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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군경의 총기 교체(1946~1951), 그리고 최후의 빨치산이 가졌던 총
모처 게시판에서

"군정 시작 이후 일제 총기가 모두 미제로 교체되었다"
"48년 이후의 군경 작전에 일제 총기가 동원된 것을 본 적이 없다"
"국방경비대는 일제 총기를 가지고 있던 군정 기간에 경찰은 이미 대부분 칼빈으로 무장했다"

이런 뻘소리를 본 김에 약간 정리해봤습니다.

일단 경찰이나 군대나, 모두 일본제 총기로 시작한 것은 맞습니다. 일제의 항복 후 진주한 미군이 대부분의 일본군 장비를 폐기하긴 했지만(전차, 항공기 등은 대개 폭파 또는 소각처분, 총기류는 해몰) 남은 양이 꽤 되었으니까요. 여기서 미국의 원조가 들어오면서 차츰 미제 총기로 바뀌게 됩니다.


38식과 99식. 99식 소총의 실사영상을 보실 분은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M1과 칼빈(엄밀하게는 카빈carbine이지만 국내에서는--;;)



의외이실지 모르지만 경찰과 군대 중 먼저 미제 총기를 받은 건 경찰입니다. 대구 10.1 사건으로 치안유지를 위한 화기의 필요성이 심각해지자 미 군정이 치안유지를 위한 장비로 경찰에 칼빈을 공여했거든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요가 긴급한, 즉 공비토벌이라든가 북한과의 대치지역인 38선 인근에 우선 배치되었으며 일제 총기를 모두 대체하지도 못했습니다. 당시 경찰력은 약 2만 5천이었는데, 그만한 수를 다 무장시킬 칼빈은 들어오지 않았죠.

군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국방경비대가 처음 미제 장비를 받은 것은 1946년 9월로, 이후 미국의 원조 및 주한미군 철수시에 인도받은 물량으로 차츰 99식에서 M1으로 교체가 이루어집니다. 이때 군과 경찰이 사용한 99식은 대부분 약실을 개조하여 M1용 탄환을 넣을 수 있도록 한 US99식 소총이었지요. 99식의 7.7mm 탄환이 보급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총열은 그대로 두고 약실만 바꿨기 때문에 명중율은 별로 안 높았다고 합니다. 아예 개판-_-이라는 기록도...
물론 개조하지 않은 총기도 꽤 있었고, 38식의 경우는 구경이 6.5mm였기 때문에 아예 개조가 불가능했죠. 그럼에도 상당량이 비축되어 있었습니다. 없는 것보다는 나았을 테고, 때문에 이 시기에 국내에서 일어난 4.3사건-여순사건 등 무력충돌에서도 일제 총기가 상당수 등장합니다.

여순사건에 대하여 국방부가 발표한 "공식 전과"

사살 및 포로 -
사살 310명
반란군 포로 장교 1657명, 사병 2326명 (=> 이건 좀??? "장교"에 부사관이 포함되었는지??)
폭도 체포 409명
폭도 혐의자 체포 891명

노획장비 -
M1 911정
칼빈 142정
38식 679정
99식 863정

박격포 14문
포 8문
자동차 39대
피복을 실은 트럭 10대


육군은 그래도 주한미군의 보유분을 대량으로 공여받으면서(1948년 8월, 5만정) 전방부대 중심으로 대부분 M1을 받았지만 경찰은 M1의 지급에서는 순위가 떨어졌습니다. 1949년 봄까지는 거의 경찰이 맡고 있던 38선 방어가 그해 여름을 지나면서 군대로 돌아갔고, 후방의 치안도 거의 안정되었거든요. 국군 병력이 어느정도 확보되면서 공비토벌도 주력은 군대가 맡게 됩니다. 하지만 해군 등 후방병력은 여전히 M1을 받지 못했고, 때문에 해병대도 99식으로 첫 무장을 지급받고 편제되었습니다. 공비토벌에 투입된 병력도 후방병력은 99식을 든 사례가 있지요.

1950년 개전 시점에서도 경찰부대 상당수는 99식 소총을 들고 있었고, 일부는 38식이나 44식을 시용했는데 이들은 이런 무장으로 후방 아닌 일선에서 인민군과 싸우기도 합니다. 경찰 공식 기록에도 나오지만 대구까지 밀렸을 때 경찰이 보유한 인원이 13,000명, 보유한 칼빈은 6,000정밖에 안 됐거든요. 1950년 7월 14일에 경무부장 조병옥 박사가 내무부장관이 된 다음 경찰력이 65,000명으로 증강되고, 미국으로부터 7만 정의 화기(M1, 칼빈, 기관총, 박격포 등)를 제공받은 후(물론 이 두 가지가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았겠지요)에야 99식을 치워버릴 여유가 생깁니다. 그럼에도 1951년 겨울까지도 상당수 전투경찰대는 제식으로 US99식을 장비하고 있었습니다.

자, 그리고 군과 경찰의 무장이 영향을 끼치는 또 다른 집단이 있습니다. 바로 빨치산이죠. 빨치산의 애초 무장은 한라산 등지에 은닉되어 있던 일본군 총기나 경찰관서 및 군부대에서 탈취한 총기, 반란군이나 탈영병들이 소지한 총기 등으로 잡다하게 이루어져 있었습니다(38식이나 99식은 물론이고 러일전쟁의 유물인 30식까지 보유). 여기에 전쟁이 터진 후에는 낙동강에서 철수하다 낙오한 인민군패잔병들이 추가되면서 모신 나강이나 따발총 같은 소련제 총기까지 추가되지요. 하지만 유지보수의 문제 때문에 이런 총기들은 차츰 퇴출되고 군경으로부터 노획한 M1이나 칼빈이 주류가 됩니다. 경찰이 북한군으로부터 노획해 가지고 있던 기관총등 일부 소련제 장비를 재노획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웃기는 일은 "최후의 빨치산"이 가지고 있던 총은 미제도 소련제도 아닌 일제였다는 겁니다. 보통 최후의 빨치산으로 알려져 있는 정순덕과 이홍이는 1963년 11월 18일에 체포될 당시 모두 칼빈으로 무장했지만, <진짜 마지막 공비>는 1964년 6월 중순에 산청군 생초면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 안원도와 강우형입니다. 이들은 주력에서 떨어져 따로 방황하던 망실공비로, 삶의 희망을 잃고 방황하다가 술을 마시고 술김에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왜냐고요? 시체 옆에 총 두 자루와 빈 막걸리 단지가 있었거든요-_-;; 그런데 이들이 가지고 있던 두 자루의 총이 바로 38식이었습니다. M1도 칼빈도 아닌.

아마 그 이유는 이들이 면 지역의 소규모 지구당 소속으로 빨치산의 "주력"이 아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리산에서 잦은 전투를 벌였던 남부군 또는 각 도당의 주력부대였다면 교전의 기회가 많았던 만큼 총을 바꿀 기회도 많았거든요. 게다가 38식 소총은 탄약 공급의 가능성도 전혀 없으므로 최초 입산시 소지했던 탄약을 다 쏘고 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아마 이들 두 망실공비는 철저하게 교전을 회피하고 생존에 주력했기 때문에 38식을 가지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거겠지요.

(2019.3.27. 00:46)
이 윗부분은 틀렸습니다-_;;; 당시의 신문기사로 오늘 확인한 바, 안원도와 강우형이 발견된 때는 64년 6월 중순이 아니라 63년 10월 1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두 사람이 소지하고 있던 총은 모두 칼빈, 실탄은 40발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10월 17일자 동아일보 - 강우형, 안정도로 표기
10월 17일자 경향신문 - 안완도, 강구형으로 표기
10월 18일자 동아일보 - 안완도, 강우형으로 최종 수정

그리고 이들은 둘 다 자살한 게 아니고 한 사람만 자살, 한 사람은 사살되었습니다. 즉, 한 사람이 동료를 죽이고 뒤따라 자살했던 거지요. 정순덕 일당이 붙잡힌 게 11월이므로, 진짜 마지막 빨치산은 정순덕 일당이 맞습니다. 10년 동안 잘못된 지식을 퍼뜨려서 죄송합니다.



참고자료 :

경찰전사(1945~2003) : 아~살아있다! 대한민국 경찰의 혼, 대한민국참전경찰유공자회, 월간조선, 2003
남부군(상/하), 이태, 두레, 1988
한미 군사 관계사 1871~2002,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2

by 슈타인호프 | 2009/02/23 15:25 | 한국현대(~20XX) | 트랙백(3) | 덧글(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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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길 잃은 어린양의 놀이터 at 2009/02/24 22:18

제목 : 한국군의 소총에 대한 잡담
슈타인호프님이 한국전쟁 발발을 전후한 시기 국군과 경찰의 총기 문제에 대해서 재미있는 글을 한 편 써 주셨는데 사족을 조금 달아보려 합니다....more

Tracked from 길 잃은 어린양의 놀이터 at 2009/05/11 23:38

제목 : 경찰의 소총에 대한 잡담
지난번에 슈타인호프님이 쓰셨던 ‘한국 군경의 총기 교체(1946~1951), 그리고 최후의 빨치산이 가졌던 총’에 엮어서 씁니다. 지난 번에는 한국전쟁 직전 육군의 소총 부족 문제에 대해 썼는데 이번에는 국립경찰의 총기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죠....more

Tracked from 슈타인호프의 함께 꿈꾸.. at 2019/03/27 00:49

제목 : 진짜 마지막 빨치산이 가졌던 총에 대해
한국 군경의 총기 교체(1946~1951), 그리고 최후의 빨치산이 가졌던 총 10년 전에 쓴 저 포스팅에서 저는 이런 소리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일은 "최후의 빨치산"이 가지고 있던 총은 미제도 소련제도 아닌 일제였다는 겁니다. 보통 최후의 빨치산으로 알려져 있는 정순덕과 이홍이는 1963년 11월 18일에 체포될 당시 모두 칼빈으로 무장했지만, &lt;진짜 마지막 공비&gt;는 1964년 6월 중순에 산청군 생초면에서 자살......more

Commented by Allenait at 2009/02/23 15:28
99식을 개조해 M1탄약을 넣다니...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군요. 하기야 그때라면 일본군 화기를 구하는게 가장 현실성 있겠죠.

...그나저나 M1 탄약이 들어가는 볼트액션 소총은 생각하기 어렵군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2/23 15:29
안원도와 강우형은 정말 오래도 살아남았군요. 아마 교전은 거의 치루지 않았던듯...

그나저나 미군정 시기에 총기가 싹 교체되었다는건 또 어디의 누가 했답니까?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9/02/23 15:39
그냥 지나다 힐끗 보고 웃고 넘어갔는데 ...그 뒤에 또 토론이 있었던 겁니까?
Commented by 나도사랑을 at 2009/02/23 15:49
처음으로 들렀습니다. 개인적을 역사 부분의 글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하나 있습니다. 글 내용을 보고 무척 이 글을 퍼 가고 싶은데, 글 복사등이 안된다고 공지하신것을 보았습니다. 또 주인장 님

께서도 함부로 글을 퍼가는 것을 싫어하시는것 같고요. 제가 이글루등의 블로그를 보기만 하고 거의 쓰질 않아서 트랙백같이 블로그 관련

지식을 잘 모릅니다. 글 퍼가기도....완전히 안되고 여기서만 볼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글 자체 복사는 안되고 다만 글 주소만 다른 곳에 링

키 시켜놓기는 것은 되는지..... 몰라서요...

그래서 주인장님에게 여쭤보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제가 재밌게 읽은 글은 스페인왕위계승관련 글과 일제시대 독도 관련 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23 15:55
Allenait//M1 탄약이라고 특출난 건 아닙니다^^;;

행인1//모 게시판의 모 인사가...(먼산)

하늘이//뭐 토론 같은 건 없었고, 정리한 김에 재활용했습니다 ㅋㅋ

나도사랑을//전문복사는 곤란합니다만, 주소를 링크하시는 것은 괜찮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다행입니다.
Commented by dunkbear at 2009/02/23 15:57
오늘날에도 군대의 총기는 한번 일괄 교체하려면 몇년이 걸리는데 당시는 오죽했겠습니까...
Commented by 계원필경&Zalmi at 2009/02/23 16:11
US99하니까 베트콩이 MAT-49를 7.62mm로 약실을 개조하여 쓴 일례나 브렌건의 약실을 나토규격으로 바꾼 경우가 생각나는 군요... (그나저나 38식 소총으로 버틴 저 빨치산들은 정말 근성이라고 밖에...)
Commented by 질럿 at 2009/02/23 16:13
비교적 최근까지도 부사관은 병사와 같은 집단으로 취급했습니다. 즉 인원 구성을 언급할 때에는 장교/병 및 하사관 이런 식으로 분류를 했지요. 그런데 1990년대이후 하사관이라는 명칭을 부사관으로 바꾸는 등 부사관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노력을 하면서 인원 구성을 장교/부사관/병 이렇게 3원화하여 언급하게되죠. 그런데 이게 재미난게 제가 군복무하던 2002년~2005년까지도 완전히 정착되지 않아서 부사관 지위향상 지침에 인원구성 언급식 부사관을 병사와 별도로 언급하라고 재차 강조됩니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세 가지로 나눠서 언급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간부(장교 및 부사관)/병사와 같은식으로 2원화 합니다. 고로 1990년대 이전에는 장교/병 이런식으로 구분하면 부사관은 병에 포함된 것이고 그 이후는 (아니 적어도 2000년대 이후에는) 부사관은 장교에 포함된 것이지요. 사실 구일본제국군이나 미군에서도 {{출처필요}} 이와 같은 분류체계를 썼지요. 그런데 한국은 징병제 + 직업군인제라는 특수한 병역 제도(?)로 이렇게 된듯합니다.

+ US99식 소총에 대한 질문인데요. 99식 소총은 원래 7.7mm구경이니까 약실을 M1용인 7.62mm에 맞게 개조하여서 총열보다 작은 구경의 탄자(탄환)가 발사되는 형식인가요? 소설 "남부군"에서 빨치산의 총기가 언급된 부분에서 보기는 했는데.. 그러면 강선으로 인해 탄자가 회전하는 효과를 볼 수 없어서 명중률이 낮아진 것이겠지요?
Commented by 윤민혁 at 2009/02/23 18:28
99식용 탄약인 7.7mm 아리사카는 탄자지름 8mm, 탄자중량 11g이고, M1용 탄약인 .30-06 스프링필드는 지름 7.8mm, 탄자중량 9g입니다. 아리사카 쪽이 더 굵기 때문에 총열에 잘 안 물리는 게 맞죠. 여기에 아리사카의 탄피 길이는 58mm, .30-06의 탄피 길이는 63mm로 5mm나 긴 만큼 장약이 더 많이 들어가며, 따라서 .30-06 탄약 쪽이 훨씬 세게 발사됩니다. 그만큼 미세진동이 클 수밖에 없는데 총열은 딱 맞지 않고. 탄환이 흔들리기 딱 좋죠. 그래서 명중률이 낮은 편입니다. 여기에 99식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총(3.7kg)이라는 문제도 약간이지만 작용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23 19:20
윤민혁//상세한 보충 감사감사.
Commented by anaki-我行 at 2009/02/23 16:20
전쟁 당시 소련의 군사고문단장이었던 라주바예프가 남긴 보고서 기록에는
당시 국군 보병사단의 편제가 약 1만이 기준으로 보고 보유장비 목록에 M1 소총이 약 4,800정이었고 99식 소총이 약 940정 정도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 개시 직전 국군이 보유한 M1 소총은 약 25,500정, 99식 소총은 약 14,700정, 38식 소총은 약 9,100정이라고 나와 있더군요.

밸리에서 지나가다... 몇 자 적고 갑니다...
Commented by 윙후사르 at 2009/02/23 16:34
근데 남한의 빨치산들이 그렇게 오래 남아있었나요? 그럼 마지막 빨치산 토벌전투는 언제였나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23 16:44
dunkbear//그러게 말이죠.

계원필경&Zalmi//그만큼 잘 짱박힌....

질럿//
1. 1948년의 발표 원문인지 후대의 수정인지 확실치 않아서 그것도 문제군요.
2. 아무래도 탄이 약간이나마 헐렁하게 발사되게 되고, 일제 말기에 생산된 99식 소총들이 원체 품질이 좀 열악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anaki-我行//국군 총병력이 9만 8천에 48년 8월에 공여받은 개런드만 5만 정인데...그 수치는 좀 그렇군요. 아무래도 북한 쪽에 있다 보니 남한군에 대한 정보가 약간 미흡했는지도.

윙후사르//토벌작전은 1955년 4월 1일에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남은 공비가 워낙 적어 수색이 제대로 될 수 없었고,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하는 정도였지요.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9/02/23 18:11
US99는 일본 경찰 예비대도 쓰던 물건인데 국군도 썼군요. 99식 가지고 훈련받는 사진은 예전 조선일보 사진화보집에도 실렸었습니다.

(그 책 버린 것도 아까운 3순위...ㅠㅠ)
Commented by 뚱띠이 at 2009/02/23 18:21
저 일본군 장비 폐기하면 떠오르는 것이 옛날 다큐에 나왔던 제로 뽀개기....아이고 아까워라~~~

남아있었으면 용산박물관에 1대 정도 실물이 남아서...ㅠㅠ
Commented by B군 at 2009/02/23 18:32
뭐...개인적인 경험인데 2002년 중반까지도 모 향방사단 병기창에는 극히 상태좋은 99식 및 38식이 탄약과 함께 잘 보관된걸 보고 경악했습니다. 물론 제가 해당 작업차 갔을땐 그 소총과 기타 다른 골동품 구형 소총들을 - 모두 지금 사용도 가능할 정도로 상태 굳이었습니다 - 어디론가 옮기는 작업이었지만 말이죠 ^^;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23 19:22
위장효과//헉 탐이.....

뚱띠이//전차도 줄줄이 불태우더군요.

B군//전에 말씀하셨던 그 이야기군요. 사실 그거 적으려다가 적어도 되나 싶어서 말았었는데^^;;
Commented by 瑞菜 at 2009/02/23 20:48
핀란드 노르마 사가 일본 6.5밀리랑 7.7밀리 탄약을 아직 생산한다더군요.
핀란드 저격병은 아직 97식 저격총을 쓴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70년대 사진에서 쓰는 건 봤는데.)
러시아가 1차대전 때 38식을 80만정이나 수입했다더군요.
전후에도 핀란드 같은 군소국가들도 소량씩 수입했다고 하고.
(사실 30년식이나 38식이나 사실상 같은 소총입니다.
조금 더 만들기 쉽고 싸게, 그리고 야전에서 좀 더 튼튼히 쓸 수 있게 개량한 정도지요,)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9/02/23 21:42
그 모 게시판의 모 인사분은 평상시는 개념있는 편인데, 가끔 별 문제도 아닌 부분에 꽃혀서 엉뚱하게 파고들어가시는 일이 있더군요. 흠흠.
Commented by 윙후사르 at 2009/02/24 00:06
이 글과는 관련이 없지만 이글루스에 비상사태 선포합니다. 책사풍후가 나타났습니다! 반복합니다! 책사풍후가 이글루스에 나타났습니다!!!
Commented by WALL-K at 2009/02/24 02:51
이, 이런 망조가.... 책사풍후라니(털썩)
Commented by 캐안습 at 2009/02/24 09:21
책... 책사풍후다!! 도망쳐라!!
Commented by 瑞菜 at 2009/02/24 01:12
http://gall.dcinside.com/list.php?id=worldwar2&no=45711&page=1&search_pos=-43839&k_type=0100&keyword=99

아 이건 미국에서의 99식 사격 영상들 모음집입니다.
게시물에 영상 링크를 추가하시면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24 01:49
瑞菜//
1. 커헉, 아직도 제조하는 회사가 있는줄은 몰랐네요.
2. 감사합니다. 동영상 링크 본문에 삽입하겠습니다^^

네비아찌//사람이 완벽할 수는...^^

윙후사르//개같은 일이군요-_-
Commented by 문제중년 at 2009/02/24 13:11
38식(30식 포함)은 나름 팔린 총입니다.

이거 수입한 곳이 핀란드나 러시아외에 1차대전중에는 영국 해군도 좀 수입해가죠.
한 십만정 정도.
그리고 이게 흐르고 흘러 중동에도 가고 뭐 여기저기가게되죠.
이 영국에서 사간 30식 포함 38식들은 아라비아의 로렌스 아저씨하고도 겹칩니다.
그러고보니 영국은 6.5mm탄을 자체 생산까지 했죠.
러시아처럼.

러시아의 사용이야 원채 잘 알려진 이야기고 1920년대 소련 총기 설계자중 이거 한
번 주물럭대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소리까지 있죠.

현재 탄약의 경우는 완제품의 경우 노르마에서만 거의 만드는데...
미국내에서는 노르마 탄약 안사고도 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리로딩 하면 되니까요. (탄피 팔고 총알은 264구경으로 맞춰서 하면 된다나요.)
7.7도 같고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24 14:26
영국군까지 사간 줄은 몰랐군요, 흐으.

그런데 리로딩 말입니다, 전에 태백산맥에서 공비들이 재생탄 만드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탄피가 부풀어서 약실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깎아내야 하느니 어쩌니 하던데 총기 관련해서 본 다른 책이나 웹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전혀 없더군요.
태백산맥의 오류일까요? 있는데 제가 못 본 걸까요?
Commented by 문제중년 at 2009/02/24 17:35
지금도 다쓴 탄피가지고 리로딩 하려면 탄피를 손봐줘야 합니다.

갈라지거나 부숴지거나 변형된 부분은 없는지 확인이 중요하죠.
일단 약실에 무사히 들어가서 무사히 나오려면 손대줘야하고
이거 제대로 안되면 나중에 사고 날 수도 있습니다.
압력은 이런 부분에 집중되서 그 부분을 부숴버리고 심하면 사수도 부숴버리니.

더하여 이런 탄피 확인은 리로딩할 때만 아니라 공장에서 나온 탄을 쓴다해도
확인해주는게 좋습니다.
탄피에 보지 못한 자국이나 흠집이 있으면 약실부터 노리쇠, 헤드 스페이스등을 확
인하라는 신호니...

덕분에 리로딩할 때 탄피 손상이 비교적 적은 저압탄쪽이 환영받습니다.
(제일 대표적인게 엽총에 쓰는 산탄 탄약들입니다.)
라이플탄과 같이 고압탄의 경우는 탄피 손상될 여지가 커서 이거저거 손댈게 많다
고 하죠.

깍아내는건 모르겠는데 틀에 물려서 팽창한 부분 집어넣고 필요하면 담금질처리
등등을 합니다.
뭐 안되면 발사약을 바꾼다거나 쪼게진 부분 때내고 해서 리폼도 하긴 하더군요.
그리고 답이 없으면 버리는게 제일 좋겠죠.

약간 참고 삼아 http://en.wikipedia.org/wiki/Handloading#Maximizing_case_life
보시면 될듯 싶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24 20:52
소설에서는 부풀어오른 탄피를 칼로 깎았습니다;; 물론 너무 얇아지면 위험하니까, 그런 식의 재생은 멀쩡한 새 탄피로만 하고 흠이 있거나 한번 재생한 탄피는 절대 다시 재생하지 않더군요. 녹여서 알 만드는 데 쓰지...

늘 조언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band at 2009/02/25 01:57
80년대 지방방송국의 단골뉴스가....."000씨 집 다락방에서 발견된 ##식 소총, 일본도(군도)......."였었지요. 이 물건들의 출처를 보면 1:예전 군주둔지 근처다...2:예비군,경찰 무기고 근처다...3: 적산가옥이다.....



뭐....어렸을적 살던 동내가 전국라디오방송으로 4~5번 타니 자연스래 기억하개 되더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25 18:27
크 그렇군요^^;;
Commented at 2009/02/25 18:2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25 18:29
1. 아깝군요;; 전 그 칼은 땅에서 파낸 적 있고, 유격복은 뭔지 모르지만 색깔은 그거긴 했습니다.

3. 그게 있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어떤 상황으로 쓰이냐가 문제겠지요 ㅎㅎ
Commented by gmmk11 at 2009/03/02 04:34
아.. 전 포스팅이라 이 덧글을 보실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제가 83년생인데 어렸을 때 강원도 정선에 있는 친척집에 놀러간적이 있습니다.

멀리서 온 손님 고기대접한다고 사냥을 나가는데


나무총이랑 실탄을 쟁여서 나갔어요;


어렸을때 하도 신기해서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커서 물어보니까

'구구장총'이라고 대답해주더군요.


총알은 어떻게 얻냐고 물어보니까

당연히 '만들어서 쓰지'...

.....

이 포스팅 보고 맞춰보니 구구장총은 저 99식이고

총알을 만든다는 것도 가능한 일이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02 13:24
지나간 댓글도 다 읽으니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쨌거나 그분 용케 쓰시는군요. 탄피도 노화가 되긴 할 텐데....뭐 화약이랑 탄두는 만들면 되지만 뇌관은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예전에는 일반 수렵용 엽총탄도 자가제조로 총알을 만들어 쓰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식이겠지요.

Commented by deutsch at 2009/03/16 18:50
한국전쟁 당시 전북도경 소속 전투경찰대 17대대장을 지낸 차일혁의 회고록을 보면(실제 이 회고록을 쓴 사람은 그의 아들입니다만), 부대 창설 후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M1 소총은 대대장 "보신병"(아마 호위병이었을 듯)인 김순경이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무기로 나옵니다. 나머지 병력은 당연히 일제 구식 소총이죠. 그게 1948년 시점이 아니라 (이미 첫 머리에도 썼듯이) 1951년 ~ 1952년 정도까지입니다. 지금 사무실이라 책을 안갖고 있어서 정확한 시점을 모르겠는데, 부대 창설 후 꽤 기간이 지난 후에야 전 병력이 M1으로 교체하게 됩니다. 모처 게시판이라고 언급한 서두의 글은 잘못된 글이 맞지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16 19:02
사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글이었어요. 글 쓴 사람이 신보군이었거든요^^

그냥, 헛소리가 눈에 띈 김에 포스팅을 때운 게 실상....입니다(튄다)
Commented by deutsch at 2009/03/16 19:18
신보군이 누군지 모릅니다 ㅋ 그 게시판이 어딘지도 모르고요 ㅎㅎ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3/16 19:32
아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ㅋ
Commented by 비도승우 at 2010/09/19 00:02
약실이 폭발하기도 했다던 전설의 유에스 99식...ㅠㅠ

여순사건 관련 사진에서 본 묘한사진하나가 기억나네요.

경찰같은데 구일본군철모를 쓰고 38식을 휴대한채 논두렁에서 앉아있는사진이 그것인데요.

확실히 구일본군장비는 피복류까지도 48년만해도 광범위하게 사용된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9/19 12:31
해방 후에도 한동안은 진해 해군작전사령부 창고에 치장물자로 구일본군 부대장구가 쌓여있었다죠;;
해당 물자 소각작업(...)에 직접 참여하셨다는 분이 리플을 남기신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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