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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n by jiinny
당분간 포스팅을 중단합니다.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남은 기간 동안 뻘짓을 줄이는게 역시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는데 신경 써야죠.

물론 24시간 책만 보진 않을 거니 가끔 들어와보고 예전 포스팅에 질문덧글이라던가 하는 게 붙으면 그에 대한 답글은 달겠습니다. 포스팅을 작성하지 않겠다는 거지 이글루에 아예 안 들어오겠다는 건 아니니까요. 뭐, 다른 분들 포스팅에도 어쩌다 댓글 하나쯤 달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신 잡담, 일상, 뉴스, 역사, 소설...기타 모든 포스팅은 당분간 연기입니다. 4주 후에 뵙겠습니다(....)

덧 : 혹시 제게 긴히 하실 말씀이라든가 그런 게 있으시면 방명록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험 잘 보라는 격려는 따로 해주지 않으셔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by 슈타인호프 | 2009/10/15 02:11 | 기록보존 | 트랙백
잡담
1. 아놔, 아침점심 두 끼를 송편으로 때우다니. 게다가 저녁은 우동....-_-;;;
어제처럼 아침저녁 두 끼 라면(그래도 점심에는 밥 먹음)보다는 송편이 나으려나.

이어지는 내용
by 슈타인호프 | 2009/10/14 00:44 | 트랙백 | 덧글(33)
말 100마리를 잡은 어느 영화.
근/현대전사의 기병 돌격들 몇가지.에 붙은 아래 리플을 보고 간단하게.
작성시간 절약을 위해 중요치 않은 이미지는 생략합니다.



이걸 보고 생각나는 게 하나 있어서요.

자, 말 100마리를 잡으려면 일단 말이 많이 나와야 할 텐데...어느 영화 같으십니까?

반지의 제왕?

워털루?

아뇨, 정답은 벤허입니다. 단.




1959년작의 이 영화가 아니라.


1925년작인 이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리지널이 별 인지도가 없습니다만, 사실 이쪽의 흑백 무성영화가 오리지널이고 찰턴 헤스턴의 칼라 버전은 리메이크에요.

하여간 이 영화를 찍다가 스턴트 과정에서 죽은 말이 100마리(*)가 넘었고, 이게 동물학대 문제로 커지는 바람에 소품으로 취급해오던 말이 그 뒤부터 단역배우 정도로 지위가 올라가게 됩니다. 안전대책도 마련되고, 가급적이면 훈련을 통해 "연기에 익숙해지게" 만들게 되지요.

* 촬영중 즉사한 말만 계산해서 100마리가 아니고 이런저런 이유로 죽은 말 총합입니다. 말은 대개 다리가 부러진다거나 하면 그냥 안락사시키니까요.
by 슈타인호프 | 2009/10/13 17:01 | 영화 | 트랙백 | 덧글(28)
잡담
1. 날이 퍽 선선해졌어요. 이젠 집안에서도 반바지 입으면 춥네요. 아직 이불은 안 바꿔도 되겠는데.


2. 모의고사가 쉽...다고 생각했더니 어렵군요. 전공은 그럭저럭인데 교과교육론이 즐. 이래선 곤란한데.


3. 우화로 표현한 이번 키배에 대한 감상.

이웃에 사는 A와 B가 있었다. B는 A의 집을 강제로 빼았아 자기 집 창고로 만들고 A를 개집에서 자게 하면서 자기 일꾼으로 썼다. 이후에도 B가 계속 깡패짓을 하고, 전에는 친하던 동네 유지 C에게까지 개기자 C는 B를 묵사발나게 팬 다음 현관에 못질을 해서 밖으로 못 나오게 했다.

B가 갇히자 자기 집에 다시 돌아온 A는 B에게 그동안 집에서 쫓겨나 고생하면서 얻은 피해와 받지 못한 봉급을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달라 못 준다를 놓고 싸우던 둘은 결국 A가 B에게 300만원을 받고 끝내기로 했다.

세월이 흐른 후 A의 손자 A++이 "우리 할아버지를 그렇게 고생시키고 300만원밖에 안 준 B는 XXX야!!!"라고 신나게 욕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A++의 한 반 친구인 D가 질문을 했다.

"근데 B가 너네 집을 창고로 썻다고."
"그래."
"그럼 거기 자기 물건도 이것저것 쌓아 뒀겠네? 그거 돌려줬어?"
"아니. 우리 집에 있는걸 왜 줘?"
"야, 그럼 너희 할아버지 B한테 300만원만 받은 건 아니네. 집에 쌓여 있는 물건값도 쳐야 할 거 아냐."
"그건 다 원래 우리 땅에서 농사지은 거라고. 원래 우리 거야!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가 한 고생이 얼만데!!"
"아니 내 말은, 그게 많다는 게 아니고 300만 원만 받은 건 아니지 않냐는 거야."
"닥쳐! 너 B 편이지! 뭐 받아 먹었어!"
"아 썅! 누가 B가 옳대? 너희 할아버지가 고생한 것도 알겠고 집이랑 땅 뺐겨서 그동안 농사지은 것도 다 뺐겼다는 소린줄 알겠는데 내 말은 그 대신 B한테 받은 게 니가 말한 <300만원 뿐>이 아니라는 이야기잖아. 그냥 니가 '응, 그러고 보니 300만원보다는 좀 더 받은 셈이네. 하지만 그거 가지고는 턱도 없어'하면 아무 문제 없이 그냥 지나갈 문제를 가지고 왜 그러는데?"
"XXX야! 니가 B 편을 들잖아! 뭐? B가 놓고 간 물건? 그래서 그거 다 돌려주라고? 야이 XX야! 우리 할아버지가 그 새끼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까짓 거 좀 가졌다고 네가 뭔데 돌려주라 마라야? 게다가 300만원'만'이라고 했지? 그러니까, 300만원 '만' 이라는 말은 B가 남긴 재산이 집을 뺐긴 기간과 비교해서 우수리가 남았다는 계산이지. 그러니까 300만원도 많다 그 소리지?"
".........됐다. 내가 말을 말자."


이상 종료. 차후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은 않겠음.


4. 초록불님의 <아이, 뱀파이어>가 연재종료되고 나니 하루가 영 허전하군요. 그거 읽는 게 진짜 재미였는데 ㅜㅜ


5. 北, 동해안서 단거리미사일 5발 발사(3보)
귀순 주민 내놓으라는 위협사격?


6. 낸시 랭, "막말 솔비, 오히려 고마워"
낸시랭은 이에 대해 "나는 사실 솔비에게 고마웠다"며 "많은 분들이 나에 대해 좋지 않게 얘기할 때가 많은데 이번에는 오히려 다들 나를 옹호하더라. 이런 적은 생전 처음이다"고 진심어린 고마움을 전해 주위를 폭소케 했다고 한다.

낸시랭 같은 애들은 관심을 먹고 사니까. 자기한테 관심을 더 안겨 준 솔비가 미울 리 있나. 게다가 말이 좀 거칠긴 해도 쌍욕을 한 것도 아니었으니.


7. 김포공항서 6.25때 사용 폭탄 발견
북한군이 김포 비행장을 작전 기지로 사용할 때 미군이 비행장 사용을 저지하기 위해 투하한 폭탄인 듯. 항공폭탄이라니 아마 그거겠죠. 제 내공으로는 크기만 가지고 중량까지는 모르겠고요.
by 슈타인호프 | 2009/10/12 21:53 | 잡상 | 트랙백 | 덧글(28)
패전한 전범국 민간인의 사유재산을 몰수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조치일까?
우리가 일본에게 받은 돈이 3억 달러 뿐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제목 수정)에서 셀프트랙백. 이 주제 관련 포스팅은 이걸로 끝입니다. 같이 전쟁을 일으켰고 비슷한 결과를 얻었으니 일본만 다룰 게 아니라 독일도 잠깐이라도 이야기해야 공평하겠죠?

독일 역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으로, 나치에게 아주 학을 뗀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차후 히틀러 같은 놈이 또 나타나 위대한 독일 민족의 통합 어쩌구 하는 소리를 못 하도록 하기 위해 종전 후 자국 내에 거주하는 독일계 주민을 거의 다 싸그리 쫓아내 버렸습니다(부스러기 일부 잔존). 이들은 길게는 수백 년을 그 땅에서 살아왔지만 가차없이 쫓겨났고, 당연히 그동안 쌓아온 모든 재산도 잃었습니다.

그럼 그 추방된 독일인들은 순순히 재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을까요? 설마요. 냉전 중에는 그저 품속의 땅문서만 펼쳐볼 수밖에 없었지만(수사적인 표현일 뿐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공산주의 붕괴로 해빙기가 오고 동유럽에서 자유주의 정권이 수립되자 추방 독일인들 사이에는 놓고 온 재산에 대한 반환요구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기사만 살펴보겠습니다.

좀 길어서 접었습니다.
by 슈타인호프 | 2009/10/12 03:03 | 역사 : 현대(~20XX) | 트랙백 | 핑백(1) | 덧글(80)
우리가 일본에게 받은 돈이 3억 달러 뿐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제목 수정)
*(17:33)제목에 들어 있던 "배상금"이라는 단어가 오해를 유발한다는 지적으로 단어를 약간 수정했습니다. 본문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어제 잠깐 밸리에 들렀을 때 "필리핀도 5억 달러, 베트남도 4억 달러를 받았는데" 우리가 "고작 3억 달러"만 받았으며 그나마 20%를 박정희가 커미션으로 떼어먹었다(근거는 뭘까?)고 주장하는 포스팅을 봤습니다. 뭐, 마지막 주장이야 제가 아는 바 없으니 패스하고 앞부분만 잠깐 이야기해 볼까 싶어서요.


1. 필리핀은 5억 5천만 달러, 베트남이 일본에게 받은 배상금은 제가 알기로 3900만 달러(남베트남이 받음)라고 하는데 4억 달러 주장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궁금합니다. 혹시 북베트남이 나중에 더 받아냈나? 아니면 그냥 0을 하나 잘못 본 거?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각기 배상액은 아래와 같습니다.

베트남 : 5년간 3900만 달러 배상, 3년간 750만 달러 차관, 협정발효 5년 후부터 910만 달러 민간베스
라오스 : 대일청구권 방기, 2년간 300만 달러의 생산물과 역무 무상 제공
캄보디아 : 대일청구권 방기, 3년간 450만 달러의 생산물과 역무 무상 제공
태국 : 5년간 54억 엔(1965년 환율로 1500만 달러에 해당) 지불, 2800만 달러 경제협력, 8년간 96억 엔의 자본재, 역무 제공
버마 : 10년간 2억 달러의 생산물과 역무 제공, 500만 달러 경제협력, 무상 1억 4000만 달러를 12년 간 무상원조
말레이시아 : 약 1700만 달러의 생산물과 역무 무상제공 협의
싱가포르 : 1700만 달러의 무상차관 제공
필리핀 : 20년간 5억 50000만 달러의 역무와 자본재 공여지불, 차관 2억 5000만 달러
인도네시아 : 12년간 2억 2308만 달러의 생산물과 역무 공여, 20년간 4억 달러 차관 제공

우리보다 많이 받은 건 필리핀 하나, 그리고 1억 달러를 넘긴 건 인도네시아와 버마(미얀마) 뿐입니다. 그리고 이 세 나라의 공통점이 뭘까요? 간단합니다. 바로


자기네 국토가 태평양전쟁의 전장이 되었다


는 거죠-_- 인도네시아는 덜한 편입니다만 필리핀 마닐라나 버마의 도시들은 말 그대로 폭탄을 뒤집어썼고 일본군과 싸우다 죽거나 일본군에게 학살당한 사람의 수도 엄청났습니다. 인도네시아 도시들은 인도네시아 자체가 연합군의 주 진공로에서 빗겨 있었던 탓에 마닐라처럼 폐허가 되지는 않았지만 일본군의 학살 및 식량공급 두절로 수백만에 달하는 막대한 아사자를 냈고, 그만큼 배상금을 받아낼 명분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필리핀과 버마(막판에 뒤통수를 친 거긴 하지만)는 직접 총을 들고 싸워서 일본군을 몰아내는데 동참한 승전국에 속하기도 합니다(단 버마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조인하지 않았습니다. 조인 거부).

하지만 한국에서는 태평양전쟁 기간 중 전투도 벌어지지 않았고 민간인에 대한 수백, 수천 단위의 노골적인 학살도 없었습니다. 백만 명 단위의 대규모 아사가 발생하지도 않았지요. 서울이 폐허로 변하지도 않았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승전국으로 조인하지도 못했습니다.




2. 그리고 사실 까놓고 이야기하면 한국이 받은 실질적인 배상금은 3억 달러보다 더 많습니다. 왜냐고요?


해방 때 일본인들이 두고 간 재산은?


일본인들이 패전으로 쫓겨날 때, 한국에 있던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말 그대로 손에 든 것만 가지고(은행 예금(금융조합이나 신용금고 말고)은 일본에서 찾을 수 있었을까?) 도망가야 했습니다. 물론 집이나 토지를 한국인에게 팔고 간 경우도 있지만, 그게 정당한 금전적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거래였다고 생각하면 무리가 아닐까요?


2. 본조의 규정은 다음의 것(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각기 체약국이 취한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것을 제외한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a) 일방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947년 8월 15일부터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 타방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
(b)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있어서의 통상의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되었고 또는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들어오게 된 것

3. 2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 1965년 6월 22일 동경에서 조인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2조 2항 및 3항 -


우리는 보통 이 조항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일협정 체결로 인해 한국 민간인들의 대일청구권만 소멸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일본 민간인들의 사유재산에 대한 청구권 역시 한일협정으로 인해 같이 소멸했습니다.

체불임금, 신체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금, 강탈 또는 협잡이나 사기로 넘어간 문화재...이런 것들에 대한 보상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했고, 그런 면에서 1965년의 협정이 부실했던 건 분명히 맞습니다. 하지만 정부간 지불이 아닌, 민간 재산은 어떨까요? 조선총독부 소유의 국유재산이야 논외로 하더라도 일본인들이 놓고 간 사유재산, 토지-주택-공장-철도 등의 재산도 막대했던 건 맞지 말입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한일수교 시 한국 정부는 이 귀속재산에 대해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면죄부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귀속재산의 처분 역시 공정한 분배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귀속재산 전체는 마땅히 일단 국유로 돌린 다음 연고자 또는 공정가격을 제시하는 자에게 매각, 그 대금을 공정하게 처분함은 물론 일제 피해자 구호에도 일부를 돌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뭐, 그 처분 결과야 따로 말할 필요가 없겠죠.

자, 일단 그 문제는 넘기고 머리를 식히고 한번 생각해 보죠. 1945년에 일본인들이 놓고 간 귀속재산(歸屬財産), 일명 적산(敵産)의 금전적 가치는 얼마쯤 됐을까요? 일본인들이 소유하던 가옥, 토지, 광산, 철도, 기업, 공장의 가치는?

이 문제를 거론하면 많은 경우의 반응은 이럴 겁니다.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강탈한 재산이니 당연히 놓고 가야 하고 그건 마땅히 다 우리 거"라고요. 하지만 그 "강탈한 재산"이라는 관념은 어디까지 해당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까요?

모든 일본인이 한국에서 악행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름 새로운 생활에 대한 꿈을 가지고 건너와 열심히 살면서 노력으로 재산을 모은 사람도 없지 않았고, 그런 사람들 중에는 한국인과의 관계도 좋은 경우가 있었죠. 아, 물론 침략자 집단으로 뭉뚱그리면 당연히 그런 개별적인 사례는 별 가치를 갖지 못합니다. 일부 양심적이고 친절한 SS대원이 있었다고 해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그 개인은 전범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결국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정부는 각기 자국의 민간인을 희생시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셈입니다. 당장 돈이 필요했던 한국 정부는 자의 또는 타의로 참전한 한국인 참전군인 및 군속, 징용근로자(근로정신대 포함), 강압적으로 혹은 사기적인 수단에 속아 끌려간 종군위안부, 독립운동 희생자 등 마땅히 일본 정부로부터 피해보상을 받아야 할 이들의 권리를 외면했고 일본 정부 역시 한국과의 정상적인 외교관계 재수립이라는 정치적 목적 달성과 배상금 액수 삭감(당시 박정희 정부는 7억 달러를 요구했습니다)이라는 경제적 목적을 위하여 자국민의 재산권 확보(그 재산권이 한국인의 입장에서 정당한 것인가는 차치하고)라는 보호 의무를 버렸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양측 다 같아요. 정권 차원의 목표를 위해 국민의 요구를 저버렸다는 것 말이죠.

여기서 앞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1945년에 일본인들이 두고 간 공유 및 사유의 온갖 재산, 그것들을 1965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얼마쯤 될까요? 일단 귀속재산의 종류부터 간단하게 보죠.

① 토지·건물의 부동산
② 광산·기업체·상점·은행 및 기타 서비스 업체 등의 사업장
③ 조합·협회·병원·학교·사찰 등의 공공기관
④ 철도차량·선박·자동차 등의 운반기구
⑤ 주식, 공·사채, 금·은·보석 등의 각종 동산류

여기서 일단 농지부터. 네이트 백과사전에 의하면 당시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농지는 28만 2,480정보로 당시 남한 총경지면적 210만 2,162정보의 약 13.4%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논은 전체 논의 16.7%, 밭은 전체의 6.5% 정도.

귀속사업체는 일본인들이 처분해버리거나 한국인 종업원들이 자주경영을 시도하면서 집계에서 빠진 경우가 많으나 최종 집계된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총 3,551개 중 공업이 2,354, 광업이 316, 농림·수산업이 337개였다고 합니다. 전체 노동자수나 공산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1/3~1/2수준이었으며, 일본인 소유의 귀속공장이 당시 남한 총공장수의 85%였다는 이야기도 보이네요. 하지만 뭐 부실경영에 일본과의 관계단절로 인한 막대한 손실이 있었다고 하네요. 다만 이런 문제는 군정기 및 대한민국 정부의 직접관리 시기의 이야기로, 완전히 민간에 넘어간 뒤에는 돈보따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합니다.

어쨌건 1948년의 시점에서 집계한 전체 귀속재산의 가치는 48년 현재 약 3000억원 정도로 당시 정부예산의 10배에 달하는 거액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집계된 귀속재산의 항목별 가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한국 근대의 공업화 - 일본 자본주의와의 관계, 호리 가즈오, 전통과현대, 2005, 350p에서 인용함.
** 농지는 신한공사의 관리 자산이므로 2번 항목의 토지에 포함되지 않음.
*** 당연하지만 남한 지역에 있는 자산만 합산한 것이므로, 북한 지역의 농지 및 각종 상공업시설에 대한 재산가치를 추가로 계산할 경우 더 늘어남.


자, 이 막대한 재산을 1965년 시점의 가치로 환산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니, 보다 실감나게 하기 위해서(사실 1948~1965 기간 물가변동 지수도 못 구했고) 2008년 기준으로 바꿔보겠습니다. 올 1월에 나온 보도를 보니, 2008년의 물가는 1948년에 비해 1만 710배라고 하네요. 즉 1948년의 돈 가치는 2008년의 1만 710배라는 이야깁니다. 이걸 곱하면 1948년 기준 귀속재산 3천억 원은.....


3,270,095,010,000,000원


이 됩니다. 계산하기 편하게 달러당 1200원으로만 계산해도 현재 환율로 2조 7천억 달러가 넘습니다. 남한 지역에 있던 재산만요.
(혹시 제가 계산을 실수했다면 지적바랍니다)

물론 이건 물가지수를 통한 단순비교일 뿐이지 이 돈이 고스란히 재산으로 남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 공장 같은 경우는 한국전쟁으로 날아가 버린 게 많으니까요. 게다가 위에서 이미 한번 말했듯이 공정분배가 되지 않았고 말입니다. 하지만 1965년의 시점에서 해당 자산의 가치가 3억 달러보다 적을 것 같지는 않네요. 마침 위 기사에서 1965년의 짜장면그릇 값이 35원이었다니 지금의 딱 100분의 1이죠? 거기 단순대입하면 대충 270억 달러쯤 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공식 배상금의 90배가 넘네요.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3억 달러보다 덜 받아야 했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나마 받아낸 박정희 정권을 칭찬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거밖에 못 받았다고 욕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그나마 받아낸 돈을 피해자 보상에는 쓰지 않고 경제개발 계획에 써버린 정책을 평가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는 그 고생을 하고도 단 3억 달러밖에 못 받았다는 주장에 무리가 있음을 밝히고자 할 뿐입니다.

물론 이 글 위쪽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땅에서 강탈로 쌓아올린 재산이니 계산할 필요도 없이 우리 거"라고 계속해 이야기하실 분들도 충분히 계시겠습니다만, 제가 그 점에 대해서 논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바지만 제 주요 논점은 3억 달러가 많다 적다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실질적으로 받아낸 돈이 달랑 3억 달러가 아니라 그 이상이며, 한일협정 당시 한일 양국 정부는 정권 차원의 정치적-경제적 목적을 위해서 각기 자국민의 요구와 권리를 배신했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합의를 통해서 한국 정부는 경제개발에 쓸 종자돈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일본 정부는 어차피 받아낼 가능성이 전혀 없는 민간채권(한국 내 구 일본인 재산)을 싹 털어버려 남의 돈으로 인심을 쓰는 것과 동시에 상대적인 푼돈으로 한국 정부와의 정치적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었으니까요. 결국 한일협정은 당시 두 나라 정부에서만 득을 보았고 민간인은 거의 모두(귀속재산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불하받은 일부 한국인을 제외하고) 피해를 본 협정이었던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줄요약 :
- 한국이 배상금 3억 달러밖에 못 받았다는 건 실질적으로 사실이 아니며 귀속재산이 계산에 포함되어야 함.
- 하지만 이 귀속재산 문제는 결국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정부의 합의로 인해 민간인들만 손해를 본 것임.
- 그래도 이거 오독하고 나한테 친일파 운운하는 놈 나오겠지.

추가(17:56)

본문 수정은 하고 싶지 않아 말미에 몇 마디 덧붙입니다.

1. 본문 및 아래에 붙은 리플에서 수 차례 이야기했지만, 저는 일본이 36년간의 식민통치 및 그 이전 대한제국 시기 한반도 및 한민족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 분명히 배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다만 그 액수에 대해서는 그 적정 액수를 정확하게 산정하는 것이 현재의 제 역량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본문 내에서는

체불임금, 신체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금, 강탈 또는 협잡이나 사기로 넘어간 문화재...이런 것들에 대한 보상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했고, 그런 면에서 1965년의 협정이 부실했던 건 분명히 맞습니다.

라고 원론적으로만 언급하고 그 세부 내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3. 한국 내 일본인 귀속재산에 대해서는 실제 역사에서 이루어졌듯 보상 없는 몰수가 합당한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해당 자산의 몰수 후 매각이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매각대금 역시 투명하고 공정하게 배분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일본인 재산으로부터 얻은 이득은 마땅히 일본의 통치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의 처지를 고려하여 사용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1공화국 정권은 그런 면에서 아예 제대로 처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가치 있는 귀속재산은 권력과 줄이 통한 자들의 이권이 되었을 뿐이죠.

4. 해당 자산의 원 소유자인 일본인들의 청구권 이야기는 제가 그걸 인정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과 리플에서 이미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일본인들이 그런 주장을 했다고 소개하는 것이 곧 제가 그 주장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까? 제가 북한이 목성에 미사일을 맞혔다고 주장한다더라고 하면 그게 북한의 주장을 제가 인정한다는 이야기가 되나요?-_-;;

5. 이것 역시 이미 이야기한 바지만, 제 이야기는 3억 달러가 적다/많다/됐다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3억 달러 받았다는 주장에 대한 이의제기였습니다. 그 점 고려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by 슈타인호프 | 2009/10/11 04:16 | 역사 : 현대(~20XX) | 트랙백(2) | 핑백(3) | 덧글(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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