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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의 코끼리, 그리고 코끼리와 싸우는 법.
*예전 모 사이트 게시판에 4회에 걸쳐 올렸던 글의 통합+업데이트 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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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애초에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니발의 코끼리는 아프리카 코끼리인가요 인도 코끼리인가요? 인도는 머니까 아프리카 코끼리 맞죠?





로마인 이야기라도 한번 읽어보셨거나 중고등학교 세계사 수업을 들어보신 분들은 다들 한번쯤 들어본 적 있으시다시피, 한니발은 아프리카 북부에 있던 카르타고라는 나라의 장군이었습니다.


*카르타고의 위치
(이미지 출처 : http://www.apollonia.com.tn/IMAGES/LONGUS.jpg)

간단하게 배경설명을 하자면, 카르타고는 지금의 북아프리카, 튀니지가 있는 곳에 자리잡은 나라였습니다. 지금도 튀니지 수도 튀니스 인근에는 카르타고의 유적이 남아있고, 이 카르타고는 로마와 세 차례의 전쟁을 벌였습니다. 두 나라가 서부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싸고 벌인 이 전쟁이 바로 고대 세계 최대규모의 전쟁, 포에니 전쟁(Punic War)입니다.

제1차 포에니 전쟁(BC 264∼BC 241) : 시칠리아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벌인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 로마의 승리.
제2차 포에니 전쟁(BC 218∼BC 201) : 1차 포에니 전쟁의 패배로 빼앗긴 시칠리아와 서부 지중해의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카르타고의 반격. 초중반에는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쳐들어가 활약하였으나 종국에는 결국 로마의 승리.
제3차 포에니 전쟁(BC 149∼BC 146) : 카르타고의 재기를 우려하여 이를 저지하기 위한 로마의 예방전쟁으로 발발. 카르타고 멸망.
*긴 전쟁의 개요를 한줄로 줄이려다 보니 다소 왜곡되어 보일 수 있습니다.

이 당시 로마는 코끼리라는 동물 자체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전투에서 접해본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코끼리를 무기로 쓰는 것 자체가 동방의 헬레니즘 국가들(이집트-시리아-마케도니아 등)이 갖는 특징이었고 로마는 그쪽 나라들과는 아직 거리가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아예 코끼리를 접해보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카르타고와 전쟁을 하기 전, 로마는 에피루스의 왕 피루스와 전쟁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도시들과 로마 사이에 분쟁이 발발했는데, 이 분쟁에서 위협을 느낀 그리스 도시들이 피루스에게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라고 자부하던 피루스는 대왕처럼 세계정복을 해보겠다는 가벼운 마음에 그리스 도시들과 용병계약(...)을 맺고 건너왔는데, 이때 그가 거느린 병력이 보병 2만 3천, 기병 3천, 궁병 2천, 투석병 5백, 코끼리 20마리였습니다. 그런데 바다를 건너다가 폭풍을 만나는 바람에 이중에서 병력 2천과 코끼리 2마리를 잃죠.

로마는 이들과 싸우면서 코끼리를 처음 경험했습니다. 충격과 공포(...)를 경험하긴 했지만 결국 로마는 승리를 얻죠. 이때 피루스의 코끼리는 아시아산으로 무려 찬드라 굽타가 제공한 물건이었죠.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 벌어진 후계자 전쟁 중, 찬드라 굽타는 마케도니아를 차지하고 있던 안티고노스 1세에게 대항하는 진영을 지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반대편에 있던 피루스-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 진영에 무려 500마리의 코끼리를 제공했던 거죠. 이탈리아 원정 당시 피루스가 거느린 코끼리는 이들 중 일부였습니다.


*검게 칠해진 부분이 에피루스
(이미지 출처 : www.unrv.com/provinces/epirus-map.php)

그리고 포에니 전쟁이 시작되면서 로마는 코끼리와 두 번째 대면을 합니다. 카르타고는 시칠리아, 이집트 등 헬레니즘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코끼리를 사육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구성을 보자면, 카르타고의 코끼리는 거의 전부가 아프리카코끼리가 맞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북아프리카에는 꽤 많은 코끼리가 살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카르타고의 코끼리들 중 일부는 분명 아시아코끼리였습니다.

*아시아 코끼리와 아프리카 코끼리의 차이 - 이 아프리카 코끼리는 현생종입니다. 즉 카르타고가 쓴 아프리카 코끼리는 이 코끼리가 아니에요. 이거보다 작죠.
(이미지 출처 : http://www.suksuk.co.kr/play/img/040112_seven1.jpg)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시아코끼리가 아프리카코끼리보다 크고 힘이 셌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아프리카코끼리를 생각하시면 이해가 안되시겠지만, 당시 북아프리카에 살던 코끼리들은 지금 아프리카 초원에 살던 코끼리들보다 덩치가 더 작았습니다.
사하라 사막이 형성되면서 북아프리카의 코끼리들은 남쪽의 동족들과 교류가 단절되어 버렸죠. 즉, 생태학적으로 섬에 자리잡게 된 셈입니다. 섬에 들어간 동물들이 일반적으로 왜소화되는 경향이 있는 건 아시지요(특히 포유류. 다소 거대화되는 경향이 있는 조류나 파충류와는 다르게 말입니다. 코끼리를 예로 들자면, 몰타 섬에서 코끼리 화석이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거의 말 정도의 크기로 왜소화가 진행된 종이었죠)? 그래서 북아프리카의 코끼리들은 지금 있는 아프리카코끼리들과는 달리 상당히 작았습니다. 그러니 덩치 큰 놈을 골라서 철저하게 전투용으로 훈련시킨 아시아코끼리들이 더 클 수밖에 없는 거죠.

더군다나, 코끼리를 잡아서 길들이는 기술은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전달되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애초부터 코끼리는 길들일 대상이 아니라 죽여서 잡아먹는 대상으로 인식이 되었거든요. 그러니만큼 코끼리를 생포하고 사육하는 기술이 전달되면서, 표본으로 아시아코끼리가 수입되었다고 보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말을 키우는 법을 배우려면 야생마를 사로잡기에 앞서서 일단 길든 말을 수입하는게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머나먼 인도에서 코끼리를 수입하자면 엄청난 비용이 들 수밖에 없으므로, 카르타고가 보유한 코끼리들도 대다수는 카르타고의 바로 옆 나라, 누미디아산의 아프리카코끼리였을 거라고 합니다.

*누미디아 왕국과 카르타고
(이미지 출처 : www.galeon.com/masinissa/pag1.htm)

하지만 한니발의 원정군에 포함되어 있던 38마리의 한니발의 코끼리들 중 적어도 1마리는 아시아코끼리였을 거라고 하더군요. "수루스"라는 이름의 수코끼리인데, 이 코끼리는 트레비아 호반의 써움 이후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코끼리였다고 합니다(다른 코끼리들은 모두 그 전투 이후 사망했다는군요. 알프스를 넘으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산을 넘으며 하도 고생을 해서 그랬을 거라고 추정한답니다). 이 코끼리는 한니발군이 가지고 있던 다른 코끼리들보다 훨씬 체격도 크고 힘도 셌는데, 그래서 이 코끼리가 인도에서 건너온 녀석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습니다.


*카르타고 전투코끼리 그림입니다. 어째 박진감이 넘친다했더니 기록화 같은 게 아니고 1/32 카르타고군 전투코끼리 프라모델 박스아트더군요.
(이미지출처 : http://strategicsimulations.net/catalog/images/SSHAT9023.jpg)

참, 그리고 수루스는 한니발이 직접 타고 다니던 승용코끼리였다고 합니다. 재미있는게..이 코끼리도 애꾸에다 상아도 하나밖에 없었다지요(먼산). 이무렵 한니발도 열병을 앓고 그 후유증으로 애꾸눈이 된 건 아시지요? 그래서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자신의 시 "게트리아의 코끼리에 올라탄 외눈박이 장수"에서 한니발과 함께 수루스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시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코끼리에 관한 이야기들을 했으니 이제 코끼리와 싸우는 방법으로 넘어가 볼까요?

유럽 군대 중 가장 먼저 코끼리와 싸웠던 지휘관은 알렉산더 대왕이었죠. 처음 코끼리를 만났던 가우가멜라에서는 코끼리의 수도 적고(15마리), 곧바로 전장을 이탈한 탓에 큰 곤란은 겪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진 포루스와의 전투는 달랐죠. 코끼리의 산지인 인도의 왕 포루스는 무려 200마리의 코끼리를 전투에 투입했고 육탄전으로 이들을 처리한 알렉산더 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알렉산더는 포루스군의 코끼리를 처리하기 위해서 보병밀집대형으로 코끼리를 둘러싼 다음 긴 창과 투창, 화살을 사용해서 상처를 입히고, 낫이 달린 창으로 코를 자르고, 조련사를 죽이는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는 지치고 상처입은 코끼리들을 자신들이 출발한 쪽으로 되쫓아버렸죠. 이 과정에서 아군 보병이 막대한 피해를 입자 또 다른 코끼리 군대를 만날 것을 두려워한 병사들이 더 이상의 전진을 거부했고, 알렉산더의 정복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 후로 코끼리는 일종의 슈퍼무기로서 헬레니즘 시대의 전장에 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절대병기란 존재하지 않는 법, 코끼리의 활용이 증가하면서 이에 대처하는 대코끼리 전술도 자연스레 나타납니다. 하나씩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 다른 코끼리
- 전차의 적은 전차고, 항공기의 적은 항공기죠? 이쪽에서도 코끼리를 동원해서 상대편 코끼리를 정면에서 이마로 들이받는 방법입니다. 힘으로 격돌하면 약한 놈이 나가떨어지게 마련입니다.

2. 긴 창으로 옆구리 뚫기
- 보병들이 둘러싼 다음 긴 창으로 옆구리를 찌릅니다. 갈비뼈로 보호되지 않는 옆구리를 찌르면 내장이 상하게 됩니다. 단, 둘러쌀 때까지의 아군 피해는 좀 있겠죠.

3. 긴 낫으로 코 자르기
- 코끼리의 코는 매우 민감한 조직이며, 여기에 상처를 입을 경우 코끼리는 재생불능의 중상을 입게 됩니다. 말 그대로 미친다고 할까요?

4. 도끼로 아킬레스건 자르기
- 코끼리가 그 자리에서 쓰러집니다. 코끼리같은 대형동물은 체중을 지탱하기가 매우 힘들고, 다리에 큰 부상을 입으면 그대로 쓰러집니다.

5. 송진이나 타르를 바른 화살에 불을 붙여 쏘기
- 송진과 타르가 묻은 화살은 일단 박히면 떨어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죠. 피부 바로 위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니 코끼리가 뜨거워서 마구 날뛰게 되고, 이렇게 되면 통제가 불가능해집니다.

6. 투석기로 큰 돌 날리기
- 코끼리를 아예 으스러트립니다.

7. 조련사를 죽인다

(이미지 출처 : www.mlahanas.de/Greeks/LX/WarElephant.html)

- 위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전투용 코끼리는 등에 가마를 올려놓고 있으며 병사들이 그 안에서 활을 쏘거나 투창을 던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코끼리를 모는 조련사는 그런 보호 없이 노출되어 있으며 적의 공격에 매우 취약합니다. 조련사를 죽이면 코끼리는 역시 통제를 상실하고 날뛰게 됩니다.

이런 경우 미쳐 날뛰는 코끼리는 도리어 아군에게 위협이 됩니다. 조련사가 사망한 경우 코끼리가 조련사의 유해를 소중히 감싸안고 전장을 이탈했다고 하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적이고 아군이고 구분하지 않고 미쳐 날뛰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그 외에, 위에서 예로 든 것처럼 중상을 입은 경우에도 고통으로 미쳐날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는 코끼리를 "처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우 조련사는 곧바로 뾰족한 정으로 코끼리 뒷통수, 목의 관절을 내리찍어 즉사시킵니다. 이 자리를 치면 곧장 뒷골을 부수게 되거든요. 이는 카르타고의 하스드루발 장군이 메타우루스 전투 당시 고안한 방법입니다만, 동남아시아 쪽에서도 유사한 수단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보다 소극적인 코끼리 퇴치법으로는 병사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거나 나팔을 불어 놀라게 해서 쫓아버리는 수도 있었죠. 제가 이 글을 작성했을 때 달린 리플들 중에 "구멍을 파는 사례도 있지 않았느냐"는 리플이 있었는데, 이는 한마디로 "코끼리는 고대의 전차"라는 개념을 너무 곧이곧대로 이해한 의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전차호 개념으로 생각을 한 거죠.
문제는 코끼리는 상당히 큰 짐승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적군을 눈으로 봐야 코끼리가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고, 코끼리가 빠질 만큼 큰 함정을 파자면 수고가 좀 많이 듭니다. 전쟁터에서 한가하게 코끼리가 빠질 만큼 큰 함정이나 파고 있을 여유는 없는 거죠. 게다가, 적의 코끼리가 아예 근접하지 못할 만큼 전장 전체에 함정을 파버리면 아군의 코끼리도 보병도 기병도 못 움직입니다. 더군다나 이쪽이 함정을 파는 동안 적이 그냥 보고 있을 리도 없고요.

사실, 코끼리를 잡기 위해 구멍을 파는 건 전투보다는 사냥용이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코끼리를 생포해서 일을 시키려고 한 아시아보다는 죽여서 고기로 먹으려들었던 아프리카에서 많이 쓰이던 사냥법이지요(아프리카 코끼리는 길들이기 힘듭니다). 코끼리처럼 큰 동물이 함정에 빠지면서 무사할 수는 없습니다. 고양이랑은 다르겠죠? 코끼리를 생포해서 일을 시킬 거라면 함정을 파는 건 바보짓입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쉽게 상처입는 코끼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거야 갑옷의 착용입니다. 인간도 갑옷을 입고 말도 갑옷을 입고 개도 갑옷을 입는데 코끼리라 해서 갑옷을 입지 말라는 법은 없겠죠?


(이미지 출처 : www.pwg.org.za/wab/War%20Elephants%20in%20WAB.htm)
이 코끼리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사용하던 전투코끼리의 모형입니다(워해머 용 유닛이라는군요). 보시면 귀가 넓적하고 머리가 각이 졌죠? 이건 이 코끼리가 아프리카산이기 때문입니다. 아시아로부터의 코끼리 수입선은 셀레우코스 왕조로 인해 차단되었기 때문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아프리카산 코끼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죠. 덩치가 작은(위에서 설명한 이유로) 북아프리카산 코끼리를 사용했기 때문에 등에 얹는 전투탑의 크기도 작고, 들어갈 수 있는 인원도 두어명 밖에 안 됩니다. 이들은 활이나 투창, 장창(사리사) 등으로 무장했습니다. 조련사가 보호받지 못하는 점은 여전합니다.


이것 역시 전쟁터에 동원된 아프리카 코끼리입니다. 몸통은 물론 다리와 얼굴, 코까지 갑옷으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는 위 사진과 같습니다.


이건 마케도니아 병사가 탄 인도코끼리입니다. 같은 출처.


(이미지 출처 : www.hinduwisdom.info/War_in_Ancient_India.htm)
이 사진은 고대 인도의 코끼리 갑옷입니다. 아무래도 덥고 습한 곳이라, 이집트에서 쓴 것처럼 답답한 갑옷을 착용시키진 않았네요. 보기에도 좀 더 시원해 보입니다.

물론 방어적인 용도로만 코끼리에게 갑주를 입히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도 상대를 상처입히기 위해 갑옷에 뿔이나 가시를 달듯이, 코끼리 갑옷에도 이런 장치들을 달았거든요. 아래에서 잠시 그 사용례를 보시겠습니다.

카르타고는 제1차 포에니 전쟁이 종료된 후 용병들의 반란을 겪습니다. 카르타고 정부가 로마와의 전쟁 중 고용했던 용병들에게 약속했던 보수를 지급하지 않자 용병들이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던 거죠. 카르타고 정부는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했고, 이때 진압을 맡은 하밀카르 바르카스(한니발의 아버지)는 코끼리를 진압에 동원합니다. 이 장면을 묘사한 서사시(귀스타브 플로베르, "살람보")에 따르면, 이때 코끼리들이 무장한 상태가 아래와 같았다고 합니다. 뭐, 당대에 쓰인 것도 아니니 문학적 표현과 과거에 대한 판타지적인 묘사가 다소 많이 포함되었으리라는 점은 감안해야겠죠.

"용병들은 다발들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검은 덩어리들을 보았다...코끼리들은 가공스러울 정도로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가슴팍에는 미늘창이 달려 있고, 상아는 송곳처럼 뾰족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옆구리에는 청동판이 씌워져 있었고, 갑옷의 정강이받이에는 단검들이 수없이 꽂혀 있었다. 코끝에 끼워진 팔찌 모양의 구리 고리에는 날이 넓은 칼자루가 달려 있었다.......코끼리들은 밀집된 적진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날카로운 쇠가 달린 가슴팍으로 적진을 갈라놓고, 땅을 쟁기질하듯 상아로 적진을 휘저어놓았다. 그리고 코에 달린 낫처럼 생긴 칼로 난도질을 했다...그런 아수라장의 한복판을 그 무시무시한 짐승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그 자리에는 밭고랑 같은 검은 자국이 새겨졌다....코끼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용병들의 가슴은 상자갑이 부서지듯 뿌드득 소리를 내며 으스러졌고, 한꺼번에 두 사람씩 짓밟혔다."


이런 식으로 전투에 코끼리를 동원한 것은 인도나 동남아시아 등의 동양에서는 비교적 근세까지 계속되었지만 서양에서는 그 역사가 생각보다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알렉산더 대왕과 그 뒤를 이은 헬레니즘 시대를 제외하면 코끼리가 전투용으로 거의 쓰이지를 않았거든요. 무엇보다 코끼리를 사용하던 헬레니즘 국가들이 코끼리를 사용하지 않는 로마군에게 몽땅 패해서 망했다는 점이 큰 요인일 겁니다. 게다가 코끼리 자체가 무척 비싸고, 조달하기 힘들고, 조련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생각보다 쉽게 다치고, 전쟁터까지 운송하기도 힘들며, 무척 많은 양의 사료를 소모하는 데다가 식성도 까다롭거든요. 게다가 지구력이 부족해서 금방 지칩니다. 전투용으로 애용하기는 다소 난감한 특징들이죠.

때문에 로마 시대 이후 유럽에서는 코끼리가 전투용보다는 관상용 내지 애완용 동물로 취급됩니다(코끼리를 구할 수 있다면 말이죠^^). 하지만 전투에 투입된 사례가 아예 없는 건 또 아닌 게, 중세에 코끼리를 동원했다는 이야기가 딱 한 건 나옵니다. 1214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1194-1250, 1198-시칠리아왕, 1215-신성로마황제)가 크레모나를 점거할 때(황제 즉위가 1215년이므로 이때는 아직 시칠리아 국왕) 코끼리가 동원됐다는군요. 그런데 제가 참고한 아래 사이트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서"Some notable battles involving war elephants include : 1214, capture of Cremona by Frederick II, Holy Roman Emperor"라고 간단히만 적고 있는데, 이걸 보면 크레모나를 전투로 함락시킨 건 또 아닌 것 같단 말이죠. 더군다나 크레모나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적대하는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다른 도시들, 롬바르드 도시 연맹의 도시들에 대항해서 황제하고 연합했거든요. 그런 크레모나를 프리드리히가 일부러 공략할 리는 또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제게는 그것까지 확인할 재주는 없으니 일단 넘어가야겠습니다.^^;;


별첨하자면, 코끼리를 죽이는 재주로만 따지면 인간이 1:1 대결로 코끼리를 죽인 사례가 꽤 있긴 합니다. 바로 <투기장>에서였죠. 검투사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영예중 하나가 코끼리와 1:1로 싸워 죽이는 것이었고, 직접 투기장에 나가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던 콤모두스 황제는 코끼리를 3마리나 죽였다고 합니다. 단, 투기장에 나간 코끼리는 아시아나 사하라 이남에서 온 거대한 코끼리가 아니라 북아프리카산의 작은 코끼리, 사람보다 키가 조금 더 큰 정도(2m가량)의 작은 코끼리들이었습니다. 몸길이 5,6미터에 몸무게 7,8톤씩 나가는 거대한 코끼리는 1:1로는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겠죠?

그럼 이상으로 과거 글의 재활용(...)을 통한 코끼리에 대한 짧은 글을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



*마무리로 코끼리 이미지 몇 장. 전쟁과 관련된 것들로 고른 겁니다^^


이 사진은 알렉산더와 코끼리의 대결을 재현한 리인액트(...) 장면이라고 합니다. 사진 크기가 작아서 구분이 좀 힘들긴 한데, 말은 진짜지만 코끼리는 모형인 듯 합니다^^
(이미지 출처 : movies.ign.com/articles/389/389010p1.html)
*비공개1님 말씀 : 영화 "알렉산더"의 한 장면이랍니다.



이 두 장의 사진은 제2차 아프간 전쟁 당시, 야포를 견인중인 코끼리들입니다. 이 전쟁에서 코끼리와 관련된 다른 에피소드도 있지만...이 포스팅 주제에서는 너무 벗어나니 다음 기회에 포스팅하죠^^
(이미지 출처 : www.britishbattles.com/second-afghan-war/ali-masjid.htm)


*여기서부턴 1차대전과 코끼리가 관련된 사진들입니다.


1차대전 당시, 중장비를 운반중인 코끼리입니다. 어디서냐고요? 바로 영국 본토에서요(...). 아마 곡마단에서 징발되지 않았을까요? 다음 사진에 나오는 코끼리처럼요^^
(이미지 출처 : 영어 위키)


이 코끼리가 목재를 나르고 있는 곳이 어디일까요~~? 동남아시아라고 생각하신 분들은 "낚이신" 겁니다.
저기는 "1915년 벨기에"랍니다(...). 저 코끼리는 쇼단에서 꽤나 유명한 존재였다는데, 지금은 숲에서 가치 있는 목재를 운송중이라는군요. 아마, 평소에 저런 업무에 쓰던 말이 몽땅 군대에 징발당하는 바람에 끌려나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건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 평소라면 말이 끌었을 쟁기로 밭 가는 데 코끼리를 쓰고 있네요. 하지만 독일어에 이어 불어도 모르는 관계로(....) 상세한 설명은 해드릴 수 없군요. 그나마 불어는 사전도 없고요....여기 오시는 분 중 해독 가능하신 분 혹시 계십니까?(...)
*어부님 번역 : 그냥 'Tarn-et-Garonne에서 노동시키고 있다'는 뜻입니다.


역시 위에 이어진 사진. 코끼리가 뭔가 큰 엔진같은 것을 나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증기 양수기나 펌프인 것 같군요. 맞는 것 같죠?
*어부님 번역 : 코끼리가 영국의 한 마을에서 무거운 짐을 나르고 있다.


역시 나무를 나르는 코끼리. 사람들 옷차림을 보면 여긴 독일 같은데 밑에 설명을 못 읽겠습니다. 독일어를 모르기도 하지만 저 서체 너무 읽기 힘들어요...안그래도 작은 글자에 저런 서체로 있으면 사전도 보기 어렵습니다--;;
*어부님 번역 : 불어 부분은 'an elephant did service at general germany(아마 독일제국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and employed for transport of arboreal trench(또는 trunk?) on the French theatre of the war' 정도로 직역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영어 단어 쓰는 편이 낫네요.


이번 사진도 독일. 숲에서 통나무를 운반중인 코끼리입니다.



이 두 장의 사진도 독일에서 통나무를 운반하는 코끼리입니다.
그런데 두 장의 사진이 구도가 거의 똑같죠? 사실, 아래쪽 그림은 윗 사진을 토대로 해서 담뱃갑 카드용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어부님 번역 : 일일이 전부 번역하기는 너무 힘들군요. 근데 뒤쪽은 3rd와 별 차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greatwardifferent.com/Great_War/Animals_at_War/Elephant)

여기 올라와 있는 1차대전기 코끼리들의 사진을 보면, 대체로 전쟁 때문에 부족해진 말 대신 사용했다는 게 눈에 보이네요.
사실 전 이 포스팅 작성하면서 유럽인들이 코끼리를 작업에 써먹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슈바르츠발트에서 통나무를 나르는 코끼리라, 왠지 이색적인 모습이 연상되지 않으시나요?^^

- 참고서적 :
시공 디스커버리총서 제14권, 코끼리

- 참고사이트 :
www.mlahanas.de/Greeks/LX/WarElephant.html
위키피디아(영어)

by 슈타인호프 | 2007/05/23 21:56 | 세계고대(~476) | 트랙백 | 핑백(1)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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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는 둥지.. at 2011/04/19 11:09

... 것을 다시 인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드릴 말씀은 저게 블레이드님이 생각하신 것처럼 전투용 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빠른 이해를 돕자면 제가 옛날에 했던 요 포스팅을 잠시 참고하시면 어떨까 싶네요. 다만 저 글이 조금 길고 간련 사진이 한참 아래쪽에 있기는 하니, 혹시 급하게 보실 분들을 위해서 이미지만 가져와 ... more

Commented by 더카니지 at 2007/05/23 22:09
와, 1차대전에선 식민지에서만 사용했는 줄 알았는데 유럽본토에서....ㅡㅡ
근데 2차대전떄도 사용안했을까요?(에이 설마)
Commented at 2007/05/23 22:4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05/23 22:55
카이사르라는 이름에 코끼리를 죽인...이든가 하는 뜻이 들어있지 않았던가요? 시저의 조상 중에 한니발과 전투에서 코끼리를 죽인 명예로 그 이름이 전승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7/05/24 00:01
더카니지//2차대전 때 동남아시아에서 코끼리 사용한 사진은 많죠. 하지만 유럽에서는 없을 겁니다. 이미 자동차가 제법 넉넉하게(?) 보급이 됐으니 곡마단 코끼리를 끌어올 필요는 없죠^^

비공개//알렉산더의 한장면인가요? 사실 제가 알렉산더를 안 봤거든요. 그래서 못알아봤나 봅니다. 어서오세요^^

초록불//로마인 이야기에서 그 이야기를 본 것 같아 확인해보니 "카이사르"라는 말이 카르타고 말로 코끼리를 뜻한다는군요. 한니발 전쟁 당시 카르타고 군대를 무찌른 덕에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실제 자기 손으로 코끼리를 죽였는지까진 다른 자료를 더 찾아봐야 할 듯 하네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5/24 00:05
서커스단 코끼리도 징발하다니....

초록불/ 저도 읽어본 것 같군요. 로마인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Commented by 아레스실버 at 2007/05/24 01:16
역시 워해머... 그 리얼함이란... (아니, 거길 감탄하면 안 되지 않나)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곤충 at 2007/05/24 05:48
이런 좋은 포스팅을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功名誰復論 at 2007/05/24 06:13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Commented by 서군시언 at 2007/05/24 08:06
오오오오오. 아주 자세한 포스팅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어부 at 2007/05/24 11:28
불어 사진 1st; 그냥 'Tarn-et-Garonne에서 노동시키고 있다'는 뜻입니다.
2nd; 코끼리가 영국의 한 마을에서 무거운 짐을 나르고 있다.
3rd; 불어 부분은 'an elephant did service at general germany(아마 독일제국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and employed for transport of arboreal trench(또는 trunk?) on the French theatre of the war' 정도로 직역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영어 단어 쓰는 편이 낫네요.
4th; 일일이 전부 번역하기는 너무 힘들군요. 근데 뒤쪽은 3rd와 별 차 없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7/05/24 12:15
아레스실버//워해머 유닛 저런 식으로 만들어놓은 것 보면 정말 관상용으로 죽 늘어놓고 싶어진다니까요^^

곤충//아니, 뭘요^^;

功名誰復論//재미있게 봐주셨다니 다행입니다^^

서군시언//자료를 좀 더 찾았으면 더 괜찮은 게 나왔을 텐데 집에 있는 책 하나랑 인터넷만 참고해서 아직 미흡한 점이 많네요^^;

어부//앗, 저 작은 글씨를 일일이 번역해주시다니....감사합니다(__)
Commented by 개발부장 at 2007/05/24 21:42
코, 코끼리...^^
Commented by 어부 at 2007/05/25 00:00
윽 4th가 그 아래 사진에 붙어야 할 번역인데.... 수면부족 상태에 해서인지 잘못됐습니다... @.@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7/05/25 00:47
개발부장//흐흐, 그쪽 세계(?)는 코끼리 나올 일 없습니까? 정글에서 코끼리에 휴대용 유도탄 80발을 싣고 간다든가?

어부//아, 그런가요? 다시 붙이겠습니다^^
Commented by 금린어 at 2008/03/14 18:31
정말 재밌는 글 보고갑니다^^ 코끼리가 저런 존재였군요!

아, 그리고 저 사진은 워해머용 모델은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 지난 20년간 GW에서 발매한 코끼리(혹은 그에 비슷)모델이 발매된 것은 '왕의 귀환'에서 위용을 뽐냈던 무마크 밖에 없습니다(아무리 28mm스케일이라 해도 겁내 크죠^^). 워해머 히스토리컬 계열로 '룰'이 나왔을수는 있는데 모델 자체는 다른데서 온것인듯. 파운더리일까요?

참고로 최근 워해머쪽 고참 디자이너인 페리 형제가 만들고 있는 모델은 다음과 같답니다.

http://tabletop.egloos.com/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8/03/14 22:15
금린어//음, 워해머 쪽은 제가 잘 몰라서, 이미지를 퍼온 곳에서의 설명이 워해머 용이라고 나오기에 그런 줄 알았답니다. 마씀하신대로 다른 곳에서 만든 모형을 가지고 룰만 적용해서 쓴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소개해주신 이글루는 재미있게 보겠습니다^^
Commented by blue at 2010/01/20 05:23
'Rome Total war'라는 게임을 해보면 고대 로마 시대 각 나라의 여러 병종을 PC 상으로 나마 체험해볼 수 있는데, 거기에도 코끼리가 있습니다. 어떤 공격도 안 통하고 우리 편을 짓밟아 버리니 완전히 슈퍼 유닛이죠. 근데 이 코끼리들을 물리칠 수 있는 딱 하나 방법이 있는데, 그건 돼지들에게 불을 붙혀 돌진 시키면 코끼리들이 다 달아나 버립니다..로마인 이야기 2권에서 보면 코끼리 퇴치를 직접 공격보다는 코끼리의 성질을 돋우거나 겁줘서 쫓아버리던데 게임에서는 이런걸 반영했나 봅니다. 님의 글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1/20 15:29
돼지에 불붙이기라...특이하군요^^;;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0/01/20 18:48
아무래도 불붙은 돼지들이 미쳐 날뛰며 달려드는 게 코끼리에게는 매우 무섭게 느껴질거 같습니다. 특히 돼지 멱따는 소리로 음향효과까지 더해지니 다른 짐승에 불을 붙여 풀어놓는 것보다 효과가 더 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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