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 파인더
메모장
카테고리
전체기록공지 일상잡상 가족일기 몽유잡담 도서잡담 만화잡담 음식잡담 기행잡담 게임잡담 영화잡담 문답설문 낭만잡담 까칠할때 도서좌판(판책+공지) 좌판매물(팔책) 역사 : 통사(?~?) 한국고대(~668) 한국중세(~1392) 한국근대(~1910) 한국현대(~20XX) 한국전쟁연대기(500501~550731) 세계고대(~476) 세계중세(~1453) 세계근세(~1789) 세계근대(~1900) 세계현대(~20XX) 자연사說 한국뉴스 외국뉴스 뉴스비판 봉황의 비상 큰칼짚고일어서서:이순신戰記 내가 히틀러라니!!! 은영전 팬픽 미래뉴스 新 비잔티움 연대기 기타창작 멋진펌글 유머만담 클러스터맵 ☆☆☆☆ ★★★★ ※※※※ 미분류 태그
2차세계대전
북방물개
이청천
아우슈비츠
생체실험
우한폐렴
일제시대
유시민
독도강치
일제강점기
마루타
강제동원
너구리
미국너구리
오마이뉴스
오늘도기자를까자
주한미군
온실가스
코로나바이러스
코알라
731부대
러쿤
용병
물개
지구온난화
스마트그리드
독도바다사자
오늘은취재원을까자
화석연료
홋카이도
라이프로그
![]() 한국전쟁 ![]() 청소년을 위한 파닥파닥 세계사 교과서 ![]()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 기억 ![]() 독소 전쟁사 1941~1945 ![]() 전격전의 전설 |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은 왜, 무엇을 위해 시작되었는가.에서. "계승권 경쟁 배경"에 대한 이야기지 "계승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므로 전쟁이 아닌 역사 카테고리로 보냅니다~~^^
뭐, 제목이 거창하긴 합니다만 내용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F--; 일단 카를로스 2세에 대해서는 월광토끼님이 쓰신 것으로 충분하니 제가 별로 더 이야기할 건 없을 겁니다. 빠트리신 거 몇 가지만 이야기하자면...카를로스 2세는 5세 때까지 젖을 먹어야 했고, 처음 걸음마를 한 것은 10세였습니다. 신체가 너무 허약해서 왕자로서의 엄격한 교육 따위는 받으려야 받을 수가 없었고요. 월광토끼님이 올려두신 초상화에서도 볼 수 있는 길죽한 "합스부르크가의 턱"은 음식을 씹기 어려울만큼 길어졌고 - 주걱턱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내력이었습니다 - 혀도 너무 커서 이야기하기 거북할 정도였습니다. 절름발이에 간질을 앓았고, 35세에 이미 대머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월광토끼님 포스팅에서도 언급되었듯 성불능이었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에스파냐 합스부르크 가문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은 수대에 걸쳐 삼촌, 사촌, 오촌간의 근친혼을 너무 거듭해 왔기 때문에 부작용이 극에 달했고, (아마도)그 최종 결과물로서 카를로스 2세라는 부실의 극에 달한 존재가 나온 거거든요-_-;; 군주제 국가에서 왕이 상속자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엄청난 결함입니다. 이에 따라 전 유럽은 에스파냐 왕위를 누가 이어받을것인가에 대해 카를로스 2세가 죽기 한참 전부터 교섭에 들어갑니다(에스파냐 왕이 고X라는 사실은 온 유럽에 파다하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엄청난 영토 - 에스파냐 본토 이외에 에스파냐령 네덜란드(현재의 벨기에), 나폴리, 밀라노, 시칠리아, 신대륙 - 를 누가 갖느냐 하는 것은 너무도 심각한 문제여서 폐인, 말 그대로 폐인인 왕이 죽은 뒤에 논의하기에는 너무도 중대했기 때문입니다. ![]() 루이14세는 월광토끼님이 올리셨으니, 레오폴트1세를(1667년의 초상, Jan Thomas van Ieperen). (사진출처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9/Jan_Thomas_001.jpg) 이때 에스파냐의 왕위를 요구하고 나선 최대 경쟁자는 이미 말했듯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합스부르크가의 레오폴트 1세였습니다. 레오폴드와 루이의 경쟁은 두 사람 모두 에스파냐 합스부르크가 공주 출신의 어머니와 아내를 두고 있다는 데서 비롯되었죠. 카를로스 5세의 조부인 펠리페 3세에게는 딸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루이 14세의 모친, 하나는 레오폴트 1세의 모친이었습니다. 카를로스의 부친인 펠리페 4세에게도 딸이 둘 있었는데 그중 언니는 루이의 왕비고 동생은 레오폴트의 왕비였지요. 루이14세의 왕위 청구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 둘 다 언니라는 쪽에 주요한 근거를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레오폴트 측에서는 루이의 아내인 마리 테레즈(마리아 테레지아)가 루이와 결혼할 때 에스파냐읭 왕위계승권에 대한 포기를 선언했다는 점을 물고늘어졌고, 이에 대해 프랑스 측에서는 그 대신 지참금으로 50만 에퀴의 돈을 받기로 했는데 아직도 못 받았기 때문에 계승권 포기 선언은 무효라고 맞받아쳤습니다. 끝이 안 날 논쟁이었지요. 하지만 어느 쪽이 에스파냐의 옥좌에 앉든 유럽에는 합스부르크 내지 부르봉의 초강대국이 출현하게 됩니다. 전 유럽에서 그런 괴물이 등장하는 것을 환영할 국가는 단 하나도 없었고, 현실을 인정한 두 청구권자는 자기가 직접 나서는 대신 대리인을 하나씩 내세우게 됩니다. 루이 14세는 자신의 손자인 앙주공 필립(외손자가 아니라 왕세자Dauphin 루이의 차남입니다-_-;;)을, 레오폴트는 다섯째 아들인 칼 대공을 계승자 후보로 내세웠으나 상황에는 별 차이가 없었죠. * 앙주공 필립이 루이의 외손자이자 카를로스 2세의 조카손자뻘이라고 하셨는데, 오해의 여지가 있어 첨부합니다. 앙주공 필립은 조부모인 루이 14세와 마리 테레즈(마리아 테레지아)를 통한 것 이외에 스페인 합스부르크가의 혈통을 직접적으로 이어받지 않았습니다. 그의 모친인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는 바이에른 선제후 페르디난트 마리아의 딸이었는데, 그녀의 부친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페르디난트 2세(1578~1637, 재위 1619~1637)를 외조부로 두고 있기는 하나 모친인 사보이의 헨리에테 아델레이드는 프랑스 왕 앙리 물론 앙주공 필립의 할머니인 마리 테레즈가 카를로스 2세의 누이이므로 조카손자라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며, 오스트리아 측의 계승자인 칼 대공이 레오폴트의 첫 아내였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이 아니라 그가 세 번째로 결혼한 팔라틴 공작령의 공주 엘레오노르의 아들이었다는 점보다 훨씬 유리한 점이었죠. 하지만 월광토끼님이 "루이의 외손자이고 카를로스의 조카손자"라고 적으신 것은 필립이 루이의 딸과 카를로스의 남자 조카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오해를 심어주기에 충분하겠기에 이렇게 길게 첨언합니다. 그런데 이때 제3의 왕위계승권자가 등장합니다. 1698년 당시 6세의 어린 바이에른 선제후, 요제프 페르디난트의 어머니 마리아 안나 안토니아는 레오폴트 1세의 딸이자 카를로스 2세의 선왕인 에스파냐 왕 펠리페 4세의 외손녀였고, 따라서 그에게는 스페인 왕실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요제프 페르디난트는 오스트리아 왕위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남자에게만 가문의 계승권을 인정하는 게르만계의 살리카 법전에 의거,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에서는 원칙적으로 여자가 왕위계승권을 갖지 못합니다), 그가 에스파냐 국왕이 된다면 유럽의 미묘한 세력균형을 깨뜨릴 염려가 없었지요. 여기에 만족한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는 조약을 체결하여(1698년 10월 11일) 요제프 페르디난트를 에스파냐 왕위계승자로 인정하고, 이탈리아를 제외한 전 영토를 상속시킬 것을 결정합니다. 이탈리아 내의 에스파냐 영토는 왕위청구권을 취하하는 보상으로 프랑스(나폴리, 시칠리아)와 오스트리아(밀라노)가 분할한다는 것이었죠. 꽤 괜찮은 타협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조약이 단 4개월만에 휴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조약의 직접적인 적용 대상자인 레오폴트는 에스파냐 영토 전부를 갖고 싶은 마음에 이 조약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승인을 거부했고, 자신의 영토가 분할되는 것을 싫어한 카를로스 국왕 스스로도 조약이 체결된지 한달만에 전 영토를 오제프 페르디난트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그런데...다음해 2월에 요제프 페르디난트가 7살의 나이로 천연두에 걸려 급사하고 말았지요. 이로써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시점까지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동맹을 맺고 레오폴트를 억누르는 형태였습니다. 이들이 체결한 2차 조약에서도 에스파냐 왕위와 영토 전부를 칼 대공에게 상속시키되, 청구권 포기에 대한 보상으로 에스파냐령 이탈리아(밀라노, 나폴리, 시칠리아)만은 프랑스에 양도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루이 14세는 관대하게 이 조건을 받아들였지만 레오폴트는 이것도 딱 잘라 거절했죠. 에스파냐 땅을 하나도 안 빼고 몽땅 갖고 싶었던 겁니다. 결국 1699년에서 1700년으로 이어지는 두 해 내내 온 유럽은 어서 결정을 내리라고 카를로스 2세를 들들 볶습니다. 오스트리아 : 우린 같은 합스부르크가야! 우리가 남이가!! 여기에 로마 교황 인노켄티우스 12세도 프랑스 왕위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다는 조건하에 앙주공 필립을 후원했습니다. 에스파냐의 귀족들도 제국의 현상유지를 바라는 마음에 이 제안을 지지했고, 결국 카를로스 2세는 1700년 10월 2일자로 자신의 후계자로 앙주공 필립을 지명한 다음 1개월 후에 사망합니다. 아슬아슬했죠. 그런데 이로 인해 루이14세는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기묘한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카를로스 2세의 유언을 승인하고 손자를 에스파냐 왕위에 앉히거나, 아니면 자신이 서명한 조약을 준수하여 그 유언을 부인하고 칼 대공의 즉위를 승인한 후 에스파냐령 이탈리아(시칠리아, 나폴리, 밀라노)를 프랑스의 영토로 획득하여 손자 필립에게 주는가의 문제였죠.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든 레오폴트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었고, 결국 한참동안 망설이던 루이는 소득이 많은 쪽을 택합니다. 바로 손자 필립을 에스파냐 왕으로 밀기로 한 거죠. 결국 필립은 1701년 2월에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5세로 칭하고 차후 프랑스 왕위에 대한 어떤 청구권도 영구히 포기한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베르사유로 필립을 찾아온 에스파냐 대사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속삭였다고 하지요. "이것으로 피레네 산맥도 없어졌습니다." 자.....이제 부르봉가의 대제국이 출현했을까요?^^ 하지만 이 시점에서도 아직 프랑스로서는 네덜란드와 영국의 지지, 적어도 중립을 얻어낼 가능성이 남아있었습니다. 이들로서는 앙주 공 필립이 차후 절대 프랑스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상 루이가 자신들의 영토나 무역에 대한 기득권만 침해하지 않는다면 굳이 유럽 최강국인 프랑스와 지금 당장 싸워야 할 이유는 없었거든요. 그런데 루이는 필립의 왕위계승이 결정된 1701년 2월부터 곧바로 이들 두 나라에 대한 적대행위를 개시합니다. 이 당시 에스파냐령 네덜란드의 요새들은 조약에 따라 네덜란드군이 수비하고 있었는데, 프랑스군을 파견해서 이 요새들을 인수하려고 했던 거죠. 에스파냐군이 인수할 때까지 임시로 맡아둘 뿐이라는 루이의 말을 믿는 나라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루이는 영국. 네덜란드 두 나라 상인들이 에스파냐 영토 사이에서 가지고 있던 무역상의 특권까지 모조리 빼앗으려고 시도합니다. 막대한 이익을 낳고 있던 아프리카와 에스파냐령 남아메리카 사이의 노예무역에 대한 권리를 프랑스 상선들이 빼앗은 것은 엄청난 타격이 되었고, 여기에 1701년 6월에는 루이의 주도하에 프랑스가 스페인, 포르투갈과 동맹을 맺고 전 지중해에서 영국과 네덜란드를 몰아내려는 시도를 함에 이르자 두 나라는 더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릅니다. 사실, 9월에 있었던 스튜어트 왕조에 대한 승인은 이미 이루어진 참전 결정에 가속도를 더하는 정도밖에는 되지 못했어요. 루이 14세와 싸우기 위한 동맹 결성의 교섭은 이미 1701년 7월부터 시작되고 있었고, 동맹이 정식으로 체결된 것은 9월 7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이미 영국 의회는 3만 명의 수병과 270만 파운드의 자금을 이번 전쟁에 투입하기로 결의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바이에른(루이 14세와 동맹)과 쾰른, 두 나라를 제외한 전 독일 연방이 이 동맹에 참가하면서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이 시작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월광토끼님의 이어지는 포스팅에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몇 마디 보충하려던 게 좀 많이 길어지긴 했는데...기분나빠하지 않으셨으면^^;; 참고자료 : 라이프 인간 세계사 vol.08 - 王政時代, 타임라이프 북스, 한국일보 타임라이프, 1978 위키피디아(영) - Duchess Maria Anna of Bavaria Ferdinand II, Holy Roman Emperor Joseph Ferdinand of Bavaria, Prince of Asturias Leopold I, Holy Roman Emperor Louis XIV of France Louis, Dauphin of France (1661–1711) Palatinate-Neuburg Princess Henriette Adelaide of Savoy ![]() ![]() ![]() ![]() ![]() ![]()
|
메뉴릿
최근 등록된 덧글
어이가 없네요... 어떻..by SAGA at 03/01 헐... 대단한 퀄리티.. by SAGA at 03/01 앗 경인왜란 읽는중인데.. by 페퍼 at 02/24 퀄리티 굿... by KittyHawk at 02/23 저거 진짜 놀랐죠 by intherain at 02/22 엄청난 작품이네요. 그.. by asianote at 02/22 와......전 처음엔 .. by 까마귀옹 at 02/22 대체 어떻게 저런 문장이.. by 까마귀옹 at 01/31 외신기사를 구글번역기.. by 도연초 at 01/31 .... 좀 거시기합니다만.. by 漁夫 at 01/31 최근 등록된 트랙백
2018년까지는 여전히 진..by 슈타인호프의 함께 꿈꾸.. 진짜 마지막 빨치산이 .. by 슈타인호프의 함께 꿈꾸.. 굿모닝 티처, 리디북.. by 슈타인호프의 함께 꿈꾸.. 이전블로그
2021년 12월2021년 08월 2021년 02월 2021년 01월 2020년 12월 2020년 10월 2020년 09월 2020년 08월 2020년 06월 2020년 04월 2020년 03월 2020년 01월 2019년 12월 2019년 11월 2019년 10월 2019년 09월 2019년 08월 2019년 07월 2019년 06월 2019년 05월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