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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가 옥갑을 한나라에서 공물로 받았다?
대마도는 일본땅이다...는 포스팅을 쓰신 대가로 신나게 달리는 악플을 받고 계신 을파소님 이글루에서...수백 개(현재 624개군요)가 달린 리플을 읽다가 웃기는 걸 하나 발견했습니다. 전형적인 환빠인데, 저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주장이 하나 있어서요.

지금 울 국사교과서의 체계자체가 엉망입니다. (중략) 예전에 국사교과서가 사실이라면 1억을 주겠다고 신문광고를 했던 역사연구단체의 경우 주장을 보면 부여가 한나라보다 실제론 더 강한 나라였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중략)...예전에 MBC서 방송해서 유명했던 주몽이란 영화에서 마치 한나라 철기군이 반지의 제왕에나 나올법한 완전철무장으로 부여왕이 일개 한나라의 현토성군주에게도 푸대접 받는 식으로 묘사되기도 했지만..실제 드라마방송당시 우리에 의해 실제로 밝혀진 고고학자들의 연구물에 의하면 당시 부여가 한나라보다 철기문화가 더 발달되있었고 부여는 당시 철비닐로 갑옷을 만들고(철비닐갑옷이 통갑보다 앞선 기술임) 강철기술도 더 발달되있었다는 반론연구물도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한나라가 부여보다 진짜 더 강했는지 의심인게

{중국 전한(前漢:서기전 206~서기8년)에 황제와 제후왕들을 매장할 때 옥을 캐어 2498편의 옥편을 가공하고, 옥편의 네 귀퉁이에 구멍을 뚫어 약 1100g의 금실로 꿰맨 옥의, 옥침, 신 등으로 만들어진 수의 즉, 옥갑(玉匣)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옥갑의 생산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므로 후한(後漢:25~220) 때에는 황제의 장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이 옥갑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다가, 위(魏:220~264)나라의 문제(:220~227)가 박장령을 내려 옥의 사용을 아예 금지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후한시대에 후한의 황제만 사용할 수 있었던 이 옥갑을 후한의 황제가 미리 만들어서 부여와 가까운 현도군의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부여의 왕이 서거하였다는 통보를 받을 때마다 부여왕의 장례식에 늦지 않도록 즉각 이 옥갑을 선물로 보내야 했다고 중국 위, 촉, 오의 삼국시대 역사서인 『삼국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부여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강대국이었음을 보여 주는 기록입니다.

이 옥갑의 상납문화로 미루어 볼 때 한나라에서는 해마다 막대한 량의 곡식, 금ㆍ은ㆍ보화ㆍ옷감 등을 부여에 선물(상납)하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한나라를 침입하지 말라는 것, 고구려, 선비 등을 견제해 달라는 이유였겠지요.

중국의 상납을 받던 이 북부여ㆍ부여의 1,000년 역사는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북부여ㆍ부여를 역사가 동부여의 역사로 왜곡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

(부분발췌)

일단 "철비닐갑옷"에서 대폭소. 뭐, 비늘의 오타겠지만 웃긴 건 웃긴 거죠. 그리고도 더 웃다 보니 문득 밑에 있는 옥갑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게 뭔 헛소린가 해서 확인을 해 봤죠. 제가 가지고 있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 번역본에서 찾아본 결과 옥갑이 거명되는 해당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마여'가 죽었는데, 그 아들 '의려'가 여섯 살로 왕위에 올랐다. '한'때에 부여왕은 옥갑으로 장사를 지내는데, 항상 '현토군'에 놓아 두었다가, 왕이 죽으면 곧 가져다가 장사하였다. '공손연'을 쳤을 때 '현토'의 곳간에 옥갑 하나가 있었다. 이제 '부여'의 곳간에는 옥벽과 규와 제기들이 있으니, 세세토록 전하는 보물로, 늙은 노인이 말하길 선대에 하사 받은 것이라 한다. [위략에 말하길 그 나라는 몹시 부유하니 선대부터 왔다. 아직 깨어지지 않았다.] 그동장의 글자에 '예왕의 도장'이라 하니 나라의 옛성에 '예성'이 있다. 대개 근본은 '예맥'의 땅이다. '부여'가 그 가운데에서 왕노릇을 하고, 스스로 '망인'이라 하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위략에서 말하길 예날 북방에 '고리'국이 있었다. 그 왕의 시녀가 태기가 있어, 왕이 이를 죽이고자 하자 시녀가 말하길 계란같은 기운이 있어 내려와 내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하였다. 후에 아들을 낳으니 왕이 돼지 우리에 버렸으나, 돼지들이 입기운으로 덥히고, 마굿간으로 옮기자 말들도 이와 같아, 죽지 않았다. 왕이 괴이하게 여기고, 하늘의 아들로 간주하여 그 어미에게 거두어 기르게 하였다. 이름을 '동명'이라 하고 말을 기르게 명하였다. '동명'은 궁술에 능하자, 왕이 나라를 빼앗길까봐 두려워 하여 이를 죽이고자 하였다. '동명'이 달아나 남쪽의 '시엄수'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다. '동명'이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들이 이네 흩어지자, 쫓던 병사들은 건널수가 없었다. '동명'은 이로 인하여, '부여'의 땅에서 왕노릇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공손연은 위나라에 반항하다 살해된 요동태수로, 238년에 사망했습니다. 즉 부여의 왕들은 후한 시대에도 황제만 사용할 수 있는 옥갑(玉匣), 즉 옥으로 된 수의를 입고 묻혔다는 거죠. 옥갑은 대략 이렇게 생겼습니다.


옥갑은 옥편을 황금실로 꿰메서 만듭니다. 옥과 금은 둘 다 썩지 않는 물질이므로, 망자의 시신이 저세상에서도 상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수의로 표현되는 거죠.



그런데 이게 한나라 황제가 부여 왕에게 바치는 공물이라고요?-,.-

네, 분명 삼국지에는 현도군에 두었다가 장례 치를 때 "가져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게 왜 공물이라는 증거가 되는지 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황제만 쓸 수 있는 물건이라는 의미가, 세상 누구도 못 쓴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황제 이외의 인사들이 저 수의를 쓰지 못하게 한 것은 결국 과도한 비용으로 인한 사치 문제인데, 그 "돈"을 쓰는 사람이 한나라 사람이 아니면 상관없는 문제 아닙니까? 고금을 통털어 "사치"를 금지한 나라는 많았습니다. 사치품 수입을 금지한 나라도 많았지요. 헌데 사치품 수출을 금지한 나라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전 듣도 보도 못 했습니다-_-

정말 부여가 무지 막강해서 한나라가 공물을 바쳤을 것 같으면, 왜 옥갑을 굳이 요동 구석에 보관할까요? 부여 왕이 "돌아가시면" 제꺽 빛이 번쩍거리는 신품을 만들어 바쳐야 하는 것 아닙니까?^___^
늦으면 부여에서 화내니까, 얼른 갖다줘야 하니까 그렇다고요? 아니 부여 왕실에서는 3일장을 하나요? 삼국지에 보면 "다섯 달"동안 장사를 지낸다고 했는데 한나라에서 수의를 만들어서 보내도 충분한 시간 아닌지요?
그럼 아예 부여 왕궁에 갖다놓지 않고 뭐하러 요동에 두는 걸까요? 관이나 수의가 집안에 있으면 기분나쁘다고요? 아니, 그렇게 강국인 부여의 "수도"에 장례일습 보관할 장소가 없단 말입니까?!?! 어허, 큰일이네!!

요동에 갖다둔 옥갑은 부여가 한나라로부터 개인적으로 구매했다고 봐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미리 받아두면 관리하기 좀 그러니까, 필요해질 때까지 중국 쪽에 맡겨놨다고 봐도 타당합니다. 그러니까 "가져갔다"고 쓴 거죠. 저 위에 이미지 찾으면서 구글 검색을 돌려 보니, 첫 페이지 거의 전부가 카피해온 리플과 똑같은 내용으로 메워지더군요. 이 홈페이지, 저 블로그, 그 게시판...하는 식으로 뜨는 장소는 제각각인데, 한나라와 옥갑 관련된 글들은 하나같이 토씨 하나도 안 다르고 똑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원래 처음 쓴 작자가 누군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같은 삼국지에는 이런 대목도 있는데 저런 분들은 어떻게 해석하실지 궁금하네요.

'부여'는 본래 '현토'에 속하였는데, '한'말에 '공손도'가 바다 동쪽에서 크게 일어서자, 바깥 오랑캐를 위엄으로 복속시켰다. 부여왕 '위구태'는 다시 '요동'에 속하였다. '구려'와 '선비'가 강성하자, '공손도'가 '부여'가 두 오랑캐 사이에 있자, 종실의 여자를 처로 삼게 했다. '위구태가 죽자, '간위거'가 섰다. 적자가 없고, 첩의 아들인 '마여'가 있어, '위거'가 죽자 여러 '가'들이 함께 '마거'를 세웠다. '우가'의 형의 아들이 있는데, 그 이름도 '위거'이니, 대사로 하였다.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선을 배푸니, 나라사람들이 따랐다. 세세토록 사신을 파견하여 (위나라의)서울에 이르러 공물을 바쳤다. '정초'중에 '유주'자사 '관구검'이 '구려'를 벌하고, '현토' 태수 '왕기'를 부여에 보냈는데, '위거'가 대가를 보내어 성 밖에서 맞이하여, 군량을 보태었다. 계부인 우가가 두 마음이 있자, '위거'가 계부의 아비와 아들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아 기록하고, 염송관으로 보내었다. 옛 '부여'의 풍속에 가뭄이 들고, 날이 고르지 못하여, 오곡이 익지 않으면, 갑자기 그 왕을 책망하는데, '혹 바뀜이 마땅하고, 죽이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마 식민사학자들에 의해서 변조되었겠죠?^^ 네? 그렇겠죠?

by 슈타인호프 | 2008/07/22 03:06 | 한국고대(~668) | 트랙백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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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8/07/22 03:11
당장 한나라에서도 중산정왕 유승 (예, 그 유비의 조상이죠) 등 황제가 아닌 고관도 금루옥의를 사용한 용례가 있는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比良坂初音 at 2008/07/22 03:26
후....(뒷산) 한때나마 환빠가 될뻔했던 입장이지만 환빠들은 정말;;; 답이 안나오는군요-;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8/07/22 07:06
제목에 오타군요. 한라 -> 한나라...^^

을파소님 게시판에 또 환빠들이 들끓는 건가요? 구경이나 가봐야겠군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7/22 08:49
저런걸 볼때마다 그저 웃고 맙니다.... 웃는게 웃는게 아니지만요.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8/07/22 09:11
을파소님 이글루 갔다가 눈이 썩는 줄 알았습니다. 한때 환독에 물든 적이 있는 제가 보고서 "내가 예전에 저 GR을 했단 말이지?"하고 엄청나게 부끄러워지던데요...(먼산)
Commented by 캐안습 at 2008/07/22 09:40
제가 중학교때 잠깐 환빠의 길을 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지금마냥 캐븅신들이 넘쳐나게 된 거는 쿠투의 탓이 크지 않나 합니다.
Commented by 어릿광대 at 2008/07/22 10:30
뭐 자기주장만 하면 된다는 사람들이 있는듯 하네요;; 으윽;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7/22 11:30
네비아찌//그렇지요 ㅎㅎ

比良坂初音//도무지 답이 없는 집단입니다.

초록불//수정했습니다^^;;

행인1//그래도 웃어야죠.

위장효과//다 쓸어버릴 수도 없고 말이죠.

캐안습//전 군시절에 진중문고인 대쥬신제국사를 읽고 잠시 물들었었지요.

어릿광대//짜증나는 사람들입니다.
Commented by 곤충 at 2008/07/22 11:32
저도 한때 환빠로 놀았습니다만;;;
저런거 볼때 마다 웃다 죽겠습니다.
Commented by 뚱띠이 at 2008/07/22 11:44
처음에는 웃지만 그 다음에는 울게 만드는군요.....저걸 믿고 자란 이들이 이 나라를 어케 만들지.....진짜 나치당이라도 만들 생각인지...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7/22 11:51
곤충//이렇게 웃기기도 힘들지요.

뚱띠이//개판 되는 거죠 뭐.
Commented by 아브공군 at 2008/07/22 12:29
뚱띠이님 말씀에 동감. 지금 정치권이 하는 짓도, 저 거짓말을 마구 퍼트리는 사람도....

또다른 '한국제 히틀러'의 탄생을 위한 일 같은.....
Commented by 을파소 at 2008/07/22 12:44
그런데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신뢰할 경우, 대마도가 신라 땅이었다는 것도 부정되지 않던가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7/22 15:53
아브공군//히틀러는 "그나마" 그인간들보단 유능합니다-_-;;

을파소//그렇지요 ㅎㅎ
Commented by Ya펭귄 at 2008/07/22 17:43
예전 강시 영화중에 사진과 비슷한 비취갑옷을 입은 강시가 나왔던 영화를 봤던 기억이....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7/22 19:22
오 왕실 강시군요 ㅎㅎ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8/03 15:55
慕華//마왕퇴는 전한대 고분 아니었나요?

뭐, 문화란 시대가 흐르면 변하게 마련이니 과거와 현재가 같을 수는 없지요. 지금 우리 바로 윗대인 조선도 신라나 고조선과는 무지 많이 다른데...

도기 쪽은 별 관심이 없어서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처음 들었군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8/03 18:08
마왕퇴 고분이 기원전 1세기 중엽이니, 진대와는 150년 정도 차이가 나는군요. 먼 옛날은 아니긴 합니다^^
Commented by at 2019/05/05 22:04
옥갑을 비치해 둔 것은 역사적 사실인데 그게 환빠와 무슨 상관임? 글자 하나로도 역사 해석이 달라지는데 옥갑은 무지 중요한 내용임. 강단의 사대주의 식민사학에서는 해석 불가능한 내용으로 봄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9/05/07 11:54
아 네 살펴가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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