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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의 퀴즈에 대한 정답은 아래와 같습니다.

<현장의 눈 : 마젤란의 귀환(1522년 9월 7일자 가상의 에스파냐 신문)>

3년 전 세비야를 출발하였던 마젤란 탐험대의 배 한 척이 어제 귀환하였다. 5척의 선박, 256명의 선원으로 구성되었던 마젤란의 선단 중에서 유일하게 귀항한 이 한 척의 배에 살아남은 18명 중 선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원래 포르투갈 사람으로 우리 국적을 갖게 되었던 마젤란은 포르투갈이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동방과의 향료 무역을 빼앗으려면 신대륙을 돌아 동양으로 가는 뱃길을 찾아야 한다고 황제를 설득하였다.황제 폐하의 후원으로 선단을 구성한 마젤란은 포르투갈이 장악하고 있던 브라질 해안을 피해 남서쪽으로 항해하기 시작하였다. 귀항한 선원들의 말에 의하면 항해는 순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많은 암초와 눈덮인 얼음 사이를 뚫고 나가던 중 거센 바람을 맞아 2척의 선박을 잃었으며 선원의 폭동도 있었다는 것이다.

태평양으로 들어선 이후 98일간을 항해하여 겨우 섬에 도착하였는데, 도중에 물과 식량이 떨어져 쥐를 잡아 먹으며 항해를 하였다 한다. 섬에 상륙한 선장 마젤란은 그 곳 원주민들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후 지휘권은 항해사 세바스찬 델 카노에게 인계되었다. 남은 두 척의 선박을 이끌고 항해를 계속하던 탐험대는 몰루카 제도에서 싣고 간 물품을 향료와 바꾸는 데 성공하였다 한다. 마젤란 선단의 귀향으로 이제 선원들은 보다 안전하게 태평양으로 항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 태평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신대륙 남단과 남극대륙 사이의 험한 드레이크 해협을 통과해야 했으나, 마젤란 선단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여 안전하게 태평양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한다. 벌써부터 선원들이 관심이 높아진 새로운 항로를 마젤란 해협이라고 부르자는 제안이 있었다.

선단의 귀환으로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그들이 가져온 향료에 쏠리고 있다. 이 향료는 적어도 원가의 60배 이상의 가격으로 팔릴 것으로 예상되어 탐험 비용을 뽑고도 남을 것으로 보인다.



1. 총원 256명 - 마젤란 선단의 선원 숫자에 대해서는 270명, 277명, 280명 등 대체로 270~280 선에서 거론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256명과는 거리가 있지요.

2. '선장'이 없다? - 귀항하던 빅토리아호의 선장은 분명 세바스티안 델 카노입니다. 선장이 없을 수 있나요-_-
마젤란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다면, 탐험대장 또는 사령관이라고 하는 편이 맞았습니다. 아니면 지도자, 리더나.

3. '황제'의 후원? - 마젤란의 항해를 지원해준 사람은 에스파냐 왕 카를로스 1세입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가 아니고 말이죠 :)

4. 거친 바람에 2척을 잃고 - 마젤란 해협에서 상실한 2척의 배 중 산티아고호는 폭풍에 휘말려 파선한 것이 맞지만 산 안토니오호는 탈주했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다소 이해의 여지가 있는 것이, "귀환한 선원"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이므로 그 선원은 산 안토니오호가 파선한 것으로 알고 있을 수도 있겠군요. 문제는 대부분의 선원들이 이 배가 탈주했다고 생각했다는 점이지만-_-

5. 섬에서 사망? - 필리핀에서 죽은 마젤란을 마치 괌에서 죽은 것처럼 생각하기 딱 좋게 적었지요.

6. 델 카노가 지휘관? - 마젤란 사후, 곧바로 후임 지휘관으로 선출된 사람은 두아르테 바르보사였습니다만 곧바로 원주민들에게 살해당했고 이후 지휘권을 잡은 사람은 트리니다드 호의 안내인인 후안 로페즈 카발로였습니다. 그런데 카발로는 해적질을 하려다가 치안관(Constable)인 에스피노사에게 해임, 구금되었고 이후 지휘권은 에스피노사가 잡습니다. 하지만 트리니다드호가 난파하면서 빅토리아호와 떨어지게 되었고, 빅토리아호의 항해사 델 카노가 전체 지휘권을 장악한 것은 이때에 와서야 이루어진 일입니다.

7. '드레이크 해협', '이전에 태평양으로', '새로운' 항로 - 이 이전에 유럽인이 배를 타고 태평양으로 나가본 역사가 없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건 개소리가 될 뿐. 드레이크 해협은 아직 존재 자체도 알려지지 않은 시점입니다.


그리고 지적해주신 사항 중에서 오류라고 보기 곤란한 부분도 있습니다.

1. tore님이 이적하신 2척 남았다는 부분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마젤란 해협에서 1척 난파/1척 탈주한 후 필리핀에서 마젤란이 죽었고, 게다가 원주민들의 배신으로 30명 가까운 간부 선원들을 잃고 나자 여기서 남은 인원으로 배 세 척을 움직이기에는 무리라 제일 상태가 나쁜 콘셉션호를 불태웠거든요. 따라서 "2척 남은 배를 끌고 몰루카 제도로 간" 것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2. 위장효과님의 포르투갈 말씀. 물론 포르투갈은 브라질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지는 못했지만, 브라질의 영유를 스페인으로부터 인정받은 상태로 일부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포르투갈이 차지한" 해안을 피했다는 건 말이 되지요.

재미있으셨나요~^^;;

by 슈타인호프 | 2008/12/11 02:30 | 세계근세(~1789)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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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12/11 04:5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8/12/11 09:43
2번은 저도 맞혔군요^^
Commented by 계원필경 at 2008/12/11 10:03
저게 교과서 내용이라는 것이 심히 걱정 스러울 정도...(다만 애들은 그시간때 잔다는게 오히려 위안...)
Commented by 카바론 at 2008/12/11 10:36
이것은 상태가 몹시 끔찍한 것입니다.
Commented by 리리 at 2008/12/11 10:52
세계사 교과서의 문제점에 관해선 책도 나온 바 있지요.
그리고 딴지는 아니지만, 카를로스 1세는 황제로서는 카를 5세가 맞습니다.
황제 겸 에스파냐 왕이었기에 각기 그에 따라 달라졌다고 하네요.
Commented by Alias at 2008/12/11 11:43
저도 언제 한번 과학교과서의 엽기적인 행태를 좀 정리해야 할 텐데요....-_-; (역사 덕후들 같은 과학덕후는 거의 없기 때문에 지적이 잘 나오지 않지만 과학교과서 쪽은 그 때문에 검증이 부실해서 엉터리서술이 판을 치죠....)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8/12/11 11:43
그때 이미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도 참 대단한 인물이었지만-가 죽은 뒤였을텐데...

하지만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마젤란의 항해를 허락한 건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의 칙령이 아닌 에스파냐 국왕으로서의 칙령이었다 이 말씀이시군요^^
Commented by tore at 2008/12/11 12:26
;ㅅ; 제가 말하고자 한건 2척을 잃고 2척이 남았다길래 한척에 대한 언급이 없는줄 알았던 거였지요. 상세히 아는것도 없이 글만 읽은 결과.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11 12:59
비공개//저 신문이 독일이나 네덜란드, 이탈리아에서 발행되었다면 황제로 표기하는 게 맞겠습니다만, "에스파냐"에서 발행된 이상 "에스파냐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황제폐하라고 적으면 이상해지지요. 영국인들이 "대영제국의 국왕이자 인도의 황제"인 자신들이 군주를 "황제폐하"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았습니까?^^

네비아찌//옙 축하드립니다 ^^

계원필경//제가 현재 확실히 찾아둔 건 하나 더 있을 뿐이지만(그림설명입니다), 아마 더 있을 겁니다. 없을 리가 없죠.

카바론//처음 발견했을 때는 마음이 아프더군요(...)

리리//네, 이번 같은 경우는 그 "때에 따른" 경우지요.

Alias//오오, 올라오는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위장효과//옙, 그런 거죠^^

tore//네, 충분히 오해를 살 수 있는 서술이지만, 중간을 생략한 거지 왜곡은 아니었거든요.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8/12/11 20:01
그런데, 태평양을 처음 발견한 건 마젤란이 아니라 바스코 발보아였던 것으로 압니다. 발보아의 부하중에 악명떨친 사나이가 하나 있죠. 프란체스코 피사로라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11 20:05
네, 1513년에 바스코 누네스 데 발보아가 최초로 태평양을 발견했죠. 피사로도 이때 동반했고...

알궂게도 훗날 발보아가 처형될 때 처형장으로 압송한 것도 피사로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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