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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이의 난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세포이(sepoy)는 페르시아어의 시파히(sipahi)에서 파생된 말로, 유럽인에 의해 고용된 동인도회사의 인도인 용병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온 동양에서 유럽인만으로 거대한 인도를 지배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인도인 병사의 존재는 꼭 필요했지요. 이들은 대부분 브라만과 라지푸트 등 상층 카스트 출신이었습니다. 모슬렘의 경우에도 상층계급 출신이 많았지요.

하지만 이들 세포이에 대한 회사측의 대우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19세기 초 세포이들이 한 달에 받는 봉급이 7루피(10루피가 약 1파운드. 1파운드 = 20실링, 1실링 = 12펜스)인데, 여기서 식비 3.5루피에 이런저런 기타 잡비로 2~2.5루피 정도 쓰고 나면 집에 보낼 수 있는 돈은 고작 1~1.5루피 정도였지요.
게다가 동인도회사는 세포이들이 갖는 민족적/종교적 전통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복장 통일을 이유로 세포이들이 카스트의 상징으로서 달고 있는 부착물과 터번을 금지하려고 시도한다든가, 바다를 건널 수 없는 터부를 가진 병사들에게 버마나 중국으로 가라고 해외파병을 명령한다든가 하는 식이었지요. 이로 인한 불만이 잔뜩 고조된 상황에서, 여기에 유명한 탄약포 문제가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겁니다.

당시 사용되던 소총들은 아직 총구로 탄환과 화약을 재는 전장식이었는데, 탄환과 화약이 함께 종이로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이 종이를 이빨로 찢고 화약을 총구에 부어넣은 다음 그 위에 탄환을 집어넣게 되어 있는데, 이 포장지를 "이빨로 찢는" 과정이 문제였습니다. 종이로 싼 화약에 습기가 차면 곤란하기 때문에 기름으로 방수처리가 되어 있었는데, 이게 (힌두교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신성시하는)소와 (이슬람교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더럽게 여기는)돼지의 기름이었거든요.
인도인들에게 이런 기름을 입에 넣으라는 것은 기독교를 믿는 유럽인에게 십자가를 짓밟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의 요구였습니다. 우연히 새어나간 이 소문이 전 인도의 세포이들에게 퍼지는데는 단 2주일밖에 걸리지 않았고, 격한 세포이들의 반발에 접한 군 당국은 당황해서 그 소문을 부정하고 탄약포를 이로 뜯을 필요 없이 손으로 개봉해도 좋다고 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습니다. 결국 이 탄약포가 세포이와 인도 민중의 쌓이고 쌓였던 영국에 대한 불만을 넘치게 한 마지막 물 한 방울이 되었던 거죠. 특히 반란의 도화선이 된 벵갈 군관구 소속 세포이들은 힌두건 모슬렘이건 높은 카스트에 속한 집안의 이남이나 삼남이 많아서 종교적 계율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했습니다.

그 이후 반란의 구체적인 전개양상이나 진압과정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루트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만큼, 여기서는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만 조금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벵갈 군관구
② 봄베이 군관구
③ 마드라스 군관구


흔히들 "세포이의 난"이라고 하면 전 인도의 세포이들이 일치단결하여 일으킨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교과서만(...) 접한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지요. 교과서에서는 인도 전국민이 단결한 것처럼 쓰고 있거든요.

하지만, 실제로는 전 인도인은 커녕 세포이들조차 단결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동인도회사는 인도 전역을 3개 군관구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었는데, 그중 반란에 가담한 세포이들은 1번의 벵갈 군관구에 속해 있던 병사들 뿐이었습니다. 봄베이 군관구와 마드라스 군관구의 세포이들은 영국인 상관의 명령에 따라 반란군 진압에 나섰지요.
또한 영국인들은 펀잡의 시크족과 네팔의 구르카 족으로부터도 용병을 모집, 반란 진압에 투입했습니다. 시크족과 같은 인도 내 소수민족과 대다수 힌두교도에게 있어서 이슬람 통치자가 다스리는 무굴제국(반란군들이 인도 독립의 상징으로 내세운)은 압제자의 상징이었고 증오스러운 적대자일 뿐이었죠. 또한 시크인들에게 있어서 벵갈인과 영국인은 양자 모두 별 차이 없는 외국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반란 지역의 인도인들도 단결된 모습 따위는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최초의 본격적인 봉기가 일어난 메라트에서처럼 주둔하던 군대가 델리로 떠나버린 곳에서는 곧 지역의 지도권을 쥔 토후나 지주들이 반란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봉건적인 특권의 회복부터 획책했습니다. 당연히 영국에 대한 반기 따위에 열중할 리가 없었죠. 게다가 도시의 부유한 상인이나 신흥 지식층은 그 대부분이 반란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반란은 거의 전적으로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다 당시에도 인도 전체 영토의 4할 가량을 점하고 있었던 토후국들은 극히 반란에 미온적이었습니다. 라지푸타나나 하이데라바드는 반란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고, 시크족은 아예 적극적으로 영국을 지원했습니다. 영국에게 자기 영토를 빼았긴 일부 토후 - 잔지의 여왕, 라크슈미 바이(인도의 잔다르크"로 불림)가 대표적입니다 - 들은 맞서 싸우기도 했지만 아직 지배권을 가지고 있던 토후들은 대부분 반란에 호응하지 않았죠. 일부 반란에 동참했던 토후나 지주들은 전황이 불리해지자 즉시 영국의 매수공작에 응해 동족을 배신했습니다. 심지어는 반란이 발발한 직후인 8월에도 서북 변경 지방의 토후들은 동인도회사 대리인에게 충성을 서약하면서 "당신들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겠는가"고 묻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지요.
이들 토후국들은 특권의 유지를 위해 끝까지 영국 편에 섰고, 향후 2차세계대전 당시 전국적인 독립요구와 국민회의파의 비협조운동의 물결이 몰아칠 때도 토후국들은 영국의 전쟁 수행에 협조했습니다. 영국이 2차대전 당시 인도에서 조달한 병력의 대다수가 이 토후국들이 징발하거나 모슬렘 연맹(힌두교도가 주도하는 국민회의파와 대립하느라 상대적으로 영국에 협조했습니다)이 제공한 것이었죠.

이렇게 해서 세포이들의 반란이 진압되자 이후 인도군의 조직에 대해서도 큰 변혁이 가해지게 됩니다. 애초에 인도군, 즉 동인도회사군은 영국인 대 세포이의 비율이 1:6이었는데, 반란의 주역이었던 벵골군은 1:1로 세포이의 비율이 낮아집니다. 봄베이와 마드라스 군관구에서는 1:2로 세포이가 더 많기는 했지만 역시 예전의 수치에 비하면 영국인의 비율이 훨씬 높아졌지요.
뿐만 아니라 세포이들의 출신에도 큰 변화가 생깁니다. 그동안 힌두나 모슬렘 상층 카스트 출신자들의 반발에 애를 먹은 탓에, 이 사건 이후로는 의도적으로 브라만이나 라지푸트 출신자가 배제되고 진압에 협조했던 시크족-구르카족-파탄족 등의 소수민족 출신 병사들을 주로 채용하거든요. 영국인들은 세포이들이 민족적으로 단결하지 못하게 하고자 의도적으로 분열요인을 심었던 겁니다.
이런 방침은 직할식민지가 된 후에도 계속됩니다. 실례로, 65년 뒤에 발생한 암리차르 대학살에서 다이어 준장이 인솔했던 150명의 병사들도 전원 인도인이었는데 구르카 족 용병이 100명, 50명은 발루치스탄 출신이었지요. 때문에 이들은 대부분 힌두교도인 군중에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발포했고, 50명의 병사가 10분간 발사한 1,650발의 탄환으로 379명(어른 331명, 어린이 41명, 생후 6주의 유아 1명)의 사망자와 1,200명이 넘는 부상자(정부측 조사. 국민회의파의 조사는 사망자 1,200명에 부상자 3,600명)가 발생했습니다. "분할하여 통치하라"는 격언의 실례라고 할까요.

또한 일반 사회와의 유대를 차단하기 위하여 세포이들의 병영에는 신문의 반입조차 허용되지 않았고, 어떤 인도인도 장교로 임명되지 않았으며(영국 정부가 인도인 장교를 임명하겠다고 처음 발표한 것은 한참 뒤 1차대전이 진행중인 1917년 8월 21일), 최신의 강력한 무기는 영국인 부대에만 지급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도는 그후 60년 이상 무릎을 꿇어야 했고, 결국 인도에서 독립의 열기가 다시 본격적으로 타오른 것은 1차대전 이후인 1920년대였습니다. 그전까지 개별적인 반영독립운동이 벌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때에 와서야 간디의 지도하에 비로소 전 인도인이 단결의 길로 가기 시작했던 거죠.

by 슈타인호프 | 2008/11/30 14:58 | 세계근대(~1900) | 트랙백 | 핑백(2) | 덧글(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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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곤 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벌써 한두 번 다룬 것이 아니므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세포이 항쟁에 대해 다룬 다른 포스팅(세포이의 난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앞부분을 참조해 주세요(이젠 지겨워). 8. 이집트가 중앙아시아를 정복해?! 는 포로인 에티오피아의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파라오의 딸 ... more

Linked at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는 둥지.. at 2009/06/10 17:44

... 저한 허수아비가 되어 갔죠. 통치에 대한 모든 실권은 영국인 관리들이 쥐었으며, 군주들은 지배권 유지를 위해 식민권력에 철저히 협조했습니다. 옛날에 포스팅한 세포이의 난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2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가 영국에 제공한 병사들 중 상당수가 이들 토후령에서 나온 것이었죠. 아아, 이런 이야기까지 다 할걸 ... more

Commented by 소시민 at 2008/11/30 15:02
많은 지배층들이 자신의 자리가 안전하고 이득이 된다면 외부세력의 침략에도 협력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세포이는 아편전쟁에도 참전했는지 궁금해지네요.

Commented by 아브공군 at 2008/11/30 15:02
몰랐던 거 잘 알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레인 at 2008/11/30 15:04
역시 항상 진실은 다른데 있었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1/30 15:14
소시민 //아편전쟁에도 당연히 참가했습니다. 상세한 병력 규모까지는 제가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아브공군//뭘요^^;;

레인//그래서 책을 읽는 게 즐겁습니다.
Commented by Ladenijoa at 2008/11/30 16:14
인도병들은 거의 대부분의 전쟁에 참가한 걸로 압니다. 아편전쟁도 그렇고, 의화단의 난 당시에도 참전했고-영화에도 나오죠- 독립하기 전의 모든 전쟁엔 꼬박꼬박 참여했죠.

뱅골 군관구만 반란을 일으키고 붐베이 군관구와 마드라스 군관구가 진압에 나선 건 진짜 의외군요. 어차피 전 세포이가 모두 봉기했을 거라 생각은 안 했지만... 군관구별로 대우가 달랐나;;;
Commented by 계원필경 at 2008/11/30 16:23
나중에 토브룩에서 DAK에 항복한 영국군들도 다 인도 출신이죠...(찬드라 보스의 괴뢰 정부도 있고...)
Commented by 곤충 at 2008/11/30 16:37
대략적으로 알던 것들과는 다른 이야기가 많았군요.
역시 사람은 책을 읽고 진실을 확인해 봐야 하나 합니다.
Commented by 유이 at 2008/11/30 17:13
앗, 저도 세포이로 인해 시발된 항쟁에 전 인도인이 참여한줄 알았어요. ( _ _);;
Commented by 정호찬 at 2008/11/30 17:50
불만이 묵혀있었다지만 봉기 자체가 장기간 계획을 세워서 일으킨 것도 아니고 욱해서 터진 건데 그게 조직적으로 돌아가면 더 이상하죠.


에이지오브엠파이어3에선 세포이 항쟁에서 인도인 중위 나오던데. -.-;
Commented by 행인1 at 2008/11/30 17:57
포스팅을 보니 탄약포 문제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봉기가 일어날만 했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1/30 19:06
ladenijoa//그만큼 일체감이 없었다는 이야기죠.

계원필경//아뇨, 본국이나 타 자치령 출신들도 꽤 많습니다.

곤충//책이야 뭐 많이 읽을수록 좋다는./

유이//사실, 진짜로 전 인도인이 참가했으면 몰멩이와 몽둥이만으로 영국인들을 몰아낼 수 있었지요(...)

정호찬//끄덕. 그리고 그 장교는 아마 정규정교가 아니고 현지에서 임시직으로 맡은 걸 겁니다.

행인1//말 그대로 모조리 죽어가고 있었거든요.
Commented by 윙후사르 at 2008/11/30 19:47
그전에는 그럼 라지푸트 족도 고용했다는 건가요... 조금 개념이 없었던듯... 무굴제국도 그녀석들 잡느라 국력 다 탕진했거늘...
Commented by 【天指花郞】 at 2008/11/30 19:59
어차피 진압되었다는 거 자체가 애초에 전국민적 항쟁은 아니었다는 이야기죠 -_-;;

근데 어느 책에서 보니까 실제로 돼지기름 소기름은 크게 문제가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실제 반란군은 '아주 태연하게' 약협을 이로 찢어 섰다고 하던데요.[머엉]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1/30 21:18
윙후사르//때려잡기 어려운 적이라면 내 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의외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죠^^

天指花郞//뭐, 그 탄약은 그 전에 받은 구형 탄약이었을지도 모르죠^^
Commented by 산중암자 at 2008/11/30 21:50
쇠/돼지기름 이야기는 한동안 '총기 정비용'이라고도 알려졌던 걸로 기억납니다. (아마 전장식 소총용 탄약포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일려나요?^^)

이러저러한 책에서 세포이 항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꽤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된 후로 국내에 알려진 것처럼 단순한 '독립운동'은 아니구나..라는게 느껴지더군요;;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8/11/30 22:41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뚱띠이 at 2008/11/30 22:44
세포이의 반란하면 딱 한장의 그림이 먼저 기억납니다. 대포 앞에 묶어놓고 대포의 심지를 당기는 말 그대로 '포살'....
Commented by Empiric at 2008/12/01 00:01
사실 역사적으로 '인도'라는 민족 국가 개념이 없던 시절이니 단결한다는게 오히려 이상하겠죠.
그나저나 이런 점만 봐도 한국의 역사교과서들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매우 강한데, 이걸 좌편향되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뭔지 -_-
Commented by 집쥔 at 2008/12/01 00:31
크핫! 역시 영국인은 대인배입니다(...) 역시 식민지 경영에 있어서는 과연 대영제국, 철저히 빈틈없네요. -ㅅ-;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01 01:44
산중암자//아마도 그래서인 듯 합니다. 사물은 뭐, 언제나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단순하진 않죠^^

나아가는자//감사합니다 :)

뚱띠이//정말 덜덜덜이죠. 반란분자 색출한답시고 마을 하나 몰살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으니.

Empiric//글쎄요, 모를 일이죠 ㅎㅎ

집쥔//아아, 정말 따라갈 누가 없습니다.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8/12/01 10:09
예전 순정만화중에 인도의 군소 토후국에 시집간 영국 아가씨...에 대한 게 있었는데 갑자기 기억이...

배경은 대략 아프리카에서 논멜장군의 지휘를 받는 DAK와 이탈리아 피자 배달부들이 더부룩을 공략하느냐 마느냐 일진일퇴하던 시기였을 겁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01 10:16
음, 안 좋을 때 갔군요. 1910년대에만 갔어도 일생을 호화롭게 살았을텐데 그 시기면 몇 년 안 남았을 때니.
Commented by 어릿광대 at 2008/12/01 10:29
중2사회교과서에서 세포이의 난을 본거같은데 아 역시 교과서하고 실제사실하고
틀린거였군요 OTL;;;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01 10:46
교과서는 좀 많이 단순화와 편집이 이루어집니다^^
Commented by 上杉謙信 at 2008/12/02 01:38
2차대전당시에 영국군에 소속된 인도군이 라지푸트족이었던가요 아무튼 도길군 목아지 따는덴 명수였다더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12/02 02:01
아프리카 전선에서 날렸다고 하더군요.
Commented by 레드칼리프 at 2009/04/29 16:12
오오 링크를 통해 소중한 내용 잘 읽었습니다. 요새 진나에 대해 깔짝깔짝하고 있었는데 잘됐군요.
슈타인호프님 블로그에 들르면 얻고 가는게 아주 많습니다. ^^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4/30 02:07
잘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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