는 짓을 저질러서 패배의 단초를
제공하구요...

팔슈름야거 삽질한거 맞습니다. 일본 공수부대와 비교하건 안하건 말이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2 23:00
글쎄요. 무기 따로 병사 따로 투하한 건 일본 공수부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팔렘방 작전에서도 무기 컨테이너를 회수하지 못한 일본 공수부대원 대다수는 강하시 휴대한 권총과 수류탄만 가지고 대부분의 전투를 치렀는데요.

이건 삽질의 차원이 아니라 아직 기술이 발달되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진 어쩔 수 없는 한계였는데 그걸 삽질이라고 판단하시니 저와는 좀 의견이 다르시군요-_-;;
Commented by dunkbear at 2009/03/02 23:47
슈타인호프님의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제가 쓴 '삽질' 표현은 좀 심한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독일 공수부대가 운용하던 낙하산 방식이 영국군과 미군에 비해서 안좋았는데
(낙하산에 두 개의 스트랩을 쓰던 영국군과 미군 방식에 비해 독일군은 한 개의 스트랩을
쓰는 낙하산으로 낙하시 방향 조절을 못하는데다 중량 제한이 높아서 무기도 권총과
나이프로 제한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 작전을 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물론 무기와 물자를 낙하하는 낙하산들을 물자별로 다른 색상으로 해서 구별 쉽게 하는
등 나름대로 애를 쓴 것은 사실이지만 독일 낙하산은 근본적으로 공수병이 방향을 조절
못했기 때문에 무기가 낙하한 지점 가까이 낙하할 수도 없었고 안전하게 낙하한 뒤에는
권총 한자루와 나이프 하나만으로 적군의 사격을 뚫고 무기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특히 크레타 작전이 팔슈름야거의 첫번째 (그리고 마지막이 된) 대규모 공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독일 수뇌부의 판단은 너무도 안이했다고 봅니다. 위와 같은 제한과 문제점을
이전까지의 성공에 기인한 자만심으로 무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이미 연합군에게 에니그마 코드가 뚫린 상태여서 기습작전도 될 수 없었지만 그건 독일군이
몰랐으니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독일 첩보부에서 크레타 섬의 적군 병력을 영국군 5천여명
으로 오판한 것은 큰 문제였고 (실제로는 영국군, 호주군, 뉴질랜드군 및 그리스군까지 합해
총 40,000여명이 있었죠.) 그런 판단 착오로 대규모로 선행되었아야 할 폭격도 소규모로
진행되는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지상의 적군이 적었더라도 땅에서 착지해서 무기를 확보할 때까지는 사실상
비무장이나 다를 바 없었는데다 공수부대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서 인명손실을 최소화 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폭격만 화끈하게 펼쳤어도 연합군
들이 어느 정도 위축되서 첫번째로 투하되는 공수부대의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비록 크레타 섬은 확보되었지만 독일군이 입은 피해는 심각했습니다. 사상자가 4,000여명
으로 부상자보다 오히려 2배나 많았고 전사한 연합군은 고작 3,500여명이었습니다. 뭐,
포로가 17,000명이었지만요. 오죽했으면 크레타 섬을 확보해서 목표를 달성했는데도 독일
수뇌부, 특히 히틀러가 두번 다시 크레타와 같은 대규모 공수작전을 불허할 정도였겠습니까
만...

근데 막상 크레타에서 당한 연합군은 팔슈름야거의 대규모 공수작전에 큰 인상을 받았고
결국 1944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잘 써먹게 된다고 합니다.

아무튼 제 생각은 기술적인 한계가 존재했더라도 그걸 인지하지 못한 (아니면 무시한)
독일군 수뇌부와 팔슈름야거의 오판이 크레타 섬에서의 큰 피해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일본군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별 수 없었겠지만 팔슈름야거는 크레타 이전에 경험이라도
있었지 않았습니까...

참고로 일본군의 낙하산들이 독일 방식을 따랐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권총과 수류탄만
가지고 공수한 것이라고 합니다.

(세번째 올리는 답글이라서 세번 올렸다고 나올 겁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여러 번 가다듬고 수정하느라구요... ㅠ.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3 00:02
음, 기왕 새 글을 썼으니 그쪽에서 몇 마디 더 달겠습니다. 이렇게 다시는 줄 모르고 새 포스팅만 쓰고 있었군요;;;;
Commented by 뚱띠이 at 2009/03/02 21:17
뉴비가 대박을 쳤네요
Commented by 레인 at 2009/03/02 21:34
2월 14일이라 하길래 발렌타인 대령이 사고를 친줄(...)
Commented by Allenait at 2009/03/02 21:55
하기야 하늘에서 마구 떨어지는 낙하산이라면 꽤나 위협적이었을 겁니다.
Commented by Skibbe at 2009/03/02 22:16
어허허;;;2차대전일본군도 공수부대가 있었다니;; 여태까지 몰랐던게 부끄럽네요;...

이 사람들이 썼던 낙하산도 그냥 '낙하'의 기능만 있는 기본적인 낙하산이었나요?,,방향 전환이 불가능한,,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3/02 22:46
일본 공수부대가 이런 전과를 올린 적도 있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2 23:01
뚱띠이//상대의 자만도 있었지만...

레인//오 그러고 보니 그날!!

Allenait//안그래도 겁먹어 있었으니 말이죠.

Skibbe//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행인1//얩. 일본 공수부대도 나름 정예라, 꽤 여러 번 건수를 올렸거든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3/02 23:30
헐퀴.. 뭔가 아스트랄하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3 00:12
땡깡질도 가끔 유용하다는!
Commented by B군 at 2009/03/08 15:41
뭐 대충 덧글 분위기가 운이 좋았다(...) 정도인 것 같은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일본군의 교범인 통수강령이나 작전요무령을 생각해보면 저정도 독단전횡은 오히려 장려되는 것이었으니 저건 훈장감(...)

작전요무령 독단전횡 편 - 독단전행에 있어서는 항상 상관의 의도를 명찰한 가운데 대국을 판단하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 그 목적을 이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고 기선을 발휘, 또는 억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통수강령 독단전횡 편 - 중간 지휘관은 상급과 하급 지휘관의 사이에 존재하며 한층 더 좌우 인접의 동급 지휘관과 함께 존재한다. 고로 의지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전에서는 찬스를 놓칠 우려가 많기 때문에 중간 지휘관이 독단으로 명령을 내린 후 이것과 반대의 명령이 와 곤란한 사태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므로 중간 지휘관의 심로를 줄이기 위해 상급 지휘관은 굳건한 대국을 견지하는 가운데 앞을 내다보아 재빨리 방침을 결정, 세부사항에 간섭하지 않도록 지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8 20:17
확실히 그렇기는 하겠네요. 그런데 저 3중대장의 행동이 "낙하산의 시위효과를 노린 의도적인 행동"이라고 보긴 좀 아닌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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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킬로미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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