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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에 참전한 어떤 곰 이야기.
2차대전서 포탄 나르고 스파이 잡은 '짐승'

전쟁에 참가한 개나 말은 썩어빠질 정도로 흔하지만 자유폴란드군 소속으로 참전했다는 이 "보이텍"이라는 곰은 또 처음 듣는 이야기군요. 곰도 상당한 정도로 훈련이 가능하고 사람 말 듣는 건 사실인데, 아예 전쟁에까지 참가한 곰 이야기는 생전 처음이니까요. 그것도 단순히 부대 마스코트가 아니라 몬테카시노에서는 두 앞발로 박격포탄을 전선까지 나를 정도로 "실전"에 참가도 했다니 말입니다. 영내를 순찰(?)하다가 독일군 스파이를 잡은 적도 있다는데, 곰에게 잡힌 그 스파이는 얼마나 시껍을 먹었을까^^;;





이 녀석은 과일과 마말레이드, 꿀과 시럽만 먹고 살아서 그런지 성격도 유순했고 병사들은 그냥 보이텍을 곰이 아니라 기껏해야 큰 개 정도로 취급했다고 합니다. 군적도 있고 군번도 있으니 잘 때도 막사안에서 다른 병사들하고 같이 잤고요.

자유폴란드군이 해산된 뒤에는 스코틀랜드의 한 별장에서 2년간 스코틀랜드-폴란드 간의 우호의 상징으로 살다가 1947년 11월 15일자로 에든버러 동물원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20년 가까이 지내다가 1963년 12월에 22세로 생을 마쳤다는데, 약간 안쓰러운 기분도 드네요. 2년 동안 동고동락하던 부대원들과 떨어져 18년간 혼자 지내면서 옛 친구들을 그리워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요. 처음 기사를 읽었을 때는 "동물원 사육사들과도 친해졌을 테니 혼자 쓸쓸하지야 않았겠지, 옛 친구야 옛 친구고 새 친구는 새 친구 아니겠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동물원에 사는 동안 보이텍은 자신의 굴 밖으로는 거의 나오지도 않았다는군요. 폴란드 군단의 마스코트로 유명해진 "폴란드 곰(엄밀히 말하자면 페르시아 곰이지만)"을 보려는 관람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도 눈길도 안 줬고, 다만 옛 전우들이 찾아와 폴란드말로 부를 때만 굴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둘러보다가 다가왔답니다. 철창에 갇힌 동물원에서와 달리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던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졌기 때문일 거라 하니 갑자기 안구에 습기가....ㅠㅠ

참, 그렇게 폴란드말로 부르면 그 앞에 가서 하는 행동이....담배 달라고(......) 했답니다(고개를 등 뒤로 넘겨 흔들면 담배를 달라는 의미였다고). 자유폴란드군 시절에도 맥주와 담배를 즐기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동물원이야 동물에게 맥주나 담배를 줄 리가 없으니 심심했겠지요. 차라리 서커스단이었다면 애가 원하는대로 맥주와 담배를 줬을지도. 옛 전우들은 종종 보이텍에게 담배(cigarette)를 던져줬다고 하는데, 불을 못 붙이는 보이텍은 어떻게 그 담배를 즐겼을까나......? 어쩌면 씹는 담배를 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설마 생 담배를 씹어먹지는 않았겠지.

아예 이 곰을 다룬책도 여러 권 나왔고 사이트도 여럿 있는 걸 보면 영국 쪽에서는 꽤 유명한 곰이었던 모양입니다. 거기에는 다른 사진들도 여럿 올라와 있네요. 그리고 위키에도 이 곰을 다룬 항목(Wojtek (soldier bear))이 있습니다. 이 항목에 의하면 BBC가 보이텍에 대해 방송해준 것은 불과 4일 전인 1월 25일에도 있었습니다. 역시 빠르단 말이야(...)
임페리얼 워 뮤지엄을 비롯한 영국의 여러 전쟁기념관에도 보이텍의 이야기가 있고, 그에 얽힌 일화로 찰스 왕세자가 두 아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들렀을 때 가이드가 곰 이야기를 해줄 필요가 없었다고 하네요. 왕세자가 "이미 그 곰에 대해 완벽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하 사진들의 출처는 www.vbservices.co.uk/baczor/html/wojtek.html입니다.


폴란드 병사와 레슬링을 하며 놀고 있는 보이텍


배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 이란->이탈리아인지, 이탈리아->스코틀랜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직 이란에서, 먹이를 먹는 아기곰 시절.


트럭 조수석에 타고 이동하는 보이텍


여배우 겸 댄서로 활동하던 엘리자비에타 니에비아도프스카(Elzbieta Niewiadowska)라는 폴란드 아가씨와.


포탄을 나르는 곰의 모습을 형상화한 엠블렘. 이는 보이텍의 명목상 소속부대였던 "폴란드 2군단 22 포병 보급중대(22nd Artillery Supply Company, 나중에 22수송중대(22nd Transport Company)로 개칭됨)"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기사의 오류.

1. 박격포탄?
링크한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보이텍이 "박격포탄"을 날랐다고 했는데, 보이텍이 실제 나른 것은 25파운드 야포 포탄입니다. (더 메일지 기사참조) 그리고 아래쪽에 있는 엠블럼도 보면 박격포탄이 아니죠? 어느 과정에서부터 오류가 났으려나.

2. 이란에서 폴란드 병사가 발견?
위키에 의하면, 버림받은 보이텍을 발견한 것은 폴란드 병사가 아니라 현지인 소년이었습니다. 이 소년은 마침 근처에 있던 폴란드군 부대를 찾아가 "얘 사실래염?"하고는 고기통조림 두 개 받고 팔았다는군요. 느닷없이 얘를 떠안은 폴란드 병사들은 "보드카병"에 우유 타서 먹였다고.

3. BBC 보도가 1월 28일?
조선일보에서는 1월 28일에 BBC 보도가 있었다고 했습니다만 "The Mail"의 뉴스가 1월 25일자인 걸 보면 이것도 못 믿겠습니다. BBC가 굳이 신문보다 3일이나 늦은 뉴스를 내보낸다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그저 조선일보 기자가 처음 그 뉴스를 들은 게 28일 아냐? 최신이라는 인상을 주려고 날짜를 조작한 것이 아닐까 의심중.

*1 자유폴란드군
히틀러와 스탈린이 밀약으로 폴란드를 분할했을 당시, 소련군에게 사로잡힌 폴란드군 포로들은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총 23만 명의 폴란드군 장병이 붉은 군대의 포로가 되었으며, 상당수는 석방되었으나 폴란드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2만 명의 예비역 장교들은 폴란드 체제의 붕괴를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총살되었습니다. 하지만 독일과 소련이 전쟁을 시작하자 런던의 폴란드 망명정부가 이제 동지가 된 스탈린과 교섭, 그때까지 수용소에 남아있던 4만 명의 폴란드 포로들 및 7만 명의 폴란드 시민들을 선발하여 "안데르스 군(폴란드 제2군단)"을 편성하고 이들은 개전 초에 영국 및 프랑스로 탈출했던 폴란드군 병력과 합류하여 자유폴란드군을 형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소련에서의 가혹한 대우로 인해 쇠약해져 있었고, 안데르스 장군은 부하들의 빠른 회복을 위해 이란(여기서 저 곰을 만났겠죠)을 통해 서방으로 탈출하면서 조국 회복의 제일선에서 멀어지고 맙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부 전선에서 이들이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조국 폴란드를 되찾으려는 데 "직접적인" 기여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결국 폴란드를 탈환한 것은 소련군 및 그들 편에 선 공산주의 계열의 폴란드 인민군이었습니다. 종전 후 결국 폴란드에는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자유폴란드군이 참가했던 임시정부 계열은 귀국 후 숙청되거나 귀국을 거부하고 영국이나 미국에 정주합니다.

*2 보이텍(Wojtek)은 폴란드에서 흔히 쓰이는 남자 이름


by 슈타인호프 | 2008/01/29 13:26 | 세계현대(~20XX) | 트랙백 | 핑백(3) | 덧글(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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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행인1 at 2008/01/29 13:29
이런저런 활약(?)을 펼친 끝에 부대 엠블렘까지 되었군요.
Commented by 재팔 at 2008/01/29 14:00
곰 본좌(?)로군요.
Commented by 파파울프 at 2008/01/29 15:23
증명되었습니다! 보이텍이 유순한 것은 꿀과 과일이 문제가 아니라 담배가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세계 평화를 위해 담배를 증산 장려하는 정책이 시행되어야 합니다아~~!!!
Commented by 카니발 at 2008/01/29 15:44
엠블렘 보고

'엥, 저게 박격포탄?'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25파운드탄이었군요 'ㅅ';;
Commented by 比良坂初音 at 2008/01/29 17:35
허허허허;;; 정말 세상은 별 일이 다있군요;;
Commented by 궁극사악 at 2008/01/29 17:35
우...말년이 불쌍한 곰이네요 ㅠㅠ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8/01/29 21:26
그래도 맹수는 맹수...앞발을 보면 그저 후덜덜할 뿐. =ㅅ=

파파울프님/ 아닙니다. 담배가 아니라 맥주 덕분인 겁니다. 따라서 맥주를 장려해야...(탕!!!)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08/01/29 21:44
맥주와 담배 모두 장려해야...(전 담배는 안피웁니다만 술은...없어서 못 먹죠)
Commented by 뚱띠이 at 2008/01/29 22:08
저 곰은 앞발로 연어대신 포탄을 들고 다녔군요...

찾아간 전우들은 전후 영국에 망명한 이들이었나요?
Commented by 여리작의 at 2008/01/29 22:19
남은 생을 영국에 사는 전우들과 함께 살았으면 좋았을텐데요..꿀과 시럽 과일과 마말레이드를 먹는 곰이라니. 군곰이지만 사랑스럽단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1/30 00:37
행인1//넵.

재팔//그러게요. 본좌님입니다.

파파울프//담배보다는 맥주에 한 표.

카니발//네, 25파운드 포탄의 탄두 부분입니다. 저 정도 구경이면 장약은 약포로 사용하니...

比良坂初音//세상에는 참 재미있는 일들이 많다는...

궁극사악//말년이 행복하지는 못했지요.

하늘이//그렇죠, 맥주인 겁니다.

위장효과//음 담배도 인정을...?

뚱띠이//네,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여리작의//폴란드 장병들도 키우고야 싶었겠죠. 하지만 아무래도 개인이 가정집에서 곰을 키운다는 것이 쉽지가 않으니...
Commented by 措大 at 2008/01/30 01:32
VC 정도는 받음직한 역전용사였군요. 노년이 꽤 쓸쓸했겠지만, 어쩐지 BoB가 생각나는 결말입니다. 원래 참전용사라는건 그런게 아니겠어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1/30 01:37
措大//영국군이 아니라 VC를 받을 수 있을지 좀 걱정되는군요. 노병이란 원래 사라져가는거죠, 흐흐.
Commented by 오토군 at 2008/01/30 20:41
…맹수부대의 재탄생 가능성!!!(이봐!!!)
Commented by 어부 at 2008/01/30 21:56
저거 아무리 봐도 이란이면 '유럽산 불곰'인데 특히 성질이 온순한 놈이었나 봅니다. 곰 종류는 인간에게 완전히 길들기는 불가능하다고 공인된 거나 마찬가진데 말이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1/31 00:16
오토군//올돌골의 맹수군단?

어부//전 세계 불곰은 사실 다 같은 종입니다. 이란에 사는 곰은 시리아 계통의 아종이라고 하더군요.
Commented by 엄용훈 at 2009/05/26 00:54
곰이 곧 군인이군요.ㅎㅎ

대단한 곰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5/26 01:02
네 대단한 곰이었죠^^;
Commented by 단군의 후손 at 2009/05/26 09:43
우리조상도 알고보면 곰이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5/26 10:14
우리만도 아니지요~
Commented by 시마시마 at 2009/12/05 12:05
위키피디아에 검색해보면 담배는 '통째로' 먹었다고 합니다... 코담배도 아닌 혀담배를 즐겼다네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2/05 21:00
ㄷㄷㄷ;;; 필터담배는 주지 말아야겠군요^^;
Commented by 로르카 at 2010/04/02 06:25
이 곰이 담배를 어떻게 피웠냐 하면, 사실 담배를 제대로 핀게 아니라 불 지핀 담배를 그냥 씹어 먹었습니다-_-;;;. 그것도 불 안 지핀 담배는 줘도 안 받고, 불 핀 담배는 받아 먹었다는걸로 보아 단순히 담배를 먹을걸로 인식한게 아니라 연소하는 니코틴 자체를 즐긴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4/02 08:48
불 붙은 담배를 씹어먹.....;;;

입 안에 화상도 안 입나요. 게다가 그렇게 하면 금방 꺼져서 담배맛을 오래 느끼지도 못 했을 텐데;;;
Commented by paro1923 at 2010/07/10 01:06
다른 데도 아니고 '몬테카시노' 참전웅(?)이다 보니 더더욱...
(연합군의 오판으로 스스로 지옥을 구현해버린 곳...)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7/10 13:57
근데 뭐 쟤는 포병대였으니까요 F--
Commented by 크레모아 at 2010/08/04 22:21
신기하네...인간급 지능을 가졌나 보네요...동물원서 적응 못하고 우울해했다는거보면 추억이란것도 가지고 있는것 같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8/05 00:07
인간급인지는 몰라도 꽤 영리하긴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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