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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 왕위를 둘러싼 루이 14세와 레오폴트 1세의 경쟁, 그 배경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은 왜, 무엇을 위해 시작되었는가.에서. "계승권 경쟁 배경"에 대한 이야기지 "계승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므로 전쟁이 아닌 역사 카테고리로 보냅니다~~^^

뭐, 제목이 거창하긴 합니다만 내용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F--;


일단 카를로스 2세에 대해서는 월광토끼님이 쓰신 것으로 충분하니 제가 별로 더 이야기할 건 없을 겁니다. 빠트리신 거 몇 가지만 이야기하자면...카를로스 2세는 5세 때까지 젖을 먹어야 했고, 처음 걸음마를 한 것은 10세였습니다. 신체가 너무 허약해서 왕자로서의 엄격한 교육 따위는 받으려야 받을 수가 없었고요. 월광토끼님이 올려두신 초상화에서도 볼 수 있는 길죽한 "합스부르크가의 턱"은 음식을 씹기 어려울만큼 길어졌고 - 주걱턱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내력이었습니다 - 혀도 너무 커서 이야기하기 거북할 정도였습니다. 절름발이에 간질을 앓았고, 35세에 이미 대머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월광토끼님 포스팅에서도 언급되었듯 성불능이었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에스파냐 합스부르크 가문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은 수대에 걸쳐 삼촌, 사촌, 오촌간의 근친혼을 너무 거듭해 왔기 때문에 부작용이 극에 달했고, (아마도)그 최종 결과물로서 카를로스 2세라는 부실의 극에 달한 존재가 나온 거거든요-_-;;

군주제 국가에서 왕이 상속자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엄청난 결함입니다. 이에 따라 전 유럽은 에스파냐 왕위를 누가 이어받을것인가에 대해 카를로스 2세가 죽기 한참 전부터 교섭에 들어갑니다(에스파냐 왕이 고X라는 사실은 온 유럽에 파다하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엄청난 영토 - 에스파냐 본토 이외에 에스파냐령 네덜란드(현재의 벨기에), 나폴리, 밀라노, 시칠리아, 신대륙 - 를 누가 갖느냐 하는 것은 너무도 심각한 문제여서 폐인, 말 그대로 폐인인 왕이 죽은 뒤에 논의하기에는 너무도 중대했기 때문입니다.


루이14세는 월광토끼님이 올리셨으니, 레오폴트1세를(1667년의 초상, Jan Thomas van Ieperen).
(사진출처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9/Jan_Thomas_001.jpg)


이때 에스파냐의 왕위를 요구하고 나선 최대 경쟁자는 이미 말했듯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합스부르크가의 레오폴트 1세였습니다. 레오폴드와 루이의 경쟁은 두 사람 모두 에스파냐 합스부르크가 공주 출신의 어머니와 아내를 두고 있다는 데서 비롯되었죠. 카를로스 5세의 조부인 펠리페 3세에게는 딸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루이 14세의 모친, 하나는 레오폴트 1세의 모친이었습니다. 카를로스의 부친인 펠리페 4세에게도 딸이 둘 있었는데 그중 언니는 루이의 왕비고 동생은 레오폴트의 왕비였지요.

루이14세의 왕위 청구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 둘 다 언니라는 쪽에 주요한 근거를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레오폴트 측에서는 루이의 아내인 마리 테레즈(마리아 테레지아)가 루이와 결혼할 때 에스파냐읭 왕위계승권에 대한 포기를 선언했다는 점을 물고늘어졌고, 이에 대해 프랑스 측에서는 그 대신 지참금으로 50만 에퀴의 돈을 받기로 했는데 아직도 못 받았기 때문에 계승권 포기 선언은 무효라고 맞받아쳤습니다. 끝이 안 날 논쟁이었지요.

하지만 어느 쪽이 에스파냐의 옥좌에 앉든 유럽에는 합스부르크 내지 부르봉의 초강대국이 출현하게 됩니다. 전 유럽에서 그런 괴물이 등장하는 것을 환영할 국가는 단 하나도 없었고, 현실을 인정한 두 청구권자는 자기가 직접 나서는 대신 대리인을 하나씩 내세우게 됩니다. 루이 14세는 자신의 손자인 앙주공 필립(외손자가 아니라 왕세자Dauphin 루이의 차남입니다-_-;;)을, 레오폴트는 다섯째 아들인 칼 대공을 계승자 후보로 내세웠으나 상황에는 별 차이가 없었죠.


* 앙주공 필립이 루이의 외손자이자 카를로스 2세의 조카손자뻘이라고 하셨는데, 오해의 여지가 있어 첨부합니다. 앙주공 필립은 조부모인 루이 14세와 마리 테레즈(마리아 테레지아)를 통한 것 이외에 스페인 합스부르크가의 혈통을 직접적으로 이어받지 않았습니다. 그의 모친인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는 바이에른 선제후 페르디난트 마리아의 딸이었는데, 그녀의 부친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페르디난트 2세(1578~1637, 재위 1619~1637)를 외조부로 두고 있기는 하나 모친인 사보이의 헨리에테 아델레이드는 프랑스 왕 앙리 64세와 왕비 마리아 데 메디치의 딸로 에스파니아 합스부르크와는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물론 앙주공 필립의 할머니인 마리 테레즈가 카를로스 2세의 누이이므로 조카손자라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며, 오스트리아 측의 계승자인 칼 대공이 레오폴트의 첫 아내였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이 아니라 그가 세 번째로 결혼한 팔라틴 공작령의 공주 엘레오노르의 아들이었다는 점보다 훨씬 유리한 점이었죠. 하지만 월광토끼님이 "루이의 외손자이고 카를로스의 조카손자"라고 적으신 것은 필립이 루이의 딸과 카를로스의 남자 조카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오해를 심어주기에 충분하겠기에 이렇게 길게 첨언합니다.



그런데 이때 제3의 왕위계승권자가 등장합니다. 1698년 당시 6세의 어린 바이에른 선제후, 요제프 페르디난트의 어머니 마리아 안나 안토니아는 레오폴트 1세의 딸이자 카를로스 2세의 선왕인 에스파냐 왕 펠리페 4세의 외손녀였고, 따라서 그에게는 스페인 왕실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요제프 페르디난트는 오스트리아 왕위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남자에게만 가문의 계승권을 인정하는 게르만계의 살리카 법전에 의거,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에서는 원칙적으로 여자가 왕위계승권을 갖지 못합니다), 그가 에스파냐 국왕이 된다면 유럽의 미묘한 세력균형을 깨뜨릴 염려가 없었지요. 여기에 만족한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는 조약을 체결하여(1698년 10월 11일) 요제프 페르디난트를 에스파냐 왕위계승자로 인정하고, 이탈리아를 제외한 전 영토를 상속시킬 것을 결정합니다. 이탈리아 내의 에스파냐 영토는 왕위청구권을 취하하는 보상으로 프랑스(나폴리, 시칠리아)와 오스트리아(밀라노)가 분할한다는 것이었죠. 꽤 괜찮은 타협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조약이 단 4개월만에 휴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조약의 직접적인 적용 대상자인 레오폴트는 에스파냐 영토 전부를 갖고 싶은 마음에 이 조약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승인을 거부했고, 자신의 영토가 분할되는 것을 싫어한 카를로스 국왕 스스로도 조약이 체결된지 한달만에 전 영토를 오제프 페르디난트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그런데...다음해 2월에 요제프 페르디난트가 7살의 나이로 천연두에 걸려 급사하고 말았지요. 이로써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시점까지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동맹을 맺고 레오폴트를 억누르는 형태였습니다. 이들이 체결한 2차 조약에서도 에스파냐 왕위와 영토 전부를 칼 대공에게 상속시키되, 청구권 포기에 대한 보상으로 에스파냐령 이탈리아(밀라노, 나폴리, 시칠리아)만은 프랑스에 양도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루이 14세는 관대하게 이 조건을 받아들였지만 레오폴트는 이것도 딱 잘라 거절했죠. 에스파냐 땅을 하나도 안 빼고 몽땅 갖고 싶었던 겁니다. 결국 1699년에서 1700년으로 이어지는 두 해 내내 온 유럽은 어서 결정을 내리라고 카를로스 2세를 들들 볶습니다.


오스트리아 : 우린 같은 합스부르크가야! 우리가 남이가!!

프랑스 : 지금 자기 땅도 힘겹게 지키는 오스트리아가 그 넓은 에스파냐 영토를 다 지킬 수 있어? 응? 나라가 힘이 있어야지!


여기에 로마 교황 인노켄티우스 12세도 프랑스 왕위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다는 조건하에 앙주공 필립을 후원했습니다. 에스파냐의 귀족들도 제국의 현상유지를 바라는 마음에 이 제안을 지지했고, 결국 카를로스 2세는 1700년 10월 2일자로 자신의 후계자로 앙주공 필립을 지명한 다음 1개월 후에 사망합니다. 아슬아슬했죠.

그런데 이로 인해 루이14세는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기묘한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카를로스 2세의 유언을 승인하고 손자를 에스파냐 왕위에 앉히거나, 아니면 자신이 서명한 조약을 준수하여 그 유언을 부인하고 칼 대공의 즉위를 승인한 후 에스파냐령 이탈리아(시칠리아, 나폴리, 밀라노)를 프랑스의 영토로 획득하여 손자 필립에게 주는가의 문제였죠.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든 레오폴트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었고, 결국 한참동안 망설이던 루이는 소득이 많은 쪽을 택합니다. 바로 손자 필립을 에스파냐 왕으로 밀기로 한 거죠. 결국 필립은 1701년 2월에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5세로 칭하고 차후 프랑스 왕위에 대한 어떤 청구권도 영구히 포기한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베르사유로 필립을 찾아온 에스파냐 대사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속삭였다고 하지요.


"이것으로 피레네 산맥도 없어졌습니다."


자.....이제 부르봉가의 대제국이 출현했을까요?^^

하지만 이 시점에서도 아직 프랑스로서는 네덜란드와 영국의 지지, 적어도 중립을 얻어낼 가능성이 남아있었습니다. 이들로서는 앙주 공 필립이 차후 절대 프랑스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상 루이가 자신들의 영토나 무역에 대한 기득권만 침해하지 않는다면 굳이 유럽 최강국인 프랑스와 지금 당장 싸워야 할 이유는 없었거든요. 그런데 루이는 필립의 왕위계승이 결정된 1701년 2월부터 곧바로 이들 두 나라에 대한 적대행위를 개시합니다. 이 당시 에스파냐령 네덜란드의 요새들은 조약에 따라 네덜란드군이 수비하고 있었는데, 프랑스군을 파견해서 이 요새들을 인수하려고 했던 거죠. 에스파냐군이 인수할 때까지 임시로 맡아둘 뿐이라는 루이의 말을 믿는 나라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루이는 영국. 네덜란드 두 나라 상인들이 에스파냐 영토 사이에서 가지고 있던 무역상의 특권까지 모조리 빼앗으려고 시도합니다. 막대한 이익을 낳고 있던 아프리카와 에스파냐령 남아메리카 사이의 노예무역에 대한 권리를 프랑스 상선들이 빼앗은 것은 엄청난 타격이 되었고, 여기에 1701년 6월에는 루이의 주도하에 프랑스가 스페인, 포르투갈과 동맹을 맺고 전 지중해에서 영국과 네덜란드를 몰아내려는 시도를 함에 이르자 두 나라는 더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릅니다. 사실, 9월에 있었던 스튜어트 왕조에 대한 승인은 이미 이루어진 참전 결정에 가속도를 더하는 정도밖에는 되지 못했어요. 루이 14세와 싸우기 위한 동맹 결성의 교섭은 이미 1701년 7월부터 시작되고 있었고, 동맹이 정식으로 체결된 것은 9월 7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이미 영국 의회는 3만 명의 수병과 270만 파운드의 자금을 이번 전쟁에 투입하기로 결의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바이에른(루이 14세와 동맹)과 쾰른, 두 나라를 제외한 전 독일 연방이 이 동맹에 참가하면서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이 시작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월광토끼님의 이어지는 포스팅에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몇 마디 보충하려던 게 좀 많이 길어지긴 했는데...기분나빠하지 않으셨으면^^;;



참고자료 :

라이프 인간 세계사 vol.08 - 王政時代, 타임라이프 북스, 한국일보 타임라이프, 1978

위키피디아(영) -
Duchess Maria Anna of Bavaria
Ferdinand II, Holy Roman Emperor
Joseph Ferdinand of Bavaria, Prince of Asturias
Leopold I, Holy Roman Emperor
Louis XIV of France
Louis, Dauphin of France (1661–1711)
Palatinate-Neuburg
Princess Henriette Adelaide of Savoy

by 슈타인호프 | 2008/12/19 14:46 | 세계근세(~1789) | 트랙백 | 핑백(2) | 덧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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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간 앞의 포스팅(에스파냐 왕위를 둘러싼 루이 14세와 레오폴트 1세의 경쟁, 그 배경)에서 펠리페 4세의 아들 카를로스 2세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죠? 그런데 원래 카를로스 2세는 왕위에 오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왜 ... more

Commented by 월광토끼 at 2008/12/19 14:48
아뇨, 전혀 기분나쁘지 않습니다. 되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19 15:11
괜찮다고 해주셔서 다행입니다. 가끔 지적받는 걸 싫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Commented by tore at 2008/12/19 15:26
아... 유럽의 왕가 계보도를 공부하려던 시도를 한적이 있는데. 거미줄을 어떻게 풀어야할지 난감할뿐입니다...
Commented by 레인 at 2008/12/19 15:42
역시 모든건 근친혼에서 시작이 되었군요. 그런 의미에서 유전법칙 만세!(어?)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12/19 16:19
유럽 왕가 계보도를 저렇게 꿰고 있는 분들을 보면 가끔 신기합니다.

...집에 있는 족보조차도 쳐다보기가 싫은데.. 저런 정신없는 족보 짜깁기를 보면...ㅎㄷㄷ
Commented by 피그말리온 at 2008/12/19 16:21
레오폴트 1세 그림 보니까 이 사람도 생긴게 어째 비실하게 생긴.....ㅋ
Commented by OTIKA at 2008/12/19 16:34
확실히 유럽 왕가 계보도는 너무 복잡해서(먼산)
게다가 신성 로마제국 황제는 세습이 아닌 '선출'이다보니 이것도 은근히 헷갈리게 하는 요소가 되고(...)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8/12/19 17:03
"모친인 사보이의 헨리에테 아델레이드는 프랑스 왕 앙리 6세와 왕비 마리 드 메디치의 딸로 에스파니아 합스부르크와는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이거 좀 다시 한 번만 자료 확인해주시겠습니까? 프랑스 왕중에 앙리는...태양왕의 할아버지 앙리 4세가 마지막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루이는 많이 써먹었으면서 왜 앙리는 안 줬는지 모르겠삼)

합스부르크 왕가의 혈통상 그 주걱턱이 좀 정상화된 건 대략 칼 6세와 마리아 테레지아 언저리...교과서에 나오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은 하나같이 나이들어서 뚱뚱해졌을때 모습이지만 결혼 직전의 초상화 하나를 위키에서 봤는데 "유럽 왕실 최고의 미녀"란 묘사가 절대로 어색하지 않더군요. 그 후로는 전대의 당주 오토 폰 합스부르크 박사에 이르기까지 저 유명한 주걱턱이 없어져버렸지만요^^;;;

이미 오스트리아+스페인+로 컨트리즈+이탈리아 곳곳+시칠리+라틴 아메리카 식민지 대제국은 카를로스 1세-카알 5세때 많이 당해봤다 이거군요^^. 영국의 전통적인 외교 정책인 "플랑드르에 적이 오는 건 못 봐주삼!"은 그대로 작용했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19 17:08
tore//그건 미궁입니다, 미궁.

레인//어쩌다 한번이라면 몰라도 과도한 근친혼은 좋지 않죠.

한단인//후덜덜입니다 정말.

피그말리온//그래도 오스트리아 쪽은 독일 귀족들과 피가 자주 섞여서, 에스파냐 합스부르크만큼 막장은 안 됐습니다.

OTIKA//에이, 그래도 저 시대면 이미 합스부르크가의 세습지위죠^^

위장효과//켁, 제가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로마 숫자 IV를 6으로 읽다니--;;
Commented by 소시민 at 2008/12/19 18:38
밀라노는 언제 에스파냐령이 되었는지요? 나폴리와 시칠리아는 아라곤 시절부터

에스파냐 쪽이었던걸로 알고 있는데 밀라노가 에스파냐령으로 있었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네요. 여하튼 에스파냐는 나중에 그 광활한 중남미 식민지가 다

독립하고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에는 모로코 쪽 일부 땅을 제외하면 식민

지를 전부 잃게 되죠. 뭐 식민지 피지배민들은 주인이 누구든 핍박받는건 마찬가

지겠지만요.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8/12/19 18:49
그러므로 유럽사는 덕후들만이 꿸 수 있다능...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19 18:56
소시민//1535년에 밀라노를 차지하고 있던 프랑스와 1세가 카를로스 1세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초록불//그럼요. 덕후 아니면(...)
Commented by _tmp at 2008/12/19 19:11
사소한 거지만 "마리 드 메디치"라면 마리아 데 메디치 혹은 마리아 드 메디시스겠습니다. 뭐 극히 사소한 이야기.

그보다 본론스러운 거라면, 흔히 프랑스 더러 유럽짱개라 지칭하곤 하는데, 이 때야말로 그 최성기가 아닌가 싶더군요. (이래 놓고 망할 놈의 중상주의자라고 읽으면 되려나...)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8/12/20 08:29
영국은 최소 19세기까지는 항상 유럽 분쟁에 적당하게 개입해서 제일 광잡고 판에서 빠져나왔죠.^^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8/12/19 19:21
영국 수출물량의 40%가 신대륙으로 출하되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가 스페인 식민지의 관세권(Asiento)를 장악한다면 그것은 곧 영국경제에 대한 치명적인 타격을 의미했죠.

결론적으로 이 왕위계승 전쟁에서 영국은 수출권을 지켜내고, 프랑스도 쫑코 주고, 전쟁에서 적당히 빠져나갔으니...제일 광잡은 샘이라는....ㄷㄷ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19 19:33
_tmp//마리아 데 메디치로 수정했습니다^^;

들꽃향기//게다가 지브롤터와 미노르카도 얻었지요.
Commented by _tmp at 2008/12/19 19:38
...프랑스식이라면 마리 드 메디시스 (Marie de Medicis) 죠... 저도 실수 -_-;;
Commented by 뚱띠이 at 2008/12/19 19:51
저도 한대 자료로 쓰기 위해 뒤져 보았는데 포기했었지요...망할 족보...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19 20:56
_tmp//괜찮습니다^^

뚱띠이//내 족보도 모를 판인데...(먼산)
Commented by 계원필경 at 2008/12/20 00:22
결국은 근친 결혼은 하면 안된다라는 거죠...(나중에 빅토리아떄도 그렇지만)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20 00:43
안 하는 게 좋지요.
Commented by 어릿광대 at 2008/12/20 08:02
결국 전쟁까지 가는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20 11:48
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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