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으로 족한 것을 비난하지 말자.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언, 15장 4절)
by 슈타인호프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3 대표 이글루 2016 대표 이글루
이글루 파인더


메모장

카테고리
전체
기록공지
일상잡상
가족일기
몽유잡담
도서잡담
만화잡담
음식잡담
기행잡담
게임잡담
영화잡담
문답설문
낭만잡담
까칠할때
도서좌판(판책+공지)
좌판매물(팔책)


역사 : 통사(?~?)
한국고대(~668)
한국중세(~1392)
한국근대(~1910)
한국현대(~20XX)
한국전쟁연대기(500501~550731)
세계고대(~476)
세계중세(~1453)
세계근세(~1789)
세계근대(~1900)
세계현대(~20XX)
자연사說


한국뉴스
외국뉴스
뉴스비판


봉황의 비상
큰칼짚고일어서서:이순신戰記
내가 히틀러라니!!!
은영전 팬픽
미래뉴스
新 비잔티움 연대기
기타창작


멋진펌글
유머만담
클러스터맵
☆☆☆☆
★★★★
※※※※
미분류

태그
인민군 경성제국대학 일제강점기 보급 연산군 홀로코스트 가미카제 아우슈비츠 빙산군 일본군 학연 명군이되어보세 특공 치클론B 2차세계대전 원자력발전소 징용 원전 우가키마토메 나치 덩케르크 학살 조선왕조 재정적자 한국전쟁 태평양전쟁 나무위키 대체역사 유대인 폐결핵
전체보기

라이프로그
한국전쟁
한국전쟁

청소년을 위한 파닥파닥 세계사 교과서
청소년을 위한 파닥파닥 세계사 교과서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기억
기억

독소 전쟁사 1941~1945
독소 전쟁사 1941~1945

전격전의 전설
전격전의 전설


rss

skin by jiinny
의자왕의 바둑판이 담로의 증거? 웃기고 있네.
세상에는 참 환빠도 많군요. 아니 대삼국빠라고 할까? 상아? 코끼리? 실론? 즐!!






일본왕실의 보물창고인 정창원(正倉院)에는 남부여(백제)의 의자왕이 보낸 바둑판과 바둑알, 바둑통이 보관되어 있다. 바둑판의 정식명칭은 ‘목화자단기국(木畵紫檀碁局)’이며 바둑통의 정식 명칭은 ‘은평탈합자’다. 그런데 이 유물들을 분석해보면 그 안에 백제가 해외 담로를 두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가 나온다.

먼저 목화자단기국을 보면, 자단이라는 나무에 상아를 정교하게 박아서 만들었는데, 두 재료 다 백제(남부여) 본국에서는 나지 않는 것들이다. 자단나무는 바라트(인도) 남부나 스리랑카에서 자라고, 상아는 코끼리가 있는 바라트나 실론 섬(스리랑카)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백제가 이들 지역에 담로(해외식민지이자 무역기지)를 만들어 그곳에서 재료를 사 왔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실론 섬과 바라트의 벵갈 주에는 담로계땅 이름이 나와 남부여(백제)가 이곳에 담로를 세웠음이 입증된다. 의자왕은 이 담로들을 다스리는 담로주로부터 바둑판을 만드는 데필요한 재료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둑판에 낙타가 새겨진 것이나 은평탈합자에 코끼리가 새겨진 것도 백제가 해외 무역으로 이런 동물들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코끼리는 바라트/스리랑카(실론)에살고 있는 동물이라 그곳에 담로를 세운 백제인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고, 낙타는 백제와 접촉한 북조 왕조나 바라트와 교류한 페르시아에서는 흔한 짐승이었기 때문에 백제인이 북중국이나 바라트에서 낙타를 본 뒤 그 생김새를 바둑판에 새겼으리라고 볼 수 있는것이다(『일본서기』에도 백제가 왜에 낙타를 보냈다는 기사가 나온다)

남부여(백제)의 해외 담로들은 서기 660년(남부여가 망하는 해)까지 본국과 연락을 주고받았으리라는 견해를 밝히며 백제 바둑판을 공개하는 기사를 소개한다.

===========
(중략)
◆일본 측 주장 = 일본은 목화자단기국이 백제에서 온 것은 인정하지만 백제는 단지 경유지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에 없는 낙타가 그려진 것과 자단이란 나무가 인도 남부 스리랑카 원산인것을 주된 이유로 꼽는다(그러나 스리랑카에는 백제의 담로가 있었기 때문에,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 옮긴이). 멀리 티베트등 중국의 변경에서 만들어져 실크로드의 종착점인 일본에 도착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티베트에서 만들었다면 티베트에 살지 않는 코끼리의 이빨[:상아]을 이용할 수 없으며, 바둑통에 코끼리를 새길 수도 없음 - 옮긴이).
(후략)



일단 위 "기사"의 작성 시점은 2005년 10월 28일입니다. 웹에서 검색된 기사를 보면 기자의 이메일이 중앙일보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중앙일보 사이트에서 뉴스검색을 한 결과(포털에서는 검색되지 않습니다) 게재 날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단, 이것이 중앙일보에서 PDF로 유료서비스중인 기사라서 웹에서는 볼 수가 없군요(중앙일보는 1년이 지난 기사는 유료로 제공). 하지만, 전 지금 도서관에 있습니다~~~ㅇㅎㅎㅎㅎㅎ!!!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얼마전 도서관 내부를 개편하면서 신문이 있는 위치가 1관으로 옮겨졌군요. 지금 신문 보러 갔다가는 컴퓨터를 놓칠 게 뻔한고로, 일단 포스팅을 완성한 다음 위 기사에서 밑줄 친 "옮긴이"의 말이 기사 원문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겠습니다. 기사 원문에 그게 없다면 기자가 헛소리를 한 건 아니니까요. 어떤 대삼국빠가 갖다 써먹은 것 뿐.

하여간, 위 게시물을 보고 나니 어처구니가 없군요. 자단은 인도 남부에서 나는 것이고, 따라서 백제가 이를 입수하려면 인도 남부에 식민지 겸 무역거점을 두어야 한다? 그럼, 유럽산 유리제품을 수입한 신라는 콘스탄티노플에 무역거점을 두었겠군요? 그리고 중국산 비단을 수입한 로마인들은 항저우에 식민지 겸 무역거점을 두고 있었다는 이야깁니까? 그리고 실크로드에서 전개된 넘겨주기식 무역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걸까요?

이런 식의 논리는 무역이란 것을 대항해시대, 서구인들이 한 무역의 관점에서만 보기 때문입니다. 콜룸부스/바스코 다 가마 이후 유럽인들은 세계 각지로 진출하면서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세계전역에 자신들의 식민지 겸 무역거점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자국민들을 보내 거주시키면서 자신들의 나라에서 생산된 물건을 갖다 팔기도 하고 해외산물을 수입하기도 했지요.

그럼, 그 이전에는, 그런 해외거점을 설치하기 전에는 그런 수입품을 얻을 수 없었나요?

미친 개소리입니다. 후추, 정향 등의 향신료가 산출되는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되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지만, 네덜란드가 이곳을 정복하기 전에도 유럽에는 후추가 잔뜩 있었습니다. 지중해 무역을 주름잡은 베네치아는 말레이-인도-페르시아-지중해로 이어지는 무역라인을 통해 후추를 수입했고, 이를 위해서 말레이 지방에 식민지를 설치할 필요 따위는 전혀 없었습니다.

직접 통치하는 식민지 없이도 여러 수입품들을 입수할 수 있는데 굳이 자기가 직접 식민지를 설치한 것은 가격을 내리기 위함이었다는 점 정도는 세계사 시간 수업을 들으신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중간상인을 여러번 거치면 거칠 수록 가격은 오르게 되어 있고, 최종소비자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단계를 줄여 값을 내리고 싶어지죠. 여러 동방물품의 최종소비자였던 서유럽인들은 결국 자기들이 배를 타고 직접 산지로 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대항해시대의 시작과 함께 세계 각지에 서유럽인들의 식민지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저 미친 환빠들이 "식민지 없이는 해당 물품의 입수가 불가능하다"같은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프랑스가 인도, 페르시아, 이탈리아를 통해 동남아산 후추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면, 백제가 인도산 목재를 중간상인들을 통해 입수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다 후대의 예를 듭시다. 조선 시대, 임금인 태종에게는 코끼리가 있었습니다. 이는 위 기사에 따르면 조선이 실론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결론으로 도출될 수 있습니다. 맞지요? 하지만, 이 코끼리는 유구국왕, 즉 오키나와 왕이 태종에게 진상한 것이었습니다. 즉 조선이 코끼리를 구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인도까지 갈 필요도 없이 오키나와에 주문하면 되었다는 이야기지요.물론 값은 호되게 치러야 했겠지만, 배달료만 주면 유구 상인들이 경복궁까지라도 배달해 줬을거라는 이야깁니다. 그럼 백제 시대라고 해서 그것이 불가능했을까요?

문제는 또 있습니다. 뭐냐고요? 바로 코끼리가 실론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_-


위키피디아, 인도코끼리의 현재 분포범위.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c/Elphas_maximus_range.png)



현재 남아있는 코끼리의 숫자에 대한 다른 지도 - 조사시점은 알 수 없음


현재 인도코끼리의 분포를 보면, 인도 및 스리랑카(실론)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일대의 여러 나라에 코끼리가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옛날에는 어땠을까요?


과거와 현재의 인도코끼리 분포지역의 차이
(출처 : http://www.species.net/Elephants/Bild11.gif)


당연한 이야기지만, 과거 인간이 코끼리를 사냥하고 대규모로 숲을 파괴하기 이전에는 동남아시아 전역에 코끼리가 분포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위 지도에서 보듯이 중국 본토에도 코끼리는 서식하고 있었지요. 코끼리를 사냥해서 상아로 젓가락을 만들었다는 은나라 주왕의 고사에서 보듯이 은나라의 영토인 중원, 황하 유역에도 코끼리는 서식했으며, 그 후 강남이 개척되면서 서식지역이 점차 남하하긴 했어도 중국 남부지역에는 쭉 코끼리가 살았습니다. 이후에도 중국의 역사 기록을 보면 기후의 변화에 따라 코끼리, 코뿔소, 악어 등의 열대짐승이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상아를 구하기 위해 실론까지 가야 할 필요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상아는 가까운 동남아, 중국에서도 구할 수 있으니까요. 설사 중국이 아닌 인도에서 상아를 구해온다 하더라도 이는 중계무역을 통해 충분히 입수가 가능하며, 이른바 담로라고 하는 식민지 겸 무역거점이 존재해야 할 필연성 따위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와 같은 거점의 존재만이 무역의 전제가 될 수 있다면, 중계무역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야 하겠지요.

이만 간략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한 마디만 더 하고 넘어가지요.

"백제는 백제에 살지 않는 코끼리의 모습을 바둑판에 새기고 상아를 재료로 사용할 수도 있는데, 왜 티베트는 티베트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코끼리의 모습을 바둑판에 새길 수도 없고 재료로 상아를 사용할 수도 없는 걸까요? 백제보다 티베트가 훨씬 인도에서 가까운데요? 이거 정말 미스테리 아닌가요?^^"

by 슈타인호프 | 2008/03/19 13:49 | 한국고대(~668) | 트랙백 | 핑백(2) | 덧글(23)
트랙백 주소 : http://nestofpnix.egloos.com/tb/366716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는 둥지.. at 2009/09/02 10:11

... 중국산 비단을 입수할 수 있었던 로마는 중국에 진출했습니까? 이런 식의 주장은 처음 본 게 아니지만(비슷한 주제를 다룬 과거 포스팅 - 의자왕의 바둑판이 담로의 증거? 웃기고 있네.) 볼 때마다 짜증이 치솟네요. 상업 교류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없는 거야, 아니면 바이킹이 무역도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거야? ... more

Linked at 슈타인호프의 함께 꿈꾸는 둥지.. at 2012/04/21 14:03

... 니다. 적어도 백제 영토가 실론에 있었음이 분명하다는 식의 헛소리는 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해당 내용이 궁금하시면 제 옛날 포스팅으로. 의자왕의 바둑판이 담로의 증거? 웃기고 있네. (2008/03/19) 저 정도 헛소리가 아닌 것만 해도 어딥니까...-_- 5. 쿠르드 유전은 이제 본격 사기극 판정을 받을 모 ... more

Commented by 파파울프 at 2008/03/19 14:08
호랑이가 없는 일본에서도 호랑이 이야기는 항상 나왔죠. 저 논리 대로라면 일본은 한국에 식민지를 두고 무역을 했다는 소리도 되겠군요. 정말 어이가 없네요...
Commented by Ladenijoa at 2008/03/19 14:14
...사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란 고사를 생각해보면 한국 호랑이들은 엄청 오래 전에 담배를 피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한국 호랑이들이 필 담배를 공급하려면 고대 한국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거점을 확보하고 담배를 수입했던 거죠.(헛소리)
Commented by IEATTA at 2008/03/19 15:18
하나밖에 보지 못하는 그들의 단순한 논리는 머리를 아프게 만듭니다..

하지만 저도 짧은 지식으로 언제나 저런 우를 범할 수 있다는걸 조심해야할듯,,

교훈입죠. 교훈.
Commented by 比良坂初音 at 2008/03/19 15:20
역시 환빠는 답이 없군요.....허허허
Commented by 뚱띠이 at 2008/03/19 15:27
언제나 사람을 웃게 만드는 개그.....답이 안 나옵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3/19 16:22
저들은 언제나 황당하기 그지 없는 소리를 진지하게 해대니 참...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8/03/19 16:28

한국의 대도시인 울산과 광양에는 대규모 정유플랜트 시설이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석유지층이 포함될 수 있는 신생대 제 3기 지층이 극히 빈약하다. 게다가 당시 한국에는 포항앞바다의 소규모 시설외에는 정유 플랜트에서 소모하는 석유를 충당할 유정이 전혀 없었다. 이는 한국이 인도네시아, 텍사스, 중동등의 유전지대에 식민지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믿으시면 골룸)
Commented by Dataman at 2008/03/19 17:43
지식보다는 역시 '환빠'라고 수식되는 사고방식이 문제인 거죠.

저런 관점이라면 후세에 보기에 21세기초 한국은 세계 양대 국력을 가졌다는 중국과 미국에 수백만의 식민개척을 실시한 초강대국이 되는 겁니다.
Commented by 제갈교 at 2008/03/19 18:42
무역에 대한 개념 부족...이겠죠, 아마. (명나라 정화의 원정 때도 식민지를 건설했다기 보단, "조공"하는 세력이 늘어났다...라고 배우는데 말이죠.) 그나저나 오키나와에서 코끼리를 배에 태워 오려면 힘들었겠어요.

아 그리고,
분명 지난 글에서 보니까 "도서관"에서 블로그질 안 하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Commented by 곤충 at 2008/03/19 18:44
그러면 환빠들이 그렇게 까대고 좋아하는 조선의 각궁을 볼때 조선은 인도차이나에 식민지를...(그만해.)
Commented by 들러갑니다 at 2008/03/19 21:36
나라나 교토 모두 전란을 안 겪었다고는 말할 수 없는 도시들인데 저 정도로 유물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부럽긴 합니다. 삼국시대 유물을 알려면 일본에 가보는 게 꼭 필요하지요. 고분 출토품과는 또다른 세계를 볼 수 있지만 문제는 줄이 있는 전문 연구자 아니면 실제유물을 다루어 보기도 힘들다는 게...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3/19 23:34
파파울프//그러게 말입니다.

Ladenijoa//그래서 한국호랑이들이 멸종한 겁니다. 너무 오래 담배를 피워서 다 폐암걸려 죽었지요.

IEATTA//저도 어디서 저런 실수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갈수록 말을 덜 하게 되더군요, ㅎㅎ

比良坂初音//그러게나 말입니다. 다음에는 또 "조선은 공작 깃털을 장식으로 썼으므로 공작 깃털이 나는 인도에 조선 식민지가 있었다"고 할지도 모르지요.

뚱띠이//웃는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행인1//돌아버릴 지경이죠 뭐.

위장효과//예전에 나왔던 "3007년 한국사 미스터리 60"에 나왔던 것과 비슷한 소재군요 ㅋㅋ

Dataman//네, 같은 논리로 하면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제갈교//어허! 쉿!

곤충//그런 겁니다(먼산)

들러갑니다//도시를 통채로 날려버린 경험이 없다는 것이 그나마 긍정적이었겠지요. 게다가, 쟤네들은 우리보다는 확실히 더 옛것에 대한 존중이 있었으니까요.
Commented by 시언 at 2008/03/20 00:19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딱 그꼴이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3/20 01:16
시언//그런 겁니다.
Commented by 불량어뢰 at 2008/03/20 15:35
아니 근데;; 기자는 삼국지도 안봤답니까?;; 삼국지에 나오는 남만 아가들도 코끼리 타고 나와서 꾸워엉거리고 다니지 않던가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3/20 15:53
불량어뢰//"기자"가 작성한 "기사"에서는 인도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전략)과 (후략) 사이 내용만 원래 기사고, 그 위에 헛소리는 어디서 붙었는지 모르는 환빠의 헛소리지요.
Commented by deokbusin at 2008/03/20 23:25
티베트 귀족분들도 상아세공품은 썼을 겁니다. 우리가 모를 뿐.--;

정확히 말하면 조사부족으로 인해 확실한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가 우리들로서는 불분명하다는 것이지만.
Commented by 오토군 at 2008/03/21 01:05
그럼 삼족오 문양을 쓰는 동네들은 우주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겁니까.(…)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3/21 01:50
deokbusin//당연히 썼겠지요.

오토군//모를 일입니다.
Commented by 배길수 at 2008/03/25 00:24
그럼 벽란도는 도대체 몇 개 열강에게 겁탈당한 식민지인 것임미까?(...)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3/25 09:27
배길수//그야 알 수 없지요(...)
Commented by blue at 2009/08/17 23:10
학부 시절 한국사에 관련된 교양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때 강사 분 말씀이 "고대사는 한줌의 자료를 이용해 상상력으로 논문을 쓰지만, 근대사는 자료의 홍수에서 정리할 사람이 없다"고 하더군요. 고대사는 정말 삼국사기의 얼마 안 되는 기사나 중국 사서의 몇 마디 가지고 통박을 굴리는 듯(^^) 하지만 일단 제대로 터지면 매스컴을 타서 유명해지는 것 같더군요. 그러나 근대사의 경우 서울대 규장각에 옛 자료들이 쌓여있는데 예산 문제로 그것을 정리하고 연구할 연구원들이 부족해서 얼마 전에야 목록정리가 끝났다고 하시더군요. 금광이 발견되도 경제성이 있어야 채굴되는 것처럼 한국사 연구도 그런가 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17 23:40
연구자들이 책을 뜯어먹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         :

: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메뉴릿

최근 등록된 덧글
그건 작성자의 사보타..
by 슈타인호프 at 10/13
종이책을 구입하셨다면..
by 슈타인호프 at 10/13
안녕하세요. 책을 사서..
by otds at 10/12
http://news.naver.c..
by 으음 at 10/11
본문에서 언급한 <한..
by 슈타인호프 at 10/10
저 당시 관동군은 너무나..
by ㅇㅇ at 10/09
안녕하세요. 글 잘 읽..
by 랄라 at 10/08
어휴 일편단심하려고 했..
by 정호찬 at 10/06
아니 그쪽은 일편단심 소..
by 슈타인호프 at 10/04
레드벨벳은 아직 멤버 얼..
by 슈타인호프 at 10/04

최근 등록된 트랙백
오늘 밤에 올려 보죠.
by 슈타인호프의 함께 꿈꾸..
[빙틀러 외전] 한번..
by 초효의 비밀아지트
인민군 보급 이야기 2편
by 슈타인호프의 함께 꿈꾸..

이전블로그
2018년 07월
2017년 10월
2017년 09월
2017년 08월
2017년 07월
2017년 06월
2017년 05월
2017년 04월
2017년 03월
2017년 02월
2017년 01월
2016년 12월
2016년 11월
2016년 10월
2016년 09월
2016년 08월
2016년 07월
2016년 06월
2016년 05월
2016년 04월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