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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 게시판에서
"군정 시작 이후 일제 총기가 모두 미제로 교체되었다" "48년 이후의 군경 작전에 일제 총기가 동원된 것을 본 적이 없다" "국방경비대는 일제 총기를 가지고 있던 군정 기간에 경찰은 이미 대부분 칼빈으로 무장했다" 이런 뻘소리를 본 김에 약간 정리해봤습니다. 일단 경찰이나 군대나, 모두 일본제 총기로 시작한 것은 맞습니다. 일제의 항복 후 진주한 미군이 대부분의 일본군 장비를 폐기하긴 했지만(전차, 항공기 등은 대개 폭파 또는 소각처분, 총기류는 해몰) 남은 양이 꽤 되었으니까요. 여기서 미국의 원조가 들어오면서 차츰 미제 총기로 바뀌게 됩니다. 의외이실지 모르지만 경찰과 군대 중 먼저 미제 총기를 받은 건 경찰입니다. 대구 10.1 사건으로 치안유지를 위한 화기의 필요성이 심각해지자 미 군정이 치안유지를 위한 장비로 경찰에 칼빈을 공여했거든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요가 긴급한, 즉 공비토벌이라든가 북한과의 대치지역인 38선 인근에 우선 배치되었으며 일제 총기를 모두 대체하지도 못했습니다. 당시 경찰력은 약 2만 5천이었는데, 그만한 수를 다 무장시킬 칼빈은 들어오지 않았죠. 군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국방경비대가 처음 미제 장비를 받은 것은 1946년 9월로, 이후 미국의 원조 및 주한미군 철수시에 인도받은 물량으로 차츰 99식에서 M1으로 교체가 이루어집니다. 이때 군과 경찰이 사용한 99식은 대부분 약실을 개조하여 M1용 탄환을 넣을 수 있도록 한 US99식 소총이었지요. 99식의 7.7mm 탄환이 보급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총열은 그대로 두고 약실만 바꿨기 때문에 명중율은 별로 안 높았다고 합니다. 아예 개판-_-이라는 기록도... 물론 개조하지 않은 총기도 꽤 있었고, 38식의 경우는 구경이 6.5mm였기 때문에 아예 개조가 불가능했죠. 그럼에도 상당량이 비축되어 있었습니다. 없는 것보다는 나았을 테고, 때문에 이 시기에 국내에서 일어난 4.3사건-여순사건 등 무력충돌에서도 일제 총기가 상당수 등장합니다. 여순사건에 대하여 국방부가 발표한 "공식 전과" 사살 및 포로 - 사살 310명 반란군 포로 장교 1657명, 사병 2326명 (=> 이건 좀??? "장교"에 부사관이 포함되었는지??) 폭도 체포 409명 폭도 혐의자 체포 891명 노획장비 - M1 911정 칼빈 142정 38식 679정 99식 863정 박격포 14문 포 8문 자동차 39대 피복을 실은 트럭 10대 육군은 그래도 주한미군의 보유분을 대량으로 공여받으면서(1948년 8월, 5만정) 전방부대 중심으로 대부분 M1을 받았지만 경찰은 M1의 지급에서는 순위가 떨어졌습니다. 1949년 봄까지는 거의 경찰이 맡고 있던 38선 방어가 그해 여름을 지나면서 군대로 돌아갔고, 후방의 치안도 거의 안정되었거든요. 국군 병력이 어느정도 확보되면서 공비토벌도 주력은 군대가 맡게 됩니다. 하지만 해군 등 후방병력은 여전히 M1을 받지 못했고, 때문에 해병대도 99식으로 첫 무장을 지급받고 편제되었습니다. 공비토벌에 투입된 병력도 후방병력은 99식을 든 사례가 있지요. 1950년 개전 시점에서도 경찰부대 상당수는 99식 소총을 들고 있었고, 일부는 38식이나 44식을 시용했는데 이들은 이런 무장으로 후방 아닌 일선에서 인민군과 싸우기도 합니다. 경찰 공식 기록에도 나오지만 대구까지 밀렸을 때 경찰이 보유한 인원이 13,000명, 보유한 칼빈은 6,000정밖에 안 됐거든요. 1950년 7월 14일에 경무부장 조병옥 박사가 내무부장관이 된 다음 경찰력이 65,000명으로 증강되고, 미국으로부터 7만 정의 화기(M1, 칼빈, 기관총, 박격포 등)를 제공받은 후(물론 이 두 가지가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았겠지요)에야 99식을 치워버릴 여유가 생깁니다. 그럼에도 1951년 겨울까지도 상당수 전투경찰대는 제식으로 US99식을 장비하고 있었습니다. 자, 그리고 군과 경찰의 무장이 영향을 끼치는 또 다른 집단이 있습니다. 바로 빨치산이죠. 빨치산의 애초 무장은 한라산 등지에 은닉되어 있던 일본군 총기나 경찰관서 및 군부대에서 탈취한 총기, 반란군이나 탈영병들이 소지한 총기 등으로 잡다하게 이루어져 있었습니다(38식이나 99식은 물론이고 러일전쟁의 유물인 30식까지 보유). 여기에 전쟁이 터진 후에는 낙동강에서 철수하다 낙오한 인민군패잔병들이 추가되면서 모신 나강이나 따발총 같은 소련제 총기까지 추가되지요. 하지만 유지보수의 문제 때문에 이런 총기들은 차츰 퇴출되고 군경으로부터 노획한 M1이나 칼빈이 주류가 됩니다. 경찰이 북한군으로부터 노획해 가지고 있던 기관총등 일부 소련제 장비를 재노획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웃기는 일은 "최후의 빨치산"이 가지고 있던 총은 미제도 소련제도 아닌 일제였다는 겁니다. 보통 최후의 빨치산으로 알려져 있는 정순덕과 이홍이는 1963년 11월 18일에 체포될 당시 모두 칼빈으로 무장했지만, <진짜 마지막 공비>는 1964년 6월 중순에 산청군 생초면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 안원도와 강우형입니다. 이들은 주력에서 떨어져 따로 방황하던 망실공비로, 삶의 희망을 잃고 방황하다가 술을 마시고 술김에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왜냐고요? 시체 옆에 총 두 자루와 빈 막걸리 단지가 있었거든요-_-;; 그런데 이들이 가지고 있던 두 자루의 총이 바로 38식이었습니다. M1도 칼빈도 아닌. 아마 그 이유는 이들이 면 지역의 소규모 지구당 소속으로 빨치산의 "주력"이 아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리산에서 잦은 전투를 벌였던 남부군 또는 각 도당의 주력부대였다면 교전의 기회가 많았던 만큼 총을 바꿀 기회도 많았거든요. 게다가 38식 소총은 탄약 공급의 가능성도 전혀 없으므로 최초 입산시 소지했던 탄약을 다 쏘고 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아마 이들 두 망실공비는 철저하게 교전을 회피하고 생존에 주력했기 때문에 38식을 가지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거겠지요. 참고자료 : 경찰전사(1945~2003) : 아~살아있다! 대한민국 경찰의 혼, 대한민국참전경찰유공자회, 월간조선, 2003 남부군(상/하), 이태, 두레, 1988 한미 군사 관계사 1871~2002,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2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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