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으로 족한 것을 비난하지 말자.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언, 15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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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님, 이탈리아 마피아는 표적의 여자 가족도 날린 적 있는데요.
유시민 "마피아도 여자는 안건드린다" 또 성감수성 논란(중앙일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검찰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 수사가 “너무 비인간적”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마피아들도 여자랑 가족은 안 건드린다고 한다”면서다.


1990년대, 이탈리아 중앙정부는 시칠리아 마피아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전을 벌였습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마피아는 중앙에서 내려온 지오반니 팔코네(Giovanni Falcone) 판사(본래 시칠리아 출신이긴 했다고 합니다)와 아내 프란체스카 모빌리오(Francesca Morvillo) 판사, 경찰 경호원 3명을 1992년 5월 23일에 팔레르모에서 폭탄으로 날려버립니다. 도로 밑에 폭약 400kg을 매설해놨다가 차가 지나갈 때 한방에 날려버렸죠.

혹시 이사장님은 마피아가 판사 부인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차를 폭파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시려나요?

시칠리아 마피아가 여자를 건드린 일은 이때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영어 위키) - List_of_victims_of_the_Sicilian_Mafia

여기를 참고하면, 시칠리아 마피아가 여자를 대놓고 해친 사례가 아래와 같이 언급됩니다.

1947년 - 가난한 농민들이 모인 메이데이 행사장에 총을 난사, 사망자 11명에 부상자 23명 발생. 사망자 중 성인 여자 1명, 8세 소녀 1명. 부상자 중에는 턱이 날아간 소녀도 있었음.

1985년 4월 2일 - 팔코네 판사 때처럼 도로에 매설한 폭탄으로 다른 판사를 암살하려고 했는데 일반인인 30세 여성이 모는 차량이 갑자기 판사가 탄 차를 추월하는 바람에 폭탄이 잘못 터져서 같이 타고 있던 6살 난 쌍동이 아들들과 함께 폭사

1985년 12월 12일 - 세탁물 속에서 발견한 마피아 명단을 국가헌병대에 복무하는 오빠에게 전해준 17살 난 세탁소 아가씨가 마피아 행동대원에게 납치, 살해됨

1993년 5월 27일 - 1월에 체포된 두목에 대한 보복으로 일련의 폭탄테러를 벌여 피렌체에서 5명(피해자 중 성인여자 1명, 어린 여자아이 1명, 여자 유아 1명)이 폭사. 2주 전에는 무차별 테러로 로마에서 부상자 23명 발생.


그나마 여기서 두 번째 사례는 변명할 거리가 있겠네요. 그 차를 대놓고 노리진 않았으니.

하지만 다른 사례는 어떨까요? 특히 4번째 사례 피해자들은 법조인가족도 아니고 그저 우피치 박물관을 찾아온 관람객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무차별 테러에 일가족이 전멸했어요. 이 사건은 당시 한국언론에도 보도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伊(이)전역 마피아테러 공포(경향신문 1993.05.29)
.

위키에 적힐 정도로 알려진 것만 이 정도입니다. 그것도 이탈리아 다른 지역 조직들은 제외하고 시칠리아 마피아만, 다치거나 납치당한 사람 말고 "죽은" 사람만 모아놓은 게 이 정도에요. 자살한 사람의 사례는 제가 뺐습니다.

그런데도 "이탈리아 마피아들도 여자랑 가족은 안 건드린다더라"라고요?

아, 물론 "안 건드린다"고 확정적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안 건드린다고 한다"고 하셨으니 확실하게 잘못을 뒤집어쓰실 건 아니네요. "들은 이야기"를 "카더라 통신"으로 인용하신 것뿐이니.

아이고......이만 생략합니다.


by 슈타인호프 | 2019/10/30 17:06 | 뉴스비판 | 트랙백 | 덧글(17)
빙틀러 외전 풀렸습니다^^;;


전자책 말고 종이책에만 실려 있던 외전 총 11편이 외전집으로 따로 발매가 됐습니다.

전자책으로 구매하셔서 외전 때문에 종이책을 사기는 망설여지셨던 분들께 외전을 선보일 수 있게 되어 저도 기쁩니다^^;;

카카오, 네이버, 리디북스 등 모두 나온 거 확인했으니 즐기시는 플랫폼에서 이용하시면 됩니다 :)
by 슈타인호프 | 2019/10/28 12:29 | 내가 히틀러라니!!! | 트랙백 | 덧글(8)
그거 개발한지 40년 넘었는데요.
[단독] 해군 링스헬기 유도탄 절반 고장 '쉬쉬'..수백억 원 손실(YTN)

[김병기 / 더불어민주당 의원 :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해외에서 구매하는 무기들은 단종 또는 폐업 시 수급 문제까지도 고려했어야 했는데, 해군은 이에 대한 대책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 미사일도 수명이 있는데 수명이 다 된걸 어쩌라고....?

링스에서 쓰는 "영국제 대함유도탄"이면 시스쿠아 미사일인 거 뻔한데, 1975년에 개발돼서 한국에는 91년에 처음 들어온 고물 미사일임. 무슨 최첨단 미사일이 고장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 게 단종되면 신품 사는 거 말고 무슨 대책?

아니, 개발된지 40년이 넘은 물건을 마르고 닳도록 고쳐서 쓰라고?

의원님, 님 차는 44년 전 차종 계속 타시라면 타시겠습니까? 그때면 포니 초기형도 안 나온 시절이에요!
by 슈타인호프 | 2019/10/09 12:45 | 뉴스비판 | 트랙백 | 덧글(6)
스페인이 2차대전에 뭐?

스페인 최고법원 “프랑코 총통 국립묘역에서 방 빼라”(서울신문, 입력 : ‘19-09-24 20:49 수정 : ‘19-09-24 21:34)

무솔리니가 통치하던 이탈리아, 나치 독일과 달리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스페인은 1975년 민주주의 이양을 아주 단계적으로 해냈다. 지금은 민주주의가 확고히 뿌리를 내려 많은 이들은 다시 파시스트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패전구~~~~~욱?
by 슈타인호프 | 2019/09/25 12:24 | 뉴스비판 | 트랙백 | 덧글(10)
이번에 개봉하는 장사리 영화에 대한 불만(내용 일부 추가)
25일에 장사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합니다. 김명민도 나오고 메간 폭스도 나온다고 홍보가 아주 난리가 났죠.

그런데 저는 그 홍보가, 그리고 영화를 계기로 쏟아져나오는 여러 매체 기사들이 마음에 안 듭니다. 왜냐고요? 구라쳐서요.



장사상륙작전의 간단한 개요는 이겁니다. 낙동강 방어선을 공격하는 북한군의 후방을 차단하면서 인천상륙작전을 적으로부터 숨기기 위한 양동작전이었고, 이를 위해 인민군 군복과 소련제 소총으로 무장한 학도병 772명이 일반 화물선인 문산호를 타고 북한군 후방에 투입되었는데, 태풍 때문에 상륙이 힘들었던데다 북한군이 저지하고 나서는 바람에 처음에는 3일 동안 치고 빠지려던 게 6일간 고생하다가 겨우 돌아온 이야기에요.

이런 쉽지 않은 작전에 훈련이 부족한 학도병이 동원된 이유가 정식으로 공개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과 이에 뒤이은 대반격을 준비하고 있던 유엔군과 국군 지휘부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 이유가 없는 건 아니에요.

첫째, 여유 병력이 없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경상도 일부 지역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로 좁은 구역에 몰려 있었고, 당연히 병력이 모자랍니다.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도 아직 한국에 다 도착하지 않아 병력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내면서 인천상륙작전도 준비해야 하는데, 생환 가능성도 희박한 위험한 작전에 정규군을 투입할 여유가 없었지요.

둘째, 국제법을 위반하는 작전이었습니다. 교전권에 관한 전시 국제법인 헤이그 육전조약에서는 전시에 적군의 군복으로 위장하고 적을 공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유엔군 또는 국군이 북한군 군복을 입고 적 후방을 공격하는 데 정치적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켈로부대 같은 것도 다 민간인 신분으로 작전한 겁니다. 국제법 위반에다 나중에 쉽게 버릴 수 있으니까요.

(0922. 07:56). 아침에 문득 생각나서 추가.
다만 이 시기의 한국군이 얼마나 형편없는 상태였는가를 감안하면, 북한군 군복과 북한군 총기 지급은 적으로 위장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정식으로 지급할 미제 군복과 총이 "없어서"였을 공산도 높습니다. 더 급박한 낙동강 전선에 투입하는 학도병들도 군복을 못 받은 사례가 있을 정도이니, 특공작전에 투입될 병력에게 돌아갈 군복이 없었을 가능성은 높죠. 이 경우 한국군임을 식별할 수 있게 휘장 같은 것만 확실하게 달면 국제법 위반은 아닙니다. 백선엽 장군의 1사단이 북진하다가 그렇게 신품 소련제 군복을 가득 실은 화차를 노획해서 입고 있던 더러운 옷을 몽땅 갈아입고 계속 진격한 사례가 있고, 2차대전 때 독일군도 영국군 군복에 마크류만 갈아붙이고 입고 다닌 사례가 있습니다.

총기 역시 마찬가지에요. 미군이 제공하는 총은 주전선 수요 대기도 벅차 일제 총기가 아직도 숱하게 돌아다니는 판이었으니, 남는 노획품인 소련제 총을 지급했다고 하면 이해 못할 상황은 아닙니다. 게다가 미제 소총은 순전히 후방에서 보급해주는 탄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소련제 총은 탄약을 북한군에게 노획해서 쓸 수 있습니다. 3일간 작전한다고 3일치 탄약과 식량만 지급한 것도 이 작전이 비판받는 점 중 하나인데, 애초에 노획총기라 재고탄약이 충분하지 않았던데다가 상층부에서는 탄약을 노획해서 보충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공산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게 매스컴에서 어떤 식으로 구라가 쳐지고 있느냐 하니.....


“영화 참여했던 사람으로서도 믿어지지 않더라. 가슴 아픈 역사가 이렇게 묻힐 수 있나 이해가 안 됐다. 1997년이 돼서야 유골과 잔해가 발견됐다고 하더라”고 안타까워 했다.
"국뽕 아닌 희생이 주제" '장사리' 김명민의 사명감(종합)(뉴스1, 입력 2019.09.19. 12:08)

잊혀진 장사리 전투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생존 학도병들이 1980년 7월 ‘장사상륙작전 유격 동지회’를 결성하면서다. 특히 1997년 3월 해병대가 장사리 갯벌에서 좌초된 문산호를 발견하면서 장사상륙작전은 비로소 역사 속에서 부활했다.
인천상륙작전에 가려진 '장사리 전투'를 아시나요(한국경제, 입력 2019.08.23. 17:35 수정 2019.08.24. 00:33 )

하지만 학도병 772명의 희생은 1997년 장사리 해변에서 유골과 당시 사용했던 배가 우연히 발견될 때까지 잊혀져 있었습니다. 장사상륙작전에 참전해 올해 89세가 되신 분을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에 가려진 '학도병 772명 희생'…주인공 직접 만나다(스브스뉴스, 작성 2019.08.19. 18:08)

1997년 LST문산호 선체가 발견되며 ‘작전명 제174호’ 장사상륙작전은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영덕군, 장사상륙작전 및 한국전쟁 사진전시회 개최(경북일보, 2019년 05월 04일 12시 24분)

◆ 김준우> 돌아가기 위해서 조치원함이라고 하는 배를 하나 보내요. 보내는데 이게 너무 북한군의 저항이 심해가지고 결국에는 조치원함이 다시 돌아갑니다. 태우지 못하고 돌아가면서 여기 작전에 투입됐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사하고, 행방불명 되어버리는 일이 벌어지죠. 사실상 이게 있었는지도 몰랐어요.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1997년에 해병대에서 수색을 하다가 좌초되어 있는 문산호를 발견한 거예요. 문산호는 태풍 때문에 좌초됐었잖아요. 그걸 발견해서 이게 무슨 배냐, 조사를 해보니까 이 기록에 남아 있었던 거예요. 772 유격대의 작전명이 기록되어 있으면서 이게 실제로 있었던 작전이구나, 라는 것이 뒤늦게 재조명되면서 지금 영덕군 장사리에 가면 거기 학도병들을 기리기 위한 공동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고, 그래도 나름 이름을 찾아서 새겨놓고 잊지 말자, 라고 하면서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현충일 역사특강]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학도병들의 장사상륙작전(YTN, 입력 2019.06.07. 09:45 수정 2019.06.07. 12:03)

적의 시선을 끌기 위한 페이크 상륙이 되겠는데요, 그래서 누가 상륙한지 아십니까?
772명의 우리나라의 중고등학생들이 뽑혀 갑니다.
총을 쏘는 훈련도 약 보름밖에 받지 못한 10대 소년들이 차출돼서 문산호를 타고 인천상륙작전 직전에 상륙을 하게 됩니다.
하필이면 이때 태풍을 만나서 배는 좌초되고요,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10대 소년들은 육지로 헤엄쳐 갑니다.
식량과 총알은 단 3일뿐이었고요, 그들은 용감하게 폭풍우를 헤치면서 나아가게 되죠.
당시 포항과 영천 방면을 잇는 국도를 점거하고, 적의 북상을 저지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북한군의 시선은 전부 다 여기 있는 동쪽으로 쏠리게 된 것이죠.
안타깝게도 구조선이 출발했지만, 우리 소년병들은 그곳에서 교전하다가 대부분 전사하게 됩니다.

설민석의 영화 [인천상륙작전] 해설강의(단꿈 공식 유튜브 채널, 게시일: 2016. 6. 23.)


작전 자체의 의의에 대한 평가야 뭐 각자의자유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게 뭔 헛소리래요? 기밀이어서 아무도 몰랐어? 47년이나 지나서 해병대가 수색나가서 우연히 배를 발견할 때까지? 그리고 참가한 학도병들이 거의 다 죽었다고? 이게 무슨 신박한 개소리랍니까?

네, 국제법 위반한 작전이었으니까 기밀로 했을 수도 있다고요? 아,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된 제1유격부대, 일명 「명(明)부대」의 활약은 애초에 기밀로 취급된 적이 없어요. 물론 작전 나가기 전에야 기밀이죠. 군사작전은 당연히 그런 거니까. 그런데 끝나고 나서도 이걸 은폐하고 수장고에 처넣고 그런 거 없었단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하나씩 까보겠습니다.


9월 15일(금요일)
전황:
- 미국 해병대, UN, 해병대 이른 아침에 인천 상륙개시, 월미도 탈취, 오후 5시 반에 주력 공격 개시. 월미도 상륙은 미 제1해병사단, 상륙 주력부대는 제10군단, 강륙전 지휘는 도일(Doyle) 소장. 맥아더 원수도 진두지휘, 7개국 군함 261척 참가 – 미국 226, 영국 12, 캐나다 3, 오스트레일리아 2, 뉴질랜드 2, 프랑스 1, 한국 15. (상륙전은 지난달 콜린스 참모총장 방일 시, 도쿄에서 맥아더 원수와 협의하여 결정한 것.)
- 동서 양 해안 협공작전으로, 이른 아침에 한국군이 영덕 남방 장사에 상륙
출전: 한국전란 1년지, 대한민국 국방부 정훈국 전사편찬회, 선광인쇄주식회사, 1951. B44


(사진1, 해당 서적의 해당 페이지. B섹션은 날짜에 따른 전황을 적은 부분이다.)

이 책은 전시 중에, 국방부에서 1951년 10월 15일 자로 정식으로 간행한 공식 기록입니다. 이런 책에서 우리 병력이 “영덕 남방 장사에 상륙”했다고 버젓이 적고 있는데, 과연 이런 작전이 기밀 취급을 받았을까요?

이번에는 전쟁 중에 나온 신문기사입니다.

敵前上陸明部隊(적전상륙명부대) 勇士(용사)와家族調査(가족조사)
서울지구 병사구 사령부에서는 명부대(明部隊)에 종군하였던 우국청년들의 실장을 파악하고자 동 부대에 종군한 본인 또는 본인이 부재시에는 친척이나 우인이 서면으로 오는 25일까지 동 사령부에 신고하여주기 바란다고 한다. 그런데 명부대는 6.25 동란이 발생된 해인 83년도 10월 13일부터 동 20일까지 8일간에 걸쳐 적장 김무정 군단의 보급중계기지인 경북 영덕지구에 적전상륙을 감행하여 적에 일대 손실을 주고 혁혁한 전공을 수립한 부대라고 한다. (경향신문, 1953년 4월 15일)

*1공화국 시기에는 공식적으로 단기를 썼습니다. 단기 4283년은 1950년이며, 위에서 인용한 「한국전란 1년지」도 간행년을 ‘4284년’으로 적고 있습니다.
*작전 시행일을 10월이라고 한 것은 경향신문의 오기입니다.


장사상륙작전이 작전 실시 이후로도 계속 기밀 취급되었다면, 군 당국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참전자를 수소문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이 한 번으로 매스컴에서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前 陸軍 獨立 第一遊擊大隊(전 육군 독립 제일유격대대) 明部隊(명부대) 戰歿將兵(전몰장병) 및 汶山號 犧牲英靈 慰靈祭(문산호 희생영령 위령제) = 十四日 下午 二時 曹溪寺(14일 하오 2시 조계사)에서 (경향신문, 1961년 9월 13일)

기사에서 보듯이, 어디 숨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에 있는 조계사에서 위령제를 열었습니다. 지금 확인된 횟수는 단 한 번이지만, 기밀로 간주되어 공개가 금지된 작전이라면 참전자를 추모하는 위령제를 조계사 같은 곳에서, 신문에 공고까지 내 가면서 치를 수 있을까요?

여기까지만 나오면 혹시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쟁 중, 전쟁 직후에 잠깐 드러냈다가 군사정권 시기에 다시 묻어버린 것은 아니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3공화국 시기에 국방부가 간행한 6.25 공간사인 「한국전쟁사」(1970) 3권에서는 문산호의 사진과 작전 요도까지 포함해서 무려 3페이지에 걸쳐 장사상륙작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진2: 작전 요도가 기재된 해당 서적 650p. 전체 묘사는 648~650p입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중앙일보가 1982년에 출간한 「민족의 증언」이라는 한국전쟁 관계자 증언집 2권에서는 9페이지에 걸쳐서 당시 대장이었던 이명흠(74년에 이종훈으로 개명) 대위를 비롯한 관계자 5명의 회고를 실었습니다.

(사진3: 해당 서적에 실린 부대장 이명흠 대위의 회고 일부)


그보다 더 뒤에 나온 책인 「한국전쟁시 학도의용군」(육군본부, 1994)에서는 26페이지에 걸쳐서 장사상륙작전에 관한 여러 사실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이 부대에 참여한 학도병 677명의 명단과 군번까지 실었습니다.

(사진4: 해당 서적에 실린 명부대 편제. 전원 학도병이 아니고, 정규 장교진이 간부로 섞여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사진5: 해당 서적에 실린 명부대 명단 및 군번 일람의 일부)



국방부에서, 언론에서 이렇게 몇 차례씩이나 펴냈는데 이 작전이 과연 “1997년에 문산호의 잔해가 우연히 발견될 때까지 아무도 몰랐던” 비밀스러운 작전이 될 수 있을까요?

심지어 이 작전은 80년대 어린이들의 반공교육을 위해 간행한 만화책에서도 태연히 묘사될 정도였습니다. 「반공윤리학습극화 한국전쟁」(전 15권, 최수길 프로덕션, 계림출판사, 1981)의 8권 ‘인천상륙작전’ 편과 9권 ‘북진, 북진!’에서 나와요. 다만 만화책에 묘사된 장면들은 극화되어 있어서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창작 파트도 있습니다.

(사진6: 8권 ‘인천상륙작전’ 편, 109~110페이지. 문산호의 좌초와 그에 따른 혼란 묘사. 이 권은 제가 갖고 있지 못해서 부득이하게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입니다.)

(사진7: 9권 ‘북진, 북진!’ 편, 59페이지, 명부대의 최종 후일담 기술. 단 81년 시점이라 그 뒤로 확인된 부분들은 반영이 안 되어 있습니다.)

애들이 보라고 만든 만화책에까지 실린 작전을, 50년 가까이 기밀로 유지되어 아무도 몰랐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여기서 언급한 책이 전부가 아닙니다. 제가 안 가지고 있는 수기도 있고, 그 외 기타 출판물 중에 장사상륙작전에 관해 기술한 기록물은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사진8: 참고서적들)

아, 까먹을 뻔 했네요. 학도병 거의 전멸했다 그랬죠? 설민석이랑 현충일 특강 한 고등학교 선생? 그 선생의 소스가 설민석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안 맞습니다. 정규 군인 및 민간인 선원 포함 특공대원 772명 중에서 전사자 및 실종자 129명, 이중에서 구출선이 먼저 떠나는 바람에 낙오해서 포로로 잡힌 인원이 39명(여기서 몇 명은 도망쳐서 돌아옵니다)입니다. 고로 탈출한 인원은 부상자 포함 640여 명(1970년판 한국전쟁사는 677명). 생환자가 훠어어얼씬 많습니다. 뭐? "대부분 전사"? 미친...


여기서 마무리로 기막힌 거 하나 더 터트려 볼까요? 문산호, "1997년에 유해와 함께 발견된" 거 아닙니다.-_-

【 대구=최원규기자 】영덕군과 영덕 장사 상륙작전 유격 동지회는 5일 당시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 앞바다에서 상륙작전을 벌이다 군함 문산호가 좌초되면서 실종된 70여명의 국군 유격대원 유해인양작업에 착수했다. 이들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지 47년만이다.
국가보훈처로부터 유해 인양 발굴비 7백10만원을 지원받아 이날 오전 시작된 발굴작업에서 해병1사단 수색대원 12명은 장사 앞바다 50여m 연안 개펄속에서 당시 침몰된 선체를 확인한데 이어 무릎뼈로 보이는 유골 1점을 발견했다.

[한국전 유해] 영덕앞바다서 좌초 문산함…47년만에 인양(조선일보, 입력:1997.03.06 14:47)

이 기사에서 명백히 적고 있듯, 1997년에 이루어진 유해 인양은 영덕군과 생존한 상륙작전 참전자들이 ‘보훈처에 요청한 비용 지원’이 드디어 통과되면서 성사된 겁니다. 앞에서 인용한 여러 기사에서 ‘해병대가 수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주장은 인양에 참여한 인력이 해병대 수색대였다는 사실이 와전되면서 나온 "가짜뉴스"였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작전에 참여했던 생존자가 수백 명이나 있었죠? 학도병들이라 나이도 어렸죠? 지금도 생존자(89세)가 있을 정도죠? 배가 난파한 장소가 어디 망망대해나 외딴섬도 아니고 사람 사는 동네(장사동) 바로 앞이죠? 실제로 작전 때도 특공대가 매장하지 못하고 떠난 시체를 장사동 동네 주민들이 모아다 묻어줬을 정도였어요. 그럼 답 나오지 않습니까? 배가 가라앉은 위치가 잊혀지는 게 도리어 이상한 거 아니에요?

그러면 답 간단하게 나오는겁니다. 기사에도 나오죠? "국가보훈처에서 돈 나온 다음에" 발굴 들어갔다고요. 비용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국가적으로 인정을 받은 후에 발굴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애초에 해안에 있는 유해는 대부분 동네 주민들이 수습해서 묻어줬고, 배에서 죽고 다친 인원들은 구조선에 싣고 갔기 때문에 문산호 자체에는 발굴할 유해 자체도 거의 없었습니다. 기사에 나오잖아요. 무릎뼈 하나 건졌다고요.



분명히 이 작전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건 사실이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지요. 과연 한국전쟁 때 있었던 그 많은 전투 중에,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보다 더 많은 전투가 있기는 할까요?

아마도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전투일 인천상륙작전도 맥아더가 지휘해서 인천을 공격했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 말고는 모르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한강 방어전이나 낙동강 방어전도 대략 이름만 알 뿐, 상세한 전황에 대해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장사상륙작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기밀도 아니었고, 생존자들이 공개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명흠 대위 회고에서도 매년 육군 교회에 모여서 추모예배를 드린다고 대놓고 적었어요(다른 생존자들은 위급한 상황에서 이 대위가 지휘는 안 하고 기도만 드렸다고 깠음). 그런 사건을 가지고 마치 수십 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묻혀 있던 일처럼 보도하는 건 보도하는 기자가, 그리고 영화 관계자가 제대로 조사를 안 했고 할생각도 없다고 대놓고 인증하는 것뿐입니다. 아, 영화사 측에서야 그것도 다 마캐팅이겠지만 말이죠. 아무도 모르던 걸 우리가 발굴했다~해야 장사가 되니까. 어느 쪽이건 기가 찰 뿐입니다.
by 슈타인호프 | 2019/09/21 12:31 | 뉴스비판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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