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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의 오인사례(1) - "소련군이 왔다!"
전에 어느 분인지 요청한 적이 있었죠? 그래서 책 넘기다 생각난 김에 포스팅해봅니다. 장래 몇 편까지 나가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그럼 첫 이야기 시작!



한국전쟁 당시 피아식별은 참 골치아픈 문제였습니다. 미국이 막 참전한 전쟁 초기에는 미 공군기의 오인폭격으로 한국군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고, 그 이후로도 수시로 벌어졌습니다. 한국군이 한국군을 중공군으로 오인하고 공격하는가 하면 미군끼리 총질을 하고, 한국군하고 미군도 서로 총질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좀 개그스러운 사례로 북한군이 유엔군을 보고 소련군이라고 생각한 사례가 있지요.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하던 시기에 호주군 1개 대대를 포함한 영국 27여단 소속의 영국군과 북한군이 사리원에서 마주쳤는데 북한군은 영국군 병사들을 보고 자기들을 도와주러 온 소련군인 줄 알고 영국군은 상대가 한국군이라고 생각해서 화기애애한 환영무드가 벌어졌습니다.



호주 육군 3연대 3대대 B중대 4소대 호주군 병사들과 소대장인 레오나드 몽고메리 소위, 1951년 가평.
사진출처 : e-bay



당시 27여단은 미군과의 속도경쟁 끝에 10월 17일 밤에 사리원에 입성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멋모르고 밀려든 인민군 패잔병도 한 차례 쓸어낸 참인데, 또 다른 인민군 부대 하나가 개성 혹은 해주에서 철수해서 사리원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어둠이 밀려든 뒤인데다 복장을 식별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마침 현장에 없어서 호주군은 이 병사들이 미 24사단 소속 카츄사인줄 알고 인민군은 영국군이 소련군인 줄 알았죠. 서로 자기편인 줄 알고 반가와하면서 담배 바꿔 피우고, 술 나눠 마시고, 어떤 인민군은 자기 모자에 붙은 별을 떼어서 기념으로 주고...뭐 이런 분위기였습니다.



요런 별 말이죠.
(사진출처 : http://blog.yonhapnews.co.kr/_File/0/41/2006/07/30/20060730212557.JPG)



그런데 박격포중대 중위 하나가 보니 왠지 모르게 이 "카츄샤"들의 태도가 이상한 겁니다. 아무래도 수상한 기분이 들어 유심히 살피고 있는데...자기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가는 "카츄샤"들이 죄다 이런 소리를 하네요?

"야, 이제 살았다! 소련군이 오셨어! 스탈린 동지 만세!"


.......중위는 한국어를 몰랐지만 "Stalin"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지금 상황이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지 깨닫는 데 더 이상의 힌트는 필요없었고, 중위는 조용히 자기 직속부하들을 불러모은 다음 호령과 함께 멋모르고 좋아하는 인민군들을 때려잡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병사들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닫자마자 곧바로 동참했으므로 환영잔치 자리는 곧바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이들은 인민군 패잔병 150명을 죽이고 자기들 전사자는 1명 밖에 내지 않는 대승리를 거뒀습니다. 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은 이 사건에 대해 보고받고 매우매우 즐거워했다(....)고 합니다^^;;

한편 여단 본대가 이렇게 "놀고" 있는 사이 27여단의 3대대인 호주군은 사리원 북방 6km 지점에서 야간경계에 들어가려다가 인민군과 조우하자 한국군 통역장교를 전차 위에 세워 "너희는 완전히 포위당했으니 항복하라!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고 소리치게 했습니다. 그리고....총 한 발 안 쏘고 1982명의 인민군이 항복했습니다.


영국군이 저러고 있는 사이, 경쟁자인 미군의 제7기병연대(네, 그 제7기병대입니다)는 1대대를 선봉으로 해서 사리원 옆의 샛길로 빠져 황주를 향해 북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로에 들어서는 순간 인민군의 사격이 시작되자 1대대장 크레이노스 중령은 기발한 해결책을 생각해냈습니다. 한국인 통역 장교와 미군 몇 명을 차에 태워 인민군 쪽으로 보낸 다음...

"쏘지 마라! 우리는 소련군이다! 모두 내려와라!"

.......라고 소리를 지르라고 했죠. 그런데 그게 통했습니다!! 통역장교의 그 말을 의심없이 믿은 인민군 1개 소대가 정말로 산에서 내려와버렸고, 이들은 코앞까지 가서 포위당한 다음에야 상대가 소련군이 아니라 미군인 것을 알았습니다. 1명은 끝까지 반항하려다 사살당했지만(아마 군관이 아니었을까?) 나머지는 순순히 손을 들었고, 다음날 아침 크레이노스 중령은 이 포로들을 길가에 죽 세워 주변에 있는 인민군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걸 보고 "제 발로 걸어와서" 항복한 인민군이 1700명 가량 되었다고 합니다. 재밌는 이야기죠^^;

참고자료 :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 제2부 참혹한 전쟁, 박승수, 금강서원, 1990

by 슈타인호프 | 2008/12/21 15:52 | 한국현대(~20XX) | 트랙백 | 덧글(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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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nishi at 2008/12/21 15:57
삼국지에 이런 애피가 있었던 것 같군요. 정말인진 모르겠지만 그냥 느낌이 그렇네요.
Commented by tore at 2008/12/21 16:04
삼국지라면 여포vs조조 전 그것 말씀임미까(갑자기 삼국전투기가 땡기네요)
Commented by 뚱띠이 at 2008/12/21 16:04
쿨럭 쿨럭.....

한국전에서도 믿기 힘든 에피소들이 많았군요
Commented by 오토군 at 2008/12/21 16:06
저 '포로획득' 이야기를 들으니까 예전에 동호회분이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국전 초기에 '밥 얻어먹으러' 탈영해서 인근 미군부대로 가던 한 병사가 우연찮게 북한군 전차 한대와 마주쳤는데 이 병사는 뭔가 이상하다 싶어 뒤돌라서서 도망가고, 전차 승무원들과 거기 타고 있던 군관은 이 병사의 '기행'에 자신들이 매복에 걸려 잡힌 거라고 지레집작하고 순순히 '달리는 병사 뒤를 죽어라 뛰어' 따라잡아서 포로가 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마침 전차를 얻어타고 있던 그 군관이 고급참모였다나.(…)
그것 말고 하나 또 들었던건 개전 초 미군 선봉대가 T34와 조우한 뒤 그날 밤 "우린 티이거와 조우했다." 라고 기록했다거나 말이지요.-_-;;;(티이거 쇼크가 한국전가지 가다니…)
Commented by 계원필경 at 2008/12/21 16:10
결국 서양인들은 다 소련인이라는 것인가요...(결론은 강철의 대원수 스딸린의 명예 회손 혐의로 고발 및 무단 도용을 금지합니다...랄까요)
Commented by 요조 at 2008/12/21 19:44
영국군 모자가 좀 빵모자처럼 생겨서 그런 게 아닐까요, 군복도 카키색이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21 20:14
소련군 철모는 전혀 안 닮았습니다. 군복 색깔도 그렇고요.
Commented by 은현 at 2008/12/21 16:11
........아.. 동족 전쟁의 코미디인건가요 -_-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8/12/21 16:23
이 이야기를 보니, 남경함락 때, 일본군이 나타나 항복을 <접수>해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는 중국군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나는군요. 나타난 일본군은 그 인간들한테 구덩이 파라고 하고 다 묻어버리고 떠났다죠...-_-;;
Commented by 애프터스쿨 at 2009/05/08 21:57
헐-_-;;;
Commented by 피그말리온 at 2008/12/21 16:24
이거 좀 많이 웃기네요......ㅋㅋ
Commented by 윙후사르 at 2008/12/21 16:25
어째 좀 믿기 힘든 상황들뿐이네요. 아니 한국군이랑 북한군도 아니고 영국군이나 미군도 저렇게 헷갈리면 어쩌라는 건지...
Commented by 에르네스트 at 2008/12/21 16:43
가능성은 있지요~ 서양인쪽에서는 한국군이나 북한군이나 얼굴 생긴것은 같고 어짜피 말은 못알아들으니 옷식별 못하면 이게 북한군이야? 한국군이야? 하고 있을만 합니다.
Commented by 소시민 at 2008/12/21 16:45
이들은 인민군 패잔병 150명을 죽이고 자기들 전사자는 1명 밖에 내지 않는 대승리를 거뒀습니다.

- 그 전사자 한분에게 묵념을...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21 17:01
nishi//적으로 위장하는 에피는 몇 개 있습니다.

tore//그거 말고도 조조군이 원소군으로 위장하기도 하고 그랬지요.

뚱띠이//은근히 웃기는 게 많습니다.

오토군//음 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데...찾아봐야겠군요.

계원필경//소련군이 도와주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소련군으로 보였겠지요.

은현//음 그것과는 좀 거리가....

초록불//소설적 창작이 가미되기는 했지만, 김경진이라는 작가님의 "임진왜란"이라는 소설에서 남원성 함락 부분을 보시면 더한 경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피그말리온//웃기죠(먼산)

윙후사르//한국인이 아니니까 더 그런 겁니다.

에르네스트//정답이십니다.

소시민//묵념(...)
Commented by 곤충 at 2008/12/21 17:04
그러고 보니 오늘은 스탈린 탄신(....)일이 더군요.
전장에서 오인사격 못지 않게 적을 아군으로 아는 경우도 많으니;;;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12/21 18:59
"코쟁이는 다 로스께" 로군요.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게 아니라 포로 천 명을 잡는군요.
Commented by Skibbe at 2008/12/21 20:02
당시 북쪽에서 코쟁이는 로스케,,남쪽에서는 양키...덜덜덜;....
Commented by organizer at 2008/12/21 20:05
가깝게는 강릉 무장 공비 사태 때에도 아군끼리 서로 총질을 했었지요... ;;

스탈린이라는 말을 알아 들은 그 사람은 "훈장"을 받을 만 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21 20:33
곤충//뭐 사람이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누렁별//소련군을 그토록 기다렸다는 이야기겠죠.

Skibbe//ㄷㄷㄷ까지야^^;;

organizer//예리했지요 ㅎㅎ
Commented by 주윤발 at 2008/12/21 20:52
중국영화 '집결호'에서도 비슷한 에피가 나옵니다.
미군 탱크와 조우한 중국군 보병들이 한국군 흉내를 내서 미군을 따돌리죠.
한국군 흉내란 것이...'쏼라쏼라 중국말'+"습니다' 라고 어슬픈 한국말을 하자 미군들이 한국군인줄 알고 가버리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21 22:01
재밌군요 ㅎㅎ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8/12/21 23:07
하긴 지금도 밀리터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영국군 군복을 보고도 이게 어느나라 군복인지 모를 사람이 더 많지요. 현역 군인들도 미군복 외에는 거의 모르던데....
Commented by   at 2008/12/21 23:09
웃다 갑니다 :)
분명 생사가 오락가락 하는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었을텐데 저런 센스랄까 임기응변이랄까 발휘하는거 보면 대단하기도하고 재미있어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

크레이노스 중령 아저씨 멋있군요 덜덜.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21 23:57
네비아찌//알아보기 힘들죠. 매니아 아니면....

무명//순발력 있는 것 같습니다 ㅎㅎ
Commented by 比良坂初音 at 2008/12/22 00:40
거참 깨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22 02:46
뭐 세상에는 재밌는 일이 많습니다.
Commented by 어릿광대 at 2008/12/22 07:39
어찌보면 황당하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22 12:24
뭐 우리야 웃고 넘기면 됩니다.
Commented at 2008/12/22 16:3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22 16:40
앗, 그 이야기가 바로 이 시리즈의 다음 편이었는데 네타를 하시다니!!

뭐 비공개로 해주셔서 다행입니다 ㅋㅋ
Commented by 애프터스쿨 at 2009/05/08 22:00
예전에.. 정말 예전에.. 흑백에 재생용지 비슷한 만화책 '한국전쟁' 몇 권에서 본 듯한 내용이군요... 대략 최소 20년이 넘은 만화책이었는데 말입니다...ㅎㅎ;;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5/09 01:50
그 책에도 나오는 이야기 맞습니다. ^^ 덤으로 말하면 전 그거 초판 13권 소장중(두 권 빠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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