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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 중공군의 급식은 어땠나.
아래쪽의 미군 포스팅에서 한국전쟁 당시 미군을 보고 "임진왜란의 명나라군 같다"고 하시는 리플을 보고 생각나서...아래 이야기는 지난번에 육군사관학교 생도대대의 전선투입, 그리고 그 배경에서 이야기했던 생도 2기이자 종합학교 2기 출신자인 박경석 예비역 준장님의 저작, "두 소위의 탈출"이라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중편소설에서 상당부분 참고한 것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박 소위(저자의 대입인물)는 1951년 2월 16일, 평창 북방의 1077고지 점령을 위한 교전중 부상을 입고 인민군의 포로가 됩니다만, 탈출하여 남하하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 인민군 전선 후방의 중공군 지역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이번에는 중공군 포로가 됩니다-_-;; 그런데 인민군보다 중공군이 훨씬 잘 먹고 편하게 지내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요.

일단 차량. 인민군은 연대장도 짚차가 없어서 걸어다니는데 중공군 지역에는 지프와 트럭 등 상당히 많은 차량이 위장된 상태로 숨겨져 있었습니다.

피복. 인민군들은 동계피복의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민가를 뒤져 민간인들의 속옷, 양말, 버선까지 털어다 껴입고 버티고 있는데 중공군들은 깨끗하고 따뜻한 누비옷으로 비교적 통일된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군이 잡은 방한복 차림의 중공군 포로
(사진출처 : http://i.blog.empas.com/marinekslee/22117919_414x480.jpg)


그리고 세 번째로 제목에서도 이야기한 식량. 안 그래도 전쟁통에 수확을 망친 데다 가축은 남북 양군이 다 잡아먹은 상태기 때문에 인민군의 급식은 형편없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중공군은 말 그대로 배를 두드려가면서 지낼 정도였다는군요. 일단 깨끗하게 손질한 냉동 돼지고기가 트럭마다 산더미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고, 쌀과 잡곡이 든 푸대도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식사는 하루 두 번 해가 지기 직전과 해가 뜨기 직전에 준비하는데, 이때가 행동에 불편이 없을 만큼 밝으면서도 관측이 힘든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안전대책도 잊지 않은 것은 물론이죠. 이런 식으로 굴을 파서 실제 취사를 하는 반대편 골짜기로 연기를 빼내기 때문에 항공정찰에서 어떻게 밥 짓는 연기를 발견한다고 해도 그곳은 중공군의 실제 위치가 아닙니다. 게다가 중공군이 연료로 쓴 것은 숯이었으므로, 연기 자체가 별로 나지도 않았지요.

자, 이렇게 하루 두 번 준비하는 식사는.....돼지죽이었습니다-_-;;
큰 솥에다가 물을 끓인 다음 통돼지를 가득 넣고, 한 시간쯤 푹 삶은 다음 쌀과 잡곡을 듬뿍 넣고 죽을 쑤어서 먹었다는군요. 부대원 전원이 그 돼지죽을 먹고 살이 뒤룩뒤룩 쪄 있었을 뿐더러 전투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인민군을 매우 혹평했고요. 왜냐하면, "인민을 보호하고 인민의 편에 서서 봉사하며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 인민이 스스로 따라올 때"에야 비로소 혁명이 성취되는 것인데 인민군은 같은 동족, 그것도 양민을 마구 죽이고 물건을 약탈하니 그들은 혁명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는데는 중국인이나 중공군 내 조선족이나 차이가 없었다고 하고요. "눈에 보이는 중공군의 태도는 역사책 속의 명나라 군대를 보는 것 같았고, 귀에 들리는 중공군의 이야기는 마치 아군 지역에서 듣는 것 같았다"는게 저자의 서술입니다-_;;;

아참, 얘기하는 걸 깜박 잊었는데 박소위가 포로가 되었던 "인민군"은 인민군 4사단 소속의 전투부대였고 "중공군"은 중공군 196사단 예하의 치중부대(보급을 담당하는 부대)였습니다. 그만큼 보급상태가 상대적으로 좋을 수밖에 없고 전투에도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던 거죠. 즉, 위에서 이야기한 인민군과 중공군의 보급상태의 차이는 1951년 2월이라는 특정 시점에 평창 북방의 어느 특정 지역에서 겪은 개인의 경험입니다. 전쟁 전기간에 북한군과 중공군의 보급상태가 늘 저랬다는 것으로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죠. 하지만 중공군이 민간인들을 어떤 태도로 대했는가 하는 점의 예시로는 충분합니다. 그들 스스로가 20년 이상 투쟁한 끝에 장개석 정권을 타도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배경이 "민심을 잡는 것에 있었거든요.

그렇다 해서 이때 박소위가 인민군에게서 본 긍정적인 면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자의 다른 책인 "육사생도 2기"를 보면 이때 나이 지긋한 인민군 사단장을 직접 만나면서 얻은 경험을 약간 다른 시각으로 서술한 대목이 나옵니다. 먼저 출간된 "두 소위의 탈출"에서는 생략한 부분이죠.

첫째,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이었습니다. 즉 식량이 없으면 사단장도 부하들과 같이 굶었다는 겁니다.
둘째, 국군 지휘관들이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일이 흔했던 것과 달리 상하를 막론하고 여자를 접하는 일은 엄금되어 있었으며 강간을 하다가 잡힌 장병은 즉결처분되었습니다.
셋째, 민가의 가축을 함부로 잡아먹지 않았습니다. 이에 반해 저자가 경험한 국군은 예사롭게 민가의 가축을 잡아먹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개인의 경험에 의한 것으로 일반화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지요. 이 부분의 서술은 앞에서 이야기한 인민군의 대민관계와는 좀 모순되는 이야기입니다만, 앞쪽이 일반론이었고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저자가 포로가 되었던 인민군 4사단의 특정 사례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합니다. 어쨌건 저자는 당시 인민군 사단장으로부터 배운 리더십을 한국군에 복귀한 후 직접 실천하려고 노력했고, 그래서인지 부하들도 자신을 잘 따랐다고 합니다. 자기가 딱 하나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동기생들 중 무공훈장이 가장 많다는 것인데, 그것도 인민군 사단장으로부터 배운 리더십이 바탕이 된 것 같다고 쓰고 계시더군요.

참고자료 :
육군종합학교, 박경석, 서문당, 1990
육사생도 2기, 박경석, 홍익출판사, 2000

by 슈타인호프 | 2008/12/18 14:49 | 한국현대(~20XX) | 트랙백 | 덧글(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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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행인1 at 2008/12/18 15:01
중공군이 적의 관측을 피해 취사를 한게 눈에 띄는군요. 그리고 중공군에 대한 박 장군님 평은 참으로...-_-;;
Commented by organizer at 2008/12/18 15:04
세상에... 명불허전.. <--- 인민군을 벤치 마킹해서 훈장을 많이 챙기다니............... (그것 참 묘합니다.)
Commented by organizer at 2008/12/18 15:08
"식량이 없으면 사단장도 부하들과 같이 굶었다" 중국 고사가 다 생각납니다.... 우리는 지금도 절때 그럴 리가 없지요...ㅠ_ㅠ ;;
Commented by 푸른별빛 at 2008/12/18 15:07
중공군 포로 모습이 참 느긋하네요-_-;; 선입견으로는 한국전쟁 참전 중공군의 보급상태는 꽤 나빴을 것이다인데...물론 최전방은 또 달랐겠지만요.
Commented by 미친과학자 at 2008/12/18 15:13
인민군이 한국군을 가르친 이 알흠다운 사태 OTL
Commented by 比良坂初音 at 2008/12/18 15:22
이런이런.... 잘못하면 슈타인호프님이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고발을 당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8/12/18 15:30
"한신장군의 군대에 가면 밥을 굶지는 않는다."라는 말이 경이(?)로 받아들여지던 당시 군대상황에서, 언급하신 인민군 리더쉽의 벤치마킹은 가히 혁명급이었겠죠....-.-;; ㄷㄷ
Commented by deadline at 2008/12/18 15:36
으음, 인민군 사단장이라면 아마도 중공군 출신이거나 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가능성이 높으니 이는 중공군->인민군->국군으로 이어져내려오는 공포의 교육라인?(미군은 뭐한거냐!)
Commented by 아브공군 at 2008/12/18 16:03
.....이런 막장이 있었다는 거를 알아야 발전하죠.

실패학이라는 것이 있는 이유가 이런 거고.
Commented by _tmp at 2008/12/18 16:32
...인민군에게 발견한 긍정적인 면이 아니라 '미제괴뢰군 다 죽어!' 아닙니까 이건 -_-;;
Commented by rumic71 at 2008/12/18 16:34
뭐 일본군도 특정한 경우에는 모범적인 사례가 있었으니까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18 16:56
행인1//웃겼습니다(...)

organizer//어디든 배울 구석은 있는 모양입니다.

푸른별빛//물론 전방부대는 또 달랐지요.

미친과학자결국 사람 나름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比良坂初音//저같은 미물이 고발까지 당할 리가?

들꽃향기//인민구닝야 아무래도 빨치산의 전통이 남아있었으니까요. 한국군은 일본군의 전통이 주류....-.-;;

deadline//"나이 지긋한" 장군이라면 팔로군 출신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브공군//안 좋은 과거라고 은폐하는 것에 대해서는 심히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_tmp//뭐 그건 아닙니다.

rumic71//네, 어느 군대든 "특정 케이스"라는 것은 늘 존재하는지라.
Commented by 월광토끼 at 2008/12/18 17:15
완전 명나라군 ㄱ-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지휘관들이 국군 지휘관들 보다 훨씬 더 실력있고 기강이 잡혀 있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Commented by 구멍난위장 at 2008/12/18 17:17
아버지가 한국전쟁 발발시 8살이었는데 겨울에 떨고있는 것을 보고 "인민군"이 불쌍하게 생각해서
웃도리를 벗어줬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이것도 "특정 케이스"이겠죠.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8/12/18 17:40
하긴 지박사가 아직 개념본좌 소리 들을 때 늘상 주장했던 것 중 하나가 '인민군 사단장들좀 보고 배워라!' 였으니까요.....
Commented by 곤충 at 2008/12/18 17:49
중공군도 기록이 재밌는게 어디서는 '튼실한 방한복.'어디서는 '얼어죽어가는 중공군. 변변한 방한복도 없었으며..'라는 식이더군요. 전자는 주로 미육군쪽에서 잘 보이는데, 후자는 미해군이나 후방부대측 기록에서 많이 보이는 걸보면 선입견이란 무섭나 봅니다.-어디까지나 제가 읽은 서적에 한해서 입니다. 일반화 시키기는 무리입지요.

그건그렇고 방한복을 저렇게 끼워입었으니.. 장진호전투에서 총맞고도 '발딱' 일어나서 다시 달려왔다는 게 실감납니다.
군대는 역시 깔깔이!
Commented by rumic71 at 2008/12/18 18:47
군대는 깔깔이 맞습니다!
Commented by 카바론 at 2008/12/18 18:05
중공군도 참으로 상상초월이군.
Commented by 쥬스한잔 at 2008/12/18 19:51
역시 역사는 한쪽말만 믿어선 안되는것 같다능.. 'ㅁ'
Commented by minz at 2008/12/18 20:20
국보법상 찬양고무죄에 해당할 이적표현물이군요(먼산)
Commented by dunkbear at 2008/12/18 20:24
근데 지금 북한군에도 저런 개념의 인민군 지휘관들이 많을지... 흠.
Commented by Lucid at 2008/12/18 20:28
포로의 face가 아니군요. -_-;
Commented by 瑞菜 at 2008/12/18 20:32
실제 해병대가 파로호의 중공군 군단 사령부를 쳤을 때도
피복과 식량(주로 미숫가루였답니다.)이 창고에 산더미만큼 쌓여있어서
중공군을 무찌르고 난 다음 얼른 가서 중공군 옷과 신발로 갈아입었다 하더군요.
본대가 올 때 까지 중국군 미숫가루 먹고.
특이한 것은 중공군은 따로 막사나 텐트를 치지 않고 그냥 무덤만하게 흙을 쌓아서
그 안을 파고 지냈다하더군요.

뭐 51년즈음 되면 중공군 일선 사단들은 하도 토굴과 참호속에 지내서 폐렴이 만연하고,
미숫가루로 연명하는데, 그나마도 중국 본국에서는 보급하느라 죽을려고 했다더군요.
Commented by 제너럴마스터 at 2008/12/18 20:37
이게 '만만디'라고 하는건가요. 역시 대륙....
Commented by 뚱띠이 at 2008/12/18 20:50
포로가 참 느긋하네요
Commented by 마키아벨리 at 2008/12/18 20:56
중국군의 군기가 잘잡혀있고 약탈을 하지 않았다는 문헌을 본적이 있는데 이렇게 보급이 잘되었기 때문인가 싶네요...ㅋ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12/18 21:01
[굴을 파서 실제 취사를 하는 반대편 골짜기로 연기를 빼내기 때문에]

...밥 먹을 때마다 이 짓을 했단 말입니까? ㅎㄷㄷ 부대 이동하면 밥지을 때 쓰는 굴판다고 뺑이를 치는..

과연 대국이라능..
Commented by 레인 at 2008/12/18 21:46
결론은 적이라도 배울건 배우자! 과연 만고의 진리.
Commented by nishi at 2008/12/18 21:49
중공군의 저런 상호신뢰의 경향이 아직도 남아있을까요? 궁금하군요.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8/12/18 21:50
1. 중국군을 졸라 미화하는-당연하지만- 홍학지의 서술에서도 "산 개구리알을 끓여먹어서 야맹증을 극복하는" -_-;;;; 중국군이나 지하 땅굴에서 살면서 굶주림에 고통받는 중국군에 대한 서술이 나오지요. 박경석 장군의 경우는 약간 일반화 하기는 어렵습니다.

2. 박경석 장군은 나중에 저 경험(?)을 발전시켜서 국방부에서 발간하는 모 잡지에서조차도 "국군포로는 없다" -_-;;;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육사생도 2기"에서는 뭐 탈출 국군포로에 대해서 다소간의 의문(?)을 가졌습니다만 나중에는 한국전쟁후에 북한은 모든 포로를 석방했기 때문에 지금에야 탈출하는 사람들은 국군포로가 아닌 "이적행위자"-그러니까 월북하거나 북을 택한 부류"의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인민군의 포로 처우로 본다면 절대로 억울하게 억류되거나 탈출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지론입니다. -전 그 글 후로는 박장군을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만
Commented by tore at 2008/12/18 23:00
중공군 볼때마다 느끼는거지만... 모자는 중국 만두 같고 옷은 그 타이어맨 같네요오.(그런데 저 사진 뒤에 폭팔 일어나고 있는거 아닙네까?! 한가롭게 사진이라닛)
Commented by 에로거북이 at 2008/12/18 23:12

제 고향이 통영입니다. 인민군이 침공했던 마지막 지점이자, 대한민국 해병대가 최초로 상륙작전을 펼친 곳이죠.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가 육이오때 경험을 들려주신 게 있습니다.

당시 고구마 말린 장사를 하셧는데 ( 경상도에서는 빼때기라고 부르죠 ) 인민군이 통영시내에 들이닥쳤답니다. 하필이면 인민군이 주둔하던 극장 건물을 지나가게 되었다고 하시더군요.

인민군 중에 어린병사도 많았고 당연히 굶주린 병사들이 많았답니다. 수백명의 무장한 병력들의 굶주린 눈초리가 할머니와 할머니가 가지신 고구마에 쏟아졌답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그걸 공짜로 내놓으라고(약탈)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전혀!

이런 걸 보면 인민군이 확실히 인민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한 노력이 였보이긴 합니다. 물론 시일이 지나 전황이 불리해지면 달라지지만 말이죠.

Commented by 계원필경 at 2008/12/18 23:13
뭐 북쪽 군대(?)야 계속된 전쟁으로 단련된 애이스들이잖습니까...;;;
Commented by 렌덮밥 at 2008/12/18 23:26
공산진영이나 자유진영이나 전쟁 당사자들을 불신하긴 마찬가지였군요-_-;
Commented by 데프콘1 at 2008/12/19 03:01
외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긴데, 어느날 밤 외할아버지가 소랑 집안 살림 다 이끌고 피난가셨다고 합니 다. 그때 총을 든 중공군이 나타나서 식량과 군화를 맞 바꾸자고 했다고 합니다. 서로 간단한 한자로 의사소통을 한 뒤에 중공군이 새삥 군화 2벌과 말린 포랑 맞바꿨다고 하네요. 그후 부산에 도착해서 국군에게 걸렸더니 소는 뺏기고 할아버지는 징병되고 할아버지 가족들은 꿀꿀이 죽으로 연명해야 했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19 12:48
월광토끼//끄덕끄덕...근데 뭐 인민군이나 국군이나 지휘관 나름입니다.

구멍난위장//그렇죠 뭐.

네비아찌//인민군이야 원래 사단장이 하전사에게 존댓말을 써야 하는 군대 아니었습니까.

곤충//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달랐다고 보는게 맞겠죠.

rumic71//내 깔깔이가 어디 갔을까....

카바론//뭐 저것도 부대 나름이라.

쥬스한잔//양쪽 다 적당히 참고하는 게 최고입니다.

minz//예비역 준장이 한 말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라능 그분 무공훈장이 몇 갠지도 모른다능?

dunkbear//그야 저도 모르지요. 있더라도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Lucid//저때 포로로 잡은 중공군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가관입니다.

瑞菜//미군들이 미숫가루를 보고 뭐라고 생각했을지 궁금하군요(...)

제너럴마스터//여건만 허락한다면야.

뚱띠이//저렇게 느긋한 걸 보면 국부군 출신일수도 있을겁니다.

마키아벨리//보급과는 관계없습니다. 팔로군 시절부터 워낙 몸에 밴 일이거든요.

한단인//고정주둔지니까 가능했겠죠.

레인//그건 뭐 만고불변이라는.

nishi//그야 알 수 있나요.

이준님//
1. 옙, 그래서 저도 "특정 장소, 특정 시간의 개인적 경험"이라는 점을 부기했습니다. 그런데도 저게 일반적이었다고 받아들이시는 분은 없겠죠.-_-;;
2. "육사생도 2기"를 제대로 읽은 것 자체가 이 포스팅 작성하면서 본 게 처음이라....그 부분에서는 의문 제기 수준이라 좀 얼떨떨하면서도 납득하고 넘어갔습니다만 말씀하신 잡지 기고문은 아스트랄 그 자체군요. 어이가 없네요.

tore//폭발인지 나무인지 차량 먼지인지....

에로거북이//개전 초기의 인민군 정규군은 팔로군 출신자가 많고 정신교육을 엄정하게 받았기 때문에 대민피해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승전중이고...그래서 전쟁 초기의 대민피해는 내무서나 정치보위부, 지방 공산당 행정기구가 주로 입혔지요.

계원필경//초기에는 확실히 에이스의 비중이 높았습니다. 낙동강에 뼈를 묻어서 그렇지.

렌덮밥//뭐 아무래도 온 놈들 입장에선 "이놈들이 제대로 했으면" 여기 안 왔단 말이죠.

데프콘1//뭐 대략 한숨인 겁니다(쓴웃음).
Commented at 2008/12/19 14:3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19 15:10
1. 그야 그렇죠 ㅎㅎ
2. 확실히 자기가 어느 편에 서 있느냐에 따라 사실의 공개가 달라지요.
3. 미군의 대민피해도 부대별 편차가 있었군요. 흐흐, 확실히 부대 분위기란 게 있긴 하니^^;;
4. 그말도 맞기는 맞네요. 나쁜 애들이 어쩌다 착한 일 하면 더 눈에 띈다...ㅋ
Commented by 【天指花郞】 at 2008/12/21 01:31
뭐 채명신장군인가도 회고록에서 중공군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니까요. '민가에서 잠을 자면 반드시 헛간에서 자고 농기구나 자재를 빌려쓰면 반드시 도로 갖다놓는다.'면서 이걸 다른 상관(정일권 장군이었던가;;;;)에게 말했더니 '그게 그놈들의 전략이지.'라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니까....

결국 채명신장군도 빨갱이군요.[먼바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21 10:24
정일권 장군은 만주군 출신입니다. 그래서 팔로군의 "수법"을 잘 알지요^^
Commented by 비도승우 at 2010/09/19 00:09
사진속의 포로중공군은 웬지 국민당군 출신이라 웃고있는게 아닐까요?ㅋㅋ

(아싸 !! 대만행이다 !!) 아무튼 늙은할머니들께 들은이야기로도 중공군은

돈주고 물건 사갔다고 하더군요.형식적일지라도요. 인민군도 초창기에는

전방위적으로 횡포를 부리지는 않았던걸로 압니다.인천상륙이후부터 거지떼가 되면서

만행이 심해졌죠..(물론 우익인사에대한 만행은 초창기부터 갈수록 심해졌습니다만..)

전에 파로호전투에 참전했던 어느소대장의 수기에도 화천발전소부근의 중공군 보급기지를

점령하고서 물자들을 보니 상해제 농구화에 께끗한 피복들에 고기통조림까지 있어서

아측물자가가 되놈들보다도 질이 나쁘고 수량이 부족한것에 대해 한탄하는 부분이 있던걸로 기억하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9/19 12:32
그야 알 수 없다는.....(먼산)
Commented by 들불 at 2017/02/01 21:55
제 장인어른이 52년도에 최전방 특공대로 작전에 여러차례 투입되어 부상을 입고 포로로 잡혔서 인민군 야전병원에 입원을 했는데요
말린사과에 치약에 양치질을 했답니다.
그리고 장교라도 잘못된 일을 하면 당원이 훈계하고
동구권에서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공습때 간호사들이 업어서 피난시키고 인민군 장교 사병들과 같은 병실을 사용했다는군요
그런데 후방으로 후송이 될 수록 보급이 나빠지더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전방으로 갈 수록 보급이 나빴고 (언제 죽을지 모르니 잘 먹일 필요 없다) 북한은 최전방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고 전투하니 잘 먹이자 이런 마인드 차이라고 봐야죠
나중 포로교환으로 돌아왔는데 원호대상자도 못되고 김대중들어서 겨우 구제되어 연금좀 탔지만 그때는 애들도 다 학교 마치고 뭐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7/02/02 05:47
힘든 경험 하셨네요. 참 한국은 참전용사에 대한 대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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