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으로 족한 것을 비난하지 말자.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언, 15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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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기 학병 지원 통계
이번에 운명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약력에 일본군 사관후보생간부후보생 전력이 포함된 것 때문에 요새 난리군요. 그래서 오랫만에 잠시 부상도 할 겸 관련 포스팅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일단, 당시 사회는 지금과 달리 교육수준이 지금보다 매우 낮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겁니다. 즉 고학력자의 수가 매우 적었지요.

때문에 일본은 1943년까지 대학생들의 입영을 유예해 주었습니다. 병역법에도 이게 명문화되어 있었어요. 1927년에 개정된 구일본의 병역법 41조를 보면 전문학교 및 대학교급 재학생 및 졸업자에 대해서는 입영을 연기해 주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구분이 없었고, 이 혜택을 이용하려는 일본인의 수도 많았습니다. 태평양전쟁 발발 후 주요 대학의 입시 경쟁률이 폭증한 것만으로도 이를 입증하는데는 충분할 거에요. 10~20대 1은 기본이고, 50대 1에 달한 학교도 있었다고 합니다.

와세다 대학 고등학원 전문부 63,000명
게이오 대학 15,000명
메이지 대학 25,000명
니혼 대학 예과 24,000명
릿쿄 대학 40,000명
주오 대학 22,000명 등
(1943년 응시자 수)


하지만 전황이 악화되고 병력자원의 부족이 심각해지자 칙령 755호 <재학생 징집연기 임시특례법>이 공포되면서 1943년 10월 1일자로 이 특혜는 취소됩니다. 그리고 10월 20일자로 <육군특별지원병 임시 채용규칙(육군성령 제48호)>이 선포되면서 일본인과 조선인을 가리지 않고 전문학교-대학교 졸업생 및 재학생도 소집을 받게 되지요. 이게 바로 "학도출진"입니다.

물론 사전 정지를 위한 작업도 있었습니다. 10월 12일자로 내각에서 의결한 <교육에 관한 전시 비상조치 방책>에서는 이공과 계통의 학생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영을 연기해 주었지만 법문계 대학이나 전문학교 학생의 경우에는 교육을 정지한다는 방침을 내려놓고 있었거든요. 바로 다음날인 10월 13일에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 담화를 통해 국가적 방침을 알릴 정도였습니다. 참, 사범학교 학생도 예외였습니다.

10월 25일에는 적령자 및 적령을 넘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1회 임시 징병검사가 행해집니다. 이후 졸업생들도 이 제한을 적용받게 되었고, 11월 20일까지 지원서를 제출하면 44년 1월 20일자로 입영하기로 수배가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총독부에서는 10월 25일자로 각 지구 대학 및 전문학교 교장회의를 열어 "솔선수범해서 몸을 바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교육에 대한 <전시 비상조치 방책 지도요강>을 만들어 "신체적 상황으로 입영치 못하는 자"에 대해서는 생산요원으로 징용할 것을 천명했고, 10월 30일에는 <전 조선 대학/전문학도 임전 결의대회>를 개최하여 "대임(大任)에 봉답(奉答)"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당연하게도 극히 차가왔습니다. 그래도 조선 최고의 엘리트였던 이 학생들 중에는 미국과 영국의 실력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은 전쟁의 결과 일본이 패망할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측도 이런 사상적 동향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면서 지원운동을 벌였는데, 4주의 지원기간 중 3주가 지났을 때(11.12 현재) 지원율은 37.8%에 불과했습니다.

학교명/적격자 수(名)/지원자 수(名)/백분비(%)

법학전문학교/40/40/100
고등상업학교/32/32/100
부산고등수산학교/22/22/100
경성제대/92/51/55.4
경성제대 예과/15/8/53.3
보성전문학교/268/43/16.0
연희전문학교/293/102/34.8
명륜전문학교/73/23/31.5
혜화전문학교/985/372/34.0

총계/985/372/37.8
- 매일신보 11월 12일자.

한편 총독부의 자문기관인 중추원에서는 11월 4일자로 이런 결의를 해 놓고 있었습니다.

"20일까지 지원하지 않는 학생에 대해서는 휴학처분을 하고, 휴학처분을 받은 자는 이미 학도가 아니므로 공장, 광산 기타 긴요한 방면에 징용할 것"

이외에도 총독부에서는 지원자를 늘리기 위하여 교장에 대한 압력, 강연회 실시 등 갖은 수단을 다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 11월 12일에서 20일까지의 남은 1주일 동안 "조선 반도 내의 적격자 1000명 중 겨우 41명을 남긴 959명"이, 일본에서 돌아온 유학생들은 "1,529명의 적격자 중 1,431명"이, 일본에 잔류한 유학생도 "과반수인 791명"이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9월로 졸업날짜가 당겨진 그 해의 졸업자 "1,547명 중 941명"이 지원했으며, 취직자 또한 "47%가 좀 넘는 335명"이 지원했습니다.

그래도 안 한 사람도 많다고 하시겠죠? 등록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총독부의 대응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오오노(大野) 총독부 학무국장 : "미지원자에 대하여 속히 황국신민으로서의 엄격한 재연성을 가하여 전시 생산력 증강상 필요한 방면에 징용하기로 결정하였다."(1943.11.21 기자회견)

뭐, 간단하게 하기로 했으니 이상으로 끝.

참고자료 :

일본근대스펙트럼 vol.03 - 일본의 군대 : 병사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 요시다 유타카, 논형, 2005
현대한국사 vol.5 - 광복을 찾아서(1919~1945), 편집부, 신구문화사, 1969

by 슈타인호프 | 2009/02/17 18:37 | 한국현대(~20XX) | 트랙백(1) | 핑백(2) | 덧글(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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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 at 2009/02/17 20:42

제목 : 학병 지원을 거부한 학생들의 운명은?
태평양전쟁기 학병 지원 통계에서 뒷이야기를 써야 할 것 같아서; 뭐 주재소에 끌려가서 두들겨 맞고, 아버지가 유치장에 들어가고, 징용을 피해 지리산에 숨고(*)...이런 이야기는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공식적인 조치"는 아니니까 말이죠. 여기서는 총독부가 시행한 공식적인 조치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이때 지리산에 숨은 학병/징용 기피자의 수는 꽤 많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좌익이었거나 후에 좌익으로 기울어 해방 이후 다시......more

Linked at ☆:*:.. 시베리아의 눈 ... at 2009/02/19 23:33

... 태평양전쟁기 학병 지원 통계모친께서 언젠가 해 주신 외할아버지의 이야기군산(당시엔 옥구) 어느 변두리 시골마을의 가난한 농촌마을에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그 청년은 나이가 들자 총독부 ... more

Linked at 2012年 역시 대오각성은 무.. at 2012/12/02 23:45

... 태평양전쟁기 학병 지원 통계</a> &lt;- 여기서 트랙백 트랙백한 글은 슈타인호프 님의 포스팅인데, 읽다가 한마디 거들어 보고자 한다. 1. 식민지 조선은 1942년 5월 9일의 &lt;조선징병제 실시령&gt;이 발포되기 전까지 식민지 조선인은 '병역 의무'가 없었다. 이는 &lt;대일본제국 병역법&gt;이 '일본 내지 호적법의 적용을 받는 이들에게만'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즉 제국 이등신민 ... more

Commented by Ha-1 at 2009/02/17 18:39
뭐 그 당시에 살아 있으면 전부 대상자라고 봐야겠군요.
Commented by 소시민 at 2009/02/17 18:45
역시 자발적 지원이 아닌 강제 징용이었단 말씀이군요. 김수환 추기경의 건은...
Commented by 정호찬 at 2009/02/17 18:46
근데 이 떡밥이 사라지는 그날이 올까요? -.-;
Commented by Allenait at 2009/02/17 19:00
..역시 강제 징용이었군요. 하기야 43~44년대 일본이라면 모병은 별 의미가 없던 때였을테니까요.

제가 볼때는 저 떡밥은 꽤 오래 나타날 것 같군요. 깎아 내리려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Commented by Joker™ at 2009/02/17 19:15
뭐, 무려 일본사관학교 출신이라고 뻥치는 또라이들도 있는뎁쇼 뭘 ^^

그 양반들 머리로야 구 일본군 말기에 장교보충용으로 시작된 '예비학생' 제도가 뭔지도 알 턱이 없을테니까요.
Commented by 곰돌군 at 2009/02/17 19:16
개인적으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TSUNAMI at 2009/02/17 19:22
'일제'란 명칭과 연관되면 흥남 앞바다 원폭실험도 사실이라고 바로 믿어버리는 화상(이 님하들은 리처드 로즈의 '원자폭탄 만들기'를 읽어야 함)들이 부지기수니 저 정도는 '카와이'하다고 생각해야지유 뭐.

Commented by 漁夫 at 2009/02/17 19:29
친일 떡밥은 이제 좀 그만 보고 싶은데 끈질기게 안 없어지는군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17 19:30
글 잘 보았습니다~
Commented by 바보 at 2009/02/17 19:50
일제의 강박에 의해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 모두를 친일파로 몰아붙인다면 일제시대 지도자중에서 친일로 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식의 사고로 보면 해외로 망명해서 독립운동을 했던 소수의 몇몇사람들(그 중에서도 일경에 체포되어 국내로 다시 끌려오지 않은 사람들)만이 독립운동가가 됩니다.

일제 말기 탄압이 극에 달했을때 친일적인 발언을 한번이라도 했던 사람들 중에는 안재홍 선생, 조병옥 선생 같은 우익 인사 뿐만아니라 진보 좌익의 대부였던 여운형 선생도 있었습니다.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2/17 19:55
1. 재밌는건 김추기경껀이 "세상에 첨 나왔"던건 금와왕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안 좋은 이야기를 한 후라는 거지요. 금와왕의 추종자들이 크게 퍼뜨린겁니다. 의외로 괴승 연간에 괴승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할때는 안 꺼내었다는 겁니다만

2. 좀 다른 케이스지만 사병중에서도 -그러니까 좀 나이먹고 들어간- 간부 후보생 비슷하게 차출된 건도 있지요. 인간의 조건에 나오는 주인공(그리고 작가 자신도) 이런 케이스로 갈 뻔했습니다. -갔다면 오끼나와 어디 구석에서 백골이 되었겠지만요(하기야 안 갔어도 140명중 4인의 생존자에 들었습니다만)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17 20:06
Ha-1//그런 거죠.

소시민//지원이 지원이 아니라는....

정호찬//일본이 바다속에 가라앉는 날.

Allenait//영원히 존재할 겁니다.

Joker™//사관학교-_-;;

곰돌군//감사하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TSUNAMI//정말 뇌들이 비었달까요.

漁夫//일본이 가라앉아도 안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耿君//감사합니다^^;

바보//정말 깨끗한 사람은 거의 없죠. 이름깨나 난 사람들은 죄다...

이준님//
1. 그래서 제가 그쪽으로 기울어질 수가 없습니다.
2. 간부후보생 제도 자체가 사병을 대상으로 시작했지요.
Commented by 피그말리온 at 2009/02/17 20:35
어딘가 보니까 무슨 사진에서 뭘 둘렀고 뭘 찼고 이래서 자원이다 이러고 있는 사람들도 있던데 말이죠.......
그런거 들먹이며 어떻게든 장교로 자원했다 이런걸로 적지않이 알려져서 곤란하니.....
Commented by 르-미르 at 2009/02/17 20:46
강력한 마법의 단어 '일제' orz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17 20:54
피그말리온//뭐 깎아내리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뭔들 안 걸리겠습니까.

르-미르//빨갱이보다 막강하죠 요새는.
Commented by . at 2009/02/17 20:56
친일은 이래서 단순한 문제가 아니죠. 정말로 당시에 생각이 있던 사람은 징병될 것 같으면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했겠죠? 수동적 친일이 과연 능동적 친일에 비해 죄가 적은 것인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Commented by at 2009/02/17 21:27
한국에 남아있던 놈들은 전부 다 친일파! 으하하하!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2/17 21:39
징병 대상자가 만주로 도망쳐서 독립운동하면 그 가족들이 조선에서 잘 살겠군요 == 정말 한반도에 남아 있던 모든 조선인, 일제의 통치에 정항하지 않은 절대다수의 조선인 또한 모두 수동적 친일이 됩니다.

그냥 친일하지 않은 사람부터 세는 편이 빠르겠군요.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09/02/17 23:45
왜요? 큐슈에 징용 가서 돈 벌어온 우리 외할아버지도 수동적 친일파라고 해 보시죠? -_-;;
Commented by 깽판 at 2009/02/18 00:31
말그대로 국내에 남아있던 조선인은 모두 친일파군요. 그럼 너의 할애비 할미도 다 친일파.
게다가 수동적이랑 능동적이 차이가 없다고 했으니 윗글 쓰신 님은 일단 조상님 묘 부터 파해치고
남들 보는 앞에서 당당히 친일파 청산을 해주세요.
Commented by 섹시미롹양 at 2009/02/18 08:54
만주로 가면 또 조국을 등지고 편히 살려고 갔다고 까시더군요..
Commented by 바보이반 at 2009/02/18 12:24
니가 가라. 만주.
Commented by TSUNAMI at 2009/02/17 21:00
당시에 생각이 있던 사람은 징병될 것 같으면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했을 거라고 하는데, 1932년 이후로 만주는 관동군 통제하에 있던 시기인데, 만주 어느 곳에서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지 참 궁금합니다그려?
Commented by -_- at 2009/02/17 21:15
만주가 중동 어딘가에도 있나보죠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09/02/17 23:46
김일성 장군![먼바다]
Commented by theadadv at 2009/02/17 21:12
그러고 보니 오늘자 중앙일보에선, 윗선 사제가 가라고 해서 갔다고 써있던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배치된곳이 유황도 근처 작은 섬들이라니 참...
Commented by 바보이반 at 2009/02/17 21:15
시게미쯔 기나미, 야나기사와 시미니, 가니이 희서니, 노무라 무혀니 등의 일본계 한국인 정치가들을 다수 보유한 그분들이 제조해 퍼뜨린 떡밥이 참 오래도 가네요.
Commented by ZeroDevice at 2009/02/17 21:49
... 일제 시대의 상황을 얼마나 잘 알고 저런 황당한 의견을 내놓았을까...
... 에휴. --;
Commented by 타누키 at 2009/02/17 22:10
잘봤습니다~ 핵잠이 부딛치니 부상하시다니....수상수상...+_+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2/17 22:16
그러고보니 한국전 때에도 대학생은 징집면제였던가 연기였던가....

아무래도 "지원"이란 단어는 예나 지금이나 "억지로 시키다"로 읽어야 하나 봅니다.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09/02/17 23:46
야자가 어디 자율학습입니까. -_-;;
Commented by 瑞菜 at 2009/02/17 22:21
김수환 추기경은 치치지마에서 대공포 쏘다 왔는데.....
이런 건 있다더군요. 젊어서는 나름 불같은 성격이라
훈련소 면담 때 속에 말을 다 했더니 교육 이수 성적이 2등에서 최하위권으로 떨어져
간부후보생 지원 기회를 못 잡았다고 그전 회고록에서 그랬답디다.
Commented by 마나™ at 2009/02/17 22:27
한번 청나라에 끌려갔다 오면 화냥년~ 이 생각나는군요.
Commented by 침묵제독 at 2009/02/17 22:28
추기경님의 깍아내리는 쪽의 대부분의 이유는
이준님이 말씀하신대로, 금와왕을 '인정'안해서 라더군요.
(아고라 댓글에 떡하니 떠 있던...-.-;)
이번 명동성당 사태까지 끼어 넣더군요.
(아니 김수환 추기경님은 작년 8월부터 노환으로 입원중이시던 분이고,
현 서울대교구장은 정진석 추기경님인데도....-.-;)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17 22:30
.//입영했다가 중국 가서 탈영한 사람은 어떻게 보세요?

풉//그런 거죠~

Esperos//그냥 다 죽었어야?

TSUNAMI//놈놈놈의 만주인가보죠.

-_-//그럴려나요 ㅎ

theadadv//치치지마라고 들었습니다.

바보이반//영원히 사라ㅈㅣ지 않을 거기도 합니다.

ZeroDevice//교조주의죠, 그것도.

타누키//전 원자로 따위 안 먹는다는~~

행인1//연기였을 겁니다 아마.

瑞菜//그게 후에는 다행이었을지도^^;

마나™//딱 그거죠 뭐.

침묵제독//그래서 제가 그쪽을 좋아할 수 없습니다.(2)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09/02/17 22:51
당시 일본군이 - 내지에 한해서지만 - '대학생'으로 대표되는 엘리트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사상에 대해 짤막하게 써 보고 싶은데 시간도 실력도 없군요. 흐헝헝.
Commented by 깽판 at 2009/02/17 22:51
그러고 보니 문득 궁금해지는게

이 글을 아고라에 올리면 반대표가 많을까, 찬성표가 많을까?

금와왕 추종자들의 반응이 과연 어떨지....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9/02/17 23:11
추기경의 고향이 대구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으니 학병 경력은 더 큰 비난 거리겠지요. 온라인에서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무책임한 비난은 정말 지겹습니다.
Commented by 이런거였군요 at 2009/02/17 23:16
그것도 모르고 신자라면서 의구심을 품었네요;
아놔 십숑키들. 조선일보 욕하면서 조선일보랑 똑같은
짓거리나 하고.

이걸로 말문 막히면 또 말년의 발언으로 왈왈.
그렇게 까고 싶으면 장례미사라도 좀 끝나고 할 것이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겁니까 그 인간들은.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2/17 23:39
일제하피해를 조사하는 위원회(정확한 명칭은 기억이 안나네요.)에서도 지원병들은 광의의 징집으로 해석해서, 일제하 피해로 인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근래의 발언에 대해서 언잖은 마음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깔게 아닌데 까는건 좀 그렇군요.
일본군 장교나 경찰정도면 모를까, 학도병 정도 가지고 친일파라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09/02/17 23:47
아 그리고 호프님, 놈놈놈의 만주도 관동군 통치하였심 -_-;;
Commented by 소년 아 at 2009/02/18 00:05
음, 슈타인호프 님의 시의적절(?)한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저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학도병이 친일이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그 후의 대한민국 민주화와 정의를 드러내도록 하기 위한 김수환 추기경의 노력이 과소평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김구의 대한민국을 위해서 추진한 많은 독립운동 및 정치적 활동들이 젊은 시절 혈기에 못이겨 살인을 저지른 죄로 과소평가 될 것들은 아닌 것 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덧글 말씀드리면, 저도 까이게 되는건가요?ㅎㅎ(만약 그렇다면 미리 죄송>_<;)
Commented by 독고구패 at 2009/02/18 00:17
딴 얘기지만,
수영의 박태환 선수도 젊은 시절(...)에 부정출발로 실격당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때 그 젊은 날의 사건 하나만으로 박태환 선수의 전체 '커리어'를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18 00:42
천지화랑//일본군이 좋아한 자원이야 농촌 출신의 순박한(...) 청년들이었지요.

깽판//저도 모르겠습니다.

길 잃은 어린양//영원히 안 사라질 듯 합니다.

이런거였군요//그저 누군가를 까면 즐거운 듯 합니다.

나아가는자//그러게 말입니다.

천지화랑//에이 거기 나온 독립군은 하나도 체포 안 됐잖삼. ㅋㅋ

소년 아//설마요 ㅎㅎ 좋은 말씀 해주셨어요^^

독고구패//그러게 말입니다.
Commented by 찬찬찬 at 2009/02/18 01:16

그런데 그 당시에 거의 징병에 가깝게 등록 신청한 학생들이라고 인정을 하고

다만 머리속은 어떤 생각을 하였겠는가 궁금할따름입니다.

애국애족같은 마음은 있었을까요?

우리가 왜 이 길을 택해야되나고 생각했을까요?

부득이해서? 아니면 출세를 위해서?

대학생들이라면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하여 봉사하게된다는 도리는 알것인데 ???

상황은 상황이고 선택은 또 다른 문제가 아닐까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18 01:31
그거야 지금 우리 입장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죠. 지금 시점에서 키배를 뜨면서도 상대가 정말 소신이 있어서 그러는 건지 알바인지를 알 수 없는데 과거 사람 머릿속을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각 개개인의 배경과 행동에서 유추할 뿐...
Commented by   at 2009/02/18 09:51
답댓글이 예술이군요 ㄲㄲㄲ
Commented by ㅡㅡ at 2009/02/18 07:36
애써 강제징용으로 몰고가려는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어쨌건 사관후보생으로간건 최소한 강제라기보다 병사로 가서 총알받이로 죽느니 택한 현실과의 타협인건 확실합니다.
저걸 강제징용이라고 자꾸 우긴다면 정말 강제징용되어서 태평양전쟁에서 총알받이로 죽은 사람들은 많이 억울하겠군요.
미화해서 성자 만들고 싶으신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성자의 과거가 순백할 필요는 없지않습니까?
현실하고 타협한걸 한번 인정만 하면되는데
사관후보생으로 "강제징집" 당했다고 우기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카구츠치 at 2009/02/18 13:31
미화해서 성자 만드는 걸로 보이시는 건 많이 안타깝네요.
다분히 편가르기 끝에 매도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실은 이러했다... 정도의 글로 보이시지는 않으시는지요.

그리고 죽음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죽으러 가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건 너무 고결한 척도를 인간사에 대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결함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렇게 하기는 힘들더군요.
Commented by ㅡㅡ at 2009/02/18 07:41
싸움은 우기는 사람들끼리 일어납니다.
저정도 부일을 가지고 친일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걸 또 부일도 아니고 정당한 행동이었다고까지 미화하려는 사람이 있으니까 당연히 싸움이 일어나죠.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법입니다.
Commented by ㅡㅡ at 2009/02/18 07:44
여기 글대로 사관후보생으로 안갔다면 병사로 강제징용됐겠죠.
강제징용이란 말은 그때 쓰면 됩니다.
사관후보생으로 안갔으면 병사로 강제징용됐을거였기 때문에 사관후보생으로 간것도 사실 강제로 간거다. ㅡㅡ

이건 우기는거죠.

Commented by 이래서야 at 2009/02/18 12:58
갱상도 수꼴들이 친일파 소리를 안들을수 있나.
노통님 말씀대로 부끄러운줄을 알아야지.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18 13:44
ㅡㅡ//글쎄요. 전 학병이 반강제였다고 하기는 했어도 부일도 아닌 정당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한 적은 없는데요? 말씀대로, 학병이 적극적인 친일과 똑같다는 주장을 하는 분들이 안 계셨다면 저는 이걸 썼을까요?
그리고 죄송하지만 병사로 뽑히는 건 징병이고, 징용은 노무자로 끌려가는 겁니다. 또한 일본군 사관후보생은 사관생도 출신을 가리키는 말이니 혼동 없으시길 부탁드립니다. 간부후보생이 맞는데 저도 본문에서 실수를 했네요.

이래서야//아 네.

Commented by scharnhorst at 2009/02/18 14:03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그러면 어찌되는건지 모르겠군요. 답답한 사람들 같으니.....
히틀러 유겐트 출신으로 루프트 바페에서 근무한 건 어찌하려고..... 교황청 가서 항의라도 하라고 하는게 좋겠군요 'ㅅ'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18 14:36
나치가 되는 거죠 뭐^_^
Commented by 카카오81 at 2009/02/18 14:42
링크 신고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18 14:43
넵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쓰램 at 2009/02/18 19:31
위의 ㅡㅡ님의 말씀을 보면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강제로 끌려간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것이 저만의 착각일런지요? 앞의 제 전제가 사실이라면, 떳떳한 과거는 아닌것 같네요.(물론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사람의 일생에 티끌만한 흠조차 없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말이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18 23:28
강요하지 않는데 들어간 것과는 엄연히 차이가 있겠죠.
Commented by scharnhorst at 2009/02/19 12:50
할머님의 말씀을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일본놈들이 안가면 가족을 다 죽인다고 협박하는데 안가는 놈이 어디있어 ! 그 당시에 살아나 보고 왈가왈부 하라고 해!" 라고 하시는 [.....]
Commented by 키엘 at 2009/02/19 16:07
http://www.minjok.or.kr/kimson/home/minjok/bbs.php?id=notice&q=view&uid=403

민족문제연구소 공지. '말이 지원이지 사실상 강제징집이라능..'
뭐 민족문제연구소 따위 못 믿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면 할 수 없고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2/19 18:49
scharnhorst//저 역시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함부로 할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키엘//그래도 지원이라는데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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